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서 배운 공과
예전에 제가 예수님을 믿을 때는 자주 성경을 보고 주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세에 진리를 선포하여 심판 사역을 하시며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는 더욱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저는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는 부분의 진리에 대해 어느 정도 명확히 알게 되었고, 복음 전파의 몇 가지 원칙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경험들이 쌓이자 복음 성과도 좋은 편이었고, 형제자매들도 제가 복음 전파에 재능이 있어서 복음 대상자의 관념을 잘 캐치해 교제하며 해결해 낸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문제도 저한테 가지고 오면 손쉽게 해결되었습니다. 그 후 복음을 전하던 중에 저는 경찰에 체포돼서 징역 1년의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후 저는 곧바로 또다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복음을 전하는 훈련을 막 시작한 형제자매가 많았는데 복음 사역의 성과가 별로 좋지 않자 리더가 복음 사역의 책임자로 저를 안배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복음 대상자의 관념을 분석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교제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알려 주었습니다. 종교 관념이 복잡한 복음 대상자를 만나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형제자매가 몇 번을 교제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나서서 복음 대상자와 교제하니 복음 대상자의 관념이 금방 해결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교회의 복음 사역은 점점 더 성과가 좋아졌고 서서히 저는 스스로를 칭찬하기 시작하며 그래도 저에게는 어느 정도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형제자매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제가 두세 번 만에 해결했을 때는 스스로 매우 드문 인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자신을 점점 더 높게 평가하고 형제자매들은 자질이 부족하고 본분 이행에 무심하다며 자주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양육을 맡고 있는 한 자매가 저를 찾아와 한 새 신자가 물어본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제가 함께 가서 교제해 해결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자매의 말에 저는 무척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간단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지? 본분 이행에 무심하고 책임감이 없어서 그런 게 분명해. 자질도 부족해서 새 신자의 관념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거라고.’ 저는 그녀를 가르치려 들기 시작했습니다. “새 신자조차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는데 무슨 쓰임을 받을 수 있겠어요?” 자매는 제 말에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눈물만 글썽거렸습니다. 당시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깨달았지만 또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좀 호되게 말하지 않으면 자매님은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고 성장도 하지 못할 거야.’ 그런 일이 있은 후, 자매는 어떤 문제가 생겨도 감히 저를 찾아오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통제만 받을 뿐이었습니다. 자매 스스로 자신은 이 본분을 이행할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새 신자를 양육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았고 도와주려고 교제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마음속으로 자매를 얕잡아 보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문제들도 해결할 수 없는데 무슨 양육 사역을 한다는 거지? 이건 오히려 사역에 지장을 주는 거 아니겠어?’ 그 후 저는 자매에게 그 새 신자의 양육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또 한번은 제가 교회 리더와 함께 새 신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리더의 교제가 다 끝나고도 새 신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리더 직함까지 달고서 어떻게 새 신자 양육도 못 할 수 있지?’ 그래서 저는 직접 화제를 넘겨받아 새 신자에게 말했습니다. “방금 자매님이 교제한 내용을 다 이해하셨나요?” 새 신자들은 잇달아 고개를 저으며 잘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침없이 새 신자에게 하나님의 3단계 사역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새 신자들은 듣고서 기뻐하며 잇달아 말했습니다. “이렇게 교제해 주니까 조금 이해가 되네요.” 저를 대하는 새 신자의 태도를 보자 저는 속으로 흐뭇해하며 복음을 전하고 새 신자를 양육하는 데에 있어서 리더도 저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항상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고 남을 얕잡아 보면서 성품이 점점 교만해져 갔고, 크고 작은 사역 모두 저 혼자 마음대로 결정했습니다. 형제자매가 저만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과 상의했더라도 결국에는 제 생각대로 실행해야 하니, 시간을 지체하지 않으려면 제가 직접 결정하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복음 전파, 새 신자 양육에 있어서 그들은 전부 쓸모없고 차라리 제가 직접 양육하는 편이 성과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을 전하는 한편 새 신자를 양육하는 등 많은 사역을 직접 도맡아 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후에 리더는 제가 형제자매를 훈련시키지 않는 등 사람을 육성하지 않고 항상 혼자서 일하는 것을 알고 저를 책망하며 말했습니다. “자매님이 혼자서 모든 일을 다 떠맡고 무슨 일이든 다 직접 하시는데 너무 교만하신 거 아닌가요?” 리더의 책망과 질책을 듣고도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제가 매일 밤낮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복음을 전파하고 새 신자를 양육하는 것은 본분에 책임감이 있어서이고 저의 자질이 좋고 사역 능력이 있어서 본분을 이행하기만 해도 성과가 있기 때문에 조금은 교만해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여전히 제 마음대로 행동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형제자매와 상의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형제자매 중에 어떤 이는 저의 통제를 받아 자신은 안된다고 단정 짓고 소극적인 상태로 지냈고, 어떤 이는 저에게 심하게 의존하며 본분 이행에 책임감을 가지지 않고 저의 안배만 기다리는 등 결국에는 복음 사역과 양육 사역 모두 영향을 받고 말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의 눈에서 갑자기 계속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는데 눈물이 시선을 가리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의사는 눈의 누관이 막혀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저는 수심에 가득 차서 이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갑자기 이런 눈병에 걸린 데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야. 내가 하나님께 어떤 죄를 지은 게 아닐까?’ 저는 그동안 저의 본분 이행의 상태를 반성하기 시작하였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제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추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역을 해서 교회 하나를 잘 이끌면 자기가 남들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항상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퍼뜨린다. “하나님이 왜 저를 중용하실까요? 왜 제 이름을 거론하고, 저와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이 저를 존중하시는 것은 제가 자질도 있고 보통 사람들보다 훌륭하기 때문이죠. 당신들은 하나님이 저에게 잘해 주신다고 질투하는데, 질투할 게 뭐 있나요? 저는 그만큼 사역도 많이 하고, 대가도 많이 치렀는데, 당신네는 왜 그런 모습이 안 보이나요? 하나님이 저에게 좋은 걸 주셔도 질투하면 안 됩니다. 그건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겁니다. 저는 사역도 오랫동안 하고, 고생도 많이 했어요. 그만큼 공로도 있고, 밑천도 있답니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이 저에게 사역자 모임에 참여해서 하나님 교제를 듣게 해 주셨어요. 저는 그런 밑천이 있는데, 당신들은 그런 밑천이 있나요? 첫째, 저는 자질이 뛰어나고 당신들보다 더 추구합니다. 또 당신들보다 헌신도 많이 하죠. 저는 교회 사역을 잘할 수 있는데, 당신들은 그럴 수 있나요?” 이것이 바로 교만이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 사역하지만 그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다. 효과가 좋은 사람도 있고,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고, 또 진리를 구할 줄 알아서 본분 효과도 빨리 향상된다. 이것은 자질이 뛰어난 이유도 있고, 하나님이 예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본분 효과가 떨어지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계속해서 진리를 구하고 노력하면 차츰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진리를 향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하나님도 인정할 것이다. 사역한 효과가 좋든 나쁘든, 그릇된 생각은 품으면 안 된다. ‘나는 하나님과 동등해질 만한 밑천이 있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들을 누릴 만한 밑천, 하나님 칭찬을 받을 밑천이 있고, 다른 사람들을 이끌거나 꾸짖을 밑천이 있어.’라고 생각하지 마라. 밑천이 있다고 말하지 마라.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네가 만약 이런 생각을 품는다면 그건 네가 여전히 위치를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 뜻이고, 사람이 최소한 갖춰야 할 이성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네 교만한 성품을 어떻게 벗어 버리겠느냐? 벗어 버릴 방법이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교만한 본성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내적 상태를 폭로하셨습니다. 저의 모든 행동을 돌아보니 모두 교만한 본성에 지배당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고 새 신자를 양육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우쭐해져서 제 자질이 좋고 사역 능력이 있어서 복음 전도에는 저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은사들을 밑천으로 삼고 교만해져서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협력해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항상 거만하게 굴며 사람을 가르치려 들고 통제하려 했습니다. 자매가 새 신자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도 저는 문제 해결을 위해 그녀를 도와주지 않고 그녀 위에 군림하며 그녀를 가르치려 들려 했습니다. 또 리더와 함께 새 신자를 양육할 때 리더가 교제한 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저는 서둘러 협력해 교제하는 게 아니라 속으로 무시하며 새 신자들 앞에서 일부러 리더를 깎아내리기까지 했습니다. 사역할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도 저는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고 형제자매들과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사역 경험이 있는 제가 일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해 무슨 일이든 스스로 결정하고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며 어떤 사역도 다 혼자 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훈련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을 때도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것은 본분에 책임감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여전히 베테랑이라고 뻐기면서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교만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복음 사역의 책임자인 저는 원래 형제자매가 복음을 전하도록 양성해야 했는데 저는 오히려 그들을 무시하고 깎아내렸습니다. 자신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해서 형제자매가 저의 통제를 받게 되었고, 어떤 이는 저에게 심하게 의존해서 본분 이행에 진심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 등 결국에는 복음 사역이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이 어떻게 본분을 이행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행동은 악을 행하고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그룹 안의 대소사를 모두 제가 나서서 했고, 그래야 본분에 책임감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제가 너무 교만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거만하게 굴며 무슨 일이든 제 마음대로 결정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교만한 성품에 따라 제멋대로 함부로 행동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며 사람들을 무시하고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이런 성품은 마치 천사장과 같지 않습니까? 더 이상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에게 버림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제가 갑자기 이런 눈병에 걸린 것이 하나님의 채찍질과 징계임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환경을 마련하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해서 교만한 성품에 따라 본분을 이행했을 것이고 더 많은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되자 저는 울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교만해서 인간성과 이성이 전혀 없고, 당신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대적하거나 패역하기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회개하고 싶습니다.” 그 후 저는 형제자매와 마음을 털어놓고 제 상태에 대해 교제하였고 자신이 교만한 성품에 따라 사역해서 그들에게 입혔던 상처들을 해부하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과도 했습니다. 이 후 다시 본분을 이행할 때 저는 좀 더 겸손해져서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형제자매와 상의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의 눈병이 나았고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복음 사역의 필요로 인해 교회에서는 저를 다른 지역에 보내 복음을 전하도록 안배했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또 스스로를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복음 전파 실력이 그래도 괜찮나 봐. 아니면 왜 나를 외지로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겠어?’ 당시 저는 2명의 종파 신도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 일이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 미리 그들의 상황과 그들의 주요 관념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전에 겪었던 경험에 따라 그들에게 곧바로 하나님의 3단계 사역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3단계 사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자마자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알고 유난히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듣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고생 끝에 도착한 이곳에서 저는 최대한 빨리 복음 사역을 확장시키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실패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복음 사역을 넓혀가야 할까.’ 저는 속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이번 전도 실패는 한순간의 실수일 거라고 여기며, 저의 오랜 경험에 따라 복음을 전하면 분명 사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할 때마다 잇따라 실패를 맛보게 되자 저는 심히 좌절감을 느꼈고,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 후 저는 교체당했습니다. 복음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생각하자 저는 고통스럽고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 도태되는 게 아닐까?’ 저는 예전에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던 날들이 무척 그리워졌습니다. ‘그때는 좀 힘들고 지치긴 했지만 복음 성과가 있었고 행복했는데 지금은 왜 성과가 안 나오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니 저는 무척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고통 속에서 저는 거듭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구했습니다. “하나님, 이런 상황에 처해졌을 때 제가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할까요? 제가 자신을 알아 갈 수 있도록 저를 깨우치시고 빛 비추어 주세요.”
그렇게 구하는 중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은사와 특기란 사람이 어떤 측면에서 선천적으로 남보다 훌륭하고 뛰어난 것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보다 반응이나 이해력이 빠르거나, 특정 업무 기술을 지니고 있거나, 말주변이 좋거나 하는 것 등이 바로 사람의 은사와 특기이다. 너에게 어떤 측면의 특기와 장점이 있다면, 이러한 은사와 특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만약 네가 너의 특기와 은사를 다른 사람은 대체할 수 없다고, 너의 은사와 특기에 의지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바로 진리 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관점은 옳은 것이냐, 틀린 것이냐? (틀린 것입니다.) 왜 틀렸다고 하는 것이냐? 특기와 은사란 대체 무엇이냐?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고 대해야 하느냐? 사실, 어떤 측면의 은사와 특기가 있든 그것이 진리와 생명이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에게 어떤 측면의 은사와 특기가 있다는 것은 바로 그 측면의 본분 이행에 적합하다는 것이지, 그 사람이 진리를 실행한다는 뜻은 아니고 일 처리에 원칙이 있다는 뜻도 아니다. 예를 들어, 너에게 선천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은사가 있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네가 노래를 잘하는 것이 진리 실행을 의미하겠느냐? 네 노래에 원칙이 있음을 의미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예컨대, 네가 글재주를 타고나 글을 잘 쓴다고 해 보자. 그런데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네가 쓴 글이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너에게 체험 간증이 있음을 의미하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은사와 특기는 진리와는 별개의 것이며, 함께 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은사가 있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은사를 자랑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해 남들을 무시한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다른 사람과 협력하기 싫어하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려고 해 본분 이행 과정에서 수시로 원칙에 위배되고 일의 효율이 무척 떨어지는 결과가 초래된다. 은사가 그를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남을 깔보게 만들어 그는 늘 자신이 남들보다 나으며 자신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쭐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은사 때문에 망쳐진 것 아니겠느냐? 사실이 바로 그렇다. 사람은 은사와 특기가 있으면 교만해지고 독선적으로 변하기가 쉽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항상 은사에 의지해 살아간다면 매우 위험해질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어느 측면의 특기가 있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절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 어떤 측면의 은사와 특기가 있다면, 그 측면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만약 거기서 더 나아가 진리를 깨달아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은사와 특기는 본분 이행 과정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으며, 오로지 은사에 의지해 일한다면, 본분 이행에서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할 것이며, 자칫 잘못하면 도태될 것이다. … 은사와 특기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매우 똑똑해 어떤 일이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은사와 특기가 진리를 의미하지 않으며, 진리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사람이 은사와 상상에 의지해 일할 때, 그의 생각과 관점은 종종 진리에 위배된다. 하지만 그 자신은 이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난 정말 똑똑해. 이 얼마나 현명한 선택이고 영명한 결단이야! 당신들은 나만큼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한다. 항상 나르시시즘과 자아도취의 내적 상태로 살아가니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진리란 무엇인지, 진리 원칙이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기 어렵다. 이러면 진리를 깨닫기 어렵다. 설령 본분을 이행한다 하더라도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가 힘들다. 요컨대, 어떤 은사와 특기를 지니고 있든, 진리를 추구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 후, 저는 재능과 은사가 있다고 해서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며, 진리를 알지 못하고 본분을 이행할 때 원칙을 구하지 않으며 언제나 은사와 재능만 밑천 삼는다면 점점 더 교만하고 자만해질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반성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한 후 저는 줄곧 은사에 기대 살아왔고 성경에 정통하고 전도 경험이 많은 것을 밑천으로 삼았습니다. 결국 저는 점점 교만해졌고 이 사람 저 사람 무시하고 깔보며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리더는 저의 교만함과 자만함을 책망했지만 저는 여전히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은사들을 밑천 삼아 다른 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외지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저는 진리 원칙을 구하기보다는 은사와 경험에 기대어 큰 성과만 거두려고 생각했습니다. 복음 전파가 번번이 실패했지만 저는 여전히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스스로 반성도 하지 않은 채 뻔뻔하게도 자신은 은사와 경험이 있어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교만하고 이성적이지 못했습니다! 저는 바울이 떠올랐습니다. 바울은 천부적인 자질에 똑똑하고, 말주변이 좋으면서 달변가였습니다. 게다가 성경 지식이 해박했고 사역과 설교에 능하며 복음을 전하면 사람을 얻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런 은사들을 밑천 삼고 성품이 점점 교만해졌고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어떤 사도의 밑에도 있지 않으며 수고스럽게 사역해서 면류관과 상으로 바꿀 것이라고 하며, 그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결국에 바울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은사가 있다고 해서 진리 실제가 있는 것은 아니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패괴 성품에 변화가 없다면 결국에는 역시 드러나 도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고 제 문제를 좀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성령의 깨우침을 느낄 수 있느냐? (그렇습니다.) 성령 역사를 느꼈음에도 우쭐해서 자신에게 실제가 있다고 여긴다면,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이냐? (본분 이행에 성과가 생길 경우 하나님께 절반의 공로가 있고, 자신에게도 절반의 공로가 있다고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협력을 무한히 확대 해석하여 역시 자신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고, 자기가 협력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깨우쳐 주실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너를 깨우쳐 주느냐?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깨우쳐 줄 수 없느냐? (깨우쳐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깨우쳐 주든 모두 하나님의 은총이다. 너의 그 조그마한 협력은 무엇이냐? 공로냐, 아니면 본분과 직책이냐? (본분과 직책입니다.) 네가 그것이 본분과 직책임을 인식한다면 그런 마음가짐은 옳다. 그러면 너는 공을 가로채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가 ‘이건 내 공이야. 내가 협력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깨우쳐 주셨을까? 역시 사람의 협력이 있어야 해. 사람의 협력이 주가 되는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틀렸다. 만약 성령의 깨우침이 없고, 너에게 진리 원칙을 교제해 주는 사람도 없다면 네가 어떻게 협력하겠느냐? 너는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모르고, 실행 길도 모를 것이다. 설령 하나님께 순종하고 협력하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지 모를 것인데, 네 협력은 그저 빈말에 불과하지 않겠느냐? 진실한 협력이 없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한다면 네 본분 이행이 합격에 이를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그것은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어떤 문제냐? 사람이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성과를 내고 본분 이행에 합격해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역사하느냐에 달려 있다. 네가 책임을 다하고 본분을 이행했다 해도,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고, 하나님이 너를 깨우쳐 주거나 인도하지 않는다면 너는 길과 방향, 목표를 모를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에 어떤 결과가 생기겠느냐? 한동안 바삐 돌아쳤어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진리 생명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헛수고만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 본분 이행이 합격하고,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이 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사람은 그저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사람의 본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뿐이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네 본분 이행이 성과를 낼 수 있는지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에 달려 있다. 그런 것들이 있어야만 너는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이 준 길과 하나님이 정한 원칙에 따라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다. 사람이 이를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눈이 먼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 원칙>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복음을 전하고 새 신자를 양육해서 성과들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저의 공로와 밑천이 아니라 전부 다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이며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모든 면의 진리 원칙을 교제해 실행할 길과 방향을 갖도록 말씀을 선포해 주시지 않았다면 제가 무엇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깨우침과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없다면 제가 아무리 말솜씨가 좋고 자질이 뛰어나며 성경에 정통하더라도 종교인의 관념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자 저는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가 없으면 바보처럼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복음을 전할 때마다 실패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늘 스스로 본분 이행에 성과가 있는 이유가 저의 자질이 뛰어나고 사역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저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자기 주제도 모른 채 언제나 이런 은사들을 밑천 삼아 자랑하려 했습니다. 저는 정말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나중에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염려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인류에게 공급한다. 그는 마음으로 이런 것들을 가욋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공로가 큰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에게 공급하며 베푼 모든 것이 인류에게 엄청난 공헌을 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방식과 자신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조용하고 묵묵히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공급과 도움을 받았든지 그는 사람에게 공을 요구할 생각이나 행동이 전혀 없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로 인한 것이자 진실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 부분이기도 하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저는 감동을 받았고 하나님의 성품이 너무나 아름답고 선하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두 번 성육신하셔서 많은 사역을 하시고, 많은 말씀을 하시며, 엄청난 굴욕과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에게 아무것도 고백하지 않으셨고, 하나님도 이를 큰 공로라고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교만함과 자만함은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을 묵묵히 행하실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낮춤과 감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그에 비하면 저는 개미보다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본분 이행에 좀 성과가 있다고 자신이 대단해서 마치 엄청나게 큰 공로를 세운 것처럼 모두를 얕잡아 보았습니다. 제가 남을 깎아내리고 가르치려 들 때의 말투와 표정을 생각해 보면 저조차 역겹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마련해 드러내고 저를 책망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교만하고 자만한 본성에 따라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시킬 뿐이었을 것입니다. 저의 악행을 막으시고 회개해 변화할 수 있게 해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교만한 성품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고 구원해 주세요.”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저의 영적 상태는 어느 정도 호전되었고 리더는 또 저에게 새 신자 양육을 맡도록 안배했습니다. 한번은, 한 자매가 새 신자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어떻게 해결할지 몰라 저를 찾아와 구하며 교제한 적이 있었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후 그녀가 문제의 근본을 캐치하지 못하고 교제했다는 것을 알고 저는 속으로 또 무시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매도 참 자질이 너무 부족하네. 새 신자의 문제도 꿰뚫어 보지 못하다니. 모두 자매처럼 새 신자를 양육하면 이건 사역에 지장을 주는 거 아닌가?’ 이때 저는 또다시 교만한 성품이 드러난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제가 스스로를 저버릴 수 있도록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업무를 아는 사람은 거드름을 피우거나 자격을 내세우지 말고, 초보자에게 기술과 업무를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어 모두 다 같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설령 네 업무가 가장 뛰어나고 기술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그 역시 하나님이 네게 베풀어 준 은사이므로, 너는 본분 이행에 네 특기를 발휘해야 한다. 네 기술과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혼자서는 사역을 해낼 수 없다. 모든 이가 기술과 업무를 습득한다면 본분 이행에 더 큰 효과를 거둘 것이다. 뛰어난 사람도 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이들이 도와서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도 교만해서는 안 되고, 남들과 의논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해서도 안 된다. 모두가 육을 저버리고 자기 생각과 관점을 내려놓은 뒤 모든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해야 한다.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들을 도와주어 다른 사람들도 기술과 업무를 익힐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본분 이행에 이롭다. …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위해 기꺼이 충성을 다하고 싶다면, 자신의 특기와 기술을 바쳐 다른 사람들도 배우고 습득하여 본분을 더 잘 이행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인성이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사랑받고 축복받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실행할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이제 막 새 신자 양육 훈련을 시작한 자매가 문제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정상입니다. 저는 그녀가 새 신자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줘야 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매와 교제하며 함께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나중에 새 신자의 문제가 해결되자 복음까지 전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저와 자매는 모두 무척 신이 났었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와 함께 협력해 본분을 이행할 때 저는 더욱 겸손해졌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새 신자를 양육할 때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형제자매가 있으면 저는 더 이상 그들을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지 않고 함께 교제하며 원칙을 구했습니다. 형제자매가 다른 제안을 내놓을 때 저는 의식적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전처럼 거만하게 굴며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실천하자 저는 마음이 무척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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