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믿은 결과

2024.11.28

중국 치자오(齊釗)

2004년에 저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하나님 집에 오게 됐어요. 형제자매들과 예배드리면서 가끔 형제자매들이 병통이 있었는데도 계속 본분을 이행했더니 기적처럼 병이 나았다는 체험을 들었어요. 또 형제자매들이 쓴 체험 간증에는 암에 걸렸지만, 여전히 본분을 이행했더니 부지불식간에 하나님께서 암을 고쳐 주셨다는 내용도 있었어요. 그런 체험 간증을 들을 때면 저는 ‘형제자매들은 병통이라는 시련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고 굳게 선 관계로 병이 나았으니 나도 형제자매들처럼 어떤 병통이나 재앙을 겪는다고 해도 내 본분을 지켜 이행하면서 굳게 서야겠어. 그래야 나도 형제자매들처럼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어요.

2011년 여름이었어요. 점심시간에 일곱 살인 아들이 스케이트를 신고 거실에서 놀다가 실수로 TV를 건드리게 되면서 거기에 부딪히게 되었어요. 아들은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코에서도 계속 피가 쏟아졌어요. 저는 너무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그래서 얼른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애가 죽든 살든, 어떻게 되든 제가 원망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 주십시오.’ 병원에 갔더니 일단 집에 가서 지켜보라고, 열만 나지 않으면 괜찮다고 했어요. 그렇게 그 일은 별 탈 없이 넘어갔어요. 그런데 나중에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원망을 하지 않아서 아들이 나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떤 화가 닥쳐도 원망하지 않고 굳게 서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더 들었어요. 그 뒤로는 더더욱 열정적으로 헌신했어요.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겨 주든 그 본분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고 많은 걸 희생해야 하든 다 순종하기로 했죠. 그러면서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훗날 꼭 하나님께 축복받을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2016년 5월에는 객지에서 본분을 맡게 됐어요. 어느 날,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았죠. 애가 백혈병에 걸렸는데, 심각해서 입원했다는 거예요. 그 편지를 읽고 나니 머릿속이 백지장이 돼 곧바로 방에 들어가 무릎 꿇고 통곡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어요. “하나님, 애가 겨우 12살입니다. 정말 그 아이를 데려가시렵니까?” 그 말 외에는 다른 말이 나가지 않더라고요. 곧바로 아들 곁에 달려가 챙겨 주고, 위로하고,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하지만 그때는 마침 교회 생활을 방해하는 적그리스도가 있어서 많은 사역이 방해받고 있고 형제자매들의 생명도 손해를 보고 있었어요. 그 시점에서 하나님은 제가 교회 사역을 지킬지 아니면 본분을 내려놓고 아들을 챙기러 가는지를 보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큰 시련을 겪고, 온몸에 악창이 났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굳게 섬으로 나중엔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았고, 병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곱절이나 복을 받았던 욥의 사례도 생각났어요. 아들의 병도 하나님께 달렸으니까 저도 본분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려야지 사탄의 간계가 이뤄지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제가 굳게 서면 하나님도 분명 애 병도 낫도록 축복해 주실 거라고 믿었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외아들 이삭을 바쳤지만 결국 하나님은 아들을 데려가지 않으시고 더 많은 복을 주셨으니까 저한테도 아들로 저의 믿음을 테스트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아들을 하나님 손에 맡기고 제가 굳게 선다면 분명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들이 낫게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래서 더는 애의 상태를 신경 쓰지 않고 본분에 전념했어요.

집에 돌아갔더니 남편은 아들이 면역력 저하로 백혈구가 좀 많은 상태일 뿐 백혈병은 아니지만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백혈병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유명한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전문의들도 병의 원인은 찾지 못하고 그저 집에 가서 잘 쉬면서 치료하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2천 위안이 넘는 탕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전 하나님께는 어려운 병이 없으니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시는 건 너무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애한테 자주 이렇게 교제했어요. “이런 병에 걸렸다고 해도 절대 불평하면 안 돼.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하심에 순종해야 해. 우리가 굳게 서면 하나님께서 너의 병을 낫게 해 주실 거야.” 그리고 저는 한편으로 아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처방을 백방으로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아이의 병은 호전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졌어요. 그러니 저도 심적으로 소극적이 되고 약해지기 시작했어요. ‘애가 아파도 지금까지 나는 계속 본분을 이행했는데, 하나님은 왜 아이를 낫게 해 주시지 않을까? 왜 오히려 병이 더 심해진 걸까? 정말 의사 말처럼 치료하지 못하고 백혈병으로 넘어가면 가망이 없지 않을까?’ 생각할수록 겁이 났어요.

어느 날 아침, 남편이 울면서 그러는 거예요. “얘 병은 방법이 없어. 낫기는커녕 지금 더 심해졌어. 어떡하면 좋아?” 괴로워하는 남편을 보고 있으니 저도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찾아 읽었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이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되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의 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다 정상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가지게 된 모든 것은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이도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떤 시련을 겪든 그의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네가 체험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연단을 받든, 결국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가 그렇게 사역함으로써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사랑이며, 또한 사람의 의지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할 때 사람은 그것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내려놓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며,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모를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너는 이러한 주관을 갖고 굳게 서야 한다. 욥이 이 수준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말씀했다. 다시 말해, 네가 믿음 안에 있어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네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지만, 네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너를 온전케 할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참된 믿음이 뭔지 조금 알게 됐어요. 아무것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욥처럼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을 믿으며 굳게 서는 것 그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였어요. 그래서 남편하고 교제를 나눴죠. “평소 아무런 재앙이 없을 때는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으로 참된 믿음이 있는지는 알기 어려워요. 시련이 닥치고 아무런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계속 하나님을 믿고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이 진짜 참된 거예요. 그런 참된 믿음도 하나님의 연단과 시련으로 얻게 되는 거고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오직 은혜와 이로운 점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그럼 사탄도 참소하고 인정하지 않아요. 이제 우리는 아들의 병이 낫든 낫지 않든 상관없이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해요. 그래야 사탄도 부끄러움을 당해 실패로 끝나게 되고, 하나님도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시죠.” 남편도 제 말이 맞다고 했어요.

그 후에도 아이의 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아들이 창턱에 엎드려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몹시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거예요. 그리고 울면서 물어보더라고요. “엄마, 저 친구들은 다 학교에 가는데 나는 아파서 못 가잖아요. 계속 하나님께 순종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저 언제까지 순종해야 다 나을 수 있어요?” 아이가 그렇게 말하니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어요. 저는 제 믿음으로 더는 버티지 못하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죠. ‘애가 이 병을 앓게 됐을 때 난 마음이 너무 괴로웠지만 그래도 계속 본분을 이행했어. 난 이미 최선을 다해 협력했는데, 하나님은 왜 아이의 병을 낫게 해 주시지 않을까? 설마 내 성의가 아직 부족했던 건가? 의사는 애 병이 낫지 않으면 다리를 절제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살겠어?’ 이런 끔찍한 결과를 생각하니 제 마음은 정말 칼로 찌르고 에는 것처럼 아팠어요. 전 너무 괴로워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 아들의 병이 왜 계속 낫지 않을까요? 저는 분량이 너무 작습니다. 정말 더는 어떻게 버틸 수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을 알 수 있게 저를 깨우쳐 주십시오.’

9월 말에 리더의 편지를 받았는데, 제가 협력했으면 하는 본분이 있다고 했어요. 근데 전 아이의 병 때문에 그 본분을 밀어냈죠.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지금까지 큰 어려움이 있어도 본분을 거부한 적이 없었는데, 아들의 병 때문에 본분을 밀어냈다는 사실에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동안 하나님을 대했던 제 자세를 돌아봤는데, 저는 그저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봤을 뿐 내적으로는 아무런 힘도 없었어요. 매일 아이한테 약 챙겨 주는 것에만 신경 쓰고, 마음에는 늘 두려움과 불안함이 가득했어요. 아이가 낫지 않으면 아이를 잃게 될 수 있다는 걱정에 본분에도 마음이 가지 않았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제 모습을 보며 이건 하나님을 배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하나님의 부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고, 이는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으며,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부탁은 당연히 완수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가장 큰 책임으로,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이 엄한 심판의 말씀 속에서 저는 하나님의 노를 느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대한 일의 성격은 참으로 매우 심각한 거였어요. 하나님은 당신의 부탁을 거부하는 자에게 증오와 저주의 태도를 보이셨어요. 그 말씀을 보게 됐을 때 너무 두려웠어요. 하나님을 한두 해 믿은 것도 아닌데 진리 실제가 전혀 없었고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이 생기면 본분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저였으니까요. 이걸 깨닫고는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어요.

그리고 찾고 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현재 많은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고 내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해.’라고 생각하며 이런 내적 상태로 살고 있다. 이는 복을 받으려는 속셈에 지배된 것으로, 순전히 하나님이 내리는 상을 받기 위해, 그리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마음에는 진리가 없으며, 틀림없이 글귀와 도리를 얼마간 이해한 것으로 곳곳에서 뽐낼 것이다. 이런 사람이 걷는 길이 바로 바울의 길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한결같이 사역만 한다. 그는 사역을 많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고, 틀림없이 하나님을 만족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면류관을 얻을 자격이 있고 큰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고생하고 전도하며 죽을 수 있는 사람,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 사람, 또한 하나님이 부탁하신 본분을 훌륭히 완수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하나님께 가장 큰 복을 받을 사람이며, 분명 면류관을 얻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상상하고 추구한 것이며, 바울이 걸은 길이다. 바울이 바로 이런 사상에 지배받아 사역하고 하나님을 섬겼다. 이런 사상과 속셈은 사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느냐? 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는 지식을 추구해야 하며, 지식을 갖추고 나면 남들보다 뛰어나고 관직에 나아가고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위를 얻으면 재능과 포부를 크게 펼치며 자신의 가업과 사업을 눈부시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여긴다. 이방인들은 모두 이런 길을 가지 않더냐? 이런 사탄의 본성에 지배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바울처럼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 앞에서 충성심을 보여야 해. 그러면 나중에 큰 상과 면류관을 얻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추구하는 것과 틀에 박힌 듯 똑같다. 그것들은 전부 똑같은 본성에 지배되는 것이다. 사람이 이런 사탄의 본성을 갖고 있으면, 세상에서 지식을 추구하고 학문을 추구하고 지위를 추구하고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추구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면류관과 큰 복을 얻기를 추구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분명 이런 길을 걸을 것이다. 아무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으며 이는 자연법칙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가는 길은 베드로의 길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처럼 지금까지 제가 다 버리고 헌신했던 이유는 본분을 잘 이행함으로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복을 받으려는 마음에 지배받아 하나님과 거래를 한 거였어요. 저는 복을 추구하는 바울의 길을 걷고 있었던 거예요. 돌아보면,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에 형제자매들이 병이나 환난에 처했을 때, 굳게 섬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축복을 받은 걸 봤기 때문에 교회에서 아무리 어렵고 위험이 수반되는 본분을 맡겨 줘도 고민 없이 협력했던 거예요. 그때 저는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고 대가를 치르며 환난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계속 본분을 이행하면 분명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다고 확신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 아들의 병이 심하다는 걸 알면서도 의연하게 제 본분을 지켜 행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했어요. 그래야 하나님께서 제 아들의 병을 잘 고쳐 주실 것 같았거든요. 근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애 병이 낫지 않자 저는 하나님께 과거를 들먹였어요. 과거에 제가 다 버리고 헌신했던 걸 충분히 거래할 수 있는 밑천으로 내세우고,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지켜 주지 않으셨다고 원망하고 심지어 본분을 거절하면서까지 하나님께 따지고 항의한 거예요. 보니까 저의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이익만을 좇는 사탄의 본성이 남김없이 드러나 있더라고요. 하나님께 헌신한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요구했으니 저는 바울과 같은 길을 걸은 거예요. 바울도 하나님께 헌신하고는 상과 면류관을 요구하면서 하나님과 거래를 했는데, 그건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과 대적한 행위였기에 결국 정죄받고 벌을 받았죠. 돌아보면, 저도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됐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한 걸 거래하는 걸로 간주했던 거예요. 전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도 보게 됐어요. 『너는 욥의 시련을 겪는 동시에 베드로의 시련 또한 겪게 된다. 욥이 시련을 받을 때 굳게 서자 마지막에 여호와가 그에게 나타났다. 굳게 섰기에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생긴 것이다. 어째서 “나는 거룩한 나라에는 나타나지만 더러운 땅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말했겠느냐? 다시 말하자면, 네가 성결하게 되고 굳게 서야만 하나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있는 것이지, 굳게 서지 못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연단을 받는 과정에서 떠나거나 원망하고 굳게 서지 못해 사탄의 조롱거리가 된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만약 욥처럼 시련 속에서 자신의 육체를 저주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를 증오할 수는 있어도 절대 불평하지 않으며, 입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굳게 선 것이다. 네가 어느 정도로 연단을 받아도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고, 하나님에게 다른 요구를 하지 않으며, 관념도 갖지 않는다면, 그때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비록 하나님이 서로 다른 배경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 사람을 검증한다고는 하나, 그는 아브라함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았고, 아브라함의 마음이 진심임을 보았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무조건적인 것이었고, 이 ‘무조건’은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이미 이것을 바쳤고, 그것을 포기했어. 그런데 하나님은 왜 내게 만족을 못 하시는 걸까? 왜 계속 내게 시련을 주시는 거지? 왜 계속해서 나를 검증하시는 거지?” 이것은 한 가지 사실을 설명해 준다. 하나님은 너의 마음을 보지 못했고, 너의 마음을 얻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너에게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죽여 하나님께 바치려고 칼을 들었던 것과 같은 그런 진심과 무조건적인 순종을 보지 못했고, 너에게서 위안을 얻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네 시련이 계속되는 것은 당연하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깨달았어요.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는 대상은 진심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토색하지 않으며, 어떤 개인의 불순한 마음도 첨가하지 않고 조건 없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사람이죠. 그렇게 해야 참된 증거가 되는 거였어요. 자연스레 욥이 연상됐어요. 욥은 풍문으로만 하나님에 대해 알았지만 자신의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게 되고, 온몸에 악창이 나고, 아내의 비웃음을 들었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고,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라는 말을 했죠. 욥은 하나님과 거래하지도 않았고,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어요. 하나님에 대한 욥의 마음은 순결했어요. 아브라함 생각도 했어요. 100세에 얻은 자식 이삭은 그가 가장 아끼는 아들인데,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정이 있었지만, 정에 매이지 않고 꿋꿋하게 이삭을 제단에 올렸어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순종은 정말 조건 없이 절대적이었고 거기에는 거래와 토색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복을 얻기 위한 목적이 없었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것도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기 위한 것만 있었죠. 그들의 그 증거는 정말 감탄과 칭찬을 받기에 합당한 거죠. 근데 저는 여태까지 병환이나 재앙이 있을 때에 본분을 지키고, 원망하지 않고, 좋은 행동을 보이면, 굳게 서서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는 거니까 분명 축복을 받게 될 거라는 착각을 하고 살았어요. 그러니 저의 헌신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마음과 순종이 없었고, 제 희생의 이면에는 기만과 거래, 토색이 가득 차 있을 뿐이었어요. 이는 전혀 참된 증거가 아니었죠. 오히려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행위에 불과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도 없었어요. 지난날 욥과 아브라함의 증거를 수없이 봤지만 저는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종했는지를 본 게 아니라, 그들이 굳게 선 뒤에 어떤 복을 받게 됐는지만 눈여겨봤어요. 그건 정말 이익을 좇는 사탄 본성에 지배받은 거죠. 하나님의 폭로의 말씀을 통해 저는 참된 증거가 뭔지 조금 알게 됐어요.

그 후에 생각을 해 봤죠. 여태 저는 하나님께 헌신했으면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이 따라야 하고, 그게 하나님의 공의로움이라고 여겼어요. 그러다 보니 아들의 병환이 회복되지 않고 더 심해졌을 때, 제 마음에는 원망과 오해가 가득 찼고, 심지어 본분을 거부하는 행동까지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런 문제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뭔지 구하기로 했고 찾고 구하는 과정에서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공의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 고생한 만큼 분배하는 것, 일한 만큼 돈을 주는 것, 노력한 만큼 얻는 것, 이것은 공의가 아니라 그저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령 욥이 하나님을 증거한 후에 하나님이 그를 멸했다면 이것은 공의일까? 사실 이것 역시 공의이다. 어째서 그것을 공의라고 하겠느냐? 공의에 대해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일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한다면 하나님은 공의롭다고 말하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공의롭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때 하나님이 욥을 멸했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공의롭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이 패괴되었든 안 되었든, 사람의 패괴가 깊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이 사람을 멸할 때 사람에게 그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하느냐? 무슨 근거로 사람을 멸하는지 설명해야 하느냐? 하나님이 그가 정한 규칙을 사람에게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 필요 없다. 패괴된 사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아무런 가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다 합당하고, 다 하나님의 안배다. 하나님이 네가 눈에 거슬려 넌 증거를 다 했으니 쓸모없어졌다며 널 멸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냐, 아니냐? 이것 역시 공의다. 지금은 네가 사실상 알기 어렵겠지만, 이치는 이해해야 한다. …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은 다 공의롭다. 그것을 깨닫지 못할지라도 마음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거나 관념을 가진 일에 있어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가장 비이성적인 태도이다. 베드로는 어떤 일들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지혜와 아름다운 뜻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사람이 모든 것을 측량할 수는 없으며, 사람이 측량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폭로의 말씀에 비춰 보니까 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었어요. 저는 사람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굳게 서면 응당 하나님의 축복이 따라야 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거두어 주셔서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공평하고 합리적이고 하나님의 공의라고 할 수 있다고 여겼거든요. 근데 저의 이런 이해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사람은 피조물이잖아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실지는 하나님의 마음인 거지 사람이 그것에 대해 과분한 요구를 할 거는 없더라고요. 욥이 굳게 섰을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셔도 그분은 공의로우신 거고 축복을 안 주셨어도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신 거예요. 하나님의 성품 본질이 바로 공의니까요. 근데 저는 그걸 몰랐어요. 공의롭다고 하면 하나를 둘로 나누는 거고, 공평하고 합리적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면 상과 축복이 따라야 한다고 여겼던 건데, 그 속에는 거래만 가득했던 거죠. 제 아들이 아팠을 때에도 제가 계속 본분을 이행했지만 그 이면에는 저의 사적인 속셈이 있었어요. 바로 하나님께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은혜를 구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거예요. 그럼 그건 증거가 아니라 거래로 변질된 거잖아요. 만약 아이의 병환이 없었다면 제가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던 비열한 속셈은 드러나지 않았을 거예요. 정말 하나님의 사역의 지혜를 보게 되었고, 또 제가 얼마나 양심도 이성도 없는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그래서 앞으로 아이의 병이 어떻게 되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로 다짐했어요.

그 후,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확실한 답을 얻었어요. 본분 이행은 사람의 천직이기 때문에 사람의 화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였어요. 그건 사람이 당연히 이행해야 하는 거죠. 근데 저는 계속 저의 관념과 상상 속에 빠져 있다 보니 제가 계속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일가족을 무탈하게 지켜 주시는 축복이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근데 이제 깨닫고 보니까 저의 관점은 잘못된 거더라고요. 아이의 병이 어찌 되든, 결과가 어떻든 하나님과 거래를 해서는 안 되죠. 앞으로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하심에 온전히 순종하고 저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어요. 3일 뒤에 윗선 리더의 편지를 받았는데, 제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사역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아이를 두고 떠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정에 매여 살면 안 된다는 걸 알았잖아요. 저는 제가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고 아이의 병도 하나님께 달렸으니까 아이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기로 하고 본분 이행에 나섰어요.

3개월 후에 애를 보러 집에 들러 보니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어느 시골에 가 의사한테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좋아지고 있었어요. 그해 연말에 의사는 애가 회복이 빠르다며 이제 병이 다 나았다고 했어요. 그 결과를 얻게 됐을 때, 정말 너무 감격스러워 심정이 말로 표현이 안 됐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조금 알게 됐고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는 진리를 얻고자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하나님께 육에 이로운 것을 요구하고, 가정의 평안과 무사함을 요구하거나 좋은 결말과 종착지를 요구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건 다 비이성적인 요구죠.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믿으면 절대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더라고요. 오직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겪어야만 진리를 얻고 패괴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 수 있어요. 아이가 아픈 일로 고통과 연단은 조금 겪게 됐지만, 그래도 제 마음에 오래 자리하고 있었던 패괴 불순물과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신앙 관점이 온전히 다 드러나게 됐어요. 그걸 계기로 제가 자신을 알고 진리를 구하게 됐으며, 어떤 증거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인지 깨닫고 저의 잘못된 관점을 제때에 바로잡고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됐어요. 이 모든 게 다 하나님의 은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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