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이란? 성육신의 본질은 무엇인가?

2017.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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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을 일컫는다. 즉, 하나님이 창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육신의 형상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먼저 육신, 그것도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함의는 육신으로 사역하고 육신으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성육신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된 것, 즉 하나님이 육신 된 것이다. 육신이 하는 사역은 곧 영이 하는 사역이다. 영이 하는 사역은 육신을 통해 실체화되고, 육신을 통해 발현된다. 하나님이 거하는 육신 외에는 누구도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을 대신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정상 인성만이 신성 사역을 나타낼 수 있고,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처음 성육신했을 때 29세 이전까지 정상 인성이 없고, 태어나자마자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세상의 모든 일을 꿰뚫어 보며, 말을 떼자마자 천상의 말씀을 하고, 사람의 생각과 품고 있는 마음을 모두 알 수 있었다면, 이런 사람은 정상인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육신은 육신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이런 사람이었다면 성육신의 의의와 본질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말씀’이 ‘육신’된 하나님임을 증명한다. 그가 정상인의 성장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더더욱 그의 육신이 정상적이었음을 말해 준다. 또한 그의 사역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된 존재임을 충분히 보여 준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인성이든 신성이든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이자 신성이기에 그의 본질이 곧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다. 그 본질이 그의 사역을 방해할 리 없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망치는 일도, 자신의 뜻에 위배되는 말도 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성육신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경영을 방해하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할 점이다. 성령 역사의 본질은 인류 구원과 하나님 자신의 경영을 위한 것이고,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역 역시 인류 구원과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그의 본질을 육신에 실체화하여 육신이 충분히 그의 사역을 감당하게 한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기간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 영의 모든 사역을 대신하고, 성육신 기간의 모든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핵심으로 하며, 다른 어떤 시대의 사역도 섞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육신의 신분으로 사역하며, 육신으로 온 이상 육신에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한다. 하나님의 영이든 그리스도든 어쨌든 모두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직분을 다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그리스도란 성육신 하나님의 호칭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주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사람이 이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으면서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는 가짜다. 그리스도란 땅에서의 하나님의 발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을 펼치고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사역을 완성할 특유한 육신이다. 그 육신은 아무나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육신은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육신인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어떠함을 나타낼 것이며,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혹은 참도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겉모습을 살피느라 그 본질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무지몽매한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서문> 중에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함의는 육신으로 사역하고 육신으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삶과 사역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직분을 이행하기 전의 삶이다. 일반인의 가정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며,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 윤리와 법칙, 정상적인 필요(의식주 등), 정상적인 연약함과 정상인의 희로애락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첫 번째 단계에서는 신성이 아닌 완전히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면서 정상인들이 하는 모든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후의 삶이다. 이때도 여전히 정상 인성의 외형을 지닌 평범한 인성으로 살며, 겉모습에는 조금도 초자연적인 부분이 없지만, 직분을 이행하기 위해 살아간다. 이때의 정상 인성은 오로지 신성의 사역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정상 인성이 이미 직분을 이행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단계의 삶은 정상 인성으로 직분을 이행하는 삶이자,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삶이다. 첫 번째 단계의 삶이 완전히 평범한 인성으로 사는 삶인 이유는 그때의 인성이 신성의 모든 사역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았으며, 인성이 성숙해질 때까지, 즉 직분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그가 이행해야 할 직분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신인 이상,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첫 번째 단계의 삶은 그저 정상 인성의 삶에 불과하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의 삶은 인성으로 사역을 충분히 담당하고 직분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는 삶이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이 직분을 이행하는 기간의 삶은 바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삶이다. 만약 성육신 하나님이 태어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직분을 이행하고 초자연적인 이적과 기사만 행한다면, 육신의 본질은 없어진다. 그래서 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은 육신의 본질을 위해 존재하고, 인성이 없는 육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성이 없는 사람은 비인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육신의 인성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고유한 속성이 되었다. 만약 누군가가 “성육신 하나님께는 신성만 있고 인성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독이다. 이는 아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고, 성육신의 원칙과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는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인성의 외형을 지닌 신성으로 살며 사역한다. 다만, 이때의 인성은 오로지 신성이 정상 육신에서 사역하는 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역사하는 것은 인성 안에 있는 신성이다. 즉,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지 인성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신성은 인성에 가려져 있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인성이 아닌 완전한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단, 역사하는 것은 육신이며, 이 육신을 사람이라고도, 하나님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 되고, 사람의 외형과 본질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을 지닌 사람이기에 창조된 그 어떤 사람보다도 높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높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외형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인성을 지닌 모든 사람 가운데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 외에는 모두 창조된 인류인 것이다. 똑같이 인성을 갖추고 있지만, 창조된 사람은 인성 말고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는 인성 말고도 무엇보다 중요한 신성이 있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으로 알아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만, 신성은 쉽게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는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 나타나며,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신성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가장 측량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음에도 너희 대다수는 이에 대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했다고 하면 그의 본질은 인성과 신성의 결합체이다. 이 결합체를 하나님 자신이자 땅의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은 육신 안에 있는 신성의 정상적인 사역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며,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정상 인성과 육신의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시켜 준다.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그 육신에 정상 인성의 사유가 없다면 하나님은 육신으로 사역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육신으로 해야 할 사역을 영원히 완성할 수 없다. 성육신 하나님은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를 지니고 있지만, 그의 사역에는 사람의 사유가 섞여 있지 않다. 그는 정상 사유를 지닌 인성으로 사역하고, 사유를 지닌 인성의 전제하에서 사역하는 것이지,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를 발휘해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거하고 있는 육신의 사유가 얼마나 고차원적이든, 그의 사역에는 논리학도, 사고학도 들어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의 사역은 육신의 사유를 통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신성의 사역을 인성으로 직접 나타낸 것이다. 그의 사역은 전부 그가 이행해야 할 직분이지, 그가 머리로 생각해서 만든 것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그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십자가에 달린 것은 머리로 상상한 것이 아니며, 두뇌의 사유를 지닌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복 사역도 마찬가지로 성육신 하나님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직분이다. 하지만 이 사역은 전부 사람의 뜻이 아닌 신성이 해야 하는 일로, 육에 속하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은 반드시 두뇌의 정상적인 사유와 정상 인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가 정상 사유를 지닌 인성으로 사역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의 본질이자,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이다.

예수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단지 정상 인성으로 살았다. 사람은 그가 하나님임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성육신 하나님임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은 그저 그를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알았을 뿐이다. 이 지극히 평범한 정상 인성은 하나님이 육신 되었음을 실증하고, 은혜시대는 영이 아닌 성육신 하나님이 사역한 시대임을 실증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완전히 육신으로 실체화했으며, 하나님이 성육신한 시대에는 육신이 영의 모든 사역을 한다는 것을 실증했다. 정상 인성을 가진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 정상 인성과 정상적인 이성, 정상적인 사유를 가진 육신으로 실체화한 것이다. ‘실체화’란 하나님이 사람이 되고, 영이 육신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 자신이 정상 인성을 지닌 육신에 거하면서 그 육신을 통해 신성 사역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체화’, 즉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처음 성육신하였을 때는 사람을 위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야 했다. 그가 하는 사역이 속량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사람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어야 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그의 사역은 바로 사람을 위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었다. 그 사역은 그가 사람을 죄와 더러움에서 구원할 것임을 예시했다. 은혜시대이기에 그는 사람의 병을 고쳐 주어야 했고, 그래서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다. 이러한 이적과 기사는 은혜시대 은혜의 상징이다. 은혜시대에는 주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기 때문에 평안과 기쁨, 또는 물질적인 축복이 은혜시대의 상징이자 예수를 믿는 상징이 되었다. 다시 말해, 사람의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며,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은혜시대에 예수가 지닌 육신의 본능이었다. 영이 육신으로 실체화하여 행한 사역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시종 육신에 거하면서 그런 사역을 행했으며 육신을 초월하지는 않았다. 어떤 식으로 사람의 병을 고쳐 주었든 여전히 정상 인성을 지니고, 인성의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 성육신의 시대에 육신이 영의 모든 사역을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가 어떻게 사역하든 전부 육신으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행한 사역 때문에 사람은 그의 육신이 육신의 본질을 완전히 지닌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육신이 이적을 나타낼 수 있으며, 아주 가끔 육신을 초월하는 사역을 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모두 그가 직분을 이행한 후에 나타난 일이다. 그가 40일 동안 시험을 받은 것이나 산 위에서 형상을 바꾼 것이 그 일례다. 그러므로 예수의 몸으로 성육신한 의의가 완전해지지 않았고, 일부만 완성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육신의 모든 삶이 지극히 정상이었으나, 사역을 시작한 후로는 육신의 외형만 유지했다. 그가 하는 사역은 신성의 발현이었기 때문에 육신의 정상적인 기능을 뛰어넘었다. 어쨌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 만큼 육에 속하는 사람과 같지 않았다. 물론 그도 평상시에는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잠을 자고, 집에 사는 등 정상적인 의식주 활동을 했고, 정상인의 이성과 두뇌 사유를 지니고 있었다. 사람이 보기에 그는 여전히 정상인이었으나, 그가 행한 사역은 아주 초자연적인 것이었다. 사실, 그는 어떤 사역이든 평범한 정상 인성으로 했다. 또한 그가 사역하는 때일수록 그의 이성은 더욱 정상적이었고, 그의 생각은 더욱 맑고 또렷했으며, 모든 정상인의 이성과 생각을 뛰어넘었다. 이러한 이성과 생각도 바로 성육신 하나님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이다. 신성의 사역은 가장 정상적인 이성과 가장 맑고 또렷한 생각을 지닌 육신을 통해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육신으로 신성의 사역을 발현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예수는 33년 반 동안 세상에 있었다. 그는 33년 반 동안 시종일관 정상 인성을 유지했다. 다만 그가 3년 반 동안 행한 직분 사역 때문에 사람은 그가 매우 비범하고, 그전보다 훨씬 초자연적이라고 느꼈을 뿐이다. 사실, 예수는 직분을 이행하기 전이나 후나 정상 인성에 변함이 없었으며, 항상 똑같은 인성을 유지했다. 다만 직분을 이행하기 전과 후의 차이점들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육신에 대해 두 가지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성육신 하나님은 언제나 그가 본래 갖고 있던 정상 인성을 유지한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육신으로 살아야 하고, 정상 인성의 육신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직분을 이행하든 안 하든, 인성은 육신의 근본이므로 그의 육신이 지닌 정상 인성은 없어서는 안 된다. 직분을 시작하기 전, 예수의 육신은 완전하고 정상적이었으며, 정상인의 모든 활동을 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서 초자연적인 면이나 이적을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 그는 그저 하나님을 경배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간절하고 진실하게 추구했을 뿐이다. 이는 그의 가장 정상적인 인성의 모습이었다. 그는 직분을 이행하기 전까지 어떤 사역도 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그의 신분은 물론, 그의 육신의 남다른 점도 알아채지 못했다. 당시 그는 어떤 이적도 보이지 않았고, 하나님 자신의 어떤 사역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정상 인성의 외형을 지니고 정상 인성의 이성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행하고, 그리스도의 직분을 이행하며, 평범한 인간, 즉 육에 속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역을 시작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정상 인성이 없다고 여겼으며, 그를 완전하고 정상적인 육신이 아닌 불완전한 육신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행한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정상 인성이 없는 육신의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은 사람이 성육신의 의의를 알지 못해서 생긴 것으로, 모두 잘못된 것이다. 사람들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 이유는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 나타내는 것은 신성 사역이고, 그 사역은 정상 인성의 육신으로 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육신에 거하며, 인성을 통해 사역하면서 정상 인성이 가려졌기에, 사람들은 하나님께 신성만 있고 인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비록 그가 육신에 거하고 있으나 그의 인성이 육에 속한 사람의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에게는 특정한 성격이 있으며, 그 성격 역시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신성에는 연약함이 없다. 그리스도의 연약함이란 그의 인성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연약함은 신성을 어느 정도 제약하지만 무한정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범위와 기한이 있다. 신성의 사역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인성이 어떠한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전적으로 신성의 지배를 받는다. 인성의 정상 생활 이외에도 인성의 모든 활동은 신성의 영향을 받고, 신성에 좌우된다. 그리스도가 인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성의 사역과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이 인성은 비록 처세에 미숙하지만 신성의 정상 사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인성이 패괴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직접적으로 신성에 지배되며, 그에게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이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인성은 신성이 지배하고 사역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성이며, 신성의 사역을 가장 잘 나타내고 신성의 사역에 가장 잘 순종할 수 있는 인성이다. 하나님은 육신으로 사역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육신을 입은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경배드릴 수 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으며, 그의 신분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다. 그는 그저 하나의 피조물로 이 땅에 왔기에 피조물의 외형, 전에 없었던 인성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그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는 것, 이는 하나님 자신의 어떠함이요,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신분이 하나님 자신임에도 그가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은 육신의 위치에서 행하는 일이므로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경배드린다’는 표현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 역시 그의 어떠함이다. 사람에게 요구하기 전에 그는 이미 그렇게 행하였다. 그는 절대로 자신은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만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어떠함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사역하든 하나님을 거역할 리 없고, 그가 사람에게 어떻게 요구하든 사람이 행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리 없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다.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보다도 높으므로 그는 피조물 중에서 최고의 권병을 갖고 있다. 그 권병은 신성이자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어떠함이다. 그 성품과 어떠함으로 그의 신분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이 아무리 정상일지라도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든, 그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성육신한 인자는 인성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하고, 아울러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계의 하나님을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사람이 본 것은 형상을 지니고 뼈와 살이 있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인자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 지위, 형상, 성품, 소유와 어떠함 등등을 구체화하고 인간화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에 있어서, 인자의 겉모습은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인자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완벽히 대변할 수 있었다. 단지 발현되는 형식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인자의 인성이든 아니면 신성이든, 그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변한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단지 하나님이 그 기간에 육신의 방식으로 사역하고, 육신의 위치에서 말씀했으며, 인자의 신분으로, 인자의 위치에서 인류를 마주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실제로 말씀하고 사역하는 것을 접하고 체험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신성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을 지극히 낮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높고 큼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또한 하나님의 진실함과 실제에 대해 초보적으로 알게 되었고, 초보적인 정의도 내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과 그의 사역 방식, 말씀할 때의 위치는 영계에 있는 하나님의 참모습과 다소 다를지라도, 그의 모든 것은 사람이 본 적 없는 하나님 자신을 한 치 오차도 없이 대변하였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든,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고 어떤 형상으로 사람을 마주하든, 하나님이 대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일 뿐이다. 그는 그 어떤 사람, 패괴된 인류 중의 그 어떤 사람도 대표할 리 없다. 하나님 자신은 곧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본질은 그 자체로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권병에서 나온 모든 것에 순종할 수도 있다. 영의 사역과 육신의 사역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은 만물에 대한 권병을 지니고, 하나님의 본질이 있는 육신 역시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모든 사역을 할 수 있다. 이는 어느 누구도 이를 수 없고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권병이지만, 그의 육신은 그의 권병에 순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는 말에 내포된 의미다.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구원 사역을 할 수 있고, 사람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구원 사역을 할 수 있다. 어쨌든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을 하고, 이를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으며, 모순되는 사역은 더욱 하지 않는다. 영과 육신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이든 육신이든 모두 같은 뜻을 이루려 하며, 같은 사역을 경영하기 때문이다. 비록 영과 육신이 서로 아무 상관 없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닌다고는 하나 그 본질은 동일하다. 모두 하나님 자신의 본질과 신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으며, 하나님의 본질은 선하다. 그는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의 발현이자 모든 사랑의 발현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수하지, 다른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에게는 독선적이거나 자만하는 성분이 없고, 오만 방자하거나 교활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이 사탄과 같은 속성을 갖게 된 이유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을 뿐, 사탄의 속성은 없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생활할 때 사역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의 육신이 아무리 연약해져도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며 거역하는 일은 더더욱 저지르지 않는다. 육신이 고통받을지언정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는 예수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없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나 그는 똑같이 육신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가 준 사명을 완수한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본질만 있을 뿐 하나님의 본질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존재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지도 못한다. 그리스도를 제외한 사람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이 맡긴 사역을 직접 담당할 수 없고, 하나님의 경영을 자신의 당연한 본분으로 삼아 이행할 수도 없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본질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사탄의 속성이다. 이 두 가지 속성은 공존할 수 없으므로 사탄의 속성을 가진 자를 그리스도라 부를 수는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본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과 앞날을 위함이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육신이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므로 그의 육신 역시 마찬가지로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이 같은 육신은 오로지 공의로운 일, 인류에게 유익한 일, 거룩하고 빛나며 위대한 일만 할 수 있다.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할 리 없고, 하나님의 영을 배반하는 일을 할 리는 더더욱 없다. 하나님의 영은 거룩하므로 그의 육신 또한 사탄에 의해 패괴될 수 없으며, 그것은 사람과는 다른 본질을 가진 육신이다. 사탄이 패괴시키는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며, 게다가 사탄은 하나님 자신의 육신을 패괴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과 그리스도가 같은 공간에서 살아도 사람만 사탄에게 점령되고, 이용당하고, 해를 입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는 절대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는다. 사탄은 영원히 가장 높은 곳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께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희는 나를 배반하는 존재는 오직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뿐이며, 이 문제는 그리스도와 영원히 하등의 관계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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