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랑이 낳은 뼈아픈 교훈

2022.02.08

중국 민뤼

2009년에 처음 리더 본분을 하게 됐는데, 그때는 윗선 리더랑 같이 예배드렸죠. 형제자매들이 무슨 일이 생기든 그 리더들한테 묻는데, 그게 부럽더라구요. 언제쯤 저렇게 하나님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해 줘서 형제자매한테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싶었죠. 전 그게 있어 보였거든요. 그러다 여름부터 공산당이 또다시 체포 대작전을 펼치는데, 굉장히 위험했어요. 그래서 윗선 리더들이 예배하러 오지도 못했죠. 그때 전 이건 기회다 생각했죠. 평소엔 양육받으니까 제가 교제를 잘해 봤자 귀동냥한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제 리더들이 못 오니까 제 실력을 보여 줄 수 있겠다 싶었죠. 말씀을 더 잘 봐야겠더라구요. 리더들 못잖게 저도 말씀으로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고 위에서 양육 못 해도 사역을 잘한다는 걸 보여 줘야 다들 저를 떠받들게 되니까요. 그래서 전 아침 일찍부터 하나님 말씀을 봤고 어떻게 하면 핵심을 잡아서 새로운 깨달음을 말할까 고민했죠. 예배 때는 어떻게 새 빛 비춤을 얻나 생각했는데, 그것도 제가 깨달음이 남다르고 교제를 잘한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항상 형제자매들이 먼저 교제하게 하고 그다음에 제가 깨달은 걸 말했어요. 그러면 제가 좀 더 분명하게 교제할 수 있거든요.

한번은 사역자 모임을 하는데, 보니까 몇몇 팀장들이 본분을 게을리하고 책임감도 없어 사역이 더디더라구요. 속이 타들어 갔어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찾아 하나님 사역의 흐름을 보여 주고 또 어떻게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지 보여 줘야겠다 했죠. 그리고 얼른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관한 말씀을 찾았어요. 다 읽고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죠. “하나님께서 나타나 사역하시는데, 이건 온전케 될 수 있는 귀한 기회이고 소중한 시간이에요. 근데 안일한 태도로 허송세월하면서 본분에 해이하다면 이기는 자가 되는 기회를 잃게 될 거에요. 그럼 대환난 속에서 슬피 울게 되구요!” 그때 열변을 토하는데, 다들 귀를 기울이더라구요. 그리곤 더는 해이하지 말고 본분을 잘하겠다고 했죠. 한 자매는 이러는 거에요. “이 말씀을 저도 많이 봤는데, 깨닫지 못했어요. 근데 이렇게 들으니 긴박감이 드네요. 앞으로 본분을 대충 하거나 육을 생각해선 안 되겠어요. 사역을 신속하게 시행해야겠어요.” 전 제가 어디 가서 배워 온 말이 아니라고 티를 냈죠. “어, 말씀은 마음으로 묵상해야 해요. 지금 상황이 안 좋아서 리더들이 오지 못하니까 양육해 줄 사람이 없어요. 그래도 기도하면서 마음으로 말씀 묵상하면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실 거에요.” 이렇게 말하니까 한 자매가 그러더라구요. “자매는 자질이 좋아 말씀을 깨닫는데, 우린 그게 안 돼요.” 그때 말로는 노력하면 하나님이 알아주신다 했지만 마음은 흐뭇했어요. 보니까 말씀에 공을 들인 게 효과 있구나.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더 노력하면 형제자매들이 더 탄복하겠구나 싶었죠.

또 한번은 한 자매가 자기 가족이 공산당의 유언비어에 미혹돼서 잡힐 수 있다고, 본분을 못 하게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한테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전 예전에 큰 붉은 용의 계략을 간파하고 의학 공부까지 포기한 거랑 또 가족의 반대에도 본분을 이행하게 된 거랑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눈물나게 표현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리더가 저를 크게 신뢰해 주는데, 많은 걸 얻고 성장했다고요. 이렇게 하나님께 헌신하면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축복해 주신다고 했죠. 그때 자리에 있었던 형제자매들은 다들 이렇게 젊은데, 다 버리고 본분을 한다는 건 대단한 거라면서 자기들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기들은 정말 추구하지 않았댔죠. 제가 말로는 하나님 말씀으로 힘을 얻어서 하나님께 헌신하게 된 거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제가 잘 추구한 거라 여겼죠. 결국 그 모임 하고 형제자매들이 저를 더 탄복하게 됐어요. 저도 사람들한테 떠받들리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말씀에 더 공을 들였어요. 어떻게 교제하면 형제자매들이 절 더 탄복할까 고민했죠. 예배 때는 어, 형제자매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말을 꺼내면 바로 말씀을 찾아 해결해 줬죠. 그래서 제가 교제를 잘해서 어려움이 해결됐다고 하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 뭐랄까 어, 역시 난 자질이 되는구나 싶었죠. 윗선 리더가 예배에 오지 못해도 제가 말씀으로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교회를 다 돌고 나면 뭔가 기뻤어요. 제가 많은 문제를 해결한 게 보이고 주변에서 제가 교제하는 걸 좋아하니까 제가 그래도 실제 사역을 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러니 이번에 사역자들한테 말씀으로 제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주 신이 나서 제가 어떻게 말씀을 교제해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해결했는지 아주 세세히 다 말했어요. 전 신나게 말하고 동역자랑 사역자들은 집중해 들으면서 메모했고 혹시 놓칠세라 저보고 어떤 말씀으로 교제했냐고 계속 묻기도 했었죠. 리 자매가 그랬죠. “역시 자매는 자질이 좋네요. 윗선 리더가 오지 못해도 자매님이 이끌어 가잖아요. 그리고 전보다 교제를 잘해요. 자매님이 예배를 인도 안 했으면 우린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 온통 부러워하는 말투였어요. 그러니 기분이 더 좋아지는 거예요. 그때 속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 실력이 어떤지 알겠지? 혼자 해결하는 게 진짜 능력인 거야.’ 그러곤 다른 사역자들도 자기가 처한 어려움이나 문제를 다 저한테 묻는 거에요. 그래서 말씀으로 하나하나 해결해 줬는데, 인정해 주는 눈빛이 느껴지니 뭔가 별 중의 별이 된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다들 저한테 더 잘해 줬어요. 예배소에 가면 밖에선 집 주인이 마중 나와서 제 자전거까지 알아서 세워 주고 집 안에선 다들 절 에워쌌어요. 그러곤 이런저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냐고 물어보는데, 전 힘든 줄 모르고 답해 줬어요. 그렇게 계속 가다 보니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생겨도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지 않고 제가 가서 해결해 주기만 기다렸어요. 심지어 동역자들도 문제가 생기면 제가 교제할 때까지 기다렸고 무슨 일이든 제 말대로 처리했죠. 그때는 자아도취에 빠져서 그냥 제가 대단해 보였고 교회를 이끌어 갈 핵심 인물 같았죠. 한번은 어느 교회에 복음 집사가 있는데, 너무 교만해서 원칙대로 안 하고 누구 말도 안 듣는대요. 그 얘길 듣고 ‘하나님 말씀이 권병이니 교만해도 말씀에는 순종할 거야 . 교제할 줄을 몰라서 그래. 교회 사역을 잘하려면 능력이 좀 있어야지 않겠어? 역시 내가 나서야겠네.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여 줘야겠다’ 그랬죠. 그래서 전 집사들 모임을 열고 적그리스도는 교만하고 굽히는 법을 모른다는 말씀을 찾았어요. 그리곤 엄숙한 어투로 읽었죠. 그때 그 복음 집사는 고개를 숙이고 심문받는 죄수처럼 있었어요. 전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난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잘 찾는구나 했죠. 그리고 또 복음 집사의 모습에 따라서 그렇게 행동한 성질과 낳게 될 결과를 해부했어요. 그랬더니 풀이 죽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원칙대로 복음 전하겠다고 했어요. 그때 전 속으로 당신 같은 사람은 엄한 말씀으로 꾸짖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모임을 마치고 돌아와서 동역자들을 만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어요. 제가 어떤 말씀으로 교제하니 고분고분해지더라고 그때 상황을 재연하다시피 말했어요. 다들 저보고 말씀을 알맞게 잘 찾는다고 칭찬했고 저도 스스로 진리 실제가 있는 것 같았고 어떤 문제든 다 해결할 것 같았어요. 근데 생각지 못한 일이 생겼죠. 나중에 예배 때 한 팀장이 말하길, 제가 예배드리고 간 후에 새 신자가 그러더래요. 글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니시며 목양하신다던데 절 보니 교제를 잘하던데, 하나님이시냐고요. 가슴이 철렁했어요. 패괴된 사람을 하나님이라니 분별력이 그렇게 없나 싶었어요. 전 바로 그리스도와 패괴된 인류의 본질적 차이에 대해 교제했어요. 그래도 불안하더라구요. ‘사람들을 내 앞으로 이끈 건 아닌가? 난 하나님 말씀을 교제했는데, 어떻게 이러지?’ 근데 또 한편으론 진리를 모르는 새 신자라 어쩌다 그런 거 아닐까 싶었어요. 대부분 제가 교제하는 걸 좋아하는 건 제 교제가 유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반성도 안 했어요. 그래서 계속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형제자매들의 칭찬에 젖어 있었죠.

그러다 2010년 3월이죠. 한 자매 집에 가는데, 1층에서 잠복하던 경찰이 절 마약범으로 오인해 잡은 거에요. 나중에 제가 범인이 아닌 걸 알고 풀어줬어요. 근데 그래도 좀 의심하길래 형제자매들까지 위험할 것 같아서 교회에선 제 본분을 정지시키고 만나지 말라고 했죠. 처음엔 동역자 자매가 저녁이면 절 찾아와서 교회 문제 해결책을 물어보곤 했어요. 또 자기가 형제자매들이랑 교제하면 다들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무시하는 것 같다며 자기는 이렇게 무거운 사명을 받을 재목이 아닌 것 같다고 소극적이 됐죠. 그래도 전 반성하진 않고 오히려 하나님 뜻을 말해 주면서 지위와 체면에 구애받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랬죠. 또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근데 속으론 리더한테 말할까 싶었어요. 제가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닌 것 같으니 계속 본분하는 게 어떻겠냐고, 교회 사역에 제가 필요하다고요. 근데 며칠 후 자매가 리더한테 책망받았다면서 자기가 진리 원칙을 안 찾고 마음에 하나님 자리가 없이 사람만 의지한다고 사람을 추앙하는 성질과 결과를 말해 줬대요. 또 경찰이 미행할 수 있으니 저랑 접촉하지 말랬대요. 그제야 본분 정지가 우연이 아니란 걸 조금 느끼게 됐어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거고, 저의 섬김을 다 정지시킨 거였어요. 전 얼른 하나님 앞에서 반성했는데, 그제야 형제자매들이 칭찬하고 절 기다리던 모습들이 선하게 떠오르는 거에요. 그때 생각했죠. ‘다들 내가 진리 교제를 잘해서 좋아한다고 믿었는데, 정말 그럴까? 교제를 잘한다면 지금까지 양육을 했는데, 어떻게 다들 진리를 알지 못하고 원칙대로 일 처리를 못하지? 어떻게 하나님 의지하고 기도할 줄 모르고 나만 의지할 수 있지? 내가 하나님을 배제시킨 건가?’ 그제서야 속에서 겁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반성하면서 보게 된 말씀이 있어요. 『너희 모두를 놓고 볼 때, 너희에게 어떤 교회를 맡기고 반년 동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너희는 곁길로 샐 것이고, 1년 동안 내버려 둔다면 너희는 사람들을 잘못 이끌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이끌 것이며, 2년 동안 방치한다면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이끌 것이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너희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는 이렇게 할 수 있느냐? 너희의 인식은 다른 사람에게 짧은 시간 동안 공급할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똑같은 것만 말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네가 너무 얄팍하여 깊이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다. 그럼 너는 어쩔 수 없이 도리를 말해 사람들을 미혹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아래 있는 사람들도 네 방식과 절차, 형식에 맞춰 하나님을 믿고 체험하면서 그러한 글귀와 도리들을 행하게 된다. 네가 그렇게 거듭 설교하면 결국 사람들은 모두 너를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네가 앞장서서 도리를 말하면, 아래 있는 사람들도 따라서 도리를 배운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되면 사람들이 곁길로 새게 된다. 네가 가는 길이 곧 아래 있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니, 그들은 너를 보고 배우고 너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면 너는 속으로 ‘이제 내게 권력이 생겼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내 말을 듣다니, 뭐든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 배반의 본성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배제하고 스스로가 어떤 종파나 파벌을 형성하게 한다. 각 종파나 파벌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바로 이렇게 생겨났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며, 또한 곳곳에서 스스로를 내세우고 드러내며 하나님을 아예 마음에 두지 않는다. 너희는 내가 한 이런 말을 체험해 보았느냐?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을 증거한다. 자신이 어떻게 고통을 받고 어떻게 사역을 했다느니,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또 아주 신임하여 무엇을 하게 했다느니, 자신은 지금 어떠어떠하다느니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사람은 말할 때 일부러 특정 말투와 자세를 취하는데, 결국 다른 이들이 그를 하나님이라고 여기게 될 정도다. 사람이 이 정도가 됐을 때는 성령이 버린 지 오래다. 비록 잠시 그를 상대하지 않고 출교하지 않더라도,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으니 징벌받을 일만 남았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 중에서) 이 심판의 말씀에 제 마음이 막 찔리고, 정말 너무 두려웠어요. 비춰 보니 제가 바로 이런 사람이더라구요. 형제자매랑 교제할 때 저는 군림하는 태도를 보였었고 말씀에 대한 문자적인 이해와 이치에 불과한 이해를 형제자매들한테 주입시키고 제가 말한 대로 따라서 행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죠. 결국 모두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았고 제가 한 말을 준칙으로 삼아서 제 교제만 기다렸어요. 게다가 제 경험을 말하면서 틈만 나면 제가 어떻게 다 버리고 고난받았는지 자랑해서 절 부러워하고 탄복하게 했어요. 그게 자기 자랑으로 사람을 제 앞으로 이끈 거잖아요. 리더 본분을 맡기신 건 저보고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을 증거해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라는 거죠. 근데 전 사람 마음을 얻으려고 매일 일찍 일어나 말씀을 보면서 진리를 구하거나 진리를 행해서 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이론과 글귀를 채워서 사람들한테 자랑하기 바빴죠. 뭔가 남다른 깨달음을 교제하려고 계속 심혈을 쏟아부었고 마지막에 교제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인식을 종합해 뛰어나 보이려고 했던 거에요. 전 문제 해결하는 걸, 자기 자랑의 기회로 삼아 형제자매들의 추앙심을 얻어서 지위의 복을 누리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높이 서서 하나님 말씀으로 남을 심판하고 엄한 말투로 말씀을 행하라고 요구하면서 제 위신을 세웠죠. 전 그냥 피조물이고 패괴된 사람인데, 다른 사람의 앙망과 추앙을 받으려고 감히 하나님의 어투를 따라 말씀을 읽었고 엄하게 심판하시는 말씀을 골라서 제 앞에 굴복시켰던 거에요. 그게 하나님을 사칭하는 건데, 그건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사탄 마귀가 할 수 있는 짓이죠. 그때 보니, 제 자신이 너무 사악하고 파렴치하더라구요. 보통의 패괴 성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저주받아 지옥 가야 할 사탄이었죠! 그런데도 낯 두껍게 어떻게 진리로 문제를 해결했는지 동역자들 앞에서 자랑했던 거에요. 결국 동역자나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이 생겼을 때,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는 게 아니라 제가 해결해 주길 기다렸던 거죠. 심지어 제가 본분이 정지됐는데도 동역자는 매일 밤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와선 교회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고 묻고 작은 일들도 진리 원칙대로 못 했죠. 형제자매도 동역자를 저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무시하고 동역자의 양육을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사람들을 다 제 앞으로 이끈 거에요. 생각할수록 겁났어요. 제가 행한 건 적그리스도처럼 사람을 미혹해서 제 앞으로 이끌어 온 거였어요. 그게 독립 왕국을 세우는 거잖아요. 생각할수록 성질이 정말 심각하더라구요.

나중에 또 말씀을 봤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가장 패역한 사람은 일부러 하나님께 불복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원수이며 적그리스도다. 그들은 하나님의 새 사역을 항상 적대적인 태도로 대하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며, 기꺼이 순종하거나 자신을 낮춘 적도 없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가장 대단하다고 여기며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도’에 대해 가장 잘 나누고 다른 사람의 일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원래 가지고 있던 ‘보배’를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오히려 그것을 가보로 삼아 섬기고 다른 사람에게 얘기함으로써 자신을 우러러보는 아둔한 이들을 가르친다. 교회에는 확실히 이런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굴복을 모르는 영웅 세가’로, 대대로 하나님 집에 얹혀산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도’(리)를 얘기하는 것을 자신의 최고 직책으로 삼고, 한 해 또 한 해, 한 세대 또 한 세대 이어 가며 자신들의 신성불가침한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누구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고, 누구도 감히 그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하지 못한다. 하나님 집에서 ‘거물’이 된 그들은 시대마다 권세를 믿고 제멋대로 날뛴다. 이 악마의 무리가 연합하여 나의 사역을 허물려고 하는데, 내가 어찌 이런 산 귀신이 내 눈앞에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느냐? 내게 절반만 순종하는 사람들도 마지막까지 가지 못하는데, 하물며 순종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이 악한 자들은 어떻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 중에서) 이 엄한 심판의 말씀을 보는데, 하나님이 제 앞에서 결말을 선고하시는 느낌이 드는 거에요. 정말 다리가 다 풀렸어요. 사람들한테 높임을 받으려고 늘 글귀와 이치를 말하고 말씀으로 형제자매들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서 사람을 미혹한 거죠. 제가 어떻게 진리를 교제하며 문제를 해결했는지 계속 자랑했는데, 모두 저를 의지하고 제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심지어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했구요. 그게 사람 마음의 하나님 자리를 빼앗는 적그리스도랑 같은 거죠. 하나님이 오셔서 구원하시는 건 귀한 기회에요. 다들 참하나님을 어렵게 만났는데, 전 본분을 이용해서 제 자신을 세우고 하나님께 드릴 사람의 마음을 제가 뺏고 그 마음에 하나님이 아닌 제가 들어가 있었죠. 그러니 다들 절 대단히 보고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은 망각한 거에요. 그건 형제자매들이 구원받을 기회를 망치는 거잖아요. 제가 이 지경이 될지 정말 몰랐어요. 포도원을 빼앗은 악한 종이 된 거죠. 그제서야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오고 제가 너무 미웠어요. 하나님께 죄를 자백했어요. “하나님, 전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늘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면서 형제자매를 제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임하지 않고 본분이 정지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악을 행했을지 모릅니다. 리더가 된 지 1년이 넘었지만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이끌긴커녕 오히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 역할만 하고 외딴길로 끌고 갔습니다. 형제자매한테 미안하고, 하나님께 면목이 없습니다. 전 살 자격 없어요. 하나님의 공의로운 벌을 받겠습니다.” 한동안은 계속 눈물이 났어요. 뭔가 지옥의 문을 열고 들어간 것 같고, 완전히 도태된 것 같았어요. 심지어 살아서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보단 하나님이 절 일찍 멸하시면 좋겠더라구요.

많이 괴로웠는데, 말씀이 생각나더라구요. 읽어볼까요? 읽을게요. 『지금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지난날의 과오를 하나님이 기념하든 안 하든, 사람은 어떤 마음을 품어야겠느냐? “나는 성품 변화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해야 해. 다시는 사탄의 꾐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짓도 하지 말아야지.” 지금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는 관건은 무엇에 달렸느냐? 바로 네가 설교를 들은 후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지,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지, 변화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이것이 관건이다. 네가 잘못을 뉘우치기만 할 뿐 막상 일할 때는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과거에 하던 대로 진리를 찾기는커녕 낡은 관점과 낡은 방법을 고수한다면, 인식이 있기는커녕 오히려 원래보다 상태가 더 심해졌다면, 너라는 자는 가망이 없으니 폐기 처분되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많이 알고 너 자신을 많이 알수록, 너는 자신을 더 잘 장악할 수 있다. 자신의 본성을 더 밝히 알수록 자신을 더 잘 보호할 수 있게 된다. 경험 교훈을 종합 정리한 후에는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사람마다 조금씩 오점은 있지만 하나님이 따지지 않을 뿐이다. 모든 사람에게 있다. 어떤 사람은 가벼운 반면, 어떤 사람은 심각하고,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말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고, 어떤 사람이 한 일은 다른 사람이 아는 반면, 어떤 사람이 한 일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오점이 있고, 교만이나 독선 같은 패괴 성품을 드러낸 적이 있다. 약간의 과오나 사역상 실수가 있고, 가끔은 패역도 있다. 이 모든 건 이해할 수 있는 일로, 패괴된 인류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진리를 깨달은 후엔 이런 일들을 피하고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지난날의 과오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회개하는지, 진정 변화했는지를 본다. 회개하고 변화했으면 구원받은 사람이고, 시종일관 회개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다. 만약 진리를 깨달은 후 알면서도 일부러 잘못을 저지르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며, 조금의 변화도 없다면, 아무리 책망과 훈계, 경고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구제할 방법이 없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베드로의 길을 가야 한다> 중에서) 이 말씀을 보는데, 정말 감동도 되고 자책도 됐어요. 전 그렇게 많은 악행을 하고도 회개는 않고 하나님을 오해했으니 정말 양심과 이성이 없이 억지만 부린 거더라구요. 하나님은 패괴함을 보시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참된 회개가 있는지를 보시잖아요. 하나님을 오해할 게 아니라 다시 힘내서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을 잘 반성해야 하죠. 그렇게 해야 자기 자랑 하는 걸 멈출 수 있어요. 하나님이 제 결말을 어떻게 정하시든 변화되고 진리에 진입하길 추구해야지 하나님을 대적해선 안 되는 거에요. 그때 이걸 깨닫고 나서는 그렇게 가라앉지 않고 제 영적 상태에 맞춰 말씀을 봤어요.

그때 본 말씀을 통해서 저의 교만한 본성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됐어요. 『어떤 사람은 바울을 매우 숭배한다. 밖에서 강연하고 사역하는 것을 좋아하며 모임을 가지기 좋아한다. 연설하기 좋아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따르고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모두 그의 형상에 관심 갖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모습들에서 그의 본성을 파헤쳐 보자. 그의 본성은 무엇이겠느냐? 그가 정말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사람은 교만하고 하나님을 조금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것은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점유하고 싶어 하며 그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다. 그의 본성 가운데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바로 교만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를 경배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런 모습을 통해서 그의 본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네 안에 정말 진리가 있으면 자연히 바른길로 가게 되고, 진리가 없으면 쉽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네 내면에 교만함이 있다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된다. 대적할 수밖에 없다. 너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교만함은 네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하며, 너 자신을 추켜세우고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뽐내게 한다. 마지막에는 네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를 증거하고, 자신의 뜻과 생각, 관념에서 나온 것들을 진리로 여겨 받들게 한다. 교만한 본성이 사람을 지배하여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했는지 보아라!』(<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그때 이 말씀을 보고 나서 깨닫게 됐어요. 제가 계속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적그리스도의 악행을 했던 건 교만한 본성에 지배받았기 때문이었죠. 전 계속 “천상천하 유아독존”, “살아서도 영웅, 죽어서도 영웅이 되자.”, 이런 사탄 철학에 묶여 살았어요. 그래서 늘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한테 떠받들리는 게 진짜 멋진 삶이라고 여겼어요. 이 사탄 독소가 제 뼛속과 혈액 속까지 파고들어 제 본성이 됐고 절 교만하게 만들었죠. 그래서 늘 중심이 되려고 노력했던 거고 글귀를 조금 아는 걸로 자랑하면서 모든 사람이 저를 떠받들고 절 중심에 두고 따르게 했어요. 떠받들리면서 자아도취에 빠져 잘난 척하던 제 모습을 생각하니 정말 역겨워요. 자기 자리를 모르고 제가 어떤 존재인지를 전혀 몰랐잖아요. 사실, 제가 하나님 말씀으로 형제자매들의 어려움을 조금 해결할 수 있던 건 다 성령의 인도와 깨우침이에요. 성령 역사인 줄도 모르고 제가 분량 있고 진리 실제가 있어서 그런 줄 알고 낯 두껍게 자기 자랑을 했던 거에요. 진짜 진리 실제가 있으면 글귀를 크게 떠벌리지 않고 자신의 패괴된 본질과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하죠. 그런 사람이 정상적 인성을 가진 사람이구요. 그런 사람은 성령의 역사와 자신의 진짜 분량을 구분할 수 있고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할 수 있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살고, 진리를 구하면서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죠. 절대 저처럼 낯 두껍게 자기 자랑을 안 해요. 바울을 보면 떠받들리는 걸 좋아했잖아요. 바울은 늘 대단한 이치와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을 가지고 사람들의 추앙을 받으면서 아주 교만한 지경에 이르렀죠. 심지어는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1)고 했죠. 대놓고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면서 하나님을 거슬러 지금도 하나님의 벌을 받고 있죠. 제가 좋아하고 추구하고 걸었던 길은 바울과 다른 게 없더라구요. 이렇게 반성하게 되니 더 후회되고 두려웠고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느끼고 경외심을 좀 더 갖게 됐어요. 또 사람들에게 떠받들리고 추앙받으려는 건 사탄 성품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였어요.

그 뒤로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면의 말씀을 다 찾아서 열심히 읽었어요. 그중에 두 단락 말씀이 인상이 깊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하나님을 증거할 때에는 주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지, 어떤 시련으로 사람을 연단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지, 너희가 체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내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결국 어떻게 정복되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얼마나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말해야 한다. 너희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할 때 공허한 이론을 말하지 말고 사실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말하며, 마음속 말을 솔직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체험하면 된다. 심오하고 공허한 이론으로 자신을 뽐내려 하지 말라. 그러면 너무 교만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실제적인 말, 마음에 있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이는 사람에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되고 사람들 보기에도 가장 적절하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교회의 리더와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선민들을 이끌어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게 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증거하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과 하나님 사역의 취지를 더 깊이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요구를 분명히 이해하며, 성실하게 아는 만큼 실행하고 인식한 만큼 교제하는 것이다. 또한, 허풍을 떨지 않고, 허튼소리를 하지 않으며, 과장하여 말하지 않아야 한다. 네가 과장된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살 것이요, 나중에는 너 스스로도 책망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합당치 않은 일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가 있어야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다>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제가 실행할 길을 얻었어요. 하나님을 증거하는 건 말씀을 좀 읽어 주고 말씀대로 행하라고 하거나 또는 깊은 이론으로 가르치면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교제해 주고 말씀에 대한 체험을 이야기해야 하죠.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어떻게 경험하게 됐는지 그땐 어떤 패괴함을 드러냈는지 하나님 말씀에서 어떻게 폭로하고, 자신이 어떻게 깨달았는지 어떻게 실행했는지를 말해야 하고 하나님의 사역과 성품에 대해 깨달은 걸 말해야죠. 사실 돌아보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려 하지 않고 공허한 이론만 떠벌렸으니 변화된 모습은 전혀 없고 오히려 더 교만해졌죠. 결국 자신도 망치고 다른 사람도 미혹했어요. 지금 보면 실행과 진입이 가장 중요해요. 범사에 하나님 뜻을 구하고 자신의 패괴와 부족함을 반성하고 자기 자리에 서서 말씀에 대한 체험으로 하나님을 증거해야죠.

그 후에 말씀을 교제할 때는 경건한 자세로 임하게 됐는데, 더 이상 공허한 이치를 말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제가 체험하고 깨달은 걸 아는 것만큼 이야기했어요. 사람들에게 떠받들릴 생각은 하지 않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데만 마음 썼어요. 또 새로운 깨달음이 있으면,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구요. 그건 제 분량이 아니라 성령의 깨우침이라고요. 다시 떠받들리는 게 두려웠거든요. 만약 누가 칭찬하면 너무 두려워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전부 하나님의 역사라는 걸 깨닫게 해 줬어요. 다신 전처럼 그렇게 잘난 척하고 이론을 떠벌리지 않아요. 이렇게 행하니 마음이 편해졌고 하나님과도 가까워졌어요. 본분을 통해 얻어야 할 건 사람의 추앙심이 아니라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앎이란 것도 깨달았죠. 전에 추앙받는 느낌을 즐겼던 걸 생각하면 제가 너무 역겹기만 해요. 이제야 진짜 와닿아요. 제 자신을 좀 알고 변화된 건 다 하나님의 구원이에요.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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