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쳐 낼 수 없는 아픔

2026.05.19

2004년 5월, 저는 유다의 배신으로 인해 우(吳) 모 씨와 함께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경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파출소에서 경찰은 교회 리더가 누구인지, 헌금은 어디에 있는지 계속 캐물었습니다.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네다섯 명의 경찰이 저를 에워싸고 밀치며 때렸습니다. 한 경찰은 1미터가 넘는 엄지손가락 굵기의 대나무 막대로 온몸을 사정없이 내리치고, 또 발로 제 허벅지를 이리저리 짓이기듯 밟았습니다. 여경 한 명은 제 뺨을 후려 갈겼습니다. 그들은 또 제게 뒤로 수갑을 채우고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그때 저는 고문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꼭 질식할 것만 같고,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번갈아 매질과 심문을 당하니 온몸이 견딜 수 없이 아팠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바지도 내릴 수 없어서 여경이 억지로 끌어내려야만 했습니다. 허벅지와 옆 엉덩이를 보니 커다란 피멍이 들어 보라색 가지 같았고, 아파서 쪼그려 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밤이 되어도 제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자 저를 차가운 바닥에 앉혀 놓고 교대로 심문을 계속하면서 움직이지도, 자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얼어붙은 허리와 다리는 감각이 없고 퉁퉁 부어올랐으며, 머리도 어지럽고 터질 듯 아팠습니다. 눈만 감았다 하면 경찰은 큰 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날 놔 주지 않겠구나. 앞으로 또 어떤 고문으로 괴롭힐지 모르는데, 내가 버텨 낼 수 있을까? 고문받다 죽으면 내 믿음이 수포로 돌아가는 거잖아? 죽으면 어떻게 구원받겠어?’ 저는 말을 꾸며내어 넘어가려 했지만, 경찰은 전혀 믿지 않고 계속해서 캐물었습니다.

다음 날 오후 대여섯 시쯤, 시 공안국과 국보 대대 사람들이 저와 우 씨를 한 호텔로 데려가 심문을 계속했습니다. 창문에는 암막 커튼이 쳐져 있었고, 무장 경찰이 총을 들고 보초를 섰습니다. 그 광경을 보자 온몸이 오싹하고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앞으로 그들이 저를 어떻게 괴롭힐지 몰라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경찰은 저와 우 모 씨를 떼어 놓고 24시간 교대로 심문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의자에 앉혀 놓고 움직이지도, 자지도 못하게 했으며, 눈만 감으면 큰 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저는 고문에 시달려 머리가 어지럽고 몽롱했습니다. 이틀 뒤, 우 씨가 저를 팔아먹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헌금을 옮기는 일을 담당한 사실을 털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지역 리더 몇 명과 섬김 가정, 보관 가정도 팔아먹었습니다. 경찰은 우 씨가 자백했다면서 제게 흉악하게 말했습니다. “말 안 해도 소용없어. 쟤가 다 불었으니까. 헌금 어디로 빼돌렸어?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 내고야 말겠어. 안 불면 넌 그대로 징역형이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국가의 집중 단속 대상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건 사회 치안을 어지럽히는 거고 위법이야. 개죽음 당할 줄 알라고! 우리가 이렇게 때리는데, 네 하나님은 왜 구하러 오지 않지? 하나님이 어디 있어?” 그러고는 또 제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경찰은 제 따귀를 갈기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습니다. “널 다룰 방법이야 많지! 말 안 하면 얼굴을 칼로 그어서 못 쓰게 만들 테다. 그리고 마대 자루에 담아 황푸강에 물고기 밥으로 던져 주지!”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악질 경찰들은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겠구나. 정말 황푸강에 던져지면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텐데. 지금은 죽고 싶지 않아. 죽으면 믿은 게 물거품이 되잖아? 그럼 어떻게 구원받겠어? 그러지 말고 조금만 얘기할까? 게다가 우 씨가 이미 다 말했으니, 내가 인정하든 안 하든 똑같잖아.’ 당시 경찰이 우 씨가 지목한 섬김 가정과 보관 가정의 주소, 그리고 자매들의 생김새와 이름까지 제게 다 얘기하자 저는 묵인했습니다. 그러자 경찰이 또 말했습니다. “쟤는 다 털어놓고 곧 집에 갈 거야. 네가 한 말은 다 쟤가 이미 한 말이고, 넌 사람도 집도 어느 하나 분 게 없어. 계속 입 다물고 있으면 그대로 감옥에 쳐 넣을 테다. 어디서 협조도 안 하고 그 따위 태도야!” 저는 속으로 좀 더 얘기하면 풀어 주거나 형량을 줄여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섬김 가정 자매의 주소를 말해 버렸습니다. 자매를 팔아먹은 그 순간, 저는 지옥에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온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저는 바닥에 엎드려 오열했습니다. 전선을 잡아 자살하려고 했지만 경찰이 손을 꾹 밟았습니다. 저는 자매를 팔아먹은 것을 후회하며, 마음속으로 죽어 마땅하고 멸해져 마땅하다고 스스로를 계속 저주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환난 가운데서 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긍휼은 여기까지이고, 또 나는 나를 배반했던 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은 자와 왕래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누구든 내 마음을 심히 상하게 하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의 관용을 얻지 못하고….(<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두려움에 떨게 했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사람이 거스를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자매를 팔아먹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 성품을 거슬렀으니, 하나님께서 저를 원치 않으실 것이고, 하나님 믿는 제 삶도 완전히 끝났구나 싶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도 경찰은 저를 가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교회 정보를 캐물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강제로 의자에 앉혀 놓고 하루 24시간 동안 움직이지도, 자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잠을 재우지 않는 방식으로 일주일 가량 계속 시달리는 바람에 저는 밥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정말 버티지 못할 것 같으니까 경찰은 저를 병원으로 데려가 링거를 맞혔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후에는 다시 교대로 심문을 하고, 제게 형제자매들의 사진을 들이밀며 지목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난 이미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 수치스러운 유다가 되었어. 더 이상 하나님을 배반할 순 없어.’ 그들이 아무리 심문해도 저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한 달 뒤, 그들은 제게 ‘사회 치안 교란’ 이라는 죄명으로 2년의 노동교양을 선고했습니다. 우 씨와 함께 노동 교화소로 이송되는 길에, 우 씨에게서 제가 팔아먹은 섬김 가정 자매가 잡혀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족이 연줄을 동원한 덕분에 풀려났지만 계속 감시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제 마음은 바늘로 찌르는 듯이 아팠습니다. 죽는 것이 두려워 자매를 팔아먹고, 자매가 정상적으로 예배드리고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만든 저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저는 수없이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제게 다시 한번 상황을 마련해 기회를 주신다면, 경찰에게 고문받아 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형제자매를 팔아먹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노동 교화소에 있는 2년 동안,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은 자와 왕래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그때마다 앞으로 다시는 구원받을 기회가 없고 결국 지옥에 떨어져 징벌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저를 몹시 소극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고통스럽고 괴로웠고, 급기야 죽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시달림을 겪지 않아도 되니까요.

2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형제자매들을 다시 보니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자매를 팔아먹고 수치스러운 유다가 된 저 자신이 원망스러워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나를 구원하지 않으실 테고 결국 저주와 징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실망과 절망에 휩싸여 죽고 싶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1. 네가 정말로 봉사자라면 건성이나 소극적인 요소가 전혀 없이 나를 위해 충성을 다하여 봉사할 수 있겠느냐? … 10. 나를 충실하게 따르는 자가 되어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나를 위해 한평생 고난을 받을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한 줄기 빛처럼 어두운 제 마음을 비춰 주고, 살아갈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설령 끝에 가서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지 않으신다 해도 저는 마땅히 하나님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믿음을 얻고, 언젠가 다시 하나님 말씀을 읽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본분을 이행할 날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가끔 자매들이 저희 엄마 집에 와서 예배를 드릴 때면, 함께 모여 하나님 말씀을 읽는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하나님께 진 빚을 생각하면 제 힘이 닿는 데까지 교회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들이 예배를 드리러 오면 저는 밖에서 망을 보며 주변 환경을 살폈고, 가끔은 돈을 조금씩 모아 헌금도 했습니다.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2011년 봄, 한 자매가 저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예배에 참석할래요?” 그 순간 저는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며, 제게 주신 또 한 번의 기회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는 제게 새 신자를 양육하는 본분을 안배해 주었습니다. 저는 비바람이 불어도 결코 본분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열심히 힘써서 제 과오를 만회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사람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사람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사람의 어림을 긍휼히 여기며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 느껴져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제가 유다가 되어 하나님을 배반했던 일을 떠올리면, 하나님의 그 말씀들이 저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저 같은 사람을 구원하지 않으실 테고, 저는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으니까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속으로 몹시 의기소침하고 괴로웠습니다.

2016년, 저는 문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한 형제님이 쓴 체험 간증문을 보았는데, 경찰의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유다가 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똑같이 체포되었는데, 그 형제님은 굳게 서서 증거했지만 저는 하나님을 배반하여 과오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내가 육을 아끼지 않았다면 저 형제님처럼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었잖아? 그랬다면 지난 몇 년 동안 마음의 시달림을 겪지 않아도 됐겠지?’ 예배 때 자매들이 자신에게 어떤 패괴가 있는지 인식하고 교제하는 것을 들을 때면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들이 드러내는 건 그저 약간의 패괴 성품일 뿐이야. 난 저들과 달라. 난 형제자매를 팔아먹고 유다가 되는 심각한 과오를 저지른 사람이고, 이 과오는 지울 수가 없어. 하나님도 날 구원하지 않으실 거야.’ 그 후로 유다를 제명한 자료를 볼 때마다 마음이 의기소침해지고 괴로웠으며, 언젠가 나도 제명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2022년 겨울, 저와 협력했던 류징(劉靜)과 천훙(陳紅)이 체포되었습니다. 그 둘은 경찰이 혹독한 고문을 가하기도 전에 형제자매들과 섬김 가정을 팔아먹고, 천훙은 제물까지 팔아먹었습니다. 그 후에도 그들은 조금도 뉘우치지 않았고, 연이어 교회에서 제명되었습니다. 저도 그들처럼 유다가 된 적이 있으니 아마 언젠가 제명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본분을 계속 이행하면서도 제가 저지른 과오 때문에 늘 마음이 괴롭고 의기소침하여 무겁기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소극적인 내적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진리를 구하지도 않았고,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열심히 힘이나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묵상 시간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지는 데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전 또는 성인이 된 이후에 특수한 일을 겪었다. 바로 어떠한 과오를 범했거나 어리석은 일, 우매한 일, 무지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오, 어리석은 일, 무지한 일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의기소침함은 자신을 정죄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규정하는 것이다. … 그러한 일들을 저지른 적이 있는 사람들은 흔히 무심결에, 혹은 어떠한 특수 상황이 발생했을 때 특수한 환경 배경 속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이 불안감으로 인해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극도로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지며, 의기소침한 상태가 그를 결박하고 제약한다. 설교를 듣거나 진리를 교제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의기소침함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러면 그는 자신을 이렇게 힐책한다. ‘내가 할 수 있겠어? 내가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어? 내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내가 어떤 인간인데? 과거에 그런 짓을 했으니, 그런 인간이었으니 나는 구제 불능인 게 아닐까?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구해 주실까?’ 때로 어떤 사람들은 의기소침한 정서를 버리고 거기서 벗어나 본인의 진심과 본인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본분, 의무, 책임을 다하며, 더 나아가 몸과 마음 전부를 바쳐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특수한 환경과 배경이 임했다 하면 그런 의기소침한 정서가 다시 우위를 점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참소한다. ‘너는 그런 짓을 했었잖아. 과거에 그런 인간이었잖아. 네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네가 진리를 실행한들 소용이 있을까? 네가 저지른 그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네가 한 짓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까? 네가 이렇게 대가를 치른다고 해서 예전에 범한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까?’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늘 자책과 참소가 존재하며, 의문과 힐책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가 저지른 추악한 일 때문에 언제나 내면이 불안하다. 그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음에도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구원받는 일이 자기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자기가 과연 사함과 구속을 받을 수 있을지, 자기한테 과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지, 그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한 정론이 없기 때문에, 그의 깊은 내면은 항상 의기소침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짓을 한번 또 한번 떠올리고, 반복적으로 머릿속에서 재생한다. 그 일의 경과를 회상하고, 그 일의 전후를 회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항상 죄악감이 든다. 그 일 때문에 수년간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상태다. 본분을 이행하고 어떤 일의 책임자가 돼도 자기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이런 상태였습니다. 체포되어 자매를 팔아먹고 과오를 남긴 후로, 저는 줄곧 의기소침한 감정 속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으니 하나님께서 분명 저를 혐오하실 것이고, 아무리 추구해도 저를 구원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격려하고 권면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면, 이 말씀들은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과오가 없는 형제자매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다를 제명한다는 자료를 볼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했습니다. 저도 그들처럼 유다가 된 적이 있으니, 어쩌면 언젠가 저도 제명될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고는 있었지만, 제 마음은 줄곧 하나님을 향해 닫혀 있었고, 진리 추구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아 그저 열심히 봉사하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제가 자매를 팔아먹고 과오를 남겼는데도, 하나님은 저를 긍휼히 여기시어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고, 제가 가장 고통스럽고 연약할 때 말씀으로 저를 인도하여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으며, 실행의 길을 찾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제게 진리 생명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좋고 나쁨도 모르고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오해하고 방비하며 의기소침한 감정 속에 살았습니다. 저는 정말 양심과 이성이 조금도 없었고, 하나님께 너무나 큰 빚을 졌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과오로 인해 의기소침한 감정 속에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오히려 과오에 얽매이지 않고 진리를 열심히 추구하여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앞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먹고 마시며, 진리를 구하여 제 패괴 성품을 해결해야겠습니다. 더 이상 과오에 얽매여 소극적으로 뒷걸음질 쳐서는 안 됩니다.

그 후 저는 또 반성해 보았습니다. ‘왜 난 구원받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의기소침해지는 걸까? 이것은 어떤 패괴 성품에 지배받은 걸까?’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추구하는 것은 다 나중에 복을 얻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으로, 모든 사람이 이러한 속셈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있는 패괴된 것들은 반드시 시련과 연단으로 해결받아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정결케 되지 않은 부분이 있고 패괴 표출이 있다면 반드시 그 부분에서 연단을 받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안배이다. 하나님은 환경을 마련해 네가 그 환경 속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자신의 패괴를 알도록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도와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놓고 말하면 몇 년간의 연단과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은 생각과 마음속에서 패괴된 육체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탄 본성에 속박되는 부분이 있고, 자신의 욕망과 요구가 있다면 그 부분에서 고난을 겪어야 한다. 오직 고난 속에서만이 공과를 배울 수 있다. 즉,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수많은 진리는 다 고난과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편안하고 순탄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알고 보니 제가 줄곧 의기소침했던 이유는 복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좌절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복을 받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열정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이 말리고 욕하고 때려도 거기에 얽매이지 않았고,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구원받고 살아남아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예비하신 아름다운 종착지를 얻기 위해 저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체포되어 유다가 된 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복받을 희망이 사라지자 줄곧 소극적인 정서 속에 살면서 진리도 추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제 속셈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으니, 저는 은혜시대에 떡으로 배를 불리려 했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오로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이익을 얻을까 하는 생각뿐이고,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여 과오를 해결할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보답할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인성이 없었습니다! 이번 드러냄을 겪고 나서야 하나님을 믿는 제 안의 거래와 불순물이 정말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시고 혐오하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두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보고 과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깨달았고, 과오를 해결할 길도 조금은 생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만 과오를 저질러도 이렇게 추측한다. ‘하나님이 나를 드러내고 도태시킨 게 아닐까? 나는 하나님에게 죽임을 당하는 거 아닐까?’ 하나님이 이번에 사역하러 온 것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과오 없는 사람이 없는데 만약 모두 죽인다면 그게 구원이겠느냐? 사람은 일부 과오는 고의로 저지르고 일부 과오는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다.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일에서 네가 인식하고 나서 변화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네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 너를 죽여 버리겠느냐?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구원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네가 패역 성품이 있든 자신도 어쩔 수 없든, 기억해라.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서둘러 돌아서서 힘을 다해 진리에 공을 들여야 하고, 어떤 상황이 나타나든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하나님은 구원하려는 사람을 아무렇게나 죽이지 않는다. 이는 분명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정말로 결국 하나님에게 죽임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이 한 일은 틀림없이 공의로운 것이다. 때가 되면 무엇 때문에 그를 죽였는지 네가 알도록 할 것이고 진심으로 탄복하게 할 것이다. 지금 너희는 오로지 진리에 공을 들이고 생명에 진입하는 것만 중시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만 추구하여라. 이는 틀림없다!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틀림없이 공의로울 것이니 너는 이를 의심해서는 안 되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비록 지금 너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탄복할 것이다. 하나님은 일할 때 항상 광명정대하고 공개적으로 모든 것을 드러낸다. 너희가 이 방면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이 하는 것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는 사역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사함과 용서를 받을 수 있느냐? 이는 네 마음에 달렸다. 네가 진심으로 죄를 인정하고, 자기 잘못과 문제점을 진실로 깨닫는다면, 네가 범한 과오가 됐든 죄업이 됐든, 그 죄를 진실로 인정하는 태도가 네게 있고 네가 정말 그 일을 증오하고 돌아설 의사가 있고, 앞으로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면, 언젠가는 하나님에게 관용과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즉, 하나님이 네가 과거에 범한 무지하고, 어리석고, 더러운 일을 바탕으로 네 결말을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하나님은 네가 저지른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너도 다른 정상인과 다를 게 없어진다. 단, 전제는 네게 반드시 진심이 있어야 하며 진정한 태도로 회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치 다윗처럼 말이다. 다윗은 자기가 범한 과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느냐?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다. 몇 번이나 울었느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흘린 눈물을 한마디로 형용하자면 ‘침대가 눈물에 뜰 정도였다’. 네 과오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몰라도 만약 지나치게 심각하다면 너 역시 침대가 눈물에 뜰 만큼 울어야 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서 하나님에게 용서받아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네 과오는 하나님이 보기에 죄업이 될 테고, 사함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너는 심각한 상황에 봉착한다. 나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하나님에게 사함 받고 싶다면 우선 네 진심을 꺼내 보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죄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심을 보이며 네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경우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해낸다면, 정말 네 진심과 성의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네 죄를 사해 주도록 한다면, 너도 남들과 다를 것이 없어진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보는 관점으로 너를 볼 것이요,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너를 대할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네게도 행하고, 너를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네게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염원이 생길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똑같은 방식으로 너를 깨우치고, 인도하고, 너에게 공급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네게 이러한 진심과 간절한 태도가 생겼으니 하나님이 너를 불공평하게 대할 리가 없다.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구원받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 하나님이 일하시는 데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과오가 있다고 해서 단칼에 내치며 회개할 기회도 주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과오를 저지른 후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지를 보십니다. 다윗은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우리아의 아내를 차지했지만, 자신이 죄를 지어 하나님께서 혐오하심을 알았을 때 진심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 후로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으며, 노년에 처녀가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해 주어도 건드리지 않았음을 떠올렸습니다. 그의 회개는 말로만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증명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었습니다. 류징과 천훙이 아무런 고문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유다가 되고, 천훙은 수백만 위안의 제물까지 팔아먹었는데도 그 후 조금도 뉘우치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을 교회에서 제명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저를 받아준 이유는, 제가 애초에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한순간 연약해져 자매를 팔아먹었지만, 그 후로 줄곧 후회하고 자책하며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집에서는 제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고 아름답고 선하시며, 하나님은 어느 누구든 원칙 있게 대하십니다. 특히 『과오 없는 사람이 없는데 만약 모두 죽인다면 그게 구원이겠느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라고 하신 말씀을 보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자포자기하지 말라고 일깨우고 권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행간에서 저는 하나님의 고심, 사람에 대한 그분의 관용과 긍휼을 느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더 이상 과오에 얽매여 자신을 규정하고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기울여 본분을 이행하고, 무슨 일을 만나든 진리를 많이 구하고 원칙대로 일하는 데 중점을 두며, 실제 행동으로 제 과오를 만회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예전에 제가 실패했던 근본 원인이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반성하고 인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어떻게 죽었더냐? 어떤 자는 돌에 맞아 죽고, 어떤 자는 말에 끌리다가 죽었으며, 어떤 자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고, 어떤 자는 거열형에 처해지는 등 온갖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무엇이더냐? 그들이 나쁜 짓을 저질러 법적 제재를 받은 것이냐?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주의 복음을 전파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받아들이기는커녕 그들을 정죄하고 욕하고 때렸으며, 나아가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그렇게 순교했다. 순교한 사람들의 마지막 결말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어떻게 규정했는지 등은 차치하고, 하나만 물어보겠다. 그러니까 그들이 마지막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한 방식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느냐?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관념으로 본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전파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렀고, 또 마지막에는 사탄에게 잔혹한 죽임을 당했으니 관념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일이 닥쳤고,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다. 여기에는 구해야 할 어떤 진리가 있느냐? 하나님은 그들이 그렇게 죽도록 허락했다. 이는 하나님의 저주와 정죄겠느냐, 아니면 안배와 축복이겠느냐? 전부 아니다. 그럼 무엇이겠느냐? 그들의 죽음을 돌이켜 생각하면 사람들은 가슴 아파 하지만, 사실이 분명 그러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그렇게 죽어 간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겠느냐? 이를 언급하면 너희는 그것을 자신에게 대입해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면 마음이 불편하고 은근히 아프지 않겠느냐? ‘그들은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으니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왜 그런 결말, 그런 말로를 맞이한 걸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그들의 육은 그렇게 죽고 사라져 그런 방식으로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결말이 그런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이 죽을 때, 세상을 떠날 때 어떤 과정과 방식을 겪었든 그것은 그들의 생명, 그 피조물들의 마지막 결말에 대한 하나님의 규정이 아니다. 너는 이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반대로, 그들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이 세상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한 것이다. 그 피조물들은 가장 귀한 생명, 그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이용해 하나님의 행사와 크나큰 능력을 증거함으로써 사탄과 이 세상에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옳은 것임을, 예수는 하나님이자 주이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임을 선고했다. 생명이 끝나는 순간에도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는 이 세상에 대한 하나의 심판 아니겠느냐? 그들은 목숨으로 세상에 선고하고 인류에게 증명했다. 예수는 주이자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고, 그가 행한 구속 사역은 전 인류가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했다는 것을,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순교한 사람들은 어느 수준까지 본분을 이행했느냐? 궁극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느냐? 이 궁극의 경지를 무엇으로 보여 주었느냐? (목숨을 바침으로써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다. 목숨을 대가로 바쳤다. … 사람은 어떻게 죽든 사탄 앞에서 죽어서는 안 되며, 사탄의 손안에서 죽어서도 안 된다. 죽더라도 하나님 손안에서 죽어야 한다. 하나님에게서 와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피조물이 마땅히 갖춰야 할 이성이자 태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복음 전도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중에서) 주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느라 세상 사람들에게 정죄와 핍박을 받았고 심지어 순교까지 했습니다. 비록 그들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들은 사탄 앞에서 굳세고 힘 있게 증거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고,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혹독한 고문에 시달려 죽을까 두려워하며 자신을 보전하고자 자매를 팔아먹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육적인 고통은 면했지만, 양심의 가책과 마음의 시달림이 가시처럼 제 마음을 찔러 사는 게 죽느니만 못했습니다! 이런 마음의 고통은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보상할 수 없었습니다. 제 실패의 근본 원인을 깨달은 뒤, 저는 이 방면의 진리로 더욱 무장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만약 나중에 또 체포된다면,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형제자매를 팔아먹거나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먹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 굳게 서서 증거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줄곧 의기소침한 감정 속에 살며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 준 덕분에 오해를 내려놓고 제 과오를 올바르게 마주함으로써 마음이 해방되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하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 저에게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있든 없든, 더 이상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본분을 잘 이행하겠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대하시든, 설령 저를 징벌하고 저주하신다 해도 그것은 당신의 공의입니다.’ 기도를 마치자 마음이 무척 편안했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말씀이 아무리 호되더라도, 그것이 저주나 정죄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은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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