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 이행이 왜 거래가 되었을까?
2008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말세에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이 죄악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며,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들어가기 위해 성육신으로 진리를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우 감격한 저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열심히 본분을 이행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 리더는 제게 새 신자를 양육하는 일을 안배해 주며 예배팀 몇 개를 담당하게 했습니다.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저는 수년 동안 운영했던 진료소도 닫고, 교회에서 바쁜 나날을 보냈지요. 그러다 얼마 후 공산당의 체포와 박해로 인해 저는 남편과 이혼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외부에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나약해질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제가 겪은 고난을 기억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 믿음과 힘이 생겼습니다.
2017년 4월, 교회 리더는 제가 혈압이 좀 높고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본분을 잠시 이행하지 말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건강을 챙기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역이 곧 끝나가고 있어. 지금이야말로 본분을 이행하며 선행을 예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그런데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아름다운 종착지를 얻을 수 있을까? 만약 마지막에 복을 받지 못한다면 그동안 고난을 겪고 헌신하며 대가를 치른 것이 전부 허사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얼마 후, 한 자매가 저를 접대했습니다. 그 자매는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 주며 절 붙들어 주었죠. 본분을 이행하며 바쁜 자매의 모습을 보자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았던 저는 본분을 이행할 수 없었죠. ‘하나님은 질병으로 내 본분 이행 자격을 박탈하신 것 아닐까? 나를 드러내어 도태시키시려고 말이야.’ 이렇게 생각하자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몹시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오해와 원망이 고개를 들었죠. ‘그동안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어떤 고난이 닥쳐도 원망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어. 그런데 이런 결과를 맞이할 줄이야.’ 당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며 마음이 한없이 어두워졌죠. 이런 제 모습을 본 자매는 저를 책망하며 “돌아와서도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읽지 않고. 정말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네요. 그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자매의 책망에 아픈 곳이 찔린 듯 괴로웠습니다. 저는 ‘하나님, 이런 상황이 되니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없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저는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부디 제게 깨우침을 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저는 수시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침, 문득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복받을 만한 오관을 가졌느냐?” 저는 급히 컴퓨터를 켜고 그 구절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수천 년의 패괴를 겪고 나서 모두 무감각하고 우둔해졌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마가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한 역사(歷史)는 모두 ‘사기(史記)’에 기록되었고, 심지어 사람의 패역한 행위는 사람 스스로도 다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패괴되었고, 이미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갈 곳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보고도 배반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도 배반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본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이성이 원래의 기능을 잃었고, 사람의 양심도 원래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한다. 내 눈에 보인 사람은 모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자 독사다. 사람이 내 앞에서 얼마나 가련한 척을 하든 나는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흑과 백의 차이를 전혀 모르고, 진리와 비진리의 차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성이 이렇게 무감각함에도 여전히 복을 받고 싶어 하고, 이렇게 비열한 인성을 가지고도 여전히 왕이 되어 권력을 잡고 싶어 한다. 이런 이성을 가지고 누구에게 왕 노릇을 하겠느냐? 이러한 인성으로 어떻게 보좌에 오를 수 있겠느냐? 정말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모두 제 주제도 모르는 소인배로구나! 복을 받고 싶어 하는 너희들에게 권하는데, 우선 거울을 찾아 자신의 추한 몰골을 비춰 보아라. 네가 왕이 될 재목이냐? 너는 복받을 만한 오관을 가졌느냐?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진리를 조금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아름다운 앞날을 생각하다니 참으로 망상이 아니고 무엇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그리고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과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본분을 이행하거나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이 가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고, 복받으려는 속셈에 대해 인식이 있고 이미 포기했으며, 지금은 그런 속셈에 지배되거나 속박받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복받으려는 속셈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은 일을 바라볼 때 그저 겉면만 본다. 시련이 임하지 않았을 때는 사람은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긴다. 교회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을 위해 계속 헌신하면 자기에게 변화가 있다고, 더는 열성과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행해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실제 변화가 조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종착지, 결말과 직접 관계된 일이 임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그때 본모습이 낱낱이 드러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 심판의 말씀에 저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여태까지 저는 복받으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저 자신을 진실로 인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이런 상황이 닥치자 복받으려는 속셈이 완전히 드러난 것이지요. 그동안 저는 가정도 직장도 포기하고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갖은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이렇게 헌신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아름다운 종착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힘이 넘쳐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이제 몸이 아파 본분을 이행할 수 없게 되자 앞날과 종착지가 없어졌으며, 복받으려던 꿈도 물거품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포기하고 헌신했던 것을 후회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며 맞서는 등 소극적인 상태에 빠졌습니다. 저는 제가 포기한 것과 희생한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희생하고 고생했으니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제게 좋은 결말과 종착지를 주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이를 얻지 못하자 마음으로도, 말로도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소극적이었던 제 모습의 이면에는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 같은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이용하여 복받으려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을 기만하고 대적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헌신과 희생으로 하나님과 거래하며 하나님에게서 공의의 면류관을 받아 내려 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크게 거슬러 하나님께 징벌받았습니다. 저 역시 어느 정도 포기하고 헌신한 후 하나님께 상과 축복, 약속을 바랐습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으며, 심지어 배반하려고까지 했지요. 이런 제 모습이 바울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이런 제게 양심과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을까요?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하고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진리 원칙을 알지 못했고, 많은 패괴와 불순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이행한 본분은 결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죠. 어떤 때는 방해나 교란까지 됐고요. 저는 이런 식의 헌신과 희생을 밑천 삼아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했고 복을 받으려고 했으니 정말 몰염치한 인간이었습니다! 몸이 아파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지 않았더라면, 저는 하나님을 믿으며 복받기를 추구하는 제 그릇된 관점을 알지 못한 채 계속 그릇된 길로 나아가다가 결국 바울과 같은 결말을 맞이했겠죠. 여기까지 생각하자 새삼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제야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배치하신 것이 저를 향한 사랑과 구원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저는 후회하며 자책했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았더라면 저는 하나님을 대적하면서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께 회개하고자 합니다. 더는 복을 받기 위해 추구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진리만을 추구하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 내겠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시련을 어떻게 겪었는지에 대한 말씀이었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베드로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모른다. 물론 베드로 또한 그 시련 속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다. 베드로는 수백 번의 시련을 겪으면서 단 한 번도 믿음을 잃거나 나에 대해 실망한 적이 없었다. 내가 그를 이미 버렸다고 말했을 때에도, 그는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여전히 이전의 실행 원칙에 따라 실제적으로 나를 사랑했다. 나는 베드로에게 그가 나를 사랑할지라도 칭찬하지 않을 것이고 마지막에는 그를 사탄의 손에 내버릴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육신에 실제로 임하지는 않는 이러한 말씀의 시련 속에서도 베드로는 여전히 나에게 기도했다. ‘하나님, 천지 만물 중에 어떤 사람, 어떤 사물, 어떤 일이 전능자의 손에 있지 않겠나이까? 당신이 저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 제 마음은 당신의 긍휼로 매우 기쁘나이다. 당신이 저를 심판하실 때, 저는 자격이 없지만, 당신의 행사가 얼마나 심오한지 더욱 느끼나이다. 이는 당신께 권병과 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나이다. 제 육체는 고통받지만, 영은 위로를 받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와 행사를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당신을 알고 난 후에 저를 죽게 한다 해도 어찌 기꺼이 원하지 않겠나이까? 전능자시여! 당신은 정말 저에게 보이기 싫어하시나이까? 제가 정말 당신의 심판을 받을 자격이 없나이까? 혹시 저에게 당신이 보고 싶지 않으신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니나이까?’ 베드로는 그런 시련 속에서 나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쓰임 받는 것으로(나에게 심판받아 사람들이 나의 위엄과 진노를 볼 수 있을지라도) 스스로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고, 시련으로 고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내 앞에서 보인 충성심과 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모범과 본보기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본받아야 할 바가 아니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6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운명과 종착지에 속박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가 하나님을 사랑해도 칭찬하지 않을 것이며, 마지막에 그를 사탄의 손에 넘기겠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한결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추구했고,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에는 거래 심리도, 불순물도 없었으며, 진실한 사랑과 순종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베드로처럼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대하시든, 앞으로 제게 결말이나 종착지가 있든 없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기꺼이 순종하고자 했죠. 비록 지금은 예전처럼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믿는 동안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누렸고, 어느 정도 체험도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얻은 수확을 글로 써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역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요. 그 후 저는 수시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며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체험 간증 문장을 썼습니다. 그러자 심적으로 하나님과 많이 가까워진 것 같았고, 더는 제 앞날에 노심초사하지 않게 되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한동안 휴식하고 요양하자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와 저는 교회에서 다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체험을 겪은 후 하나님을 믿는 제 관점을 얼마간 알게 됐다고, 더는 복받으려는 속셈에 속박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복받으려는 속셈이 또 드러났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의 리더였습니다. 한번은 예배 때, 리더가 제게 각 예배 팀의 팀장이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지 조사하라고 하면서 간사한 사람이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팀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빨리 조사해 봐야겠네. 사람을 잘못 썼다면 교회 사역에 피해를 주고 형제자매들을 곤경에 빠뜨리게 될 테니까. 그러면 나는 교체되고 과오도 남기게 될 거야. 그건 악행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달 후, 인원 조정을 마친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리더가 제가 선발한 팀장 한 명이 간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마음이 무척 불편했습니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고 교회 사역을 교란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곧이어 형제자매들이 또 제가 선발한 다른 팀장 한 명이 성품이 굉장히 교만하고 본분을 이행할 때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또 다른 형제자매들을 꾸짖고 억압한다고 했습니다. 사역에 연이어 문제가 생기자 순식간에 힘이 빠졌습니다. ‘깨달은 진리가 너무 얕고, 또 내게는 진리 실제가 없어. 만약 또 문제가 생겨 교회 사역에 교란을 준다면 내 악행은 클 것이고, 그러면 내 앞날과 종착지는 사라질 거야. 차라리 일찍 본분을 바꾸는 게 낫겠어.’ 어느 날 아침, 머리가 어지러워 혈압을 재 보니 평소보다 훨씬 높게 나왔습니다. 저는 제 건강 상태를 리더에게 알리면서 마침 건강도 안 좋으니 만약 리더가 저더러 돌아가 다른 본분을 이행하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럼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함께 협력하는 자매에게 “이번에 돌아가라고 한다면 기꺼이 따를 거예요. 돌아가서 무슨 본분이든 안배해 주는 대로 다 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얘기를 들은 파트너 자매는 저를 책망하며 제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스스로 잘 반성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무지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순종하겠다고 하잖아. 또 힘이 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게 소극적인 태도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매가 그렇게 말한 데는 하나님의 허락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가 스스로의 내적 상태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시련을 주든 하나님에 대한 충정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일단 하나님의 사역이 자기 육에 불리해지면 즉시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나간다. 이런 자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굳게 설 수 없는 자들이고, 복만 받으려 할 뿐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자신을 바칠 마음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이런 부류의 소인배들은 사역이 끝날 때 모두 ‘쫓겨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조금도 인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인간성이 없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편안한 환경에 있거나 취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지만, 일단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결국 깨지게 되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악마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지 않는다면 마음속의 우환이 되지 않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폭로의 말씀을 보자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그런 유형의 사람 아니겠습니까? 저는 본분을 이행하며 복과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면 열심히 헌신하고 사역했지만, 복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으면 바로 태도를 바꿔 그 본분을 이행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제 앞날과 종착지만 생각했던 거죠. 본분을 이행하면서 문제가 생기자 실패 속에서 스스로 반성하고 진리를 구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기는커녕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하고, 제 앞날이 보장되지 않을까 겁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본분을 회피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본분으로 바꾸려고 했으며, 심지어는 혈압이 높다는 핑계로 그 본분을 이행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 이성적인 것 같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비겁한 속셈이 숨어 있었죠. 저는 정말 너무도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항상 복받기를 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죠.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사람의 본성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 자신을 위해서이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는 것도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또한 자신이 상을 받기 위해서이다. 결론적으로 전부 자신이 복을 받거나 상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서 일을 하는 것은 다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복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많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람에게 사탄 본성이 있음을 가장 잘 입증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저는 제가 항상 제 앞날과 종착지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등과 같은 사탄의 생존 법칙은 이미 오래전에 제 본성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점점 이기적이고 비열해졌고, 이익만을 좇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제 이익만을 생각하게 되었죠.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으며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한 이유와 출발점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고 좋은 종착지를 얻는 데 있었습니다. 여러 해에 걸친 희생과 고난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것이 아니었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이용하고 기만하며 하나님과 거래한 거였죠. 제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흡족게 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런 저를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리더로 발탁되어 훈련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하며 사람을 분별하고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길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진리를 갖추거나 진리에 진입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제 앞날과 운명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걸었던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이었습니다.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결국 침륜과 멸망의 운명을 맞이할 게 분명했죠.
한번은 영 생활을 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육신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이유는 전적으로 패괴된 사람의 필요 때문이다. 이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며, 이 모든 대가와 고통은 인류를 위한 것이지 하나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득실과 보답이라는 말이 없다. 그가 얻는 것은 그가 나중에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인류를 위해 행한 모든 것과 지불한 모든 대가는 더 많은 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인류를 위한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고지상하고 거룩하며 존귀한 하나님께서 깊이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두 번이나 성육신하여 엄청난 모욕과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또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세에 중국에 오시어 진리를 선포하심으로써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며 공산당과 종교계에 핍박당하고 쫓기고, 비방받고 버림받는 등 모든 고통을 겪으면서 우리들 가운데서 사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당신의 말씀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토록 큰 대가를 치르시면서도 한 번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으셨고, 사람이 무언가를 보답하기를 바라지도 않으셨으며,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심이 없고 진실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너무나 아름답고 선량했죠! 반면 저는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겠다고 했을 뿐, 하나님께 조금의 진심도 없었습니다. 늘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는 기치를 들고 하나님과 거래하며 하나님께 복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이용하고 기만하는 행위였죠. 저는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고 간사하며 미천하고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처럼 한다면 아무리 포기하고 헌신해도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피조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선택의 여지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은 개인의 이익과 소망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옳은 추구 방식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피조물이라면 복받으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되며,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추구하며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삶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께 회개하고 싶습니다. 더는 복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에 종착지가 어떻게 되든 저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며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제 내적 상태가 바뀌자 혈압도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몇 단락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사람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어떤 본분을 이행했는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얻었는지, 최종적으로 자기 장래와 운명을 고려치 않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배치에 따르며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될 수 있는지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이며, 이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판단한다. 이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니 너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이 기준을 마음에 굳게 새기고 어떤 경우에도 다른 방법을 찾거나 다른 비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구원받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마지막에 복받는 결말을 맞이할지, 또는 화를 입는 결말을 맞이할지는 본분 이행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그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진리를 얻었는지, 성품 변화를 이뤘는지에 달려 있죠. 제가 언제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이며, 마지막 종착지는 더욱 하나님 손의 주재와 안배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바로 하나님의 배치에 따르며 충성을 다해 제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입니다. 제가 리더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 것이고, 제게 훈련할 기회를 주신 것이었지요.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진리를 구함으로 다양한 측면의 진리 원칙을 깨달아 생명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자 더는 앞날과 운명에 속박받지 않게 되었고, 본분을 바꾸려는 생각도 사라져 순종하며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진리를 구해 해결했습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서서히 원칙을 파악하게 되었고, 본분을 이행할 때 생기는 오류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며, 본분을 이행할 때 복을 받으려고 하지 않자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느껴졌습니다. 또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얻을 수 있었고요. 성과도 점점 좋아졌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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