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다(2)

2024.02.09

욥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화복을 따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만물 가운데서 나타내는 행사만으로도 충분히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욥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을 직접 체험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심과 시련 속에서의 증거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귀하게 보았고, 기뻐했으며, 칭찬했다. 사람들 역시 부러워했고, 경탄했으며, 칭찬이 자자했다. 그의 일생은 위대하지 않고 평범했다.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평범한 수십 년의 세월 속에서 보통 사람이 얻지 못한 하나님의 도를 얻었고, 보통 사람이 체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큰 능력과 주재를 느끼고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총명하지도, 막강한 생명력을 지니지도 않았으며,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갖추지 못한 진솔함과 선함, 정직함, 그리고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사랑하는 인성과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애증이 분명하고 정의감이 있었으며, 강한 의지와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이 행한 모든 비범한 일들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함과 거룩함, 공의로움을 보았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보살핌과 은총, 보호를 보았으며,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존귀함과 권병을 보았다. 욥이 일반 사람들은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순결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고, 마음이 하나님께 속해 있었으며, 창조주에게 끌렸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욥의 추구에 있다. 그는 완벽한 사람,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했으며,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자,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 악에서 떠난 자가 되고자 했다. 욥은 하나님을 본 적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는 상황에서 그러한 것들을 갖추고 추구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그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과 그 지혜를 깨달았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은 없지만, 그는 사람에게 복을 주고 그 복을 거두어 가는 행사가 모두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그가 지나온 세월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지만,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의 일상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는 데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의 눈에 하나님의 행사는 만물의 운행 법칙 가운데 충만했으며, 하나님의 주재 역시 사람의 삶 속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행사의 무소부재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평범한 나날 속에서,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비범하고 오묘한 행사를 보고 체험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기묘한 안배를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숨겨진 모습’과 ‘침묵’은 욥이 하나님의 행사를 체험하는 데 어떤 방해도 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도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욥의 일생은 평범한 삶 속에서 만물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욥은 평범한 나날 속에서, 만물 가운데 침묵하고 계시지만 만물의 운행 법칙을 주재하면서 전하는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 이를 통해, 사람이 욥과 같은 인성을 갖추고 욥처럼 추구하면, 그와 같은 경험과 깨달음을 얻고, 욥처럼 하나님의 만물 주재를 이해하고 깨닫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지도, 말씀하지도 않았지만,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가 될 수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거나 말씀하지 않아도 사람은 만물 가운데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행사와 주재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큰 능력과 권병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또한,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사람이 얼마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게 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욥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할 수 있었으니,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이 논리적 추론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물의 법칙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마음처럼 되지 않는 법,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은 욥 혼자만의 특권처럼 보인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을 언급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욥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에 ‘욥’이란 팻말이 붙어 있어 다른 사람과는 무관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오직 욥만이 진솔하고 선하고 정직하고,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인성과 품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욥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갈 수 있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너희도 깨달았을 것이다. 즉, 욥 외의 모든 사람은 진솔함과 선함과 정직함, 그리고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인성을 갖추지 못했기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악에서 떠날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쁨을 사지도, 시련에서 굳게 서지도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욥 이외의 모든 사람은 여전히 사탄의 속박과 굴레에 묶여 있으며, 전부 사탄이 참소하고 공격하고 해치고 삼키려는 대상이다. 그들은 자유를 얻지 못한 자들이자, 사탄에게 구금된 죄수들이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과 적이 되었는데 어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욥과 같은 인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사람의 본성 본질, 그리고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하냐?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맞느냐? 악에서 떠난 사람이 맞느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에서 떠나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원수’라는 표현으로 개괄할 수밖에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원수’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그 안에 내포된 실제 의미는 전혀 모르고 있다. ‘하나님의 원수’라는 표현에는 본질적인 면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원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원수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우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 어떤 목적과 야심, 저의도 없는 초심을 지닌 자가 있는지 보아라. 설사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본 사람이 몇몇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최종 목적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있다. 사람은 생명 체험 과정에서 늘 ‘나는 하나님을 위해 가정도 직장도 내려놓았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주셨지? 그동안 내가 받은 복이 있는지 한번 계산하고 따져 봐야겠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헌신하고 뛰어다니며 수많은 고난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동안 내가 한 것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해 주실까? 내 선행을 기억해 주실까? 내 결말은 어떤 것일까? 복은 받을 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은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계산하고, 저의와 야심을 품고,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뭔가 얻어 내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며, 하나님을 상대로 계산하고, 자신의 결말을 두고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논쟁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며 하나님께 구두 증거를 구걸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끊임없이 뭔가를 얻어 내려고만 한다. 심지어 갈수록 심해지고 탐욕스러워진다. 사람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동시에, 또 끊임없이 하나님과 논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시련이 임하거나 특정 환경에 처했을 때 항상 나약해지고 일을 태만히 하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는다. 하나님을 믿는 순간부터 사람은 하나님을 화수분이나 만물 상자로 삼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큰 채권자로 간주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약속을 얻어 내는 것이 생득적 권리이자 책무라고 생각하고, 반면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며 사람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해야 할 책임이라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깊은 이해이다. 사람의 본성 본질에서부터 사람의 주관적인 추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과 연결 짓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려고 생각하거나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이러한 상태를 볼 때, 사람의 본질은 뻔한 것이다. 그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마음씨가 악독하고 음험하고 간사하며,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아가 비열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바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태껏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으며, 사람의 경배를 받지도 못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행하든,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공급하든, 사람은 봐도 못 본 척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사람은 시종일관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자신이 주관하고 자신이 결정하려고 한다. 그 뜻인즉,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고 싶어 하지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사람들의 상태다. 다시 욥의 경우를 보자. 우선 그가 하나님과 거래를 했더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면서 어떤 다른 의도를 품었느냐? 당시 하나님이 누구에게라도 이후의 결말에 대해 말씀한 적이 있더냐? 그때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결말에 대한 약속을 한 적이 없다. 욥은 그러한 배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을 그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 양자의 차이가 너무 커서 같은 선상에 놓을 수조차 없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을지라도 욥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렸으므로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속했다. 그는 단 한 번도 하나님과 거래를 한 적이 없으며, 하나님께 그 어떤 지나친 기대나 요구를 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라고 여겼다. 이는 욥이 오랫동안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며 보고 얻은 성과였다. 또한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고 말할 수 있는 성과도 얻었다. 이 두 구절은 그가 살며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보고 깨달은 것이다. 또 이 두 구절은 사탄의 시험을 이긴 가장 강력한 무기였으며,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었던 초석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나눈 얘기로 봤을 때, 욥이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느냐? 너희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냐? 사탄으로부터 오는 시험을 당하게 될까 봐 두려우냐? 너희는 하나님께 욥 같은 시련을 달라고 기도할 다짐이 되어 있느냐? 대부분의 사람이 감히 그런 기도를 드리지 못할 것이다. 이를 통해 너희의 믿음이 보잘것없이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욥과 비교하면 너희의 믿음은 그야말로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적이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지 못하고, 사탄의 공격과 참소와 시험을 이기지도 못한다. 그런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겠느냐? 욥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이 구원받는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이해하고 나니, 이제는 욥과 같은 시련을 받아들일 믿음이 생겼느냐? 이제 너희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야겠다는 다짐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주는 시련에 대해 그 어떤 걱정도 하지 마라

욥의 시련이 끝나고 욥에게서 증거를 얻은 다음, 하나님은 욥과 같은 사람들을 한 무리 혹은 더 많이 얻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이 내기를 걸며 욥을 시험하고 공격하고 해쳤던 그 방식으로 또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해치는 일이 반복되는 건 없게 할 생각이었다. 하나님은 사탄이 나약하고 무지하고 우매한 사람들에게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욥에게 했던 그 한 번의 시험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탄이 제멋대로 사람을 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이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시험과 상해를 겪은 사람은 욥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사탄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의 생명과 사람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재하고 주관하지, 사탄에게는 하나님의 선민을 함부로 지배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이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나약함을 생각해 주며, 사람의 우매함과 무지함 역시 잘 알고 있다. 사람을 완전히 구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을 사탄에게 넘겨야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늘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해를 입는 것을 원치 않으며, 사람이 늘 고난받는 것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존재이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안배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이자, 만유를 주재하는 하나님의 권병이다! 하나님은 사탄이 제멋대로 사람을 해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마음대로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사탄이 온갖 방법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이 인류를 주재하는 데에 사탄이 끼어드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만유 주재 법칙을 짓밟고 깨뜨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이 크나큰 사역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사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행하는 6천 년 경륜 사역의 핵심이자 결정체이다. 또한, 하나님이 6천 년 사역에 기울인 심혈의 대가이기도 하니, 하나님이 어찌 이 사람들을 쉽사리 사탄에게 넘기겠느냐?

사람은 늘 하나님의 시련이 임할까 봐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람은 또 언제나 사탄의 굴레에 묶여, 사탄의 공격과 상해의 위험 속에서 살면서도 두려운 줄 모르고 걱정하지도 않는다. 이게 어찌 된 일이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믿음은 그저 보이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을 뿐이며, 사람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 긍휼과 배려를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는 시련과 심판, 형벌,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에 대해서만 공포와 두려움을 조금 느낄 뿐, 하나님의 고심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시련을 언급하면 사람은 하나님께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심지어 하나님의 속내는 종잡을 수가 없으므로 사람을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극력 반발하고 저항한다. 사람이 조심하지 않으면 하나님에 의해 ‘잘못 인도’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또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빼앗길지도 모르며, 심지어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탄의 진영에 있으면서도 사탄이 자신들을 해칠까 걱정한 적이 없었고, 사탄에게 해를 입으면서도 사탄에게 잡혀가는 것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반면, 사람은 말끝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겠다고 외치지만 하나님을 신뢰한 적이 없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람을 사탄의 마수에서 구원하리라는 사실을 믿은 적도 없었다. 사람이 욥처럼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면, 모두가 다 욥처럼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결말을 맞이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순종한다고 해서 무슨 손해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권고하건대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신변에 임하는 모든 일을 신중히 대해라. 경솔한 행동, 충동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혈기와 천연적인 본능, 상상과 생각만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사람, 일, 사물을 대하지 마라.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하되, 더 많이 기도하고 구해라. 명심했느냐?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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