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겪은 후의 욥

2024.02.09

욥 42:7~9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 42: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욥 42:17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를 귀하게 여기고 우매한 자를 천하게 여긴다

욥기 42장 7절에서 9절에 하나님은 욥을 그의 종이라고 언급했다. 욥에게 사용한 ‘종’이라는 이 호칭은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욥이 차지한 비중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그를 더 높은 호칭으로 부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호칭이 하나님 마음속에서 욥이 차지한 비중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여기서의 ‘종’은 욥을 부르는 하나님의 ‘애칭’이다. 하나님이 여러 차례 ‘내 종 욥’이라고 언급했다는 사실에서 욥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을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은 ‘종’이라는 단어의 함의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말씀 구절에서 하나님이 ‘종’이라는 단어에 내린 정의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먼저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욥을 시련한 후, 처음으로 욥의 행동과 말을 열납했음을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며, 욥의 행동과 말이 정확하고 옳았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하나님은 엘리바스 등 친구들의 정확하지 않은 그릇된 논쟁에 분노를 표출했다. 그들도 욥과 마찬가지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모습을 본 적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욥이 하나님에 대해 그토록 정확한 인식을 가졌던 반면,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엉뚱하게 추측하고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겼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염증을 느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욥의 행동과 말을 열납하는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는 분노를 품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실제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라고 요구했다. 이 구절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엘리바스 등 친구들에게 속죄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그들은 우매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므로 반드시 번제를 드려 과오를 만회해야만 했다. 보통 번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나, 여기서의 번제는 욥에게 드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번제의 차별화된 점이었다. 욥은 시련 가운데서 하나님을 증거했기에 하나님께 열납되었지만, 욥의 친구들은 욥이 시련을 받는 동안 다 드러났다. 그들은 우매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정죄받았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으니 마땅히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야 했다. 이 ‘징벌’이 바로 욥 앞에서 번제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과 노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한 이유는 그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들이 아니었으며 또한 욥의 순전함을 정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자신이 그들의 행동은 열납하지 않으나 욥의 행동은 흔쾌히 열납하고 기뻐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자 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그들에게 사람은 하나님께 열납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높아지며, 우매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 하나님께 죄를 지어 하나님 눈에 천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려 주고자 했다. 이 두 가지 측면은 두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이자 태도였다. 또한 이 두 부류 사람의 값어치와 지위에 대한 해석이기도 했다. 비록 하나님은 욥을 종이라 불렀지만, 이 ‘종’은 하나님 눈의 기뻐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에게서 권병을 받아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과오를 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직접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보다 지위가 높고 존귀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종’의 진정한 함의이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기에’ 이런 ‘특별한 영광’을 얻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종’으로 불리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이 두 태도는 두 부류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이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하나님께 열납되고 귀하게 여겨지지만, 우매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에서 떠나지 못해 하나님의 기쁨을 얻을 수 없으며, 늘 하나님의 미움을 사고, 하나님께 정죄받고, 천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욥에게 권병을 주다

욥은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고, 그 기도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의 우매함에 따라 그들을 처리하지 않았다. 즉, 그들에게 벌도, 어떤 응징도 내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의 종인 욥이 그들을 위해 드린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욥의 기도를 열납했기에 그들을 용서했다. 너희는 여기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한 사람을 축복할 때 많은 것을 내려 주는데, 그것은 물질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권병을 주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자격을 부여한다. 하나님은 욥의 기도로 말미암아 더 이상 그 몇 사람의 과오를 기억하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욥에게 준 권병이었다. ‘욥의 기도로 타인이 하나님께 정죄받지 않는’ 방식을 통해 그 우매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것이다. 물론, 이는 또한 엘리바스 등 친구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징벌이기도 했다.

욥은 다시 하나님의 복을 받았고 더 이상 사탄에게 참소당하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욥은 어떤 말을 했느냐? 바로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던 말, 또 욥기에 기록된 그 많은 말을 했다.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그 말들을 보면, 욥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원망도 의심도 없었으며, 오직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기다림이 바로 그의 순종하는 태도였다. 그의 태도와 그가 하나님께 한 말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를 열납하였다. 그가 시련을 겪고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은 그의 곁에 있었다. 하나님이 곁에 있다고 해서 그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보고자 한 것을 보았고, 듣고자 한 것을 들었다. 욥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 눈에 들어왔고, 그의 모든 말은 하나님 귀에 상달되었다. 하나님은 전부 듣고 보았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때 그 시기, 하나님에 대한 욥의 앎과 마음속 생각은 사실 오늘날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구체적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시의 배경에 따라 그가 말한 것을 인정해 주었다. 욥의 마음속 생각과 모든 행실, 그가 보여 주고 드러낸 모든 것들이 이미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욥이 시련을 겪는 동안, 그의 마음속 생각과 다짐은 하나님께 결과를 보여 주었고, 그 결과는 하나님이 보기에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뒤이어 하나님은 시련을 거두어 갔다. 그 후 욥은 고통 속에서 벗어났으며, 그의 시련도 그렇게 사라져 다시는 임하지 않았다. 욥은 이미 시련을 겪었고, 또한 시련 속에서 굳게 서서 사탄을 철저히 이겼기에 하나님은 그가 받아 마땅한 복을 그에게 내렸다. 욥기 42장 10절과 12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욥은 또 한 번 하나님의 복을, 처음보다 더 많은 복을 받았다. 이때, 사탄은 물러가 더 이상 아무 말도,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욥은 더 이상 사탄의 방해와 공격을 받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욥에게 복을 준 것 역시 더 이상 사탄에게 참소당하지 않았다.

욥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여생을 보냈다

비록 그때의 복은 소와 양, 낙타, 재산 등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이 욥에게 주고자 했던 복은 그러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 당시, 하나님이 욥에게 어떤 영원한 약속을 주려 했다는 기록이 있느냐? 하나님이 욥에게 내린 복 중에는 결말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또 그 복은 결말과 관계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욥이 차지하는 비중과 지위가 어떻든, 하나님의 축복에는 매우 적당한 선이 있었고, 하나님은 결말에 대해 선포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나님의 계획이 사람의 결말을 선포하는 단계에 이르지 않았을 때, 즉 사역을 끝내는 단계까지 진행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사람의 결말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물질적인 축복만 좀 내려 줄 뿐이다. 다시 말해, 욥은 여생을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보냈다. 이는 그와 다른 이의 차이점이다. 같은 점은 그 역시 정상인처럼 나이를 먹고 어느 날 세상과 이별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성경에는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욥 42:17)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겠느냐? 하나님은 결말을 선포하지 않은 그 시대에 욥에게도 수명을 정해 주었으며, 욥은 그 수명이 다 찬 후 자연스럽게 세상과 이별했다. 그가 두 번째로 복을 받은 후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은 그에게 그 어떤 고통도 더해 주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이 보기에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필연적인 것이었으며, 정상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무슨 선고도, 정죄도 아니었다. 욥은 살아생전 하나님을 경배하고 경외하는 자였다. 하나님은 그가 죽고 난 후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말씀하지도, 논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과 행사에는 적당한 선이 있으며, 그 말씀과 행사의 내용, 그리고 원칙은 그의 사역 단계와 사역 시기를 근거로 한다. 하나님이 본 욥의 결말은 어떤 것이었겠느냐? 하나님의 마음속에 정해져 있지 않았겠느냐? 그렇다. 확실히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하나님은 알려 주고 싶지도 않았고 알려 줄 생각도 없었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 봤을 때, 욥은 기한이 차서 죽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욥의 일생이었다.

욥이 평생 살아 낸 가치

욥의 일생은 가치가 있는 삶 아니겠느냐? 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 왜 그의 삶이 가치가 있다고 말하겠느냐?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때, 그의 가치는 무엇이냐?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인류를 대표해 사탄과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했다. 그는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다 이행했고,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모범과 본보기가 되어 하나님을 의지하면 얼마든지 사탄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인류에게 보여 주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볼 때, 그의 가치는 어디에 있겠느냐? 하나님이 볼 때, 욥의 삶의 가치는 사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하고 찬양하여 하나님께 위안과 기쁨을 안겨 드린 데 있다. 또한, 욥은 살아생전에 겪은 그 시련에서 사탄을 이겼고, 사탄과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했으며,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서 영광을 얻게 하고, 하나님께 위안을 드려 절박했던 하나님께 결과와 희망을 보여 주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이 본 욥의 삶의 가치이다. 그의 증거는 하나님의 인류 경영 사역에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고 사탄을 부끄럽게 한 선례를 만들었다. 이러한 것이 욥의 삶의 가치 아니겠느냐? 그는 하나님께 마음의 위안을 드리고 영광을 얻는 기쁨을 미리 맛보게 했으며, 하나님의 경륜이 그로부터 완벽한 시작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로써 욥의 이름은 하나님이 영광을 얻었다는 표징이 되었으며, 인류가 사탄을 이겼다는 상징이 되었다. 욥이 일생 동안 살아 낸 것과 사탄을 이긴 그의 위업을 하나님은 영원히 소중하게 여길 것이며,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후세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는 완전무결하고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람들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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