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과 복을 구하는 신앙생활은 옳은 것인가?

2024.10.20

중국 하오웨(皓月)

제가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외도를 하셨어요. 그 바람에 엄마는 크게 충격을 받으셨고 신경쇠약증을 얻게 됐어요. 2년 후에는 아버지가 병사했고, 집의 돈은 거의 다 써 버린 상태였죠. 삼촌이랑 고모네는 우리 모녀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어요. 저와 엄마는 이 세상 사람들의 인심, 멸시, 그리고 생활고를 다 겪었어요. 그 당시에 엄마는 이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자주 저한테 그랬죠. 하나님을 안 믿었으면 우리 둘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었을 거라고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은 뒤로 신경쇠약증이 어느새 많이 좋아졌다고 했어요. 그래서 전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전 학교에서 차별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할 때면 속으로 기도했어요. 그러면 놀랍게도 저와 친하지 않았던 친구들이 나서서 괴롭히지 말라면서 도와주더라고요. 그땐 어린 나이였지만 하나님을 믿으니까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은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분이었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하나님께 헌신하면서 본분을 이행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어요. 가끔은 학교에 결석하더라도 예배에는 참석했어요. 사실 저도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자주 어지럼증을 느끼고 주사와 약을 달고 살았는데, 하나님을 믿으면서부터 그게 많이 좋아졌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더 많이 체험한 거잖아요. 어느 날 예배 시간에 형제자매들이 지금은 본분을 이행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얘기했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죠. ‘말세에 성육신 하나님이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는 좋은 때를 만난 건 내겐 정말 크나큰 행운이야. 이 기회를 잘 잡아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 전념해야겠다.’ 그 당시에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상위권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형제자매들이랑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했죠. 전 제가 하나님을 잘 믿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를 평안하게 지켜 주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 뒤로 저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예배와 본분 이행을 빠뜨리지 않았어요. 겨울에 새 신자를 양육하러 갈 때, 거기에 가는 버스가 없으면 몇 시간 동안 자전거로 이동하기도 했어요. 비록 육체적으로 좀 고생스럽긴 했지만 전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면 그 고생은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2020년 4월경, 전 객지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순간 심장이 좀 심하게 두근거리면서 숨이 막히는 거예요. 거기다 몸도 떨리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어요. 정말 젓가락 들 힘조차도 없었죠. 그 당시에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전 그저 제가 워낙 태생적으로 심장이 안 좋아서 조금만 힘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고,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나왔으니까 크게 문제가 되진 않겠지 싶었어요. 더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제 몸도 하나님께 달렸으니 제가 계속 본분을 이행한다면 하나님께서 무사하게 지켜 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녁이 되니까 좀 호전되기도 했어요. 전 그 후 며칠 동안은 제 병 상태도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기도했어요. 하지만 말을 좀 많이 하면 계속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운이 빠졌어요. 그래도 전 정상적으로 말씀을 먹고 마셨고 계속 본분을 고수했어요. 전 이게 하나님이 저를 검증하기 위해 주신 상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본분을 조금 더 많이 이행한다면 분명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몸이 점차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죠.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심장병이 또다시 도진 거예요.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막 떨리는 게 젓가락질도 못할 정도였어요. 게다가 금방 온몸이 떨리고 심장도 빨리 뛰고 얼굴은 빨개지고 손발이 저리면서 막 차가워졌어요. 온몸이 마음과 다르게 오그라들었어요. 저는 숨을 크게 내쉬려고 노력했는데, 당장 질식할 것 같은 그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정말 어느 순간에 숨이 멎을지 몰라 너무 겁이 났어요. 그래서 계속 기도했죠. ‘하나님, 살고 싶습니다. 절 구해 주세요.’ 한 자매가 얼른 혈 자리를 누르고 구급약을 먹여 줬어요. 한 10분 정도 지나니까 수축 증세는 멈췄지만, 전 기운이 다 빠졌고 말하는 것도 힘이 들었어요. 자매에게 이끌려 병원에 갔는데, 의사는 선천성 심장병이라고 했어요. 나이가 들수록 노폐물이 많아지면서 혈관 막힘이 더 심해질 거고 그로 인해 심장에 혈액 공급이 부족하게 돼 증세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당장 치료할 수 있는 특효약이 있는 것도 아니니 심혈관에 좋은 약을 먹으면서 건강 관리를 잘하는 게 좋다고 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병이 도지지 않으면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재발하면 심해질 거고, 자주 반복되면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니 결국 수술까지 해야 할 거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걱정이 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죠. ‘지금까지 난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날 지켜 주시지 않은 걸까? 어떻게 병세가 더 심해질 수 있지?’ 그래서 속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하나님, 당신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제 몸도 당신께 달렸습니다. 저는 건강한 사람들처럼 살기는 바라지 않습니다. 몸이 조금 허해도 조금씩 치료하면 되니 병이 재발되지만 않게 해 주세요. 계속 병이 도진다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정말 몸이 무너지면 앞으로 어떻게 살겠습니까?’ 며칠 동안 약을 계속 복용했지만 병이 재발할까 봐 너무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매일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어요. 근데 심장병은 빈번하게 발작했어요. 하루 이틀 괜찮아지는 듯싶다가도 재발했고, 몸은 너무 허해졌어요. 교회에서는 제가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아 보였는지 고향에 돌아가 좀 쉬면서 할 수 있는 본분을 이행해 보라고 했어요.

집에 돌아가 있는 동안에도 약은 계속 먹었지만 호전될 기미는 안 보였어요. 계속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저리다가는 또 온몸이 오그라들면서 숨을 거칠게 쉬어야만 했어요. 가슴이 답답한 게 정말 조금만 숨이 올라오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았어요. 구급약을 먹으면 당분간은 좀 괜찮아졌지만 언제 발작할지 알 수 없었어요. 병이 발작해서 누워 있을 때는 돌아눕는 것도 힘들고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거의 반나절 이상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는데, 너무 쓸쓸하고 막막하기만 한 게 눈물밖에 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원망과 오해가 한꺼번에 솟구쳤죠. ‘나처럼 이렇게 빈번하게 심장병이 발작하는 사람도 없을 거야. 안 그래도 몸이 약한데, 계속 이러다가는 정말 무너지지 않을까? 집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술도 못 할 텐데, 그냥 이렇게 버텨야 하는 건가? 난 이제 20대인데, 앞으로 남은 생을 폐인처럼 이렇게 병을 달고 살다가 언제 숨이 막히면 그저 멍하니 죽어야 하는 건가? 하나님, 전 지금까지 학업을 그만두고, 청춘을 바쳐 당신을 따라왔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별것 없습니다. 그저 무탈하게 지켜 주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근데 왜 병은 갈수록 더 심해지기만 할까요? 전 아파도 계속 본분을 이행했는데, 왜 절 지켜 주시지 않는 것인가요? 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병을 안고 살아야 할까요?’ 생각할수록 너무 서운하고 괴롭기만 해서 툭하면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렸어요. 그때는 정말 심장병에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사서 먹었어요. 또 양약을 먹으면 몸이 망가질까 봐 한의사를 찾아가기도 했는데, 치료를 받아도 병세가 호전되지는 않았어요. 전 늘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있었죠. 어떤 형제자매들은 그런 저를 보고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교제를 나누면서 이런 상황 속에서는 공과를 배워야 하고, 진리를 구함으로 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해 주고, 어떤 형제자매들은 병에 관한 체험 간증 영상을 찾아 보여 주기도 했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병이 생겼을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온통 불평불만만 늘어놓았지. 그러다 보니 진리는 얻은 게 없어. 이건 정말 아무런 간증이 없는 거잖아. 계속 이렇게 타락할 게 아니라 진리를 구하면서 내 문제를 해결해야 해.’ 이런 생각이 들어 바로 기도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 질병 속에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하나님이 하신 일은 다 적절한 것이라는 것을 이치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이 지속적으로 재발하면서 호전되지는 않고, 육의 고통에 시달리기만 하니 너무 소극적이고 힘들기만 합니다. 하나님, 이런 내적 상태가 옳지 못하다는 걸 압니다. 이제 당신 앞으로 돌아가고 싶고, 더 이상 소극적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 자신을 진정으로 알고, 소극적인 상태에서 헤어 나올 수 있도록 제게 깨우쳐 주시고 절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에 전 저의 내적 상태에 관련된 말씀을 찾아봤어요. 어느 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죠.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의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단순한 신앙으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띤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로 믿는 것을 기초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하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종종 하나님을 믿는 일을 아주 쉽고 가볍게 본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의미를 잃었으며, 마지막까지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들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도 글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텅 빈 도리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에게 하나님을 믿는 실체가 없고 자신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평안과 풍성한 은혜를 얻을 수 있게 지켜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차분히 하고 생각해 보자. 하나님을 믿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겠느냐?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함의가 고작 더 많은 은혜를 얻는 것에만 국한되겠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서문> 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겠느냐?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함의가 고작 더 많은 은혜를 얻는 것에만 국한되겠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는데 정말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어 왔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게 어떤 건지를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을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상황에 순종하면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서 자신의 패괴 성품과 신앙 속의 불순물을 반성함으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데에 이르는 거라고 말씀하셨죠.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근데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복만 받으려고 하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하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그저 입술로만 하는 신앙이자 종교적 신앙에 불과한 것이고,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신앙생활이죠.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시는 일은 심판하고 형벌하고, 시련하고 연단하는 사역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다양한 상황과 시련을 겪어 보고 그 안에서 진리를 구하고,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알아야만 생명이 자라날 수 있는 거였어요. 그때 저보다 더 심한 병에 걸려 병원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은 형제자매들이 그런 상황 속에서도 진리를 구하여 자신의 패괴함에 대해 알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게 되면서 많은 걸 얻었던 예화가 생각났어요. 전 지금까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해야 한다고 많이 교제했지만, 정작 제가 병에 시달리게 됐을 때는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았어요. 그저 소극적인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죠. 그래서 병에 걸린 후에도 거기에서 진리를 전혀 얻지 못했던 거예요. 그제야 깨달았어요. 제가 고통스러웠던 원인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상황이 나빠서가 아니라 제가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아서 그랬던 거예요.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히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고, 질병 속에서도 진리를 찾고, 굳게 서서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려야죠. 그게 제가 갖춰야 할 이성적인 자세죠. 이런 생각이 들자 바로 기도했어요. 앞으로 병이 어떻게 되든 순종하겠고, 진리를 찾으면서 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겠다고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을 믿는 순간부터 사람은 하나님을 화수분이나 만물 상자로 삼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큰 채권자로 간주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약속을 얻어 내는 것이 생득적 권리이자 책무라고 생각하고, 반면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며 사람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해야 할 책임이라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깊은 이해이다. 사람의 본성 본질에서부터 사람의 주관적인 추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과 연결 짓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려고 생각하거나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이러한 상태를 볼 때, 사람의 본질은 뻔한 것이다. 그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마음씨가 악독하고 음험하고 간사하며,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아가 비열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바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태껏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으며, 사람의 경배를 받지도 못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든,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공급하든, 사람은 봐도 못 본 척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사람은 시종일관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자신이 주관하고 자신이 결정하려고 한다. 그 뜻인즉,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고 싶어 하지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사람들의 상태다. 다시 욥의 경우를 보자. 우선 그가 하나님과 거래를 했더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면서 어떤 다른 의도를 품었느냐? 당시 하나님이 누구에게라도 이후의 결말에 대해 말씀한 적이 있더냐? 그때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결말에 대한 약속을 한 적이 없다. 욥은 그러한 배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을 그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 양자의 차이가 너무 커서 같은 선상에 놓을 수조차 없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을지라도 욥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렸으므로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속했다. 그는 단 한 번도 하나님과 거래를 한 적이 없으며, 하나님께 그 어떤 지나친 기대나 요구를 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라고 여겼다. 이는 욥이 오랫동안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며 보고 얻은 성과였다. 또한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고 말할 수 있는 성과도 얻었다. 이 두 구절은 그가 살며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보고 깨달은 것이다. 또 이 두 구절은 사탄의 시험을 이긴 가장 강력한 무기였으며,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었던 초석이기도 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이처럼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대해 하나님은 빠짐없이 다 들춰내셨어요.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화수분이나 만물 상자로 삼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큰 채권자로 간주하고는 탐욕스럽게 하나님에게 은혜만을 요구하죠. 그런 믿음에는 불순물과 거래뿐 진심은 전혀 없었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바로 저의 상태였어요. 저는 의지할 곳이 없고 곤란한 처지가 됐을 때,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하심을 느끼게 됐는데, 그 뒤로 저는 하나님을 평생 우리 모녀의 평안을 지켜 주실 분으로 여겼고, 하나님을 믿는 자체는 이미 안전지대에 들어간 것이니까 평생 그 어떤 뜻하지 않은 사고도 마주하지 않게 될 거고, 무슨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책임져 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태껏 저는 그런 관념을 품고 일방적으로 추구했었는데, 모든 걸 버리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었어요. 근데 정작 심장병이 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 고쳐 주지 않으시자 전 바로 태도를 바꿨어요. 그동안의 희망이 다 사라진 것 같아 지금까지 다 버리고 헌신했던 걸로 하나님과 이치를 논하고, 하나님께 저를 왜 이렇게 대하시냐며 따졌어요. 심지어 기도하기도 싫고 하나님의 말씀도 보고 싶지 않아졌고, 소극적으로 대항하고 있었어요. 사실 하나님께서 저를 보살펴 주시고 지켜 주시고, 육적인 은혜와 축복을 조금 주신 건 분량이 작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신 거잖아요. 근데 저는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탐욕스러워졌어요. 제가 치른 작은 대가로 하나님의 평생 보호를 요구하고 원하는 보호가 없으면 바로 돌변했어요. 왜 그렇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성적이지 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욥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토색하지도 않았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것도 환경과 배경의 지배를 받은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욥은 감사를 드렸고, 그 상황이 바뀌어 재산을 다 빼앗기고, 자녀가 죽임을 당하고, 온몸에 심한 종기가 났을 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외심을 계속 지켰어요. 또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어요.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욥은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께 순종했어요. 욥은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죠. 욥의 인간성과 이성 앞에서 저는 너무 부끄러웠어요. 저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없었거든요. 그저 하나님을 무궁무진한 만물 상자로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떠나지 않기만 바랐어요. 전 정말 너무 이기적이었어요. 은혜시대에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으로 배부르게 먹었던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들은 그저 하나님의 은혜와 복, 그리고 이득에만 관심이 가득했는데, 순전히 기회주의자이자, 불신파들이었죠. 저의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니까 떡으로 배를 채우기만 바랐던 그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어요. 정말 너무 추하고, 하나님이 역겨워하고 혐오하는 모습이었어요. 제가 계속 이런 관점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평생을 믿어도 진리를 얻지 못하고 구원에 이르지 못하죠. 그제야 그 병이 저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라는 걸 느꼈어요. 그런 아픔으로 드러나는 일이 없었다면 저는 복을 바라는 저의 속셈과 욕망이 그렇게 강하고 탐욕적이고 비열한지를 몰랐을 테니 변화는 생각도 못 하게 되죠. 하지만 하나님은 제가 행한 대로 저를 대하시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형제자매들을 통해 계속 저를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셨어요. 정말 부끄럽고 자책감이 들었고,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울면서 기도했죠. “하나님, 이 질병을 통해 드러난 것으로 지금까지 하나님께 계속 은혜만 토색해 왔고,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불평했던 저 자신을 알게 됐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너무 죄스럽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말이 무색하기만 합니다. 저는 패괴된 게 많기 때문에 이런 질병으로 연단받고 정결케 되어야 하는 줄 압니다. 그러니 이 병이 평생 저와 함께한다고 해도 저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더 이상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태도를 바꾸니까 몸도 조금 나아졌고, 발병 빈도도 줄었어요. 그리고 다시 본분을 조금씩 이행할 수 있게 됐죠.

어느 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저의 내적 상태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아무리 많은 일을 겪어도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해 해결할 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일을 바라볼 줄은 더욱 모른다. 이것은 순전히 그가 하나님이 하는 말씀 하나하나가 다 진리임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진리를 교제하든 적그리스도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적그리스도는 무슨 일을 대하든 올바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특히 하나님과 진리를 대하는 일에서는 더더욱 관념을 지키며 죽어라 놓지 않는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하나님, 초자연적인 하나님이다.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만 있으면 관세음보살이든 부처든 마조(媽祖)든 상관없이 그는 그것들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는 존재만이 하나님 신분을 갖춘 하나님 자신이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없는 존재는 아무리 많은 진리를 선포한다 해도 반드시 하나님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여긴다. 그는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하나님의 큰 능력이자 전능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야만 하나님의 큰 능력이자 전능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육신 하나님이 진리를 선포해서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는 일, 하나님 선민을 양육하고 목양하고 이끄는 일, 사람에게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겪게 하는 일, 이로써 진리를 깨닫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일 등 이 모든 실제적인 사역을, 적그리스도는 사람이 한 것이지 하나님이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의 생각에 하나님은 신주 뒤에 숨어서 사람에게 공양을 받고, 사람이 바치는 음식을 먹고, 사람이 피우는 향으로 호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손 내밀어 도와주고 사람이 도움을 청할 때 정성껏 소원을 빌면 마땅히 큰 능력을 보여 주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즉시 사람을 도와주고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이 바로 참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모든 것이 적그리스도의 눈에는 하찮게만 보인다. 왜 그렇겠느냐?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보면,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행하는 모든 양육, 목양, 구원 사역은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필요한 것은 현세에서 일이 잘 풀려 만사형통하는 것이고, 현세에 징벌받지 않고 내세에는 천당에 가게 되는 것이다. 그의 관점과 필요는 진리를 증오하는 그의 본질을 증명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5조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본질을 부정한다(1)>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많이 놀랐어요. 딱 저를 두고 하신 말씀인 거예요. 물론 저도 잘못된 관점을 갖고 하나님을 믿고 추구했던 건 알았지만 이 말씀을 보면서 지금까지 제가 믿었던 하나님은 바로 제 관념과 상상 속의 하나님이란 걸 알게 됐어요.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고, 하나님의 역사도 보았어요. 그건 저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보호이고, 저희의 고충에 따라 길을 열어 주신 거였는데, 저희가 정상적인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신 거였죠. 하지만 제가 점차 진리를 조금씩 깨닫게 된 후에는 하나님께서 제 생명의 필요에 맞춰 알맞은 상황을 배치하심으로 저를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키시고 하나님에 대해 알게 하시는 거였죠. 이 또한 하나님이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하시는 한 가지 방식이잖아요. 근데 전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누리게 됐을 때, 관념적으로 하나님은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규정해 버린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 바람대로 해 주지 않으셨을 때에는 제 관념을 기준으로 가늠했던 거죠. 하나님은 절 이렇게 중병에 걸리게 두실 게 아니라 잘 지켜 주셔야 했다고요. 전 입술로만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할 뿐이었지 사실은 제 관념과 상상 속의 막연한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었던 거예요. 그건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죠. 그 순간 전 두려워졌고, 이 질병 자체가 저한테는 은혜라는 걸 더더욱 깨닫게 됐어요. 이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바로잡게 됐으니 이건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인 거죠. 그래서 얼른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어요. 그리고 제가 앓는 병은 잠시 아픈 게 아니라 장기적이고 언제 발작할지 모르는 병이니까 앞으로 진입해야 할 길을 찾아야 하겠더라고요.

그러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고난받는 것,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 또는 육체가 평안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우며 편안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져야 할 목적이 아니다. 네가 이렇게 믿고 있다면 너의 관점은 바르지 않은 것이며, 너는 절대로 온전케 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묘함과 난측함에 대해 알아야 한다. 또한 이런 인식을 통해 네 마음속에 있는 개인적인 요구와 소망, 관념을 없애야 한다. 이런 것을 없애야만 하나님이 요구한 조건을 갖출 수 있고, 이것을 통해서만 생명을 가질 수 있으며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님이 요구한 성품으로 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자격 없는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통해 그의 행사와 영광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옳은 관점이자 네가 추구하는 목표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관점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얻고자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대로 살아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보고, 하나님이 우주 전체에서 행하는 기묘한 행사와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실제적인 사역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실제 체험을 통해 그가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하는지, 사람에 대한 그의 뜻이 무엇인지 느끼게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기 위함이다. …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네가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고자 해야 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상, 너는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고, 개인적인 선택과 요구가 없어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야 한다. 너는 지음 받은 사람인 이상 너를 지은 창조주께 순종해야 한다. 너는 원래부터 너 자신을 주관할 수 없고, 너의 운명을 지배할 본능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이상 성결해지고 변화되기를 추구해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저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알게 됐어요. 사람은 평안과 복을 추구할 게 아니라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느끼며,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 가고, 그 속에서 자아를 성찰하고 복에 대한 욕심과 불순물을 걸러 내야 하죠. 그래야 성품도 점차 변화될 수 있고, 구원받을 기회도 얻게 되죠. 지금까지 저의 믿음은 모두 은혜를 받는 전제하에서 이뤄졌던 거예요. 그래서 장기간 병을 앓으면서도 진리를 구하지 않아 생명에 손해를 본 거예요. 하지만 다시 순종하는 자세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하려고 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고심을 알 수 있었어요. 제 육은 조금 고생을 했지만 이번 상황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게 됐고, 저의 비열한 마음가짐을 분명히 깨달아 제때에 바로잡게 됐어요. 이건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크나큰 사랑인데, 육의 은혜와 축복보다 한 차원 더 큰 거죠. 물론 지금도 가끔 병이 도질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저 원망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에 그칠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계속 찾으면서 제가 어떤 패괴함을 드러냈는지, 제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어떤 모습이 남아 있는지를 반성해 보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 저의 패괴된 성품을 해결해 나가야 해요. 그게 제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야 하는 길이더라고요. 이걸 깨닫게 되는 순간 하나님과의 장벽이 사라졌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게 됐어요. 그리고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를 정리하는 데 더 신경 쓰고, 저의 부족함에 맞춰 관련 원칙을 익히고, 제가 맡은 분야에서도 조금 더 성장하게 됐어요. 그리고 조금씩 몸도 전보다 많이 좋아졌고, 병도 전처럼 자주 도지지는 않아요. 이런 것들을 깨닫고 바로잡을 수 있게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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