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고 하는가?

2017.05.31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할 때 직접 영의 방식과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지 않는다.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으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하나님이 피조된 사람의 외형을 입지 않으면 사람은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것처럼 사람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피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도’를 그가 입으려는 육신에 채워야만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도’를 직접 적용할 수 있다. 그래야만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듣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 그의 도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사람은 비로소 완전히 구원받게 된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으면 육에 속한 사람은 그 누구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죽게 되거나, 아니면 하나님과 접촉할 수가 없어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힐 것이다. 첫 번째 성육신은 죄에서 사람을 속량했다. 이는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해 온 것,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해 낸 것이다. 하지만 사람 안에는 여전히 사탄의 패괴 성품이 존재했다. 두 번째 성육신은 더 이상 속죄 제물이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해 온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품이 변화됨으로써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질 수 있다. 율법시대가 끝나고 은혜시대가 시작되면서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시작했다. 말세에 하나님은 인류의 패역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사역을 하여 인류를 완전히 얻고 정결케 한 뒤에야 구원 사역을 끝내고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3단계 사역 중 두 차례만 성육신으로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것이다. 3단계 사역 중 한 단계는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는 사역이고, 나머지 두 단계는 구원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해야만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 있고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할 수 있으며 정상적인 육신으로 살 수 있다. 그래야만 창조된 사람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도를 공급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지, 직접 하늘에 간구하여 얻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 육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영에 접근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입은 육신뿐이다. 사람은 이 육신을 통해야만 모든 진리와 도를 깨닫고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그의 사역 대상이 사탄의 영도 아니고, 육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니며,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육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육체가 패괴되었기에 하나님이 육에 속한 사람을 자신의 사역 대상으로 삼는 것이고, 더욱이 사람이 패괴된 대상이기에 하나님이 어느 단계의 구원 사역을 하든 사람을 자신의 유일한 사역 대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은 육체를 지닌 평범한 존재로 육에 속하며,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역이 더 좋은 결실을 얻으려면 사람과 같은 속성을 가진 육신이 되어 사역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육에 속하는 데다가 죄를 이기는 능력과 육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육신이 되어 사역해야 한다.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과 신분이 사람의 본질, 신분과는 크게 다르지만 그의 겉모습은 사람과 같다. 그는 정상인의 외모를 지녔고 정상 인성의 생활을 하기 때문에 사람은 그에게서 정상인과 다른 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는 이 정상적인 외모와 정상 인성만으로도 충분히 정상 인성 안에서 행하는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다. 그의 육신은 그가 정상 인성 안에서 행하는 사역에 이롭고,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는 사역에 이롭다. 또 그의 정상 인성은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는 구원 사역에 더욱 이롭다. 비록 그의 정상 인성이 사람들 가운데서 적잖은 풍파를 일으키겠지만 그것은 그의 사역이 정상적으로 성과를 거두는 데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요컨대, 그가 정상적인 육신으로 행하는 사역은 사람에게 크나큰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이 그의 정상 인성을 받아들이지 못해도 그의 사역은 성과를 거둘 수 있으며, 또한 이 성과가 정상 인성을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육신으로 행하는 사역은 사람이 그의 정상 인성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의 10배, 수십 배를 훨씬 넘는 것을 얻게 한다. 그런 관념들은 결국 그가 행하는 사역에 모두 파묻히고, 사역이 거두는 성과, 즉 그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그에 대한 관념보다 훨씬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가 육신으로 행하는 사역은 상상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다. 그의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외형은 같아도 본질은 전혀 다르다. 사람은 그의 육신으로 인해 하나님에게 수많은 관념을 갖게 되었지만, 그의 육신은 또 사람이 수많은 인식을 얻게 할 수 있다. 심지어 그의 육신은 그와 외형이 비슷한 그 어떤 사람이든 정복할 수 있다. 그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외형을 가진 하나님이기에 누구도 그를 완전히 측량할 수 없고 완전히 알 수도 없다. 사람들은 모두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을 우러르고 환영한다. 만일 하나님이 그저 사람이 볼 수 없는 영일 뿐이라면 사람은 아주 쉽게 하나님을 믿을 것이다. 또한 사람은 아무렇게나 상상할 수 있고, 자기 마음의 즐거움과 유쾌함을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형상을 마음대로 골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면 사람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자신의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고 자신에게 가장 바라는 일을 할 수 있다. 또한 모두가 자신만이 ‘하나님’에게 가장 충성스럽고 가장 경건한 사람이며, 다른 사람들은 이방의 개이자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막연함과 도리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추구하며, 대동소이하여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각자 상상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다를 뿐, 그 본질은 모두 같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사람은 모두 아무 걱정 근심 없이 제멋대로 하나님을 믿고, 또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이것은 ‘인권의 자유’로 아무도 간섭할 수 없다. 사람이 믿는 대상은 모두 자신의 하나님이지 남의 하나님이 아니며, 사람의 사유 재산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사유 재산을 갖고 있다. 이 재산이 사람에게는 보배처럼 보이겠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오히려 가장 비천하고 가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이 사유 재산이 바로 하나님과 가장 뚜렷하게 대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사역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있는, 형상이 있는 육신이 되었다. 하나님은 형상이 없는 영이 아니라 사람이 접촉할 수 있고 볼 수도 있는 육신이다. 하지만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대부분 형상은 없지만 자유로운 형상이 있는, 육신이 아닌 하나님이다. 그래서 성육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대다수 사람들의 원수가 되었고,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성육신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적이 되었다. 사람에게 관념이 있는 것은 사람의 생각 때문이 아니고 사람의 패역 때문도 아니라, 사람의 이 사유 재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 재산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는데, 그것은 사람이 믿은,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는 막연한 하나님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도 아니고 더욱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도 아닌, 사람 스스로 상상한 ‘하나님’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성육신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이유는 전적으로 패괴된 사람의 필요 때문이다. 이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며, 이 모든 대가와 고통은 인류를 위한 것이지 하나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득실과 보답이라는 말이 없다. 그가 얻는 것은 그가 나중에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인류를 위해 행한 모든 것과 지불한 모든 대가는 더 많은 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인류를 위한 것이다. 육신으로 사역하면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어려움이 많지만 결국에는 영이 직접 사역하는 것보다 성과가 훨씬 더 크다. 육신으로 사역하면 상당히 많은 어려움이 있다. 영과 같은 위대한 신분을 가질 수 없고, 영과 같은 비범한 행사가 있을 수도 없으며, 영과 같은 권병은 더더욱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육신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영이 직접 하는 사역의 본질보다 훨씬 뛰어나다. 이 육신 자체는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구원받는 사람에게 있어 영의 사용 가치는 육신의 사용 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영의 사역은 우주 전체로 널리 퍼질 수 있고 산천 호수에 널리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육신의 사역은 그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더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형상이 있는 육신은 사람의 이해와 신뢰를 더 잘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에 깊이를 더하고, 하나님의 실제 행사에 대해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영의 사역은 매우 신비로워서 평범한 사람은 예측하기 어렵고, 눈으로 보기는 더욱 어려우며, 그저 터무니없이 상상할 뿐이다. 반면 육신의 사역은 정상적이고 실제적일뿐더러 풍부한 지혜가 있으며, 평범한 사람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이다. 모두가 하나님이 사역하는 지혜를 직접 깨달을 수 있어 풍부한 상상을 펼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육신으로 하는 하나님 사역의 정확성이자 실제적인 가치이다. 영은 단지 사람이 보지도 못하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만 할 수 있다. 영의 깨우침, 영의 감동, 영의 인도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영의 이러한 사역들은 사고력을 가진 사람에게 명확한 뜻을 알려 줄 수 없고, 말로 분명하게 가리켜 줄 수 없으며, 그저 감동이나 대략적으로 비슷한 뜻만 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이와 전혀 다르다. 육신으로 사역하면 정확한 말씀의 인도, 명확한 뜻, 그리고 명확한 요구와 목표가 있으므로 사람이 모색할 필요도 없고 상상할 필요도 없으며 더욱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의 명확성으로, 영의 사역과는 크게 다르다. 영의 사역은 일부 제한적인 범위에만 적합할 뿐, 육신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 육신이 사역하면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정확한 목표와 사람이 얻는 인식의 실제 가치는 영의 사역이 지니는 정확성이나 실제 가치를 크게 뛰어넘는다. 패괴된 사람에게는 정확한 말씀과 명확한 추구 목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사역만이 가장 가치 있는 사역이다. 현실적으로 사역하고 제때 인도해야만 사람의 기호에 맞출 수 있고, 실제적으로 사역해야만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한 성품에서 구원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오직 성육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 성육신 하나님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한 옛 성품에서 구원할 수 있다. 영은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이지만, 이런 사역은 오직 육신으로만 할 수 있다. 오직 영이 단독으로 역사한다면 사역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육신으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 해도, 이 육신이 자신의 사역을 끝낼 때면 그와 적대 관계였던 사람들은 더 이상 그의 원수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증인이 될 것이며, 그에게 정복된 증인이 되고, 그와 합하여 헤어지기 힘든 증인이 될 것이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육신으로 하는 사역이 사람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육신이 사람의 생존 의의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또 사람의 생명 성장에 있어 육신이 가진 실제 가치를 알게 되고, 더욱이 이 육신이 사람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생명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하나님의 신분이나 지위와 크게 다르고, 사람이 보기에 그의 실제 신분에도 걸맞지 않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본래 형상을 지니지 않고 본래 신분도 없는 이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성육신한 본래의 의의와 가치다. 하지만 사람은 이 의의와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못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영을 우러러보고 하나님의 육신을 내려다본다. 사람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든 육신의 실제 의의와 가치는 영의 실제 의의와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다. 물론 이것은 패괴된 인류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현현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영의 사역이 그저 감동이나 묵시를 줄 뿐이고, 또 신묘막측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신기한 느낌과 위대하고 비범하며 모든 사람이 우러르면서도 닿을 수 없고 이를 수 없는 느낌을 줄 뿐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영은 그저 아득히 멀리서 서로 바라볼 수밖에 없어 마치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영원히 서로 같아질 수 없는 것 같으며, 꼭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영에 대한 사람의 착각에 불과하다. 이런 착각은 그저 영과 사람이 같은 부류가 아니고 영과 사람이 절대로 같은 세계에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또 영은 사람이 가진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영이 아니다. 영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사역을 직접적으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육신의 사역은 사람에게 실제적인 추구 목표와 명확한 말씀을 주고, 실제적이고 정상적이라는 느낌과 자신을 낮추고 평범하다는 느낌을 준다.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대다수 사람에게는 접촉하기가 상당히 쉽다. 사람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므로 아득히 멀리서 서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 이 육신은 사람에게 아득히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측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이 육신이 사람과 같은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을 때, 사람은 하나님의 많은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말씀은 완전한 신성에서 비롯되었기에, 그 말씀을 할 때의 위치와 배경을 사람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또한 사람이 볼 수 없는 영계에서 선포된 것이라 육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꿰뚫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육신한 후에는 영계에서 벗어나 인성의 각도에서 사람과 대화하게 되었다. 그는 사람의 관념 속 상상이나 사람이 삶 속에서 보고 접하는 일들,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과 이해할 수 있는 언어, 또는 인류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이용해 그의 신적 성품과 마음, 그의 태도를 전했다. 그리하여 사람이 이해 가능하고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나님을 알고 인식하며, 하나님의 뜻과 요구 기준을 이해하고 깨닫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성으로 사역하는 방식과 원칙이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행하는 사역 방식과 원칙이 대부분의 경우 인성을 통해 이루어지긴 했지만, 오히려 신성으로 직접 사역해서는 얻기 힘든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이제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이 확실히 평범하지 않으며, 많은 것들이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고 비밀이고 또한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순종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누구에게도 복종한 적이 없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완전히 승복하게 되어 더는 연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말씀 속에서 쓰러지고 말씀의 심판 아래 엎드리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에게 말씀한다면, 사람은 모두 그 ‘음성’ 앞에 순종하게 될 것이다. 마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빛 속에 엎드린 것처럼 말씀으로 사람을 폭로하지 않아도 모두 엎드릴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속 그렇게 한다면, 사람은 영원히 말씀의 심판으로 자신의 패괴를 깨달아 구원받는 이 목적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이 성육신해야만 모든 사람에게 직접 말씀을 전해 주어 귀 있는 자들이 다 그의 말씀을 듣고 말씀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말씀이 성과를 내는 것이지, 영으로 나타나 사람을 ‘놀라 쓰러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실제적이면서도 비범한 사역을 통해야만 사람의 깊은 곳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옛 성품을 완전히 들추어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고 변화되게 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성육신의 실제적인 사역이다.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실제적으로 심판함으로써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성과를 거둔다. 이것이야말로 성육신 하나님의 권병이자 성육신의 의의다. 이는 성육신 하나님의 권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즉, 말씀으로 얻은 사역 성과를 나타내고 영이 육신에 왔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방식을 통해 그의 권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비록 육신은 평범한 정상 인성을 지닌 외형이지만, 말씀으로 얻은 성과를 통해 그가 권병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그가 하나님 자신임을 보여 주며, 그의 말씀이 하나님 자신이 선포한 것임을 보여 준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그가 하나님 자신일 뿐만 아니라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그 누구도 그를 범할 수 없고 그의 말씀의 심판을 뛰어넘을 수 없으며 어떤 흑암 세력도 그의 권병을 능가할 수 없음을 알게 한다. 사람이 그에게 순종하는 것은 ‘말씀’으로 된 그의 육신과 그의 권병, 그리고 그의 말씀의 심판 때문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가져온 사역 또한 그가 지닌 권병이다. 성육신한 이유는 육신도 권병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실제적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여 사람이 보고 만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역은 모든 권병을 지닌 하나님의 영이 직접 행하는 사역보다 훨씬 실제적이고 성과도 뚜렷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사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신의 외형은 권병을 지니고 있지 않아 모두가 가까이할 수 있지만 그의 본질은 권병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도 그의 권병을 볼 수 없다. 사람은 그가 말씀하고 사역할 때도 그의 권병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이는 그가 실제적으로 사역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된다. 그의 이런 실제적인 사역은 모두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비록 모든 사람이 그가 권병을 지니고 있음을 모르고, 거스를 수 없는 그의 일면과 그의 진노를 알지 못할지라도 그는 은밀한 권병, 은밀한 진노, 공개적인 말씀을 통해 말씀의 성과를 거둔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어조와 말씀의 준엄함, 말씀의 모든 지혜로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모두 권병이 없는 듯한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이것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이 이루어진다. 이것 역시 성육신의 또 다른 측면의 의의이다. 즉, 더 실제적으로 말씀하기 위함이고, 말씀의 실제로 사람에게서 성과를 얻고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의 위력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 사역은 성육신을 통해 하지 않는다면 전혀 성과를 얻을 수 없고, 죄악된 사람을 완전히 구원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는다면 그는 사람이 볼 수도 없고 접촉할 수도 없는 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은 육에 속한 피조물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세계는 서로 다르며, 그 성질 또한 달라서 하나님의 영과 육에 속한 사람은 전혀 맞는 구석이 없고, ‘수교’가 아예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람이 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피조물이 되어 그의 원래의 사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오를 수도 있고 피조된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며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지극히 높이 올라 영이 될 수 없을뿐더러 지극히 낮추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해야 한다. 첫 번째 성육신 때처럼 말이다. 오직 하나님이 입은 육신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을 속량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직접 육신을 입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될 수 있지만, 사람은 직접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한 속죄 제물을 가져올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이 하늘 위아래를 몇 번 왕복해야지’, 사람을 하늘로 올려 보내 구원받게 할 수는 없다. 사람이 타락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 올라가 속죄 제물을 가지고 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사람들이 절대 할 수 없는 사역을 친히 해야 했다. 매번의 성육신은 다 몹시 필요했던 것이다. 그중 한 단계라도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수모를 감내하며 성육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사탄의 영을 직접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패괴되고 육에 속한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 사역은 영계가 아닌 사람들 가운데서 행한다. 사람 육체의 패괴를 심판하는 사역은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 해야만 가장 적합하고,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만이 가장 자격이 있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심판한다면 여러 면에서 빈틈없이 할 수 없고 사람이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영은 사람과 직접 대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즉각적인 성과를 낼 수 없고, 더욱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을 더 또렷하게 보여 줄 수도 없다. 오직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 인류의 패괴를 심판해야만 사탄을 철저히 물리칠 수 있다. 똑같이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지만,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사람의 불의를 직접 심판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본래 거룩하고 남다르다는 것을 상징하는 표지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심판할 자격과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진리와 공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심판할 수 있다. 반면, 진리와 공의가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의 영이 이 사역을 한다면 그것은 사탄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영은 본래 육체를 지닌 존재보다 위대하며, 하나님의 영은 본래 거룩하고 육체를 능가한다. 영이 직접 이 사역을 하면 사람의 모든 패역을 심판할 수 없고, 사람의 모든 불의를 드러낼 수도 없다. 심판 사역도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념을 통해 행하는 것인데, 사람은 본래 영에 대해 관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이 사람의 불의를 더 잘 드러낼 수는 없고, 더욱이 사람의 불의를 확실히 들추어낼 수도 없다. 성육신 하나님은 그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의 원수이다. 그는 그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대적을 심판함으로써 인류의 패역을 모두 들추어낸다. 육신이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사역보다 더 뚜렷한 성과를 낸다. 그러므로 인류 전체를 심판하는 사역은 영이 직접 하지 않고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것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사람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다. 사람은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에 대해 대적하다가 순종하고, 핍박하다가 받아들이고, 관념을 갖고 있다가 알게 되고, 저버리다가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 성과다. 사람은 모두 그의 심판을 통해서만 구원받게 되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통해서만 차츰 그를 알게 된다. 또 대적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정복되고, 그의 형벌을 받는 과정에서 그에게 생명의 공급을 받게 된다. 이 모든 사역은 하나님이 영의 신분으로 하는 사역이 아니라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하는 사역은 가장 큰 사역이자 가장 심오한 사역이다. 세 단계 사역의 핵심이 바로 이 두 단계 성육신 사역에 있다. 성육신하여 사역할 때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사람이 매우 심하게 패괴된 데다, 특히 말세에 이 사람들에게 하는 사역이 더욱 힘들고 외부 환경이 열악하며 각 부류 사람들의 자질도 몹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역이 끝날 때는 상응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고, 그 성과는 조금의 부족함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육신으로 사역한 성과로, 이 성과는 영이 하는 사역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세 단계 사역은 육신 중에서 끝나며, 또 반드시 성육신 하나님이 끝내야 한다.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사역은 모두 육신으로 해야 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것도 반드시 육신이 친히 해야 한다. 모든 인류가 육신의 하나님은 사람과 무관한 것 같다고 느끼지만 사실 이 육신은 인류 전체의 운명, 그리고 생존과 관계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육신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성품을 변화시키려면 추구할 목표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의 실제 행사와 실제 모습을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오로지 하나님이 입은 육신만이 할 수 있고,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육신만이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해야 할 필요성으로, 모든 패괴된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라고 요구하는 만큼 반드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막연하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형상들을 없애야 하고, 사람에게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하는 만큼 반드시 먼저 이런 패괴 성품을 알게 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을 제거하기 위해 사람이 이 사역을 한다면 상응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은 결코 말로 들추어내고 벗겨 버리고 나아가 완전히 없앨 수 없다. 그렇게 하면 결국 사람에게 깊이 뿌리박힌 것을 없앨 수 없다. 오직 실제 하나님과 하나님의 원래 형상으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런 막연하고 초자연적인 것을 대신하여 사람이 차츰 깨닫게 해야만 원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사람이 지난날 막연하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즉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은 영의 직접적인 인도 때문이 아니고, 나아가 누군가의 가르침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성육신 하나님 덕분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모습과 사람의 상상 속에 있는 막연하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서로 대립되기 때문에 성육신 하나님이 본격적으로 사역할 때는 사람의 관념이 모두 드러나게 된다. 성육신 하나님을 통해 부각해야만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던 관념이 모두 드러난다. 성육신 하나님과 대조를 이루지 않는다면 사람의 관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실제적인 것으로 부각하지 않으면 막연한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 사역은 누구도 말로 대신할 수 없고, 누구도 말로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다. 하나님 자신만이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을 뿐, 사람은 그 누구도 그것을 대신하지 못한다. 사람의 말이 아무리 풍부해도 하나님의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여 그의 형상과 어떠함을 모두 알려야만 사람이 그를 더 실제적으로 알 수 있고,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육에 속한 사람은 그 누구도 이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물론 하나님의 영 또한 이런 사역 성과를 거둘 수 없다. 하나님은 패괴된 사람을 구원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지만, 이 사역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 하나님이 입은 육신만이 할 수 있다. 이 육신은 사람이자 하나님이고,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이자 완전한 신성을 지닌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이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 또한 영과 크게 다르지만, 사람을 구원하는 이는 여전히 성육신 하나님 자신이고 또 영이자 육신이다. 호칭이 어떠하든 결국은 하나님 자신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과 육신은 서로 떨어질 수 없고, 육신이 하는 사역은 또한 하나님의 영이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영의 신분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신분으로 사역할 뿐이다. 영이 직접 해야 하는 사역이면 성육신할 필요가 없고, 육신이 해야 하는 사역은 영이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에 성육신의 방식으로 사역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은 사역에 필요한 것이고, 또 패괴된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다. 세 단계 사역 중 오직 한 단계 사역만 영이 직접 한 것이고, 나머지 두 단계 사역은 모두 영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성육신 하나님이 한 것이다. 영이 행한 율법시대의 사역은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과도 관련이 없었다. 반면 육신이 행한 은혜시대와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의 사역은 모두 사람의 패괴 성품,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다. 육신이 행한 사역은 구원 사역에서 중요하고 결정적인 사역이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에게는 성육신 하나님의 구원과 성육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역이 더욱 필요하다. 인류에게는 성육신 하나님의 목양, 붙듦, 양육, 심판, 형벌이 필요하고, 성육신 하나님의 더 많은 은혜와 더 큰 구원(원문: 救贖)이 필요하다. 오로지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만이 사람의 지기(知己)가 될 수 있고, 사람의 목자가 될 수 있으며, 언제든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오늘날에도, 과거에도 성육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전체 경영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사람을 구원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핵심 사역은 패괴된 사람을 철저히 정복하여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원래 갖고 있던 경외심을 되찾게 하고 정상인의 생활, 즉 정상적인 피조물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역이며 경영 사역의 핵심이다. 이 세 단계 구원 사역 중 1단계인 율법시대의 사역은 경영 사역의 핵심과 큰 차이가 있다. 율법시대의 사역은 구원 사역의 겉모습만 조금 갖추었을 뿐이며,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는 사역은 시작하지 않았다. 1단계 사역을 영이 직접 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것만 알았을 뿐 더 많은 진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율법시대의 사역은 사람의 성품 변화와 거의 관련이 없고, 사람을 어떻게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하는지에 대한 사역과는 더더욱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패괴 성품과 관련되지 않는, 극히 간단한 사역만 완성한 것이다. 그 단계의 사역은 경영의 핵심과 그리 큰 관계가 없었고, 본격적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과도 그리 큰 관련이 없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친히 사역할 필요가 없었다. 영이 하는 사역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측량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무서워해 쉽게 접근하지 못하므로 직접 구원 사역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직접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역시 영의 사역을 사람과 가까운 다른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즉,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평범한 정상인이 되어 사역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영의 사역을 대신해야 한다. 이 사역 방식이 사람에게 가장 적합하다. 이 세 단계 사역 중 두 단계 사역은 육신이 행한 것이며, 또 이 두 단계 사역은 경영 사역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두 번의 성육신은 서로 보충하며 완전케 한다. 첫 번째 성육신은 두 번째 성육신을 위해 기초를 다졌다. 두 차례 성육신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단계 사역을 성육신의 신분으로 행한 것은 전체 경영 사역에서 이 두 단계 사역이 실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의 성육신 사역이 없었다면 전체 경영 사역이 정체되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도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역의 중요성은 인류의 필요성, 인류의 타락 상황, 사탄의 거역과 사역을 방해하는 정도에 근거한다. 그리고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적임자는 사역자의 사역 성질과 사역의 중요성에 따라 결정된다. 사역의 중요도를 놓고 볼 때, 사역 방식을 택함에 있어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역하는 것, 성육신하여 사역하는 것, 또는 사람을 통해 사역하는 것의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 가운데서 제일 먼저 탈락된 것은 ‘사람을 통해 사역하는’ 방식이다.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는 사역의 성질, 영과 육신이 하는 사역의 성질에 근거해 최종적으로 육신이 사역하는 것이 영이 직접 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더 이로울 뿐만 아니라 장점이 훨씬 더 많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영이 사역할지, 육신이 사역할지를 결정할 때의 하나님의 생각이었다. 각 단계의 사역은 터무니없는 상상도 아니고,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행하는 것도 아니라, 모두 의의가 있고 근거가 있으며 어느 정도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의 실상이다. 특히 성육신하여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이렇게 중대한 사역을 하기에 더더욱 하나님의 계획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와 모든 어떠함은 그가 사역할 때의 일거수일투족, 마음과 생각 속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어떠함이다. 사람은 이런 세밀한 마음과 생각을 상상하기 어렵고 믿기도 어려우며 더욱이 깨닫기도 어렵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육신으로 하는 사역의 가장 큰 장점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말씀과 당부를 남길 수 있고, 인류에 대한 그의 정확한 뜻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이 도를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에게 그가 육신으로 한 모든 사역과 전 인류에 대한 그의 뜻을 더 정확하고 실제적으로 전해 줄 수 있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니 비로소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고 함께 생활하는 것을 진정으로 실현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사역을 보고,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을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소망을 실현하게 되었다. 성육신 하나님은 ‘인류에게 여호와의 뒷모습만 보여 주던’ 시대를 끝내고, 인류가 막연한 하나님을 믿던 시대도 끝냈다. 특히 마지막으로 성육신한 하나님의 사역은 인류 전체를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이고 아름다운 시대로 인도했다. 율법과 규례의 시대를 끝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하나님,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 경륜 사역을 펼치고 인류의 비밀과 종착지를 보여 주는 하나님, 인류를 창조하고 경영 사역을 끝내는 하나님, 수천 년간 숨겨져 있던 하나님을 인류에게 공개하여 막연한 시대를 완전히 끝낸 것이다. 또한 전 인류가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었던 시대와 사탄을 섬기던 시대를 끝내고, 전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완전히 인도해 들어갔다. 이런 사역은 모두 육신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을 대신하여 사역함으로써 거둔 성과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사역을 해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다시는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을 찾지 않게 되고, 다시는 막연한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한 사역을 확장할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가 육신으로 했던 모든 사역을 각 종교, 각 교파에 전하고, 그의 모든 말씀을 전 인류에게 전할 것이다. 또 그의 복음을 얻은 모든 사람은 그가 사역한 사실을 듣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직접 보고 들은 것으로, 뜬소문이 아닌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모두 그가 사역을 확장한 증거이자 사역을 확장하는 수단이다. 만일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의 복음이 모든 지역과 나라에 전파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없고 단지 사람의 상상만 있다면 영원히 우주 전체를 정복하는 사역을 할 수 없다.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존재다. 영으로 사역하면 사람에게 더 많은 증거와 사역한 사실을 남길 수 없으며,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고, 영원히 막연하고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만 믿을 것이다. 또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친히 하는 말씀을 듣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상상하는 것은 어쨌든 헛된 것이므로 결코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과 그 자신의 사역은 사람이 연기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람들 가운데 와서 친히 사역해야만 하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사역을 땅에 옮겨 올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으로, 성육신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이렇게 할 수 없다. 지금 이 정도까지 사역을 행하여 이미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 정도까지 한 것도 이미 큰 노력으로 얻어 낸 성과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자신의 전체 경영 사역 가운데 90%를 완성했다. 이 육신은 그의 모든 사역을 더 좋은 시작으로 인도했다. 이 육신은 그의 모든 사역을 총결 짓고 널리 알렸으며, 마지막으로 완전히 보완했다. 이제 다시는 성육신 하나님이 와서 네 번째 단계의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이 세 번째로 성육신하는 이 놀라운 사역이 있지도 않을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반드시 육신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역한다면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설령 사역하더라도 별로 큰 의미가 없고, 결국에는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가 하는 사역이 의미가 있는지, 무엇을 대변하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고 싶어 하며, 하나님이 하는 사역에 권병과 지혜가 가득한지, 그가 하는 사역이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사역인지 알고 싶어 한다. 그가 사역을 하는 것은 인류 전체를 구원하고 사탄을 물리치기 위함이며, 또한 만물 가운데서 그 자신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사역은 반드시 커다란 의의가 있어야 한다. 사람의 육체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가장 심하게 기만당했다. 육체는 극심한 해를 입은 대상이다. 하나님이 친히 육신으로 사역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구원의 대상이 육에 속한 사람이고, 사탄도 사람의 육체를 이용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탄과의 싸움은 사실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이며, 사람은 또 구원받는 대상이다. 따라서 성육신으로 사역할 필요성이 크다. 사탄이 사람의 육체를 패괴시켜 사람은 사탄의 화신이 되었고 하나님이 물리칠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사탄과 싸우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모두 땅에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이 되어 사탄과 싸워야 했다.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사역이다. 그가 육신으로 사역하는 것도 사실은 육신으로 사탄과 싸우는 것이고, 영계에서의 그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는 영계에서의 사역을 모두 땅에 실체화했다. 그가 정복하는 대상은 그를 거역하는 사람이고, 그가 물리치는 대상은 그를 적대시하는 사탄의 화신(물론 이 역시 사람)이며, 또 마지막에 구원을 받는 대상 역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피조물의 외형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했다. 사탄과 실제적인 싸움을 할 수 있고, 그를 거역할뿐더러 그와 같은 외형을 가진 사람을 정복할 수 있으며, 그와 같은 외형을 갖고 있는, 사탄에게 해를 입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의 원수는 사람이고, 정복할 대상도 사람이며, 구원할 대상 역시 창조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반드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하면 그의 사역이 훨씬 편해져 사탄을 물리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정복할 수 있고 더욱이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 비록 ‘육신’이 정상적이고 실제적일지라도 평범한 육신이 아니고 인성만 있는 육신도 아니며,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가진 육신이다. 이것이 그와 사람의 다른 점이며, 하나님의 신분을 상징하는 표지이다. 이런 육신만이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할 수 있고,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의 직분을 이행할 수 있으며,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하는 사역을 철저히 완성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하는 사역은 영원히 공백 상태일 것이고, 영원히 허점일 것이다. 설령 하나님이 사탄의 영과 싸울 수 있고 이긴다고 해도 패괴된 사람의 옛 성품은 영원히 해결되지 못하고, 그를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은 영원히 그의 권세 아래에 진실로 복종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영원히 인류를 정복할 수 없고 인류 전체를 얻을 수 없다. 땅의 사역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의 경영은 끝날 수 없고, 인류 전체가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러한 경영 사역은 영원히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도 그에 따라 사라질 것이다. 그의 육신은 권병을 지니지 않았지만 그가 한 사역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것은 그가 행하는 사역의 필연적인 흐름이다. 권병을 지녔든 지니지 않았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기만 하면 그는 하나님 자신이다. 육신이 아무리 정상적이고 평범해도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할 수 있다. 이 육신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 육신이 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내면에 있는 본질이 그 누구와도 다르기 때문이고, 그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신분이 그 누구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또 이 육신이 인류에게 더없이 중요한 것은 그가 사람이면서 더욱이 하나님이기 때문이고, 평범한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며, 땅에서 그와 함께 생활하는 패괴된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인류에게 있어 그 어떤 가치 있는 사람보다도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영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영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잘 증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보다 더욱 완전하게 인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육신은 평범하고 정상적이지만 그가 인류에게 기여한 것과 인류의 생존에 대해 갖는 의의를 논한다면 아주 보배롭다. 이 육신의 실제 가치와 의의는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육신은 비록 사탄을 직접 멸할 수 없지만 그는 사역의 방식으로 인류를 정복하고 사탄을 물리쳐 철저히 그의 권세 아래에 굴복시킬 수 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였기에 사탄을 물리칠 수 있고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사탄을 직접 멸하지 않고 성육신하여 사역하면서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인류를 정복한다. 그러면 피조물 가운데서 그 자신을 더 잘 증거할 수 있고, 패괴된 사람을 더 잘 구원할 수 있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사탄을 물리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탄을 멸하는 것보다 더 좋은 증거가 되며 설득력도 더 강하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사람이 창조주를 알아 가는 데 더 도움이 되고, 피조물 가운데서 그 자신을 더 잘 증거할 수 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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