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의함의 이면

2024.05.05

한국 첸베이(謙卑)

2021년 10월, 저희는 영상을 한 편 제작했습니다. 공을 많이 들이고 시간과 에너지도 많이 쏟아부어 만든 영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검사를 받을 때 리더에게 세부 문제를 많이 지적받았습니다. 리더는 영상이 별로여서 예전보다 더 나아진 점이 없으니 다시 제작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큰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으니까요. 그럼 영상 제작 기간에 소요된 인력과 물자가 전부 헛된 것이라는 말이잖아요. 그러면 손실이 너무 컸습니다.

당시 저는 좀 어리둥절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겪어야 할지도 몰랐고,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이 영상을 여러 차례 반복 수정하면서 그 사이에 리더에게도 보여 줬었는데, 이런 문제를 지적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자질이 부족하니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찝찝했습니다. ‘이렇게 큰 문제가 생긴 게 단지 내가 자질이 부족해서일까? 내가 본분을 이행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건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그때, 예전에 리더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자신은 초반에 영상 제작의 구상과 방향만 확인할 뿐, 이것이 영상에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니 제작 과정에서 우리가 세심하게 고민하고 점검해서 문제를 발견하면 제때 수정해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리더가 검토한 것이니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제작 과정에서 더 자세히 검토하지 않았으며, 또한 진지하게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완전히 무성의한 태도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문제가 생겼는데도 저는 리더가 이미 검토해서 통과한 동영상이라고 말했으니 이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너무 비이성적이었습니다. 이번에 동영상에 문제가 생긴 일에서 분명히 제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로 구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동역하는 자매가 제작이 완료된 영상을 같이 검토하자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일부 문제를 발견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자매가 말하길 이 영상을 리더에게 보여 주었더니 방향이 매우 좋다고 우리보고 빨리 제작하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수정 제안을 제시할 생각이었지만 리더가 검토하고 나서 좋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가 잘못 본 것인데 저의 건의대로 수정했다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싶었습니다. 이것 또한 방해와 교란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고, 다른 형제도 영상을 본 후 똑같이 느꼈다고 했습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볼까? 하지만…. 만약 내 건의대로 수정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리더가 누가 수정했냐고 물을 텐데, 그럼 전부 내 책임이 되는 거잖아. 내가 책망을 받지 않겠어? 아무래도 리더한테 다시 좀 물어보자. 만약 문제가 없다고 하면 수정할 필요도 없고, 그러면 일도 줄고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지.’ 그래서 저는 동역하는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다시 한번 리더에게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 마음도 좀 놓이니까요.”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난 후 뭔가 찜찜했습니다.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익숙할까요? 그건 바로 이것이 매번 다른 의견에 부딪힐 때마다 늘 사용하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리더를 찾아가 결정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리더가 검토해서 통과하면 우리가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이 다음 단계를 진행하고, 리더가 검토 후 문제가 있다고 통과시키지 않으면 수정했는데, 매번 이런 식으로 해 왔던 것입니다. 동영상 제작 관련 원칙과 요구를 우리가 모르는 것도 아니니 이와 유사한 문제에서 진리를 구해 관련 원칙에 따라 하면 됩니다. 또한, 리더가 분명히 자기는 단지 큰 방향을 확인해 주는 것일 뿐 세부적인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검토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다해야 할 책임이자 저의 주된 사역입니다. 그런데 저는 어째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걸까요? 매번 문제에 부딪히거나 이견이 생길 때마다, 저는 형제자매와 원칙을 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리더에게 미뤄 버렸습니다. 이렇게 제 본분도 다하지 못한 것이지요. 이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생각났습니다. 『늘 아주 수동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기대기만 하는 것은 무슨 태도이냐? 무책임한 태도다. … 너는 글귀와 도리만 이야기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할 뿐, 실제적인 사역은 전혀 하지 않는다. 본분을 이행하기 싫으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실제적인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리를 차지하고만 있지 마라. 이것은 하나님 선민에게 피해를 주고, 교회 사역에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니냐? 네가 하는 말을 들으면 마치 어떤 도리든 다 아는 것 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네게 본분을 맡기면 전혀 마음을 쓰지 않고 건성으로 대충 이행한다. 이것이 진심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냐? 너는 하나님께 진심도 없으면서 진심인 척한다. 네가 하나님을 속일 수 있겠느냐? 평소에 네가 하는 말을 들으면 마치 커다란 믿음이 있는 것 같고, 또한 교회 기둥이 되고 초석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성냥 한 개비의 역할조차 하지 못한다. 이것은 빤히 눈 뜨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속인 결과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건 바로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되는 것이다! 본분 이행은 모든 사람을 드러낸다. 그 사람이 과연 정직한 사람인지, 간사한 사람인지는 본분을 이행해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본분 이행을 통해 드러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 집 사역을 지킬 수 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집 사역을 전혀 지키지 않고, 본분 이행에도 책임감이 없다. 눈치 빠른 사람은 보기만 해도 금방 알 수 있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도, 정직한 사람도 아니다. 이들은 모두 드러나 도태될 대상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은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실제 사역을 해야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전혀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늘 무성의하게 형식적으로만 하고, 문제가 발생해도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으며, 늘 거절할 핑계만 찾고 겉치레만 한다면 이러한 태도로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고, 하나님도 만족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눈에는 폐인이고,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로 하나님이 폭로하신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다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사실은 좀 더 마음을 써서 형제자매와 함께 기도로 구하고 원칙을 교제하기만 해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실행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귀찮아하고 신경 쓰기 싫어서 바로 리더에게 물어볼 생각만 했습니다. 리더가 문제를 해결하면 제가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일이 많이 줄어드니까요. 안 그러면 우리끼리 한참 논쟁을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해결책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문제를 리더에게 미뤘습니다. 그러면서 팀장인 제가 져야 할 책임도 다하지 않고, 치러야 할 대가도 치르지 않았습니다. 이 밖에, 사역 토론을 할 때면 가끔 문제점을 발견하기도 했고, 성령의 깨우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견을 제시했는데 형제자매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저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가 저에게 교만하고 독선적이라고 할까 봐 두려웠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더 두려웠습니다.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어차피 나는 의견을 이야기했으니 자기들이 알아서 판단하겠지 뭐. 만약 의견 일치가 안 되면 리더에게 물어봐야지. 그러면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나까지 책임을 추궁당하진 않을 거야.’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떻게 해야 진리 원칙에 부합할지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이익은 더더욱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일말의 대가도 치르지 않았으며, 너무 무책임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 문제를 발견하면 제기했지만 제가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았습니다. 검토와 결정을 늘 남에게 미루고 저는 결정하지 않았죠. 정말이지 간사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이는 교회 이익을 지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우리는 문제를 발견하면 바로 리더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자신이 매우 이성적인 줄 알았습니다. 모르면 여러 번 물어보니 맹목적으로 자신을 믿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하나님 말씀에서 폭로한 내용과 대조해 보고 나서야 제가 무책임하고, 본분을 무성의하게 대했고, 충성심이 없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너무나 무감각하고 둔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많은 상황에 직면했는데도 난 한 번도 진리를 구하거나 공과를 배우지 않았구나. 그리고 항상 흐지부지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본분을 대했어.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건 정말이지 너무 위험해! 지금 문제를 발견했는데 다들 의견이 달라. 그런데 함께 진리 원칙을 구하면서 합의하거나 해결 방법을 찾지도 않고, 곧바로 리더에게 미룬다면 이건 분명 무성의한 거야. 안 되겠어. 내 이런 내적 상태를 바꿔야 해. 만약 여전히 중용의 길을 걷고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건 뻔히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거야.’ 그 후 저는 동역하는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아니면 우리 수정본을 하나 만들어서 효과를 대조해 보고, 되겠다 싶으면 리더에게 검토받기로 해요.” 자매도 제 말을 듣더니 그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가볍고 편안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지는 것을 겁내는 사람은 과연 겁이 많은 것일까, 아니면 성품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 일에 대해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이것은 겁이 많은 문제가 아니다. 자기를 위해 돈을 벌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일을 할 때, 그는 어찌 그렇게 담대하단 말이냐?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나 하나님 집을 위해 일할 때는 눈곱만큼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사람은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제일 간교한 사람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 대해 진심이 전혀 없고, 충성심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책임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과감하게 중임을 맡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는 하나님 집 사역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앞에 나서서 용감히 나아가는 자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핵심적인 사역을 보면 용감하게 막중한 책임을 짊어질 줄 알고, 고생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정예병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지는 것을 겁내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냐? 아니다. 그것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는 정의감도 책임감도 없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자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고, 진리를 전혀 안 받아들이는 자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는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얻으려면 수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또 진리를 실행할 때는 숱한 장애물에 가로막힐 수 있으므로 반드시 어느 정도 버리고, 육적인 이익을 포기하며, 얼마간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래야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책임지기를 겁내는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절대 실행할 수 없다. 그러니 진리를 얻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두렵고,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이 두렵고, 모욕을 당하고 비방과 판단을 받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감히 진리를 실행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그는 진리를 얻을 수 없다. 아무리 오랜 시간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한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교회 사역에 부담이 있는 사람, 책임감이 있는 사람, 진리 원칙을 견지할 수 있는 사람, 고생하며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몇 가지를 갖추지 않은 자는 본분 이행에 적합하지 않다. 그런 자는 본분 이행의 조건을 갖추지 않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책임지기를 두려워한다.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주로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언제나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본분을 선택한다. 교회 리더가 본분을 이행하라고 하면, 그는 먼저 그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물어본다. 만약 책임을 져야 한다면 받아들이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면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또 힘든 일은 아닌지,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은 아닌지 본다. 마지못해 받아들인다고 해도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려 하지 않고 대충 건성으로 넘기려 든다. 한가하고 고생하지 않으며 육적으로 힘들지 않은 것을 원칙으로 삼는 것이다. 둘째,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문제에 직면했을 때 먼저 리더에게 보고해서 처리하고 해결하게 하며 자신은 편안하게 있으려고 한다. 리더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관심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책임만 지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식의 본분 이행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겠느냐? 이는 책임 전가이자 직무 태만이며, 농간을 부리는 것이고, 입만 살아 있고 실제적인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속으로 ‘내가 그 일을 했다가 마지막에 실수라도 하면 어떡해? 책임을 추궁하면 내가 처리되지 않겠어? 내가 첫 번째 책임자 아니겠냐고.’라고 한다. 바로 이 점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럼 너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냐?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올바르다면, 경험이 없고 그와 비슷한 일을 처리해 본 적도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알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고 사람의 마음을 감찰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것조차 믿지 못한다면 이는 불신파 아니겠느냐? 그런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 본분을 이행하면서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일, 단순한 일, 책임지지 않는 일만 한다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고 책임져야 하는 일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 또 문제라도 생기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책임을 남에게 미룬다. …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 일말의 책임감도 없는데 어떻게 그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며,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면 일을 그르치기만 할 뿐이다. 이런 사람은 믿을 수 없고 일을 맡길 수도 없다. 그는 순전히 공밥 먹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자신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느낀 것이 무척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제 내적 상태였으니까요. 교회에서 맡긴 사역을 대할 때 저는 진리 원칙에 힘쓰며 하나님께 의지해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라 난관에 봉착하면 도피했고, 무책임하게 리더에게 문제를 미루어 리더가 검토하고 처리하게 했습니다. 리더가 알려 준 대로만 하면서 설령 결국 제대로 못 해도 나의 책임이 아니니 책망도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농간을 부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저는 자신이 매우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책임을 회피하고 직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고, 이런 자가 가장 교활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바로 간사한 수작을 부리며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저는 책임지지 않으려고 늘 자신의 퇴로를 남겨 놓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전혀 진심이 아니었으며, 진실한 대가조차도 전혀 치르지 않았고, 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또한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무성의하게 대하고, 기만하고, 봉사하는 일에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으니 본분을 이행할 일말의 자격도 없었습니다. 과거에 매번 동영상이 만들어졌을 때를 생각해 보면, 리더가 초기 검토에서 통과라고 하면 저는 더 이상 세세하게 검토하거나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제작 기간 형제자매가 건의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대충 검토해 보고는 문제없다고 하면서 정말 무책임하게 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완성된 영상에 문제가 생겨 작업을 다시 하기도 했습니다. 검토할 때 서로의 견해가 일치되지 않은 일부 영상은 문제점을 알더라도 제가 결정을 내리지 않고, 모두 리더에게 보여 줘서 리더가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문제 중에는 분명 우리가 원칙을 잘 몰라서 검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리더의 도움과 지도를 통해 제때 오류를 바로잡아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는 분명히 우리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고, 치러야 할 대가도 치르려 하지 않고, 생각해야 할 것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저 편안히 앉아 결과물만 누리려 하였습니다. 저는 본분 이행에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았으며, 문제에 부딪혀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오류가 생기거나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정리해 보고 공과를 배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게 습관이 된 데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누구나 실수한다는 생각마저 했습니다. 그러자 확실히 문제들을 놓치는 일이 생겼는데, 이건 제 자질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문제들을 제가 잡아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떠나, 최소한 지녀야 할 책임감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건성으로 무책임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리더에게 책임을 미룬 건 엄연히 사실을 왜곡하고 잘못을 떠넘긴 행동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이는 제가 자질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인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일이 임하면 늘 스스로를 지키고, 여지를 남기거나 자신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는데, 이것이 진리 실행이겠느냐? 이는 진리 실행이 아니라 농간을 부리는 것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 본분 이행의 첫 번째 원칙은 무엇이냐? 바로 마음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리 원칙, 네가 실행해야 할 원칙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여지를 남기는 것은 이방인들의 실행 원칙이요, 최고의 철학이다. 어떤 일이든 먼저 스스로를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1순위에 두는 것,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이니, 남들의 이익이니 하는 것은 전부 자신과는 무관하게 보는 것, 자신의 이익을 가장 먼저 고려하고, 그다음으로 퇴로를 생각하는 것, 이런 자는 이방인 아니겠느냐? 이런 자가 바로 이방인이다. 이런 부류는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자신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정곡을 찔렀습니다. 본분 이행에 대한 저의 그런 관점이 뜻밖에 이방인의 관점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일이 생기면 저는 자신의 이익을 가장 먼저 고려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물을까 두려웠던 거죠. 그래서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마음과 힘을 다한 적도 없고, 진리를 구하거나 원칙에 따라 일 처리한 적도 없으며, 교회 이익을 고려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힘쓰는 정도에만 만족하고 매일 정해진 대로 형식을 거쳤는데, 이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건 사장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이방인의 모습과 다름없었습니다. 바로 이번처럼 동역하는 자매와 서로 의견이 다를 경우 왜 리더에게 결정을 미루려고 했는지 생각해 보면, 그것은 바로 책임을 지기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뻔히 보이는 문제도 리더에게 미뤄서 결정하도록 하면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제야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세가 제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도 간사하고, 이기적이며, 비열하여 전혀 신뢰할 가치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잔머리를 굴리고 간사하게 굴면서 전혀 진심이 없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정말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지지 않고 늘 대충 건성으로 넘기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를 발견할 수 있지만, 해결책을 구하기 싫어하고 남에게 미움받을까 몹시 두려워 그저 대충 얼버무리고 끝내는 것이다. 결과 재작업을 해야 한다. 본분을 이행하면 책임도 져야 하는데, 왜 진지하게 대하지 않느냐? 왜 대충 건성으로 대하는 것이냐? 이런 본분 이행은 직무 유기가 아니냐? 주요 책임을 누가 지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를 감독할 책임이 있으므로 부담을 가지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너희는 아무도 관여하지 않고, 그야말로 건성으로 일하고 충성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이것은 직무 유기다! 너희는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책임지기 싫은 것이다. 문제를 발견해도 신경 쓰기 싫어서 적당하다 싶으면 넘어간다. 이렇게 건성으로 일하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아니냐? 내가 사역하고 너희에게 진리를 교제하는 것도 그렇게 적당히 한다고 해 보자. 그러면 너희의 자질과 추구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나도 너희 같은 태도로 임한다면 너희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겠느냐? 하나는 너희가 무슨 일이든 진지하게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너희의 자질 자체가 매우 형편없고 모두가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같이 무감각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고, 자질도 형편없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해 줘야 한다. 무슨 일이든 자세히,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하고, 여러 각도에서, 또 여러 방식으로 설명해야 너희가 겨우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만약 너희를 무성의하게 대한다면, 그래서 말하고 싶으면 아무렇게나 말하고,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애도 쓰지 않고, 마음도 쓰지 않고, 말하기 싫으면 말도 안 하는 식이라면, 너희가 과연 무엇을 얻겠느냐? 너희 자질로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구원에는 더더욱 이를 수 없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는 못 하겠기에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의 내적 상태, 진리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 여러 가지 패괴 성품을 모두 자세히 설명하고, 예를 들어 설명해야만 너희가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방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나는 항상 여러 방식으로 설명한다. 어른에게 교제하는 방식, 어린아이에게 교제하는 방식, 이치를 설명하는 방식, 이야기로 설명하는 방식, 이론을 설명하는 방식, 실행이나 체험을 설명하는 방식 등을 이용해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있고 자질을 갖춘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여 구원에 이를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너희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는 늘 대충 건성으로 넘기며, 시간을 길게 질질 끌고도 전혀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지도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지 않는다. 이것은 올바른 일에 힘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의 생명이 너무 천천히 자라고, 긴 세월을 허비하고도 조바심을 내지 않는 것이다. 사실, 너희가 열심히 책임 있게 본분을 이행한다면, 5, 6년 안에 체험을 이야기해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고, 각 사역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너희가 할 줄 모르는 것은 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줄 것이니, 고민할 필요 없이 말을 잘 듣고 알려 준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그저 이 정도의 책임만 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너희의 충성심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의 충성심이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구나! 너희는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으면서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너희는 어떻게 해야 진리에 부합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하지 않는데, 이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이것은 두 눈 빤히 뜨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이고, 이런 사람은 절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최소한 갖춰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를 실행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에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어떤 진리도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런 자는 바로 불신파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아가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으며, 그저 하나님 집에서 허송세월만 보내는데, 너는 대체 무슨 목적이냐? 하나님 집을 양로원, 구제원으로 여기느냐? 그렇다면 잘못 생각했다. 하나님 집은 밥도둑이나 폐인을 먹여 살리는 곳이 아니다. 인성이 안 좋은 사람, 본분 이행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 본분 이행에 부적합한 사람은 모두 제명해야 하고, 끝까지 진리를 거부하는 불신파는 모두 도태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를 깨닫고도 실행하지 못하고, 문제를 발견할 수 있으면서도 해결하지 않으며, 자신의 책임인 줄 알면서도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 네가 질 수 있는 책임도 지지 않는데, 네가 이행하는 본분이 무슨 가치가 있고 효과가 있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을 믿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진리를 깨닫고 있어도 실행하지 못하고, 겪어야 할 고난도 겪지 못하니, 이런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아주 진지하게 대하셨으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람과 교제하시고, 각 방면의 진리를 아주 자세히 교제하셨습니다. 사람이 알아듣지 못할 것을 염려해서 크신 인내심을 갖고 여러 가지 예를 들어 가며 사람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줄곧 진리를 교제하여 우리를 양육하고 공급하였으며, 모든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던 태도를 반성했습니다. 교회에서 그토록 중요한 본분을 맡겨 주었는데 아주 무책임하게, 될 수 있는 한 건성으로, 쉽고 가볍게 본분을 대하면서 잔꾀를 부리고 간사하게 굴었으니 제 인성은 왜 이 모양일까요? 하나님은 진심으로 우리를 대해 주셨는데, 저는 하나님께 오로지 기만으로 되갚았습니다. 예전에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들은 인품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고도 저 자신에게 대입해 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제가 바로 인성이 나쁘고 양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저는 매일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느 정도 대가도 치르고 거쳐야 할 절차도 거쳤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결코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방법과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고, 참답게 열심히 행한 것이 아니라 무성의하게 형식적으로만 대했으니 저의 이런 모습이 어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었겠습니까? 봉사라고 해도 불합격이었습니다! 제 무책임으로 사역에 초래된 손실은 이미 만회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앞으로 반드시 본분 이행 태도를 고쳐서 다시는 이렇게 건성으로 일하지 않겠으니 회개의 기회를 달라고 구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어 본분을 늘 대충 건성으로 이행하는데, 이것은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으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 따라서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느냐? 먼저 마음가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본분을 올바르게 대하고, 참답게 책임을 다해 일해야 하며, 기만하거나 대충 하려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본분 이행은 어느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마음가짐이 단정해질 것이다. 또한, 일을 다 한 후에도 검토하고 반성해야 한다. 만약 마음이 불안해서 자세히 검토해 보니 정말 문제가 있다면, 이럴 때는 고쳐야 한다. 고치고 나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마음이 불안하다는 것은 그 안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참답게 검토해야 하며, 중요한 부분에서 놓쳐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책임감 있게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이다. 사람이 참답고, 책임감 있고, 마음과 힘을 다하면, 사역을 잘할 수 있다. 때로 너의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으면 눈에 띄는 잘못이 있는데도 찾지 못하고 발견하지도 못한다. 네 마음가짐이 바르면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로 그 문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성령이 너를 인도해 어떤 깨달음을 주어 네가 마음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게 된다면 오류를 바로잡고 진리 원칙에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다. 네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고 건성으로 대강대강 한다면 그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 너는 발견할 수 없다. 여기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느냐?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사람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며, 마음과 생각을 어느 측면에 쓰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품고 있는지,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하나님은 감찰하고 있으며, 전부 볼 수 있다. 관건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이다. 사람이 협력하는 이 부분이 매우 관건이다. 본분을 다 이행하고, 일을 다 끝낸 후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하나님께 죄스럽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것이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마음과 힘을 다하지 않고 계속 대충 건성으로 넘기다가 사역에 커다란 손해를 입히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효과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때는 늦은 것이다. 이는 영원한 아쉬움을 남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점이다! 일관되게 대충 건성으로 넘기는 것은 오점이고, 심각한 과오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는 자신이 맡은 범위의 일과 해야 할 일을 대충 건성으로 하거나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훌륭하게 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네가 이행한 본분은 하나님께 기억될 것이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일은 선행이다. 그럼 하나님께 기억되지 않는 일은 무엇으로 간주되겠느냐? (과오로, 악행으로 간주됩니다.) 지금 악행이라고 말한다면 사람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 그 일로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때 너는 그 과오가 행위상의 과오만이 아니라 하나의 악행이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너는 진작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 당시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쓰고 노력했더라면 그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을 거라고 후회할 것이다. 그 영원한 오점이 네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영원한 죄책감으로 남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러므로 지금 너희는 하나님이 맡긴 일에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매번의 본분 이행에서 한 점 부끄럼이 없도록,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절대 대충 건성으로 넘기지 마라. 충동적으로 저지른 잘못이 심각한 과오에 속한다면, 그것은 영원한 오점이다. 일단 아쉬움을 남기면 메울 방법이 없는데, 그것은 영원한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이 두 가지 길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나님께 칭찬받겠느냐? 바로 마음과 힘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고 선행을 예비하며, 자신의 선행을 쌓아 가되 어떤 아쉬움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악을 행해 다른 이의 본분 이행을 교란해서는 안 되며, 진리를 위배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질러서도 안 된다. 평생의 한을 남기지 마라. 사람의 과오가 너무 많아지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느냐?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쌓아 가는 것이다! 네 과오가 많아질수록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도 많아지고, 마지막에는 징벌받게 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이제까지는 제가 무성의하게 본분을 이행한 것은 인정했지만 무성의함이 저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런 부류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하시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에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런 부류 사람이 겉으로는 큰 악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본분을 대하는 이런 태도를 혐오하시며,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구원받을 기회를 스스로 망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드러난 사실로, 제가 안고 있는 무성의함과 무책임이라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무책임함 때문에 완성된 영상에 재작업을 하느라 전체 사역의 진도가 늦춰졌습니다. 이는 과오입니다. 제가 제때 고치지 못하고, 여전히 이런 식으로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게 일한다면 언제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께 도태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가서 후회하면 이미 늦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 우리에게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행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우선은 마음가짐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꼼꼼하게 검토하고, 문제에 부딪히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 후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했습니다. 우선 이번 실패의 원인을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런 다음 원칙에 따라 진지하게 영상을 검토하고 세부적인 문제까지 하나하나 잡아냈습니다. 그리고 함께 진리 원칙을 구하고, 어떻게 수정할지 명확히 토론한 후에 수정을 진행했습니다. 다 같이 교제하고 토론한 덕분에 우리는 원칙을 더 잘 알게 되었고, 과거에도 여러 번 검토한 영상이지만 다시 좀 더 신경 써서 보니까 또 세부적인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과거에 우리가 본분을 너무 무성의하게 이행했다는 점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이런 동영상들은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를 원칙에 따라 분석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완벽하게 수정했으며, 정말 문제를 찾지 못하면 그때는 리더에게 검토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다들 아주 마음이 놓였습니다. 영상들을 수정한 다음 리더에게 검토를 받을 때, 리더가 말했습니다. “이번 영상은 모두 괜찮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이번에는 점검을 잘해 주셨네요.” 이 말을 듣고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드렸습니다. 우리가 점검을 잘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회개하려 하고 무성의한 태도로 대하지 않으려고 했을 때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고 깨우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체험하고 나서야 저는 마음을 써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의미가 있고, 그래야 마음이 놓이고 평온해진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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