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적인 삶은 너무 괴롭다

2022.03.01

중국 광시 쑤완

2020년 8월에 제가 계속 명예와 지위만 추구하고, 본분을 늘 건성으로 해서 교회 리더 본분에서 교체됐었어요. 교체되고 나니까 정말 너무 괴롭고 후회가 됐어요. 그리고 나서 진정으로 회개하고 앞으로 본분을 잘하겠다고 다짐했어요. 나중에 교회에서 몇몇 자매들이랑 영상 제작 본분을 할 수 있게 배정해 줬죠.

하루는 같이 본분하는 자매들이랑 제가 교체된 후에 반성하면서 깨달은 걸 얘기하게 됐어요. 그때 양 자매가 제 체험이 자기한테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하더라구요. 그 뒤로는 절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거예요. 예배 때 제가 체험한 걸 얘기하면 집중해서 열심히 듣고 또 자주 고개를 끄덕이면서 제가 말한 관점에 대해선 거의 다 인정해 주고, 생활적인 면에서도 많이 챙겨 주더라구요. 전 자매가 절 좀 높이 보는 데다 제가 반성하고 깨달은 얘기도 했고, 진정으로 회개하겠다는 말도 했으니 뭔가 실제적인 행동을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변화된 모습이 없으면 자매들이 저를 어떻게 볼까, 말만 하고 진리는 행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지 않을까 걱정됐어요. 그렇게 보이면 제가 만든 좋은 이미지가 없어지잖아요. 이런 걱정과 고민이 생긴 후로는 본분을 잘해야겠다는 순수한 의도에 불순물이 들어가게 됐죠. 가끔 영상 만드느라 오래 앉아 있으면 등이 뻐근하거든요. 그래서 잠깐 쉬려고 했다가도 자매들이 보면 게으름 피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됐어요. 나태하고 게을렀던 자세를 고치고 본분을 잘하겠다고 말했으니까 제가 실행하고 있는 걸 보여 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힘들어도 쉬지 못했어요. 혹시라도 저를 육만 생각하고 본분에는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까 봐요. 또 밤에는 피곤해도 일찍 못 자겠더라구요. 심지어 제가 하던 일을 다 마친 후에도 11시 반이나 12시까지 버티다가 컴퓨터를 끄곤 했죠. 어떤 때는 밤을 새고 나면 일찍 일어나기 힘들잖아요. 근데 자매들이 일찍 일어날 때면 저도 더 누워 있지 못하겠는 거예요. 한번은 양 자매가 영상을 두 편이나 만들어야 했어요. 전 원래 자매를 도와줄 생각은 없었어요. 그게 구상을 좀 많이 해야 하는 어려운 내용이라서 신경 쓰고 싶지 않았거든요. 근데 당장 급하게 해야 할 일도 없고, 보고도 먼저 나서서 해 주지 않으면 저보고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글귀만 잘 늘어놓고 진리는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라 볼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생각 때문에 양 자매의 영상 제작을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그때는 겉으로 보면 정말 본분에 적극적이었지만 전 그게 다 제 체면과 지위를 지키려고 그러는 걸 속으로 알고 있었어요. 마음이 편하지 않았죠. 그래서 자매들한테 털어놓고 얘기하고 싶은데,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다른 속셈 때문에 본분에 적극적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겁이 났어요. 그럼 절 참된 회개가 없고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볼 것 같고, 어쩌면 외식하는 간사한 사람이라고 볼 것 같았어요. 게다가 제가 교체된 일을 반성하면서 깨달은 것까지도 거짓이라고 부정할 것 같은 거예요. 이런 걸 생각하니까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겠더라구요. 예배 때도 제 마음 깊은 곳의 추하고 더러운 생각은 덮어 감추고, 그저 모두가 흔히 드러내는 패괴 성품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진리를 실행한 체험처럼 긍정적인 것만 말했죠. 제가 다 긍정적으로 행한 것만 얘기하니까 자매는 절 더 높이 보더라구요. 한번은 예배드리는데, 양 자매가 절 칭찬하는 거예요. 진리도 실행할 줄 알고, 진리를 교제할 때도 실행 길이 잘 보인다구요. 나중에 다른 두 자매도 저에 대해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란 평가를 했다고 들었어요. 패괴 성품을 드러낸 것도 단순하게 털어놓고, 본분에도 적극적인 사람이라는 거죠. 기분은 좋았지만 부끄러움과 불안감이 더 커져 갔어요. “순수하게 털어놓는 사람이다”, “본분에 적극적이다”, 이런 평가가 실제의 저하고는 동떨어진 거잖아요. 순수함이란 전혀 없었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추한 패괴 성품에 대해선 털어놓지 않고, 본분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다른 속셈과 목적 때문이잖아요. 형제자매들이 제 겉면의 허상에 미혹된 거니까 이제 어떡하나, 큰일났다 싶더라구요. 양심에 가책도 크게 느껴져서 더 이상 자매들을 속이지 않고 제 진짜 모습을 털어놓고 싶었어요. 근데 다 털어놓으면 제 속의 사악하고 비열한 속셈과 생각이 다 알려질 텐데, 그럼 자매들이 절 너무 간사하고 사악한 사람이라고 볼 것 같더라구요. 더 이상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없고, 또 제 좋은 이미지가 다 없어지는 게 겁이 났어요. 이런 걱정 때문에 자신 있게 털어놓지 못하겠는 거예요.

한동안 이 문제를 놓고 생각하고 반성했어요. 그러다 말씀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너희는 대체 어떤 자가 바리새인인 줄 아느냐? 너희 주변에 바리새인이 있느냐? 이들은 왜 ‘바리새인’이라 불리는 것이냐? ‘바리새인’이란 명칭의 정의는 무엇이냐? 그 수식어는 무엇이냐? (‘외식하다’입니다.) 바로 외식하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일에 가식적이고 위장한다. 어떻게 위장하느냐? 훌륭한 사람인 양, 선하고 긍정적인 사람인 양 위장한다. 사실, 그들은 그런 사람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가식이라고 하면 모든 모습과 나타내는 것이 거짓되고 위장한 것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한 면은 어디 있느냐? 드러내지 않고 속에 감춰 두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겉모습은 전부 꾸며 낸 것으로 모조리 거짓된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진실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할 수 없고, 진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도리를 이해하고 도리를 떠들어 대는 것만 중요시한다. 누가 수준 높은 설교를 한다면 바로 따라 한다. 그 결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수많은 글귀나 도리들을 말할 수 있게 되고, 그 수준도 점점 높아져 많은 사람이 숭배하고 탄복하게 된다. 그러면 그는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언행에 각별히 신경 쓰며 무척이나 경건하고 영적인 척한다. 사람은 이런 소위 영적인 이론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어디를 가든 그들의 설교나 말, 외적인 행동은 모두 올바르고 훌륭해 보이며, 사람의 관념과 입맛에 맞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그의 경건함과 겸손함은 실은 가짜다. 그의 포용과 인내, 사람을 향한 사랑은 꾸며 낸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도 꾸며 낸 것이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그의 성결함 역시 가짜다. 사람에게 진정으로 성결한 부분이 있겠느냐? 전부 거짓된 것이고, 전부 꾸며 내고 포장한 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듯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연기한 것이다. 사람 뒤에서는 전부 건성으로 일을 하는데, 충성심이라고는 전혀 없다. 또한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가정과 직장을 버렸지만 뒤에서는 무엇을 하겠느냐? 개인의 경영을 하고 교회에서 공밥만 먹고 제물을 훔쳐 먹는다. 그들의 이런 모습과 행동은 전부 거짓된 것이다. 그런 자들을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라 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바리새인들을 떠올려 봤어요.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경건하고 겸손하고 애정이 있어 보였고, 항상 큰 거리에 서서 기도하고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죠. 근데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한 게 아니라 겉면의 좋은 행실로 자신을 포장하고 꾸몄던 거고, 그런 방식과 수단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허상을 보여 주면서 자기를 높이 보고 추앙하게 만든 거였어요. 제 행동을 비춰 보면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다를 게 없었어요. 전 자매들한테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걸 보여 주고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늘 자신을 포장하고 가장했어요. 본분이 힘들어도 쉬지 않았고, 졸려도 자지 않았고, 잠이 부족한데도 아침에 억지로 일어나고, 자매가 만드는 영상을 같이 분담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매한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거짓으로 도와줬죠. 사실 전 본분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감이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겉으론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앞장섰죠. 심지어 옳지 못한 속셈으로 본분을 하는 건 하나님과 형제자매를 속이는 거고, 그런 걸 솔직하게 털어놔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비열한 속셈을 깊이 감추고 전혀 털어놓지 않았어요. 그렇게 해서 결국 자매들이 절 높이 보게 됐는데, 그게 사람을 기만하고 미혹하는 게 아니고 뭐겠어요? 전 정말 너무 간사했고,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길을 가고 있었더라구요. 그런 식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감추면서 사는 삶은 너무 피곤할 뿐만 아니라 마음에 가책도 받게 되고, 하나님도 증오하시고 역겨워하세요.

이 일의 심각성을 깨닫고 나서 예배 때, 용기내서 그동안 제가 갖고 있었던 속셈과 가식적으로 행동했던 걸 솔직하게 털어놨어요. 그렇게 털어놓으니까 마음도 좀 편해지더라구요. 근데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본분을 이행한다는 게 정말 쉬운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구하고,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기도드렸어요.

어느 날 체험 간증 영상을 보는데, 이 말씀이 있었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하나님은 간사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네 마음이 정직하지 않고,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영원히 너를 얻을 수 없으며, 너 또한 영원히 진리와 하나님을 얻지 못할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이 말씀을 보는데, 마음에 찔리고 괴롭더라구요. 제가 바로 이 간사한 사람인 거예요. 속에는 어둡고 사악한 생각으로 가득하고, 온통 잔머리만 굴릴 생각으로 가득했죠.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잘 이행할 방법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온통 어떻게 하면 높은 평가를 받고 사람들 마음에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지만 생각한 거예요. 그러니까 언제 자야 할지도 고민하고 계산하곤 했죠. 하나님은 순수하고 정직한 자를 기뻐하시니까 정직한 사람이 돼야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받을 수 있잖아요. 근데 제가 그런 일을 할 때의 마음가짐과 출발점은 간사함과 사악함에서 비롯된 거예요. 그러니 겉모습이 아무리 화려하고, 또 사람들한테 칭찬받고 떠받들려도 하나님께는 인정받을 수 없어요. 결국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증오와 저주를 받게 되죠. 이런 걸 생각하니까 기운이 쑥 빠지더라구요.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됐는데, 간사한 성품은 하나도 벗어 버리지 못하고 가장 기본이 되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진리 실제에조차 진입하지 못한 거예요. 하나님의 요구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거죠.

그 후에 또 말씀을 봤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털어놓고 솔직히 임하는 것, 이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유지해야 하는 유일한 상태이자 모습이다. 네가 털어놓지 않는다고 해도 사실 하나님은 네 마음을 전부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네가 털어놓든 그렇지 않든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총명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 털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고, 무엇이든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하나님이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살핀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정한다면 총명한 사람은 마땅히 솔직하고 순수하게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현명한 행동이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만 순종하게 한다(2)> 중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니까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너무 잘 아시죠. 제가 아무리 꽁꽁 싸매고, 누구한테도 패괴함을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 아세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의 감찰을 받지 않으니 그게 불신파가 아니고 뭐겠어요? 정말 너무 어리석고 가련하더라구요. 사람들의 높은 평가와 칭찬을 받겠다고 진리를 추구하고 진짜 회개를 한 것처럼 자신을 가장하고 포장하면서 그 고생을 한 거예요. 사실 피곤하고 좀 힘들면 쉬는 건 사람의 본능이잖아요. 꼼수를 부리고 육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쉬는 건 정상이죠. 근데 전 사람의 자연적인 반응마저도 어기면서 뭘 하든 사람들의 높은 평가를 받을 궁리만 한 거예요. 정말 너무 피곤하게 살았어요. 하나님은 총명한 사람은 솔직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고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하셨죠. 그렇게 살아야 자유함을 얻게 돼요. 이런 걸 깨닫고 더 이상 가식적으로 행하지 않았어요. 본분하다가 힘들면 쉬기도 하고, 저녁에 졸리면 잠도 자고, 예배 때도 제 실제 상태를 다 털어놨어요. 본분에서도 적극적으로 책임을 다했구요. 고생을 좀 해야 하는 상황에도 이건 제가 다해야 할 본분이니까 누구한테 보여 주기 위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또 가식적으로 하려고 할 때면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할 때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으면, 네 마음은 올바른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진심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이 말씀을 생각하니까 마음을 순수하게 돌리게 됐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게 되더라구요.

근데 저도 패괴 성품이 깊이 뿌리 박혀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많이 받아야 변화가 좀 되더라구요. 한동안 천 자매가 양 자매한테 기술적인 걸 가르쳐 주는데, 좀 귀찮아하고 짜증을 내는 경향이 있었어요. 양 자매는 그게 눈치 보였는지 배우려고 하지 않았고, 천 자매에 대해서 편견도 갖게 됐죠. 그때 차라리 제가 양 자매한테 가르쳐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자매한테 저는 애정이 있고 인내심도 있는 좋은 사람이란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먼저 가르쳐 주겠다고 했어요. 근데 처음엔 차근차근 가르쳐 줬는데, 자매가 실수를 자꾸 반복하니까 저도 모르게 혈기가 나오는 거예요. 자매가 조금씩 싫어지면서 무시하게 되더라구요. 근데 애정이 없다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화를 참고 계속 가르쳐 줬어요. 그때 전 분명 혈기가 나왔지만 예배 때 제 진짜 생각을 털어놓지 않았어요. 솔직하게 말했다가 자매가 저도 천 자매처럼 공정하게 대하지 못하고, 애정과 인내가 없다고 할 것 같았거든요. 그럼 제가 만든 좋은 이미지가 깨지잖아요. 게다가 평소에 자매들이 패괴 성품을 드러내거나 소극적이고 연약한 모습을 보이면 속으로는 무시하고 외면하고 싶었어요. 근데 겉으로는 생각해 주고 이해해 주는 척했죠. 그러면서도 이런 패괴 성품은 전혀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어요. 저보고 애정이 없는 데다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할까 봐 겁이 났어요.

11월 어느 날, 저는 다른 지교회로 옮기게 됐어요. 자매들은 저랑 떨어지는 게 너무 아쉽다고 했죠. 리 자매는 제가 진리를 교제하는 게 너무 유익하고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고, 또 저는 사람들한테 공정하고 공평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진리도 알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서 어딜 가든 환영받을 거라고 했죠. 리 자매가 그렇게 높게 평가하니까 왠지 불안하더라구요. 그래서 사람을 그렇게 칭찬하고 높이 보지 말라고, 그건 좋지 않다고 말했죠. 양 자매는 앞에서 저를 칭찬하진 않았지만 리 자매의 평가에 동의하는 눈치였어요. 그때 자매들이 저한테 미혹된 건 아닌지, 저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고 마음이 무겁더라구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저한테 패괴 성품은 있지만 그래도 자주 성찰하고, 평소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진리를 구하면서 해결도 하니까 어쩌면 자매들보다 뛰어난 게 사실이라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걱정이 사라졌고, 이 문제를 더 생각하지 않게 됐죠.

나중에 <한 바리새인의 회개>라는 체험 간증 영상을 보게 됐어요. 거기서 자매가 그러더라구요. 예배 때 계속 긍정적인 면만 얘기했더니 형제자매들이 자기를 많이 높이 보게 됐대요. 그러다 자기가 교체되고 책임자 재선거가 있었는데, 형제자매들 전원이 다시 자기를 뽑았다는 거예요. 다들 자매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높이 보고 추앙했던 거죠. 심지어는 자매를 거의 하나님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었대요. 그 부분을 보고, 이건 정말 심각한 성질이란 걸 깨달았고 좀 많이 놀랐어요. 그리고 그동안 자매들이 절 높이 보고 칭찬했던 게 생각이 났어요. 저도 그 자매처럼 계속 긍정적으로 진입한 것만 얘기한 게 생각나 반성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고 말씀을 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적그리스도는 남들 앞에서는 사람을 매우 포용하고, 인내하고, 겸손하며, 선량한 척 꾸며 낸다. 누구에게든 그렇게나 관대하고 포용력 있는 모습을 보인다. 문제를 처리할 때 그에게 권력이 있기만 하면 늘 관대하게 처리하는 듯 보이고, 남과 시시콜콜 따지고 들지 않아 대단한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적그리스도가 정말 이런 본질들을 가지고 있느냐? 남을 선하게 대하고 포용할 수 있으며, 늘 사람을 돕는 그 이면에 숨겨진 목적은 무엇이냐?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회유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그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적그리스도 이면의 진짜 모습이 정말 이러하냐? 정말 그 겉모습처럼 겸손하고 인내하며 남을 포용할 수 있으며 진정한 사랑으로 남을 돕는 이런 본질, 이런 성품, 혹은 이런 인성이 있느냐? 조금도 없다. 더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고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회유해 더 많은 사람이 그에게 호감을 갖게 하고, 일이 생기면 맨 먼저 그를 떠올리며, 그의 도움을 구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적그리스도는 온갖 궁리를 하며 사람 앞에서 연기하고, 옳은 말을 하며, 옳은 일을 한다. 말을 하기 전에 마음과 머릿속으로 얼마나 많이 걸러내는지, 얼마나 많이 가공하는지 모른다. 그는 어휘 선택, 표현법, 어조, 목소리, 심지어 눈빛과 말투까지 모두 고민하고 머리를 쥐어짜 가며 궁리한다. 말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나이가 얼마인지,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지 낮은지, 자기를 우러러보는지, 자기와 사적인 원한이 있는지, 자기와 성격이 잘 맞는지, 상대가 하나님 집과 형제자매 마음속에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 이런 것들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열심히 궁리한다. 그렇게 궁리 후에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가 나온다. 그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어떻든, 요컨대 어떤 사람들, 어떤 종류의 사람을 대하든, 그가 이루려는 목적은 다름 아닌 사람의 우러름을 받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처음엔 내려다보다가 그 후에는 동등하게 보다가 종내에는 우러러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말할 때면 더 많은 사람이 귀 기울여 듣고, 그에게 말할 시간과 말할 여지를 주게 만들려는 것이다. 또한 그가 일할 때면 더 많은 사람들이 편의를 봐주고, 그가 일을 잘못했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그가 책임을 벗도록 해 주고, 그의 본모습이 드러나 하나님 집에서 버려지고 제명당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나서 주고, 그를 위해 들고 일어나 하나님에게 따지고 반항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가 애써 교회에서 경영한 지위와 권세는 확실히 그 뿌리가 얕지 않다. 그가 무너질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의 지지와 성원과 비호를 받을 수 있다니, 그가 들인 노력은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10)> 중에서)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신 말씀을 보면,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의 높은 평가와 추앙을 받기 위해서 아주 겸손한 척, 인내심 있는 척, 애정이 있는 척해요. 그런 걸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환심을 사는 거죠. 제 행동도 적그리스도와 같더라구요. 양 자매한테 기술을 가르쳐 줄 때, 속으론 자매를 싫어했지만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겉으론 아주 인내심이 있는 척했거든요. 또 평소에 자매들이 패괴 성품을 드러낼 때, 그걸 싫어하고 외면하고 싶었지만 겉으론 생각해 주고 이해해 주는 척했구요. 그러고는 제 진짜 모습은 전혀 드러내지 않았어요. 그랬다가 저의 좋은 이미지가 다 깨질 것 같았거든요. 전 자매들을 속여서 저를 높이 보게 하고, 칭찬하게 만든 거예요. 정말 너무 간사했죠.

나중에 제가 왜 자꾸 자기도 모르게 가식적으로 구는지, 이건 어떤 성품에서 비롯된 건지 생각해 봤어요. 그러다 말씀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죠.『간사함은 통상적으로 겉에서부터 드러난다. 어떤 사람이 매우 번지르르하고 교활하게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간사함이다. 그렇다면 사악함의 주된 특징은 무엇이겠느냐? 사악한 사람이 하는 말은 더없이 듣기 좋고, 겉으로 볼 때도 모두 옳은 것 같으며 어떤 흠도 잡아낼 수 없고 모든 면에서 다 훌륭하다. 그러나 일을 할 때면 몹시 사악하고 은밀해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종종 옳은 말, 듣기 좋은 언사, 인정에 부합하는 도리나 논리, 또는 행동 방식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가리고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함으로써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든 목적을 달성한다. 이것이 바로 사악함이다. 사람들은 보통 그것이 간사함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악함에 대해 아는 것도 적고 해부한 것 역시 적은 편이다. 사실 사악함은 간사함보다 더 분별하기 힘들다. 사악함은 더 은밀스럽고, 수단이나 행동 방식 역시 좀 더 고차원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내면에 간사한 성품이 있으면 보통 이삼일 접한 후에는 그가 간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는 그가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간사한 성품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챌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사악하다면 하루 이틀에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시간 안에 큰일이나 구체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오직 그의 말만 듣고서는 분별하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말은 모두 옳은 말이고,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옳은 일이며, 도리를 말하는 것도 청산유수이다. 이삼일 접하고 나면 너는 그 사람이 훌륭하다고, 버리고 헌신할 줄 알며 영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일을 할 때는 양심과 이성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에게 일을 맡기면, 몇 가지 일을 통해 그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아니며, 간사한 사람보다 더 음험한, 사악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늘 옳은 말, 진리와 인정, 인성에 부합하는 듣기 좋은 말, 다른 이를 미혹하는 말로 사람들과 왕래하여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한편, 남들을 미혹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명성과 지위를 얻고자 한다. 이는 어리석고 진리에 대한 이해가 얕으며 영이 통하지 않고 기초 없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능력이 매우 크다. 이것이 바로 성품이 사악한 사람이 벌이는 일이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사람을 미혹하고 회유하고 위협하고 통제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알게 됐어요. 가식의 뒤에는 사악한 성품이 지배하고 있는 거더라구요. 사악함은 간사함보다 분별하기 더 어려운 거죠. 사악한 성품이 있는 자는 말 못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겉으로 보기에 좋은 것, 진리에 맞는 듯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환심을 사죠.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미혹이 되는 거구요.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어요. 형제자매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고 애정이 있는 사람이고, 또 그런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지지받고 떠받들린다는 걸 알고 그런 사람인 척한 거예요. 겉보기엔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본분에도 적극적이고, 형제자매를 사랑으로 대하는 등 진리에 부합하고, 인지상정에 맞는 일을 했지만 그건 진리를 실행하기 위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높은 평가를 받으려는 속셈 때문이었어요. 사람들 마음에서 좋은 이미지를 세워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으니, 정말 사악하고 비열한 거죠.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된 제가 늘 사람들에게 떠받들리고, 사람들 마음에서 지위를 얻으려고 하는 건 부끄러움을 모르는 거잖아요. 사람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당연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마음에는 하나님의 자리만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전 늘 사람들의 마음을 점유하려 하고 사람들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자리를 뺏으려고 했어요. 그게 천사장과 같은 게 아니고 뭐겠어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거스를 수 없어요.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분명 바리새인처럼 하나님의 증오와 저주를 받겠더라구요. 이걸 생각하니까 너무 두려웠어요. 계속 이대로 나가다간 엄청난 결과를 낳을 것 같았죠. 그래서 육을 버리고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이걸 깨닫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형제자매들 앞에서 제 진짜 모습을 다 털어놨어요. 한번은 본분을 건성으로 하다 보니 영상에 문제가 많이 생겼어요. 결국 재작업하느라 사역 진도에 지장을 주게 됐죠. 한 자매가 책망하더라구요. 본분에 무책임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구요. 근데 전 속으로 그걸 인정하지 않고, 반감이 생기고 변명이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예배 때 리더가 제 내적 상태를 물어보는데, 그때 제 생각을 다 털어놓으면 절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변명만 하는 사람으로 볼 것 같았어요. 그럼 저에 대한 좋은 인상이 없어질 것 같기도 해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죠. 근데 그때 제가 또 가식적으로 행한다는 게 느껴졌어요. 바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죠. 그때 말씀이 생각났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일 하나가 끝난 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해도 진리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어 들추어 분석하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판단해야 맞는지 틀리는지 확실할 수 있다.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들추어 분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제자매들이 함께 많이 교제하고, 많이 구하고, 서로 많이 도와야 한다. 많이 교제할수록 마음은 더욱 밝아지고, 하나님도 각각의 일에서 우리를 깨우쳐 줄 것이다. 만약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자신을 포장하여 남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하고, 남들이 자기를 우러러보고 업신여기지 않기를 바란다면, 진정한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네가 늘 자신을 포장하며 전혀 자신을 활짝 열고 교제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흑암 속에서 살 것이고 변화도 이룰 수 없다. 변화하고 싶다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하고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눠야 한다. 이렇게 해야 서로에게 득이 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이 말씀이 저한테 실행의 길이 됐어요. 저도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야죠. 사람들이 절 어떻게 보든 제 자신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진리를 실행해야 해요. 그게 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죠. 이걸 깨닫고 용기 내서 제 내적 상태를 털어놨고, 패괴함도 얘기했어요. 다 털어놓으니까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또 형제자매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저의 문제도 깨닫게 됐구요.

그동안 제가 이렇게 드러나면서 보니까 전 정말 간사하고 사악하더라구요. 사람들의 높은 평가와 추앙을 받기 위해서 늘 가식적으로 행하고 자신을 포장하면서 살았거든요.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이 없었다면 전 침륜과 멸망뿐인,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가고 있다는 걸 몰랐을 거예요. 그리고 일을 할 때의 마음가짐과 출발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하나님의 감찰을 받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본분에 임하고, 순수하게 자신을 털어놓는 정직한 사람이 돼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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