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팔자 탓하지 않아요

2024.05.04

중국 이신(伊心)

저는 평범한 시골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죠. 우리 마을에 잘 사는 집이 있었는데, 집이 큰데다 참 예뻤고, 그 집 애들은 늘 새 옷을 입고, 맛난 걸 먹곤 했어요. 전 그게 참 부러웠어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대학도 가고 좋은 데 취직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출세했다는 소리도 듣고, 높게 평가받고 부러움도 살 수 있으니까요. 근데 고1 때 갑자기 전신 홍반성 루푸스라는 병에 걸렸어요. 류마티스 질환에 속하는 불치병이라 평생 약을 달고 살아야 했죠. 힘이 빠지더라고요. 왜 그런 병에 걸렸나 싶었지만 그래도 공부에 전념했어요. 성적은 항상 앞자리여서 원하는 대학에만 간다면 제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수능을 앞두고 20여 일 전부터 고열에 시달리다 입원하게 됐어요. 그 일로 결국 수능을 망치면서 제가 원하는 대학이 아닌 일반 전문대에 들어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 운명에 굴복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중도에 4년제 편입을 하려고 했는데, 대학에 들어간 지 6개월 뒤부터 증상이 더 심해지는 거예요. 자꾸 미열이 나고 손과 다리 관절 부위가 붓고 아팠어요. 계단을 오르는 것도 너무 힘들고, 작은 보온병도 들지 못할 정도였어요. 어쩔 수 없이 자퇴하고 집에 돌아갔어요. 제 또래의 친구들이 건강한 몸으로 자기 꿈을 위해서 노력하는 걸 보니까 절로 한숨이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늘 ‘운명은 왜 내게 공평하지 않은 걸까? 난 왜 이렇게 고달픈 팔자를 타고났을까?’라며 하늘을 원망했고, 심지어는 죽고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근데 절 위해 열심히 사시는 부모님을 보니까 차마 그러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그저 마지못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됐고, 몸도 다른 사람들처럼 생활할 정도로 많이 좋아졌어요. 리더는 저한테 영상 제작 본분을 배정해 줬고 저도 그 본분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영상 제작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했죠. 나중엔 팀 내 책임자로 발탁됐어요. 너무 기뻤고 전보다 본분에 더 적극적으로 임했어요. 가끔 미열이 있어도 본분은 계속 유지했고요. 그러다 리더가 제 몸 상태를 생각해 알맞은 본분을 맡는 게 좋겠다면서 고향으로 돌려보냈어요. 그때 ‘난 절대 육성 받을 기회가 없겠구나! 내가 이런 병에 걸려서 그런 건데 누굴 탓하겠어. 그저 내 팔자가 안 좋아서 그런 거지 뭐.’라는 생각이 들면서 낙담했어요. 그러다 문서 관련 본분을 맡게 됐어요. 근데 문서 본분은 어디에 나설 수 없고 조용히 골방에만 있어야 하니까 의기소침해지더라고요. 그에 비해 리더는 예배 장소들을 돌아다니면서 하나님 말씀으로 교제를 나누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데, 그 본분은 왠지 얼굴도 잘 알릴 수 있는 게 뭔가 폼 나 보였어요. 그때 ‘나도 진리를 조금 더 많이 알아서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면, 리더로 뽑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때부터 예배에 참석하면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를 관찰하고는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고, 다음 예배 시간에 그 말씀을 놓고 형제자매들과 교제를 나누곤 했어요. 다들 제가 교제할 때 집중해서 듣는 걸 보니까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한창 열의에 차 있을 때인데, 어느 날 자전거 타고 예배 장소에 가던 길에 넘어졌어요. 그리고 걷지 못할 정도로 한쪽 다리를 다쳐 집에서 쉴 수밖에 없었죠.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최근에 내가 본분에 정말 적극적으로 임했는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왜 이렇게 재수가 안 좋은 걸까?’ 게다가 더 괴로운 일이 있었어요. 교회에서 리더 선거를 앞두고 있었는데, 전 제가 뽑힐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죠. 근데 리더가 저에게 그러는 거예요. “리더는 교회 사역을 전반적으로 다 챙겨야 해요. 근데 자매는 몸이 못 버틸 것 같아요. 보니까 자매한테는 문서 본분이 적합할 것 같아요.” 그 말이 저한테는 정말 찬 물을 끼얹는 것 같았어요. 김새는 느낌이 들면서 제 팔자에는 리더라는 게 없겠구나 싶은 거예요. 그 후로는 예배에 참석해도 예전처럼 기운이 나지 않았고, 형제자매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게 됐어요. 그때 새로 뽑힌 교회 리더 천팡(陳芳) 자매가 저랑 비슷한 또래였는데, 너무 부러웠어요. 자매는 건강하니까 리더로 뽑히는데, 저는 단순히 문서 관련 본분밖에 못 하니까요. 속으로 원망 불평이 생기더라고요. ‘나도 하나님께 헌신하고 싶은데, 왜 몸이 이런 걸까? 마음은 있으나 기운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역시 난 팔자가 안 좋구나.’ 조금 낙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리더는 못 해도 문서 관련 본분에서 두각을 보이면 형제자매들이 나를 높게 평가하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체념하고 문서 검사를 열심히 했죠. 그러다 연말쯤 됐을 때 다리가 너무 아파 걷지 못하겠는 거예요. 병원에 가 보니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라는 거예요. 더구나 교회에 형제자매들이 잡혀가는 사태까지 발생해 형제자매들을 만날 수도 없었어요. 완전히 다운돼 버렸죠. ‘내 팔자는 왜 이렇게 나쁜 걸까? 공부 좀 해서 운명을 바꿔 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돼, 하나님 믿으면 운명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병은 더 심해지고, 위험한 상황까지 더해져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니 앞으로 내게는 해 뜰 날도 없겠네. 난 그냥 고생할 팔자구나.’ 싶었죠. 저는 매일 눈물로 하루를 보냈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은 게 막막했어요. 그러다 간증문은 충분히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팔자가 이런데, 추구해 봤자 무슨 소용 있겠냐는 생각에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고, 매일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 있었어요.

어느 날 근처에 사는 자매가 하나님 말씀을 전해 줬는데,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 기도했죠. ‘하나님, 긍휼히 여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최근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 있는데, 저는 팔자가 안 좋다고만 생각하고 진리를 구하면서 공과를 배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전 너무 패역한 자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면서 저의 내적 상태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의기소침이라는 부정적 정서가 생겨난 근원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중 어떤 부류의 사람은 항상 자기 팔자를 탓해서 의기소침한 정서가 생기기도 한다. 이것이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농촌 혹은 빈곤 지역에서 살았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그의 집에는 간단한 가구만 몇 개 있을 뿐, 귀중한 물건은 없다. 옷도 한두 벌이 전부이고, 낡아 빠졌더라도 입어야 한다. 평소에 맛있는 것도 잘 챙겨 먹지 못하고, 고기를 먹으려면 명절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예 헐벗고 굶주릴 때도 있다. 큰 그릇에 고기를 잔뜩 담아 놓고 먹는 것이 꿈이지만, 이루기가 어렵다. 과일 한 번 먹기도 힘들다. 그는 이러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대도시에 살면서 능력 있는 부모를 뒀고,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을 수 있고, 입고 싶은 옷도 마음껏 입을 수 있고, 누리고 싶은 모든 것을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고, 식견도 있는 사람들과 자기는 다르다고 느낀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남들은 팔자가 얼마나 좋아. 그런데 내 팔자는 왜 이 모양이지?’ 그는 항상 두각을 나타내려 하고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운명을 바꾸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는데 바꾼다고 무엇이 얼마나 바뀌겠으며, 좋아진다고 한들 얼마나 좋아질 수가 있겠느냐?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해서는 뭘 하든 벽에 부딪히고 어디를 가든 꼭 괴롭히는 사람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재수 없다고 여긴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지? 왜 항상 저열한 인간을 만나는 거야? 어려서 팔자가 사나웠던 건 그렇다 쳐도, 커서까지 팔자가 이렇게 안 좋다니. 나를 드러내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 기회가 없는 건 그렇다 쳐. 그냥 열심히 일하고 돈 많이 벌어서 잘 살고 싶을 뿐인데, 그것도 못 이룬단 말이야? 잘 사는 게 나한테는 왜 이렇게 아득한 일인 거지? 상류층의 삶을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 최소한 도시 사람처럼 살기라도 하고 싶어. 남들한테 무시당하지 않고 2등, 3등 시민 취급을 당하지 않으면서. 적어도 누가 나를 부를 때 ‘어이, 이 자식아, 거기 너, 이리 와!’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 이름을 부르고 존칭을 붙여 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나는 그런 존칭 하나도 못 듣지. 무슨 팔자가 이 모양이람?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고생해야 해?’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고생스러웠지만, 하나님을 믿게 된 후에는 참도임을 알아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예전에 했던 고생은 다 가치 있는 것이었어. 모든 게 하나님의 지배이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야. 하나님의 행사는 너무나 좋았어. 그런 고생이 없었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 거야. 하나님을 믿으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 운명도 바뀌겠지. 그리고 교회에서는 형제자매들과 평등하게 생활할 수 있어. 나를 ‘형제’ 혹은 ‘자매’라고 불러 주니 나한테도 존칭이 생긴 거야. 사람들한테 존중받는 기분이 들어.’ 운명이 바뀐 것 같고, 예전처럼 고통스럽지 않은 것 같고, 더는 팔자 사나운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 것이다. 하나님을 믿게 된 그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열심히 이행하기로 다짐한다. 괴롭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며, 매사에 다른 사람들보다 고생하고, 많은 사람의 지지와 높은 평가를 얻고자 노력한다. 나중에는 리더나 책임자, 또는 팀장으로 뽑힐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러면 조상과 가문을 빛내는 것 아니냐고, 그러면 운명을 바꾼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 그는 실의에 빠진다. ‘나는 하나님을 오래 믿었고 형제자매들과도 잘 어울려 지냈어. 그런데 리더, 책임자, 팀장을 뽑을 때마다 왜 내 차례는 안 오는 거지? 생긴 게 너무 평범한 탓일까? 아니면 사람들 눈에 띌 만큼 비범한 일을 못 해서 그런가? 선거가 있을 때마다 한 줄기 희망을 품은 채 팀장으로 뽑혀도 좋겠다고 생각해. 난 하나님께 보답하고 싶어서 가슴이 뜨거운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실망하게 돼. 번번이 나와는 인연이 안 닿아. 왜 이렇지? 정말로 나는 한평생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사람밖에 될 수 없는 건가? 어린 시절, 젊은 시절, 중년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쭉 이렇게 평범했어. 아무것도 이룬 게 없지. 야심이 없느냐고 하면 그건 아니야. 자질이 떨어지느냐, 그것도 아니야. 노력을 덜 한 것도 아니고 고생을 견디지 못한 것도 아니야. 나한테는 의지가 있고 목표가 있어. 더 나아가 야심이 있다고도 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걸까? 결국은 내가 팔자를 잘못 타고났고 운이 나쁘기 때문이야. 하나님께서 이렇게 안배하신 거야.’ 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기가 팔자를 잘못 타고난 것 같다고 느낀다. … 어떤 일이 닥치든 그는 항상 자기 팔자 탓으로 돌리며, 팔자를 잘못 타고났다는 점에 집중하고, 더 깊이 인식하고 납득하려 한다. 이러다 보면 그의 정서는 점점 더 의기소침해진다. 본분을 이행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휴! 팔자가 이 모양인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어?’ 예배 시간에 다른 형제자매들은 모두 교제하는데 자기는 아무리 궁리해 봐도 별로 인식이 없으면 또 같은 생각을 한다. ‘어휴! 팔자가 이 모양인데 무슨 인식이 있겠어!’ 남이 자기보다 말을 잘하고, 교제하는 인식도 분명하며 빛 비춤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그의 정서는 더 의기소침해진다. 남이 기꺼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면서 본분 이행에 성과를 내 형제자매들의 지지를 받고 발탁되는 것을 보면 그는 내심 씁쓸해진다. 남이 리더 일꾼이 된 것을 보면 그의 정서는 더욱더 의기소침해진다. 심지어는 남이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는 것만 봐도 자기는 그 사람만 못하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진다. 어떤 사람과 일, 사물이 임하든, 어떤 환경이 임하든, 그는 의기소침이라는 정서로 대응한다. 남이 멋진 옷을 입은 것만 봐도, 남의 머리 모양이 보기 좋기만 해도, 그는 속상해하고 질투와 부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결국에는 언제나처럼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진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결국에는 자기가 팔자를 잘못 타고났다는 생각에 자포자기하고 그럭저럭 되는대로 밥만 축내고 살아가면서 죽을 날을 기다린다. 그럼으로써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고, 구원받는 등 하나님의 요구에 흥미가 점점 떨어지고, 심지어는 갈수록 배척하고 거부하게 된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 팔자가 안 좋은 것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이자 근거로 삼는다. 그는 자기에게 임한 환경 속에서 자기의 패괴 성품과 부정적 정서를 분석하여 그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늘 팔자가 안 좋다는 점을 내세워 자기에게 임하고 자기가 체험한 모든 사람과 일, 사물에 대응한다. 그 결과 의기소침한 정서에 더 깊이 빠져든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은 바로 제 상태였어요. 전 늘 팔자를 잘못 타고났고 운이 나쁘다는 생각에 빠져 의기소침한 정서를 갖고 살았거든요. 어렸을 때,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으니 공부를 통해 운명을 바꿔 보려고 했지만, 고1 때 홍반 루푸스에 걸리고, 수능을 앞두고 병이 재발하면서 원하는 대학에도 못 가고, 나중에는 병이 심해져 자퇴할 수밖에 없었어요. 공부해서 운명을 바꿔 보려고 했던 것도 무산되니 너무 괴로웠고 늘 운명이 제게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불평했어요. 하나님을 믿은 뒤로는 묵묵히 문서 본분만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어떻게든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면서 리더 자리에 앉아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모두가 제 몸 상태를 걱정해 뽑지 않으니 저는 제 팔자가 안 좋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했고, 그때부터는 예배에 참석해도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어요. 교회에서 제 상황에 따라 접대 집에 머물면서 문서를 검사할 수 있게 배정해 줬지만 저는 좋은 성과를 거두어 높은 평가를 얻어 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때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로 병이 더 심해지면서 외출하는 본분을 못 하게 됐어요. 그때 저는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으니 고달픈 운명을 타고났다는 생각에 더 의기소침해졌어요. 완전히 처진 정서를 갖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죠.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도 없어지고 글을 쓰고 싶지도 않았어요. 어차피 좋은 팔자를 타고난 것도 아니니 추구해도 의미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일을 바라보는 제 관점을 보니 세상 사람과 다를 게 없더라고요. 원하는 대로 풀리는 일이 없으면 팔자타령이나 하고, 계속 운명과 싸워 보려 하고, 안 되면 팔자가 나쁘다고 불평이나 했으니 말이에요.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한 적이 없고 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진리를 구하는 법도 몰랐어요. 그저 처진 상태에 빠져 하나님을 원망만 하고 있었어요. 그런 모습을 어떻게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어요?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보게 됐는데, 그제야 좋은 운명과 나쁜 운명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정한 운명이 대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사람의 육적 안목이나 무속인의 안목으로 보고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부귀영화를 얼마나 누렸고, 고생을 얼마나 했으며, 명리와 장래를 추구하는 과정이 순조로웠는지 아니었는지에 근거해 가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가 팔자를 잘못 타고났다고 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바로 이 심각한 오류를 범한다. 물론, 이는 많은 사람이 자기 팔자가 좋은지 나쁜지를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가늠하더냐? 세인들이 무엇으로 한 사람의 팔자가 좋은지 나쁜지를 가늠하더냐? 주요한 근거는 그 사람의 일생이 순조로웠는지, 부귀영화를 누렸는지, 상류층의 삶을 살았는지, 평생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얼마나 즐겼는지, 그리고 수명이 얼마나 길었는지, 어떤 직업에 종사했는지, 힘들게 살았는지 아니면 편안하게 살았는지 등등이다. 이러한 것들로 한 사람의 팔자가 좋은지 나쁜지를 가늠한다. 너희도 이렇게 가늠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래서 너희 다수는 잘 풀리지 않는 일이 닥치거나, 고난의 날들이 임하거나, 혹은 상류층의 삶을 누리지 못하면 자기 팔자가 나쁘다고 생각하면서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진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일생의 운명이 어떨지는 하나님이 이미 오래전에 정했으므로 바꿀 수 없다. 팔자가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고, 환경에 따라서, 사람의 자아 감각, 추구에 따라서도 다르다. 그러므로 ‘팔자’는 좋고 나쁨과 관계가 없다. 너는 아주 힘들게 살면서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무슨 대단한 걸 바라지 않아.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다면 만족해. 살면서 고생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세인들이 자주 하는 말도 있잖아. 비바람을 겪지 않고 어떻게 무지개를 보겠느냐고, 고생하는 것도 값진 일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이 정도가 무슨 고생이야? 이건 팔자가 나쁜 게 아니야. 하늘이 내게 약간의 고통과 고난을 주고 단련시키는 건 나를 중히 여기기 때문이야. 나는 팔자가 좋은 거라고!’ 그런가 하면 고생은 나쁜 일이고 팔자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고생 없이, 생활이 안락하기만 해야 팔자가 좋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이를 두고 개인마다 관점이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팔자’라는 것을 어떻게 보느냐? 팔자가 좋다, 혹은 팔자가 나쁘다는 말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런 말은 없다. 너는 하나님을 믿으니 곧 팔자가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바른길을 걷지 않아 징벌을 받고, 드러나고, 도태됐을 때는 대체 팔자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드러나고 도태될 일도 없다. 이방인들과 종교계에서는 사람을 드러내거나 분별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으며, 제명되거나 도태된다는 말도 없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그 사람은 팔자가 좋은 것이겠지만, 마지막에 징벌을 받는다면, 그렇다면 다시 팔자가 안 좋아진 것이냐? 한순간 팔자가 좋았다가, 또 한순간 팔자가 나빴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느 쪽인 것이냐? 팔자는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논할 수 없는 일이다. 전부 하나님이 행한 것이다. 하나님의 안배는 모두 훌륭하다. 다만, 사람마다 운명의 궤적이라든지 처한 환경이 다르고, 각자에게 임하는 사람과 일이 다르며, 한평생 경험하는 인생의 궤적이 다른 것이다. 저마다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른 생활 환경과 성장 배경을 안배했다. 한평생 겪는 일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이른 바 좋은 팔자나 나쁜 팔자는 없다. 하나님이 모두 다 안배해 두었으며, 전부 하나님의 행사다. 하나님의 행사라는 관점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은 훌륭하고 옳다. 다만, 개인의 취향, 느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사람은 안락한 생활, 명리, 명망, 세상에서의 성공, 개인적 영달을 선택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가져야 좋은 팔자라고 생각한다. 평생 제대로 이룬 것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살면서 언제까지나 사회 밑바닥에 머문다면 팔자가 좋지 못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이방인 혹은 세인들이 세상을 추구하는 각도에서, 세상에서의 생존을 추구하는 각도에서 논한 것이다. 그래서 팔자가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하는 말이 생겼다. 팔자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말은 운명에 대한 인간의 편협한 인식과 깊이 없는 감성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또한 사람이 육적으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얼마나 누렸는지, 명예와 이익을 얼마나 얻었는지 등등을 논지의 출발점으로 삼는 탓에 팔자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안배하고 주재한다는 점에 입각해서 이야기하자면, 팔자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말은 존재할 수가 없다. 맞지 않느냐? (맞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주재라는 각도에서 사람의 운명을 논한다면 하나님의 행사는 전부 훌륭하고 개개인에게 필요한 것이다. 전생과 현생의 인과가 있고, 하나님의 정함과 주재,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안배가 있기에 사람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러면 이러한 방면에서 볼 때, 사람은 자기 팔자가 좋은지 나쁜지를 멋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는 팔자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게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훌륭하고, 모든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안배하시는 것이죠. 사람이 운명이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기준은 일생 동안 고생을 얼마나 했고, 부귀영화를 얼마나 누렸으며, 명리와 장래를 추구하는 과정이 순조로웠는지를 보는 거죠. 그건 전부 사람의 육적인 취향을 중심으로 가늠하는 거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기준이 아니잖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건강한 몸으로 살고, 명리를 손에 넣고, 부귀영화를 누리면 팔자가 좋은 사람이고, 반대로 아프고 가난하고, 평생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무시나 받으면 그건 팔자가 안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늘 병이라는 짐을 지고 살고, 제가 추구하는 장래와 명리의 길은 늘 순탄하지 않으니 전 제 팔자가 안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제 관점은 세상 사람과 같았고, 온전히 불신파의 관점이었어요. 사실 건강한 몸을 가졌어도 평생을 돈과 명리, 지위를 좇는데 쏟아붓고, 그 소원을 이뤘어도 사람의 삶의 가치와 의미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늘 허송세월하고, 어떤 사람은 짜릿함을 찾아다니고, 어떤 사람은 타락하면서 스스로를 방종하고, 심지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고요. 저는 ‘그럼 그게 정말 팔자가 좋은 걸까? 그들은 정말 행복하고 즐거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로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고, 하나님 집에서 리더나 책임자로 발탁되지 않아도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알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글도 쓰는 형제자매들을 생각해 봤어요. 그렇게 산다고 팔자가 안 좋은 게 아니잖아요? 제가 병 때문에 고생은 해도 그걸 계기로 자주 하나님께 기도하고 마음에서 하나님을 멀리할까 두려워하고, 게다가 그동안 문서 본분을 하면서 진리를 조금 알게 됐거든요. 그게 제 생명 진입에는 훨씬 유익한 일이거든요. 무엇보다 저는 본성적으로 아주 교만하고 명예욕, 지위욕도 심한 사람이라 리더로 발탁되지 못하고, 얼굴을 알리는 본분을 맡지 않은 게 오히려 하나님의 보호였어요. 만약 제가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분명 세상의 돈과 명리를 좇아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사탄에게 우롱당하며 살았을 거고, 사탄에게 사로잡혀 하나님의 말세의 구원을 받지도 못했을 거예요. 솔직히 병을 통해서 제가 얻은 게 참 많거든요. 근데 전 복에 겨워서 팔자가 안 좋다고 불평만 하고 있었어요. 그때 하나님의 이 말씀이 생각났어요. 『병에 걸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이 있다면, 그 병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베푼 은혜이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 것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오늘날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은혜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이 말씀을 피부로 조금 느끼고 나서는 더 이상 병 때문에 나쁜 팔자를 타고났다는 불평은 하지 않아요.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도 보게 됐어요. 『항상 자기 팔자가 안 좋다고 하는 부류의 사람이 가진 사상 관점이 과연 올바른 것이냐? (올바르지 않습니다.) 명백하게도, 그러한 이들은 극단에 빠져 의기소침한 정서가 생긴 것이다. … 그는 이렇듯 극단적이고 올바르지 않은 각도에서 문제를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탓에 반복적으로 소극적인 정서의 작용과 영향 아래서 생활하며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한다. 그 결과 어떻게 생활하든 지쳐 보이고,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도 의욕을 느끼지 못한다. 어떠한 생활 방식을 선택하든 그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오래 믿었으면서도 마음과 뜻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여 본분 이행에 합격하는 데에 집중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는 것은 더욱 어림도 없다. 원인이 무엇이겠느냐? 결론은 항상 자기 팔자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다가 극심하게 의기소침한 정서가 생겼고, 사람 자체가 의욕을 잃었고, 무기력해졌고, 산송장 꼴이 되어 활기라고는 없어졌고, 적극적이거나 낙관적인 태도가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본분을 위해, 자기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자기가 마땅히 바쳐야 할 충성심을 바치겠다는 의지나 끈기는 더더욱 없는 탓이기도 하다. 그러기는커녕 무성의한 태도로 마지못해 살아간다. 무지몽매하고 흐리멍덩하게, 심지어는 지각없이 허송세월을 보낸다. 언제까지 그렇게 대충 살아갈 수 있을지 자기도 모른다. 정 안 될 것 같으면 이렇게 자신을 타이른다. ‘어휴, 되는대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그냥 이렇게 살자! 언젠가 버티지 못할 때 교회에서 날 출교시키고 도태시키겠다면 그냥 도태시키라지 뭐. 팔자가 이런 걸 어쩌겠어!’ 보아라. 말하는 것조차 이토록 무기력하다. 의기소침이라는 정서는 단순한 기분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사상, 마음, 추구하는 바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제때에, 최대한 빨리 의기소침한 정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그것이 네 일생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네 일생을 망치고, 너를 죽음으로 끌고 간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진리를 얻어 구원받을 수 없으며, 결국에는 멸망에 빠진다. 그러니 자기 팔자가 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언제나 팔자의 좋고 나쁨을 자세히 따지고, 운명이 어떤지를 탐구하고, 운명이 어떤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항상 자기 운명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고, 사소한 변동이 생기거나 무엇이 조금만 마음대로 안 돼도, 혹은 실패, 좌절, 난처함이 임하기만 하면 대번에 자기 팔자가 안 좋아서 생긴 일이라고, 자기는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는 팔자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남들처럼 팔자가 좋지 못하다고 반복적으로 되뇌고, 자꾸만 자신을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의기소침이라는 부정적 정서에 에워싸이고, 결박당하고, 속박당해 헤어 나오지 못한다. 이것은 아주 무서운 일이자 위험한 일이다. 의기소침한 정서가 너를 더 교만하고 간사하게 만들거나 너로 하여금 사악함이며 강퍅함 등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게 하지는 못할 수도 있다. 의기소침한 정서는 네가 패괴 성품을 드러내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만들거나, 패괴 성품을 드러내 진리 원칙을 어기게 하거나, 방해와 교란을 일으키거나, 악을 행하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을 보자면, 의기소침한 정서는 사람이 현실에 불만이 있을 때 드러내는 가장 심각한 모습이다. 현실에 불만을 드러내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불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대한 불만은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하느냐? 그 결과는 아주 심각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과 공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의 가르침, 권면, 일깨움, 경고를 알아듣지 못하게 되며, 그것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게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제가 비관적이고 의기소침한 부정적 정서를 갖고 사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면 저한테 닥치는 일들을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게 되고, 심지어 본분 이행이나 진리를 추구하는 데 관심을 잃게 되고, 결국 구원받을 기회를 다 잃게 되니까요. 더욱 심각한 건 의기소침한 정서는 현실에 대한 불만, 하나님의 주재하심과 안배하심에 대한 불만이기에 실질적으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자 하나님에 대한 무언의 반항이기도 했죠. 그건 정말 심각한 성격의 문제잖아요. 제가 병 때문에 수능을 잘 못 보고, 병 때문에 자퇴를 하게 됐을 때, 괴로워하면서 하늘을 원망하고 주변을 탓했던 게 생각났어요. 또 하나님 믿은 후에는 병 때문에 발탁되지 못하고 리더로 양성되지 못하게 됐을 때에도 팔자타령하고 이런 몸을 주셨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본분을 건성으로 대했고, 적극적으로 협력하려는 마음이 없었어요. 정말 ‘팔자가 나쁘다’는 잘못된 관점에 빠져 있으니 갈수록 더 처지게 되고, 늘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하게 되더라고요. 빨리 바로잡지 않으면 결국은 하나님께 대적함으로 구원의 기회마저 잃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잘못된 사상과 관점이 사람에게는 정말 해가 되는 거였어요. 자신에게 닥치는 일에서 순종하는 자세를 갖지 못하면 결국은 사탄의 우롱과 해악을 입을 수밖에 없잖아요. 이런 걸 깨닫게 됐을 때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는 늘 팔자가 안 좋다고 불평하면서 의기소침한 부정적 정서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에 대한 무언의 반항이자 대적이라는 걸 압니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하지 않겠으니 저를 이끌어 주세요.’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운명을 올바르게 대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어떤 태도로 운명을 대해야 하느냐? 창조주의 안배에 순응하고, 창조주가 이 모든 것을 안배한 목적이 무엇이며 그 의의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열심히 구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네게 안배해 준 일생에서 네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피조물의 본분, 책임, 의무를 다하며, 네 삶을 더욱 유의미하고 값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창조주가 기쁘게 받아들이고 기억하게 해야 한다. 물론 네가 구하고 노력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장 좋다. 요컨대, 지음 받은 인류가 운명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함부로 평론하고 정의하거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게 아니며, 반항하고, 선택하고, 바꾸려 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마음으로 이해하고, 구하고, 모색하고, 순응한 다음 적극적으로 마주해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이 배치한 생활 환경과 인생 여정 속에서 하나님이 네게 가르쳐 준 처신 방식을 구하고, 하나님이 네게 걸으라고 한 길을 구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네게 안배한 운명을 경험한다면 마지막에 너는 복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창조주가 네게 안배한 운명을 경험한다면 네가 맛볼 것은 슬픔, 근심, 눈물, 고통, 좌절, 실패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네가 기쁨, 평안, 위안을 체험하고 창조주가 베풀어 주는 진리상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체험하리라는 점이다. 또한, 인생길에서 네가 막막함을 느낄 때, 네가 좌절과 실패를 마주했을 때, 선택을 마주했을 때, 창조주의 인도를 체험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너는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유의미한가에 대한 인식과 경험, 이해를 얻는다. 그때가 되면 너는 살면서 더 이상 막막하지 않을 것이요, 더는 두렵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자기 운명이 안 좋다고 불평하지도 않을 것이며, 팔자가 나쁘다는 느낌 때문에 다시금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만약 네가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이러한 방식으로 창조주가 네게 안배한 운명과 마주한다면 인성 방면에서 더 정상적으로 바뀔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상 인성, 정상 인성의 사유와 관점, 일을 바라보는 원칙도 생길 것이다. 당연히 이방인이 얻을 수 없는, 인생의 의의에 대한 견해와 인식도 얻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해 주신 운명이 무엇이든 우리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하심에 순종해야 한다는 걸 말씀을 통해 깨달았어요. 그게 이성을 갖춘 피조물의 모습이죠. 운명이 어떻든,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면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사는 게 제일 중요한 거였어요. 욥을 봐도 그렇잖아요. 처음에 하나님께서 정말 많은 가축과 재산을 주시고, 아리따운 딸들을 주셨을 때, 누가 봐도 좋은 팔자를 가진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욥은 그걸 누리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걸었어요. 나중에 시험이 닥쳤을 때,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온몸에 종기까지 났어요. 그게 사람이 봤을 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욥은 사람의 시선으로 보지 않았고, 그것에 반항하거나 맞서지 않았어요. 오히려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했어요. 결국 그렇게 굳게 섰을 때,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셨고, 욥은 하나님을 뵘으로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됐고, 기한이 차서 세상을 떠났어요. 반대로 저는 운명을 대하는 자세가 욥과 달랐어요. 저는 늘 운명을 바꿔 보려고 했고,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했을 뿐, 찾고 구하는 마음도,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자세도 없었어요. 그래서 더 괴롭기만 했던 거예요. 하나님의 이 말씀이 생각나더라고요. 『사람이 겪는 고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주재 탓일까, 아니면 사람의 운명이 나쁜 탓일까? 둘 다 틀렸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들이 가는 길, 사람들이 선택한 생존 방식이 근본적인 원인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제가 그렇게 괴로웠던 이유가 잘못된 길을 추구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공부해서 운명을 바꿔 보고 출세해서 편하고 부유하게 살기를 추구했고,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지속적으로 명예와 지위를 좇았어요. 그런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높은 평가를 얻고자 했는데, 병 때문에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하게 되니 팔자타령 하면서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져 있었어요. 전 명예욕, 지위욕이 너무 강했어요. 이런 생각이 들었죠. ‘명예와 지위를 얻으면 팔자가 좋은 거고, 가치 있는 삶이 되는 걸까?’ 사실 교회에서도 드러나 도태된 사람이 많잖아요. 그중에는 리더 일꾼이었던 사람들도 있는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오직 지위와 명예만 바라보고,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결국 드러나 도태된 거잖아요. 이처럼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성실하게 본분에 임하지 않으면 아무리 발탁되고 양성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아도 하나님께는 인정받을 수 없고, 결국엔 드러나 도태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몸이 아파서 하나님을 믿게 됐지만, 나중에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누리고 진리도 좀 알게 됐어요. 그 덕에 질병의 고통에 시달려 의기소침해질 때면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게 됐고, 제가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받게 된 거잖아요. 하나님께 받은 게 너무 많죠. 근데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면서 성실하게 제 본분을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제 명예와 지위를 생각할 뿐, 하나님에 대한 참된 마음이 없었어요. 그게 큰 패역이잖아요. 그제야 후회가 밀려오면서 눈물이 났어요. 그래서 기도했죠. “하나님, 제가 정말 패역한 자입니다. 계속 명예와 지위를 좇아 바른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택함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이제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순종하기를 원하고, 성실하게 제 본분을 이행하겠습니다.” 이렇게 깨닫고 나니 더는 의기소침하지 않았어요.

한동안 형제자매들을 만나지 못했는데, 그래도 매일 하나님 말씀을 보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글도 쓰곤 했어요. 물론 많이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일어서지도 못할 때면 슬프고 괴로웠었죠. 특히 영상 속에서 춤추고 찬송하는 형제자매들을 보면 ‘저 형제자매들은 건강하니까 저렇게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면서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으니 참 좋겠다. 근데 난 서 있는 것도 제대로 못 하잖아.’라는 생각에 부러웠어요. 그럴 때면 제 내적 상태가 옳지 못하다는 걸 느끼고 곧바로 제 마음을 지켜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때 이 말씀이 생각났어요. 『역할은 달라도 몸은 하나다. 각자 맡은 바 직책을 다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미력이나마 전력을 다해 생명의 성숙을 추구한다면 나는 만족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21편> 중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안배해 주신 본분은 다 다르잖아요. 그 형제자매들은 노래와 춤으로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게 정해 주셨고 저는 문서 본분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게 예비하셨죠. 각자의 역할에 따라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잖아요.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어요. 이제 더는 팔자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진리를 잘 추구하면서 제 본분을 이행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요. ‘팔자가 나쁘다’라는 잘못된 관점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끌어 주신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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