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응어리를 풀다
작년 봄에 저는 복음 전하는 본분을 했고 왕 자매가 복음 집사로 뽑혀서 저희는 자주 본분에 대해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왕 자매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솔직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한테 무슨 문제가 보이면 바로 말했고 말투도 좀 강했어요. 형제자매 본분 이행에 대해 파악할 때도 그 자매는 가끔 다 있는 앞에서 제 본분에 대한 문제들을 직설적으로 지적해 저를 정말 난처하게 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그런 지적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죠. 그 자매도 본분에 책임감을 가지고 그러는 거니까요. 근데 계속 그러니까 못 받아들이겠더라구요. 저는 열심히 노력하면서 본분을 하고 있는데 왜 부족한 면만 보나 싶었죠. 한번은 모임에서 어떤 복음 대상에 대해 묻는 거에요. 저는 여러 번 복음 전해도 관념이 많은 사람이라 어려울 것 같아서 내려놨다고 했어요. 그러니 듣고는 다 있는 앞에서 책망하는데, 저보고 사람을 상상으로 규정한 거 아니냐고 노력도 안 하고 어떻게 그걸 아냐는 거에요. 복음 전도 원칙에만 맞으면 바로 교제하고 증거해야 한다고 그렇게 무성의하고 무책임하면 본분을 잘할 수 있겠녜요. 그 자매 표정이나 말투가 딱딱하니 못 받아들이겠더라구요. 그때 형제자매들이 다 저를 쳐다보는데, 정말 너무 창피했어요. ‘그게 내가 잘못하긴 했는데 이게 이렇게 다 있는 앞에서 질책할 일은 아니지 않나? 이러면 다 내가 본분에 책임감도, 부담도 없다고 생각하잖아. 원래 다들 나에 대해서 좋게 봤었는데 복음 대상한테 바로 가서 전도하지 않은 일로 한순간에 나를 다 부정해 버리면 내 체면은 뭐고 앞으로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보나?’ 제가 체면 때문에 변명을 좀 하니까 왕 자매가 직설적으로 그러는 거에요. “자매님, 제가 부족한 점을 지적해 줄게요. 자매님은 일이 생기면 항상 변명을 하고 도움과 지적을 안 받아들여요. 이러면 본분을 잘할 수 있겠어요?” 그 말을 듣는데 더 화가 나서 ‘이 자매, 너무 교만한 거 아닌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감정은 전혀 생각을 안 하지? 형제자매들 다 보는데, 날 망신 당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가? 작정하고 나를 본분에서 무책임한 사람으로 만들고 변명만 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네. 이제 다들 날 어떻게 보겠어? 이러면 누가 날 믿어주고, 좋게 보겠냐고?’ 그때 제 얼굴은 빨게지고 화도 나고 억울해서 자매를 퉁명스럽게 쳐다봤어요. 겉으론 아무 말 안 했지만 그 자매한테 너무 반감이 들었고 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었어요.
그 후로는 왕 자매한테 편견이 생겨 버렸어요. 그 자매 말은 다 듣기도 싫고, 보고 싶지도 않았죠. 같이 사역에 대해 얘기할 때면 저는 아무 말도 안 했고 가끔 어쩔 수 없을 때만 그냥 몇 마디 대답했죠. 그 자매가 제 본분의 문제를 또 지적하면 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아무 말도 안 했어요. 형제자매와 예배드릴 때면 제 체험을 교제하는 척하면서 그 자매의 패괴들을 말하곤 했어요. 다들 그 자매가 교만하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하길 바랬고, 그 자매한테 정말 책망하고 훈계하면 좋겠는 거에요. 한번 좀 망신당했으면 했죠. 절 건드렸고, 다 있는 데서 난처하게 했으니까요. 제가 그렇게 말하고 다녀서 그 자매를 부정적으로 보는 형제자매들이 생겼어요. 문제가 생겨도 그 자매랑 상의하려 하지 않고 다들 조금씩 멀리했죠. 이런 상황을 보니까 저도 좀 불편하고 자책이 됐어요. 사실, 그 자매가 직설적이긴 해도 본분에서는 부담이 있었거든요. 제가 형제자매를 이끌어 그 자매를 멀리하고 반감 갖게 하는 건 본분에 안 좋잖아요. 근데 예전의 그 일만 떠올리면 마음이 막 불쾌해지고 갈등을 내려놓을 수 없었어요. 나중에 자매도 제가 멀리한다는 걸 알고 별로 말을 안 했어요. 저한테 말을 걸 때마다 눈치를 보는데, 되게 어색했죠. 그 자매를 보니 제가 너무 한 건가 속으로 좀 가책이 느껴졌어요. 제가 이러는 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닌가 싶었죠. 근데 형제자매들 앞에서 난처하게 만든 일만 생각하면 속에서 화가 올라와서 상대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전 흑암 속에 살면서 기도해도 할 말이 없고 본분 효과도 계속 나빠졌어요.
하루는 리더가 왕 자매에 대해 평가서를 쓰라는 거에요. 그러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써야 하는데 속에 그 자매에 대한 미움이 남아 있어서 불만과 편견을 있는 그대로 다 적었죠. 어, 그 자매는 사랑이 없다, 말과 행동이 도움은 안 되고 상처를 준다… 쓰면서 리더가 이걸 보고 왕 자매를 책망해 그 자매도 한번 망신당했으면 좋겠구 더 이상 안 보게 교체됐으면 좋겠더라구요. 근데 다 쓰고 나서 마음이 좀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가책이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같이 본분을 이행하던 일들이 떠올랐어요. 사실 그 자매는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고 책임감 있고 성실했어요. 그 자매가 복음 집사 본분을 맡은 후로 복음 사역의 효과가 전보다 많이 좋아졌죠. 근데 평가서에 그런 장점들은 그냥 간단히 쓰고 전혀 공평하지 않게 대한 거죠. 생각할수록 너무 괴로워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 마음이 어둡고 괴로워요. 저도 제가 틀린 거 알아요. 근데 도저히 그 자매와 같이 지낼 수가 없어요.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하나요? 저를 깨우쳐 주셔서 제 부족함과 패괴를 알고 그릇된 상태에서 나올 수 있게 해주세요.”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봤어요. 『일상생활에서 너희는 어떤 일,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또 어떤 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느냐? 너희는 다른 이를 미워할 수 있느냐?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를 혼내거나 복수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럼 너희는 참으로 무섭구나! 너희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너희의 성품이 매우 나쁘고 심각하다는 뜻이다. … 네 마음에 들지 않고 너와 맞지 않는 사람을 보면 너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혼내 주겠느냐?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있느냐? 했다면 얼마나 해 보았느냐? 늘 변죽을 울리면서 상대를 깎아내리고 빈정대고 비아냥거리지는 않았느냐? (그랬습니다.) 그럼 그런 행동을 할 때 너희 마음속 상태는 어떠했느냐? 그 당시에는 분이 풀려 통쾌하고 우위에 섰다고 생각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비열한 행동이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었고. 남을 그렇게 대하는 건 불공평한 일이야.’라며 자책이 들지 않더냐? (그랬습니다.) 너희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없어도 양심 지각은 좀 있구나. 그럼 앞으로도 그런 일을 하겠느냐? 누군가가 증오스럽고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또는 네 말을 듣지 않고 네게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공격하고 복수하려 하고, 괴롭히거나 본때를 보여 주려고 할 수 있겠느냐? 또 “당신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는 기회를 봐서 아무도 모르게 당신을 괴롭힐 거야.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당신이 내게 고개 숙이게 하겠어.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보여 주겠어. 또 누가 감히 나를 건드릴지 보자고!”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은 어떤 인성을 가진 사람이겠느냐? 악독한 인성을 가진 사람이다. 진리로 따지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상태> 중에서) 아멘 말씀을 보고 정말 찔렸어요. 지난 일을 돌아보니 왕 자매가 형제자매들 앞에서 제 부족함을 바로 지적해 책망 훈계한 일로 저는 제 체면을 구기고 모두한테 제 이미지가 망가졌다고 생각해 그 후로 편견이 생겼죠. 그 자매가 뭘 하든 반감이 들고 분노가 일었어요. 게다가 예배 때는 그 자매에 대한 편견을 퍼뜨리고 평가서를 쓸 때는 이런 일 때문에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그 자매에 대한 편견과 불만만 썼고 리더가 빨리 자매를 교체하거나 아니면 책망 훈계를 해서 난처해하는 걸 보며 울분을 풀려고 했죠. 저는 제 체면을 구겼다고 자매한테 앙심을 품고 보복하고 제가 무서운 걸 알고 함부로 못하게 하려고 했죠. 아무도 못 건드릴 정도로 횡포하고, 너무나 악독한 제가 보였어요. 전 사탄 성품에 따라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했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었구요. 저의 부족한 면을 왕 자매가 지적해 준 걸 생각하면 사역에 대해 책임지는 거고 저에게 자신을 알도록 도와주는 거였어요. 근데 전 오히려 그 자매를 공격하고 배척하고 상처를 줬고 저 때문에 형제자매들도 왕 자매와 협력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러니 복음 사역에도 영향이 갔는데, 하나님 집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 거죠. 정말 비열하고 악독했어요.
그 후에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어요. 『사람의 내면에는 ‘네가 나를 어질게 대하지 않으면 나도 너를 의롭게 대하지 않겠다. 네가 무례하게 구는데 나라고 가만히 있을쏘냐? 네가 내 체면을 봐주지 않는데 내가 왜 네 체면을 세워 줘야 한단 말이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어떤 생각이냐? 앙갚음하려는 생각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과 관점이 보통 사람이 보기에 성립되지 않으냐?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그 사람의 방식으로 그 사람을 다루는 것’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통하는 이치로, 사람의 관념에 완전히 부합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 진리를 깨닫기를 원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보기에 이런 말들이 옳은 것 같으냐? 어떻게 분별해야겠느냐? 이러한 것들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의 악독한 본성에서 왔다. 그 속에는 독이 들어 있고, 사탄의 악독하고 흉측한 진면목이 들어 있다. 바로 그런 본성과 본질이 들어 있다. 그러한 본성과 본질이 들어 있는 관점, 생각, 표출, 말, 나아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이런 것들의 성질은 무엇이냐? 사탄에게 속한 것 아니겠느냐? 사탄에게 속한 그런 것들이 인성에 부합하겠느냐?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진리의 실제에 부합하겠느냐? 그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해야 할 행동이고 지녀야 할 생각이며 관점이겠느냐? (아닙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부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에서)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를 섬기라고 요구했던 것처럼 나는 너희가 조화롭게 협력하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너희의 섬김을 멈추게 할 것이다. …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개인의 이익을 생각하지 말고 범사에 교회의 이익을 지켜야지, 혼자 마음대로 행동하거나 서로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행동하는 자는 하나님을 섬길 자격이 없다! 이러한 자는 성품이 극도로 악하여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는데, 영락없는 사탄이자 짐승이다! 너희 가운데는 지금도 이런 일이 있다. 심지어 교제 중에 서로를 공격하며 고의적으로 변명 거리를 찾는다. 사소한 일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고 누구도 자신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으며 서로 앙심을 품은 채 상대방을 관찰하고 경계한다. 이러한 성품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이스라엘인의 섬김을 본받아야 한다> 중에서) 말씀의 폭로와 심판을 통해 왜 제가 복수할 수 있는지 알게 됐어요. 그게 다 사회 영향으로 물든 사탄 독소 때문이었죠.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면 나도 똑같이 갚아줄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내가 세상을 버려도 세상이 나를 버릴 순 없다.” 이런 사탄의 처세 철학과 생존 법칙들을 제 속에 주입했던 거였어요. 이걸 긍정적인 것들이라 여겨 이런 철학에 따라 살고 항상 제 중심으로 살았어요. 모두가 언행에서 절 배려하고 편하게 해주길 바랐고 맞는 말, 정확한 의견도 못 내게 하고 제 패괴를 드러내면 더 안 됐죠. 일단 제 이익을 침해하면 원수처럼 생각해 공격하고 복수했어요. 제 화를 풀 수 있으면 뭐든 했죠. 사탄 성품에 지배당하니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악독해져 사람이 아닌 거에요. 하나님도 사람도 증오하는 사탄의 모습 그대로였죠. 하나님께서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하라고 하셨잖아요. 언행에서 경외심이 있어야 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하고, 하나님 집 이익을 중시하고 자신의 체면 이익은 따지지 말아야 자매와 한마음으로 본분을 잘할 수 있어요. 근데 전 사탄 독소에 따라 늘 체면만 생각했어요. 대충 본분하고도 다른 사람이 사실을 말 못하게 하고 왕 자매가 지적해 도와줬지만 그걸 모욕이라고 여겨 반성하고 인식하긴커녕 그 자매를 공격하고 복수를 했죠. 정말 인성이 없고, 막무가내였어요. 진리를 싫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제 사탄 본성이 보였어요. 그 본질은 진리와 하나님을 적대하는 거죠. 근데 회개 안 하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도태될 거에요. 이걸 깨닫고 나서 제 자신이 너무 미워 하나님께 회개하며 기도했어요. 자매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며 자매와 조화롭게 본분하겠다고 했어요.
조화로운 협력 방면의 진리를 찾고 구하다 말씀 낭송 영상을 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과 증오는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것이지만, 너희는 애증을 분명히 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 긍정적인 사물,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사탄과 마귀 부정적인 사물, 적그리스도, 악인들을 증오해야 할 것이다. 형제자매에게 증오심을 품는다면 남을 억압하거나 복수하기 쉽다. 이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미워하는 생각, 악한 생각만 지니고 있고, 시간이 흘러 다른 사람과 맞지 않으면 그들을 멀리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그 사람의 본분 이행이나 정상적인 인간관계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이는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며, 하나님께 죄를 짓고 싶어 하지 않고, 또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어떤 견해가 있을지라도 행동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고, 선을 넘는 말조차 하지 않으며, 이런 일에서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는다. 이는 어떤 태도겠느냐? 사람으로서 처신할 때 원칙이 있고, 공적인 일은 공정하게 처리하는 태도다. 네가 비록 그와 성격이 맞지 않고 그 사람을 싫어할지라도, 함께 일할 때는 공정하게 원칙대로 임하며, 본분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지 않고, 본분을 희생시키지도 않는다면, 하나님 집의 이익을 놓고 분풀이를 하지 않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괜찮은 사람은 상대에게서 문제점이나 약점을 발견했을 때, 그가 너에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너의 이익을 해한 적이 있다 해도 그를 도와줄 수 있다. 이는 더 훌륭한 태도이며, 이런 자가 바로 인성과 진리의 실제를 갖춘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지금 네 분량이 여기에 미치지는 못해도 일 처리에 원칙이 있고, 사람으로서 처신하거나 남을 대할 때도 원칙이 있다면, 이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상태> 중에서) 말씀에서 애증이 분명하고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랬어요. 상대가 악인, 적그리스도라면 마땅히 폭로하고 내쳐야 하구요. 근데 상대가 진리를 좋아한다면 성품이 좀 교만하고 결점과 문제가 좀 있어도 바른 마음으로 포용하고 인내하고 사랑으로 대해야죠. 왕 자매는 단도직입적이고 직설적이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지만 지나보면 자매가 말한 게 사실 맞아요. 지적해준 것도 제가 몰랐던 부분이구요. 그땐 체면을 구긴 것 같아 좀 괴로웠지만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통해 제 허영심을 책망하고 제 본분을 감찰하고 지적하신 거였어요. 본분을 진지하게 대하고 실무에 힘쓰고 문제를 제때 바로잡게 하신 거죠. 그러니 다 좋은 거죠. 만약 아무도 지적해 주지 않으면 생명 진입과 본분 이행에서 어떻게 성장하겠어요? 미움 사는 걸 두려워 않고 그 자매는 바로 지적해 줬는데, 그게 정의감이고, 사랑으로 도와주는 거죠. 또 그 자매는 부담도 있고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어요. 그런 자매를 공격했으니 제가 인성이 없는 거죠.
그 후에 또 말씀 낭송 영상을 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늘 남에게 문제가 있는지만 살피지 말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상대에게 자신이 한 어떤 일들이 방해되거나 상처를 주었는지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마음을 열며 교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밖에도 어떻게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향해 교제할지 늘 함께 교류해야 한다. 언제나 이런 생활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 형제자매 간의 관계가 정상적이 되며, 이방인들처럼 몹시 복잡하고 냉정하고 냉혹하고 잔인한 관계에서 벗어나 달라질 수 있다. 형제자매들의 사이는 더 친해지고 가까워질 것이며, 서로 붙들어 주고 사랑할 수도 있다. 또 마음속에 선한 생각을 품거나 상대에게 관용과 연민을 베풀 수 있으며, 서로 보살피고 붙들어 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서로 다투고 억누르고 질투하고 몰래 경쟁하고 무시하고 경시하거나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이런 마음가짐과 상태 없이 말이다. … 그러므로 반드시 먼저 형제자매들과 화목하게 지내며 서로 포용하고 관용을 베푸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장점과 좋은 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이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는 가장 기본적인 실행 원칙> 중에서) 말씀을 통해 알았어요. 누가 지적하고 도움을 줄 때 말투나 태도가 어떻든, 그게 제 뜻에 부합하든 먼저 자신을 내려놓고 받아들여야죠. 그땐 이해 안 돼도 혈기로 상대를 공격해선 안 되고 마땅히 하나님 앞에 와 기도하며 구해야죠. 모든 일에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고 다 생명 진입에 필요하고 배울 공과가 있으니 마땅히 먼저 순종하고 자신을 반성해야죠.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찾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구요. 다른 이와 지낼 때는 그 사람의 장점과 좋은 점을 많이 보고, 갈등이나 벽이 생기면 자신을 반성하고 진리를 구해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털어놔 마음을 열어 보여 줘야 해요. 이게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자 원칙이에요.
그 후에 먼저 왕 자매한테 가서 제가 드러냈던 패괴와 어떤 짓을 했는지 다 털어놨어요. 그러니 너무 자유해지고 서로 간의 벽도 사라졌어요. 나중에 또 왕 자매랑 협력하게 됐는데 전처럼 직설적이고 제 체면을 구기기도 했어요. 그러니 또 반발심이 생기면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을 내려놓고 받아들이면서 저 먼저 성찰하고 상대의 의견을 들었죠. 이렇게 실행하니까 편견도 안 들더라구요. 자매와도 더 좋아졌구요. 조화롭게 협력하니까 복음 사역의 성과도 좋아졌어요. 이번 일에서 저는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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