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2017.09.29

욥이 겪은 시련의 전 과정을 알면, 대부분 사람이 욥과 관련된 정보에 흥미를 보일 것이라 믿는다. 특히, 욥이 어떻게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되었는지, 그 ‘비결’에 더욱 관심을 보일 것이다. 이제 욥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자!

욥의 일상생활에서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모습을 보다

욥이라는 사람에 대해 얘기하려면,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라는 욥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먼저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여기서 ‘순전하고 정직하다’는 말을 너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욥이 몹시도 완벽하고 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느냐? 물론 그것은 문자적인 해석과 이해이다. 욥이라는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그의 실생활을 떠나서는 안 된다. 그저 문자적으로 책 속에서, 그리고 도리 가운데서 답을 찾는다면 그 어떤 답도 얻을 수 없다. 먼저 욥의 일상생활이 어땠는지, 그가 삶에서 보여 준 보편적인 모습은 어땠는지 보자. 그리고 이를 통해 욥의 삶의 원칙과 인생 목표, 욥의 인성과 품격, 그가 추구한 것에 대해 알아보자. 성경 욥기 1장 3절의 마지막 구절을 보도록 하자.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이 구절은 당시 욥의 지위와 신분이 매우 높았음을 말해 준다. 그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인 이유가 재산이 많기 때문인지, 아니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이기 때문인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어쨌든 욥은 모두가 주목하는 지위와 신분을 지녔다. 이것이 성경을 읽을 때 사람들이 욥에 대해 가지게 되는 첫 번째 인상이다. 즉, 욥은 순전한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고, 엄청난 재산과 고귀한 지위를 소유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 환경과 조건을 가진 정상인은 평소에 먹고 마시는 것, 삶의 질, 사생활의 각 부분이 모두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다음의 성경 구절들을 볼 필요가 있다.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 1:4~5). 이 구절에는 2가지 일이 기록되어 있다. 첫 번째는 욥의 자녀들이 자주 잔치를 베풀어 함께 먹고 마셨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녀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할까 걱정이 된 욥이 항상 번제를 드렸다는 것이다. 이 2가지는 두 부류 사람의 서로 다른 삶의 내용에 대한 기록이다. 한 가지는 욥의 자녀들은 생활이 풍족하여 늘 잔치를 베풀며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에 빠져 있었으며, 물질적 여유가 가져다주는 높은 질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나날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늘 죄를 짓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스스로를 성결케 하지 않고, 이를 위해 번제를 드리지도 않았다. 이것으로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죄짓는 것을 겁내지 않았고, 더욱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론 욥의 자녀들에 관한 세부 내용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중점은 이러한 일들이 임했을 때 욥은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이 성경 구절에 기록된 또 다른 한 가지의 일로, 욥이라는 사람의 인성 본질, 그리고 그의 일상생활과 관련된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자녀들이 잔치를 베풀 때 욥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욥의 자녀들만 항상 함께 먹고 마셨던 것이다. 즉, 욥은 잔치를 베풀지도, 자녀들과 함께 즐기지도 않았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는 부유했고, 각종 재산을 소유했으며, 수많은 종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호사를 누리지는 않았다. 그는 부유하다고 해서 좋은 생활 환경에 빠져 살지 않았고, 육체적 쾌락을 탐하지도 않았으며, 번제를 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더욱이 부유하다고 해서 마음에서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일도 없었다. 여기에서 욥은 검소한 인생을 살았고, 하나님이 준 복으로 인해 탐욕스러워지거나 향락을 즐기지 않았으며, 삶의 품격을 중시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일을 함에 있어 겸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허세를 부리지 않는 인품을 지니고 있었고,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고 신중했으며,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생각했고, 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그는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 자녀들을 위해 번제를 드렸다. 즉, 욥은 혼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녀들까지 자신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욥의 마음을 차지하지 못했고, 그의 마음속 하나님의 자리도 대체하지 못했다. 그가 일상에서 행한 것은 자녀들을 위한 것이든 자신을 위한 것이든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심은 단지 입술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실행에 옮겨졌으며, 일상생활의 구석구석에서 드러났다. 욥의 이러한 실제 행동에서 우리는 욥의 정직함과, 정의를 사랑하고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그의 본질을 볼 수 있다. 욥이 항상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했다’는 것은 그가 자녀들의 행동을 지지하지도 칭찬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싫어하고 그들을 정죄했다는 뜻이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녀들의 행위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항상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를 자복하라고 한 것이다. 욥의 이러한 행동을 통해, 우리는 욥의 인성에서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욥은 죄를 일삼으며 하나님께 범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았고, 그들을 멀리하고 피했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들이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그는 혈연관계에 연연해 사람됨의 원칙을 버리지는 않았다. 또한, 정에 이끌려 그들의 죄에 관용을 베푸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죄를 자백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도록 권고하고, 향락에 빠져 하나님을 버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사람을 대하는 욥의 원칙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원칙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는 하나님이 열납하는 것,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 악행을 저지르거나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자들은 혐오했다. 그의 애증은 그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드러났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눈에 비친 욥의 정직함이었다. 물론 이는 우리가 알아야 할, 일상생활에서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 욥이 보인 진정한 인성과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탄이 처음으로 욥을 시험하다

시련 속에서 나타난 욥의 인성(시련 속에서 보인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에 대해 알아보다)

위에서 우리는 시험을 당하기 전, 욥이 일상생활에서 보여 준 인성의 여러 측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렇듯 곳곳에서 드러난 욥의 모습을 통해 그의 정직함,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악에서 떠난 것에 대해 일차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일차적인 인식과 이해가 생겼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일차적’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욥의 인성과 품격,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를 추구한 정도에 대해 아직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은 성경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고 나온 욥의 말을 통해 욥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어느 정도 갖게 됐을 뿐, 깊이 있는 앎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는 시련을 받아들일 때 욥이 보여 준 인성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이 욥의 진정한 인성을 완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재산을 약탈당하고, 자녀들이 목숨을 잃고, 종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욥이 보인 반응은 다음과 같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욥 1:20). 이 구절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욥이 이 소식을 듣고 난 후 놀라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으며, 소식을 알리러 온 종을 꾸짖지도 않았다. 더욱이 현장에 조사하러 가지도 않았고, 어떤 상황인지 사실 확인을 해서 일의 자초지종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잃은 재산을 아까워하거나 그로 인해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죽은 자녀와 가족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했다. 욥의 이러한 행동은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과 달랐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당혹감을 안겨 주었으며, 또 너무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냉혈 인간’이라는 비난을 사게 되었다. 재산이 순식간에 사라져 빈털터리가 된다면, 일반 사람은 괴로움이나 절망감을 느낄 것이며, 심지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재산은 평생의 심혈이자 생존을 위한 근간이며 살아가는 희망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재산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 사람의 피땀 흘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의미하고, 또 희망이 사라졌음을, 심지어는 미래를 잃어버렸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는 재산을 대하는 모든 정상인의 태도, 그리고 재산과 사람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 주며, 나아가 사람이 재산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은 재산을 대하는 욥의 냉담한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은 욥의 마음을 해석함으로써 대부분의 사람이 갖고 있는 의혹을 풀어 보도록 하자!

상식적으로 봤을 때, 하나님이 욥에게 풍족한 재산을 주었으니 재산을 잃은 욥이 하나님께 죄송한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하나님이 준 재산을 제대로 간수하지도, 보살피지도, 지키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재산이 약탈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욥이 가장 먼저 보여야 할 반응은 마땅히 현장으로 달려가 물건들을 철저히 점검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런 후, 다시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죄를 자백했어야 했다. 그러나 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나름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욥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모든 것은 다 본인이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복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복을 밑천으로 삼는 대신, 자기가 지켜야 할 도를 전심전력으로 지키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았던 것이다. 욥은 하나님이 베풀어 준 복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했지만, 더 많은 복을 탐하거나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재산을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욥은 복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으며, 복이 없거나 복을 잃었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상심하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베풀어 준 복으로 말미암아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모든 것을 망각하는 일이 없었고, 항상 누리는 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도를 소홀히 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일도 없었다. 재산을 대하는 욥의 태도는 사람들에게 그의 참된 인성을 보여 준다. 첫째, 욥은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었으며, 물질생활에 대한 그의 요구 기준은 아주 낮았다. 둘째, 욥은 하나님이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갈까 걱정한 적도, 두려워한 적도 없었다. 이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한 그의 태도이다. 즉, 하나님이 언제 거두어 가든, 혹은 하나님이 거두어 가든 가지 않든, 그는 어떤 요구도 원망도 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기만을 원했다. 셋째, 욥은 본인의 재산을 하나님이 준 것이라고 생각했지,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욥의 믿음으로, 즉 그의 확신을 보여 준다. 욥에 대한 이상의 3가지 개괄을 통해 욥의 인성과 그가 평소에 진실로 추구한 것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지 않았느냐? 욥이 재산을 잃었을 때 그처럼 냉정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위에서 말한 그의 인성, 그리고 그의 추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욥은 평소 그렇게 추구해 왔기에 하나님이 준 시련 속에서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의 분량과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욥의 이 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갑작스럽게 떠올라 지어낸 것도 아니다. 오랜 인생의 경험을 통해 보고 얻은 것이다. 하나님의 복을 바라기만 할 뿐, 하나님이 거두어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하고 원망하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욥의 순종은 아주 실제적이지 않으냐?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만 믿을 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은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욥은 아주 진솔하고 정직하지 않으냐?

욥의 이성

욥은 실제 체험과 정직하고 진실한 인성 덕에, 재산과 자녀를 잃었을 때 가장 이성적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이러한 이성적인 선택은 그가 평소에 추구했던 것, 그리고 하나님의 행사에 대한 인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욥은 정직하기에 만물이 여호와의 주재하에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으며, 그 믿음으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을 알게 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를 원했고, 순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더 진실하게 경외할 수 있었으며, 그 경외심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실제적으로 악에서 떠날 수 있었다. 결국,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으로 말미암아 완전해진 것이다. 그의 완전함은 그를 지혜롭게 바꿔 놓았고, 그를 누구보다 이성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성적’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겠느냐? 문자적 해석은 이성과 생각이 논리에 맞아 터무니없지 않으며, 적절한 언행과 판단, 적절한 규범을 가진 도덕적 기준이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욥의 ‘이성적’인 모습은 그렇게 간단하게 해석할 수는 없다. 여기서 욥이 누구보다 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한 것은 그의 인성,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보인 행동과 관계가 있다. 욥은 정직한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주재를 믿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할 수도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다른 사람이 얻지 못한 인식을 갖게 되었으며, 이러한 인식을 통해 자신에게 임한 일을 더욱 정확하게 분별하고 판단하고 정의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들을 더 정확하고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이 가능했다. 즉, 그의 말과 행동, 일 처리 원칙과 방침은 맹목적이지도 충동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았으며, 지극히 규범적이고 명확하고 구체적이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임하든 그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각종 복잡한 사건의 관계를 어떻게 균형 잡고 처리해야 할지 알았다. 또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를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할지도 알았으며,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줄 때와 거두어 갈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욥의 ‘이성’이었다. 이러한 이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욥은 재산과 자녀를 잃었을 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욥은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일가친지들의 권고, 그리고 죽음을 앞에 두고 실제 행동으로 또다시 자신의 진실한 면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진실하고 순박하며 위선적이지 않은 욥의 본모습

욥기 2장 7~8절을 보자.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이는 몸에 악창이 난 후 욥의 반응을 보여 주는 설명이다. 그때, 욥은 재 가운데 앉아 몸의 통증을 견디고 있었다. 그를 치료해 주는 이도, 그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 주는 이도 없었다. 그는 혼자서 기와 조각으로 악창이 난 상처를 긁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것은 욥이 고통받던 기간의 한 장면에 불과하며, 욥의 인성이나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는 관계가 없다. 욥은 이 기간에 그 어떤 말로도 자신의 심정과 생각을 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욥의 행동과 반응은 그의 인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우리는 앞의 1장의 기록에서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라는 구절을 보았다. 그리고 2장의 이 구절에서는 이 동방 사람 중 가장 큰 자가 뜻밖에도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전후 두 개의 묘사는 아주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지 않으냐? 이 대비를 통해 우리는 욥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 욥은 높은 신분과 지위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고,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또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보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으며, 자신의 행동이 자기 신분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대해서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지위의 복을 탐하지 않았고, 지위와 신분이 가져다주는 후광을 즐기지도 않았다. 욥의 관심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가치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욥의 본모습이 바로 그의 본질이다. 그는 명리를 좋아하지 않았고, 명리를 위해 살지 않았다. 또한, 그는 진실하고 순박하며 위선적이지 않았다.

애증이 분명한 욥

욥이 아내와 나눈 대화는 그의 또 다른 측면의 인성을 보여 준다.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9~10). 욥의 아내는 그렇게 고통받는 남편을 보고는 그를 설득하여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호의’는 욥에게 칭찬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분노를 살 뿐이었다. 그녀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욥의 믿음과 순종을 부인하는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욥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신을 용납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도 그럴진대, 다른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느냐?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모욕하는 말을 내뱉는 것을 보고 그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느냐? 그래서 욥은 아내를 ‘어리석은 여자’라고 했다. 아내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책망과 질책이 담겨 있었다. 이는 애증이 분명한 그의 인성의 자연스러운 발현이자, 그의 정직한 인성의 참된 표출이었다. 욥은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의감이 있었기에 그는 사악한 풍조와 흐름을 증오했으며, 그릇된 사설과 황당무계하고 터무니없는 말들을 증오하고 정죄하고 밀어냈다. 또한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옳은 원칙과 입장을 고수할 수 있었다.

욥의 선함과 진실함

욥의 다양한 행동에서 그의 인성을 볼 수 있다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한 일에서는 또 욥의 어떤 인성을 볼 수 있겠느냐? 이것이 다음으로 내가 이야기할 주제이다.

앞에서 나는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한 이유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그 일에서 너희는 무엇을 깨달았느냐? 만일 욥이 마음이 강퍅하고 사랑이 없고, 냉혹하고 무정하며, 인간성도 없는 사람이었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렸겠느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림으로 인해 자신의 생일을 증오했겠느냐? 다시 말해, 욥이 마음이 강퍅하고 인간성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이 아파한다고 해서 마음 아파했겠느냐? 하나님이 자신 때문에 마음 아파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겠느냐?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답이다. 욥은 마음씨가 착했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렸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렸기에 하나님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마음이 착했기에 하나님의 아픔을 느끼고 더 고통스러워했다. 욥은 하나님의 아픔을 느꼈기에 자신의 생일을 증오하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시련 속에서 보여 준 욥의 모든 행동은 마땅히 본받을 만한 모범일 것이다. 하지만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한 일만큼은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다양한 평가를 내놓게 한다. 사실, 욥의 이 행동이야말로 그의 인성 본질을 가장 참되게 보여 준다. 그의 인성과 본질에는 숨김도, 포장도, 사람에 의한 가공도 없었으며, 그의 이 행동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선함과 진실함을 보여 주었다. 그는 넘치는 샘물같이 맑고 투명한 사람이었다.

욥이란 사람의 면면을 알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이 욥의 인성 본질에 대해 상대적으로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또한 ‘순전하고 정직하다’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고 발전한, 실제적인 앎과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그러한 앎과 깨달음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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