매일 한 편의 말씀

앞에 쓴 말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야릇한 공포와 두려움이 아니고 회피가 아니고 멀리함도 아니고 숭배도 아니고 미신도 아니라 앙모, 숭경(崇敬), 신임, 이해, 배려, 순복, 봉헌, 사랑이며 조건없고 불평없는 경배와 보답과 귀복(歸服)이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없으면 진정한 앙모도 없고 진정한 신임도 없으며 진정한 이해도 없고 진정한 배려와 순복도 없으며 단지 두려움과 불안만 있고 의심, 오해, 회피와 멀리함만 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없으면 진정한 봉헌과 보답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없으면 진정한 경배와 귀복도 없고 단지 맹목적인 숭배와 미신만 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도를 준행할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으며 악에서 떠날 수 없다. 전체보기 ›

제1편: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와 하나님 역사가 달할 효과

하나님은 살아있는 하나님이다. 일에 부딪치면 사람에게 각기 다른 표현이 있는데, 사람의 각기 다른 표현에서 하나님께도 서로 다른 태도가 있다. 이는 그가 나무 인형이 아니고 공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태도는 사람이 인식할 가치가 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태도를 인식함을 통해 조금씩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네가 조금씩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주 해내기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하나님을 이해할 때 하나님을 쉽게 규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네가 더는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을 때 하나님을 쉽게 거스르지 않을 것이며, 부지중에 하나님이 너를 인도하여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할 것이다. 전체보기 ›

제2편: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1

사실상, 하나님의 성품은 각 사람에게 모두 공개한 것이지 숨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태껏 의식적으로 그 어떤 사람도 피한 적이 없고 여태껏 의식적으로 자신을 감추어 사람에게 그를 알지 못하게 하고 요해하지 못하게 한 적도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은 시종 공개된 것이고 시종 솔직하게 각 사람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중에서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하면서 각 사람과 마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을 각 사람 몸에 하고 있다. 그는 이런 사역을 하는 동시에 부단히 그의 성품을 유로하고 있고 또한 부단히 그의 실질로써, 그의 소유소시(所有所是)로써 각 사람을 인솔하고 각 사람에게 공급하고 있다. 매 시대, 매 단계에서 좋은 환경이든 아니면 열악한 환경이든 하나님의 성품은 각 사람에게 모두 공개된 것이다.  전체보기 ›

제3편: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

욥은 그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축복에서 온 것이지 그가 고생해서 얻은 것이 아님을 마음속 깊이 인정했다. 그러므로 그는 얻은 축복을 자본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이 지켜야 할 도를 최선을 다해 지키는 것을 생존의 원칙으로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히 여겼다. 하지만 그는 결코 더 많은 축복을 탐내거나 요구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가 가산을 대한 태도였다. 그는 축복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한 것도 아니고 축복이 없거나 축복을 잃음으로 인해 번뇌하지도 않았고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기뻐서 날뛰거나 너무 흥분하여 모든 것을 잊은 것도 아니고 늘 축복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도를 소홀히 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도 않았다. 전체보기 ›

제4편: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

하나님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 첫 번째 생각이 있었다. 즉 하나의 산 사람, 하나의 살아있는 사람을 창조하여 그와 함께 생활하고 그의 동반자로 되어 그의 곁을 함께하며, 이 산 사람이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가 털어놓는 것을 들어줄 수 있고 또 그와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처음으로 친히 흙 한 줌을 쥐어 그의 마음속의 첫 번째 산 사람을 손수 만들었다. 뒤이어 그는 처음으로 이런 생물에게 아담이란 하나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나님이 이런 하나의 살아있는 사람을 얻은 후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그는 처음으로 가족이 있게 된 즐거움과 동반자가 있게 된 즐거움을 느꼈고 처음으로 부친으로서의 책임을 느꼈으며 처음으로 걱정도 느꼈다.  전체보기 ›

제5편: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 하나님의 권병 (1)

"하나님의 권병"을 보통 말로 해석하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어떻게 하는가를 결정할 권한이 있으니 하나님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만물의 법칙은 모두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지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의지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명정으로 말미암아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천지만물, 우주, 별하늘, 일년 사계절, 사람이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명정대로, 하나님의 분부대로, 하나님이 당시에 창조한 법칙대로 조금도 차이 나지 않게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서 존재하고 운행하고 변화되고 있다. 어떠한 사람이나 어떠한 물질도 그것의 법칙을 바꿀 수 없고 그것의 원래의 운행 궤적을 바꿀 수 없다. 전체보기 ›

제6편: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의 전후 변화를 해독(解讀)함을 통해 너희는 ‘유일무이’, 이 단어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중의 긍휼을 묘사할 수 있는가?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 중의 한 방면 실질이라고 말했다. 지금 나는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긍휼, 이 2가지 방면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정의하겠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거룩한 것이고 사람의 범함을 허용치 않는 것이자 그 어떤 사람도 의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고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구비하지 못한 것이며 하나님의 특유한 것이자 역시 하나님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진노는 거룩한 것이고 사람의 범함을 허용치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다른 한 방면 즉 하나님의 긍휼도 역시 거룩한 것이고 사람의 범함을 허용치 않는 것이다.  전체보기 ›

제7편: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 하나님의 권병 (2)

사람이 하나님의 지배를 모르고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기 때문에 운명을 대함에 있어서 사람은 늘 대항하는 정서가 있고 늘 거역하는 태도가 있으며 또한 늘 하나님의 권병에서 벗어나려 하고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려 하고 운명의 안배에서 벗어나려 하며 현재의 상황을 바꾸고 자기의 운명을 바꾸려고 망상한다. 하지만 항상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곳곳마다 난관에 부닥친다. 이런 영혼 깊은 곳에서의 몸부림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이런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고 동시에 또 사람의 생명을 이렇게 헛되이 소모시키고 있다. 사람의 이 고통은 어떻게 초래된 것인가? 하나님의 주재가 가져다준 것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사람의 운명이 나쁘기 때문인가? 아주 뚜렷한바, 이 양자는 다 아니다. 결국 모두 사람이 걸은 길 때문에 초래된 것이고 사람이 택한 생존 방식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전체보기 ›

찬양
낭송
간증

BOOKS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국도시대 그리스도의 발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속편)
국도시대 그리스도의 발표

   1566-2851 / 070-7516-7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