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별세로 생긴 마음의 그늘에서 헤어 나오다
2012년에 저는 본분을 이행하다 경찰에 잡혀 징역 5년을 선고받았어요. 그때 제 엄마는 60대셨는데, 반신불수 상태에서 제 면회를 오셨죠. 거동이 불편한 엄마가 서 있는 것도 힘들어하시는 걸 보니 ‘지금까지 엄마가 날 키워 주셨는데, 노년에 복은...
하나님의 현현을 갈망해 찾아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2012년 우리 가족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뭔지 알게 됐고 누구든 이 세상에 올 때는 사명을 가지고 오며 사람은 살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됐죠. 그래서 저는 일자리를 내려놓고 본분을 이행했어요.
그 당시 저는 매일 복음 전하러 다녔는데, 가끔은 집에 들러서 아버지를 봤어요. 근데 아버지가 많이 쇠약해지셨더라고요. 고질병인 천식이 또 도진 거예요. 전에는 약을 좀 드시거나 링거 좀 맞으시면 괜찮아졌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면 되겠지 싶었어요. 근데 그러고 얼마 안 돼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됐어요. 동생이 연락해 와 아버지가 떠나셨다고 했죠.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어요. 집에 가니까 고모가 한 소리 하시는 거예요. 의학 공부를 했다는 애가 아버지가 천식인 걸 알면서 산소통도 하나 마련해 두지 않았냐고 그렇게 했더라면 이렇게 빨리 가시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그런 말을 들으니까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팠고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배가 됐어요. 제가 아버지한테 조금이라도 신경을 더 썼더라면 이렇게 빨리 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고모는 제 손을 잡고 그러셨어요. 형제자매들 중에서 부모님이 유독 저한테 신경 많이 쓰셨는데, 이제 아버지가 떠나셨으니 넌 효도할 기회가 없지 않냐고 그러니까 앞으로 엄마를 잘 모시라고 했어요. 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저를 이렇게 키워주고 공부시켜 놨으니 제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자식이었겠어요. 근데 제가 뭘 해 드리기도 전에 아버지가 그렇게 떠나셨으니까 저는 엄마를 잘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절대 서운하게 해 드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 후로도 매일 본분을 이행하기는 했지만 틈만 나면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나가서 일하지 않으면 앞으로 엄마의 생계는 어떻게 될까? 내가 엄마까지 제대로 모시지 못해서 아쉬움을 남긴다면 평생 후회할 거야.’ 그래서 저는 매일 본분을 마치고는 일자리를 찾아봤어요.
그렇게 2013년 3월에 일자리를 구해 출근 준비를 했어요. 근데 정작 접대 집 자매님의 집을 떠나는 순간 너무 괴로운 거예요. 이 찬양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죄에 넘어졌지만 빛 속에서 일어나네. 날 높여 주신 당신께 감사드리네. 육신 되신 당신도 고난받으시는데 패괴된 나는 더 받아야 하리. 흑암 세력에 굴복한다면 어찌 하나님 뵐 수 있으랴. 당신의 말씀 떠올릴 때면 당신이 그리워지네. 당신의 얼굴 마주할 때면 미안한 마음, 존경의 마음 교차하네. 나 어찌 자유 위해 당신을 버리리.』(<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하나님의 기쁜 소식 기다리네>) 이 찬양을 흥얼흥얼 부르는데, 마음이 너무 괴로웠어요. 특히 “나 어찌 자유 위해 당신을 버리리.”라는 가사를 불렀을 때는 이미 눈물범벅이 됐어요. 과거 공허한 삶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인생의 방향도, 삶의 목표도 없던 저를 하나님께서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택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삶의 의미를 알게 해주신 게 생각났어요. 이건 하나님의 은혜잖아요. 근데 이렇게 쉽게 본분을 포기하고 돈벌이에 나서게 되니 하나님께 너무 죄송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울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죠. “하나님, 저는 너무 연약합니다. 저 자신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저의 발길을 멈춰 주세요.” 그때, 멀리서 모래 폭풍이 불어오는 게 보였어요. 얼마 안 돼서 폭풍에 휩싸이게 됐는데, 숨이 막히고 앞이 보이질 않았어요. 그리고 길가에서 뭔가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바람에 뭔가 날려가는 것 같았어요. 순간 저는 빨리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곧장 전기 스쿠터를 버리고 앞으로 달려갔어요. 제가 멀리 뛰어가지도 못했는데, 뒤에서 쾅 하는 큰 소리가 들렸어요. 하지만 저는 거기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저 속으로 하나님께 지켜 달라고 기도하기만 했어요. 한참 지나 모래 폭풍이 약해졌는데, 그제야 멀지 않은 곳에 넘어져 있는 스쿠터가 보였어요. 길가의 전봇대는 바람에 날려온 징크 지붕에 의해 부러졌고 멀리 날아간 탓에 전선도 전부 끊어져 있었어요. 아까 내가 빨리 피하지 않았으면 거기에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나는 너희에게 하늘의 불길까지 보여 주었으나 차마 너희를 불사르지는 못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중에서) 정말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거잖아요. 또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제게 말씀하신 거고요. 그래서 속으로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 돈 벌러 가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마음이 또 흔들렸어요. 앞으로 살날이 많은데,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엄마가 앞으로 어떻게 살까? 부모님이 절 키워 주셨으니까 제가 부모님의 노후를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본분을 내려놓고 돈을 벌려니까 또 너무 괴로운 거예요. 병원 일이라는 게 얼마나 바쁜 건지 잘 알잖아요. 일을 시작하면 예배에 참석할 시간도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다른 지역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됐어요. 하지만 마음속으로 여전히 엄마가 걱정됐어요. 물론 오빠와 남동생이 있으니까 엄마가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는 걸 알지만 제가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것 때문에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어느새 10년이 훌쩍 지났어요. 한번은 특별한 상황에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엄마 혼자 사시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 너무 힘들고 괴로웠어요. 모든 것이 어제 일어난 일 같았어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됐지만 부모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여전히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하나님께 나아가 어떤 것 때문에 여전히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을 갖고 사는지 찾고 구하게 됐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제 문제가 뭔지 조금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방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 또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말도 있다. 이 얼마나 수준 높고 대범하고 품위 있는 말이냐! 사실, 그들이 말하는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라는 현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물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하나님이 각 생물에게 정해 준 법칙일 뿐이다. 사람을 포함한 각종 생물은 모두 이 법칙을 지키고 있다. 생물마다 그 법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모든 생물을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을 한층 더 입증하는 것이다. 어떤 생물도 이 법칙을 깨거나 뛰어넘을 수 없다. 생각해 보아라. 사자나 호랑이는 사나운 육식 동물이지만 새끼 때는 성체가 되기 전까지 길러지고 물지 않는다. 이것이 동물의 본능이다. 사납든, 온순하든 모든 동물은 이 본능을 가지고 있다. 각종 생물은 이런 본능과 법칙을 따라야만 번식해 나갈 수 있다. 인류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각종 생물이 이 법칙을 지키지 않거나 이런 법칙과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번식할 수 없을 것이고, 먹이 사슬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는 말이 바로 생물계가 이 법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각종 생물은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다. 새끼가 태어나면 성체가 될 때까지 암컷이나 수컷의 보호와 보살핌 속에서 자란다. 각종 생물도 자기 새끼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극진하게 돌보는데, 하물며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인간이 자칭 고등 동물이라고 하면서 이 법칙을 지키지 않고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동물보다 못하다. 그러니 부모가 너를 키우면서 얼마나 보살피고 책임을 졌든 그들은 그저 피조된 인류의 능력 범위 안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그들의 본능이다. … 각종 생물이나 동물은 이런 본능과 법칙을 가지고 있고, 이를 잘 지키고 제대로 실행한다. 아무도 이를 깨뜨릴 수 없다. 이 외에도 특별한 동물이 있다. 호랑이, 사자와 같은 동물들은 성체가 되면 부모에게서 떨어진다. 심지어는 수컷끼리 경쟁하며 물 땐 물고, 겨룰 땐 겨루며, 싸울 땐 싸우기도 하는데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것이 법칙인 것이다. 그것들은 정에 얽매이거나 인간처럼 정에 빠져 살지 않는다. “은혜에 보답하고 은혜를 갚아야 돼.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지 불효하면 남들이 비난하고 욕하며 뒤에서 험담할 거야. 그것만큼은 참을 수 없어!”라는 말은 동물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 사람은 이런 말을 하겠느냐? 왜냐하면 사회나 사람들 가운데에 여러 가지 잘못된 사상과 여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런 잘못된 사상과 여론에 영향을 받고 물들고 부식되고 나면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다루게 된다. 결국, 부모를 자신의 채권자로 삼고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부모가 죽으면 부모가 기뻐하고 원하는 걸 해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부모의 은혜에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것은 불필요하지 않으냐? 사람이 정에 빠져 살면 정에서 비롯된 여러 생각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어찌 되었든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지 은혜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은혜라고 할 수 없다면 이것은 네가 누려 마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이는 네가 누려야 할 하나의 권리이다. 너는 마땅히 양육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성년일 때는 양육받는 것이 네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가 받은 것은 단지 너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지 부모의 은혜나 은정이 아니다. 모든 생물이 새끼를 낳아 기르고 번식하며 후대를 양육하는 것은 하나의 책임이다. 예를 들어 새, 소, 양 심지어 호랑이도 새끼를 낳은 후에는 키워야 한다. 후대를 키우지 않는 생물은 없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드물다. 이는 생물이 생존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생물의 본능이다. 그것을 은혜로 귀결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그저 창조주가 동물과 인간에게 정해 준 법칙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결코 은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네게 책임을 다하고 심혈을 쏟고 돈을 썼다고 해서 너더러 갚으라고 하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그것이 부모로서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책임이고 의무라면 아무런 대가가 없어야 한다. 보상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단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니 대가가 없어야 하고 거래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는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를 다룰 필요가 없다. 만약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고 부모에게 보답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다룬다면 이는 오히려 비인도적인 태도인 동시에 육의 정에 제약을 받고 발목 잡히기 쉬우며, 육의 정이라는 올무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심지어는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물에게 정해주신 본능과 법칙에 의한 거였어요. 동물들도 보면 온순한 동물이든, 포악한 동물이든 상황과 여건에 따라서 최선을 다해 다음 세대를 키우잖아요. 그건 책임이자 의무고,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본능인 거죠. 그래서 그 본능과 법칙에 따라야만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살 수 있죠.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건 의무이자 책임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질이고, 인간이 본능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죠.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우리 남매들을 키우실 때 동생은 요리에 소질이 있어서 요리를 배우게 하셨고 저는 독서를 좋아하고 성적도 좋으니까 그쪽으로 저를 키워주셨어요. 그래서 저한테 쏟은 에너지나 돈이 조금 더 들게 된 거죠. 엄마도 우리가 원하는 걸 배우게 해주셨고요. 그건 부모가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책임을 다하는 거지 거래하는 게 아니죠. 부모님은 제가 하나님 믿고 본분 이행하는 걸 늘 응원해 주셨어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어도 엄마는 자기를 모시라고 요구하지 않았어요. 그저 제가 신앙생활 잘하면서 본분을 잘 이행하기만 바랐죠. 근데 저는 계속 전통문화를 기준으로 부모님과의 관계를 바라봤어요.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살아 계실 때 잘해라.” “까마귀도 반포의 효가 있고 비둘기도 예절을 안다.”,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 등 이런 사상이 어렸을 때부터 제 마음에 자리 잡혔기 때문에 저는 부모님의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효성이 지극하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답해야 효자이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특히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살아 계실 때 잘해라”는 말이 더 실감이 나면서 죄책감이 배가 됐죠. 그래서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엄마를 잘 모시며 효도를 다하려고 했어요. 본분을 팽개치고 하나님을 배반하면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런 사상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죠. 하나님께서 모래 폭풍을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주지 않으셨다면 벌써 본분을 버리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을 거예요. 이러한 전통문화의 사상들이 매우 숭고해 보이지만 그 실체는 사탄이 인간에게 채워둔 무형의 족쇄였어요. 그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왜곡했고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책임을 보답해야 할 은혜로 간주하게 만들었죠. 보답을 못하거나 그럴 여건이 안 되면 스스로 불효자이자 양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 거예요. 이처럼 사탄은 전통 사상으로 사람을 해치고 꽁꽁 묶어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게 만듦으로 인간을 해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거였어요. 하나님께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말씀해 주셔서야 저는 분명하게 깨달았어요. 부모님이 저에게 베푼 것은 제가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니까 저는 사탄의 전통문화에 따라 부모님과의 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없었고 저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을 보답할 은혜로 생각할 것도 아니었어요. 그건 진리에 부합하는 게 아니었죠. 이걸 깨닫게 되니까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어요.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됐어요. 『부모와의 관계는 사람이 감정적으로 가장 처리하기 어려워하는 관계이지만 사실 처리 못 할 일은 아니다. 사람은 오로지 진리를 깨달은 기초에서만 이 문제를 올바르고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다. 감정의 각도나 세인의 시선과 각도를 출발점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올바르게 부모를 대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자녀는 부모에게 어떤 존재인지, 자녀가 부모를 대할 때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사람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이런 문제에 있어서 감정을 근거로 해서는 안 되며 그 어떤 잘못된 사상 혹은 사회 여론의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된다.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올바르게 대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정한 환경 속에서 네가 부모에게 어떤 책임도 다하지 못한다거나 그들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치자. 그러면 불효하는 것이냐? 네가 양심에 참소를 받겠느냐, 받지 않겠느냐? 네 주변 이웃, 동창, 그리고 친척들이 모두 뒤에서 너를 욕하고, 헐뜯고, 너를 불효자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네 곁에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데, 이 불효자 같으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는 잘 지내는지 연락 한 번을 안 하고. 새해에도 집에 안 오면서 전화 한 통조차 없고 부모님 안부도 안 묻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네 양심이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가책을 느낀다. ‘아아, 저 말이 맞아.’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꼭 바늘에 찔린 것처럼 흠칫흠칫 떨린다.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느냐? (예전에 그랬습니다.) 네가 불효한다고 하는 이웃과 친척들의 말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불효한 것이 아닙니다.) 이유를 말해 보아라. … 우선,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객관적인 전체적 환경 때문이다.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하고, 부모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원해서 부모를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 측면의 객관적 원인이다. 다른 측면을 보면, 주관적으로 말해서 네가 밖에 나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부모를 떠나 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에 남아 함께하면서 그들을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책임을 회피하려고 나온 것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인 네가 그들을 떠나 밖에 나와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했던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네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있다.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객관적인 환경이 허락했다면, 그들 곁을 지키는 동시에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다면 너는 그들 곁에서 항상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네 책임을 다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환경 때문에 너는 반드시 그들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을 지킬 수 없었다. 네가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성질이 다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집을 떠난 것이 그들에게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는 불효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워 줬는데 너는 머리가 커지자마자 나가서 혼자 살지 못해 안달이고, 부모를 보기 싫어하고, 부모한테 어려운 점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려 하고, 상관할 여건이 돼도 상관하지 않으면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효이다. 하지만 지금이 이런 상황이냐?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자 자기가 살던 현(縣)을 떠나고, 시(市)를 떠나고, 성(省)을 떠나고, 심지어 나라를 떠났다. 이미 고향을 멀리 떠난 데다가 갖가지 이유로 집에 연락하기가 어려워서 가끔 고향에서 온 사람을 통해 부모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전해 들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심한다. 사실 너는 불효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을 상실한 수준에 이르러 부모마저 신경 쓰지 않으려 들고 책임을 안 지려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객관적인 원인 때문에 이렇게 하기를 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불효가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알았어요. 몇 년 동안 제가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산 건 전통문화의 영향과 해악 때문이었어요. 제가 반포의 효를 아는 까마귀만도 못하고, 은혜를 갚을 줄도 모르는 불효자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느꼈던 거고, 계속 눈물이 났던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야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인지 가늠하는 기준은 외적인 행동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일 처리하는 본질을 봐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몇 년 동안, 제가 엄마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곁에서 효도하려고 했지만 본분상 엄마 곁에서 챙겨 드릴 수 있는 형편이 못 되는 데다 중국 정부의 심한 박해 때문에 피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부모를 공경할 겨를이 없었어요. 제가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건 여건이 되는데도 효도를 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니까 같은 선상에서 보면 안 되는 문제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저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봐야 사탄의 해악과 농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더라고요.
그 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부모님과의 관계를 정확하게 하는 법을 더 분명하게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를 대할 때 자녀의 의무를 다해 그들을 보살필 것인지 등 모든 것은 네 개인적인 여건과 하나님의 배치에 근거해야 한다. 확실하게 얘기한 게 아니냐? 어떤 사람들은 부모를 떠날 때 자기가 부모에게 너무 죄스럽다고, 부모를 위해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부모와 함께 살 때 전혀 효도하지 않고 어떤 의무도 다하지 않는다. 이런 자가 정말 효도하는 사람이겠느냐? 이는 입만 놀리는 것이다. 네가 어떻게 행동하든, 혹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획하든 그런 것들은 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피조물이든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지, 진실로 믿는지 하는 점이다. 어떤 부모는 그런 복과 운명이 있어서 자손이 번창하고 천륜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는 하나님의 주재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복이다. 반면 어떤 부모는 그런 운명이 없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안배해 주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녀가 옆에서 지켜 주고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그런 복이 없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배치로, 사람이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에 있어서 사람은 최소한 순종하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환경이 허락하고 여건이 된다면 효도해도 된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고 여건도 되지 않는다면 무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뭐라고 하겠느냐? (순종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순종이라고 한다. 이 순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순종의 근거는 무엇이냐?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가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사람이 선택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선택할 권리가 없으며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배치라는 것을 느낄 때, 네 마음은 한결 편안해지지 않겠느냐? (그럴 것입니다.) 그럼 양심의 가책을 느끼겠느냐? 언제나 가책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지도 않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날 수도 있다. 인성에는 정상적인 생각이나 본능이 있는데, 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창조주 앞에서 너는 하나의 피조물이다. 네가 이번 생에 해야 할 일은 그저 부모에 대한 책임만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하더라도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을 근거로 해야지 네 감정 혹은 양심상의 필요에 근거해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통해서 부모 자식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정해주는 환경에 따라서 자기 능력과 여건에 맞게 서로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됐어요. 사람의 운명의 경우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할지, 얼마나 많은 복을 누리게 될지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에 따르는 문제였죠. 부모는 자녀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정해줄 수 없고, 자녀들도 자기 힘으로 부모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죠. 어떤 사람은 그런 복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런 복이 없는데 그게 사람의 의지와 감정에 의해서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저 같은 경우도 부모님이 의학 공부를 시키셨고 돈을 많이 쓰기도 했지만 결국 제가 이 분야에서 일하지는 않게 됐거든요. 부모님한테 효도하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고 엄마를 잘 모시고 싶었지만 늘 곁에 있어주지 못했어요. 예전에도 엄마가 고생할까 봐 어떻게든 제 힘으로 엄마가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해드리려고 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제 힘으로 엄마의 운명을 바꿔주고, 행복을 선사해 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제 운명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고 제가 일생 동안 무엇을 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조차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엄마의 운명을 바꿀 수 있겠어요. 제가 정말 너무도 어리석고 교만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엄마를 대하는 것도 순리에 따라 저의 여건에 맞게 책임을 다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엄마 곁에 있으면서 모실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제 능력껏 효도하면 되고, 엄마 곁에 있을 수 없다면 그것 때문에 미안해할 필요도 없는 거죠. 저는 피조물이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환경에서 저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더라고요.
얼마 전에 엄마랑 연락이 됐는데,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자기 생에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거고 가장 큰 소원은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저버리지 않는 거라면서 저한테 본분을 잘 이행하라고 당부까지 하더라고요. 엄마의 편지를 보고 눈물이 났어요. 저는 엄마에 대한 효도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건 아니었어요. 사실 엄마는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았어요. 그저 제가 하나님을 잘 따라가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본분을 잘 이행하기만을 바라셨어요. 그게 엄마의 가장 큰 소원이었어요. 과거에 부모님이 저한테 쏟은 심혈이 제일 커서 엄마를 모시는 건 당연한 제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항상 제 뜻대로 안 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곁에 함께하지 못해도 효성이 지극한 오빠가 있으니까 엄마를 잘 챙겨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오빠도 엄마 곁에 함께하지 못했어요. 반대로 남동생은 돈도 잘 모으지 못하는 성격이라 자기 앞가림만 해도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지금은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있어요. 정말 하나님의 주재하심은 사람이 상상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거더라고요. 하지만 하나님은 진실로 모든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고 안배하시는데, 아무도 그걸 택할 수도, 바꿀 수도 없죠. 이제 저는 더 이상 엄마가 자신이 겪은 일들로 고생만 한 것 같아 괴로워하지 않고 엄마의 훗날을 걱정하지도 않아요. 우리의 운명이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좋은 환경이나 고난의 환경이나 결국은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건 아무도 피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일이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엄마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환경 속에서 진리를 잘 추구하고 각자 맡은 본분을 잘 이행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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