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짐을 짊어지지 않으려 하는가

2023.03.11

한국 퉁신

2021년 10월에 전 영상 사역팀을 맡았어요. 동역자 레오 형제랑 클레어 자매는 그 본분을 저보다 오래 했고 경력도 많아서 대부분 사역은 두 사람이 거의 맡아서 했어요. 전 나중에 들어왔고 아직 이 분야를 잘 몰라서 따라다니면서 배우기만 했어요. 일단 제가 맡은 거에 문제만 안 생기면 된다고 생각했죠. 다른 건 두 사람이 알아서 할 거니까 제가 별로 신경 안 써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제 부담은 작아졌죠. 저는 그 둘의 사역도 잘 파악하지 않았고, 사역 회의 때도 별로 말을 안 했어요. 쉴 틈이 나면 세상 영상이나 보면서 해이해졌죠. 그래도 나쁜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 리더가 갑자기 찾더니 레오 형제랑 클레어 자매가 부서를 옮겨야 하니까 앞으로 부담 많이 갖고 영상 사역을 짊어지라는 거예요. 갑작스러운 변동에 전 멍해졌죠. 훈련도 얼마 안 했는데, 그 많은 사역을 챙기려면 업무 부담이 클 것 같았어요. 게다가 그 사역들은 많이 까다로워 항상 신경 써야 하거든요. 형제자매들이 잘 못하면 자료를 찾고 도와줘야 하고 모르는 건 직접 나서야 해요. 레오 형제랑 클레어 자매는 잘해도 평소에 그렇게 정신없는데, 초보자인 저는 시간이 더 걸릴 거잖아요. 그럼 쉴 틈이 어딨겠어요? 또 제가 사역을 잘 못해 지체하면 과오를 남기는 거잖아요? 그러니 차라리 적격자 찾아 맡기면 좋겠더라고요. 리더는 제가 말이 없으니 어떻게 생각하녜요. 전 기분이 나빠 말도 하기 싫었고, 회의만 하고 가 버렸어요. 앞으로 사역의 이런저런 문제나 어려움은 저 혼자 짊어질 생각을 하니 숨이 막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하면 힘들 게 분명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전 담당 못 할 것 같았어요. 마침 리더가 내적 상태를 묻길래 이 사역은 제가 제대로 못 할 것 같으니 다른 사람을 찾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보고 뭣 때문에 못 하는 거냐고 묻더라고요. 그러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될지 안 될지 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데, 전 그저 업무적인 부담과 육의 고생만 생각하고는 거절하려고 했어요. 그건 본분을 밀어낸 거잖아요? 생각해 보니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으니까 순종해야 돼요. 그래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동역하던 둘이 부서를 옮기면서 저 혼자 사역을 맡게 되니까 순종하고 싶지 않고 불만이 생겨요. 옳지 못한 상태란 건 아는데, 하나님 뜻을 모르겠습니다. 제가 순종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기도 후에 한 자매가 제 상태에 맞춰서 말씀을 보내 준 거예요. 볼게요. 『정직한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는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다. 둘째, 정직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모습은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네가 스스로 무척 정직하다고 말할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네가 “저는 자질이 부족해도 마음은 정직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본분이 임했을 때, 고생할까 두려워하고 잘 이행하지 못하면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 핑계를 대며 거부하거나 다른 이에게 권하여 이행하게 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그것은 분명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직한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충성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측면의 모습이 있다. 하나는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육적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딴마음을 품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정직한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 너의 마음과 사랑을 전부 본분에 몰입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며 보여 줘야 하는 모습이다. 만약 네가 깨닫고 알게 된 것을 행하지 않고, 50~60%의 힘만 쓴다면 이는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사리는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며 몸을 사리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을 쓰지 않으며, 반드시 도태시킨다. 하나님은 오직 정직한 사람에게만 본분을 이행하게 한다. 충성스러운 봉사자라 해도 반드시 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 언제나 건성으로 임하고 몸을 사리는 사람은 전부 간사한 사람이자 마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도태될 대상이다. 혹자는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기만 하면 돼. 사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건 쉬워.’라고 생각하는데, 이 생각이 어떠하냐?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그렇게 좁은 범주의 일이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너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것이 정직한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다. 그러므로 정직한 마음이 더없이 귀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의 숨은 뜻은 무엇이겠느냐? 그 마음은 네 행위를 지배하고 네 내적 상태를 바꿔 놓으며, 네가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한다. 이 마음은 더없이 귀하다. 네가 그렇게 정직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러한 내적 상태로 살 것이고, 그러한 행위와 노력이 있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말씀을 보고 부끄러웠어요. 정직한 사람은 본분 앞에서 일단 자기가 할 수 있든 없든 그게 어떤 위험이 생길 수 있을지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감당을 못 할 것 같아도 거부하지 않아요. 먼저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해요. 그게 정직한 태도죠. 근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동역하던 둘이 전출 간다니까 제 사역량이 많아지고 신경 쓸 것도 많아질까 걱정하고 사역을 잘 못하면 책임도 피할 수 없으니 감당할 능력이 안 된다는 핑계로 거절했어요. 정말 간사하고 양심이 없었죠. 평소 기도할 땐 하나님의 부담을 함께하겠다고 다짐을 해 놓고는 정작 그래야 할 때는 내 몸부터 챙겼어요. 진리를 실행하는 실제가 없었고, 빈말로 하나님을 기만한 거죠. 정말 하나님 마음을 헤아린다면 당장 감당할 능력이 못 되더라도 합당한 사람을 찾기 전까지는 영상 사역에 지장이 가지 않게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고 형제자매와 협력해야잖아요. 그게 양심적이고 인성 있는 자가 갖춰야 할 거죠. 그 후에 도저히 역량이 안 돼 교체가 된다면 그때도 하나님 안배에 순종하고요. 그게 이성적인 거잖아요.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어요.

그리고 말씀을 보면서 본분을 대하는 제 태도가 어떤지 좀 알게 됐어요. 볼게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도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 ‘이끌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따르고,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할 거야. 그러나 책임을 지고 마음을 졸이거나 노심초사하고 마음과 힘을 다하는 건 난 못 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러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 한다. 그저 힘만 쓸 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니, 이는 진실로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가 아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마음을 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에게 양심이 있으면 마음을 들일 수 있다. 언제나 마음을 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그 사람에게 양심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 사람은 진리를 얻을 수 없다. 어째서 진리를 얻을 수 없다고 하겠느냐? 그는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령의 깨우침을 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지, 어떻게 마음을 들여 하나님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지 모르며, 어떻게 진리를 구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요구와 뜻을 구하고 깨달아야 하는지 또한 알지 못한다. 이것은 진리를 구할 줄 모르는 것이다. 너희에게는 무슨 일을 맞닥뜨리든, 어떤 측면의 본분을 이행하든 늘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며 마음을 들여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진리를 구하고, 그 본분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을지, 어떤 진리를 갖춰야 본분 이행에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지 등을 마음을 들여 묵상하는 이런 내적 상태가 있느냐? 이렇게 진리를 구할 때가 많으냐? (많지 않습니다.) 마음을 들여 본분을 이행하고 책임을 질 수 있으려면 고통을 겪고 대가를 치러야지 말로만 떠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본분을 이행하는 데 마음을 들이지 않고 항상 힘만 쓰고자 한다면 분명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형식만 갖추었을 뿐 본분을 어떻게 이행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마음을 들이면 점차 진리를 깨닫게 될 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할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마음을 들이면, 점차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의 패괴와 부족함을 발견하며 자신의 다양한 내적 상태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네가 힘만 쓰는 데 집중할 뿐, 마음을 들여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네 마음속 실제 내적 상태, 네가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보이는 다양한 반응, 그리고 네가 드러내는 패괴 성품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네게 존재하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을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을 때는 대충 건성으로 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무슨 일이 닥치든 늘 진리를 구해야 하고, 그렇게 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반성해 자신의 내적 상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깨닫고 속히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고 사역에 지장을 주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명 진입도 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진리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만약 네가 마음속으로 늘 본분 이행이나 진리에 관련된 일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표면적인 일에 얽매이고 이러한 육적인 일에 마음을 쓰며 살아간다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이 폭로하신 말씀은 저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어요. 사실 전 이 본분을 맡을 때부터 부담이 없었어요. 동역자들이 저보다 이 분야에 경력이 많으니까 전 따라가기만 하려고 했고, 제 파트에 문제만 안 생기면 된다고 여겼었죠. 잘되면 제 체면도 살리고 몸도 힘들지 않으니까 전 당장 제가 해야 할 것만 신경 쓰고 두 사람이 책임진 사역에는 무관심했어요. 사역에 어려움이나 문제가 생겨도 신경 안 썼고요. 리더가 사역 효율성이 떨어진 이유를 물어볼 때도 전 대답을 못 했어요. 심지어 사역에 생긴 문제점이나 오류를 인지조차 못 하고 있었죠. 그제야 보니까 본분을 형편없이 한 거예요. 매일 속 빈 강정이나 눈뜬 소경처럼 문제가 생겨도 모른 척했어요. 설령 문제라고 느껴졌어도 제 지위에 영향이 안 될 거 같으니 그냥 넘어갔는데, 결국 사역에 지장이 간 거예요. 저의 이런 태도는 세상의 일용직자 같았어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없었죠. 사역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진리를 구하거나 시행착오를 정리 안 하고, 효율성을 올리는 방법도 강구하지 않았어요. 동역자가 잘할 거라 여기고 전 손 놓고 있었죠. 여유가 있으면 세상 영상을 보거나 제 몸만 챙기면서 마음이 방탕해지고 하나님을 멀리했어요. 저는 본분에서 마음을 다하지 않았고 그냥 노동력만 판 거예요. 그래서 본분을 어떻게 잘하겠어요? 그제야 깨달았어요. 하나님이 제 든든한 ‘뒷배’를 옮기신 건 제가 먼저 짐을 짊어지고 신경 쓰면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진리 원칙을 구하도록 훈련시키는 거였어요. 본분에 태만하고 무책임한 제 태도를 하나님이 증오하신다는 걸 알게 하시기 위한 거였죠. 사역이 조금 압박이 되면 그럼 더 신경 쓰면 되는 거예요. 사실 합격된 본분에 이를 수 있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거니까요. 하나님 뜻을 알고 나서 전 이 상황에 순종하기로 했어요. 그 뒤로는 사역에 좀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어요. 영상 사역에서 나오는 문제를 찾으려 애쓰고 메모해 뒀다 해결책을 구했어요. 또 사역을 잘 이끌어 나가기 위해 공부할 계획도 따로 짜 놨고요. 그렇게 내적 상태를 바로잡고 옳은 일에 충실하게 되니까 하루하루가 알찼어요.

나중에 다른 동역자가 왔어요. 처음엔 제가 좀 더 신경 쓰고 했는데, 하면서 보니까 자매가 여러 면에서 일도 잘하고, 전문 지식도 저보다 나은 거예요. 그래서 일부 사역을 자매한테 맡기고 전 별로 관여 안 했죠. 가끔 체면 때문에 회의에 가도 별로 발언은 안 했어요. 전 그냥 그 자매가 잘하면 제가 덜 신경 써도 되니 머리나 식히자였죠. 사역에 신경 쓰라고 리더가 저한테 지적할 때면 며칠 정도는 하다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곤 했어요. 가끔 급하게 처리해야 할 까다로운 문제가 생길 때에도 그게 자매가 맡은 사역이면 전 귀찮게 여기고 메시지를 안 읽음으로 해 놓고 못 본 척했어요. 자매가 알아서 하겠지 했죠. 저도 무책임한 행동이란 걸 느꼈지만 사역이 제대로 진행되니까 중시하지 않았어요. 몇 달 후에 자매랑 책임 파트를 나누게 됐는데, 저한텐 도와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럼 어려움이나 문제가 많이 생길 게 뻔했죠. 근데 제가 본분에 책임감이 부족하니까 저한텐 유익한 상황이라고 여기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해 보니까 제가 체크할 게 갑자기 많아진 거예요.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였어요. 게다가 전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 문제가 계속 터지더라고요. 영상 촬영이 다 끝나면 피드백을 받게 되는데, 제안마다 다 해결책을 고민해야 했어요. 결국엔 제 작은 열정도 금새 식었죠. 툭하면 드는 생각이 난 노력할 만큼 했는데, 문제는 계속 생기고, 리더한테 적격자를 찾으라고 해야겠다 했어요. 게다가 제가 맡은 여러 영상들이 계속 재작업을 하니 힘이 더 빠지는 거예요. 어려운 문제를 빨리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예전에 동역자랑 같이 할 때 좋았던 날들만 그리워했죠. 그땐 뒤에서 걱정 없이 지냈으니 제가 느끼는 부담이 없던 거죠. 그 며칠은 본분해도 기운이 안 나고 힘이 빠졌어요. 그제야 이래서는 본분을 계속 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님께 기도했죠. 그러다 노아의 일이 생각났어요. 노아도 방주를 지을 때 많은 어려움과 실패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120년을 꾸준히 버텼고 방주를 완성해서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했죠. 근데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저는 도망가려고 했어요. 그건 겁쟁이잖아요? 이런 생각에 조금 힘을 냈고 사역의 문제를 바르게 대하기 시작했어요.

묵상하면서 이 말씀을 봤어요. 『먹는 것만 밝히고 일은 게을리하는 이 부류 거짓 리더들은 리더 일꾼 자리를 지위 삼아 누리며, 리더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과 사역을 짐이나 귀찮은 일로 생각한다. 또 교회의 사역에 아주 큰 반발심을 갖고 있으며, 사역을 감독하고 존재하는 문제들을 알아본 다음 체크하고 해결하라고 하면 몹시도 못마땅해한다. 이는 리더 일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자 본연의 일이지만 너는 하지 못하고,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리더 일꾼이 되려는 것이냐? 너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냐, 아니면 감투를 쓰고 지위가 주는 복을 누리려는 것이냐? 감투를 쓰기 위해 리더가 된 것이라면 염치가 없는 것 아니겠느냐? 이런 자는 인격이 가장 비천하고 존엄도 없는 후안무치한 사람이다. 육적인 안일을 누리고 싶다면 속히 세상으로 돌아가서 네 능력껏 경쟁하고 빼앗고 쟁취해라. 아무도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집은 하나님의 선민들이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이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해 구원받는 곳이지,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곳도, 더욱이 사람이 사치를 부리며 안일하게 지내는 곳도 아니다. … 무슨 사역을 하든,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해내지 못하고 감당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이행해야 할 어떠한 의무나 책임도 다하지 못하니, 이는 폐물 아니겠느냐? 이런 자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바보, 지적 장애인, 각종 신체장애자 외에 누구든 살면서 자기 본분과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이 부류의 사람들은 늘 몸을 사리면서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람답게 살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자질과 은사 그리고 사람답게 살아갈 기회를 주었는데, 그는 그것을 본분 이행에 쓰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어디를 가든 누리려고만 한다. 이런 부류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어떤 사역을 시켜도, 그것이 중요한 사역이든 평범한 사역이든, 혹은 어려운 사역이든 단순한 사역이든, 그는 다 건성으로 임하며 몸을 사린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미루려 한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며 계속 기생충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이런 자는 쓸모없는 폐물 아니겠느냐? 사회에서 자기 힘으로 생존하지 않는 자가 있더냐? 성인이 되면 누구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부모의 책임은 이미 끝난 것이다. 설령 부모가 계속 지원해 주겠다고 할지라도 마음이 편치 않고, ‘부모님의 자식 양육 사명은 이제 끝났어. 나는 성인이 되었고, 또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니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성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이성 아니겠느냐? 만약 정말 이성이 있다면 남들에게 비웃음을 받고 체면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계속 부모에게 빌붙어 살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일하기는 싫어하고 편한 것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들은 늘 공밥을 먹으려 하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며, 하늘에서 먹을 것이 떨어져 입안으로 굴러 들어오기만 바란다. 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삼시 세끼 챙겨 먹고 누군가 시중들어 주고 잘 먹고 잘살기를 바란다. 이는 기생충이 하는 생각 아니겠느냐? 기생충에 속하는 사람에게 양심과 이성이 있겠느냐? 인격과 존엄이 있겠느냐? 절대 없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남에게 빌붙어 사는 못난이로, 양심과 이성이 없는 짐승이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집에 남아 있을 자격이 없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 중에서) 이 말씀에 절 비춰 봤어요. 사역의 문제점을 발견하면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게 리더 일꾼의 당연한 책무잖아요. 근데 거짓 리더는 그걸 짐으로 여기니 그 목적은 본분 이행이 아니라 복과 감투에 있는 거죠. 근데 절 보니 다르지 않더라고요. 사역의 어려움이나 문제점을 해결하는 건 제 책임이잖아요. 그럴 때 진리를 구해야 하고 제 부족함을 더 채우면서 빨리 성장해야 해요. 근데 전 어려움이 많으면 본분을 거절하려 했어요. 책임자로서 실제 사역을 안 하고 문제를 해결 안 했으니 감투의 복만 누리려고 한 거잖아요? 예전의 모습을 돌아보면 동역자가 있을 땐, 제가 사역을 어느 정도 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협력자들이 분담해서 실질적으로 제가 하는 건 별로 없었죠. 상대적으로 편하게 본분했던 그때가 정말 너무 그리웠던 거예요. 근데 동역자 두 명이 전출 가면서 제 사역의 부담이 커지고, 고난의 짐을 져야 하니까 전 불만이 생기고 그 본분을 거절하려 했었어요. 나중에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상태가 좀 좋아졌지만 저보다 경력이 많은 자매가 오니까 부담이 또 줄어들어 매일 뒷짐이나 지고 있고 신경도 쓰기 싫었죠. 근데 다시 혼자 사역을 맡게 되면서 어려움이 커지니 또 도망가려 했어요. 본분에 대한 제 태도는 정말 간교했어요. 몸이 고생하거나 책임을 져야 하면 밀어내고 부담이 적고 쉬운 일만 하려고 했어요. 어려움 없는 사역이 어딨겠어요? 이 패괴 성품이 해결 안 되면 어떤 본분도 잘할 수 없죠. 보니까 전 진리를 싫어하고 긍정적인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제 목적은 본분 이행이 아니라 복을 누리려는 거였죠. 이렇게 믿어선 결국 얻는 게 없잖아요. 이 말씀이 다가왔어요. “그들은 늘 공밥을 먹으려 하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며, 하늘에서 먹을 것이 떨어져 입안으로 굴러 들어오기만 바란다. 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삼시 세끼 챙겨 먹고 누군가 시중들어 주고 잘 먹고 잘살기를 바란다. 이는 기생충이 하는 생각 아니겠느냐?” 제가 말씀 속의 기생충이었어요. 전 가만히 앉아서 그저 얻어먹으려고만 했어요. 그건 폐물이잖아요? 그제야 제가 역겨웠어요. 예전에는 항상 놀고먹는 캥커루족을 젤 싫어했었거든요. 다 커서도 집에 박혀 부모님 덕을 바라는 건 무책임한 모습이고 무능하다고 여겼거든요. 근데 제 모습이 그들과 다를 게 없었어요. 죄책감에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제야 제가 진심을 다하지 않고, 비열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저 제 육만 챙기려고 하는 기생충이었습니다. 이런 타락적인 생각이 정말 끔찍합니다. 지금 교회에는 급히 협력해야 할 사역이 많은데, 전 노력하지 않고 짐을 지기 싫어했으니 폐물이 맞습니다. 하나님, 이게 옳지 못한 마음이라는 거 압니다. 근데 저는 제 육을 이기지 못하겠어요. 제 문제를 잘 알 수 있게 절 깨우쳐 주세요. 변화되고 싶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봤어요. 왜 전 사역의 부담이 가중되거나 어려움이 많아지면 계속 도망가려고 하는 건지, 자꾸 그렇게 하려는 근원이 대체 뭔지요. 구하면서 이 말씀을 봤어요. 『너는 지금 내가 한 말을 믿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어느 날 이 사역이 전개되는 것을 전부 보게 되면 그때는 후회하고 아연실색할 것이다. 있는 복도 누릴 줄 모르고, 있는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겠느냐? 비록 아직은 다음 단계의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금 너에게 요구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그 사역과 무관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역과 진리가 모두 네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냐? 형벌과 심판은 너의 영을 깨어나게 할 수 없느냐? 형벌과 심판이 너로 하여금 너 자신을 증오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이 준엄하신 말씀에서 하나님은 안일을 탐하는 태도를 아주 혐오하신다는 걸 느꼈어요. 하나님은 이런 자를 금수로 보시죠. 진취적이지 않고 그냥 농땡이만 부리려고 한다면 결국 어떤 본분도 잘 못하고 진리도 얻지 못하게 되니 무용지물이죠. 근데 제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안정적인 본분만 하려고 하면서 해임이나 도태만 안 되면 된다고 여겼죠. 그래서 제가 좀 더 고생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면 뒷걸음치고 쉽고 잘할 수 있는 사역만 골라서 하려고 했어요. 제 좌우명은 “한 번 사는 인생 즐기자.”, “나에게 잘하자.” 이런 사탄의 법칙이었어요. 이런 사상을 갖고 있다 보니 안일함을 탐하고 맡아야 할 사역이 많아지면 쉴 시간이 없다고 싫어하곤 했어요. 또 전문 지식을 공부해야 할 때도 전 노력을 하지 않아서 업무적인 면에서 발전이 없어 사역을 잘 이끌지 못했어요. 심지어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세상 영상이나 보면서 일탈도 했어요. 결국 영적으로 어둠에 빠졌죠. 책임자라면 사역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당연히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조금 까다로운 문제 같으면 전 어떻게든 외면하려고 했고, 결국 사역만 지체시켰어요. 더 심각한 건, 항상 제 부담을 덜어 줄 사람을 찾으려고 한 거예요. 영상 제작이 복음 사역의 중요한 파트란 걸 알면서 제 육을 위해서 도망가려고 하고 책임감이 없었어요. 이건 부모가 키워 어른이 된 자식이 이제 집안을 위해서 나서 줘야 할 때 고생하기 싫어 외면하는 것과 같죠. 그건 배은망덕하고 양심 없는 자식이잖아요. 근데 바로 제가 그랬어요. 하나님이 절 이끄시고, 중요한 본분을 저한테 맡기셨는데, 전 고생이 두려워서 육만 챙겼으니 얼마나 양심이 없어요? 제가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육의 편리만 도모한다면 어떤 본분도 잘할 수 없죠. 그제야 깨달았어요. 사람은 사탄의 철학인 “한 번 사는 인생 즐기자.”, “나에게 잘하자.”에 영향받아서 점점 타락하게 되고 이기적이 돼 가요. 저도 제 편리만 도모하면 스스로를 망치는 거잖아요? 본분이 힘들다고만 하면서 육의 편리만 생각하면 진리를 얻을 기회를 잃는 것만 아니라 본분도 망치게 되고 남는 건 과오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럼 하나님께 미움받고 도태되는 거죠.

그 후에 실행할 길을 찾고 구했는데,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만약 하나님 집에서 네게 어떤 사역을 맡긴다면,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사역을 하면서 남들 앞에 나설 수 있든 없든 제게 주어진 일이면 제대로 해내고 책임을 질 것입니다. 제게 접대 본분을 맡기신다면 최선을 다해 접대할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을 살뜰하게 보살펴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겠습니다. 제게 복음 전파 사역을 맡기신다면 저는 진리를 갖추고 사랑으로 복음을 제대로 전하고 본분을 잘 이행할 것입니다. 또 제게 외국어를 공부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마음을 들여 공부하는 한편, 각고의 노력으로 1~2년 안에 외국어를 마스터하여 외국인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할 것입니다. 만약 제게 글을 쓰라고 하신다면 저는 열심히 훈련할 것입니다. 언어 지식을 공부해 말이 아름답고 유려한 글을 쓰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일을 분명히 전달하고 진리를 명확히 교제하며 하나님을 참되게 증거하여 사람들이 제 글을 보고 도움과 이로움을 얻도록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맡기든 저는 마음과 힘을 다해 그 사역을 책임지겠습니다. 모르는 부분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진리를 구할 것이며, 하나님께 기도하여 진리의 원칙을 깨달아 일을 제대로 처리할 것입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온 힘을 다해 제대로 이행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제 몫의 책임을 다할 것이며, 최소한 양심과 이성에 어긋나거나 건성으로 임하거나 몸을 사리거나 다른 이의 노동의 결실을 누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양심의 선을 넘지 않겠습니다.” 이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다. 이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최소한 가슴에 손을 얹고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며, 공밥을 먹지 말고 네 하루 세끼의 값을 해야 한다. 이것을 책임감이 있다고 한다. 자질이 좋든 나쁘든, 진리를 깨달았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너는 이런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 사역을 나에게 맡겼으니 열심히 해야 해. 항상 이 사역을 신경 쓰며 마음과 힘을 다해 제대로 해내야지. 100% 잘해낼 거라는 장담은 못 해도 내 태도는 온 힘을 다하는 거야. 절대 건성으로 임하지 않을 거라고.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책임을 지고 그 일에서 교훈을 얻어 제대로 본분을 이행해야겠어.’ 이것이 바로 올바른 태도이다. 너희는 이런 태도를 갖추었느냐?(<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 중에서) 이 말씀이 너무 힘이 됐어요. 교회에서 영상팀 사역을 저한테 맡겼으니 전 어른으로서의 책무를 짊어져야 하는 거예요. 제가 가진 자질이나 업무 능력이 어떻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닥치든지 뒷걸음치지 말고 어려움에 직면하고 전력으로 사역을 이끌어야 하는 거죠. 그 후로 영상에 관한 여러 가지 피드백이 오면 제가 인지 못 한 문제거나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문제든 먼저 나서서 해결책을 구하고, 경력자들한테 물어보곤 했어요. 그랬더니 저도 이 분야에 대해서 좀 익숙해지고 원칙도 더 분명해졌어요. 예전 같으면 까다로운 문제가 생길 때 습관적으로 동역자들한테 떠넘기거나 그룹 메시지를 봐도 최대한 미루고 못 본 척했는데, 이제는 먼저 짐을 짊어지고 본분에 부담을 갖게 됐어요. 사역하다 보면 어려움이 있지만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형제자매와 상의하다 보면 해결책이 보이더라고요. 이런 경험을 하면서 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간사한지 알았어요. 본분에 책임감이 없고 잔머리만 굴렸었거든요. 근데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면서 온 힘을 다해 협력하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고, 믿음도 생겼어요. 이제는 본연의 일을 하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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