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부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인가
중국 류후이(劉慧)2022년 9월 말, 밍후이(明慧)의 남편은 구치소에 있던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밍후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두 번이나 체포되어 박해받았는데, 이번이 두 번째 체포였고 3년 3개월의 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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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마흔이 다 되어서야 저를 입양하신 부모님 밑에서 어려서부터 가난한 농가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철이 들 무렵부터 부모님께서 힘들게 일해 돈을 벌어 가정을 꾸리시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사시사철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일하셨고, 무더운 6월에도 밖에서 땀 흘려 번 돈으로 저를 공부시켜 주셨습니다. 어머니 역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아파도 병원 갈 돈이 아까워 병원에 가지 않으셨고, 매일 도랑에 가서 토끼 먹일 풀을 베는 등 애쓰시며 제 학비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파서 저는 어른이 되면 꼭 효도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어른이 된 후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도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을 늘 되새기며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에 절대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마음에 두었던 사람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뜻에 따라 지금의 남편을 선택했으며, 그를 데릴사위로 들였습니다.
2011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앞으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어머니께는 꼭 효도해서 더는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어머니께 자주 영양제를 사 드렸습니다. 2012년, 어머니는 제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반년 후, 제가 자주 밖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본분을 이행하자, 남편은 노골적으로 혹은 은근슬쩍 어머니가 제게 복음을 전해 주신 것을 비난했고, 제 앞에서 대놓고 어머니를 비꼬고 무시했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남편을 나무랐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 괴롭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자리를 피하시는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 나중에 남편의 핍박은 갈수록 심해져 저를 때리고 욕하기까지 했고, 어머니도 저와 함께 모욕을 견디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너무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5년 말, 저는 설교자로 선발되었습니다. 한번은 본분이 바빠 일주일가량 집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남편이 친척들과 짜고 어머니를 찾아가 소란을 피우고 교회 리더 일꾼을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본분을 중단하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남편은 아예 휴직까지 하고 저를 감시하는 데만 몰두했습니다. 저는 진저리가 났지만, 어머니 앞에서 남편과 다툴 용기가 없어 그저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고,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답답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부터 남편이 어머니를 자주 모욕하고 비꼬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어머니께서 평안한 노후를 보내시기는커녕 오히려 저 때문에 많은 설움과 고통을 겪으신다는 생각에 더 이상 밖에 나가 본분을 이행할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고 교제해 주셨지만, 저는 다시 밖에 나가 본분을 이행하면 또 남편에게 핍박받을까 봐, 그리고 어머니가 또 얼마나 많은 설움을 겪으실지 몰라 걱정되어 계속 집에만 머물렀고, 저의 내적 상태도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셔서 남편이 다시 회사로부터 출근 통지를 받고 일하러 가게 된 후에야 저는 예배에 참석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2016년, 저와 협력하던 자매가 체포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웃이었기에 저 역시 위험한 상황에 처했고, 저는 남편과 상의하여 잠시 집을 나가 피신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을 떠난 지 며칠도 채 되지 않아 남편이 파출소에 가서 제가 하나님을 믿고 집을 나갔다고 신고했고, 경찰이 저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더욱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면 어머니를 뵐 수 없는데, 어떻게 어머니를 봉양하며 효도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남편은 저렇게 핍박하는데, 내가 떠나면 남편이 어머니를 어떻게 대할지도 모를 일이잖아. 어머니의 유일한 가족은 나밖에 없는데, 내가 곁에 없으면 어머니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드시겠어! 하지만 만약 집에 갔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내가 과연 굳게 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저는 마음이 너무 고통스럽고 갈등되어 하나님께 저를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이 매일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할지, 어떤 사람이나 일을 맞닥뜨릴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상할 수 있느냐? 사람은 이 모든 일의 발생을 예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도 통제할 수 없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일은 살면서 흔히 볼 수 있고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삶 속의 사소한 일’들의 발생과 발전 양상 혹은 법칙은 인류에게 어떤 일이든 우연히 발생하지 않으며 그것이 전개되는 과정과 필연성은 사람의 뜻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모든 사건의 발생은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경고를 전달한다. 또한 인류는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동시에, 자신의 손안에 운명을 쥐고자 하는 인류의 헛된 야심과 욕망에 반격을 날리고 있다. 인류에게 가해진 이런 반격은 여러 차례 거칠게 뺨을 때려대듯, 대체 누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주관하는지 돌아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인류는 또한 야심과 욕망이 끊임없이 무너지고 깨지는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예비된 운명에 순응하고, 현실과 하늘의 뜻,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게 된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삶 속의 사소한 일’부터 일생의 운명까지,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를 나타내지 않는 것은 없다. 또한, 그것들은 하나같이 ‘창조주의 권병에서 넘어설 수 없다’는 메시지와 ‘창조주의 권병은 지고지상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매일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며, 사람이 예측하거나 주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저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협력하던 자매가 경찰에 잡히고, 남편이 저를 파출소에 신고하고, 제가 경찰의 추적을 받아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된 이 모든 일들은 제가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며, 모두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기에 저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을 믿은 후로 어머니가 남편에게 핍박과 모욕을 당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어머니가 핍박받으실까 두려워 밖에 나가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았고, 또 제가 떠나면 어머니를 봉양할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이 부분을 묵상하며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는 줄곧 가족에 대한 정에 얽매여 진리를 제대로 추구하지도, 본분을 이행하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런 환경이 닥쳐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은 제가 본분에 마음을 쏟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며, 이는 제 생명 성장에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교회 리더인데, 만약 집을 떠나지 않았다가 잡히기라도 해서 경찰이 어머니를 빌미로 저를 협박한다면 제가 과연 굳게 설 수 있을까요? 만약 혹형을 견디지 못하고 유다처럼 하나님을 배반한다면 저는 완전히 하나님께 도태될 것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한 끝에 저는 계속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집에 없는 동안 비가 오는 날이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집 마당은 미끄러운데, 어머니가 넘어지셔도 일으켜 드릴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지?’ 밀을 거두는 계절이 되자 또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혼자 어떻게 농사일을 다 하실까? 남편이 어머니를 도와줄지 모르겠네.’ 명절이 되자, 저는 섬김 가정에서 차려 준 밥상을 앞에 두고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나는 밖에서 잘 먹고 있는데, 우리 어머니는 집에서 잘 지내시는지, 남편에게 구박받고 욕을 먹고 있지는 않을지… 명절이면 다른 집들은 모두 오순도순 모이는데, 나 때문에 어머니는 홀로 집에 계시는구나. 분명 쓸쓸하고 외로우실 테고, 친척과 친구들에게 비웃음까지 당하실 텐데. 나는 어머니께 너무 큰 죄를 지었어!’ 저는 생각할수록 고통스러웠고, 본분에 집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어느 날 묵상 시간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어떻게 행동하든, 혹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획하든 그런 것들은 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피조물이든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지, 진실로 믿는지 하는 점이다. 어떤 부모는 그런 복과 운명이 있어서 자손이 번창하고 천륜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는 하나님의 주재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복이다. 반면 어떤 부모는 그런 운명이 없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안배해 주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녀가 옆에서 지켜 주고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그런 복이 없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배치로, 사람이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에 있어서 사람은 최소한 순종하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환경이 허락하고 여건이 된다면 효도해도 된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고 여건도 되지 않는다면 무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뭐라고 하겠느냐? (순종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순종이라고 한다. 이 순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순종의 근거는 무엇이냐?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가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사람이 선택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선택할 권리가 없으며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배치라는 것을 느낄 때, 네 마음은 한결 편안해지지 않겠느냐? (그럴 것입니다.) 그럼 양심의 가책을 느끼겠느냐? 늘 가책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지도 않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날 수도 있다. 인성에는 정상적인 생각이나 본능이 있는데, 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안배하신 운명은 모두 다르며,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바꿀 능력이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희 어머니에게 자녀가 곁을 지키며 누리는 복을 정해 주지 않으셨다면,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늘 함께했고 떨어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게 된 것에는 하나님의 안배와 정하심이 있었고, 어머니가 집에서 남편에게 핍박받는 것 또한 어머니가 겪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하고 늘 어머니가 외롭고 고생하실까 봐 걱정했고, 저 자신도 흑암과 고통 속에서 살며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어머니 곁에서 효도할 기회가 없다면 순리대로 따라야 합니다.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으시니, 제가 없어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 주실 것이고, 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순종하고 어머니를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가 가정의 핍박을 겪는 과정에서 이끌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 후, 저는 우연히 어머니가 쓰신 체험 간증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곁에 없는 동안 어머니는 연약해질 때면 하나님께 기도했고, 형제자매들이 집에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하며 도와주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점차 소극적이고 연약한 상태에서 벗어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무척 감사드렸습니다.
2022년, 전 세계에 다시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많은 노인이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것을 보고 저는 또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전염병에 걸리면 돌봐 줄 사람이 있을까? 이겨 내실 수 있을까? 만약 내가 곁에서 물도 떠다 드리고 약도 챙겨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하며 격려해 드린다면, 마음의 고통을 좀 덜어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저는 너무나 어머니를 뵈러 돌아가고 싶었고, 지난 몇 년간 겪은 일들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얼마 후 제가 병이 나 침대에 누워 있으니 어머니가 더욱 그리웠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다시는 뵐 수 없을까 봐 걱정되어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왜 다른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하는데 저는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야 하나요? 제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저는 외동딸인데 어머니를 봉양하고 임종을 지켜 드릴 수도 없으니, 만약 어머니가 외롭게 노후를 보내시면 저는 평생 양심에 가책을 느낄 거예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겪어야 할지 몰라 하나님께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소극적이고 연약할 때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이끄심으로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집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체험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많이 베풀어 주셨는데도 저는 보답할 줄 모르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정말 너무 양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를 잘 구해서 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 말씀 낭송을 들었습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가 너를 극진하게 보살피든, 정성껏 보호하든, 결국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들이 너를 키우는 목적이 무엇이든 이것은 그들의 책임이다. 그들이 너를 낳았으니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렇게 본다면 부모가 네게 하는 것이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부모가 네게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은혜라고 할 수 없다. 화초를 하나 키워도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며 책임을 다하는데 그것도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은혜라 할 수 없습니다.)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작은 화초는 밖에서 더 잘 자란다. 땅에 심으면 햇볕을 쬐고 바람과 비를 맞아 더 튼튼하게 자라지만, 집에서 화분에 옮겨 심어 키우면 밖에서 자라는 것만 못하다. 어디서든 못 살겠느냐? 어디에 있든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다. 너는 생명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이 살아가도록,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준수하는 법칙을 준수하도록 책임진다. 한 사람으로서 너는 부모가 양육하는 환경에서 생활할 뿐이니 그 환경에서 성장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거시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고, 미시적으로 보면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어찌 되었든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지 은혜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은혜라고 할 수 없다면 이것은 네가 누려 마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이는 네가 누려야 할 하나의 권리이다. 너는 마땅히 양육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성년일 때는 양육받는 것이 네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가 받은 것은 단지 너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지 부모의 은혜나 은정이 아니다. 모든 생물이 새끼를 낳아 기르고 번식하며 후대를 양육하는 것은 하나의 책임이다. 예를 들어 새, 소, 양 심지어 호랑이도 새끼를 낳은 후에는 키워야 한다. 후대를 키우지 않는 생물은 없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드물다. 이는 생물이 생존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생물의 본능이다. 그것을 은혜로 귀결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그저 창조주가 동물과 인간에게 정해 준 법칙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결코 은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네게 책임을 다하고 심혈을 쏟고 돈을 썼다고 해서 너더러 갚으라고 하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그것이 부모로서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책임이고 의무라면 아무런 대가가 없어야 한다. 보상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단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니 대가가 없어야 하고 거래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는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를 다룰 필요가 없다. 만약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고 부모에게 보답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다룬다면 이는 오히려 비인도적인 태도인 동시에 육의 정에 제약을 받고 발목 잡히기 쉬우며, 육의 정이라는 올무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심지어는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다.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너는 부모의 기대에 일일이 부응할 의무도 없거니와 그들의 기대를 떠안을 의무도 없다. 그들의 기대는 그들 몫이고,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다. 네게는 하나님이 정해 준 너의 인생길과 운명이 있다. 네 부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 네가 책임을 다할 여건이 된다면 책임을 다하고, 그들에게 의무를 다할 환경이나 객관적인 여건이 안 된다면 깊이 고민하지 말고 부모에게 빚졌다고 생각하지 마라.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부모에게 효도하든, 부모에게 책임을 다하든 이는 그저 자녀의 입장에서 너를 낳아 키워 준 부모에게 어느 정도 책임을 다하는 것일 뿐이다. 다만 갚는다는 관점으로 이런 일에 임해서는 안 되고, “부모는 네 은인이니 반드시 보답해야 하고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라는 관점으로 이런 일에 임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저는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제가 부모님의 양육을 은혜와 빚으로 여기고, 언젠가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전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관점이었습니다. 사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그들의 책임과 의무이며, 결코 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동물이 자기 새끼를 기르는 것처럼, 그것은 일종의 본성이자 하나님께서 만물에 제정하신 생존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적합한 가정 환경을 안배해 주십니다. 제 경우만 봐도, 태어나자마자 친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후 양부모님께 입양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님께서 저를 돌보고 키워 주신 것이지만, 사실 제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지난 세월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저를 보살피고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보리 터는 기계에 다리가 끼었지만 불구가 되지 않았던 일, 고등학교 입시 전 시험장을 보러 자전거를 타고 가다 두 차 사이에 끼어 거의 치일 뻔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곁에 계시지 않았지만 저는 무사했습니다. 또 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뒤 바로 세상을 떠나신 친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지금의 부모님께서 저를 키워 주신 것은 모두 하나님의 정하심과 지배에 따른 것이니, 제가 감사해야 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그리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모든 것을 누려 왔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며 그분께 구원받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까지 얻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생각은 않고, 오직 부모님의 길러 주신 은혜에 보답할 생각만 했습니다. 심지어 본분을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어머니께 효도할 수 있는지를 전제로 판단했고,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할 때도 내적 상태가 늘 교란받았으니, 정말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은혜는 바다처럼 깊다.”,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와 같은, 사탄이 주입한 그릇된 관점의 영향을 받아 무턱대고 은혜를 갚으려고만 했으니, 정말이지 어리석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자 제 마음은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제가 어머니에 대한 염려를 조금씩 내려놓았을 때, 딸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딸은 자신이 이미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고, 어머니도 건강하시며 집에서 정상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자책감을 느꼈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위해 모든 것을 너무나 잘 안배하셨음을 알겠습니다. 저는 이토록 큰 사랑과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작았던 저 자신이 너무 밉습니다. 하나님, 당신께 가장 죄스럽습니다. 이제부터는 꼭 마음을 다잡고 본분을 잘 이행하여 더 이상 당신을 걱정시키지 않겠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가정을 버린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그로 인해 이름이 알려지자 정부에서는 수시로 그의 집을 찾아가 수색하며 그의 부모를 괴롭히고, 그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이에 이웃사람들은 “양심도 없지. 부모를 봉양하지도 않고 말이야. 효도는 고사하고 부모에게 이렇게 재앙을 초래하다니 불효자야!”라고 비난했다. 이 비난에 진리에 부합하는 말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말이 이방인의 눈에는 옳은 것으로 보이지 않겠느냐? 이방인들 사이에서 이런 관점은 가장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윤리에 부합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처신의 기준에도 부합한다. 그 기준 안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들어 있든, 예컨대 부모를 어떻게 공경해야 할지, 부모를 어떻게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할지, 부모에게 얼마나 보답해야 할지 등의 기준이 진리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그 기준은 이방인의 눈에 긍정적인 사물이자 긍정적 에너지, 옳은 것으로 보이며, 어떤 집단에 있든 질책할 부분이 없는 것 같다. 이방인들 사이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기준은 바로 이런 것인데, 네가 이런 것들을 해내야 남들 눈에 기준에 맞는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 너 또한 이렇게 처신하는 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게다가 너는 이러한 것들로 자신을 평가하고 제약하며, 스스로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요구했다. …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를 듣고 난 후, 네 관점은 바뀌기 시작했다. 너는 모든 것을 버리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사람이 그렇게 처신하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진리임을 아직 확신하지 못했을 때, 너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내적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끊임없는 양육과 목양을 통해 조금씩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너는 비로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사람의 전통 관념과 상상 속 처신의 기준을 철저히 저버렸다. 이러한 것들을 완전히 내려놓으면,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할 때 이방인의 판단과 정죄의 말에 통제되지 않고 편안하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이제는 하나님이 역사하고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이 이 모든 사실의 진상을 알게 하고 진리를 깨닫게 하기 때문에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나면 이런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은 더 이상 짐이 되지 않고,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에 이끌려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지 않게 된다. 그럼 삶이 홀가분해진다. 삶이 홀가분해진다는 것은 사람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책임과 의무를 알지만 사람이 어떤 관점과 방식으로 대하는지에 달렸다. 하나는 정을 택하는 길을 가는 것으로, 정에 따라 처리하고, 사탄이 이끄는 방식과 사상 관점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르쳐 준 말씀대로 그런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 네가 만약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올바른 진리 원칙, 사상 관점을 준수한다면 삶이 아주 홀가분해질 것이다. 사회 여론이든, 양심의 지각이든, 감정적 짐이든 네가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는 데 더는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부모와의 관계를 이성적이고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진리 원칙대로 하면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네 마음 깊은 곳은 그 영향을 받지 않고 평안하고 잠잠할 것이다. 적어도 너 자신만큼은 속으로 스스로를 배은망덕하다고 자책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가르쳐 준 방식대로 했고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도를 준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도를 준수하는 것은 사람이 최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양심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한다면 너는 배은망덕한 놈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제가 줄곧 어머니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물을 보는 제 관점이 아직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 저는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와 같은 사탄의 전통 사상을 받아들여,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처세 원칙으로 삼아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사람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결혼 문제에 있어서도 부모님의 뜻에 순종하여 남편을 데릴사위로 들여 함께 부모님을 모시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여전히 이런 관점에 따라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남편에게 핍박받으시는 것을 볼 때면, 딸인 제가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기는커녕 오히려 저 때문에 고생하시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핍박하며 소란을 피워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집에 돌아갔을 때, 저 때문에 어머니가 많은 고생을 하시는 것을 보고 저는 더욱 자책하며 더 이상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전통 사상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밧줄처럼 저를 꽁꽁 얽매어 본분을 이행하는 문제에 있어 몇 번이고 타협하게 만들었고, 제가 생명 성장을 추구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특히 전염병이 확산될 때, 어머니가 감염되더라도 제가 병상에서 돌봐 드릴 수 없다는 걱정에 어머니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심지어 어머니께 효도할 기회를 주시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제야 저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제게 주입한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와 같은 것들은 제가 진리를 알면서도 추구할 마음이 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저를 하나님께 패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탄은 정말이지 사악하기 그지없고 비열하며 음험했습니다. 저는 정말 그것 때문에 모진 고통을 겪었습니다. 사실, 제가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지 못하게 한 진정한 원흉은 바로 중공이고, 사탄 마귀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가정을 버리는 것도, 마음이 모진 것도 아닙니다. 바로 중공이라는 이 사악한 정당이 사람이 참하나님을 따르며 바른길을 가도록 허락하지 않고, 교회를 모함하고 비방하며 먹칠하여 믿지 않는 가족들까지 핍박하고 가로막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어리석고 분별력이 없어 사탄의 사악한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안배가 부적절하다고 원망했으니, 정말이지 옳고 그름도 분별 못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런 전통 사상의 얽매임과 미혹을 받아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어머니를 대해야 합니다. 저와 어머니는 모두 피조물이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크나큰 높여 주심과 은혜입니다. 이생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든 없든, 저는 오직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여 먼저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며 제 본분을 다하기를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자 저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을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때로 다시 어머니 생각이 날 때면 저는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길을 가야 하는지는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라 그 누구도 누구를 도와줄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길 … 6> 중에서)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 저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어머니를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을 다잡고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이번 체험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로 저는 전통 문화가 저를 어떻게 얽매고 고통스럽게 했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고, 점차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을 내려놓게 되어 마음의 해방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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