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인가?

2017.05.31

성경 참고: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6~11)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을 일컫는다. 즉, 하나님이 창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육신의 형상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먼저 육신, 그것도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함의는 육신으로 사역하고 육신으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성육신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된 것, 즉 하나님이 육신 된 것이다. 육신이 하는 사역은 곧 영이 하는 사역이다. 영이 하는 사역은 육신을 통해 실체화되고, 육신을 통해 발현된다. 하나님이 거하는 육신 외에는 누구도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을 대신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정상 인성만이 신성 사역을 나타낼 수 있고,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처음 성육신했을 때 29세 이전까지 정상 인성이 없고, 태어나자마자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세상의 모든 일을 꿰뚫어 보며, 말을 떼자마자 천상의 말씀을 하고, 사람의 생각과 품고 있는 마음을 모두 알 수 있었다면, 이런 사람은 정상인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육신은 육신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이런 사람이었다면 성육신의 의의와 본질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말씀’이 ‘육신’된 하나님임을 증명한다. 그가 정상인의 성장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더더욱 그의 육신이 정상적이었음을 말해 준다. 또한 그의 사역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된 존재임을 충분히 보여 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그의 본질을 육신에 실체화하여 육신이 충분히 그의 사역을 감당하게 한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기간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 영의 모든 사역을 대신하고, 성육신 기간의 모든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핵심으로 하며, 다른 어떤 시대의 사역도 섞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육신의 신분으로 사역하며, 육신으로 온 이상 육신에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한다. 하나님의 영이든 그리스도든 어쨌든 모두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직분을 다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은 육신의 본질을 위해 존재하고, 인성이 없는 육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성이 없는 사람은 비인간이다. 이렇듯, 육신의 인성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고유한 속성이 되었다. 만약 누군가가 “성육신 하나님께는 신성만 있고 인성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독이다. 이는 아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고, 성육신의 원칙과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는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인성의 외형을 지닌 신성으로 살며 사역한다. 다만, 이때의 인성은 오로지 신성이 정상 육신에서 사역하는 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역사하는 것은 인성 안에 있는 신성이다. 즉,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지 인성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신성은 인성에 가려져 있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인성이 아닌 완전한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단, 역사하는 것은 육신이며, 이 육신을 사람이라고도, 하나님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 되고, 사람의 외형과 본질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을 지닌 사람이기에 창조된 그 어떤 사람보다도 높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높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외형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인성을 지닌 모든 사람 가운데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 외에는 모두 창조된 인류인 것이다. 똑같이 인성을 갖추고 있지만, 창조된 사람은 인성 말고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는 인성 말고도 무엇보다 중요한 신성이 있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으로 알아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만, 신성은 쉽게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는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 나타나며,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신성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가장 측량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음에도 너희 대다수는 이에 대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했다고 하면 그의 본질은 인성과 신성의 결합체이다. 이 결합체를 하나님 자신이자 땅의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성육신한 인자는 인성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하고, 아울러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계의 하나님을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사람이 본 것은 형상을 지니고 뼈와 살이 있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인자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 지위, 형상, 성품, 소유와 어떠함 등등을 구체화하고 인간화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에 있어서, 인자의 겉모습은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인자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완벽히 대변할 수 있었다. 단지 발현되는 형식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인자의 인성이든 아니면 신성이든, 그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변한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단지 하나님이 그 기간에 육신의 방식으로 사역하고, 육신의 위치에서 말씀했으며, 인자의 신분으로, 인자의 위치에서 인류를 마주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실제로 말씀하고 사역하는 것을 접하고 체험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신성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을 지극히 낮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높고 큼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또한 하나님의 진실함과 실제에 대해 초보적으로 알게 되었고, 초보적인 정의도 내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과 그의 사역 방식, 말씀할 때의 위치는 영계에 있는 하나님의 참모습과 다소 다를지라도, 그의 모든 것은 사람이 본 적 없는 하나님 자신을 한 치 오차도 없이 대변하였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든,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고 어떤 형상으로 사람을 마주하든, 하나님이 대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일 뿐이다. 그는 그 어떤 사람, 패괴된 인류 중의 그 어떤 사람도 대표할 리 없다. 하나님 자신은 곧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지난날, 예수가 기도할 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단지 피조된 사람의 입장에 서서 부른 것이다. 그것은 그저 하나님의 영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육신을 입었고, 피조물의 외형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은 하나님의 영일지라도 그의 겉모습은 여전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말하는 ‘인자’가 된 것이다. 인자라고 한 이상,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을 가리킨다(남자든 여자든, 결국엔 다 사람의 외형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너희가 처음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로 피조된 사람의 입장에 서서 부른 것이다. 너희가 외웠던, 예수가 가르쳐 준 주기도문을 아직 기억하느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다. 또 그 역시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만큼, 너희와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하늘의 하나님을 부른 것이다. 너희가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이상, 예수는 자신을 너희와 평등한 지위를 가진 사람이자 하나님이 땅에서 택한 사람(하나님의 아들)으로 여긴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것 또한 너희가 피조물이기 때문 아니겠느냐? 예수가 땅에서 얼마나 큰 권병을 가졌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까지 그는 여전히 성령(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인자이자 땅의 피조물 중 하나였다. 그는 사역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단지 자신을 낮추고 순종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하늘의 영)을 그렇게 불렀다고 해서 그가 바로 하늘에 있는 하나님 영의 아들임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위치에 섰을 뿐이지 위격이 다른 것은 아니다. 위격이라는 그런 그릇된 논리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까지 육신의 제한을 받는 인자였으므로 영의 권병을 다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만 했다. 그것은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면서 세 번 기도한 것과 같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그는 그저 유대인의 왕이자 인자, 그리스도였을 뿐, 영광의 몸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했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을 다 성자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한다면 예수가 너희에게 기도문을 가르쳐 준 뒤부터 너희는 모두 ‘성자’가 된 것 아니겠느냐? 그래도 너희가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말해 보아라. 너희가 부르는 ‘아버지’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예수를 가리킨다면 예수의 ‘아버지’는 또 너희에게 무엇이냐? 예수가 떠난 뒤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말은 단지 예수가 육신으로 있었던 몇 년 동안만 적용될 뿐이며, 그 밖에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의미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한다. 예수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한 것은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으로, 단지 다른 위치에 서서 그 자신을 증거하고 하늘에서 영의 위치에 서서 그가 입은 육신을 증거한 것에 불과하다. 예수는 그가 입은 육신이지 하늘에 있는 그의 아들이 아니다. 너는 이해하겠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라는 예수의 말씀은 그들의 영이 원래 하나임을 가리키는 것 아니겠느냐?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위아래로 분리된 것 아니겠느냐? 사실은 여전히 하나이다. 어찌 됐든 이는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이다. 시대의 다름과 사역의 필요성, 그리고 경륜 절차의 차이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를 부르는 호칭 또한 달라졌다. 제1단계의 사역에서는 여호와라고만 부를 수 있었으며, 그는 이스라엘 사람의 목자였다. 제2단계에서는 성육신 하나님을 주님, 또는 그리스도라고만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하늘의 영은 그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을 뿐, 하나님의 독생자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어떻게 독생자가 있겠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성육신했기에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렸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생겨났는데, 그것은 단지 하늘과 땅에 있는 차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는 육신의 위치에 서서 기도했다. 그는 정상 인성을 가진 육신을 입었기에 육신의 위치에 서서 “나의 외형은 피조물이다. 나는 육신을 입고 땅에 왔으므로 하늘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육신의 위치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의 본분이었고, 하나님의 영이 성육신하여 마땅히 갖춰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 육신의 위치에서 아버지께 기도했다고 해서 그를 하나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한대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 자신이다. 그는 단지 영이 입은 육신일 뿐, 본질은 여전히 영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당시에 사람은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에게 임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예수 자신이 전용하는 영이 아니라 성령이었다. 그런데 예수의 영이 또 성령과 분리될 수 있겠느냐? 예수는 예수이자 성자이고 성령은 성령이라면, 어떻게 하나일 수 있겠느냐? 그렇게 된다면 사역을 행할 수 없다. 예수 안에 있는 영과 하늘의 영, 그리고 여호와의 영은 모두 하나이다. 성령이라고도 불리고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불리며 일곱 배 강화된 영이자 만유를 포함하는 영이라고도 불린다. 하나님의 영은 수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고 홍수로 세상을 멸할 수도 있으며, 전 인류를 속량할 수도 있고, 더욱이 전 인류를 정복하거나 멸할 수도 있다. 이 사역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지, 그 어떤 위격의 신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은 여호와라고 부를 수 있고, 예수라고 부를 수도 있으며, 전능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는 주이고, 그리스도이며, 또한 인자가 될 수도 있다. 그는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으며, 전 우주 위에도 있고 만인 가운데도 있는, 하늘과 땅의 유일한 주관자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이 사역은 하나님의 영이 혼자 행했다. 하늘에서 행한 사역이든 육신으로 행한 사역이든 모두 그의 고유한 영이 행한 것이다. 하늘의 피조물이든 땅의 피조물이든 모두 그의 전능한 손에 지배되며,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므로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한다. 그는 하늘에서 영이고, 또한 하나님 자신이다. 그가 사람 가운데서 육신으로 있을지라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 자신이다. 그의 이름이 수없이 많을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 자신이며, 모든 것이 다 그의 영의 직접적인 선포이다. 십자가에 달려 전 인류를 속량한 것은 그의 영이 직접 역사한 것이고, 말세에 각 나라와 지역에 알리는 것 역시 그의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이다. 어느 때든 하나님은 오직 전능하고 유일한 참하나님, 만유를 포함하는 하나님 자신이라 불린다. 위격은 절대 존재하지 않고, 성부와 성자, 성령이라는 설은 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천상천하에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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