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함을 추구하다가 자신을 망칠 뻔했다

2024.05.05

한국 바이쉐(白雪)

2019년, 교회에서 영상 제작하는 일과 교회 리더를 동시에 맡은 저는 본분을 꼭 제대로 이행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본분에 전념하면서 파트너 자매에게 교회 사역을 하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평소 크고 작은 예배에 가급적 모두 참석하고,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가 안 좋으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교제하며 해결해 주었습니다. 또 매일 형제자매가 만든 영상도 검토해야 했습니다. 매일같이 꽉 찬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어느덧 피로감이 몰려왔습니다. 초반의 의지는 점점 사라지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에 대해 점점 반발심이 생겼습니다. 특히 영상을 검토할 때는 신경을 써서 고민하고 다듬어야 했고, 문제가 발견되면 합리적인 수정 의견도 내야 했습니다. 어느 순간 그 일이 너무 지치고 두뇌를 혹사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뒤로 저는 영상 검토를 적당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충 한 번 보고 피드백을 준 적도 있고, 문제가 분명히 보이는데도 모른 척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면 해결 방법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런 식으로 본분을 갈수록 건성으로 하다 보니 영상을 자꾸 수정하고 다시 만드느라 많은 인력과 물자가 낭비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도 별다른 반성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건 형제자매들이 만든 영상이 문제가 많아서 그렇지 나랑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까지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주로 맡은 영상을 개선하려고 하는데,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내는 여러 아이디어를 들으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이거 정말 보통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네.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하자.’ 저는 해당 작업을 총괄해야 한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일을 분담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영상 작업을 지도하거나 확인하지 않아도 될 명분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그런 문제는 처음인 데다 원칙도 잘 파악이 안 된 상태라 이렇게 복잡한 작업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 때문에 작업에 계속 진전이 없어서 나중에는 영상이 잠시 보류되었습니다. 파트너 류이(劉意) 자매는 본분이 너무 비효율적이고 진행 속도가 느린 것을 보고 스케줄을 빡빡하게 짜서 일하라고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재촉했습니다. 저는 류이가 너무 몰아붙인다며 원망했고, 형제자매들도 저를 따라 류이가 짠 스케줄에 반발했습니다. 그래서 자매는 잔뜩 주눅이 들어 매번 사역 스케줄을 짤 때마다 저희와 의논하며 눈치를 살폈고, 결과적으로 어떤 일은 자꾸 미뤄져서 진도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평소 업무 공부에도 저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매번 공부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너무 에너지가 많이 드는 것 같아서 항상 류이에게 미뤘습니다. 어떤 때는 본분이 바쁘다는 핑계로 공부에 빠지곤 했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본분을 매일 되는대로, 태만하게 이행했습니다. 심지어 한번은 사역을 의논할 때 사전 준비 작업도 하지 않아서 모두의 시간을 크게 낭비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발을 접질렀습니다. 그런데 저는 갑자기 이런 일이 닥친 데 대해 스스로 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발을 다쳐 쉴 수 있으니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류이는 이런 저를 몇 번이나 폭로하고 책망했습니다. “자매님이 본분 이행에 전혀 부담감을 갖지 않으니까 교회 사역이 지체되고 형제자매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이렇게 교제를 하고 나면 며칠은 적극적으로 본분에 매달리지만 얼마 후면 또다시 느슨해졌습니다. 문제의 심각성도 못 느끼고 스스로 타협하곤 했습니다. ‘내가 단지 좀 게으를 뿐, 교만하게 굴거나 남을 억압하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거나 남들을 억압한 적도 없는데 뭘. 이게 무슨 큰 문제라고. 어쨌든 난 자질도 있고, 업무 기초도 있으니까 교체가 되더라도 난 아닐 거야.’ 이런 식으로 형제자매들의 충고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 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본분도 늘 적당히 넘기는가 하면, 어떤 일은 그저 귀찮고 부담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한편 제가 일을 건성으로 한 탓에 많은 영상들이 수정이나 재작업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한참이 지나도 완성품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오전, 윗선 리더가 저희를 보자고 했습니다. 리더는 저희 본분이 성과가 없고, 심지어 바로잡아야 할 문제가 계속해서 나온다면서 대체 무슨 문제인지 물었습니다. 그래도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면서 계속 이렇게 성과가 없으면 교체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내가 교회 리더이자 주요 책임자인데, 지금 사역이 이렇게 엉망이라면 직접적인 책임은 나한테 있는 거잖아. 이게 다 내가 일을 건성으로 해서 그런 거야.’ 생각할수록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윗선 리더는 본분을 이행하는 제 일관적인 태도를 알아본 다음 저를 교체하고, 심하게 책망했습니다. “교회에서 이렇게 중요한 사역을 맡겼는데, 자매님은 그 많은 문제와 난관을 보고도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육만 좇았군요. 결국, 영상 사역은 몇 개월째 진전도 없고요. 너무나 양심 없네요! 교회에서는 계속 자매님을 양성했는데, 정작 자매님은 하나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다니 너무나 실망입니다! 자매님은 자리만 차지하고 본분도 잘 이행하지 않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발전성도 없어요. 양성될 자격이 없다고요. 회개하고 달라지지 않으면 도태될 겁니다!”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책망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몇 개월 동안 난 뭘 했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스스로에게 계속 반문했습니다. 특히 ‘양성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미래가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너무나 괴로워서 온몸에 힘이 죽 빠졌습니다. 처음부터 본분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은 저 자신이 미웠지만 이제 와 무슨 말을 한들 이미 늦었습니다.

저는 교체된 다음에는 자포자기한, 소극적인 내적 상태로 지냈습니다. 저를 꿰뚫어 본 형제자매들이 틀림없이 저를 반면교사로 삼은 다음 저와 관계를 끊을 것 같고, 하나님도 저를 혐오하여 내치실 것만 같았습니다. 특히 리더가 책망했던 말이 가시처럼 박혔고, 완전히 드러나고 도태된 기분이었습니다. 한동안은 정말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무척이나 감동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충성심을 지니고 있고 본분 이행에 진심이라면, 책망과 훈계가 임했을 때 소극적으로 변하거나 연약해질 리 있겠느냐? 만약 정말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진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또 자신이 어떤 면에서 부족한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반성하여 넘어진 데서 일어서야 합니다.) 그렇다. 소극적으로 변하거나 연약해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며, 하나님도 정죄하지 않는다. 넘어진 데서 일어나 교훈을 얻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으면 된다. 너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절대 끝도 없이 소극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본분까지 팽개친 채 도망간다면, 그것은 자신을 철저히 망치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소극적으로 변하거나 연약해질 때가 있다. 진리를 구하기만 하면 소극성과 연약함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혹자는 하나님 말씀을 한 편 읽고 찬양을 몇 곡 부르기만 해도 내적 상태가 완전히 달라져서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된 것 아니겠느냐? 사실, 책망과 훈계가 임한 것은 절대적으로 좋은 일이다. 설령 책망하고 훈계하는 말이 좀 엄하고 날카로울지라도 그것은 네가 너무 비이성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원칙을 어기고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책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사실 이런 책망은 너를 도와주는 것이고 너에 대한 사랑이니, 원망하지 말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책망과 훈계가 임했을 때 소극적으로 변해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고 무지한 행동이며, 비이성적인 태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저를 책망하고 폭로한 리더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일을 너무 속 터지게 해서 이렇게 심한 책망과 폭로가 임한 것입니다. 이제는 자포자기할 것이 아니라 제가 실패한 원인을 잘 돌아보아 빨리 회개하고 달라져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이번에 실패하고 드러난 일을 계기로 스스로를 잘 돌아보고 인식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께서 거짓 리더를 폭로하고 해부하신 말씀을 보고 저 자신을 조금 인식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리더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지만, 어떻게 관리 노릇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런 자가 리더가 되면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하겠느냐? 사람들의 마음을 매수한다. 그는 “새로 온 관리는 일을 벌인다.”라는 말을 실행한다. 먼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나 생활 복지 면에서 일을 몇 가지 해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준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리더로 보여지게 하고, ‘그는 우리의 부모 같은 리더다!’라고 칭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정식으로 자리에 오른다. 그는 인심을 얻어 기반으로 삼았고 지위도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지위의 복을 누리기 시작한다. 그의 인생 격언은 바로 “세상을 사는 데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어찌 제때에 즐기지 않겠는가?”,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한다.”라는 것이다. 그는 오늘 하루 누렸으면 그만이고 한순간 즐겼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개의치 않고, 나아가 리더가 마땅히 어떤 책임과 본분을 이행해야 할지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저 형식적으로 글귀와 도리를 읊어 대고 체면을 세우는 일을 약간 할 뿐, 실제적인 사역은 전혀 하지 않는다. 또 교회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파고들어 철저히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런 표면적인 일만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은 사람을 기만하는 행위 아니겠느냐? 이런 거짓 리더 부류의 인물에게 중임을 맡길 수 있겠느냐? 그들이 하나님 집의 리더 일꾼 선발 원칙과 조건에 부합하겠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일말의 양심과 이성조차 없으며, 조금의 책임감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감투를 쓰고 리더가 되고자 한다. 어찌하여 염치를 모르는 것이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도 자질이 떨어지면 리더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책임감조차 없는 폐인은 리더가 될 자격이 더더욱 없다. 먹는 것만 밝히고 일은 게을리하는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어느 정도로 게으르겠느냐?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라는 것을 알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개의치 않는다. 책임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말재간이 있고 자질도 좀 있는 것 같지만, 막상 교회 사역에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사역이 제자리걸음 하고 문제가 갈수록 많아져도 내버려둔 채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전히 형식적이고 표면적인 일만 계속해 나간다. 그로 인해 마지막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교회 사역이 엉망으로 망쳐지지 않겠느냐? 교회 사람들의 마음이 완전히 흐트러지고 혼란스러워지지 않겠느냐?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무릇 거짓 리더는 끝까지 실제 사역은 하지 않고, 리더가 된 것을 벼슬로 여기며 지위의 복을 누린다. 그러면서 리더로서 이행해야 할 본분과 해야 할 사역을 귀찮은 일, 번거로운 일로 여기고, 속으로 교회의 사역에 대해 반발심이 가득하다. 그에게 사역을 감독하면서 사역에서 확인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면 끔찍이 싫어한다. 이는 리더 일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자 본연의 일이지만 너는 하지 못하고,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계속 리더 일꾼이 되려는 것이냐? 네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는 것이냐, 아니면 감투를 쓰고 지위의 복을 누리려는 것이냐? 감투를 쓰기 위해 리더가 된 것이라면 염치가 없는 것 아니겠느냐? 이런 자는 인격이 가장 비천하고 존엄도 없는 후안무치한 사람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거짓 리더를 폭로하는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놀고먹는 거짓 리더였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저는 책임자가 되면 발언권이 생기는 건 물론이고,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을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얻기 위해 힘든 일도 참아 가며 죽으라고 노력했습니다. 또 사람들에게 제가 중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가짜 이미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이제 지위가 안정되어 형제자매들로부터 신임을 받게 되자 저는 본모습을 드러내고 지위에 따른 복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업무량이 많아지고 골치 아픈 일들이 늘어나니까 그게 싫고 번거로웠습니다. 사역을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일로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수월할지 신경을 덜 쓸지만 고민했습니다. 영상을 검토할 때도 머리 쓰는 게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의견을 제시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영상을 반복적으로 수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인력과 물자가 많이 소모되었습니다. 또 제가 주요 책임을 맡은 영상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신경을 써서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위를 이용해 꾀를 부리며 형제자매들에게 일을 미루고 저는 뒷짐만 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사역은 줄곧 제자리에만 머물렀습니다. 업무 공부도 온갖 핑계를 대며 어떻게든 미루곤 했습니다. 타이트한 사역 스케줄에 대해서도 불만을 한가득 품고 계속 미적대기만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파트너가 제 눈치를 보느라 많은 일이 제때 처리되지 않아서 사역이 크게 지연되었습니다. 제가 한 일을 생각하니 정말 제 뺨을 몇 대 후려갈기고 싶었습니다. 저는 지위가 생기자 편안함만 추구하느라 언제나 잔꾀를 부렸습니다. 사역을 애들 장난으로 생각하고 너무나 무책임했습니다. 문제를 발견하고도 그 즉시 해결하지 않고, 눈앞에서 교회 사역이 피해 보는데도 수수방관했습니다. 제 행동이 공산당 관리들과 뭐가 다른가 싶었습니다. 저들은 수단을 동원해 자리를 차지한 다음에는 백성들을 위한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오로지 남들을 속이고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도모하는 데만 몰두하는, 사악하고 파렴치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딱 그 꼴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사역을 맡겨 주었는데도 정작 자기 육을 좇고 편안함을 추구하느라 실제적인 사역은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복음 전도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영상들을 인터넷에 조금이라도 빨리 올리면, 참도를 구하고 알아보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을 텐데 저는 하나님 뜻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직무를 소홀히 한 탓에 교회 사역을 크게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인성이 없는 사람이었지요! 그 순간, 제가 어떤 인간인지 똑똑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나태한 인간,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속여 지위를 차지하고도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인격 미달에다 신뢰할 가치도 없고, 도덕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반성 되자 바늘로 찌르는 듯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인성이 너무나 형편없습니다. 본분을 받고도 전혀 사람답게 일을 하지 못하고 교회 사역에 피해를 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교체된 것은 당신의 공의입니다. 회개하고 달라지고자 합니다. 그러니 제가 자신을 인식하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반성하는 동안 형제자매들이 여러 차례 교제해 주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문제점을 지적하고, 또 책망하고 폭로까지 해도 저는 전혀 새겨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게으른 태도나 육을 좇는 태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눈치 보게 만든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죠. 더군다나 저는 자질도 있고 업무도 잘 아니까 단지 게으르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저를 교체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이것이 모두 제 관념 상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게으른 사람과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 중 어느 부류 사람의 문제가 더 심각하겠느냐? (게으른 사람이 더 심각합니다.) 어째서 게으른 사람의 문제가 더 심각하겠느냐?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은 리더 일꾼이 될 수는 없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본분을 이행한다면 얼마간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으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자질이 있어도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이런 자를 두 글자로 정의하면 ‘폐인’이다. 정상인이 아니라 장애인이다. 게으른 사람의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장식에 불과하다. 자질이 좋아도 그는 너무 게으르기에 그것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해결 방법을 찾지 않으며, 어떤 고생을 해야 성과가 날지 아는데도 그 가치 있는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고 어떤 실제적인 사역도 해내지 못한다. 그는 사람이 겪어야 할 고생을 겪지 않으려 하면서 그저 안일을 탐하고,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누리는 것밖에 모른다. 그러면 아무 쓸모가 없지 않겠느냐?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언제나 기생충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양심도, 이성도 없는 짐승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힘쓰는 것조차 과분하다. 그는 고생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힘쓰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진리를 얻는 것은 더더욱 희망이 없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폐인이다. 또한, 힘쓰는 것조차 합격점을 받지 못하니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짐승이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내쳐야 하나님의 뜻에 맞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하나님이 맡긴 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고, 이는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일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으며,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일은 당연히 완수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가장 큰 책임으로,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이 맡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비록 제가 겉으로 누구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아니지만, 본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교회 사역을 그르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이자 유다보다도 더 가증스러운 짓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분을 이행하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니 두려웠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여러 번 교제하고 지적해도 저는 늘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저는 업무도 잘 알고 자질도 뛰어나니까 게으르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저를 교체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단히 착각했습니다. 제 위험한 처지를 그렇게도 깨닫지 못하다니 정말 무감각하고 강퍅하다 못해 불쌍하고 가소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자질이 있으면서 게으르고 교활한 사람을 더 증오하시며, 이런 사람은 인성이 저급하고 비열해서 당신께 신뢰받을 자격이 전혀 없다고요. 하나님은 차라리 자질이 좀 부족해도 착실하고 성실해서 기꺼이 고생을 감내하는 사람이 낫다고, 이런 사람들은 본분을 진심으로 대하고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본분을 이행한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겉으로만 자질이 있어 보이지 사실 피조물이 이행해야 할 최소한의 본분도 지키지 못했어. 이런데 무슨 인성과 자질이 있겠어?’ 그제서야 제 실제 모습이 보이면서 왜 리더가 저더러 양성될 자격이 없다고 하고, 회개하고 달라지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게으르고, 교활하고, 본분에 책임감도 하나 없는 이런 인성은 정말 신뢰할 가치도 없고, 교체되고 도태되어 마땅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낭비한 그 많은 시간을 떠올리니 정말 하나님께 죄송했습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서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문서 관련 사역을 하게 됐습니다. 일이 많아서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저는 본분을 잘 지키고 육을 좇지 말자고 수시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매우 책임 있게 본분을 이행했기에 스스로 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업무량이 늘면서 본분에 자꾸 어려운 일이나 문제가 생기자 본성이 또 드러났습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면 또 머리가 터질 텐데, 대충 처리하면 될 거야. 복잡한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처리하도록 놔두자.’ 한 자매가 저에게 자꾸 본분을 건성으로 하지 말고 좀 진지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며칠은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문제만 만났다 하면 머리가 아팠습니다. ‘이걸 처리하려면 너무 번거롭고, 신경도 쓰이고, 힘도 들 텐데. 그러니 그냥 이렇게 하지 뭐.’ 이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팀에서 본분 성과가 좋지 않은 자매 두 명이 조정되었습니다. 갑자기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제 본분 성과가 그 둘보다 크게 나은 것도 아니었고, 특히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저보다 나아진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로써는 팀에서 제가 가장 뒤처진 셈이었습니다. 본분은 여전히 이행하고 있었지만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번 조정은 분명 제 차례가 될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한 자매에게 제 내적 상태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자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본분 성과가 떨어지는 건 자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본분을 너무 건성으로 해서 그래요. 이 본분을 이행한 지도 오래됐는데, 아직도 그런 초보적인 실수가 나온다는 건 본분 대하는 태도가 문제라고밖에는 볼 수 없어요.” 자매의 지적이 퍽 와닿았습니다. ‘분명 본분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왜 지금 이렇게 된 거지?’ 저는 하나님 앞에 기도로 구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더니 제 문제가 더욱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사역을 하든,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해내지 못하고 감당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이행해야 할 어떠한 의무나 책임도 다하지 못하니, 이는 폐물 아니겠느냐? 이런 자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바보, 지적 장애인, 각종 신체장애자 외에 누구든 살면서 자기 본분과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이 부류의 사람들은 늘 몸을 사리면서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람답게 살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사람답게 살아갈 기회를 주고 자질과 은사를 주었는데, 그는 그것을 본분 이행에 쓰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어디를 가든 누리려고만 한다. 이런 부류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어떤 사역을 시켜도, 그것이 중요한 사역이든 평범한 사역이든, 혹은 어려운 사역이든 단순한 사역이든, 그는 다 건성으로 임하며 몸을 사린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미루려 한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며 계속 기생충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이런 자는 쓸모없는 폐물 아니겠느냐? 사회에서 자기 힘으로 생존하지 않는 자가 있더냐? 성인이 되면 누구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부모의 책임은 이미 끝난 것이다. 설령 부모가 계속 지원해 주겠다고 할지라도 마음이 편치 않고, ‘부모님의 자식 양육 사명은 이제 끝났어. 나는 성인이 되었고, 또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니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성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이성 아니겠느냐? 만약 정말 이성이 있다면 남들에게 비웃음을 받고 체면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계속 부모에게 빌붙어 살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일하기는 싫어하고 편한 것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들은 늘 공밥을 먹으려 하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며, 하늘에서 먹을 것이 떨어져 입안으로 굴러 들어오기만 바란다. 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삼시 세끼 챙겨 먹고 누군가 시중들어 주고 잘 먹고 잘살기를 바란다. 이는 기생충이 하는 생각 아니겠느냐? 기생충에 속하는 사람에게 양심과 이성이 있겠느냐? 인격과 존엄이 있겠느냐? 절대 없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남에게 빌붙어 사는 못난이로, 양심과 이성이 없는 짐승이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집에 남아 있을 자격이 없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온 힘을 다하고 가능한 한 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인성과 이성이 없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힘들고 어려운 일을 피하려고 잔꾀를 부리고 건성으로 임하면서 책임과 의무는 전혀 안중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질과 은사를 주시고 본분 이행할 기회를 주신다고 해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오로지 육적인 편안함만 누리려 하고, 책임감도 전혀 없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폐인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교체된 후에도 교회에서 제게 문서 관련 사역을 맡겨 준 건 회개의 기회를 준 것이었는데 저는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몰랐습니다. 본분을 잘 이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까다로운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한테 미룬 채 전혀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고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이행하는 본분에서도 별로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나는 왜 본분을 하면서 어려운 일만 생기면 물러나고 그만둘까?’ 저는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 생활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문제의 근원을 조금이나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지금 내가 한 말을 믿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어느 날 이 사역이 전개되는 것을 전부 보게 되면 그때는 후회하고 아연실색할 것이다. 있는 복도 누릴 줄 모르고, 있는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겠느냐? 비록 아직은 다음 단계의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금 너에게 요구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그 사역과 무관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역과 진리가 모두 네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냐? 형벌과 심판은 너의 영을 깨어나게 할 수 없느냐? 형벌과 심판이 너로 하여금 너 자신을 증오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저는 말씀을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짐승’, ‘개돼지 따위’, ‘비천’과 같은 말에 마치 얼굴을 세게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믿는 목적이 뭐지? 편안함을 추구하려고 믿는 걸까? 어째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많이 읽고도 삶에서 추구하는 바는 아직도 이렇게 저열한 걸까?’ 스스로 반문해 보니 제가 정말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세상을 사는 데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짧은 인생 즐겁게 살자.”,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한다.”와 같은 사탄 철학을 신봉하며 육적인 편안함과 즐거움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중학교 때도 친구들은 입시를 위해 목숨 걸고 공부하는데, 저는 그런 분위기가 주는 중압감이 싫어서 운동장에 나가 노닐기 일쑤였습니다. 살면서 자신에게 잘해야 한다면서 내일이 어떻게 되든 순간을 즐기려고만 했습니다. 주위 친구들은 모두 저더러 쿨하다고 했고, 저 역시 그렇게 사는 것이 꽤 좋았습니다. 매일 깔깔거리면서 스트레스도 고민도 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제가 바라는 인생이었습니다. 이런 사상 관점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만 만났다 하면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육이 조금이라도 고생하거나 힘든 게 싫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영부영 사는 게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끝에 가서 얻는 게 무엇일까요? 본분 이행에서도 나아진 게 없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교회 사역을 그르치고, 제 인격과 존엄을 망가뜨려서 하나님의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형제자매들도 반감을 품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사탄의 이런 생존 관점은 사람에게 너무나 큰 해가 됩니다! 저는 이런 사상 관점으로 살면서 인격과 존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올바른 인생 목표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정말 너무 비열했습니다! 사실 본분 이행 과정에서 어려움을 만나는 것은 진리를 구함으로써 이를 깨닫고 얻으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얻을 수 있었던 그 많은 기회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모두 망쳐 버렸습니다. 성경에서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잠 1:32)라고 했는데,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육은 뱀과 같아 본질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해친다. 네가 육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을 때가 곧 목숨을 잃는 때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계속 본분을 소홀히 대함으로써 사역에 손실을 가져온 걸 생각하니 하나님께 매우 죄스러웠습니다. 괴로운 마음에 자꾸만 눈물이 흐르고 너무 후회됐습니다. 이것은 신앙인으로서의 제 삶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자 영원한 아쉬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저 자신을 증오했습니다.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당신께 실망을 안겨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으면서 진리는 추구하지 않고, 오직 순간적인 육의 편안함만 도모했습니다. 전 너무나 비천합니다! 하나님, 이제야 비로소 육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예전에 남긴 과오는 영원히 씻을 수 없지만 그래도 회개하고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며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

나중에 한 자매님이 보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안에서 실행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생각이 있기에 선택도 있다. 만약 일이 임했을 때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마땅히 뉘우치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지, 잘못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슬기로운 사람이다. 만약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뉘우치지 않는다면 이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를 들어, 네가 본분을 이행할 때 대충 건성으로 하면서 자기 몸을 사리고 하나님의 감찰을 피하려 했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얼른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서 그것이 옳은 행동인지 되돌아보고,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거지? 내가 이렇게 건성으로 하면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까지 속일 수는 없어. 게다가 내가 몸을 사리려고 하나님을 믿는 건 아니잖아. 나는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거야. 이건 정상 인성을 지닌 사람의 모습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태도도 아니야. 안 되겠어. 세상에 있을 때는 몸을 사리면서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그만이었지만, 지금 나는 하나님 집에 있잖아. 하나님의 주재와 감찰 아래 있다고. 나는 사람이니까 마땅히 양심에 따라 일을 해야지, 내 마음대로 행동해선 안 돼. 대충 건성으로 임하면서 몸을 사릴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몸을 사리거나 건성으로 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 노력해야겠다. 방금 나는 그렇게 하는 건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해 고생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이젠 나도 알아. 그렇게 하면 귀찮기는 해도 성과를 낼 수 있어. 그러니 그렇게 해야만 해.’ 막상 행동에 옮기려고 하면 그래도 고생할 게 걱정될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게으르고 교활한 사람입니다. 부디 저를 징계하고 질책하여 제 양심이 자각하게 해 주시고, 제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 주십시오. 저는 대충 건성으로 임하고 싶지 않습니다. 바라옵건대 제가 스스로의 패역과 추태를 알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십시오.’ 네가 이렇게 기도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인식하면 후회의 마음이 생길 것이며, 자신의 추태를 증오하여 잘못된 내적 상태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또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왜 나는 대충 건성으로 임하려 하는 걸까? 나는 왜 늘 몸을 사리려 드는 거지? 그건 양심도 이성도 없는 짓이야. 그러고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 나는 왜 일을 할 때 참답게 대하지 못하는 걸까? 그냥 정력과 시간을 좀 더 들이는 것뿐이잖아? 그게 뭐라고? 그건 당연한 거잖아. 이런 것조차 해내지 못하고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래서 하나님께 맹세할 것이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깊이 패괴되어 양심도 이성도 인성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제 회개하고자 하니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반드시 잘못을 바로잡겠습니다. 만약 제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저를 징벌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마음가짐이 바로잡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면 본분을 이행하거나 일을 할 때면 예전과는 달라진다.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부분이 줄어들고 고생하며 대가도 치를 수 있다. 또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게 정말 좋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깃들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최소한의 사람 된 도리는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본분이 아무리 어려워도, 또 본분이 복잡하고 간단하고에 관계없이 항상 자신의 책임을 다해 열심히, 정성껏 본분을 완수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본분을 대할 때 갖추어야 할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행 길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잔꾀를 부리려는 생각이 들 때는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육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람을 잘 이해하고 헤아려 주시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실행 길을 이렇게 명확하게 알려 주시는 것은 우리가 사람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마음과 요구를 깨달은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의식적으로 육을 저버렸습니다.

어느 날 까다로운 문제를 하나 만났습니다. 그러자 또 대충 형식적으로만 처리하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또 꾀를 부리려고 했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본분을 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하여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고 생각해 보니 제가 꾀를 부려도 남들이 발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를 감찰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제가 진리를 실행하는지 아니면 육을 좇는지를 보고 계십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구하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원칙들이 쉽게 이해가 되고 문제도 금방 해결됐습니다. 이렇게 몇 번 실행하다 보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본분을 이렇게 이행하니까 정말 좋았습니다. 전에 본분이 조정될까 노심초사하던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제가 이렇게나마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 양육과 공급 덕분에 조금씩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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