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 이행에서 어려움이 생길 때 꿋꿋이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

2024.10.20

2021년 11월에 저는 교회 리더로 뽑혔어요. 처음에는 이 본분을 맡으면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할 수 있고, 생명이 빨리 자라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많이 부족해도 순종하는 자세로 이 본분을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실제적인 훈련을 통해 교회 리더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교회 생활과 양육, 복음 사역을 잘 챙겨야 할 뿐만 아니라 문서 사역, 교회 인원 정리 사역 등 많은 사역을 챙겨야 했어요. 한 주 동안 거의 매일 각 예배소에 들러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에 맞춰 교제해 줘야 했죠. 각 사역을 안배하고 시행하느라 정말 정신없이 보냈어요. 게다가 저녁에 집에 가면 받은 편지 내용을 정리해야 했고요. 그러니 정말 이 본분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제면 좀 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몸이 힘든 건 어쩔 수 없지만 사역하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과 문제점이 있고, 사역에 대한 압박감까지 견뎌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또 협력하는 파트너 자매는 가정적으로 얽매인 게 많아서 많은 사역을 두 사람이 협력해서 처리하지 못하고 저 혼자 챙겨야 하니 한쪽을 놓치는 경우가 태반이기도 했어요. 점차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양육하는 사람도, 문서 사역을 맡은 형제자매들도 리더를 만나지 못해 사역에 관한 소통이 안 된다면서 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어요. 정말 신경 쓰고 챙겨야 할 일이 너무 많으니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상당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한 가지 본분을 맡은 형제자매들은 저처럼 그 정도로 힘들거나 신경 써야 할 게 많지 않으니까 좋겠다는 마음에 그게 부러웠어요. 그런 생각이 드니 본분을 이행하는 데 있어 처음처럼 적극적이지 못했어요. 윗선 리더가 사역 진행에 대한 상황 보고를 요구해도 적극적으로 답해 주지 않았어요.

어느 날 윗선 리더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기능직이 조금 필요한 사역이 있으니 컴퓨터 기초 능력과 심미적 역량이 좋은 사람을 찾아 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제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어요. 속으로 전 예전에 영상 제작도 했었고, 컴퓨터도 기본적인 건 다룰 줄 아는 상황이고, 게다가 본분을 한 가지만 하면 거기에 집중할 수 있기도 할 거고, 그럼 새로운 것도 배울 수 있고, 더구나 리더처럼 이렇게 힘들지도 않고 신경 쓸 것도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리더한테 저는 자질과 업무 능력이 부족하니 리더 본분을 맡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편지를 쓰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때 저의 이런 상태가 옳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전에 영상을 만들 때에도 어려움이 생기면 저는 그걸 조금 더 파고들면서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업무상 그 본분보다 요구 기준이 낮은 본분이 있으면 리더한테 바꿔 달라고 요청했던 게 생각났어요. 그렇게 본분을 바꾸고 나서 처음에는 어려움이 크지 않았고 효과도 나니까 신나서 열심히 했었죠. 하지만 나중에 요구 기준이 높아져 어려움이 많이 생기자 저는 대가를 치러서 그 어려움을 극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또 다른 본분으로 바꿀 생각만 했어요. 결국 본분의 효과가 미미해서 조정됐죠. 근데 이번에도 리더라는 본분에 어려움이 생기니 저는 또 본분을 바꿀 생각부터 하고 있었어요. 이런 내적 상태는 이미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기에 빨리 진리를 구하면서 해결해야겠단 마음이 들었죠.

다음 날 아침 영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는데, 정말 제 내적 상태에 들어맞더라고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추구하지도 않는 사람이 아주 많은데, 그들은 본분 이행을 무엇으로 여기겠느냐? 일종의 일이나 취미, 흥미에 몰입하는 것으로 여길 뿐, 하나님이 맡긴 임무나 사명, 자신이 다해야 할 책임으로는 여기지 않으며, 더욱이 본분 이행 과정에서 진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본분 이행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조금만 고생해도 싫어하고 도피하려 하고, 어려움에 조금 부닥치거나 좌절을 조금 겪으면 중도에 포기하고 또 도피하려 한다. 그는 진리를 구하지 않고, 무슨 일만 생기면 등딱지 안으로 숨었다가 별일 없으면 다시 나오는 거북이처럼 그저 도피할 생각만 한다. 이런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사역을 하나 책임지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충성을 다할 수 있을지, 어떻게 그 본분을 잘 이행하고 그 사역을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지, 책망받거나 책임지지 않을지, 문제가 생기거나 실수했을 때 빠져나올 수 있을지만 궁리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우선적으로 자신의 퇴로와 자신의 기호나 흥미를 충족시키는 것만 고려하지 어떻게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하고 충성을 다할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그는 진리에 공을 들이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그는 오늘은 이걸, 내일은 또 저걸 하려 하고 누구의 본분이든 다 자신의 본분보다는 좋고 수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진리에 공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이런 생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고민하지 않으며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마음속으로 늘 자신의 꿈이 언제 이루어질지, 누가 남의 주목을 받는지, 누가 상부의 눈에 드는지, 누가 사역할 때 책망도 받지 않고 진급하는지만 신경 쓴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런 것들만 가득하다. 너희가 보기에 늘 이런 일들만 생각하는 사람이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겠느냐? 영영 그럴 수 없다. 그럼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어떤 부류에 속하겠느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겠느냐? 우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도 사회에서 살 때처럼 복을 누리고 유명해지고 체면을 세우는 것만 추구한다. 이런 사람은 본질을 놓고 보면 어떤 부류에 속하겠느냐? 바로 불신파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이 말씀이 참 마음에 많이 와닿았는데, 딱 저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어요. 저는 본분을 이행하다가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생기면 물러서고 도망칠 생각을 하면서 조금 쉬운 본분으로 바꾸려고만 했어요. 전에 영상을 제작할 때에 어려움이 있으면 하나님께 의지해서 기능을 배우며 어려움을 극복할 생각보다는 그저 뒷걸음만 쳤어요. 전 그 본분의 요구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업무를 잘하려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 분야에 대한 요구 기준이 낮은 본분으로 바꿀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크게 고생하거나 힘들이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래서 육적인 안일을 도모하고자 저는 본분 교환을 신청했어요. 하지만 새로 바꾼 본분에서도 어려움이 생길 때 저는 고생을 감내하면서 대가를 치를 생각을 하지 않고 또다시 본분을 바꿀 생각부터 했어요. 저의 이런 내적 상태를 진리로 해결한 적이 없다 보니 어려움이 있으면 저는 늘 같은 모습을 보였어요. 이 본분이 어렵다 싶으면 또 다른 쉬운 본분으로 갈아탈 생각부터 한 거예요.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자라고 폭로하셨어요. 어려움 앞에서 노력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진리를 구하면서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고, 어떤 본분에도 진지하게 임한 적이 없고, 그저 본분을 이행한다는 명분으로 죽지 않는 결말만 바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불신파라고 하셨죠. ‘불신파’라는 단어를 볼 때 가슴이 찔리고 너무 부끄러웠어요. 지금까지 교회에서 저를 계속 양성했는데, 저는 고생하면서 본분 이행하는 걸 겁내고, 어려움이 있으면 뒷걸음만 쳤거든요. 어느 본분도 끝까지 견지한 적이 없었고, 실제 성과를 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결국 드러나 도태될 수밖에 없는 거죠. 교회에서 저를 발탁하고 양성해서 리더 자리를 준 건,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잖아요. 비록 어려움도 많고, 문제점도 많고, 사역 때문에 좀 바쁘고 힘은 들어도 어려움이나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찾고 구하면 저도 얻는 게 있고, 생명도 자라날 수 있잖아요. 그건 하나님께서 절 높여 주신 거죠. 이런 걸 깨닫게 됐을 때 저는 육을 등지고 어려움 앞에서 진리를 많이 구하기로 했어요. 그러자 본분 이행이 한결 편해졌어요.

3개월 후에 저는 지역 리더로 뽑혔어요. 처음에 이 본분을 인계받았을 때 많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도가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처음이니까 모르는 것도 정상이라 생각하고 노력해 보기로 했죠. 근데 두 달이 지났지만 제가 맡은 양육 사역의 효과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미끄러지기만 했어요. 그러니 이 본분은 참 어렵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졌죠. 양육을 맡은 사람들과의 예배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매번 새 신자들의 양육 상태를 자세하게 다 물어보고, 연약해진 사람들이 있으면 붙들어 줄 사람까지 다 배정했는데도 좀처럼 효과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니 아주 소극적으로 변하면서 ‘이런 실제적인 문제들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차라리 한 가지만 하는 본분을 이행하는 게 낫겠어. 한 가지 본분만 이행하면 전반적인 걸 고려할 필요 없이 내 것만 잘하면 되니까 이렇게 어렵고 힘든 걸 마주할 일은 없을 거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생각들이 드니까 다시 본분을 이행하게 될 때는 자꾸 짜증이 나는 거예요. 매일 답장을 줘야 하는 편지도 많으니까 ‘이 많은 편지를 내가 어떻게 다 답해 줄 수 있겠어.’라며 저도 모르게 불평을 했어요. 그러니까 더는 문제 해결에 신경 써서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떤 편지는 대충 보고 넘겼고, 번거롭게 느껴지는 건 한쪽에 방치해 뒀어요. 게다가 양육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점과 오류도 제때에 찾아서 해결하지 않아 사역을 지체하기도 했고요. 어느 날 윗선 리더의 연락을 받았는데, 우리가 맡은 사역에 문제점이 많이 존재하고, 사역에 효과도 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러니 욱하는 감정이 생겼죠. ‘사역에 무슨 문제점이 이렇게도 많은 거야? 왜 해결해도 끝이 없는 거야? 잘못되면 괜히 책망이나 받아야 하니 난 정말 이 사역은 못 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옳지 못한 내적 상태라는 걸 느끼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는 어려움에 부딪히면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내적으로 불만적 정서가 생기면서 이 본분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 이 문제를 진리를 구하여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찾고 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이 생각났어요. 『그리스도가 몇몇 구체적 사역에서 사람이 시행하고 책임져야 하는 구체적인 항목을 교제할 때, 사람은 아마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다. 구호를 외치고 도리를 얘기하는 것은 간단하겠지만,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최소한 사람이 에너지와 대가, 시간을 들여서 실제적으로 그 일들을 해야 한다. 적합한 사람도 찾아야 하고, 업무도 배워야 한다. 각각의 업무에 관련된 상식과 이론, 구체적인 조작 방식과 방법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난이도 높은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보통 정상적인 사람은 난이도가 높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난처해하고 압박감을 느낀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충성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서 압박감을 느끼면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에게 인도해 달라고, 믿음을 더해 달라고 구하고, 깨우침과 도움을 구하고, 일을 그르치지 않게 보호해 달라고 구하고, 또한 충성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게 해 달라고 구할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 부류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사역에서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 그에게 시행하도록 했을 때, 또한 그 사역에 어려운 부분이 있을 때, 그는 속으로 반발하며 하기 싫어한다. 하기 싫어하는 태도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 그는 말한다. “왜 좋은 일은 저한테 안 오는 겁니까? 어떻게 저한테는 어려운 문제만 주고, 요구만 하십니까? 제가 한가한 사람인 줄 아세요? 노예나 심부름꾼인 줄 아세요? 전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일을 그렇게 쉽게 말씀하시는데, 그럼 직접 한번 해 보세요!” 이것이 순종이냐? 받아들이는 태도이냐? 그가 하는 행동은 무엇이냐? (반발이고 대항입니다.) … 이건 어떤 상황이냐? 어려움이 닥쳐서 육이 고생해야 하고 편하게 있을 수 없게 됐다고 반발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이 조건 없이, 불평 없이 순종하는 것이냐? 어려움이 좀 있으면 하기 싫어하고,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이라면, 자기가 볼 때 어려운 일, 안 좋은 일, 천한 일, 남들이 무시하는 일이라면 기를 쓰고 반발하고 반항하고 거절하며 전혀 순종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하는 말씀, 그리스도의 분부, 그리스도가 교제하는 원칙을 대할 때, 그것 때문에 자신에게 어려움이 생기고, 자신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야 할 경우, 적그리스도가 맨 처음 보이는 태도는 바로 반발하고 거절하며 속으로 반감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이익을 얻는 일에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안일함을 누리려 하고 체면을 세우고 싶어 한다. 육이 고생해야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하고, 심지어 남에게 미움을 사는 일이라면 그들이 기분 좋게, 기꺼이 받아들이겠느냐? 절대적인 순종에 이를 수 있겠느냐? 전혀 도달하지 못하며, 완전히 불복하고 불평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것이 적그리스도 부류가 하기 싫은 일을 만났을 때, 자신의 취향과 입맛,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 보이는 태도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절대적인 거절, 절대적인 반발이고, 일말의 순종도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4)> 중에서) 하나님이 폭로하신 말씀을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본분을 이행하다 보면 누구나 어려움에 봉착하고 압박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때,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본분을 잘 이행하죠.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육의 안락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쉽고 체면이 서는 일을 하면 기뻐하고 조금이라도 육이 고통받고, 신경을 써야 하는 어려운 본분이 생기면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불만을 품고 대항하더라고요. 그에 비춰 저를 보니까 적그리스도랑 다를 게 없었죠. 본분 이행에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고 그저 육적 안락함만 추구했죠. 양육 사역에 효과가 미미하고 어려움이 생길 때, 저는 이 본분이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제 육이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는 본분으로 바꾸고 싶어 했어요. 그리고 매일 답장해야 할 편지가 많을 때에도 반발심과 원망하는 마음이 들어서 어떤 편지는 아예 한쪽에 방치해 뒀어요. 그래서 사역에 존재하는 오류들이 제때에 해결되지 못해 양육 사역의 효과에도 지장이 생겼어요. 생각해 보면, 제가 리더라는 본분을 맡았으니 주 업무가 양육 사역을 챙기면서 새 신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참도에 뿌리내리게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저는 양육 사역을 등한시하며 소홀히 했고,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어요. 결국 양육 사역은 답보 상태에 머물게 됐어요. 제가 이렇게 본분을 이행한 건 정말 믿음직스럽지 못했고, 전 너무 인간성이 부족했어요.

그 후에 깊이 생각해 봤어요. 왜 본분을 이행할 때 몸을 사리면서 어려움 앞에서 움츠리고 뒷걸음치는지를요.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늘 수월하고, 힘들지 않고, 몸이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 고른다. 이는 몸을 사리는 것이고,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모습이다. 또 있느냐? (본분을 이행할 때 조금 힘들고 고생스럽고 대가를 치러야 할 경우 늘 불평을 합니다.) (평소에 먹고 입는 것 등 육적인 즐거움을 중요시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모습이다. … 이 밖에도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렵다고만 하고 열심히 노력하려고 하지 않고, 틈만 나면 쉬거나 잡담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여가를 즐긴다. 사역이 바빠져서 생활 리듬과 규칙이 깨지면, 언짢아하면서 불만을 품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가 하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한다. 이는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것 아니겠느냐? …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사람이 본분 이행에 적합하겠느냐? 본분 이행에 관한 얘기만 꺼내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일 얘기만 꺼내면, 그는 한사코 고개를 젓는다. 어려움이 너무 많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며 철저히 소극적으로 군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쓸모가 없다. 그는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으니 도태돼야 마땅하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 중에서)너는 지금 내가 한 말을 믿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어느 날 이 사역이 전개되는 것을 전부 보게 되면 그때는 후회하고 아연실색할 것이다. 있는 복도 누릴 줄 모르고, 있는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겠느냐? 비록 아직은 다음 단계의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금 너에게 요구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그 사역과 무관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역과 진리가 모두 네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냐? 형벌과 심판은 너의 영을 깨어나게 할 수 없느냐? 형벌과 심판이 너로 하여금 너 자신을 증오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저는 어려움 앞에서 움츠리고 뒷걸음쳤는데, 그 근원은 고생하기 싫어하고, 육적인 안락함을 탐하고, 진리를 얻고 추구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걸 싫어한 탓이었어요. 제가 옳지 못한 추구 관점을 가졌기 때문에 본분을 이행할 때, 육체적으로 고생해야 하는 어려움이 닥치면 답답해하고 불평불만이 가득했고, 심지어는 본분을 밀어내려고도 했던 거예요. 생각해 보니 과거 학창 시절에도 그랬어요. 다른 친구들은 출세를 꿈꾸면서 좋은 대학에 가려고 힘들게 공부했지만, 저는 그 자체가 너무 고생이라고 생각해서 뒷걸음친 탓에 다른 친구들이 얻은 고학력을 얻지 못했죠. 과거 저는 다른 사람들과 인생관이 다르고, 명예와 지위에 대한 욕망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제가 명예와 지위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자신한테 잘하자.”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다 보니 육을 너무 생각해서 그랬던 거예요. 지금은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사탄의 생존 법칙들이 여전히 제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서 사역에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생기면 힘들어하면서 쉬운 본분으로 바꾸려고 했어요. 저는 양육 사역을 맡은 사람인데, 이건 새 신자의 생명 진입과 직결되잖아요. 새 신자 양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새 신자가 쉽게 사탄에게 끌려갈 수 있는데도 저는 본분에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고 하고, 진리를 구하면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저 어려워 보이면 뒷걸음만 칠 뿐,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교회 사역을 고려하지 않았어요.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했어요. 하나님 집의 본분은 그게 어떤 것이든 잘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필요하잖아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이상(異象)에 관한 진리를 갖추는 데 노력해야 하고, 또 복음 대상으로부터 오는 욕설과 조소를 감내해야 하며, 심지어 언제든지 잡히면 목숨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죠. 또 기술 관련 본분을 이행할 때에도 해당 분야에 대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고요.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들은 그런 어려움 앞에서 진리를 구하면서 공과를 배우기 때문에 본분을 갈수록 더 잘하게 되고, 그런 고생은 값지다고 생각하죠. 근데 저는 그런 추구와 의지를 가져 본 적이 없어요. 본분을 대하는 태도는 놈팡이 같았어요. 어떤 일이든 그냥 되는대로 넘기고, 무엇이든 오래 하지 못하고 제대로 하는 게 없었어요. 이런 상태에서 제가 계속 육적인 안락함을 좇으며 진리를 제대로 추구하지 않고,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고생하지 않고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어떤 본분도 잘 해낼 수 없겠더라고요. 그럼 정말 무용지물이 돼서 도태될 수밖에 없죠.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도 보게 됐어요. 『사람은 현 상태에 만족하지 말고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베드로의 모습으로 살려면 베드로의 인식과 체험을 갖춰야 한다. 더 높고 더 깊은 것을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더 깊고 순결한 사랑을 추구해야 하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생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베드로 같은 사람이다. 너는 일시적인 편안함에 만족하며 소극적이 되어 후퇴해 더 깊고, 더 세밀하고, 더 실제적인 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적극적인 면에 자발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 너는 실제적인 사랑을 갖추어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타락해 살아가는 짐승 같은 삶에서 벗어나야 하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우롱하지 말고, 자기 삶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얻지 못할 진리도, 서지 못할 정의도 없다. 너는 일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느냐?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야 하겠느냐? 이는 모두 네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다. 너에게 이런 의지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기개 없는 나약한 자가 되지 마라. 너는 의미 있는 인생과 의미 있는 진리를 체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을 그렇게 건성으로 대해선 안 된다. 일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지나가 버리는데,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이런 기회가 또 오겠느냐? 사람이 죽은 후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너는 베드로와 같은 의지와 양심이 있어야 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을 우롱하지 마라.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네 일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하나님께 바칠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더 의미 있게 믿을 수 있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상, 어떻게 해야 더 순결하고, 더 아름답고, 더 선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진리 추구를 일생에서 큰일로 대하기를 바라셨어요. 잠시뿐인 육의 안락을 위해 진리를 얻을 기회를 버린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거잖아요.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에도 진리를 얻지 못하고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수밖에 없죠. 생각해 보면, 전 리더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부족한 게 많았고, 사역을 수행하면서 어려움과 압박감을 많이 느낀 적도 있었지만, 사실 한 분야의 본분만 이행하는 거에 비해 얻은 게 참 많아요. 업무 능력이 제고되었을 뿐만 아니라 진리 원칙도 많이 알게 됐거든요. 사실 그걸 보면 어려움과 압박감은 하나님의 축복이더라고요. 더는 육을 위해 본분을 회피하지 않기로 했어요. 오히려 어려움이 생길 때 기도하며 의지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기로 했어요. 그러고 나서는 양육 사역에 효과가 나지 않는 원인을 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반성하고 정리해 보니까 주된 원인은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 있어 너무 수동적이었고, 치우친 부분에 대해 종합하는 걸 중시하지 않은 탓이었어요. 새 신자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전 모른다는 이유로 해결해 주지 않았어요. 그러니 많은 문제들이 쌓이기만 하고 해결책이 없었죠. 나중에 실제적으로 그런 일들을 해결하는 데 협력했더니 침체됐던 양육 사역도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저는 어려움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할 때의 단맛을 느끼게 됐고, 그걸 계기로 체험해 나갈 믿음을 얻게 됐어요.

그 후에 제가 맡게 된 사역은 더 추가됐는데, 그 사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면에서도 부족하다 보니 무척 힘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육을 버리고 최선을 다해 협력해 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한두 달 협력했지만 효과는 미미했어요. 그러니 저는 조금 김이 빠졌어요. 이번 본분은 너무 어렵고, 전에 이행했던 본분이 그나마 조금 쉬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간 제가 또 옳지 못한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걸 느끼고는 기도하며 진리를 구해 해결책을 강구했죠. 그러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본연의 일을 하며 기꺼이 본분을 이행한다. 그들은 한 가지 사역을 능히 감당할 수 있으며 자신의 자질을 바탕으로 하나님 집의 규정에 따라 사역을 제대로 해낸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생활에 적응하는 게 좀 어려워서 몸과 마음이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협력하고자 하는 의지나 정상인, 좋은 사람이 되어 구원받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하고 하나님이 징계하도록 해야 한다.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 그것을 등지고 내려놓아 제멋대로인 성질과 사리사욕을 조금씩 줄여야 할 것이다. … “압박감이 있어 못 하겠어요. 하나님 집에서 이행하는 본분과 사역은 한가롭고 자유로우며 즐겁고 쾌적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는 정상적인 성인이 가져야 할 생각이 아니며 하나님 집은 네 안일을 도모하는 곳이 아니다. 모두가 삶과 일에서 어느 정도의 부담과 위험을 감수한다. 어떤 사역이든, 특히 하나님 집에서 이행하는 본분은 모두 최고의 성과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이자 요구이고, 미시적으로 보면 이것은 모든 사람이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태도이자 관점, 기준, 원칙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 알겠더라고요. 정상적인 이성을 지닌 성인이라면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했어요. 사역을 하다 보면 어려움에 봉착해 고생해야 할 일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건 다 구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것이었어요. 세상 사람들도 생계를 위해 많은 고생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겪는 고생은 의미 있는 거고 우리 생명에 이로운 거잖아요. 이걸 깨닫게 되니까 다시 순종하면서 겪어 나가기로 마음먹었어요. 그 뒤에도 본분을 이행할 때 어려움이 많이 생기면 의기소침해지는 정서가 생기긴 했지만 그런 어려움 때문에 사임하려는 마음은 먹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더 진취적으로 노력했고, 본분에 존재하는 어려움과 압박감을 올바르게 대하게 됐어요. 정말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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