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인 차이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인성이든 신성이든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이자 신성이기에 그의 본질이 곧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다. 그 본질이 그의 사역을 방해할 리 없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망치는 일도, 자신의 뜻에 위배되는 말도 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성육신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경영을 방해하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할 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그는 하나님의 본질을 지닌 사람이기에 창조된 그 어떤 사람보다도 높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높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외형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인성을 지닌 모든 사람 가운데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 외에는 모두 창조된 인류인 것이다. 똑같이 인성을 갖추고 있지만, 창조된 사람은 인성 말고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는 인성 말고도 무엇보다 중요한 신성이 있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으로 알아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만, 신성은 쉽게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는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 나타나며,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신성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가장 측량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음에도 너희 대다수는 이에 대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했다고 하면 그의 본질은 인성과 신성의 결합체이다. 이 결합체를 하나님 자신이자 땅의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만약 하나님이 육신으로 와서 신성의 사역만을 하고, 하나님 뜻에 맞는 몇 명의 사람들이 그와 협력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을 접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정상인을 통해 이 사역이 완전해지게 하고, 많은 교회를 돌보고 목양하게 해야만 사람의 사유와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를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몇 명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사역을 ‘번역’하여 풀어 주는 것이다. 즉, 신적 언어를 인간적인 언어로 바꿔 사람들이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은 어쨌든 소수이고, 사람의 이해력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사역할 때 이런 방식을 택한다. 신성의 사역만 있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접할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뜻에 맞는 사람을 통해 그 말씀들을 확실히 전달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들이 하는 인성 사역만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 또한 새로운 기점을 열지 못하고 그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며 옛것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이 해야 할 말씀과 사역을 육신에 거하는 단계에서 끝내고, 그 뒤에 사람들이 또 그의 말씀에 따라 사역하고 체험해야만 사람의 생명 성품이 변화될 수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갈 수 있다. 신성 사역은 하나님을 대변하지만, 인성 사역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다. 즉, ‘성육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다. 각 시대가 시작될 때마다 하나님의 영은 친히 말씀을 하여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사람을 새로운 기점으로 인도한다. 그의 말씀이 끝나면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사역도 끝난 것이다. 그다음부터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의 인도에 따라 생명 체험에 진입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중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역이나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기 위해 사역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선민을 이끌기 위해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킨 사람이자 인성으로 협력하는 사역을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인성으로 협력하는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성령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려는 사역이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쓰는 목적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를 더 많이 충족시키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을 직접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쓰임 받는 사람을 일으켜 이런 사역을 한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인도하는 데 필요한 매개자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담당하는 ‘통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 집에 있는 어떤 일꾼이나 사도와는 다르다. 그들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다른 일꾼이나 사도들과 사역의 본질, 그리고 쓰임 받는 배경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사역의 본질과 쓰임 받는 배경을 보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으킨 자로,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위해 예비한 사람이며, 하나님 자신의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역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고, 신성으로 역사할 때 반드시 필요한, 인성으로 협력하는 사역이다. 반면, 다른 일꾼이나 사도의 사역은 그저 각 시기에 교회에 대한 다방면의 지시를 전달하고 실시하는 것이거나, 교회 생활을 유지하는 일부 단순한 생명 공급 사역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일꾼들이나 사도들은 하나님께 지정된 자가 아니며, 또한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들은 모두 교회에서 선발된 자들로, 한동안의 배양과 훈련을 거쳐 쓰기에 합당한 사람은 쓰임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진다. 이들은 모두 교회에서 선발된 자들이므로 일부는 리더가 된 후 실체가 드러났고, 또 어떤 이는 많은 악행을 저질러 결국 도태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한, 어느 정도 자질과 인성을 갖춘 사람이며, 성령이 미리 예비하여 온전케 한 사람이다. 성령이 그를 완전히 인도하는 것은 물론, 특히 사역 면에서는 성령이 지배하고 주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민을 인도하는 길에 오차가 생길 수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사역에 책임을 질 것이며, 언제든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사람을 쓰는 것에 관하여> 중에서
하나님은 땅에 임하여 신성의 사역만을 행한다. 이는 하늘의 영이 성육신 하나님에게 준 부탁이다. 그가 와서 하는 일은 곳곳에서 말씀하는 것뿐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러 위치에 서서 말씀을 하는데, 기본 목적과 사역 원칙은 사람에게 공급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사람 생활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의 주요 직분은 영을 대표해 말씀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이 실제로 육신으로 현현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진리를 선포할 뿐, 사람의 사역에 간섭하지 않는다. 즉, 인성 사역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은 사람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땅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사역하면서 항상 사람을 통해 사역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하나님은 직접 신성의 위치에서 말씀하고, 영의 음성을 발하며, 영을 대표해 사역할 수 있다. 똑같이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통해 사역을 하는 것인데, 어째서 역대로 그렇게 많은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못했겠느냐?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영이 직접 육신으로 사역하고, 예수 역시 하나님의 영이 육신으로 사역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양자는 하나님이라고 불린다. 그 차이는 무엇이겠느냐? 역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사유와 정상적인 이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람의 처세 원칙을 알고 있었다. 또한 정상인의 생각과 정상인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것들을 전부 갖추고 있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재능이 출중하고 천성적으로 총명했다. 하나님의 영은 그들의 은사인 재능을 통해 그들에게 역사했다. 즉 하나님의 영은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을 발휘시켜, 그들의 장점을 이용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생각도, 사유도 없으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다. 심지어 정상인이 갖추고 있는 것도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처세 원칙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늘날 땅에 임한 하나님이 바로 이렇다. 그의 사역과 말씀에는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으며, 사람의 사유도 없다. 그는 직접 영의 원뜻을 드러내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한다. 즉, 영이 직접 말씀하고 신성이 직접 사역하므로, 사람의 뜻이 전혀 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직접 신성을 지니고 있으며, 사람의 사유나 생각이 없고, 사람의 처세 원칙도 모른다. 만약 신성의 사역만 있다면(하나님 자신만 사역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땅에서 전개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땅에 온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몇 명의 사람들이 인성에서 하나님의 신성 사역에 협력하게 해야 한다. 즉, 인성 사역으로 신성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신성의 사역을 직접 접할 수 없다. 예수와 몇몇 제자들처럼 말이다. 예수는 세상에 있을 때, 낡은 율법을 폐하고 새로운 계명을 정했으며, 수많은 말씀을 했다. 그 사역들은 모두 신성으로 행한 것이었다. 반면 베드로, 바울, 요한 등이 후에 한 사역은 모두 예수가 한 말씀의 기초 위에서 행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하나님은 시작 사역을 하여 은혜시대를 이끌기 시작하였다. 즉, 새 시대를 인도하고 옛 시대를 폐했으며,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라”는 말씀을 이루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반드시 신성 사역의 기초 위에서 사람의 사역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는 땅에서 그가 해야 할 말씀을 다 하고 그의 사역을 완성한 후 사람들을 떠났다. 그 후에 사람의 모든 사역은 전부 그의 말씀을 원칙으로 하고, 그가 말씀한 진리에 따라 실행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예수를 위해 사역한 사람들이었다. 만약 예수만 사역했다면, 그가 아무리 많은 말씀을 했어도 사람은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신성으로 사역하기에 신성의 말씀만 할 수 있지, 일반 사람들이 깨닫도록 해석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뒤의 사도나 선지자들을 통해 이후의 사역을 보충해야 했던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이 갖고 있는 원칙은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통해 말씀하고 사역하여 신성 사역을 완성한 후,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몇 명, 또는 더 많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보충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을 통해 인성으로 양육하고 목양하여 하나님의 선민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중에서
은혜시대에 요한은 예수를 위해 길을 닦는 사역을 했다. 그는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할 수 없었으며, 그저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했을 뿐이다. 요한이 주의 선구자이기는 했지만 성령께 쓰임 받는 한 사람에 불과하며, 하나님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예수가 세례를 받자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에게 임했고, 그때부터 예수는 사역을 시작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직분을 이행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에게 하나님의 신분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이다. 그전에 그가 어떻게 믿었든, 연약할 때도 있고 강할 때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모두 직분을 이행하기 전 정상 인성의 생활이었다. 예수가 세례를 받자(기름 부음을 받자) 바로 능력이 따랐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와 함께하였으며, 그는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적과 기사를 보이고 권능을 행하며 능력과 권병을 가졌던 것은 직접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하고, 영을 대신해 사역하며, 영의 음성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의심할 여지 없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요한은 성령께 쓰임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하며 대표할 수도 없다. 요한이 하나님을 대표하려고 했다면 성령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한에게 사람의 뜻이 많았을 수도 있고 치우친 점들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는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었다. 요한의 잘못과 그릇됨은 그 본인을 대변하지만 그가 사역한 부분은 성령을 대변한다. 그렇다고 그의 전부가 하나님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설마 그의 치우침과 그릇됨까지도 하나님을 대변하겠느냐? 사람을 대변할 때 치우침과 그릇됨이 있는 것은 정상이지만, 하나님을 대변하는데도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 아니겠느냐? 성령을 모독하는 것 아니겠느냐? 성령은 함부로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 세우지 않는다. 사람들이 높이 받드는 자라고 해도 안 된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결국 그 자리에 온전히 설 수 없다. 성령은 사람이 함부로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요한의 경우도 성령이 증거한 사람이었고 예수의 길을 닦는 자라고 성령이 밝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령이 요한에게 행한 사역은 상당히 적절했다. 예수의 길을 닦는 사람으로서 예수를 위해 길만 닦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은 요한의 길 닦는 사역만 수호했으며, 그 외에 다른 일은 허락하지 않았다. 요한은 엘리야를 상징하며 길을 닦는 선지자를 상징한다. 그래서 그런 사역은 성령이 수호했다. 요한의 길 닦는 사역을 위한 것이라면 성령은 모두 수호하였다. 하지만 요한이 하나님을 자처하며 자기가 구속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면 성령은 그를 징계했을 것이다. 요한이 한 사역이 아무리 크고 또 성령의 수호를 받았을지라도 그의 사역은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성령이 요한의 사역을 수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 그에게 부여한 능력은 길을 닦는 데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역은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는 예수가 아니라 그저 길을 닦는 요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가 중요하기는 해도 사람이 하는 사역을 성령이 허락하는지가 그보다 더 중요하다. 지난날 요한은 아주 크게 증거되었고, 그가 한 사역도 매우 크지 않았더냐? 하지만 요한이 한 사역은 예수를 넘어설 수 없었다. 요한은 그저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일 뿐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 사역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가 길을 닦는 사역을 끝낸 뒤에는 성령이 더는 그의 증거를 수호하지 않았고, 새로운 사역이 그를 따르지도 않았으며, 그도 그렇게 하나님의 사역을 따라 떠났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이라고 할 수 없고, 사람의 말은 더더욱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고, 성육신 하나님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아니다. 여기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 말씀들을 읽고 난 다음 이것을 사람이 얻은 깨우침이라고만 인정할 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네가 너무 무지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 사람이 얻은 깨우침과 같을 수 있겠느냐?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열고, 전 인류를 인도하고, 비밀을 밝히는 말씀이자 사람에게 새 시대에서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는 말씀이다. 사람이 얻은 깨우침은 그저 간단한 실행이나 인식에 지나지 않아 전 인류를 새 시대로 인도할 수 없으며, 하나님 자신의 비밀도 밝힐 수 없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다.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본질이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한 성령의 깨우침으로 보고 사도와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이 직접 한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사람의 잘못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든, 쓰임 받는 사람의 사역이든 모두 성령의 사역이다. 하나님 자신의 본질은 원래 영이기 때문에 영은 성령이라고도, 일곱 배 강화된 영이라고도 하며, 어쨌든 모두 하나님의 영이다. 단지 시대가 다름에 따라 하나님의 영에 대한 호칭이 다를 뿐, 그 본질은 여전히 하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원래부터 성령의 사역이며,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 또한 성령의 사역에 속한다.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 역시 성령의 사역이다. 다만 하나님의 사역은 성령의 완전한 발현으로, 조금의 오차도 없지만, 쓰임 받는 사람의 사역은 성령의 직접적인 발현이 아니고, 완전한 발현은 더더욱 아니며, 사람에게 속하는 것들이 많이 섞여 있다. 성령은 역사 형식이 매우 다양하고, 어떤 조건의 제약도 받지 않으며, 서로 다른 사람에게 서로 다르게 역사한다. 이러한 역사는 모두 각기 다른 사역의 본질을 나타내며, 시대별, 국가별로 행하는 사역도 다르다. 물론 성령이 역사하는 방식과 원칙은 매우 다양하지만, 어떻게 역사하고 어떤 사람에게 역사하든 모두 서로 다른 본질을 갖는다. 서로 다른 사람에게 행해지는 역사는 모두 원칙이 있으며, 역사할 대상의 본질을 대변할 수 있다. 성령의 역사는 적합한 범위와 한도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에게서 행해지는 사역은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과 다르고, 자질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도 서로 다르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입은 육신에게서 행해지는 사역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입은 육신에게서는 사람에게 행하는 것과 같은 사역을 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어떤 방식으로 하든 대상에 따라 행해지는 사역이 서로 다르며, 다양한 사람의 내적 상태와 본성에 따라 그가 역사하는 원칙도 다르다. 성령은 서로 다른 사람에게 역사할 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고유의 본질에 따라 역사하지, 사람이 원래 갖고 있는 본질을 넘어서는 요구를 하지 않고, 본디 갖고 있는 자질을 뛰어넘어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성령은 사람에게 하는 사역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는 대상의 본질을 보여 준다. 사람의 고유한 본질은 변하지 않고,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자질은 한계가 있다. 성령은 사람을 쓰거나 사람에게 역사할 때, 사람의 유한한 자질에 따라 역사하여 사람에게 얻는 것이 있도록 한다. 성령은 쓰임 받는 사람에게 역사할 때, 그 사람의 타고난 재능과 고유한 자질을 남김없이 발휘하게 한다. 고유한 자질을 모두 발휘함으로써 사역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이다. 즉, 그는 사람에게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을 취해 사역함으로써 사역 성과를 내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에게서 하는 사역은 직접 영의 사역을 발현하는 것으로, 사람의 생각이나 사유가 섞여 있지 않다. 이는 사람의 은사나 체험, 선천적 조건으로는 이를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내가 하는 말은 나의 어떠함을 대변하지만, 사람은 내가 하는 말에 이를 수 없다. 내가 하는 말은 사람이 체험한 것도, 볼 수 있는 것도, 접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나의 어떠함이다. 어떤 이는 내가 교제하는 것이 내가 체험한 것이라고만 인정할 뿐, 영의 직접적인 발현이라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은 당연히 내가 체험한 것이고, 6천 년 경영 사역은 내가 하는 것이다. 나는 태초에 인류를 창조할 때부터 지금까지 전부 체험했는데 어찌 말하지 못할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의 본성에 대해 꿰뚫고 있고 벌써 다 살펴보았는데, 어찌 제대로 말하지 못할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의 본질을 꿰뚫고 있으므로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할 자격이 있다. 사람은 모두 내게서 나왔고, 또한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내가 한 사역을 평가할 자격이 있다. 그 사역은 내 육신이 한 것이 아니지만 영의 직접적인 발현이고, 나의 소유와 어떠함이다. 그러기에 나는 발현할 자격이 있고, 내가 해야 할 사역을 할 자격도 있다.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 사람이 체험하고 본 것이며, 사람 혼자서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사람의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이러한 일들만 나눌 수 있다.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말은 영의 직접적인 발현으로, 영이 이미 행했던 사역을 나타내는 것이다. 육신이 체험한 것도, 본 것도 아니지만, 나타내는 것은 여전히 그의 어떠함이다. 육신의 본질이 영이고, 나타내는 것은 영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설령 육신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영이 이미 행한 사역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후에 육신의 발현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어떠함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그가 하는 사역을 보게 한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람들이 마땅히 진입해야 할 것과 깨달아야 할 것을 더욱 명확하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고, 사람들을 이끌어 진리를 깨닫고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것은 붙들어 주는 사역이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인류를 위해 새로운 활로와 시대를 열고, 평범한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밝혀 그의 성품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가 하는 것은 전 인류를 이끄는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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