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 이행이 어쩌다 거래가 되었는가

2022.01.29

중국 차이나

지난 2017년 4월이에요. 제가 혈압이 높아서 리더가 쉬라고 본분을 중단시켰어요. 그때 정말 괴로웠죠. 이제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가는데, 선행을 예비할 이 중요한 시기에 본분을 못 하게 되면, 좋은 종착지도 없게 되고 그동안 제가 들인 노력들이 다 수포로 될 것 같았어요. 전 본분 이행하려고 의원도 폐업하고 남편이 핍박할 때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이젠 이혼해 집도 없고 공산당은 절 잡겠다고 툭하면 친정에 찾아가니 거기도 못 가고, 갈 데가 없는 거에요. 나중에 한 자매님 집에서 살게 됐는데, 하나님 뜻을 교제해주며 순종하라고 했죠. 근데 본분으로 바쁜 자매님이 부러웠어요. 저는 아파서 하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이 병을 통해 절 드러내고 도태시키시나 싶었죠. 그러니 온몸에 힘이 빠지고 괴롭고 절망스러웠어요.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원망이 막 나오는 거에요. 그동안 다 내려놓고 고난받으면서도 원망도 안 했는데, 어쩌다 제가 본분할 자격도 없게 됐을까 싶었어요. 그때부턴 말씀을 봐도 안 들어오고 기도도 잘 안 나오더라구요. 밥맛도 없고, 잠도 안 오고 영적으로 흑암해져 돈이나 벌까 생각도 했죠. 그러니 자매님이 책망하더라구요. 말씀 보고 묵상하는 게 아니라 돈 벌 생각이나 하고 예전과 너무 다르다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에요. 따끔한 책망을 듣고 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런 상황을 잘 못 겪겠어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요? 어둠에 빠져 있어 너무 괴롭습니다. 하나님 뜻을 알 수 있게 이끌어 주세요.”

며칠 동안 계속 하나님께 기도드렸는데, 어느 날 아침에 문득 말씀이 떠오더라구요. 『너는 복받을 만한 오관을 가졌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그래서 얼른 이 말씀을 검색해 봤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수천 년의 패괴를 겪고 나서 모두 무감각하고 우둔해졌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마가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한 역사(歷史)는 모두 ‘사기(史記)’에 기록되었고, 심지어 사람의 패역한 행위는 사람 스스로도 다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패괴되었고, 이미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갈 곳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보고도 배반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도 배반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본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이성이 원래의 기능을 잃었고, 사람의 양심도 원래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한다. 내 눈에 보인 사람은 모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자 독사다. 사람이 내 앞에서 얼마나 가련한 척을 하든 나는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흑과 백의 차이를 전혀 모르고, 진리와 비진리의 차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성이 이렇게 무감각함에도 여전히 복을 받고 싶어 하고, 이렇게 비열한 인성을 가지고도 여전히 왕이 되어 권력을 잡고 싶어 한다. 이런 이성을 가지고 누구에게 왕 노릇을 하겠느냐? 이러한 인성으로 어떻게 보좌에 오를 수 있겠느냐? 정말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모두 제 주제도 모르는 소인배로구나! 복을 받고 싶어 하는 너희들에게 권하는데, 우선 거울을 찾아 자신의 추한 몰골을 비춰 보아라. 네가 왕이 될 재목이냐? 너는 복받을 만한 오관을 가졌느냐?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진리를 조금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아름다운 앞날을 생각하다니 참으로 망상이 아니고 무엇이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한 것이다. 이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으냐? … 복을 바라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겠느냐? 정말 그런 속셈을 없애거나, 혹은 본인에게 그럴 생각이 없어서 그 속셈을 포기한다면,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지고,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린 마음이다. 사람은 자기가 본분을 이행하고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복을 바라는 속셈이 사라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기고 자기가 달라졌다고 믿는다. 열성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단계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단계로 진입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열성과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본분 이행에 합격하도록 노력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하나님 마음을 만족게 하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정결케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순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결말, 종착지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일이 임했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서 본모습이 낱낱이 드러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이 심판의 말씀에 부끄러웠어요. 도리적으론 복을 바라고 믿으면 안 된다는 거 알지만 제가 그러는지는 잘 몰랐었어요. 이런 상황이 닥치니 복을 받으려는 제 마음이 다 드러난 거에요. 그동안 다 내려놓고 본분 이행한다고 의원 문까지 닫고 고초와 고난도 많이 겪었으니 이렇게 다 버리고 헌신하면 분명 하나님께 좋은 종착지를 받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본분했었죠. 근데 아파서 못 하게 되니 앞날과 종착지도 없고 복도 깨진 것 같아 소극적으로 된 거에요. 지금껏 헌신한 걸 후회하고 하나님께 따지며 맞서기까지 했어요. 제가 헌신한 걸 하나님께 축복받을 밑천으로 여겼고, 또 고난받고 헌신했으니 당연히 좋은 결말을 주실 줄 알았는데, 얻질 못하니 원망하고 불평한 거에요. 그럼 소극적이 된 게 복을 바라는 속셈이 있었네요? 하나님 말씀에 있죠.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을 이용해 너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것은 더더욱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이 말씀엔 하나님의 성품이 담겨 있어요. 제가 믿는 관점은 거래하는 거고 복을 바라는 욕심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건데, 하나님 성품을 거스르는 거죠. 바울을 보면, 헌신한 걸로 의로운 면류관을 요구하면서 하나님 성품을 거슬러 징벌받았잖아요. 저도 많은 걸 버리고 헌신한 후 하나님께 면류관, 축복을 요구했는데, 제 소원이 무너지니 하나님을 오해하고 배반할 생각까지 한 거에요. 이성과 양심이 없죠. 저 같이 사탄에 속한 부류가 복을 바라는 건 정말 뻔뻔스러운 거죠! 혈압 때문에 본분을 중단시키지 않았다면 잘못된 관점으로 하나님 믿는 걸 모르고 계속 잘못된 길로 나갔을 거고 바울과 같은 결말을 맞았을 거에요. 생각하니 두려웠고 이런 상황이 온 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란 걸 알았어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책과 후회가 됐고 눈물로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드러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대적해 지옥에 갔을 거에요. 하나님, 이젠 회개하고 복을 추구하지 않을게요. 진리를 추구해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게요.”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봤어요. 『지금 나는 베드로가 어떻게 나를 알게 되었고 그의 마지막 결말이 어땠는지에 중점을 두어 너희에게 얘기하겠다. … 나는 베드로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모른다. 물론 베드로 또한 그 시련 속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다. 베드로는 수백 번의 시련을 겪으면서 단 한 번도 믿음을 잃거나 나에 대해 실망한 적이 없었다. 내가 그를 이미 버렸다고 말했을 때에도, 그는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여전히 이전의 실행 원칙에 따라 실제적으로 나를 사랑했다. 나는 베드로에게 그가 나를 사랑할지라도 칭찬하지 않을 것이고 마지막에는 그를 사탄의 손에 내버릴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육신에 실제로 임하지는 않는 이러한 말씀의 시련 속에서도 베드로는 여전히 나에게 기도했다. ‘하나님, 천지 만물 중에 어떤 사람, 어떤 사물, 어떤 일이 전능자의 손에 있지 않겠나이까? 당신이 저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 제 마음은 당신의 긍휼로 매우 기쁘나이다. 당신이 저를 심판하실 때, 저는 자격이 없지만, 당신의 행사가 얼마나 심오한지 더욱 느끼나이다. 이는 당신께 권병과 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나이다. 제 육체는 고통받지만, 영은 위로를 받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와 행사를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당신을 알고 난 후에 저를 죽게 한다 해도 어찌 기꺼이 원하지 않겠나이까? …’』 『베드로는 내 앞에서 보인 충성심과 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모범과 본보기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본받아야 할 바가 아니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6편> 중에서) 베드로는 종착지의 속박을 받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해도 칭찬 안 하신다고 하고, 사탄에게 넘길 거라고 하셨어도 베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하고 죽기까지 순종했어요. 베드로의 그 사랑엔 거래나 불순물이 없었고 사랑과 순종만 있었죠. 이 말씀에서 실행 길을 찾았는데,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품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시든, 좋은 종착지가 있든 없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고 헌신하기로 했어요. 전처럼 교회에서 본분을 하진 못해도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면서 체험도 했으니 저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간증문은 쓸 수 있잖아요. 그것도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거죠. 그 뒤로 자주 하나님 앞에 나아갔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간증문을 썼는데, 하나님과 가까워진 게 느껴졌어요. 또 앞날 때문에 속앓이를 하지 않으니 마음도 훨씬 가벼워졌구요. 그렇게 한동안 요양했더니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다시 본분을 맡게 됐어요.

그때 이번 체험을 통해 하나님 믿는 관점을 알게 돼 복을 바라는 속마음의 속박을 안 받을 줄 알았는데, 좀 지나니까 이런 속마음이 또 드러나게 됐어요.

그때 교회 리더를 맡게 됐는데, 예배에서 위의 리더가 각 팀장들이 실제 사역을 하는지 조사하랬고 간사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발탁해 쓰면 안 된댔어요. 그래서 빨리 조사하기로 했죠. 사람을 잘못 쓰면, 교회 사역과 형제자매를 해치잖아요. 문제 생기면 본분 교체는 둘째고 과오를 저지르고 악행이 되죠. 한 달 후에 인원 조정이 끝나니 기분이 좋더라구요. 근데 글쎄 제가 뽑은 팀장 중의 간사한 사람을 위에서 발견한 거에요. 처음엔 정말 괴로웠어요. 본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다 사역까지 방해한 거잖아요. 근데 거기다 제가 뽑은 다른 팀장도 교만하다는 건의가 들어왔어요. 합리적인 제안도 안 듣고 오히려 혼내고 속박 준다고 파면시켜 달래요. 연달아 이런 문제들이 생기니 힘이 빠지고 너무 괴로웠어요. 전 진리도 아는 게 얕고 진리 실제도 없는데, 이런 문제가 생겨서 사역에 방해를 주면 큰 악행이잖아요. 그러면 제 앞날과 종착지는 사라질 거구요. 그러니 본분을 바꾸고 싶은 거에요. 어느 날, 어지러워서 혈압을 재니 좀 높았어요. 그래서 리더한테 말했는데, 제 혈압이 높으니까 리더가 본분을 바꿔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럼 책임질 게 없잖아요. 제가 협력자한테 그랬어요. 이번에도 집에 보내면 순종하겠다고, 가서도 할 수 있는 본분을 하겠다구요. 그러니 저를 책망하면서 왜 이리 부정적이나며 반성해보라는 거에요. 처음엔 못 받아들이겠더라구요. 순종할 마음도 있고, 할 수 있는 본분을 하겠다고 한 건데 뭐가 부정적인가 했어요. 근데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니 속으로 기도했죠. 제 마음 상태를 알 수 있게 인도해 달라구요.

그때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어요.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시련을 주든 하나님에 대한 충정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일단 하나님의 사역이 자기 육에 불리해지면 즉시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나간다. 이런 자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굳게 설 수 없는 자들이고, 복만 받으려 할 뿐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자신을 바칠 마음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이런 부류의 소인배들은 사역이 끝날 때 모두 ‘쫓겨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조금도 인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인간성이 없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편안한 환경에 있거나 취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지만, 일단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결국 깨지게 되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악마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지 않는다면 마음속의 우환이 되지 않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심판과 폭로의 말씀을 보니 마음이 찔리고 아팠어요. 제가 이런 사람이었어요. 본분을 통해 복받겠다 싶으면 열심히 헌신하고 노력했다가 그게 아니면 얼굴을 바꿔 본분을 내려놓으려 했는데, 전부 앞날과 종착지만 생각한 거죠. 본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실패 속에서 반성하고 진리를 구해서 부족함을 채우고 더 잘할 생각은 안 하고 제가 책임을 지게 되고 좋은 앞날이 없을 것 같으니 그걸 밀어내고 책임 안 지는 본분으로 바꾸려고 하고 혈압을 핑계로 본분을 내려놓으려 한 거에요. 겉보기엔 이성적인 것 같지만 속엔 비열한 속셈을 감추고 있었어요. 정말 간사한 거죠!

반성을 해봤어요. 왜 계속 복받기를 추구하는지, 그 근원이 뭔지요. 그러다 말씀을 봤어요.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라는 말은 사람의 본성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다. 결론적으로 전부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서 모든 것은 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복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많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람의 패괴 본성을 입증하는 증거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외적인 변화와 성품 변화의 차이> 중에서) 이 말씀에서 깨달았어요. 늘 제 생각만 하는 건,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돼서였어요.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살고, 이익 우선이라는 이런 사탄 법칙이 이미 본성이 돼 버려서 이기적인 이익주의자로 살다 보니 매사에 자기 이익부터 챙겼어요. 하나님 믿으며 살아온 걸 돌아보니 본분을 이행하려고 했던 건 다 복을 받고 상을 받기 위한 거고 천국이란 좋은 종착지를 바래서였죠. 수년간의 노력과 고난은 피조물의 본분을 한 게 아니고 진실된 헌신을 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고 속여서 거래하려는 거였지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려는 게 없었어요. 믿는 사람이라 할 자격도 없고 완전히 불신파죠. 하나님께서 리더 본분을 맡겨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고 분별을 배우라고 하신 건데 전 이런 기회를 아끼지 않고 진리에 진입할 생각도 안 하고, 자기 앞날만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맞서는 길로 나갔던 거에요. 회개도 안 하고 진리 추구도 안 하면 멸망과 침륜밖에 없죠.

나중에 묵상을 하다가 이 말씀을 봤어요. 『성육신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이유는 전적으로 패괴된 사람의 필요 때문이다. 이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며, 이 모든 대가와 고통은 인류를 위한 것이지 하나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득실과 보답이라는 말이 없다. 그가 얻는 것은 그가 나중에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인류를 위해 행한 모든 것과 지불한 모든 대가는 더 많은 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인류를 위한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이 됐어요. 지존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패괴된 사람을 구원하려고 두 번이나 성육신해 수모를 당하셨어요.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은 중국에서 진리로 사람을 정결케 하시면서 공산당과 종교계의 비방과 핍박을 당하셨죠. 모든 고통을 감내하시면서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기 위해 값없이 말씀을 베풀어 주셨죠. 인류 구원을 위해 이 큰 대가를 치르시면서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지신 적이 없고 사람에게 뭘 요구하거나 보수를 원하신 적이 없으시잖아요. 하나님은 참된 사랑을 값없이 주셨고 정말 선하시고 아름다우세요. 근데 절 보면 하나님을 흡족게 해드리겠단 말만 했지 진실된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핑계로 축복을 얻으려고 거래하고 하나님을 이용만 했죠. 정말 전 이기적이고 간사하고 뻔뻔하고 순전히 사탄의 형상으로 살았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저 같은 부류는 아무리 헌신해도 하나님이 인정 안 하시죠. 말씀을 보게 됐어요. 『피조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선택의 여지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은 개인의 이익과 소망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옳은 추구 방식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이 말씀에서 알게 됐어요. 피조물은 복받기 위해 하나님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게 가장 의미 있는 삶이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악에서 떠나 회개하고 복을 추구하지 않을게요. 앞으로 어떤 결말을 얻게 되든 본분을 잘 이행해 사랑에 보답할게요.” 내적 상태가 바로잡히니 혈압도 돌아왔어요.

그 후에, 하나님 말씀 낭송을 보게 됐는데,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어떤 본분을 이행했는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얻었는지, 하나님의 지배에 맡겨 진정한 피조물이 될 수 있는지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공의롭기에 이 기준에 따라 모든 사람을 가늠한다. 이 부분은 영원히 변하지 않음을 너는 기억해야 한다. 다른 길을 찾으려 하거나 다른 비현실적인 것을 추구하지 마라. 구원받을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네가 누구든 마찬가지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이 하나님께 가져야 할 태도> 중에서) 이 말씀에서 알았어요. 사람의 결말이 복이든 화든 그건 어떤 본분을 하느냐와 무관해요.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얻고 성품 변화에 이르렀는지와 관계 있죠. 언제 무슨 본분을 할지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제 최종 결말도 하나님이 정하시는 거죠. 제가 할 건 안배에 순종하고 충성 다해 본분을 하는 거죠. 그리고 전 진리 실제도 없고 부족한 것도 많으니 본분을 통해서 그런 부분이 다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그때 진리를 구하고 원칙을 알게 되면 부족함이 채워지고 제 생명에도 유익하게 되죠. 이걸 깨닫고 앞날에 대한 속박을 받지 않게 됐고, 본분도 바꾸고 싶지 않았어요. 문제가 생기면 그냥 착실하게 진리를 구했더니 원칙을 더 알게 됐고, 문제도 점점 줄어들게 됐어요. 더 이상 복을 생각하지 않고 말씀에 따라 실행하니 마음도 자유해지고 본분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효과도 좋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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