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 이행과 부모에 대한 효도가 충돌할 때

2024.08.30

저는 몇 년 동안 계속 객지에서 본분을 이행했었어요. 물론 가끔 엄마 생각이 났지만 본분 때문에 많이 바쁘고 게다가 엄마도 아직 몸이 성하고 젊으신 편이라 본분을 이행하는 데 큰 걱정거리나 구속받을 게 없었어요. 그러다 2020년 9월에 중국 공산당이 인구 조사를 빌미로 집집마다 돌아 다니면서 신앙인 색출 작업을 시작했어요. 저도 그때 경찰에 잡혀 갇혀 있다가 보석으로 풀려나 집에 가게 됐죠. 오랜만에 엄마를 봤는데, 엄마는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 다리도 많이 아프셨고, 고질적인 위장병은 더 악화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만 뭘 잘못 드셔도 며칠이나 고생하셨어요. 게다가 집에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있던 상황이라, 엄마는 장기간 예배도 드리지 못해 내적 상태도 좋지 않더라고요. 더구나 제가 두 번이나 경찰에 잡혀가는 바람에 엄마가 제 걱정하느라 조금 우울해지고 사람도 잘 안 만나려고 하시니까 보는 저도 괴롭더라고요. 아버지가 일찍이 돌아가셔서 엄마는 혼자 저랑 동생을 공부시킨다고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정말 효도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기회가 없었어요. 근데 지금은 집에 왔으니까 이참에 잘 좀 챙겨 드려야겠다 싶더라고요.

제가 집에 돌아오기 바쁘게 국가 보안팀에서 찾아와 매달 정해진 날에 출석해서 행적과 했던 일들을 보고하라고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교회랑 연락할 수도 없었고 본분도 이행할 수 없었죠. 그래서 일단 촬영 관련 일을 찾아서 일하며 집도 돌봤어요. 시간이 날 때면 엄마랑 그동안 겪어 온 걸 나누기도 했고, 가끔은 동생이랑 엄마를 모시고 맛난 것도 먹으러 가고, 가끔은 병원에도 모시고 가고, 위장을 편하게 해 주는 건강식품이랑 영양제도 좀 사 드렸어요. 근데 경찰이 툭하면 집에 찾아와서는 출석하라 그러고, ‘3서’에 서명하라 그러고 못살게 구니까 엄마는 제가 이렇게 통제당하다가는 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계속 걱정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더 우울해지고 사람들을 더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고 심지어 장 보러 가기도 싫어하시게 되더라고요. 엄마가 그러니까 저러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너무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모로 일깨우고, 교제를 나누기도 하고, 모시고 나가서 바람도 쐬고 했지만, 별로 큰 효과는 없었어요. 걱정도 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일단 제가 열심히 일해 생활이 좀 더 나아지게 해서 엄마의 걱정을 더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안 보였어요. 어느덧 1년이 지났지만 저에 대한 경찰의 감시는 매한가지였고 당시 그곳에서는 여전히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 상태였죠. 나중에 형제자매들이 객지로 가서 본분을 이행하는 건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저는 엄마의 상태가 걱정돼 조금 더 곁에서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제안을 거절했어요. 그 후에도 형제자매들은 여러 번 교제를 나누면서 절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교제하면서 제가 계속 본분을 이행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저도 그건 하나님의 사랑이 제게 임한 거고, 저에 대한 구원이라는 걸 느꼈어요. 근데 내적으로는 갈등이 심했어요. 제가 본분 이행 때문에 다시 집을 떠나면 경찰 측에서는 연락 두절 인원이 발생하는 거고 일단 떠나면 언제 다시 올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엄마가 몸도 안 좋고, 내적 상태도 엉망이지만 그래도 당장은 제가 곁에서 어느 정도 돌봐 드리면서 효도를 할 수 있는데, 제가 떠나면 엄마의 우울 상태가 더 심해지지는 않을지, 이러다 정말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친지들이 나를 뭐라고 할지, 평생 불효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어요. 그러니까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너무 난감한 거예요.

그러던 와중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에 관한 내용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요구를 했고, 그다음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데 대해 더 높은 요구를 했다. 너는 어떤 것을 지켜야겠느냐? (더 높은 요구를 지켜야 합니다.) 더 높은 요구대로 실행하면 옳겠느냐? 진리에 높고 낮음과 새롭고 오래된 것의 구분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럼 진리를 실행할 때는 무엇에 따라야겠느냐? 무엇을 진리 실행이라고 하느냐?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진리 실행은 서로 다른 시간, 장소, 환경, 배경 조건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다. 규례에 얽매이지 않고 진리 원칙을 지키는 것, 이것을 진리 실행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요구를 지키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부탁, 본분을 완수하는 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어떤 것이 하나님의 현시점 말씀이고 요구겠느냐? 먼저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같지 않고 차이가 있다. 리더 일꾼의 경우,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으니 버릴 줄 알아야지, 부모 곁에서 효도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한 가지 상황이다. 이 밖에 평범한 신자의 경우,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부모 곁에서 효도해도 된다. 열심히 효도해도 뭔가 상은 없고 축복을 얻을 수도 없겠지만, 효도하지 않는다면 인성이 없는 것이다. 사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나의 책임일 뿐, 진리 실행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진리 실행이고,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이며, 모든 것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는 자야말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어쨌든,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이다. 그럼 현재 실행해야 할 진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본분 이행입니다.) 그렇다.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진리 실행이다.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힘만 쓰는 것에 불과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4)> 중에서)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알게 됐어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과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요구이자 사람이 마땅히 실행해야 하는 거죠. 본분 이행에 지장이 가지 않는 전제하에 부모를 최대한 많이 돌봐 드리고 함께하면서 걱정을 덜어 주는 건 자녀로서 당연히 다 해야 할 책임이었어요. 하지만 그게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랑은 관련이 없는 일이죠. 이번에 엄마가 아플 때 제가 병원에 모시고 가거나 건강식품과 영양제를 사드리는 것 같은 건 자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건 그저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것일 뿐, 진리를 실행한 거는 아니었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본분을 이행하라고 사람을 부르실 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본분 이행이 충돌하는 상황이 닥치면 피조물은 당연히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선택을 해야죠. 그건 천직이자 현시점에서의 하나님의 뜻과 요구니까요. 이걸 깨닫게 되니 제가 뭘 택해야 할지 알겠더라고요. 지금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크게 확장해야 할 중요한 시기잖아요. 사람의 협력이 가장 필요한 다급한 순간인데,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신 많은 진리를 공급받고 누렸고, 하나님 집에서 수년간 육성받았으니 당연히 본분 이행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려야죠. 게다가 지금 엄마가 몸이 썩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정도는 아니고 곁에 또 돌봐 줄 수 있는 삼촌이랑 동생까지 있으니까 저는 제 본분을 이행하는 게 먼저더라고요. 그건 저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와 요구고, 또 제가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에 이르려면 꼭 해야 하는 거였어요. 더구나 집에 있으면 계속 경찰의 감시와 관리를 받아야 하는데, 그럼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고 신앙의 길을 제대로 걸어갈 수도 없잖아요. 집에 있으면 엄마 곁에서 효도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엔 집과 육에 얽매여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 관계로 피조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게 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게 되죠. 그때 하나님 앞에서 제 일생을 하나님께 드리고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던 게 떠올랐어요. 또 생각해 보니 객지에서 본분을 이행했던 기간에 많은 공과를 배웠고 생명이 조금 자라기도 했고요. 그게 육적인 가정에서 사는 것보다는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거잖아요. 그건 하나님께서 이끄신 길이자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정해 주신 길이죠. 전 그 길을 계속 가기로 다짐했어요.

그래서 저는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객지로 떠날 생각이라고 엄마한테 얘기했어요. 엄마는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제 선택을 존중해 주셨죠. 그 뒤로 며칠간 업무를 처리하면서 시간이 날 때 엄마랑 같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같이 교제를 나눴어요. 엄마가 빨리 우울한 상태에서 벗어나길 바랐거든요. 그렇게 며칠 동안 집의 일들을 다 마무리해 놓고 떠났어요. 그리고 바로 본분 이행을 시작했죠. 본분으로 많이 바빴어도 엄마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죠. 대문 앞까지 따라 나와 떠나는 저를 보며 아쉬워하고 슬퍼하던 눈빛을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웠어요. ‘집에 있었을 때는 그래도 자주 엄마 곁에 있어 주고, 속내도 털어놓곤 했으니까 엄마가 많이 외롭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 내가 집을 떠났으니 어떠실지 모르겠네? 엄마 건강 상태가 좋은 편도 아닌데, 더 아파서 우울 상태가 더 심해지지는 않았을까? 시간이 길어지면 괜히 나쁜 생각이 들어서 바보짓을 하는 일은 없겠지?’ 이렇게 생각할수록 더 걱정이 되는 거예요. 정말 엄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친척들이 뒤에서 손가락질하면서 저를 욕할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 걸 생각할 때면 심적으로 방해를 받게 됐고, 본분을 이행할 때에도 집중이 잘 안 됐어요. 물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나왔으면 본분에 마음을 다 쏟아야 한다는 걸 알고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알죠. 근데 엄마에 대한 설명하기 어려운 미안한 마음과 자책감은 떨쳐 버릴 수 없었어요.

그러다 하나님의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진정 나를 위해 완전히 헌신하고 바칠 수 있는 자 누구냐? 모두가 이리저리 망설이고, 이모저모 따져보며, 가정과 바깥 환경, 먹고 입는 것 등을 생각한다. 너는 지금 나를 위해 내 앞에서 일을 한다고 하나, 네 마음은 여전히 집에 있는 처자식과 부모를 생각한다. 설마 그러한 것들이 다 너의 유업이란 말이냐? 어째서 그러한 것들을 내 손에 맡기지 않는 것이냐?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냐? 아니면 내가 네게 마련해 준 것이 적절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냐? 어째서 줄곧 육체의 가정을 마음에 두고 가족을 걱정하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59편> 중에서) 맞더라고요. 엄마의 건강이 어떻게 될지,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정서가 더 심해질지 아닐지도 다 하나님 손에 달린 거잖아요. 제가 아무리 걱정하고 근심한들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하나님께 맡기는 게 답이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께 맡기는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엄마의 상태가 호전될 수 있을지, 병세가 더 심해질지 나을지는 다 하나님께 달렸음을 믿습니다. 엄마가 의기소침하고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나올 수 있게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이 일에서 엄마가 배워야할 공과가 있다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을 알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십시오. 저는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하심에 순종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든든해졌어요. 그러고 나서 제가 깨달은 걸 편지로 작성해 엄마한테 보냈죠. 엄마가 빨리 자신을 반성하고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 엄마의 체험 과정에서 보였던 문제점도 조금 짚어 드렸어요.

얼마 후 엄마의 편지를 받게 되었죠. 제가 떠나고 얼마 안 돼 형제자매들이 교회 생활을 할 수 있게 안배해 줬는데, 엄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자신이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부정적인 정서에 빠져 있던 것에 대해 깨닫게 되면서 내적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편지를 받으니까 얼마나 기쁘던지,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그 후에 하나님께서 부모에 대한 책임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에 관해 말씀해 주신 걸 보게 되면서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고, 올바른 관점과 실행 원칙을 얻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사람이 감정적으로 가장 처리하기 어려워하는 관계이지만 사실 처리 못 할 일은 아니다. 사람은 오로지 진리를 깨달은 기초에서만 이 문제를 올바르고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다. 감정의 각도나 세인의 시선과 각도를 출발점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올바르게 부모를 대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자녀는 부모에게 어떤 존재인지, 자녀가 부모를 대할 때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사람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이런 문제에 있어서 감정을 근거로 해서는 안 되며 그 어떤 잘못된 사상 혹은 사회 여론의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된다.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올바르게 대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정한 환경 속에서 네가 부모에게 어떤 책임도 다하지 못한다거나 그들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치자. 그러면 불효하는 것이냐? 네가 양심에 참소를 받겠느냐, 받지 않겠느냐? 네 주변 이웃, 동창, 그리고 친척들이 모두 뒤에서 너를 욕하고, 헐뜯고, 너를 불효자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네 곁에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데, 이 불효자 같으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는 잘 지내는지 연락 한 번을 안 하고. 새해에도 집에 안 오면서 전화 한 통조차 없고 부모님 안부도 안 묻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네 양심이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가책을 느낀다. ‘아아, 저 말이 맞아.’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꼭 바늘에 찔린 것처럼 흠칫흠칫 떨린다.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느냐? (예전에 그랬습니다.) 네가 불효한다고 하는 이웃과 친척들의 말이 옳으냐? … 우선,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객관적인 전체적 환경 때문이다.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하고, 부모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원해서 부모를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 측면의 객관적 원인이다. 다른 측면을 보면, 주관적으로 말해서 네가 밖에 나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부모를 떠나 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에 남아 함께하면서 그들을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책임을 회피하려고 나온 것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인 네가 그들을 떠나 밖에 나와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했던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네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있다.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객관적인 환경이 허락했다면, 그들 곁을 지키는 동시에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다면 너는 그들 곁에서 항상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네 책임을 다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환경 때문에 너는 반드시 그들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을 지킬 수 없었다. 네가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성질이 다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집을 떠난 것이 그들에게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는 불효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워 줬는데 너는 머리가 커지자마자 나가서 혼자 살지 못해 안달이고, 부모를 보기 싫어하고, 부모한테 어려운 점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려 하고, 상관할 여건이 돼도 상관하지 않으면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효이다. 하지만 지금이 이런 상황이냐?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자 자기가 살던 현(縣)을 떠나고, 시(市)를 떠나고, 성(省)을 떠나고, 심지어 나라를 떠났다. 이미 고향을 멀리 떠난 데다가 갖가지 이유로 집에 연락하기가 어려워서 가끔 고향에서 온 사람을 통해 부모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전해 들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심한다. 사실 너는 불효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을 상실한 수준에 이르러 부모마저 신경 쓰지 않으려 들고 책임을 안 지려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객관적인 원인 때문에 이렇게 하기를 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불효가 아니다. 여기까지가 두 가지 원인이고, 이 외에 한 가지 원인이 더 있다. 만약 부모가 하나님 믿는 것을 유난히 박해하고 가로막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부모가 지지했다면, 혹은 너처럼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였고 모두가 하나님 집의 사람이었다면 마음속에 부모가 떠오를 때 묵묵히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부모를 하나님 손에 맡기고 그들의 건강과 안전, 그들 생활에 필요한 것 일체를 하나님 손에 맡기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네가 부모를 하나님 손에 맡긴다면 그들에게 최고로 효도하는 것이다. 너는 그들의 생활에 온갖 난관이 임하기를 바라지 않고 그들이 잘살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너는 마음속으로 분명 그들이 평안하도록 하나님이 지켜 주기를 바랄 것이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본분을 이행하고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면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것이다. 사람은 인성으로 그 정도에만 이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며 그토록 많은 진리를 들었으면 최소한의 인식과 이해는 있다는 것이다. 바로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정하며, 사람은 하나님 손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지킴이 자녀의 걱정과 효도, 자녀가 곁에 있어 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이 부모를 보살펴 주고 지켜 준다면 네 마음이 푹 놓이지 않겠느냐?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네가 걱정한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너무 작은 것이다. 만약 네가 정말로 그들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린다면 자주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그들을 하나님 손에 맡겨 하나님이 지배하고 안배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하나님이 그들의 매일을 주재하며 그들에게 임하는 모든 일을 주재하는데, 네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냐? 너는 너 자신도 주재하지 못하고 네 코가 석 자이다. 네가 무슨 수로 부모를 매일 행복하게 해 주겠느냐? 너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에게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결국에는 구원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해라. 그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자기들이 원하는 길을 걸으라고 해라. 조금 낫고 인성이 조금 있는 부모라면 여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된다. 하나님이 어떻게 행할지는 하나님의 안배가 있을 것이니 사람은 순종해야 한다. 그래서 종합해 보자면, 사람이 자식으로서 다할 책임에 대해서는 사람의 양심 속에 지각이 있다. 그 지각으로 인해 사람이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든지 간에, 걱정을 하든 아니면 그들 곁에서 함께하길 선택하든 간에 결론적으로 사람은 객관적 환경의 영향으로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고 해서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 등등을 느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을 믿는 삶 속에서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그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과 관련된 화제가 나왔을 때 사람은 이렇듯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더는 구애되지 말아야 한다. 한 측면으로는, 너는 마음 깊이 네가 불효하는 것이 아니고 책임을 다하기가 싫어서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다른 측면으로는, 부모가 하나님 손안에 있는데 네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냐? 사람이 무슨 걱정을 하든 전부 쓸데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물 흐르듯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따라 마지막까지 살아가고 길을 끝까지 걸어간다. 조금도 빗나가는 법이 없다. 그러니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더 번뇌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인지,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했는지, 부모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는 게 아닌지, 이것들은 네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네가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저는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느라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됐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불효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까 봐 겁냈거든요. 저는 진리의 측면에 선 게 아니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녀로서 부모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그저 정이라는 측면에서 세상 사람의 시각으로 대했던 거예요. 사실 부모를 돌볼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되면서도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거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본분을 이행하느라 부모 곁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성격의 문제였어요. 부모와 함께 살면서 충분히 효도할 시간과 기회가 있음에도 자기 이익과 누림을 위해서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부모가 나이 들고 아픈데도 외면하는 건 인간성이 없는 거고, 정상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이성과 지성을 잃은 행태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 부모 곁에서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챙기면서 자기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핍박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객지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려 있죠. 그러니 부모님 곁에서 조금이라도 효도하려고 해도 할 형편이 못 되죠. 교회 사역 상황상, 또는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집을 떠나야 하다 보니 부모님 곁에서 효도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정말 상황만 허락된다면 부모님한테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화도 하고, 잘 지내시는지 안부도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잖아요. 마음속에는 부모님에 대한 걱정이 늘 있죠. 그래서 가족들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부모님을 위해 기도도 하고요. 우리는 각자 상황에 따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효도와 책임을 다하고 있어요. 그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불효와는 다른 거죠.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다른 길을 택했잖아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인생의 바른길을 택했고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길을 추구하고 중요한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있어요. 우리의 본분 이행은 하나님의 뜻과 요구대로 실행하는 것과 관련 있고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과 관련 있어요. 그건 인간의 양심과 도덕의 기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죠. 이걸 깨닫게 됐을 때, 마음이 더 환해졌고 일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과 태도를 갖게 됐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세상 사람의 조롱과 불효자라는 꼬리표를 겁내지 않게 됐어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제게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사람의 생사와 운명은 모두 하나님께 달렸다는 걸 몰랐던 거죠. 부모님의 건강 상태가 어떨지, 어떤 병을 얻을지, 노년을 어떻게 보낼지는 어느 사람이 정하는 게 아니죠. 다 하나님께 달린 거잖아요. 이런 일에서는 당연히 하나님의 주재하심을 알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하죠. 사실 집에 있을 때, 엄마 건강이 그렇게 좋지 않다 보니 저는 일단 전문의가 진단하러 왔다는 얘기만 들으면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갔어요. 그리고 정말 많은 약을 처방받았지만 병이 낫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지기만 했죠. 정말 엄마 곁에서 지키고 앉아 있어도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지 못했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엄마가 우울한 상태에 빠져 괴로워하실 때, 정말 많이 교제를 나누고, 가끔은 일깨워 드리고, 문제점을 파헤치기도 했지만 엄마는 옳지 못한 상태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지 않았어요. 전 그저 속만 태울 뿐 뾰족한 수가 없었어요. 근데 정작 제가 본분 이행을 위해 집을 나왔을 때, 엄마는 예배 모임에 정상적으로 참가하게 됐고, 형제자매들과 만나고 싶어 했으며, 내적 상태도 좋아졌어요. 그때 제 효심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느꼈어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보살피심이 제가 곁에서 돌보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어요. 정말 부모가 잘 지내실지, 편안하고 행복할지는 자녀가 책임을 다하고 효도하는지에 달린 게 아니더라고요. 일체 다 하나님의 주재와 정하심에 달려 있었어요. 자녀로서 최고의 실행은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부모님의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는 거더라고요. 하나님의 말씀에도 있잖아요. 『네가 부모를 하나님 손에 맡긴다면 그들에게 최고로 효도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하심이 가장 알맞다는 걸 믿고 하나님의 주재하심에 순종하면 훨씬 더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어요.

예전에는 이런 걸 모르다 보니까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빠져 있었고 불효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손가락질 받을까 봐 두려워하면서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고 속박받았어요. 비록 본분을 이행한다고 집을 떠났지만 늘 엄마에 대한 걱정이 있으니까 본분 이행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어요. 그 결과 원칙과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본분에 자꾸 문제와 오류가 발생하게 됐어요. 그런데도 저는 죄송한 마음과 후회하는 마음을 가지긴커녕 제가 효도를 못 한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었으니 천지분간을 못 하고 있었어요. 그건 하나님께 패역한 모습이죠. 하나님의 주재하심과 정하심으로 제가 부모님을 얻었고 생명을 얻었잖아요. 제가 피조물인 게 먼저이고 사람의 자녀인 건 그다음이예요. 근데 저는 제 감정을 충족시킬 생각만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으려는 데만 신경 썼지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본분에서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게 대역무도한 게 아니고 뭐겠어요? 양심이 있다고 할 수 없더라고요. 그때 하나님의 이 말씀이 생각났어요. 『너는 효자라는 평판을 지키고, 자신의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양심에 참소를 받지 않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소홀히 하고 잃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그 모든 일을 대하고 처리하지 않아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잃은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네가 부모에게는 효도했으나 하나님을 배반했고, 효도하면서 부모의 육체적,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켰으나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는 차라리 효자가 되기를 선택했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선택하기를 원치 않았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불경이다. 하나님은 네가 대단한 효자이고, 부모를 저버리지 않았고, 양심이 있고,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네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이며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기 양심과 육체적, 감정적 필요만을 충족시킬 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받아들여 이 문제를 대하거나 처리하는 근거 및 원칙으로 삼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심하게 거역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보니까 양심이 많이 찔렸어요. 진짜 제가 엄마 곁에 머물면서 엄마를 누구보다 살뜰히 보살피고 세상 사람들한테 칭찬받고 큰 효자라는 칭호를 받아도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로서의 본분과 역할을 잃어버리고 제 생명과 제 전부를 주신 하나님께 양심적이지 못하다면 저는 가장 패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으로 전락하게 되는 거고,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에 합당하지 못한 존재가 되는 거죠. 이걸 깨달았을 때 참 많이 괴로웠어요. 전 정말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됐더라고요. 하나님 앞에서 너무 양심이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마음이 없었으니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제야 제가 맡은 부탁과 사명이 뭔지 알게 됐고 더 이상 불효자라는 꼬리표에 구속받지 않게 됐어요. 이제는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하심에 순종하고, 본분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고 엄마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어요. 이제는 우리 각자가 자기한테 놓여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의 인도가 있기를 소망하고 있어요. 제가 올바른 걸 택하고 추구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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