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신적 본질에 대해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인성이든 신성이든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이자 신성이기에 그의 본질이 곧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다. 그 본질이 그의 사역을 방해할 리 없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망치는 일도, 자신의 뜻에 위배되는 말도 할 리가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어떠함을 나타낼 것이며,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혹은 참도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겉모습을 살피느라 그 본질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무지몽매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하나님을 알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 어떤 자는 “저는 성육신 하나님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 가야 하나요?”라고 말한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 성품의 발현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그리고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 등을 볼 수 있다. 말씀은 사람을 통해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직접 선포한 것으로,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말씀과 마음의 소리를 선포한 것이다. 왜 마음의 소리라 하겠느냐? 마음 깊은 곳에서 선포되어 나온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의 성품과 뜻, 생각과 함께 인류에 대한 그의 사랑과 구원, 기대 등을 선포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 어떤 말씀은 엄격하고, 어떤 말씀은 따뜻하고, 어떤 말씀은 자상하며, 어떤 말씀은 사람의 뜻에 맞지 않게 폭로하였다. 만약 폭로한 말씀만 보면 하나님이 매우 엄격하다고 느낄 것이고, 따뜻한 말씀만 보면 큰 권병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말씀의 일부만 보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여러 입장에서 말씀을 봐야 한다. 때로 하나님이 따뜻하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입장에서 말씀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 그러다 엄격한 입장에서 말씀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더럽기 짝이 없어 하나님 얼굴을 볼 자격도, 그 앞에 올 자격도 없지만, 지금 이렇게 하나님 앞에 오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사역 방식과 의의에서 하나님 지혜의 일면을 보게 되는데, 사람이 하나님을 접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다.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접할 때 자신의 인식과 맞을 것이다. 만약 그에게 도리상의 인식만 있다면 하나님을 접했을 때 자신의 인식과 맞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의 진리는 가장 심오한 비밀이어서 측량하기가 쉽지 않다. 성육신의 비밀과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종합해서 각각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이 부분의 진리에 대해 다 같이 많이 기도하고 묵상하고 교제하면 성령의 깨우침으로 알게 될 수도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접할 기회가 없으므로 이렇게 조금씩 체험해서 찾고 진입하여 하나님을 진실로 알아 가야 한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성육신 하나님을 알 것인가> 중에서
비록 성육신 하나님이 겉으로는 사람과 다르지 않고, 또 사람의 지식을 배우고 사람의 언어를 쓰며, 심지어는 사람의 방식과 화법을 빌려 그의 뜻을 표현할 때가 있다고 해도, 그가 인류를 대하고 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패괴된 인류와 결코 같지 않다. 게다가 그가 서 있는 위치와 차원은 패괴된 인류 중 누구도 닿을 수 없다. 하나님은 진리이므로 그가 입고 있는 육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갖추고 있으며, 그의 생각과 인성이 나타내는 것 역시 전부 진리이다. 패괴된 인류에게 있어, 하나님의 육신이 선포하는 것은 다 진리의 공급이자 생명의 공급이며, 이는 특정한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한 공급이다. 패괴된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관련된 몇몇 사람만을 마음에 수용할 수 있고, 관심을 갖고 걱정하는 이도 단지 몇몇에 지나지 않는다. 재난이 닥치면 먼저 자기 집의 아이들과 배우자, 부모만을 생각한다. 비교적 ‘넓은 사랑’을 가진 사람도 고작 어느 친척이나 친한 친구를 생각할 뿐이다. 이보다 더 많은 이를 떠올릴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람의 위치와 차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패괴된 인류와 완전히 다르다. 그 육신이 아무리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보잘것없어 보여도, 심지어 사람에게 아무리 멸시를 당해도, 그의 마음과 인류에 대한 태도는 그 어떤 사람도 갖출 수 없고 모방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신성의 위치에서, 창조주의 차원에서 인류를 관찰하고, 하나님의 본질과 마음으로 인류를 대한다. 그는 절대 평범한 사람의 차원이나 패괴된 사람의 관점으로 인류를 대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의 안목으로, 사람의 지식과 규칙, 학설 등을 평가 기준으로 인류를 바라본다. 이런 것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고 패괴된 인류가 이를 수 있는 범주이다. 반면, 하나님이 인류를 볼 때는 하나님의 시각과 본질, 소유와 어떠함을 평가 기준으로 삼으며, 이 범주는 사람이 볼 수 없는 범주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과 패괴된 인류의 확연히 다른 점이다. 이 차이는 각자의 본질로 말미암아 결정된 것이고, 본질의 차이는 각자의 신분과 지위, 그리고 사물을 대하는 관점과 차원을 결정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에게서는 인류가 특정 사물에 대해 갖는 관점 같은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인류의 관점이나 지식, 과학, 철학, 상상으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반대로 하나님이 행하고 나타낸 모든 것은 진리와 관련이 있다. 즉, 하나님이 한 모든 말씀과 모든 일은 다 진리와 관계가 있다. 그 진리는 터무니없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다. 그러한 진리와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과 생명으로 인해 발현된 것이다. 그런 말씀과 하나님이 행한 일들의 본질이 진리이므로 하나님의 본질은 거룩하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모든 행사나 말씀은 사람에게 생기와 빛을 가져다준다. 그리하여 사람에게 긍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의 실제를 보게 하고 길을 알려 줘 바른길을 가게 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에 의해 결정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중에서
네가 사회 경험을 갖고 있는지, 가정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경험했는지는 모두 네가 나타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에서는 그의 사회적 이력을 볼 수 없다. 그는 사람의 본질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으며,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을 모두 들춰낼 수 있고,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역 행위는 더욱 잘 들춰낼 수 있다. 세상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지 않지만 일반인의 본성과 세상 사람의 모든 패괴를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어떠함이다. 그는 세상살이를 해 보지 않았지만, 세상살이에 관련된 작은 것까지 잘 알고 있다. 그는 사람의 본성을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고,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영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현재나 과거의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여기에는 처세 철학이 아닌, 지혜와,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기묘함이 담겨 있다. 이것은 그의 어떠함으로, 사람에게 공개되기도 하고, 숨겨져 있기도 하다. 그가 나타내는 것은 비범한 사람의 어떠함이 아니라 영의 고유한 속성과 어떠함이다. 그는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천하의 일을 알고 있다. 그는 지식도, 식견도 없는 ‘유인원’들을 접했지만 지식보다 뛰어나고 위인보다 고매한 말씀을 선포한다. 또 인성이 없고 인성의 규칙과 인성 생활을 모르는 어리석고 무감각한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인류에게 정상 인성으로 살 것을 요구할 수 있고, 동시에 인류의 비열하고 천박한 인성을 들춰낸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어떠함이며, 육에 속하는 그 어떤 사람의 어떠함보다도 높다. 그는 복잡하고 번거로우며 불결한 사회생활을 체험하지 않고서도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며, 패괴된 인류의 본질을 남김없이 들춰낼 수 있다. 불결한 사회생활은 그의 육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의 사역과 말씀은 사람의 패역을 들춰내기만 할 뿐, 사람에게 처세 경험이나 교훈을 공급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때, 사회 조사도, 사람의 가정 조사도 할 필요가 없다. 그가 사람을 들춰내고 심판하는 것은 그의 육신이 체험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패역을 알고 인류의 패괴를 증오했기에 사람의 불의를 들춰내는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다 사람에게 그의 성품을 공개하고, 그의 어떠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사역은 그 자신만이 할 수 있으며, 육에 속한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그가 한 사역을 놓고 보면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고, 그를 피조된 인간으로 분류할 수도 없으며, 또한 그의 어떠함을 놓고 봐도 그를 피조된 인간으로 분류할 수 없다. 그래서 비인류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또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몰라 ‘신’으로 분류한다. 사람의 이런 행동이 이치에 어긋난 것은 아니다.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역을 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하나님은 육신으로 사역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육신을 입은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경배드릴 수 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으며, 그의 신분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다. 그는 그저 하나의 피조물로 이 땅에 왔기에 피조물의 외형, 전에 없었던 인성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그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는 것, 이는 하나님 자신의 어떠함이요,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신분이 하나님 자신임에도 그가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은 육신의 위치에서 행하는 일이므로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경배드린다’는 표현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 역시 그의 어떠함이다. 사람에게 요구하기 전에 그는 이미 그렇게 행하였다. 그는 절대로 자신은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만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어떠함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사역하든 하나님을 거역할 리 없고, 그가 사람에게 어떻게 요구하든 사람이 행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리 없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다.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보다도 높으므로 그는 피조물 중에서 최고의 권병을 갖고 있다. 그 권병은 신성이자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어떠함이다. 그 성품과 어떠함으로 그의 신분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이 아무리 정상일지라도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든, 그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육신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함이지, 사람에게 그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는 사역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입증하고, 그가 드러내는 것으로 자신의 본질을 증명한다. 그의 본질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신분은 그가 빼앗아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과 본질로 결정된다. 그는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지니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행할 수 있지만, 어쨌거나 그는 영과는 다른 육신이며, 영의 속성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라 육신의 외형을 지닌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그가 얼마나 정상적이고 연약하든,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든 그의 신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성육신 하나님에게는 정상 인성과 정상 인성의 연약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신성의 기묘함과 측량 불가능함, 그리고 육신의 모든 행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모두 확실히 지니고 있으며, 조금도 공허하거나 초자연적이지 않다. 그가 이 땅에 온 주요 목적은 사역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정상 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성의 위력이 아무리 크다 한들 그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인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인성이 그의 본질은 아니다. 그의 본질은 신성이다. 그러므로 그는 땅에서 직분을 행하기 시작할 때 신성의 어떠함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의 인성은 그저 육신의 정상 생활을 유지함으로써 신성이 육신에서 정상적으로 사역하게 할 뿐이고, 사역을 지배하는 것은 오롯이 신성이다. 그가 사역을 완성하면 자신의 직분을 다한 것이다.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그의 모든 사역이며, 사람은 사역을 통해 그를 알게 된다. 그는 사역하는 과정에서 신성의 어떠함을 완전히 나타낸다. 거기에는 인성의 성품이 들어 있지 않고, 사유나 사람의 어떠함 또한 들어 있지 않다. 그의 모든 직분이 끝날 때, 그는 자신이 나타내고자 했던 성품을 완벽하게 나타낸 것이다. 그의 사역은 어느 누구의 지시를 받지 않으며, 그의 성품 역시 아주 자유롭게 나타난다. 머리로 지배하거나 생각을 통해 가공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환경이 열악하거나 조건이 여의치 않아도 그는 적절한 때에 그의 성품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어떠함을 나타내지만 그리스도가 아닌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성품이 없다. 그러므로 그를 대적하거나 그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리스도가 나타낸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사람, 진심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고 그가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지, 절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것을 이유로 그리스도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 아주 어리석지만, 무엇이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는 알고 있다. 단지 많은 사람이 본인의 속셈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할 뿐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존재를 부정할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가 나타내는 신성은 분명 존재하며, 사람은 육안으로 직접 그의 사역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말씀이 그의 본질을 결정한다. 그는 진심을 다해 자신의 어깨에 놓인 사명을 완성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한다. 이는 모두 그의 본질로 결정된다. 그에게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역시 그의 본질로 결정된다.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가 드러내는 것들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모방한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배우거나 수년간 양육받은 결과도 아니며, 그가 스스로 배우거나 꾸민 것도 아니다. 사람은 그의 사역과 말씀을 부정하고, 그의 인성과 그가 지닌 정상 인성의 모든 생활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배한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그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왔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구한다는 사실 역시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의 형상은 사람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그의 말에는 비범한 분위기가 풍기지 않으며, 그의 사역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천지를 개벽하거나 세상을 뒤흔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분명 진심을 다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완전히, 죽기까지 순종하는 그리스도이다. 그의 본질이 바로 그리스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를 쉽게 믿지 못하지만 이는 분명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가 직분을 완전히 다하고 나면, 사람은 그의 사역을 통해 그의 성품과 어떠함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그가 행한 모든 사역을 종합해 보면, 그는 육에 속한 사람과 같은 육신이 아닌, ‘말씀’으로 된 ‘육신’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영은 만물에 대한 권병을 지니고, 하나님의 본질이 있는 육신 역시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모든 사역을 할 수 있다. 이는 어느 누구도 이를 수 없고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권병이지만, 그의 육신은 그의 권병에 순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는 말에 내포된 의미다.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구원 사역을 할 수 있고, 사람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구원 사역을 할 수 있다. 어쨌든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을 하고, 이를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으며, 모순되는 사역은 더욱 하지 않는다. 영과 육신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이든 육신이든 모두 같은 뜻을 이루려 하며, 같은 사역을 경영하기 때문이다. 비록 영과 육신이 서로 아무 상관 없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닌다고는 하나 그 본질은 동일하다. 모두 하나님 자신의 본질과 신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으며, 하나님의 본질은 선하다. 그는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의 발현이자 모든 사랑의 발현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수하지, 다른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에게는 독선적이거나 자만하는 성분이 없고, 오만 방자하거나 교활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이 사탄과 같은 속성을 갖게 된 이유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을 뿐, 사탄의 속성은 없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생활할 때 사역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의 육신이 아무리 연약해져도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며 거역하는 일은 더더욱 저지르지 않는다. 육신이 고통받을지언정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는 예수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없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나 그는 똑같이 육신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가 준 사명을 완수한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육신이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므로 그의 육신 역시 마찬가지로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이 같은 육신은 오로지 공의로운 일, 인류에게 유익한 일, 거룩하고 빛나며 위대한 일만 할 수 있다.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할 리 없고, 하나님의 영을 배반하는 일을 할 리는 더더욱 없다. 하나님의 영은 거룩하므로 그의 육신 또한 사탄에 의해 패괴될 수 없으며, 그것은 사람과는 다른 본질을 가진 육신이다. 사탄이 패괴시키는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며, 게다가 사탄은 하나님 자신의 육신을 패괴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과 그리스도가 같은 공간에서 살아도 사람만 사탄에게 점령되고, 이용당하고, 해를 입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는 절대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는다. 사탄은 영원히 가장 높은 곳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께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희는 나를 배반하는 존재는 오직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뿐이며, 이 문제는 그리스도와 영원히 하등의 관계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우리는 어느새 이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이끌려 하나님 사역의 절차 속으로 한 단계씩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시련과 채찍질, 그리고 죽음의 시험을 겪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롭고 위엄 있는 성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누렸으며, 하나님의 크나큰 능력과 지혜를 깨달았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절실한 마음도 보았다. 우리는 이 평범한 사람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알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며, 또한 사람의 본성과 본질도 알았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을 보았다. 그의 말씀은 우리를 ‘죽게’ 하는 동시에 ‘부활’시켰고, 우리를 위로하는 동시에 가책과 죄책감을 배로 느끼게 했으며,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끝없는 고통을 안겨 주기도 했다. 우리는 때로 그의 손안에 있는 어린양마냥 그의 뜻대로 처분되었고, 때로는 그의 눈동자처럼 그의 사랑을 받았으며, 또 때로는 그의 원수처럼 그의 눈앞에서 그의 분노에 의해 잿더미로 변했다. 우리는 그가 구원하는 인류이고, 그의 눈에 구더기로 보이는 존재이자, 또 그가 주야장천으로 찾는 길 잃은 양이었다. 그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우리를 미워하며, 우리를 들어 세우고,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를 깨우치셨다. 또 그는 우리를 징계하거나 책망하고, 심지어 우리를 저주하기도 하셨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걱정하고 돌보고 지켜 주었으며,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우리를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이고 모든 대가를 쏟아부으셨다. 우리는 이 작고 평범한 육신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종착지도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허영심이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서 방해하여 우리는 이 사람을 선뜻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가 우리에게 수많은 만나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가져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속 ‘주님의 지위’는 그런 것들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이 사람의 특별한 신분과 지위를 존중했다. 그가 직접 입을 열어 자신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고 말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로 그가 바로 장차 오실 하나님, 그러나 또한 오래전부터 우리들 가운데서 사역하신 하나님이라고 먼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며,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다양한 위치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깨우치고, 마음의 소리를 전하셨다. 생명력을 가진 그의 말씀은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도를 주고,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했고, 그 말씀의 어조와 말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자신도 모르게 그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의 소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심혈을 쏟아부었고, 우리 때문에 침식을 잊었으며, 우리 때문에 울고, 우리를 위해 탄식하셨다. 또한 우리를 위해 병으로 신음하고, 우리의 종착지와 구원을 위해 굴욕을 견뎠으며, 또 우리의 무감각과 패역 때문에 마음에서 피와 눈물을 흘리셨다. 이러한 소유와 어떠함은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것이자, 패괴된 사람은 절대 갖출 수도, 이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심을 지니고 있었고,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지 못한 것이었다.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의 생각을 알지 못하고, 어떤 이도 우리의 본성과 본질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지 못하며, 어떤 이도 인류의 패역과 패괴를 심판하지 못하고, 어떤 이도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거나 사역할 수 없었다. 또한, 그 말고는 어떤 이도 하나님의 권병과 지혜와 존엄을 갖추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와 어떠함은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현되었다.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 주거나 빛을 가져다줄 수 없었다.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공개하지 않은 비밀을 밝힐 수 없었고,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를 사탄의 속박과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한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당부,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그는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기원을 열었고, 새 하늘과 새 땅, 새로운 사역을 가져왔으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미망 속에서 보내던 우리의 삶을 끝내셨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분명히 보게 하였고, 우리를 정복했으며, 우리의 마음을 얻으셨다. 그때부터 우리의 마음속에는 지각이 생겼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했다. ‘이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 우리들 가운데서 살면서 오랫동안 우리에게 버림받았던 사람이 바로 우리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예수가 아닌가? 이분! 바로 이분이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이분이 바로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시다! 이분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광명을 보게 했으며, 우리의 마음이 더는 방랑하지 않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하나님과 마주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았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그에게 완전히 정복되었고, 더 이상 그의 신분을 의심하지도, 그의 사역과 말씀에 맞서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의 앞에 오롯이 엎드려 이생에 하나님의 발자취만 따르리라 다짐하였고, 그에게 온전케 되고 그의 은총과 사랑에 보답하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또한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그의 사역에 협력하며, 온 힘을 다해 그가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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