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을 찾다

2025.02.24

중국 충성(重生)

저는 어릴 때부터 청춘 드라마를 많이 좋아했는데,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보면 너무 부러웠어요. 그래서 저는 절 아껴 주고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는 게 가장 행복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17살에 남편을 만났는데, 마침 외모도 제 스타일이었고 듬직한 편이었죠. 만나 보니 저한테 정말 따뜻하게 잘해 줬어요. 그래서 결혼했죠. 결혼한 뒤에도 남편은 항상 저한테 양보하고 잘해 줬어요. 집안일도 먼저 챙겨서 했고, 제가 원하는 것은 다 사다 주기도 하고, 제가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웃겨 주고, 저의 안 좋은 성격도 다 받아 줬어요. 저는 그렇게 저를 챙겨 주고 사랑해 주는 남편을 만났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우리의 결혼 생활을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러다 2019년 코로나 시기에 엄마를 통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어요. 그 후 전 할 수 있는 만큼 본분을 이행하게 됐어요. 그러다 형제자매들이 우리 집에서 예배 모임을 가졌는데, 남편이 갑자기 돌아왔어요. 남편은 매우 기분 나빠 하면서 퉁명스럽게 말했어요. “다시 한번 마주치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그러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어요. 저는 남편이 그렇게 화내는 걸 처음 봤어요. 정말 모르는 사람 같았어요. 남편이 신앙에 대해 그렇게 거부감을 보이니 겁났고 고민이 됐죠. ‘이제 어떡하지? 앞으로 다시 마주치면 정말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까? 남편이 저녁에 오면 나한테 화내지는 않을까? 어떻게 해명해야 우리 사이가 틀어지지 않을까?’ 그때 교회 리더가 자신의 체험을 결부해 교제해 주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읽어 줬어요.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은 겉으로 보면 마치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고, 사람의 안배나 방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과 일의 뒤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죠. 외적으로는 남편이 저를 반대하는 거지만 실은 사탄이 남편을 통해 그런 식으로 위협하면서 겁주고 걱정하게 만든 거였고, 남편과의 사이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고, 신앙생활과 본분 이행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거더라고요. 그리고 그날 남편이 마주치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인데, 하나님은 제가 이런 일에서 굳게 서서 사탄한테 굴하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기를 원하셨어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니까 자신이 생겼어요. 저녁에 남편이 돌아와서는 크게 화를 내면서 CCTV를 설치할 거고, 다시 눈에 띄면 경찰에 신고하고, 이혼까지 하겠다고 했어요. 남편이 그렇게 나오니 너무 괴롭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어요. 그때 하나님의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모든 일에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한 내기가 있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필요가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사탄이 남편의 그런 말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거니까 저는 사탄의 간계를 간파해야죠. 그래서 확고하게 말했어요. “내가 당신한테 짐이 될까 봐 겁나면, 당신한테 같이 살아 달라고 강요하진 않을게요. 당신이 원하면 갈라서야지 뭐, 내가 하나님 믿는 걸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남편은 화가 나서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 주먹으로 침대를 쳤어요. 그 당시 남편한테 굴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혼이 두려웠어요. 또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우리의 감정이 깨지는 것도 원치 않았고요.

그 뒤로 저한테 잘해 주던 남편은 사라졌어요. 툭하면 저한테 화를 내며 시비를 걸었어요. “하루 종일 집에서 뭐 하는 거야? 나이가 몇인데 무슨 하나님을 믿는다고 그래?” 한번은 갑자기 제 목을 확 조르면서 “널 죽여 버릴 거야. 하나님보고 구해 달라고 해 봐.” 그러는 거예요. 정말 자상했던 남편이었는데, 제가 하나님을 믿은 이후로는 매일 시비 걸면서 저를 그렇게 대하니 너무 서운해서 눈물이 났죠. 다음 날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지만, 남편은 본 체도 하지 않았어요. 저는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남편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한발 물러서고 싶었어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구원 사역을 하러 오신 걸 생각하면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바른길로 가야지 남편 때문에 하나님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그렇다고 저의 결혼 생활을 깨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 뒤로 저는 우리 사이를 지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남편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남편이 저의 신앙생활에 크게 반감을 가지니 저는 최대한 하나님의 말씀 책이 남편 눈에 안 띄게 했고, 예배를 마친 뒤에는 흔적이 남지 않도록 깔끔하게 청소했어요. 그리고 애를 보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최대한 시간을 내서 청소하고 밥을 했죠. 그리고 평소에 영 생활을 해도 남편이 없는 시간을 이용했어요. 남편이 보면 시비 걸까 봐 겁났거든요. 그리고 가끔 남편이 야근하면 저는 얼른 말씀을 보곤 했는데, 혹시라도 일찍 올까 봐 걱정돼 집중이 잘 안 됐고, 항상 문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요. 문소리가 나면 얼른 컴퓨터를 끄거나 책을 숨겼어요. 그렇게 남편에게 제가 하나님 말씀을 보는 모습을 안 보여 줬죠. 그랬더니 저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좋아졌어요. 2021년 애가 조금 크자 시어머님께 맡기고 저는 새 신자 양육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양육 집사로 뽑혔어요. 또 책임감을 가지고 본분을 하다 보니 2023년 3월에는 교회 리더로 뽑혔죠. 리더가 되니 예배드리고 시행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졌어요. 저녁에는 종종 편지에 대한 답장도 해야 했죠. 하지만 저녁이면 편지에 대한 답장을 할 엄두가 안 났어요. ‘남편은 내가 계속 하나님을 믿고 본분 이행하는 걸 모르고 있어. 우리 사이가 겨우 조금 회복됐는데, 내가 계속 하나님 믿고 본분 이행하는 걸 알면 다시 툭하면 시비 걸고 그러지 않을까? 저녁에는 사역을 좀 안 해도 돼. 낮에 많이 하지 뭐.’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근데 낮에는 대부분 예배가 잡혀 있고, 저녁에는 편지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제때에 답장을 주지 못한 편지들이 쌓이다 보니 교회의 인원 정리 사역은 계속 지체가 됐고, 복음 사역도 진전이 없었어요. 그만큼 제 속도 타들어 갔죠. 더구나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계시는데, 시부모님까지 하나님 믿는 걸 알고 남편이랑 같이 핍박하고 이혼을 부추기면 어떡할까 걱정도 됐죠. 저는 이 결혼 생활을 지키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는 데 구애를 많이 받았어요.

어느 날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죠. 『어떤 사람들은 결혼한 후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결혼 생활에 뛰어들려고 하고, 자신의 결혼 생활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분투하고 목숨을 바치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돈을 벌고 죽기 살기로 고생한다. 물론 본인 일생의 행복을 자신의 반려자에게서 찾는 사람들은 더 많다. 그들은 자신의 일생이 행복하고 즐거울지는 자신의 반려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달렸다고 믿는다. 반려자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자신의 성격과 지향점이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돈을 잘 벌어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미래에 내가 먹고살 걱정 없이 살게 해 줄 수 있는지 없는지, 자신에게 행복하고 안정되고 아름다운 가정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자기가 어떤 고통과 환난, 실패와 좌절을 만났을 때 자기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검증하기 위해 그들은 상대와 같이 생활하면서 속으로 상대에게 관심을 집중한다. 상대의 사상 관점, 언행, 일거수일투족, 상대의 장단점 등을 아주 주의 깊게, 유심히 관찰하고 기록하고, 상대가 생활하면서 드러내는 모든 사상 관점, 모든 언행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는데, 상대를 더 잘 이해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상대도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를 바라며 상대가 자기 마음에 들어오게 하고, 자기도 상대 마음에 들어가려 한다. 서로 간에 상대를 더욱 구속하거나 혹은 상대가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자신이 그 앞에 제일 먼저 나타나 도와주는 사람, 제일 먼저 일어서서 그를 지지하고 격려해 주고 든든한 방패가 되어 줄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생활 상황에서는 양쪽 모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거의 분별하지 않고, 완전히 상대에 대한 정 속에 살아가고, 정으로 그를 보살피고 포용하며 그의 모든 결점과 문제, 추구를 대하고, 심지어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예배 시간이 너무 길다며 30분만 예배드리고 들어오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되도록 그렇게 하겠다고 순순히 대답한다. 그리고 다음번 예배 때는 정말 30분 만에 집에 들어간다. 그러자 남편이 말한다. “진작에 이랬어야지. 다음에는 얼굴만 내비치고 들어오도록 해.” “아, 당신 생각이 그렇다면 알았어요. 그렇게 해 볼게요.” 다음번 예배 때도 역시 남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참석한 지 10분 만에 집에 들어간다. 그러자 남편은 무척 흡족하고 기뻐한다. “이 정도는 돼야지!” 아내는 남편이 동으로 가라고 하면 서쪽으로는 엄두도 못 내고, 웃으라고 하면 우는 건 생각조차 못 한다. 아내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찬양을 부르는 걸 보자 남편은 못마땅하고 반감이 든다. “하루 종일 말씀 읽고 찬양 부르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말씀 읽고 찬양 부르는 거 좀 안 할 수 없나?” “알았어요, 알았어요. 안 볼게요.” 그녀는 이제 말씀 읽는 것도 찬양 듣는 것도 감히 못 한다. 상대의 요구에 마침내 그녀는 남편이 자기가 하나님 믿는 것도, 말씀 읽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그 옆에서 같이 TV도 보고, 식사하면서 얘기도 나누고, 남편의 고충도 들어 주는 등 무슨 일이든 한다. 상대가 좋아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녀는 이런 일들이 반려자로서 다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하나님 말씀은 언제 읽느냐? 남편이 나가자 그녀는 문을 걸어 잠그고 얼른 말씀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 여는 소리가 들려서 후다닥 책을 덮었다. 다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살짝 문을 열고 내다보았는데 남편이 들어온 게 아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말씀을 읽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읽어 나가는데 역시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긴장되고 겁이 났다. ‘만에 하나 그이가 정말 들어왔으면 어쩔 뻔했어? 우선은 그만 읽고 전화해서 지금 어딘지, 언제 들어올 건지 물어보자.’ 남편에게 전화했더니 오늘 업무가 바빠서 서너 시나 되어야 들어온다고 했다. 물어보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 있겠느냐? 마음은 가라앉지 않고 어지럽기만 했다. 그녀는 얼른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려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나님 믿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남편이 무섭다고, 마음을 차분히 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차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 하나님께 드릴 말씀이 없다. 하지만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잠시 조용히 있었더니 마음이 그렇게 심란하지만은 않았다. 이제 읽어 보려고 하는데, 집중이 안 된다. ‘아까 어디까지 봤더라? 어디까지 묵상했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슬슬 짜증이 나고 마음이 불편하다. ‘오늘은 관두자. 영 생활 한 번쯤 빠뜨려도 괜찮아.’ 어떠냐? 이것이 잘 지내는 것이냐? (아닙니다.) 이것은 결혼의 번뇌이냐, 아니면 결혼의 행복이냐? (번뇌입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내용은 딱 제 상태였어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건 당연지사였어요. 근데 남편이 하나님 믿는 걸 반대할 때 전 이 결혼 생활을 잃지 않고, 남편과의 애정을 지키고 남편의 배려와 자상함을 계속 누리고 싶은 마음에 본분은 한 켠에 내려놓고 남편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썼어요. 남편이 하나님 믿는 걸 싫어하니까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엄두를 내지 못했고,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인기척만 들려도 놀라서 벌벌 떨면서 책부터 감췄어요. 원래는 저녁에 귀가하면 정상적으로 영 생활도 하고 사역에서의 실수를 정리해 보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패괴 성품을 해결해 나가야 하잖아요. 그래야 생명도 빨리 자라고 본분 이행에 이롭기도 하고요. 근데 전 결혼의 행복을 지키려고 본분과 진리 추구를 한 켠에 버려뒀어요. 집에서는 거의 영 생활을 하지 않았죠. 더구나 전 사악한 시류에 대한 저항력이 없다 보니까 계속 이방인의 동영상이나 영화에 빠져 있는 바람에 하나님과는 더 멀어지고 생명 진입에서도 손해를 많이 보게 됐죠. 그리고 저녁에 제때에 편지를 처리하지 못하고 많은 사역을 신속하게 시행하지 못하다 보니 리더가 계속 체크하고 재촉해서야 완성하곤 했어요. 보니까 저는 제 생각만 했더라고요. 결혼 생활을 잃지 않으려고 교회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아서 결국은 여러 사역의 진도가 지체됐어요. 전 정말 양심과 이성이 없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었어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하나님이 너에게 결혼을 운명적으로 정해 준 것은 책임을 다하는 법, 다른 사람과 잘 지내고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배우자와 함께 사는 삶, 직면하는 갖가지 일을 배우자와 함께 처리하는 방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네가 더욱 풍부하고 특별한 인생을 살라는 뜻이다. 하지만 너를 결혼에 팔아넘긴 것도 아니고, 배우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긴 것도 물론 아니다. 너는 그의 노예가 아니고 그 역시 네 노예주가 아니며, 너희 둘은 평등하다. 너는 배우자에 대해 아내 혹은 남편의 책임밖에 없고, 그 책임만 다하면 하나님 편에서 너는 아내로서 합격이고 혹은 남편으로서 합격이다. 네가 상대보다 뭐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있고, 자주 예배에 참석하고, 또 자주 하나님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자주 하나님 앞에 나아온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이고, 피조물로서 해야 할 일, 피조물로서 보내야 할 평범한 일상이다. 그것은 면목 없는 일이 아니다. 이런 생활을 한다고 해서 배우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네가 그에게 무슨 빚을 진 게 아니다. … 육적인 관계의 차원에서 보면 부모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서 너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사실 너의 배우자이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가 너를 원수처럼 생각하며 공격하고 핍박한다면, 네가 예배드리는 것도 반대하고, 밖에서 무슨 소리만 들렸다 하면 돌아와서 너를 질책하고 욕하고 때린다면, 심지어 네가 집에서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 읽는 일이 본인의 정상적인 생활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데도 너를 질책하고 반대하고 잔인하게 때린다면, 이건 대체 어떤 인간이냐? 마귀가 아니냐? 그런 자가 너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냐? 그런 자가 너더러 본인에게 무슨 책임을 다하라고 할 자격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이런 결혼 생활에서도 배우자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그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희생하려 하는 것, 자기가 본분을 이행할 시간, 본분 이행할 기회, 심지어 자신이 구원받을 기회마저 희생하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최소한 그런 생각은 내려놓아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어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결혼을 운명적으로 정해 주신 건 배우자와 잘 지내는 법을 배우고, 서로 함께하고 챙겨 주면서 책임을 다하는 법을 익히고, 어려울 때 함께 의논하면서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함께 잘 처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절대 저를 결혼에 팔아넘긴 게 아니에요. 저는 남편의 노예가 아니라 똑같은 피조물로서 평등한 존재였어요. 제가 하나님을 믿어도 생활적인 측면에서 남편을 최대한 잘 챙겼어요. 남편이 어려움이 있을 때 함께 직면했었고 남편이 아프면 저도 최선을 다해 보살펴 줬어요. 저는 결혼 생활에서 최선을 다했고 남편한테 빚진 것도 없거든요. 근데 남편은 오히려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툭하면 흠을 잡고 이혼까지 거론했죠. 남편은 우리의 결혼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저 혼자 바보처럼 어떻게든 지켜 보려고 애쓰고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하나님을 잘 믿지도, 진리를 잘 추구하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었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까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제가 예배드리러 나가거나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도 전혀 남편한테 지장이 갈 게 없거든요. 근데 남편은 계속 핍박하면서 방해하고, 경찰에 신고한다느니 이혼하자느니 하면서 저를 협박했어요. 그건 남편의 인성이 나쁘다는 거고, 실체는 마귀라는 방증이잖아요. 그런 사람한테 제가 잘할 필요가 없죠. 제가 그런 남편을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걸 포기하고, 진리 추구를 포기하고, 본분 이행의 권리를 포기하고, 심지어 구원받을 기회까지 포기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더는 남편의 눈치를 볼 것도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 날 저녁부터 집에서 본분을 이행했어요. 그런데 제가 실제로 협력하니까 남편도 난리를 치지 않았어요. 물론 가끔 비꼬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저는 더 이상 남편한테 구애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됐어요.

그 일이 지나고 반성해 봤어요. 제가 왜 이 결혼의 행복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걸 평생의 추구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지를요. 그리고 이 말씀을 봤어요. 『결혼에 대한 말들이 사회에서 먼저 유행했고, 그다음에는 각종 문학 작품에도 결혼에 대한 작가의 사상과 말이 등장했다. 이런 문학 작품은 드라마나 영화로 촬영되어 스크린에 옮겨졌는데, 이를 통해 결혼에 대한 인류의 온갖 말, 추구와 이상, 바람이 더욱 생동감 있게 연출되고, 그것들은 많든 적든, 음으로 양으로 계속해서 너희에게 주입되었다. 너희가 결혼에 대해 정확한 개념이 전혀 없을 때, 사회에서 생겨난 결혼에 대한 그런 각종 말이나 정보가 선입관으로 자리 잡고 너희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러고 나서 너희도 자신의 결혼이 어떻고 자신의 반쪽은 어떨 것이라는 환상을 품기 시작했다. 네가 그 정보들을 받아들인 경로가 드라마나 영화, 소설이든, 아니면 네 생활 범위, 네가 속한 그룹이든 그 어느 쪽을 막론하고, 그런 정보는 모두 사람에게서, 사회에서, 세상에서 온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모두 사악한 시류로부터 진화하고 파생되어 온 것이다. 물론 더 정확히는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 사회에서 유행하는 결혼에 대한 이런 말들, 사람의 사상, 영혼 깊숙이 침투한 것들은 주로 애정이다. 이런 말들이 사람 내면에 주입되어 사람은 결혼에 대한 다양한 환상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결혼 상대에 대한 자신의 요구는 무엇인지에 대한 환상이다. 특히 사회 곳곳의 정보는 모두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해야 진정한 애정이 있는 것이고, 애정이 있어야 결혼도 가능하고, 애정이 있는 결혼이야말로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이고, 애정 없는 결혼은 비도덕적이라고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0)> 중에서), 『많은 사람이 일생의 행복을 본인의 결혼에서 찾으려 한다. 그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목표는 바로 결혼의 행복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배우자와의 결혼이 행복하면 자신의 인생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결혼의 행복을 일생에서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 그래서 결혼의 행복을 최고로 추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집 사역의 필요로 인해 집을 떠나 외지에서 복음을 전도하며 본분을 이행해야만 하는 경우, 결혼의 행복을 곧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낙담하고, 안타까워하고, 심지어 불안해한다. 어떤 이들은 결혼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본분 이행을 포기하거나 거절하기도 한다. 심지어 하나님 집의 중요한 안배를 거절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결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늘 상대의 감정을 살핀다. 상대가 자신의 신앙과 자신이 하나님 믿는 길을 가는 것, 자신이 본분 이행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거나 조금이라도 불쾌하거나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면 얼른 방향을 바꿔 타협하곤 한다. 결혼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늘 상대와 타협한다. 설령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포기하고 예배드리며 하나님 말씀을 읽고 영 생활 하는 시간을 포기하더라도 상대가 쓸쓸하고 적막하지 않도록 자신의 존재, 자신의 사랑을 느끼게 하려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상대의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신앙, 혹은 하나님 믿는 길을 걷기 위해 상대의 사랑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혼의 행복을 포기한다는 뜻이고, 그의 생각에 결혼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은 외로운 사람,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아무도 사랑하고 아껴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비록 도리를 어느 정도 알고,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의미를 알고, 또 당연히 피조물로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 또 자신의 행복을 당연히 결혼의 행복에서 찾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해하고 알더라도, 결혼의 행복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지 못한다. 그들은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이번 생에 추구해야 할 사명, 피조물이 추구하고 완성해야 할 사명으로 삼았다. 이것은 잘못이 아니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결혼관은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폭로하셨어요. 제가 어릴 때였어요. 길거리에서 낭만적인 사랑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저는 그 가사에 빠져서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상상하곤 했어요. “당신과 함께 백발이 될 때까지 헤어지지 않을 거야.”라든가 “천생연분, 백년해로”라든가 하는 이런 관점과 사상이 제 마음속에 심어졌어요. 그래서 남편은 저의 일생을 끝까지 함께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저를 아껴 주고 사랑해 주는 남편이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을 믿은 뒤에는 본분 이행에 관한 말씀을 많이 읽어서 이치적으로도 제가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 태어난 건 다행이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건 이생에서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거고,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죠. 하지만 세상의 사상 관점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까 남편을 저의 일생의 동반자로 여기며 사랑과 애정이 없는 결혼은 비참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나님 믿는 일로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잃게 될까 봐 저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어느 날 결혼이 파탄 나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남편이 없는 불쌍한 여자가 될까 봐 걱정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남편의 사랑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는데, 남편이 신앙을 반대하니까 남편과 타협하게 된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적게 먹고 마시고, 교회 사역을 지체하게 되더라도 결혼 생활을 잘 지키려고 했어요. 참으로 이기적이고 비열했어요. 생각해 보면, 하나님을 믿은 뒤로 남편의 태도는 확 달라졌고, 툭하면 시비를 걸었어요. 그제야 남편이 저한테 잘하는 건 진짜 사랑해서가 아니라 제가 자식을 낳아 주고 이 가정을 챙기기 때문에 사랑하는 척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정작 제가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그게 자기의 이익에 지장이 된다고 생각하니 남편은 본색을 드러냈어요. 사실은 마귀의 본색이 드러난 거죠. 소위 말하는 사랑, 행복한 결혼 생활, 그건 사탄이 사람을 속이고 묶어 두기 위한 거짓말일 뿐이었어요. 제가 이 결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계속 본분을 소홀히 한다면, 절대 진리를 얻을 수 없고 결국은 하나님에 의해 도태되는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2023년 6월에 저는 지역 리더로 발탁됐어요. 물론 하나님께서 높여 주셨음을 알고 있었죠. 리더가 되고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수상한 사람이 쫓아온다는 걸 감지했어요. 그러니 신변 안전 때문에 집을 떠나 타지로 가서 본분을 이행해야 했어요. 하지만 집을 떠나면 남편이 이혼을 요구할 텐데,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면서 또다시 근심에 빠졌어요. 그러다 찾고 구하는 과정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네가 가정이나 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무엇이든, 그것이 아내든, 남편이든, 자녀든, 부모든, 또 직원이든 아니면 다른 어느 쪽이든, 또 네가 결혼 생활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중요하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 앞에서 네 신분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피조물이다. 하나님 앞에서 두 번째 신분은 없다. 따라서 하나님 집에서 너를 부를 때는 바로 너의 사명을 완수해야 할 때이다. 다시 말하면, 너는 하나의 피조물로서, 행복하고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을 지킨다는 전제 아래 너의 사명을 완수할 것이 아니라, 피조물인 이상 하나님이 너에게 부여한 사명,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사명을 무조건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너는 마땅히 하나님이 네게 맡긴 사명을 우선시해야 한다. 결혼이 너에게 부여한 사명과 책임은 그다음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부여한, 피조물로서 완수해야 할 사명은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1순위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결혼의 행복을 지키고 싶은 네 바람이 얼마나 크든, 또는 네 결혼 상황이 어떻든, 네 배우자가 결혼 생활을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든, 그런 건 모두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사명을 거부할 이유가 될 수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0)> 중에서),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 일이 네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데 지장을 주고, 걸림돌이 되고, 심지어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면, 너는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만 포기할 것이 아니라 결혼 전체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교제하는 궁극적인 목표와 의미는 무엇이냐? 바로 결혼의 행복에 발목 잡히고, 두 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지고, 시선이 어지러워지고, 마음이 혼란해지는 등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거기에 마음을 내어 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네 인생길과 생활이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로 가득 차는 것도 안 된다. 결혼 생활에서 네가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올바르게 대하고, 올바르게 버리고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더욱 바람직한 실행은,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본분에 쏟아서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이 네게 맡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든 네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또 하나님이 너를 지금까지 살도록 이끌었고, 네게 결혼과 가정을 베풀어 주고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다해야 할 책임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너 스스로 결혼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까닭 없이 그냥 결혼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능력이나 힘으로 결혼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0)>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알았어요. 제가 가정에서는 아내의 역할을 맡고 있지만 전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본분이 제게 임했을 때 조건 없이 본분을 받아들여 일 순위에 두고 피조물로서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게 제 사명이더라고요. 제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잖아요.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면서 필요로 하는 모든 걸 공급해 주시고,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모든 진리까지 주셨죠.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탄의 패괴와 해악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는지 알려 주셨어요. 근데 제가 이 결혼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 본분을 거부한다면, 그건 정말 양심도 이성도 없는 거더라고요. 만약 피조물의 본분 이행을 지체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저는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저의 책임을 다하면 돼요. 하지만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는 게 제 본분 이행에 지장이 된다면 저는 이 혼인을 내려놓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선택을 해야지 혼인 관계에 손발이 묶여서는 안 되더라고요. 그제야 확실하게 깨달았어요. 남편과의 좋은 관계를 지키려고 본분 이행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걸요. 그래서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제가 당분간 타지로 피신해야 할 것 같다는 제안을 했을 때, 남편은 곧바로 이혼을 요구하면서 그러는 거예요. “당신이 잡혀서 감옥 생활 몇 년 한다면 기다려 줄 수 있지만 집을 떠나는 건 안 돼.” 그렇게 말을 하는데, 정말 마음이 시렸어요. 제가 피신을 하는 것보다 감옥에 가는 게 낫다고 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제야 남편은 하나님을 증오하는 본질을 지녔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저는 눈물을 닦고 확실하게 말했어요.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니까 하나님을 경배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난 감옥 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석방되면 계속 하나님을 믿을 거예요. 당신이 그걸 수용할 수 있으면 우린 계속 같이 사는 거고, 수용이 안 되면 각자 알아서 살아요.” 그러고 나서 다음 날 우리는 바로 이혼 절차를 밟았어요.

지금은 그 집에서 나와 있고 남편의 반대도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어요. 무슨 문제가 있으면 형제자매들이랑 교제를 나누면서 찾고 구할 수도 있고요. 또 본분을 이행하면서 패괴 성품을 드러낼 때 형제자매들이 짚어 주면 저는 반성해 볼 시간도 충분히 있고요. 게다가 사역을 체크할 때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시간도 더 많으니까 사역 효과가 전보다 어느 정도 좋아졌어요. 정말 예전엔 사탄이 주입한 사상과 관점에 따라 살면서 진리를 얻을 기회를 얼마나 많이 놓쳤는지 몰라요. 제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고요. 제가 결혼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 말씀의 인도 덕분이에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단란한 가정을 추구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

중국 샤오터(肖特) 저는 남편과 8년간 연애를 했어요. 그런데 약혼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저는 생식 능력을 잃게 됐어요. 그때 저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더는 살아갈 용기가 없었어요. 남편 집안에서도 생식 능력을 잃은 저와 헤어지라고...

키워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대하는 법

일본 다이앤(Diane) 2012년 우리 가족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뭔지 알게 됐고 누구든 이 세상에 올 때는 사명을 가지고 오며 사람은 살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부모 부양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인가?

2022년 9월 말에 교도소에서 나온 밍후이(明慧) 자매는 남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갑니다. 밍후이 자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이유로 두 번이나 경찰에 잡혀 박해를 받았는데, 이번이 두 번째였고 징역 3년 3개월을 복역했습니다. 밍후이 자매는 계속...

본분 이행과 부모에 대한 효도가 충돌할 때

저는 몇 년 동안 계속 객지에서 본분을 이행했었어요. 물론 가끔 엄마 생각이 났지만 본분 때문에 많이 바쁘고 게다가 엄마도 아직 몸이 성하고 젊으신 편이라 본분을 이행하는 데 큰 걱정거리나 구속받을 게 없었어요. 그러다 2020년 9월에 중국...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