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관대한 행동 뒤의 이면

2023.03.11

한국 팡강

몇 달 전에 리더가 양육 사역 동역자로 코너 형제를 붙여 줬어요. 지내보니까 형제는 사역에 대해 크게 부담이 없더라고요. 형제자매의 문제도 제때 해결을 안 해 주고, 사역 회의 때도 잘 오지 않았어요. 리더가 그러는 거예요. 코너 형제가 무책임하고 건성으로 임하니까 잘 교제해 보라고요. 그때 전 바쁘다 보니 사역을 좀 지체했겠지 형제가 사역을 전혀 안 한 것도 아니고, 너무 높이 요구하지 말고 형제가 못한 건 내가 하자 생각했죠. 그래서 전 형제의 사역 상황을 묻지도 않았어요. 그 일이 있고 좀 지나 형제자매와 예배드려야 해서 코너 형제한테 그랬죠. 형제자매한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그럼 거기에 맞춰서 말씀을 찾아 교제하면 예배의 효과가 좋을 거라고 했어요. 나중에 형제자매들한테 물어봤죠. 코너 형제가 어려움에 대해 미리 물어봤었냐고요. 그러니 다들 안 했다는 거예요. 형제가 너무 무책임해 보였죠. 형제자매들이 본분에서 겪는 어려움이 많을 땐 예배 때 도와줘야 하는데, 그걸 소홀히 한 거예요. 너무 건성으로 하는 거죠. 이번엔 지적해야겠다 싶었어요. 근데 이런 생각이 들었죠. ‘형제가 못 받아들이고 제가 요구를 높인다고 편견을 가지면 제가 너무 이해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죠. 게다가 형제는 젊으니 육을 생각할 수 있지 나도 가끔 건성으로 임할 때 있잖아. 높이 요구하지 말고 그냥 내가 하자.’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하랬으니 내가 좀 더 하고 적게 쉬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전 이번에도 코너 형제의 문제를 말해 주지 않았어요. 다른 사역에서도 그렇게 했고요. 다른 사람이 뭘 잘 못해도 전 원인과 대처법을 생각해 보지 않았고, 계속 배려하고 관용만 했어요. 가끔은 상대에게 반감을 느끼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참았어요. 그때 전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하게 하고 내가 조금 더 하지 뭐, 했어요. 계속 그러니 다들 무슨 어려움이 있으면 제가 해결해 주길 바라더라고요. 다들 절 좋게 생각해 주니 저도 서운하거나 힘들진 않았어요. 결국 전 여태까지 남들과 협력할 때,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건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어요. 계속 따지고 협력이 잘 안 되는 사람보다 낫다고 여겼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것에 관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 이는 무슨 의미겠느냐?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요구하지만 남에게는 너그럽게 대해 네 대범함과 도량을 보여 주라는 의미이다. 사람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인성의 자연스러운 표출이겠느냐? 사람이 이 말대로 행동하려면 얼마나 많은 억울함을 참아야겠느냐? 욕심도 바람도 없어야 하며, 또한 적게 누리면서 많이 고통받고 대가를 치르고 일해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불평하고 원망하거나 제대로 하지 못해도 지나치게 요구해서는 안 되며, 그럭저럭 괜찮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이것이 고상한 덕행의 특징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리도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까? 이는 가식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인성 안에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면 정상적인 상황에서 “자신에게는 관대하게, 남에게는 엄격하게” 할 것이며, 이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볼 때는 다 알 수 있다. “저 사람은 교만해!”, “저 사람은 못됐어.”, “저 사람은 이기적이야!”, “저 사람은 대충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해!”, “저 사람은 너무 게을러!”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자신을 대할 때는 어떻겠느냐? ‘조금 게을러도 괜찮아. 나는 자질이 좋으니까 게으르다 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잘한다고.’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단점을 꼬치꼬치 따지고 트집을 잡지만, 자신을 대할 때는 관용을 베풀 수 있으면 베풀고 대충 넘어갈 수 있으면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성의 자연스러운 표출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사람에게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 대하라고 요구한다면 이것 때문에 얼마나 괴롭겠느냐? 사람이 견딜 수 있겠느냐? 몇 명이나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 (누구도 해낼 수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사람의 본성은 이기적이며, 모두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신봉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기적인 본성, 이기적인 것들을 갖고 있으며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사탄 철학을 신봉하는 데 열을 올린다. 또 사람은 스스로를 위해 생각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이기적으로 굴지 않으면 천벌 받는다고, 이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신봉한다. 만약 사람에게 이기적으로 굴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요구를 하고 무슨 일이 임하든 손해를 볼지언정 남에게 불이익을 주지 말라고, 다른 사람이 부당하게 네 이익을 취할 때 기쁘게 “제 몫을 취하셨군요. 저는 당신과 따지지 않을 겁니다. 저라는 사람은 속이 넓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고, 복수도 하지 않을 거예요. 충분히 이득을 취하지 못하셨다면 더 가져가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라고 요구한다면 이것이 현실적이겠느냐? 몇 명이나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패괴된 인류의 정상적인 모습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이 현상은 좀 비정상적이다. 어째서 비정상적이라고 하겠느냐? 패괴 성품이 있는 사람, 특히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은 모두 이익을 좇고 다투지, 절대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해 싸우면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현상이 비정상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라는 덕행에 관한 말은 사회 도덕학자가 인성의 배경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에게 제시한, 사실과 인성에 부합하지 않는 요구임이 분명하다. 이는 쥐한테 구멍을 파지 말라고 하고, 고양이한테 쥐를 잡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요구가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법칙에 어긋납니다.) 이런 요구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으며 무척 공허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6)> 중에서) 처음엔 이 말씀을 보고 이해가 좀 안 됐어요. 전 여태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건 긍정적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사는 사람을 존경하고 저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했었고요. 근데 깊이 묵상해 보니까 하나님 말씀이 다 사실이라 탄복하게 됐어요. 특히 이 말씀이요. “패괴 성품이 있는 사람, 특히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은 모두 이익을 좇고 다투지, 절대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해 싸우면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현상이 비정상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라는 덕행에 관한 말은 사회 도덕학자가 인성의 배경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에게 제시한, 사실과 인성에 부합하지 않는 요구임이 분명하다. 이는 쥐한테 구멍을 파지 말라고 하고, 고양이한테 쥐를 잡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정말 놀랐어요.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자’는 제 원칙은 인성에 어긋나는 것이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거고, 사람됨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거였어요. 저한테 비춰 보니까 제가 그렇게 살고 있었어요. 어떤 일에서 전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했지만 마음은 억울하고 괴로웠어요. 제가 그렇게 했어도 속은 내키지 않았거든요. 코너 형제를 대할 때도 형제가 본분에 무책임하고 건성으로 임하는 걸 보게 됐을 때 너무 화가 났고, 또 형제가 빨리 회개하고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게 지적해 주고 싶었어요. 근데 타인에게 모질게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는 생각에 코너 형제의 문제를 지적할 마음까지 접어 버렸어요. 그냥 남에게 높은 걸 요구하지 말고 내가 좀 더 고생하고 노력하자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제가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거든요. 몇 개 소그룹 사역을 맡은 것도 이미 사역량이 많은데, 형제가 맡은 사역 문제까지 해결하려니 사실 너무 억울하면서 불평도 생겼어요. 근데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해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서 꾹 참았던 거예요. 그게 제 진짜 상태고 속마음이었죠. 하나님 말씀처럼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기적인 본성, 이기적인 것들을 갖고 있으며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사탄 철학을 신봉하는 데 열을 올린다. 또 사람은 스스로를 위해 생각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이기적으로 굴지 않으면 천벌 받는다고, 이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신봉한다.”사람의 본성은 이기적이라 저도 마찬가지죠. 제가 남보다 일을 더 많이 하면 분명 더 힘들고 억울하고 괴롭고 내키지 않거든요. 근데도 난 왜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려고 했을까?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뒤에는 어떤 패괴 성품이 숨겨져 있는 걸까?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하나님께 이걸 구하면서 기도했고,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라는 것은 돈을 주워도 갖지 말고 남을 돕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라는 말처럼 사람의 덕행에 대한 전통문화의 요구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이 측면의 덕행은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지, 실행 가능한지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사람에게 인성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나 준칙이 될 수 없다. 어쩌면 네가 정말 스스로를 엄격하게 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에게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행동거지를 매우 조심하며, 무슨 일을 하든 남을 먼저 고려하고 생각하는 식으로 말이다. 너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굴지도 않아 매우 공평무사해 보일 것이다. 또한, 네게는 사회적인 책임감과 도덕심이 있을 것이며 네 주변 사람들, 너와 함께하고 왕래하는 사람들 눈에 고상한 인격과 인품을 지닌 것처럼 비칠 것이다. 네 행위는 한 번도 어떤 질책이나 비난을 받을 일이 없으며, 언제나 큰 칭찬, 나아가 감탄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 눈에 비치는 너는 진정으로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 대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네 마음 깊은 곳에서 생각하는 것이 이러한 겉모습, 겉으로 보이는 행위와 일치하겠느냐?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과연 무엇이겠느냐? 적어도 그것은 입에 올리기 힘든 어둡고 사악한 것이다. … 단언컨대, 무릇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라는 덕행을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위욕이 매우 강하다. 그들은 패괴 성품에 지배되어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 마음속의 지위와 명망, 사회적인 지명도를 추구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의 지위욕과 관계가 있으며, 그들이 좋은 덕행에 가려진 채 추구하는 것들이다. 그러면 그들이 추구하는 이러한 것들은 어떻게 생겨났겠느냐? 전부 그들의 패괴 성품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며, 패괴 성품에 지배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어쨌든, 누군가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라는 덕행을 실행할 수 있는지, 제대로 해낼 수 있는지 등은 그의 인성의 본질을 조금도 바꿔 놓을 수 없다. 즉, 그것은 사람의 인생관, 가치관을 조금도 바꿔 놓을 수 없으며, 다양한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을 좌우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일수록 위장과 가식에 능한 사람이고, 좋아 보이는 말과 행동으로 남을 미혹하는 사람이며, 본성이 간사하고 사악한 사람이다. 또 이런 사람일수록 지위와 권세를 깊이 사랑하고 추구한다.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덕행이 아무리 위대하고 영광스러우며 옳아도, 아무리 보기 좋아도,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차마 밝힐 수 없는 추구와 본성 본질, 심지어 야심은 언제든 드러난다. 그러므로 그들의 덕행이 아무리 훌륭해도 인성의 본질을 가릴 수는 없고, 그들의 야심과 욕망을 가릴 수도 없으며,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고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추악한 본성 본질을 가릴 수도 없다. 이런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듯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라는 말은 더없이 황당하다. 또한, 야심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말과 행위로 차마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야심과 욕망을 숨기려 시도한다는 사실이 더욱 드러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6)>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면 겉으론 제가 배려 깊어 보이고, 속이 넓고 도덕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속에는 컴컴하고 사악하고 말하기 부끄런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렇게 행동한 건 저를 좋게 보고 높이 보게 하려는 거였었고, 높은 지위와 명망을 얻기 위한 거였어요. 그런 사람은 겉으로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결국은 위군자일 뿐이고 위선적인 사람인 거예요. 코너 형제랑 협력할 때의 제 행동을 돌아봤어요. 형제가 아무리 무책임하고 건성으로 사역해도 전 그걸 지적하지 않았고 책망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이해해 주고 관용하고 방임했죠. 제가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시간이 부족해도 코너 형제가 안 한 사역은 다 보완했어요. 제가 힘들어도 억지로 버티면서 한 거죠. 사실, 제가 아량이 넓어서 그렇게 한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거예요. 지적을 했다가 형제의 체면을 구겨서 밉보일까 봐 그게 걱정됐던 거죠. 전 제 입지를 굳히고 모두가 절 좋게 볼 수 있게 하려고 제가 정말 하기 싫은 일까지도 아량이 넓은 사람처럼 보이고,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항상 참고 넘어갔어요. 결국 더 간사하고 교활하게 변해 갔죠. 겉으론 배려했지만 속에는 옳지 못한 속셈을 갖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거짓된 모습만 보여 줬던 거예요. 그건 정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죠. 그제서야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실체가 분별이 됐고, 제가 가진 비열한 속셈에 염증을 느끼게 됐어요.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했죠. 하나님께서 전통문화의 실체를 밝혀 주지 않으셨다면 전 이걸 모르고 저처럼 하는 게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근데 지금 보니까 그건 진리가 아니라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주장이고, 인성의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기준이 아니었어요. 음, 나중에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인류 가운데서 소위 사람의 품행 방면에 대한 이러한 요구와 말이 아무리 규범적이고 대중의 입맛과 관점, 뜻, 나아가 이익에 부합해도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너는 이 점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리가 아닌 이상, 되도록 빨리 그것을 부정하고 버려야 하며, 그 본질은 무엇인지, 사람이 그것으로 살아갈 때 과연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해부해야 한다. 그것이 정말 너에게서 진실한 회개를 이끌어 낼 수 있겠느냐? 네가 스스로를 인식하도록 해 줄 수 있겠느냐? 네가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할 수 있겠느냐? 전부 불가능하다. 그것은 너를 외식하는 사람,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 되게 할 뿐이며, 너를 더 교활하고 사악하게 만들 뿐이다. “예전에 저희는 전통문화에서 나온 것들을 고수하면서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저희의 모습을 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사실 저희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어떤 악을 행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장 좋은 일을 좀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위장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전통문화가 요구하는 좋은 행위를 포기한다면,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요? 어떤 행동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할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질문이 어떠하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떤 진리들을 실행해야 하는지도 모른단 말이냐?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했고, 사람이 실행해야 할 진리는 더없이 많거늘 어째서 진리를 실행하지는 않고 하필 가짜 좋은 사람, 외식하는 사람이 되려 한단 말이냐? 너는 어째서 위장하려는 것이냐? … 종합하자면, 덕행에 관련된 말들을 열거하긴 했어도 그 목적은 이러한 것들이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며, 사탄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것만이 아니다. 나아가 이러한 것들의 본질이 거짓되고 가식적이며 사람을 속이는 것임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설령 사람이 이러한 행위를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정상 인성을 살아 냈다는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가식적인 행위로 사람의 속셈과 목적을 가리고, 또 패괴 성품과 본성, 본질을 가린 것이다. 그 결과, 인류는 점점 더 가식적이고 기만적으로 변하고, 그리하여 패괴된 인류는 갈수록 더 패괴되고 사악하게 변한다. 패괴된 인류가 지키는 전통문화의 도덕 기준은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와 전혀 맞지 않으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르친 어떤 말씀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 만약 네가 마음속으로 여전히 전통문화에 속한 것들을 지키고 있다면 그것에 철저히 미혹되고 해를 입을 것이다. 네가 어떤 일에서 전통문화를 지키고 전통문화의 원칙과 관점을 준수한다면, 그 일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위배하며 하나님과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네가 덕행에 관련된 말 중 어느 한 조목이라도 지키고 충성하고, 그것을 준칙이나 근거로 삼아 사람과 일을 대한다면, 거기에서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만약 사람을 판단하고 심하게 해칠 경우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 만약 네가 시종일관 전통문화의 이러한 덕행을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가늠한다면, 사람을 정죄하고 해하는 너의 죄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며, 그것은 재난의 화근이 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5)>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더 분명히 깨달았어요. 누군가 사역에 잔꾀를 부리면서 건성으로 임하는 걸 보게 됐을 때 상대가 그 행동의 성질을 깨닫고 바로잡을 수 있게 그 부분을 짚어 주거나 책망하고 훈계를 해 주는 게 옳은 행동이고, 그게 인성이 좋은 사람이에요. 근데 전 자기 이미지를 생각해서 계속 양보하고 방임하면서 문제를 말해 주지 않았죠. 결국, 코너 형제는 자신의 패괴 성품을 알지 못했고, 계속 본분에 무책임하고 건성으로 임하면서 타인의 생명 진입에 손해를 끼치는 과오를 저질렀어요. 제 행동은 형제를 배려하고 생각해 주는 게 아니라 완전히 해치는 거였어요. 보니까 전 진짜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형제자매한테 해를 끼치고 교회 사역에도 지장을 준 거죠. 그제서야 저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한’ 건 진리도, 처사의 기준도 아니라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궤설이란 걸 체감했어요. 그래서 그 궤설에 속지 말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하고 모든 처사를 말씀에 근거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삼기로 했어요. 그 뒤로 전 더는 코너 형제의 문제를 봐주거나 이해해 주기만 하지 않았고, 형제가 자기 문제를 알 수 있게 지적해 줬어요.

얼마 후에 전 또 다른 사역을 맡게 됐는데, 파악하는 과정에서 한 형제가 아주 건성으로 하고 세심하지 못한 게 보였어요. 근데 말하면 어색해질까 봐 그냥 제가 처리하고 넘기려고 했었죠. 그러다 순간 제가 또 자기 이익을 지키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려고 그런다는 걸 인지하게 됐어요. 밉보이기 싫어서 지적을 안 하는 건 정말 비열한 속셈이잖아요. 이 말씀이 생각났어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동시에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 진입에 이롭지 못한 일과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최소한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말고,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고, 교회 사역과 교회 생활을 방해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광명정대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떠한가> 중에서) 말씀에서 처사의 원칙을 알려 주셨어요. 무엇을 하든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유익해야 하고 그리고 숨김없이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야 해요. 전 형제가 본분에서 건성으로 임하는 걸 본인이 깨닫고 바로잡을 수 있게 지적해야 해요. 그게 형제의 생명에도 이롭고 교회 사역에도 이로운 거니까요. 근데 말하지 않고 저 혼자 다 수습을 해 버리면 형제는 자기 문제를 모르게 되고 발전도 할 수 없게 되죠. 그제야 전 형제한테 보이는 문제를 다 말해 줬어요. 형제도 듣고 고치기로 했죠. 그렇게 하니까 저도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본분의 성과도 훨씬 좋아졌고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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