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가운데서 얻은 수확

2022.01.29

중국 리양

2020년 구정 후 전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어요. 구치소에서 신체검사를 받는데 폐에서 그림자가 발견됐죠. 그땐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하던 시기라 구치소는 절 거부했고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가족에게 저를 데려가라고 했어요. 집에 가는 길에 누나가 하는 말이, 작년에 아버지가 크게 아프셨는데 검사해 보니 방광암이었고 수술만 6시간 했대요. 콩팥 한쪽을 반이나 절개해 목숨이 위험할 뻔했구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건강을 위해 매달 방광에 약을 투여해야 하는데 얼마나 더 사실지는 모른댔죠. 누나가 울면서 2년간 있었던 일들을 말해 주더라구요. 얘기를 듣고 말할 수 없이 괴로웠어요. 그래서 조용히 기도했죠. “하나님, 이런 상황이 닥친 것에는 당신의 뜻이 있습니다. 당신을 원망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게 제 마음을 지켜 주십시오.”

집에 도착해 아버지를 뵈니 약해지고 얼굴은 부은 게 제가 떠날 때 본 거랑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마음이 더 씁쓸했죠. 거기다 과수원의 나무들은 작년 가뭄으로 대부분 죽어 있었어요. 아버지 병을 고치려고 집의 돈도 거의 다 써 버리고 유일한 수입원인 과수원도 그 지경이라 생활이 어려웠어요. 그 모습에 마음이 무겁더라구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니 속으로 하나님이 원망되는 거에요. 몇 년 전, 저는 신앙 때문에 붙잡혀 한 달간 옥살이를 한 적이 있었어요. 풀려나서는 계속 타지에서 본분을 했죠. 그러니 헌신하고 고생했는데 집에 이런 일이 생기니까 생각할수록 힘이 빠졌죠. 이 상황을 어떻게 겪어야 할지 막막하고 뭘 해도 기운이 안 났어요. 그저 전염병이 끝나면 빨리 돈 벌 생각뿐이었죠. 그런데 얼마 후, 형제자매한테 편지가 왔어요. 집은 위험하니까 다른 곳으로 피하란 내용이었죠. 경찰이 전염병 때문에 절 그냥 둔거지 언제든 또 저를 잡아갈 수 있거든요. 집을 떠나는 편이 더 안전했고 그러면 교회 생활과 본분도 할 수 있죠. 근데 집안 사정 때문에 본분을 안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안 가겠다고 답장을 했어요. 근데 그러고 나서 자책감이 들었는데 더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음날, 오토바이를 타고 밭일을 가는데 넘어져 버렸어요. 전 그게 바로 하나님의 경고인 걸 느꼈어요. 그래서 기도했죠. “하나님, 사탄의 패괴 속에 살며 반항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자신을 알고 이 상황에서 순종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기도 후에 이 말씀을 봤어요.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애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없고 베풂과 연민만 있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 상황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겠느냐? 또 이런 관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확신컨대, 모두가 복을 받는 기쁨에 도취되어 있을 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난감하고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말씀에서 드러내신 게 저의 모습이었어요. 정말 부끄러웠죠. 아버지는 중병에 걸리시고, 과수원 나무들도 다 죽고 집안이 가난해지니까 하나님을 원망했고 그분께 따지기도 했어요. 그동안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고, 감옥에 갔어도 배반한 적이 없으니 저와 가정을 지켜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보니까 전 본분하며 성품 변화를 추구하고 진리를 얻으려 안 하고 제 헌신과 하나님의 복을 교환하려 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본분을 이행했다고 노골적으로 거래를 한 거죠. 그렇게 본분을 하는 건 세상에서 일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그저 이익을 얻기 위한 거지 진심이라곤 없어요.

전 감사하게도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말씀의 공급과 양육을 누리며 하나님의 심판을 체험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너무나 큰 복이죠! 근데 전 본분을 잘해 그 사랑에 보답할 생각이 없었어요. 일이 생기니 진리를 구해 굳게 설 생각은 않고 온통 제 이익만 생각하고 제 득실만 따졌어요.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하며 본분도 하기 싫어했어요. 이게 배신이죠. 보니까 전 인성이 없더라구요.

그 후에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고통 없는 인생은 없다. 어떤 사람은 가정 때문에, 어떤 사람은 직장 때문에, 어떤 사람은 결혼 때문에, 어떤 사람은 병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고통받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왜 사람은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한평생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통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까?” 그러면 안 된다. 누구든 다 고통받아야 한다. 고통받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육체적 삶이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느낌을 체험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 등 다양한 느낌과 이해를 갖게 한다. 이런 것은 모두 인생의 체험이 된다. 네가 그 가운데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요구하는 기준에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이것도 사람의 경험을 쌓기 위한 한 측면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이 역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책임이다. 무슨 책임일까? 너는 마땅히 그 고통을 받아야 하고 그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고 견딜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간증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1)> 중에서) 이 말씀에서 알았어요. 하나님을 믿는 것과 상관없이 다 삶에서 여러 고난과 어려움을 만나요. 우리 각자가 일생 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과 좌절을 겪을지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거죠. 하나님은 사람이 삶을 살며 여러 경험을 하고 고난받는 의지를 단련하도록 살면서 여러 고초를 겪게 하세요. 이건 우리에게 주신 책임이기도 하구요. 그때 전 아버지의 병에 생활고까지 겹쳐 좀 힘들게 보냈지만 하나님은 괴롭게 하려는 게 아니라 제가 잘못된 점을 고치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가도록 복을 바라는 제 관점을 드러내신 거였어요. 근데 하나님 뜻을 모르고 계속 하나님께 따지고 반항했어요. 너무나 패역했고, 하나님의 고심을 저버린 거죠. 그러니 원망 말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이런 상황에서 굳게 서야죠.

그 후 혼자 반성해 봤어요. 하나님을 오래 믿어서 사람이 하나님 믿는 건 불변의 진리고 거래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어째서 저도 모르게 복을 바라며 거래를 하는지 그 근원이 궁금했어요. 나중에 말씀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라는 말은 사람의 본성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다. 결론적으로 전부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서 모든 것은 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복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많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람의 패괴 본성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다르다. 그런 사람은 ‘진리대로 사는 삶이 의미 있어.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사람됨의 근본이야.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건 당연한 직책이야. 만일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그 사랑에 보답하지도 못한다면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사람이 자신을 위해 살면 너무 공허하고 의미 없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해, 사람의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살아야 해. 의미 있는 삶을 살면 죽더라도 만족스럽고 조금도 후회 안 해. 헛되이 살지 않았으니까.’라고 생각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외적인 변화와 성품 변화의 차이> 중에서)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으며 복을 추구했던 저를 드러내셨어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사탄 독소가 제 속에 뿌리박혀 있어 무슨 일을 하든 제 이익을 고려하고 이걸 우선으로 하도록 지배했던 거예요. 지난 몇 년간 공산당의 박해로 계속 떠돌면서도 본분을 했었는데 사실 진심으로 헌신하며 본분한 게 아니었어요. 하나님께 축복과 아름다운 종착지를 얻으려는 거였죠. 그러다 집에 일이 생기고 생활고까지 닥치니 복을 바란 욕망은 깨지고 소극적으로 돼 본분도 거부했어요. 이제 보니까 제가 본분을 한 건 하나님의 큰 축복으로 바꾸기 위해 치른 약간의 대가였음을 깨달았죠. 늘 계산하며 하나님을 이용했어요.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했어요!

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는 말씀이 있잖아요. 정말 맞아요. 겉으론 아주 헌신하고 고생하며 본분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말씀의 심판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껏 성품이 변하지 않았던 거에요. 관념에 안 맞는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거역하기도 했구요. 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어요. 저는 제 배를 불리고 그저 헌신을 이용해서 천국에 가려는 교계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바울과 같은 길을 간 거죠. 진정 진리와 성품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본분하며 거래하지 않아요.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통해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기만 하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려 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며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아름다운 증거를 한 베드로처럼요. 그래야 하나님께 인정받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요.

그 후에 말씀 낭송 영상을 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할 뿐 진리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에 도태될 것이다. 그런 자는 진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변화되지 않은, 화를 입을 대상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것에는 불순한 것들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악으로 가득 차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어요. 본분을 이행하는 건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거부할 수 없는 책임이에요. 여기엔 거래의 불순물도, 이해관계도 없죠.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처럼 불변의 진리이자 당연한 거죠. 본분하며 체험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로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변화돼야 구원받고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어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오래 믿고도 패괴 성품에 전혀 변화가 없고 늘 거래의 속셈을 갖고 본분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헌신했든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도태될 거예요. 그때 재산과 자녀를 잃었지만 원망하지 않았던 욥이 떠올랐어요. 그는 자신의 모든 건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하나님이 거둬가려 하실 때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욥이 그랬잖아요.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 욥은 하나님이 상을 주시든 가져가시든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게 본분인 걸 알았죠. 욥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섰어요. 진정한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죠. 욥을 본받아야지 자신이 헌신한 걸 가지고 하나님께 달라고 해선 안 되는 거죠. 본분을 자신의 책임과 의무로 여겨야 해요. 그래야 양심과 이성이 있는 거죠.

그 후에 경찰이 저를 잡으러 와 저는 집을 떠나 한 형제님 집에서 지냈어요. 그리고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너는 네 몸과 마음, 그리고 너의 모든 참된 사랑을 하나님께 바치고 내놓으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또한, 육적인 것이나 가정,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해야 하며, 모든 것에 있어 하나님 말씀을 원칙과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올바른 마음가짐과 관점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실제’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중에서) 말씀에서 실행의 길과 방향을 알려 주셨어요. 자신의 가정과 육적인 이익만 생각해선 안 되죠. 마음을 바르게 하고 본분을 잘하기 위해 마음과 힘을 써야 해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저는 마음을 차분히 하고 말씀을 봤어요.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본분을 이행하게 됐어요. 하나님의 심판으로 저는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았고 올바른 목표를 추구하게 됐어요.

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콘텐츠

지위의 굴레에서 벗어나니 홀가분하네

저는 량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받아들인 지 벌써 6년이 되었지요. 한번은 교회 선거에서 제가 교회 리더로 선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저는 뜻밖이기도 하고 흥분도 되어 ‘이렇게 많은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내가 교회 사역을 책임지는 리더로 선출되다니, 이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는 의미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이의 이야기

필리핀 조이 오늘의 이야기는 필리핀의 조이라고 하는 한 자매의 체험입니다. 자매는 인간관계에서 늘 감정에 휘둘려서 자기한테 잘해 주면 무조건 잘해 줄 뿐 사람을 분별하지도 않고 원칙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일을 겪으면서 예전에 자신이 지켰던...

고난 속에서 순종을 배우다

중국 쓰촨 리양2008년 초, 아들의 귀 뒷면에 멍울이 생겨서 병원에서 검사를 했더니 종양이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이런 종양이 특히 뼈를 갉아 먹는다면서 당장은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지만, 특효약이 없어서 치료도 잘 안 되는, 상당히 고생스러운...

다른 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배우다

프랑스 쓰위안2년 전 교회에서 리더 본분을 할 때였습니다. 당시 교회의 천 형제는 자질이 뛰어났으나 성품이 너무 교만하고 자기를 드러내기를 좋아했습니다. 제 눈에는 그런 천 형제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그 형제가 저한테 와서 양육...

댓글 남기기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