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감독을 받기 싫어하는 이유

2022.09.11

아프리카 파핏

전 새 신자 양육을 1년 넘게 했어요. 본분을 하다 보니 원칙도 어느 정도 알게 됐고, 양육에서 성과도 좀 좋았죠. 그때 전 이 본분에서 경험을 쌓았으니까 남의 도움 없이도 양육을 잘할 것 같았어요. 새 신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진리를 구하면서 해결해 줬고, 본분을 어떻게 하면 잘하는지도 알았죠. 그래서 누가 절 지도해 줄 필요도 없고, 제 사역을 감독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어요. 그러니 형제자매들의 감독과 권고를 거부했고, 새 신자 양육에 있는 문제점을 공유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제 뜻대로 사역을 해 나가곤 했죠.

어느 날 책임자 페오리가 새 신자 상황을 확인하면서 이것저것 묻더라고요. 제가 새 신자를 어떻게 예배에 참석시키는지, 어느 자매나 형제는 왜 참석을 안 하게 된 건지, 새 신자들한테 어려움이 없는지 자주 확인하는지 등등이요. 자꾸 물어보니까 불쾌했어요. 괜히 제가 본분에 무책임하고 못 믿어서 그러는 건가 해서 기분이 안 좋았어요. 결국 패괴 성품대로 자매를 무시했어요. 새 신자들이 예배에 잘 오려고 하는지 물으면 대충 ‘네’라고만 하고 구체적인 말은 안 했죠. 또 어떻게 예배에 오게 하는지 물어볼 땐 그냥 메시지로 시간을 알려 준다고만 하고 어떤 식으로 알리는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는 전혀 말 안 했어요. 또 새 신자랑 어떤 진리에 관해 교제했는지도 물었는데, 전 귀찮아서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안다고 했죠. 그리곤 제가 어떻게 대화를 했고 어떤 답장이 왔는지는 말 안 했어요. 제 답장이 시원치 않으니까 자매는 제가 새 신자를 잘 인도하는지 확인하려고 했죠. 근데 전 제가 본분을 못해서 무시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너무 불쾌하더라고요. 한번은 제가 새 신자 입장을 고려 안 하고 말하는 걸 알고 저보고 새 신자 입장을 생각해 보라면서 본인이 새 신자면 그런 말에 기분 좋겠냐고 답장하고 싶겠냐는 거예요. 자매의 말에 가슴이 찔렸어요. 겉으론 알았다고 했지만 받아들이진 않았죠. 제 생각엔 별로 문제가 없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곤 혼자 속으로 새 신자를 예배에 참석하게 하려면 어떻게 할지는 내 방법이 있다고 했죠. 또 한번은 새 신자랑 어떤 식으로 교제하냐고 묻길래 메시지를 보낸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통화를 하라는 거예요. 직접 통화하면 문제를 더 잘 파악하고, 가까워질 수 있다고요. 근데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제 방법도 좋은 것 같았거든요. 메시지로 하면 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안 했죠. 계속 대화를 했지만 전 말을 하기 싫어서 침묵하거나 짧게 말했어요. 또 누구든 저랑 새 신자 양육 문제로 상의하자고 하면 소극적이 되고 불편했죠. 전 그게 절 비웃고 깎아내리고 얕잡아보는 것 같고 본분도 제대로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제 입장에선 제 본분을 잘하고 있고 양육하는 법도 알고 있고, 저만의 방법이 있었어요. 또 제가 더 은사가 있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자매의 조언은 듣지 않았죠. 말로는 알겠다 했지만 실행하진 않았어요. 전 그냥 제 방식대로 계속 새 신자를 양육하고 소통했죠.

그러다 예배 때 말씀을 보면서 자신을 좀 알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자는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속으로는 다른 사람의 말이 진리에 부합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이다! 왜 교만하다고 말하겠느냐?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만이 아니냐? 그런 자는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하지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바로 자기를 모르는 것이고, 교만한 것이다.』(<말씀ㆍ2권ㆍ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교만한 본성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이다> 중에서) 『아무도 자신이 완벽하거나 존귀하거나 고상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교만한 성품과 무지에서 나온다. 언제나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교만한 성품에서 비롯된다. 늘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직시할 수 없는 것, 이것은 교만한 성품에서 비롯된다. 타인이 자신보다 높거나 자신보다 나은 것을 늘 용납하지 않는 것, 이것도 교만한 성품에서 비롯된다. 늘 다른 사람의 장점이 자신을 압도하거나 자신을 추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도 교만한 성품에서 비롯된다. 항상 타인이 자신보다 더 나은 생각, 제안, 견해를 갖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누군가 자신을 추월한 것을 알게 되면 소극적이 되고 말하기 싫어하며 괴로워하고 낙담하며 속상해하는 것, 이 모든 것은 교만한 성품 때문에 생긴 것이다. 성품이 교만하면 자신의 체면을 지키게 되고, 타인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신의 결점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패와 잘못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너보다 나을 때 네 마음에 미움과 질투가 일어나고 마음이 위축되어서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되고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게 된다. 교만한 성품은 네게 이러한 행동과 방식을 유발할 수 있다. 네가 이 모든 세부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파헤치고 타개하고 인식하고, 그런 다음 그런 생각, 잘못된 관념이나 관점, 심지어 행동까지 점차 저버릴 수 있고 그것들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본분을 이행할 때 네게 걸맞은 위치를 찾고 원칙에 따라 행동하며 자신이 이행할 수 있거나 이행해야 하는 본분을 이행한다면, 너희는 차츰 본분을 더 잘 이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면, 너는 다른 사람에게 사람답게 보일 것이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성실하게 처신하고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 본분을 이행할 때 천연적인 것이나 혈기, 사탄의 패괴 성품에 의존하지 않는다. 절제력을 가지고 행동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진리를 사랑하고 자신의 육과 취향을 저버렸다는 것이 행동과 말에 드러난다.” 이런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으냐! 다른 사람이 너의 결점에 대해 얘기할 때 너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낙관적이고 담담한 태도로 너의 문제와 결점을 마주하게 된다. 너는 마음 상태가 매우 정상적이고, 극단적이지 않으며, 발끈하지도 않는다. 이러면 사람다운 모습을 갖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 오직 그런 사람만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말씀ㆍ2권ㆍ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 원칙> 중에서) 전 제가 교만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말씀에 비춰 보니까 전 정말 교만하더라고요. 책임자가 새 신자 양육의 좋은 방법을 알려줘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책임자가 새 신자 상황을 물어봐도 침묵하거나 단답으로 답장을 했고요. 그게 다 제 부족함을 다른 사람한테 들키고 체면을 구기는 게 싫어서였죠. 전 제가 뭐든 잘하는 사람이고 본분에 아무 문제가 없어서 누구의 감독 없이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죠. 너무 교만했어요. 전 또 제 사역을 감독하는 자매보다 은사가 있어서 제 방법대로 양육하면 효과도 좋을 거란 생각을 했죠. 그래서 자매의 조언은 외면했어요. 저는 속으로 조언을 받아들이면 제가 못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체면도 구기고 얼굴을 못 들 것 같았죠. 그래서 알겠다 대답은 해도 그걸 실행하진 않았어요. 교만한 성품 때문에 진리와 멀어지고 타인의 조언을 거부하고 제 고집만 부렸어요. 패역한 거였죠. 그 후에 자매의 제안을 생각해 봤는데, 그것도 좋은 것 같아서 해 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직접 전화를 했어요. 통화를 해 보니까 새 신자의 문제점을 더 빨리 알 수 있었고, 바로 도와줄 수 있었죠. 자매의 제안대로 하니까 확실히 새 신자 양육 성과가 많이 좋아졌어요. 좀 부끄러웠죠. 이 일을 겪으면서 보니까 제가 본분한 기간은 좀 됐지만 부족한 게 많더라고요. 자매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역 성과도 미미했을 거예요. 저도 남보다 나은 게 없고 혼자 잘할 수도 없더라고요.

어느 날 책임자가 새 신자 상황을 물어봤어요. 왜 며칠이나 예배에 보이지 않냐고요. 설명했더니 다른 것도 물어보면서 제 본분 상황을 자세히 알려고 했죠. 전 그게 찝찝하고 불쾌하게 느껴져 아무것도 대답하기 싫은 거예요. 자매가 제 사역에 대해 캐묻는 게 싫었어요. 제가 또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 있길래 하나님께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어요. 이런 상황에 순종할 수 있고 제 패괴를 깨닫고 타인의 지적을 받게 해 달라고요. 그 후에 말씀을 봤어요.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무슨 사역을 하든 다른 사람이 끼어들고, 따져 묻고, 감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용납하지 않는다’에도 몇 가지 태도가 있다. 하나는 아예 “내 사역을 간섭하지도, 따져 묻지도, 감독하지도 마세요. 내가 무슨 사역을 하든 내가 책임져요. 나도 사리 분별이 있다고요. 다른 사람의 간섭 따위 필요 없어요!”라며 거절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직접적인 거절이다. 또 하나는 “좋아요, 사역을 어떻게 할지 우리 교제해 봅시다.”라고 말하며 겉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상대가 자기 사역에 관해 물으며 파악하려 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고 건의하려고 하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맞다.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대며 다른 사람의 건의를 거부하고, 틀린 것은 옳다고, 옳은 것은 틀리다고 말하며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실 속으로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억지고, 허풍이고, 이론이며, 상대가 말한 것만큼 실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 지위를 지키기 위해 자기가 틀리고 상대가 옳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상대의 옳은 것을 틀린 것으로, 자기의 틀린 것을 옳은 것으로 바꾸어 계속 실행한다. 그런 자는 옳은 것, 진리에 부합하는 것이 자기 선에서 관철되고 실행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 그의 목적은 무엇이냐? 다른 사람의 개입과 간섭, 감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이유가 있고, 옳은 것이고,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 부합하는 것이며, 일하는 원칙에 부합하기도 하니 리더로서 원칙을 지켰다고 형제자매가 여기게 하려는 것이다. 교회에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결국 소수다. 대다수는 확실히 분별력이 없어 그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미혹된다.』(<말씀ㆍ3권ㆍ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자신에게 순종하도록 한다(2)> 중에서) 『사탄은 일할 때 누구도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하든 다 자기가 결정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누가 감독하는 것도, 따져 묻는 것도 안 된다. 누가 끼어들고 간섭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렇게 일한다. 자기가 어떻게 하든 남이 따져 묻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아무리 밀실 공작을 해도 누구도 간섭할 권리는 없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태도다. 적그리스도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성품이 너무 교만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비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순종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사역을 감독하고 검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 이것은 진정 정상인의 행동과 아주 다른 마귀의 행동이다. 누구든 사역할 때는 다른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 조언, 협조가 필요하다. 누가 감독하고 관찰한다고 해도 이건 나쁜 일이 아니고, 꼭 필요한 일이다. 만에 하나 어떤 부분에서 실수가 생겼을 때 제삼자가 알아차려 문제를 바로 해결하게 된다면, 이는 큰 도움이 아니냐? 그래서 슬기로운 사람은 일할 때 누가 감독하고 지켜보고 따져 묻는 것을 좋아한다. 만에 하나 자기가 실수했을 때 누가 지적해 주면 제때 바로잡을 수 있으니, 이는 바라 마지않을 일이 아니냐?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폐증이나 우울증을 앓는 사람만이 독립적인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 자폐증이나 우울증에 걸리면 비정상이 되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이성도 사고도 모두 정상이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길 원하지 않고, 뭘 하든 남들에게 숨기고 싶어서 몰래 하고, 은밀히 하고, 뒤에서 하고, 밀실 공작을 하고,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해도 듣지 않는다면, 이런 자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냐?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다.』(<말씀ㆍ3권ㆍ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자신에게 순종하도록 한다(2)> 중에서) 이건 절 심판하시는 말씀이라고 느꼈어요. 제 모습은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과 같았거든요. 본분하면서 남의 조언과 감독을 받기 힘들었죠. 설령 어려움이 있어도 전 사람들한테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전 일단 저한테 주어진 일이면, 제가 책임지고 제가 결정하고, 제 방식으로 하면 된다고 여겼어요. 본분을 잘할 방법도 아니까 책임자도 필요 없고, 감독이나 조언이 필요 없다고 여겼어요. 남들의 조언은 제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 같거나 제 능력을 의심하는 것 같아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건 교만하고 어리석은 거였고, 정상인이 갖춰야 할 이성이 아니더라고요. 교만함 때문에 누구한테도 굽히지 않고 타인의 감독과 조언을 거부했죠. 늘 제가 결정하려 하고, 제 뜻대로 양육하려고 했어요. 예전엔 제 방식대로 새 신자를 체크하면서 단순히 메시지만 보내고 통화는 잘 안 했어요. 간혹 며칠씩 답장이 없으면, 전 그런 사람을 제쳐 놓고 일단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이랑 예배하곤 했어요. 결국 어떤 새 신자는 제때 양육을 못 받게 됐죠. 새 신자는 연약해서 언제든 실족될 수 있는데, 이미 그룹을 나간 사람도 있었어요. 제가 행한 게 적그리스도랑 같더라고요. 적그리스도도 감독을 안 받으려고 하고 조언 같은 건 안 듣잖아요. 모든 걸 자기가 통제하려고 하고 자기만의 방식과 관점에 따라 일을 하려 하고 복종할 줄 모르고, 누구와도 협력해서 사역하려고 하지 않아요. 보니까 제가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있었어요. 두려웠어요. 계속 그러면 하나님께서 증오하실 것 같았죠. 하나님께 증오받은 자는 하나님의 원수고 삶의 가치도 없는 거잖아요. 하나님 말씀을 보면 어떤 사람이든 완벽하지 않고 부족한 면이 있댔어요. 그래서 남의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한 거고, 협력자가 있어야 본분도 잘할 수 있다고요. 책임자가 사역을 체크하고 조언을 해 주는 건 절 도와주는 거죠. 실행해 보면 아주 실용적이었는데, 받아들이기 싫었어요. 그렇게 하면 교회 사역에 손해가 갈 수밖에 없는데, 그건 심각한 일이잖아요.

그 후에 말씀을 봤어요. 『누군가가 너를 좀 감독, 관찰하거나 깊이 있게 파악하며 마음을 나누면서 요즘 너의 내적 상태가 어떤지 살피려 하고, 심지어 가끔은 엄한 태도를 보이면서 너를 훈계하고 책망하고 징계하고 꾸짖는 것은 모두 하나님 집의 사역을 참답고 책임 있게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너는 어떠한 부정적인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를 대해서도 안 된다. 사람의 감독과 관찰, 파악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네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뜻한다. 만약 네가 사람의 감독, 관찰, 파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에 저항한다면 하나님의 감찰은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감찰은 사람이 알아보는 것보다 훨씬 세밀하고, 심도 있고, 정확하다. 하나님의 요구는 훨씬 구체적이고, 엄격하고, 심도 있다. 하나님 선민의 감독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너의 그 말은 빈말에 지나지 않겠느냐? 네가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검증을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먼저 하나님 집, 리더 일꾼이나 형제자매들의 감독을 받아들여야 한다.』(<말씀ㆍ4권ㆍ리더 일꾼의 직책> 중에서)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선민들의 감독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그릇이 크고 마음이 넓어야 한다. 누군가가 너를 감독하며 네 사역을 검사하거나 뒤에서 너를 조사한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람을 적으로 대하고, 경멸하고, 심지어 내부 첩자나 배신자로 여겨 공격하고, 처벌하고, 그 사람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이건 큰일이다. 이건 너무 악랄하지 않으냐? 이게 마왕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 이것이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이냐? 네가 바른길을 걷고 바르게 행한다면 다른 사람이 너를 조사하는 것을 겁내겠느냐? 역시 네 마음속에 꿍꿍이가 있는 것이다. 네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이성적이다. 네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이 너를 감독하고, 네 사역을 검사하고, 네 문제를 조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 비이성적이다. 너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이다. 그럼 네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하나님 선민이 너를 악인, 불신파로 분별한다면, 그 결과는 더 위험하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감독과 검사, 조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고, 그릇이 크고, 정상적인 인간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너 스스로 잘못된 행동을 한 것, 패괴 성품을 드러낸 것을 알아차렸을 때 모두에게 마음을 열고 교제할 수 있어야 주변 사람이 너를 감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감독을 받아들이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수시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다. 특히 네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잘못된 일을 할 때, 네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때 누군가 곁에서 지적하고 일깨워 준다면 반드시 그것을 받아들이고, 얼른 자신을 반성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면 너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너를 도와주고 일깨워 준다면 그것은 알게 모르게 너를 지켜 주는 일이 되지 않겠느냐? 그건 분명 너를 지켜 주는 것이다.』(<말씀ㆍ2권ㆍ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형제자매의 감독을 받는 중요성과 유익함을 알려 주셨죠. 예전엔 감독을 받는 유익함이 뭔지 몰라서 감독자에 대해서 불쾌감이 들었어요. 전 그걸 제 사역을 통제하거나 절 무시하는 걸로 여겼어요. 저는 누가 제 사역을 체크하면 마치 제가 무책임하고 능력이 안 되는 걸로 보고 본분을 잘 못하는 걸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독을 받지 않으려고 했던 거예요. 근데 말씀을 보니까 제 관점은 진리에 어긋나는 거더라고요. 제 사역에도 부족한 게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보완을 해야죠. 근데 전 감독받지 않으려 했으니 어떻게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고 사역을 완수할 수 있겠어요? 제 사역 상황을 물어보는 건 중요한 거죠. 다 사역에 책임감이 있어서고, 자기 본분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침묵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마음 문을 열고 사역의 어려움과 상황을 말해 주는 게 맞는 거죠. 그게 교회 사역에 이로운 거고요. 감독을 받으니까 제 부족함을 보게 됐고, 제가 원칙대로 본분하는지도 반성할 수 있었죠. 이젠 하나님 뜻을 깨달았어요. 자매가 자주 제 사역을 감독하면 저의 뜻대로 새 신자를 오도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돼요. 그게 하나님의 보호죠.

또 이 말씀을 봤어요. 『너희가 말해 보아라, 완벽한 사람이 있느냐? 아무리 강대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능력과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사람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사실이자 사람이 자신의 장점이나 결점을 정확히 대할 때 갖춰야 하는 태도이며,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하는 이성이다. 네가 이러한 이성을 갖추고 있으면 자신의 장점과 결점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장점과 결점도 정확하게 대할 수 있다. 이러면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다. 네가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닫고 이 방면의 진리 실제에 진입하면 형제자매와 함께 조화롭게 지내면서 서로의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너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어떤 일을 하든 점점 더 잘하게 되어 하나님의 축복이 있게 된다.』(<말씀ㆍ2권ㆍ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알았어요.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아무리 강해도 단점이 있고 도움이 필요한 거죠. 우리가 어떤 본분을 하게 되든 형제자매의 도움과 협력이 없이는 안 돼요. 더구나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돼서 늘 패괴 성품대로 일할 수 있으니까 형제자매의 일깨움과 감독을 받아야 해요. 그래야 원칙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어요. 형제자매들이 제 사역에 대해 알아볼 때는 전 그걸 개선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해야 하고 남의 장점으로 제 단점을 보완해야 해요. 그게 저와 교회 사역에 이로운 거고요. 또 분명한 건 전 잘난 게 없고, 감독하는 자매보다 나은 것도 없어요. 당연히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제 잘못은 바로잡고 자신의 단점을 밝히고 도움을 구하는 게 정상 사람의 이성이더라고요. 이걸 깨닫고 전 잘못된 관점을 내려놨어요. 전 양육을 잘하니까 감독이 필요 없다 생각하지 않았죠. 오히려 전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인 게 느껴졌어요. 그 후로 형제자매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자매가 뭘 묻거나 새 신자들 상황을 체크할 때면 전 마음을 열고 자세하게 알려 줬어요. 그렇게 실행하니까 본분 성과도 좋아졌어요.

어느 날 자매가 새 신자 상황을 묻길래 전 빠짐없이 다 얘기해 줬어요. 새 신자가 아직 확실히 뿌리내리지 못한 원인도 설명해 줬고, 또 자매가 해 주는 말은 다 메모하고 실행했어요. 해 보니까 조언을 받아들이는 건 좋더라고요. 가끔 자매가 제 부족함을 지적하면 당장은 못 받아들여도 다 절 도와주는 거란 걸 아니까 소극적이 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구했어요. 그게 저랑 교회 사역에 더 이롭고 유익한 거죠. 제 책임은 새 신자를 잘 양육해서 참도에 뿌리 내리게 하는 거예요. 앞으로 감독을 받아들이고 본분을 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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