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성과 오해가 드디어 사라지다
몇 년 전, 저는 교회에서 동영상 제작 훈련을 했습니다. 한동안 본분 이행의 성과가 좋지 않았는데, 제작한 동영상 두 편이 구상에 문제가 있어 잠시 제쳐 둔 상태였죠. 당시 저는 무척 괴로웠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저를 무시할 것 같아서였죠. 사역 능력을 증명해 보이려고 저는 며칠 동안 매달려서 동영상 계획안을 짰습니다. 그런데 리더가 그걸 보더니 계획안 구상이 진부하고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 같이 토론했는데, 역시 계획안이 수정 가치가 없다는 결론이 나서 폐기해야 했습니다. 저는 패배감에 사로잡혀 소극적인 상태로 살며 본분을 이행할 의욕도 잃었습니다. 하루는 몇몇 형제자매들이 제 생각이 흐리멍덩하다고 평가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마음은 계속 요동을 쳤고요. ‘리더는 내 구상이 불분명하다고 하고, 형제자매들도 내 생각이 흐리멍덩하다고 했어. 그건 내가 멍청이란 말이잖아. 멍청이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러다 도태되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껏 움츠러들고 고통스러워서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팀장과 리더를 찾아가 울면서 하소연했습니다. “제가 자질이 너무 부족한가 봐요. 본분을 이행하기가 너무 힘이 드네요. 그냥 다른 본분을 이행하게 해 주세요.” 그러자 리더가 교제했습니다. “우리는 다 결점이 있어요. 본분을 이행하다 보면 좌절과 실패를 피해 가기 힘들죠. 문제나 오류가 있으면 그때그때 정리한 다음 진리를 구해 해결하고, 다시 잘하려고 노력하면 돼요. 그러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할 정도까지는 아닐 거예요.” 하지만 당시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로지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형제자매들에 대한 마음의 벽을 간직한 채 떠났습니다. 나중에 저는 복음 전도 훈련을 했습니다. 한동안 노력한 끝에 본분 이행에 점차 성과가 나기 시작했고, 팀의 형제자매들도 무슨 문제가 있으면 늘 저에게 구했습니다. 저는 자신감을 좀 회복한 것 같아서 매일 기분이 무척 좋았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기운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난 후 사역의 필요에 의해 리더가 또다시 저에게 영상 제작 일을 안배했습니다. 처음 본분을 이행할 때는 성과가 조금 있어서 그래도 별로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영상 제작에 혁신이 필요할 때, 제 구상이 진부한 편이라 계획안이 늘 부결되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또다시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제가 자질도 부족하고 바보라서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팀장은 제가 본분 이행에 비교적 수동적이고 부담도 없는 것을 보고 차분하게 진리를 교제하며 붙들어 주고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매님과 양판(楊凡) 형제는 영상 제작 훈련을 한 시간이 비슷한데, 형제는 사람이 아주 성실하고, 배우고 정리하는 걸 잘해서 본분 이행에서도 발전이 있어요. 자매님은 조금 부족하니까 열심히 해야 해요.”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언짢았습니다. ‘내 본분 이행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서 내가 고치게 하면 될 것을 뭣 하러 양판과 비교하는 거야? 그 사람은 자질도 좋고, 구상도 분명해서 계속 양성 대상이잖아. 나는 바보라서 그 사람이랑은 원래부터 같은 등급이 아니야. 비교가 안 된다고.’ 당시 저는 팀장의 지적과 도움에 무척 반발했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한 일주일쯤 지나자, 팀장은 제가 저우밍이(周明義) 자매와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또 저에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자매님과 밍이 자매가 협력하고 있는데, 밍이 자매는 머리가 잘 돌아가고 자매님은 기술이 좋으니까 두 사람이 협력하면 서로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어요. 밍이 자매랑 많이 의논해야 해요. 다른 사람 의견도 많이 듣고, 다른 사람에게서 장점을 배워야 발전할 수 있죠. 최근에 두 사람 본분 이행의 성과가 좋지 않아요. 제작된 영상 구상도 여전히 진부하고요. 좀 반성해야 하지 않겠어요?” 팀장이 저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소리를 들으니 무척 괴로웠습니다. 팀장이 내가 못마땅하고 싫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죠. 제 문제에 대해 얘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숨 돌릴 틈도 안 주고 지금 또 저를 폭로하니까요. 생각할수록 괴롭고 억울해서 울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금까지도 후회되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꼭 이 팀에서 계륵같이 느껴져요. 먹자니 맛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이요.” 이 말을 들은 팀장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세요? 아무도 자매님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본분을 이행할 때 문제가 생기면 같이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지 소극적으로 나오고 반발하면 안 돼요!” 하지만 팀장이 아무리 교제해도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는 바보라서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형제자매들도 싫어하고, 팀에서 있으나 마나 한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할수록 억울한 나머지 저는 소극적이고 오해하는 상태로 지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점점 소원해지고, 본분 이행에도 자신감이 없어졌고, 자질이 부족하다는 말이 어느새 입버릇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 파트너 자매와 영상을 제작할 때, 구상에 대해 의논하다가 서로 관점이 다른 것을 보자 바로 타협했습니다. “저는 자질이 부족해서 제 구상은 안 돼요. 자매님이 문제를 정확히 볼 줄 아니까 자매님 생각대로 하세요.” 그런 다음 바로 제 구상 계획안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자매가 이를 보고는 다급히 말했습니다. “왜 지웠어요? 저도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제가 문제를 보는 눈이 꼭 정확한 것도 아니라고요.” 그 후 자매는 저에게 내적 상태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저랑 협력할 때 교만한 성품이 흘러나와서 제가 조금 눈에 차지 않았다면서 본인도 잘 반성하겠다고 했죠. 그 말을 듣고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자매랑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 얼버무렸습니다. “자매님이 교만을 드러낸 건 그럴 수도 있어요. 저처럼 자질이 부족한 사람하고 같이 본분을 이행하는데, 누군들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지 않겠어요? 저였어도 그랬을 거예요.” 자매는 안타까워하면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소극적이고 오해하는 상태로 지내면서 고통에 시달렸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도 무척 힘에 겨웠습니다. 특히 영상이 완성될 때마다 사람들은 영상의 창작 구상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데, 저는 발언도 거의 하지 않고, 토론에 참여할 엄두도 못 낸 채 그저 파트너 자매가 와서 그 상황에 대처하기만 바랐습니다. 저녁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본분을 이행할 때면 늘 움츠러들고 자신감이 하나도 없을까? 왜 늘 무시당하는 것이 두려울까? 내가 어쩌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게 된 거지?’ 더 이상은 이렇게 의기소침하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남들처럼 적극적인 상태로 살면서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속으로 하나님께 저를 구해 달라고,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후, 예배 시간에 리더가 읽어 주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제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제 내적 상태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하나님과 맞서고, 하나님께 대항하고 대드는 그런 정서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에서 철저하게 멀어지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어진다. 이런 내적 상태로 살 때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느낌대로 살아가게 된다. 한 가지 사소한 생각에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고민하기도 하고, 남이 무심코 한 말에 이리저리 추측하며 쩔쩔매는가 하면, 심지어 악몽을 꾼 것 가지고도 소극적으로 변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기도 한다. 이렇게 악순환이 일어난 뒤, 사람은 자기는 안 된다고, 구원받을 희망이 사라졌다고, 하나님이 떠나서 구원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느낄수록 점점 더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든다. 사람에게 이런 느낌이 드는 원인은 결국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은 진리를 구하지도 실행하지도 않고, 저 혼자 똑똑한 줄 알고 언제나 자기 고집대로만 한다. 매일 남들과 비교하고 다투는데,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질투하고 미워하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비웃고 빈정댄다. 사탄 성품으로 살면서 진리 원칙대로 행하지 않고, 누구의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때문에 결국에는 온갖 환상과 추측, 판단이 생겨나 자신을 끝없는 불안에 떨게 한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 이런 쓰디쓴 결과는 스스로 감당해야 하고, 그게 당연하다! 이런 일들이 다 어떻게 초래된 것이냐? 그건 바로 사람이 진리를 구하지 않고,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늘 자기 뜻대로 행동하고, 자기를 내세우고, 남과 비교하고, 언제나 남보다 뛰어나고 싶어 하고, 늘 하나님에게 무리하게 요구하는 등등, 이런 행동 때문에 점차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자꾸만 하나님에게 반발하고, 진리를 어기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에는 흑암에 빠지고 소극적 상태에 빠진다. 이때 사람은 자신의 패역과 대적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고, 더욱이 올바른 마음 자세로 대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오해, 추측이다. 이런 것이 생겨날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너무 깊이 패괴되고, 너무 골치 아프게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본인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이라고 규정하고 자기도 모르게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나를 혐오하여 버리셨구나. 나를 원하지 않으셔. 내가 너무 패역해서 그런 거고, 자업자득이야. 하나님은 분명 나를 구원하지 않으실 거야.’ 그는 모든 게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속으로 추측한 것을 사실로 규정해 버린다. 누가 진리를 교제해 주어도 소용이 없는데, 그는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은 나를 축복해 주시지도 않고, 구원해 주시지도 않을 거야.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게 무슨 소용이지?’ 하나님 믿는 길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계속해서 믿을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어째서 계속 걸어갈 수 없느냐?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사람의 소극성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 속으로 반발과 원망이 가득 쌓이며, 하나님과 철저하게 결별하려 할 때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도로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대신 어떠하겠느냐? 사람은 속으로 하나님 믿는 일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수동적으로 도태되기를 기다리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먼저 포기하는 건 그래도 체면이 조금 선다고 생각해서 먼저 기권하고 스스로 끝내는 쪽을 택한다. 사람은 하나님 믿는 건 좋지 않다고 정죄하고, 진리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정죄하고, 또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고 정죄하고, 하나님이 왜 자기를 구원하지 않느냐며 원망한다. ‘난 부지런히 하면서 남들보다 고생도 많이 하고, 대가도 많이 치렀어.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했어. 그런데도 하나님은 나를 축복해 주시지 않았어. 이제야 알겠어. 하나님은 나를 좋아하시지 않고, 사람을 차별 대우해!’ 그는 감히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하나님에 대한 정죄와 모독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그래도 사람이 하나님 믿는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겠느냐?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망치게 된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7)> 중에서) 하나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저에게는 일깨움과 해부, 심지어 경고가 되었습니다. 특히 “사람에게 이런 느낌이 드는 원인은 결국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부분이 있는데,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오랫동안 제가 저 자신에게 닥친 일에서 진리를 구해 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고요. 언제나 제 상상과 추측 속에서 살면서 사람과 일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처음에 영상을 만들면서 연거푸 실패하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저를 두고 생각이 흐리멍덩하다고 평가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제 문제를 반성하지 않고 도망치는 쪽을 택했고, 소극성과 오해 속에서 지냈습니다. 다시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과거 실패의 교훈을 정리해 보지 않고,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심리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팀장이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제 본분 이행에 존재하는 문제를 지적하자 더욱 소극적이 되고 오해는 더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자질이 부족하고 멍청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나아가 형제자매들이 저를 무시할 것이라고 추측했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도 더 심해졌습니다. 그 결과 마음이 더욱 고통스럽고 어두워져서 본분 이행에도 성과가 없고, 무엇을 해도 위축되는 등 크게 속박을 받았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은총을 베풀지 않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진리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채찍질과 징계, 책망과 훈계에 대해 항상 반발하고, 멀리하고, 싫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거역과 대적이 너무나 컸고, 그 때문에 흑암과 고통에 떨어져 하나님과 갈수록 관계가 소원해지고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던 것이었죠. 그러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저는 마침내 자승자박이 뭔지를 깨달았습니다. 또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비록 하나님을 믿으면서 버리고 헌신했지만, 속으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이 선포하신 진리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본분을 이행하면서 실패와 좌절을 만나기만 하면 속으로 반발하며 심술을 부리고, 스스로 자질이 부족하다고 규정하고, 심지어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 속으로 항상 못마땅했습니다. ‘나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생하며 대가도 치를 수 있고, 고생도 남들보다 덜하지 않았는데 왜 늘 이렇게 부족한 것으로 드러날까?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은총을 안 내려 주실까? 그런데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부인하는 거잖아? 이건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야!’ 반성할수록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제 내적 상태는 정말 위험했고 빨리 정신 차리지 않고 진실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될 게 분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해부하신 내적 상태가 모두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제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는 괴로워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스스로를 망친 저 자신이 미웠습니다. 속으로 무척 후회하며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계속 거역하고 강퍅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 소극성과 오해 속에서 살면서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반드시 회개하겠습니다!’
그 후, 리더와 팀장이 저에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제가 자꾸 소극적으로 변하는 문제를 폭로해서 지적한 다음 하나님 말씀도 읽어 주었는데, 저는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각 단계마다 하나님이 네게 징계하고 책벌하든, 혹은 일깨우고 권면하든, 너와 하나님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는데도 네가 뉘우치지 않고 계속해서 본인 생각을 견지하고 본인 관점과 태도를 고수한다면, 비록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너와 하나님 사이에 발생한 충돌, 하나님에 대한 너의 오해와 원망, 패역이 해결되지 않고, 네가 마음을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너를 도태시킬 것이다. 네가 수중의 본분을 내려놓지 않은 채 여전히 본분을 지키고 있고, 하나님이 맡긴 일에도 어느 정도 충성심이 있어 사람이 볼 때 그런대로 괜찮겠지만 한 가지, 너와 하나님과의 의견 충돌이 끝까지 풀리지 않았다. 네가 진리로 해결하지 않고, 진실로 하나님 뜻을 깨닫지 못한 결과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날로 깊어지고, 언제나 하나님이 틀리고 너는 억울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는 뉘우치지 않은 것이다. 너의 패역과 관념,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줄곧 자리 잡고 있어 이로 인해 순종하는 자세가 없고,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과 대립한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냐? 어째서 하나님은 사람이 뉘우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하나의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마땅히 갖춰야 할 태도는 무엇이냐? 바로 창조주가 어떻게 하든 모두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네가 이 점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창조주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이 말이 너에게는 빈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래도 네가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너에게는 자격이 없는 것이다. 너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는다. … 너는 뉘우쳐야 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내려놓아야 한다. 너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이것도 일종의 순종하는 태도다. 하지만 좀 더 적절히 말하자면,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고 창조주를 대하는, 일종의 뉘우치는 태도이고, “창조주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이 사실에 대한 인정과 긍정이다. 네가 뉘우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 혹은 패괴된 인류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자 긍정적 사물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를 지닌다면 그것은 창조주의 신분을 인정하고, 그의 본질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람이 뉘우치는 것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왜 사람의 회개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역하시며 인류를 구원하실 때는 사람이 겉보기에 사역을 얼마나 하고, 고생을 얼마나 할 수 있느냐를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심을 인정하는지, 하나님께 순종하는지를 보십니다. 한 사람이 많은 패괴를 드러내고 진리에 어긋난 짓을 했는데도 자기 문제를 반성하지 않고,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고, 속으로 계속 하나님을 오해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무리 겉으로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께는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사람이고, 결국 도태되고 구원받지 못합니다. 최근 몇 년을 떠올려 보니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마음에 응어리를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그것을 끄집어내서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그저 분주하게 본분을 이행하며 스스로를 마비시켰습니다. 그러다 본분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 제게 결점이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체면이 상해서 스스로를 규정짓는 소극적인 말을 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하는 말도 했죠. 시간이 갈수록 마음속에 점점 원망이 쌓이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골이 깊어지고, 내적 상태도 점점 더 안 좋아졌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분주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무슨 크게 간악한 짓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언제나 하나님을 경계하고 오해했어. 어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럴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겠어? 언제나 오해하는 상태, 소극적인 상태로 살면서 늘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고, 본분을 이행해도 성령 역사를 얻기가 힘들었지. 경험에만 기대어 정해진 절차대로만 했으니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겠어? 계속 이런 식으로 믿으면 뭘 얻을 수 있을까?’ 그 순간,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실로 회개하려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삼 년을 돌아보니, 그동안 저는 형제자매들이 저를 생각이 흐리멍덩하고 조금 멍청하다고 평가했던 일 때문에 꽁해 거기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스스로를 반성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차분히 진리를 구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멍청이라고 한 것은 네가 그 표현이나 단어, 정의를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 속에 담긴 진리를 이해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한 사람을 멍청이라고 말할 때 그 속에 담긴 진리는 무엇이겠느냐? ‘멍청이’라는 말의 표면적인 뜻은 모두 이해하겠지만, 멍청이의 태도와 성품이 무엇이고,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멍청하고 어떤 일을 할 때 멍청하지 않은지, 하나님이 어째서 이렇게 사람을 폭로하는지, 멍청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지, 멍청이가 원칙에 따라 일할 수 있는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 수 있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혐오하는지 구분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사람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모호하고 흐리멍덩하고 또렷하지 않으며, 어떤 일도 분명히 알지 못한다. 예를 들면, 이 일을 이렇게 하면 규례를 지키는 것인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인지 대부분의 상황에서 알지 못하고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며, 이 일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인지 혐오하는 일인지도 알지 못하고 구분하지 못한다. 또한 이렇게 실행하는 것이 사람을 통제하는 것인지 정상적으로 진리를 교제해 사람을 돕는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이렇게 사람을 대하는 원칙이 옳은지 그른지, 패거리를 만드는 것인지 사람을 돕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원칙을 고수하고 입장을 지키는 것인지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자신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틈만 나면 거울 보길 좋아하는 것이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것인지, 허황된 행동인지, 아니면 정당한 행동인지도 알지 못한다. 또 성격이 좋지 못하고 조금 이상한 사람은 성품이 좋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느냐? 사람들은 흔하고 자주 접하는 많은 일도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멍청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면 너희를 멍청이라고 한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너희는 평생을 멍청이로 살고 싶으냐? (아닙니다.) 누구도 멍청이가 되길 원치 않는다. 사실 이렇게 교제하고 해부하는 것은 너희가 스스로 멍청이 대열에 포함시키라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정의를 내리든, 어떻게 폭로하든, 어떻게 심판하고 형벌하고 책망하고 훈계하든, 최종적인 목적은 너로 하여금 그런 내적 상태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고 멍청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멍청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우선 자신이 어떤 일에서 멍청하고 항상 도리를 따지고 글귀와 도리, 이론 사이를 맴돌면서 구체적인 일이 닥치면 흐리멍덩해지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면 여러 진리에 대해 또렷이 알게 되고, 그러면 일할 때 멍청한 짓을 저지르는 경우도 줄어든다. 네가 여러 진리를 깨닫고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면 일을 처리할 때 손발이 묶이지 않고 결박당하거나 통제당하지 않는다.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거나 다른 사람과 교제한 후에 정확한 실행 원칙을 찾아내고, 진정으로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면 너는 멍청한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네가 어떤 일을 꿰뚫어 보고 진리를 정확히 실행할 수 있다면 그런 일에서 멍청한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기만 하면 마음속이 저절로 환해진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은 멍청이의 모습을 정확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멍청이는 어떤 일에서든 흐리멍덩하고 또렷하지 않고, 입장과 원칙이 없고, 하나님이 뭘 좋아하시고 혐오하시는지 모르고,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해서도 분별이 없고, 자신의 결점과 부족한 점, 자신이 드러내는 패괴도 잘 모릅니다. 어떤 일을 만나면 흐리멍덩하고, 옳고 그름도 확실히 분별하지 못하고, 실행의 원칙과 길도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조해 보니, 과거 본분을 이행하던 광경이 하나하나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저는 오직 고생하며 사역하는 데만 집중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는 일은 소홀히 하고, 진리 원칙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만든 영상에 대해 형제자매들이 수정 건의를 해도 신경 써서 고민하지도 않았고,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해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도 아무렇게나 처리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저 고생만 조금 하면 하나님에 대해 충성하는 것으로 생각했죠. 또한, 본분을 이행하면서 패괴를 많이 드러내고, 결점도 많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소극적인 상태로 몇 년을 지냈습니다. 너무나 무감각해서 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다가는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고 계속 흐리멍덩한 상태로 아무렇게 지내 왔습니다. 이런 게 모두 멍청이의 모습이 아닌가요? 저는 그제서야 형제자매들이 내린 저에 대한 평가가 사실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죽어도 인정하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사람들이 저를 무시하는 줄 알고 형제자매들에게 편견을 가지고, 벽을 쌓았습니다. 정말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최근 몇 년을 돌아보니 형제자매들은 늘 저를 붙잡아 주고 도와주었지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억지를 부리며 어처구니없이 굴었던 것이었죠. 저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드디어 과거의 일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멍청하고, 진리를 구하지 않고,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굴었던 저 자신이 진심으로 혐오스러웠습니다.
제가 멍청하다는 문제를 인식했고, 또 제가 늘 스스로 자질이 떨어진다고 규정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이 역시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어리석게 한 데는 그만한 의미가 있고, 너를 똑똑하게 한 데는 또 그만한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네게 어떤 재능을 주었든, 네가 무엇을 잘하든, 네 지능이 얼마나 높든 하나님에게는 다 의도가 있고, 전부 하나님이 미리 정해 놓은 것이다. 네가 평생 어떤 역할을 할지, 어떤 본분을 이행할지 그것은 전부 하나님이 오래전에 정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의 장점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고 불만을 가지며, 더 많이 공부하고 보고 노력하여 바꿔 놓으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고, 은사와 재능이 있는 사람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다. 너는 하나님이 정해 놓은 대로이고, 이는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 네가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다면 그 분야에서 많이 노력하고, 네가 어떤 본분 이행에 적합하다면 그 본분을 이행하면 된다. 네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잘하려고 하지도 말고 남을 질투하지도 마라. 사람은 다 각자의 기능이 있으니, 자신은 무엇이든 잘한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완벽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늘 남을 대신하고 스스로를 뽐내려고 하지 마라. 이는 패괴 성품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재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성실하게 말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라.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보여 주고 전력을 다하면 된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만족한다. 항상 모든 사람을 능가하려 하고,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보다 잘하려 하고, 모든 면에서 탁월하려고 하지 마라. 이는 어떤 성품이겠느냐? (교만한 성품입니다.) 사람은 늘 교만한 성품이 있어, 진리를 향해 노력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 해도 이를 이루지 못한다.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으면 착오가 생기기 쉽다. 어떤 사람이 항상 호의를 베풀어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요구를 대체하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하나님이 칭찬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야 하며, 본분을 이행할 때는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사람이 호의를 베푸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다. 이는 늘 새로운 멋진 것을 하고 큰소리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헤아리라고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승부욕이 강한 것이라고 한다. 승부욕 자체는 부정적인 것이다. 바로 사탄의 교만한 성품의 드러냄이자 표현이다. 너에게 이런 성품이 있으면 늘 남을 앞서고 이기려 하고, 늘 다투려 하고, 빼앗으려 하며 질투가 심하고,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으려 하고, 얼굴 내밀기를 좋아할 것이다. 그러면 큰일이다. 사탄이 바로 그렇게 한다. 만약 네가 진정으로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고자 한다면, 너 자신의 꿈을 좇지 마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강한 척하고 잘난 척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이 마땅히 서야 하는 위치에 제대로 서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성적인 모습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 원칙>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저는 왜 늘 스스로 자질이 떨어진다고 했을까요? 사실은 본성이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이었던 것입니다. 늘 야심과 욕망이 있어서 남들보다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 마음에 남보다 뒤떨어지면 소극적으로 변하고 심술을 부리며 자신을 규정했죠. 명예욕, 지위욕이 너무 강해서 어떤 사람들과 있든,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게 싫고 언제나 사람들에게 우러름 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언제나 많은 문제와 결점이 드러났고, 책망과 훈계를 받고 좌절과 실패를 겪으면 체면이 손상되고 명예가 땅에 떨어진 것으로만 생각하며 정상적으로 대하지 못했고, 늘 제가 자질이 너무 부족하고 너무 멍청하다고 규정했습니다. 또 늘 저 자신을 남과 비교하며 팀원 중에 특기가 있고 자질이 저보다 뛰어난 형제자매를 보면 저 스스로를 지나치게 못나고 하찮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계속 의기소침하고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하고, 자질과 은사를 남과 비교하면서 늘 사람들에게서 우러름 받으려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탄 성품이 너무나 심각했죠. 사실, 은사와 자질은 본분을 잘 이행하는 데 관건도 아니고, 남들에게 우러름과 숭배를 받는 것도 구원받는다는 보장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죠. 하나님은 사람에게 인성과 이성을 갖춘 사람이 되어 착실하게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해서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 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보고 뒤떨어졌다고 한 것도, 자질이 부족하다고 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너희를 버린다거나 너희에게 희망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며, 너희를 구원하기 싫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내가 온 것은 바로 너희를 구원하는 사역, 즉 구원을 이어 가는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누구에게나 온전케 될 기회는 있다. 원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모두 성과를 얻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질이 떨어진다고 하신 것도, 사람의 멍청함을 폭로하신 것도 사실은 모두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똑똑히 보고, 자신의 결점을 안 뒤, 열심히 진리를 추구해서 생명 성품의 변화를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질이 부족해도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언제나 하나님 요구를 향해 노력한다면, 하나님도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반면 자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그대로 드러나 도태될 것입니다. 제가 자질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정작 저를 구원하지 않겠다고 하신 적이 없고, 또 그것 때문에 저를 도태시키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으니, 본분을 이행하는 지금의 기회를 소중히 여겨 진리를 추구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제 결점을 보완하고 자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옳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떤 일이 닥치면 진리를 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어떤 환경을 겪든, 그것이 책망과 훈계이든 좌절과 실패이든, 저는 스스로를 반성하고 실행 원칙을 구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이렇게 체험했을 때 은연중에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느꼈고, 또한 제 생각이 한결 맑아졌음을 느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영상 제작 구상을 토론할 때에도 더 이상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발표한 관점이 옳지 않거나 형제자매가 저에게 건의를 해도 올바르게 대할 수 있고, 마음도 훨씬 담담해졌습니다. 당시 저는 하나님과 아주 가까워진 느낌이었는데, 하나님이 바로 제 곁에서 믿음과 힘을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 뜻을 구하며 하나님께 의지하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협력해서 마침내 어려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고, 본분 이행 성과도 좋아졌습니다. 저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과 벽을 쌓고 지내던 그때를 떠올리면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나중에 또 하나님 말씀을 보고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 냉대받거나, 버림받거나, 미움받는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사람이 굳은 의지를 가지고 아무 후회 없이, 또 주저함 없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을 갔으면 한다. 어떠한 걱정도, 부담도 없이 말이다. 네가 이전에 어떤 잘못을 했든, 어떤 잘못된 길을 갔든, 어떤 과오를 남겼든 그것이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에서 짐이나 부담이 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 중 가장 귀한 것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동안 저는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하면서도 정작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진실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고 느꼈습니다. 비록 제 마음은 강퍅하고 패역했지만, 하나님은 계속 환경을 마련해서 제가 체험하고 깨닫게 하셨고, 제 회개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저를 일깨워서 제가 오해하는 상태,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너무나 진실하고, 아름답고, 선합니다! 제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감격으로 가득했습니다. 진리를 열심히 추구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서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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