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암에 걸린 후

2024.04.28

중국 양천(楊晨)

2023년 6월경, 복음 사역 때문에 다른 지역에 가서 본분을 이행하게 됐어요. 당분간 돌아오기 힘들 것 같아 부모님도 뵐 겸, 옷도 챙길 겸 집에 들렀어요. 집에 가서 보니 엄마가 팔에 관을 꽂고 있고, 얼굴색도 안 좋았어요. 어디가 안 좋냐고 물어보니 엄마는 별것 아니라고, 수술하면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느낌이 들어서 입원 병력서를 달라고 했어요. 진단서에 세 가지 악성 종양이라고 돼 있더라고요. 순간 멍해졌죠. ‘우리 엄마가 암이라니? 그것도 악성인데, 치유가 가능할까? 치유가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됐어요. 아버지는 엄마가 항암 치료를 받고 있긴 한데, 완치 될지 안 될지는 치료 경과를 지켜봐야 알 수 있다고 했어요. 이 모든 게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는 거니까 원망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 제 마음을 지켜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때 아버지가 제 남동생 얘기를 하더라고요. 엄마가 입원했을 때, 동생이 엄마를 살뜰히 챙겼고 엄마 병 치료를 위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일자리도 구했다고요. 그런 얘길 들으니까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당연히 장녀인 내가 다 챙겨야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부모님이 날 양심이 없는 불효자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키워 놨더니 아무 소용 없다고 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때 엄마가 위로해 주더라고요. “근심하지 말고 겁내지도 마라. 언제까지 살지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되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넌 네가 할 일을 해라.” 엄마가 말을 그렇게 했지만 전 그래도 남아서 엄마 간병을 돕고 싶은 거예요. 근데 교회에 처리해야 할 사역이 너무 많으니까 오래 머물 형편은 아니었어요. 엄마가 상황이 그러니 본분 때문에 먼 지역으로 떠난다는 말도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말도 못 하고 서둘러 집을 떠났죠.

가는 동안 아픈 엄마를 간병하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과 엄마의 치료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버는 동생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어요. 그런 생각을 할수록 마음은 더 괴로웠죠. ‘어머니가 아프니까 딸인 내가 당연히 보살펴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니 다른 사람들이 알면 나를 뭐라고 할까? 양심이 없다고 하지 않을까? 남동생도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타지에 가서 본분을 이행하겠다는 의지가 완전히 식어 버렸어요. 하나님께 기도했죠. ‘하나님, 다른 지역으로 가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어머니가 암을 앓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 제가 가 버리면 앞으로 다시 못 볼지도 모릅니다. 제가 본 지역에서 본분을 이행하면 가끔 집에 가서 엄마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뒤로도 본분을 이행하긴 했지만 집중이 안 됐어요. 늘 ‘요즘 엄마가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계속 집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저는 내적 상태가 올바르지 않다는 걸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봤어요.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교회에서는 모든 시기, 모든 단계에 특별한 일, 즉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일들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일부 사람은 병에 걸리고, 일부 리더 일꾼은 교체되며, 일부 사람은 드러나 도태되고, 일부 사람은 생사의 검증을 마주한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는 악인과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교란하기도 한다. 이런 것은 다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이자 안배이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시기에 갑자기 몇 가지 에피소드가 생기고 특수 사건이 발생하는데, 너희 주변이나 너희 자신에게 발생한다. 그렇게 발생한 일들이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 리듬과 정상적인 상태를 깨 버린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런 일들은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으며, 전부 사람이 직면하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럼 그렇게 발생한 일들이 사람에게 과연 도움이 되겠느냐? … 어떤 일이든 우연히 발생하는 것은 없으며, 전부 하나님이 주재한 것이다. 이치상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이는 사람이 마땅히 추구하고 깨달아야 하는 진리이며, 구체적인 실행이 있어야 한다. 이론적으로만 하나님의 주재를 인정할 뿐 진정한 인식이 없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해결하지도 못한다면, 아무리 오래 하나님을 믿고 아무리 많은 일을 겪어도 결국 진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1)>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고 깨달았어요. 사람은 모든 단계에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닥칠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은 사람이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 안에는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하셨어요. 근데 진리를 구하지 않고 계속 자기 관념과 상상에 빠져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면 공과를 배우지 못하는 거잖아요. 제 어머니한테 그런 병이 생겼을 때, 그 안에도 제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는 거고, 저는 진리를 구해 보고 자기반성을 하는 게 맞더라고요. 초반에 엄마가 암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저는 치유가 안 될까 봐 걱정했거든요. 또 항암 치료할 때 제가 곁에 없으면 괴로워하지 않을까, 딸 키워 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했죠. 또 엄마 걱정에 다른 지역에 가서 본분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도 사라졌고, 속으로는 하나님께 지금 엄마가 아프니 가까이 있으면서 챙겨야 하니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 없다고 이유를 달기도 했어요. 보니까 저는 정이 지나치게 깊었고, 그건 진리를 구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더라고요.

그 후에 그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봤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방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까마귀가 자라면 어미를 먹이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 또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말도 있다. 이 얼마나 수준 높고 대범하고 품위 있는 말이냐! 사실, 그들이 말하는 “까마귀가 자라면 어미를 먹이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라는 현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물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하나님이 각 생물에게 정해 준 법칙일 뿐이다. 사람을 포함한 각종 생물은 모두 이 법칙을 지키고 있다. … 어째서 사람은 이런 말을 하겠느냐? 왜냐하면 사회나 사람들 가운데에 여러 가지 잘못된 사상과 여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런 잘못된 사상과 여론에 영향을 받고 물들고 부식되고 나면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다루게 된다. 결국, 부모를 자신의 채권자로 삼고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부모가 죽으면 부모가 기뻐하고 원하는 걸 해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부모의 은혜에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것은 불필요하지 않으냐? 사람이 정에 빠져 살면 정에서 비롯된 여러 생각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패괴된 인간의 사상이 만연한 환경 속에서 살면 사람은 여러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에 휘둘리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삶이 다른 생물처럼 단순하지 않고 피곤해진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역사하고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이 이 모든 사실의 진상을 알게 하고 진리를 깨닫게 하기 때문에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나면 이런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은 더 이상 짐이 되지 않고,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에 이끌려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지 않게 된다. 그럼 삶이 홀가분해진다. 삶이 홀가분해진다는 것은 사람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책임과 의무를 알지만 사람이 어떤 관점과 방식으로 대하는지에 달렸다. 하나는 정을 택하는 길을 가는 것으로, 정에 따라 처리하고, 사탄이 이끄는 방식과 사상 관점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르쳐 준 말씀대로 그런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탄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으로 그런 일을 처리하면 정에 얽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고, 언제나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이런 상태로는 굴레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늘 “당신이 맞고, 제가 틀렸어요. 당신이 해 주신 게 많고, 저는 해 드린 게 없어요. 당신은 배은망덕하고, 너무했어요.” 등의 말에 얽매여 똑 부러지게 말할 때가 없다. 하지만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나서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과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면 이런 일은 단순해진다. 네가 만약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올바른 진리 원칙, 사상 관점을 준수한다면 삶이 아주 홀가분해질 것이다. 사회 여론이든, 양심의 지각이든, 감정적 짐이든 네가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는 데 더는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부모와의 관계를 이성적이고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진리 원칙대로 하면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네 마음 깊은 곳은 그 영향을 받지 않고 평안하고 잠잠할 것이다. 적어도 너 자신만큼은 속으로 스스로를 배은망덕하다고 자책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가르쳐 준 방식대로 했고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도를 준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도를 준수하는 것은 사람이 최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양심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한다면 너는 배은망덕한 놈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이 말씀을 통해 제가 그렇게 괴로워했던 이유를 알게 됐어요. 그건 사탄에게서 주입된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그릇된 관점에 너무 깊이 잠식돼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자식으로서 부모 공경을 못 하면 패역한 자식이자 배은망덕한 자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왜냐하면 부모님이 절 힘들게 키우셨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거든요. 특히 저는 남아 선호 사상 시대에 태어났고, 어머니는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정말 많은 따가운 눈총과 모욕을 당하시면서 저를 키우시고, 남동생보다 절 더 많이 챙겨 주고, 더구나 제가 하나님 믿고 본분 이행하는 것도 엄마가 많이 지지해 주셨고, 제가 정에 약하다는 걸 아니까 집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본분 이행하는 데 지장이 가고 마음이 분산된다고 잘 알려 주지도 않았고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마는 저에게 큰 지원군이었고, 항상 본분을 잘 이행하라고 응원해 주셨거든요. 엄마가 해 주는 거에 비해 아플 때 제가 곁에서 간병도 못 해 주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자식인 도리로서 부모 공경을 못 하거나 부모가 아플 때 곁에서 보살피지 못하는 건 불효이자 배은망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 늘 양심에 걸리고 부모님께 미안했거든요. 전 사탄의 독소에 너무 깊이 젖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계속 정에 매이고 전통 사상과 관점에 따라 이 일을 대한다면, 엄마를 돌보지 못하는 패역한 자식이라는 마음의 짐을 지게 되니 힘들고 괴롭게 살 수밖에 없더라고요. 제가 해야 할 건 그런 사상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봐야 하는 거더라고요. 그래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죠.

그 후에도 영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자녀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조금 더 분명하게 알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로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깨달아야 한다. 너는 평생에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일은 창조주에게서 받은,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이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갚는 것은 네 평생의 사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즉,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고 보답하며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여건이 되면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되 여건이 안 되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네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은 아니다. 단지 양심과 인간의 도의 및 관념에 조금 위배될 뿐 최소한 진리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그것을 정죄하지도 않는다. 네가 진리를 깨닫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런 측면의 진리를 깨달으면 너희 마음이 편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정죄하지 않으시겠지만 제 양심이 찔리는걸요. 마음이 편치 않아요.” 그렇다면 너는 분량이 너무 작은 탓에 아직 이 일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사람의 운명과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네게는 항상 사람의 뜻과 감정만 있을 뿐이다. 사람의 뜻과 감정이 주인 노릇 하면서 너를 차지하고 네 생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네가 사람의 뜻과 감정을 선택하면 진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고,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도, 진리에 순종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네가 사람의 뜻과 감정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진리를 배반하는 것이다. 분명 여건과 환경이 따라 주지 않는데도 너는 늘 ‘내가 부모님께 빚졌고 효도하지 못했어. 부모님을 이렇게 오래 찾아뵙지 못했으니 날 키운 보람이 없으실 거야.’라고 생각한다. 마음속으로 항상 이것들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는 한 가지 사실을 입증한다.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네가 도리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네 행동의 원칙으로 삼지 않는다면 적어도 부모를 대하는 일에서 너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 일에서 네가 진리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네 정과 양심만 좇아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려 하기 때문이다. 네 이런 선택을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고, 너 스스로의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손해를 보는 쪽, 특히 생명의 측면에서 손해를 보는 쪽은 너 자신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마음이 많이 환해졌어요. 부모가 저를 키우는 기간에 저에게 어떻게 했든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하심이 있었어요. 엄마가 저한테 잘했던 것도 저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였죠. 제가 하나님을 믿을 때 마음 놓고 본분에 집중하라고 많이 지지해 주셨는데, 외적으로는 엄마가 저한테 잘해 준 거지만 사실은 저의 분량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제게 안성맞춤으로 마련해 주신 상황이었어요. 엄마가 하나님 믿는 걸 지지해 준 건 사실 엄마의 본분이자 책임이죠. 하나님께서 부모는 채권자가 아니며, 효도는 그저 책임과 의무이지 인간의 사명이 아니라고 하셨죠. 여건이 된다면 부모에게 잘하고 효도할 수 있지만 그럴 여건이 안 돼서 못 한다면 그게 치욕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사람이 평생 동안 해야 할 일도 많고 피조물로서 이행해야 할 본분도 있는데, 단순 부모 공경을 위해 살 수는 없으니까요. 사실,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기 가정과 사업을 위해 멀리서 일하느라 집에 돌아가 어르신을 직접 보살피거나 곁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들이 다 이해해 주고 비웃거나 단죄하는 일은 없잖아요. 근데 저는 부모님의 은혜에 빠져 그들을 곁에서 지키지 못한다고 자책하고 심지어 다른 지역에 가서 본분 이행하기를 거절했잖아요. 전 정말 정에 너무 약한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복음을 크게 확장하는 때인데, 저는 교회 리더로서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세의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형제자매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널리 증거해야죠. 그게 제 본분이자 직책이잖아요. 근데 전 부모를 보살피고 공경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거예요. 지금까지 하나님 믿으면서 많은 말씀을 먹고 마셨지만 정작 실제 상황이 닥치니까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하심에 순종하면서 자기 본분을 다하지 못했고,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지 못했어요. 이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자 진리에 대한 배반이죠! 그제야 계속 이런 전통 관념과 사상에 빠져 살면서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본분을 잘 이행하지 않으면 결국엔 드러나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기도했죠. ‘하나님, 이번에 어머니가 아프면서 저의 불신파적 관점이 완전히 드러났고, 제가 정말 분량이 작고 진리 실제가 없다는 걸 보게 됐습니다. 전 이번에 제 사명과 책임은 부모 공경이 아니라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병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결과가 어떠하든 전 제 본분을 지키고 사탄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다.’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고, 하나님께 의지해 당장 해야 할 본분을 잘 이행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러다 좀 지나서 중의학 의사에게 엄마의 병세를 이야기하고 치료해 줄 수 있는지 문의했어요. 의사는 “지금 환자의 암세포가 온몸에 다 전이돼 치료를 할 수 없어요. 일단 보름치 약을 드릴 테니 드셔 보세요.”라고 했죠. 그런 결과가 나오니 가슴이 미어졌어요. 전에 엄마가 계속 기침할 때, 병원에 모시고 갈 생각은 못 하고 그저 단순 중약만 사서 드리고 신경 안 썼던 게 마음에 걸렸어요. 그때 미리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갔더라면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생각할수록 괴롭고 자책하게 됐고, 내적 상태도 많이 다운됐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이런 상태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그럼 부모가 큰일을 당하는 것은 어찌 된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에 그 일을 배치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하나님의 손으로 배치한 것이니 객관적 원인이나 이유를 들이댈 수 없다. 그저 부모가 그 나이가 되면 그 일이 일어나고 그 병에 걸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네가 곁에 있다고 피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그들의 운명에 병에 걸리는 일을 안배하지 않았으면 네가 그들 곁에 없어도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의 인생에 그런 큰일이 일어나도록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면 네가 그들 곁에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들은 여전히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보아라. 온 식구가 해마다 같이 있지 않더냐? 부모에게 큰 어려움이 닥치면 가족과 자녀가 모두 부모 곁에 있지 않더냐? 부모가 병에 걸리거나 병세가 악화되는 것이 자녀가 부모를 떠나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겠느냐? 그런 게 아니라 그럴 운명이었던 것이다. 단지 자녀로서 부모와의 혈연관계 때문에 남이 들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네가 들으면 괴로운 것일 뿐이다. 이는 정상이다. 하지만 부모가 큰 어려움에 처했다고 해서 네가 분석하고 연구하며 어떻게 벗어나고 해결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부모도 성인이고 사회에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 만약 그들이 그 일에서 벗어나게끔 환경을 안배한다면 그 일은 조만간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만약 그것이 그들이 겪어야 할 인생의 고비 중 하나라면 얼마 동안 겪어야 할지는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것이니 피해 갈 수 없다. 네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그 일의 근원과 인과관계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발상이며 부질없고 쓸데없는 짓이다. 너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동기나 친구에게 연락해 부모에게 병원과 최고의 의사를 소개시키고 가장 좋은 병실을 확보하기 위해 분석하고 연구하며 고민하느라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다. 네게 정말 그럴 여력이 있다면 지금 이행해야 할 본분이나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부모에겐 부모의 운명이 있어 때가 되면 죽으리니 아무도 피할 수 없다. 부모가 네 운명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 너 역시 부모 운명의 주인은 아니다. 그들이 만약 그럴 운명이라면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네가 마음 졸이고 방법을 강구한들 별수 있겠느냐? 그래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거두어 네가 편안하게 본분을 이행하게 하겠다면 네가 관여할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과 협상이라도 하겠느냐?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머리를 쥐어짜서 연구하고 분석하며 책임을 자기에게 돌리면서 부모를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이 가져야 할 생각과 행동이겠느냐? 이는 하나님과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이성적이지 못하고 현명하지 못한 모습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았어요. 사람은 저마다 일생에서 겪어야 하는 시련과 고난이 있었어요. 그건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분량과 필요에 따라 미리 정해 놓으신 것이었죠. 누구에게 어떤 상황이 닥치고, 그 상황을 겪은 기간이 얼마가 되든 모두 하나님의 주관에 따르는 거지 사람이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사람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연구할 필요도 없는 거였어요. 사람이 할 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하심에 순종하면 되는 거였죠. 저의 엄마 상황도 겉보기엔 제가 제때에 병원에 모시고 가지 못해서 악화된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엄마의 운명이더라고요. 사람의 생사는 모두 하나님께 달렸잖아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어떤 대재앙이나 환난이 닥쳐도 화를 입지 않고 무탈하게 지날 수 있어요. 전에 아버지의 경우 차 사고가 났는데, 다른 사람은 다 크게 다쳤지만 아버지만 경상을 입고 제일 먼저 회복하셨거든요. 사람의 일생은 자신의 사명을 이행하는 것이기에 자기 사명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정해 놓으신 방식에 따라 떠나는 것이고, 사명을 다하지 못했으면 어떤 고난을 겪든 모두 무사하게 지날 수 있는 거더라고요. 비록 제 어머니의 병세가 심각하고, 의사도 치료해 봤자 의미 없다고 진단했지만 과연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사람이 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거니까요. 다만 저의 고통과 괴로움은 하나님에 대한 지나친 요구와 욕심 때문이었어요. 엄마가 빨리 낫기를 바라고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다운되고 의기소침해졌는데, 그건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모르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 결과 때문이었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됐을 때 전 기도했어요. ‘하나님, 앞으로 엄마의 병세가 어떻게 될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두 당신이 정하신 것임을 압니다. 저의 요구를 달지 않겠사오니 어떤 결과에도 순종하겠습니다.’ 기도하니 마음도 가라앉았어요. 그리고 예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크다면 너는 하나님을 따를 자격이 없다. 너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이긴 자가 아니라는 말이니 하나님은 너를 원하지 않는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은 자기 부모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따르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어요. 더 이상 사탄이 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에 따라 살 게 아니더라고요.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며 일을 처리하는 삶으로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조금씩 마음을 본분에 더 쏟았어요. 비록 엄마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엄마의 일생에서 어떤 상황을 겪게 되든, 어떤 고난을 받게 되든 다 하나님의 정하심에 달렸고, 엄마의 수명이 얼마가 될지, 어떤 방식으로 떠날지 그건 다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달린 거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또 차분해지더라고요. 얼마 전에 항암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엄마도 이번 일로 공과를 배우신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을 향한 제 작은 믿음이 부끄럽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번에 다른 지역에 가서 본분을 이행하겠다고 먼저 신청했어요.

이번의 경험을 통해 저의 치명적인 부분을 알게 됐고, 지금까지 제가 고수해왔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에 대해서도 조금 분별하게 됐어요. 더는 그런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에 의존해 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부모님과의 육적 관계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됐어요. 이는 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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