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돈을 위해 살지 않게 된 나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주변의 이웃들과 친척들한테 무시를 많이 당했고, 이웃집 애도 저랑 놀지 않았어요. 잊히지 않는 게, 이웃집 애랑 놀고 싶은 마음에 신나서 찾아갔는데, 절 보더니 갑자기 대문을 닫아 버리는 거예요. 제 어린 시절 추억 속에 그 일은 정말 너무 자존심 상하고 큰 상처가 되는 일이었어요. 진학한 후에도 동창들이나 선생님도 절 무시했죠. 다른 친구들은 저랑 다르게 좋은 책가방에, 필통에, 예쁜 옷을 입고 다녔어요. 그러니까 우리 집도 그렇게 돈이 많았으면 무시당하지 않았을 터라는 생각에 돈 많은 집이 부러웠죠. 거기다 제가 10살 때 교통사고까지 당하면서 빚까지 지게 됐어요. 아버지가 친척들한테 가서 돈을 빌렸는데, 우리 집이 갚을 형편이 못 된다고 생각해서 다들 빌려주지 않았어요. 그 뒤로 아버지는 툭하면 한숨 쉬면서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가 돈이 없어서 동네 사람들이나 친척들에게 무시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넌 나중에 커서 아빠의 수모를 갚아 줘야 해. 사람은 돈이 있어야 무시를 안 당한단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의 말이 저한테는 인상 깊게 들렸고, 어른이 되면 꼭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 거고, 가난이라는 딱지를 떼 버리고 우릴 무시하던 사람들한테 제대로 보여 주겠다고 다짐했어요.
96년도에 아버지가 운송 중개 사업을 하셨는데, 너무 잘 된 거예요. 몇 년 만에 빚도 다 갚고 화물차도 사고, 전화기와 휴대폰까지 다 갖추게 됐어요. 집에 돈이 생기니까 우리를 무시했던 친척들이나 이웃들도 막 찾아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딜 가든 다들 인정해 주니까 어깨에 힘도 들어갔어요. 그러니까 ‘이 사회는 역시 돈이구나, 돈이 있어야 무시를 안 당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더 확신이 들었어요. 저도 보고 자란 게 있으니까 조금씩 사업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99년도에 사업에 모든 걸 쏟아부으려고 할 때, 하나님의 말세 구원이 제게 다가왔죠. 처음엔 열의가 넘쳤어요. 아직 하나님 앞에 나아온 사람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복음 전도 행렬에 합류했죠. 그렇게 자주 복음 전하러 다니다 보니까 집 사업에 신경을 못 쓰게 됐어요. 그러니까 집에서 “어린 나이에 무슨 하나님을 믿는다고, 앞으로 계속 그렇게 할 거면 용돈 다 끊을 거야.”라고 한 소리 했어요. 그러니까 ‘돈이 없으면 어렸을 때처럼 차별당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결국 전 그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본분을 내려놨어요. 그리고 며칠에 한 번씩 예배에만 참석하는 정도였죠. 그러다 사업에 열중하다 보니까 하나님에 대한 마음도 멀어졌어요. 나중에 아버지가 집의 사업을 저한테 맡겼어요. 20대 초반에 자기 사업이라는 게 생기니 너무 기뻤어요. 저는 돈을 많이 버는 대단한 여자가 되기 위해 매일 머리를 쥐어짜면서 물품 공급처랑 연락하고, 밤낮 구분 없이 계속 통화를 했어요. 정말 물 마실 틈도 없었고 목이 잠겨도 쉬지 않았어요. 그렇게 노력한 덕에 거의 10만 위안 정도를 모으게 됐어요.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고생은 했지만 지갑이 두꺼워지는 걸 보니까 고생한 보람이 있었어요.
나중에 사업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니까 모두 좋은 승용차를 타고, 좋은 아파트에 살더라고요. 그런 돈 있는 사람들하고 비교하니까 여전히 작은 상가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제가 초라해 보였어요. 그래서 스스로 “이렇게는 안 돼. 나도 좋은 차 타고, 좋은 아파트 살고, 내 회사를 차리는 날까지 계속 노력하자.”라고 다독였어요. 전 하루빨리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더 바쁘게 보냈어요. 그때 한 몇 년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피로에 절어 있었죠. 어느새 신경성 두통을 앓게 됐는데, 머리가 아플 때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너무 아팠어요. 게다가 컴퓨터랑 휴대폰 전자파까지 계속 마주하니까 자주 울렁거리고 토하곤 했어요. 전 두통을 어떻게든 완화해 본다고 손톱으로 두피를 세게 찌르거나 머리를 벽에 막 쪼았어요. 그래도 두통은 전혀 줄지 않았어요. 참다못해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지갑에 돈이 차는 걸 볼 때면 돈 버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아니다. 지금처럼 돈 벌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은데, 아직 젊을 때, 이 기회를 잘 잡아야지.’라는 생각으로 병원에 안 갔어요. 몇 년이 지나니까 차도 생기도 집도 생겼고, 컨테이너 운송 사업자도 냈어요. 게다가 사업 때문에 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어떤 사장들은 젊은 나이에 이렇게 자기 사업을 하나 크게 한다는 건 참 대단하다는 식으로 봐 주곤 했어요. 또 고객들도 사장님이라 불러 주고, 친구들도 능력녀라고 칭찬해 줬어요. 또 매년 설에 우리 가족이 시골집에 내려갈 때면 이웃들도 찾아와 시부모님한테 능력 있는 며느리를 만나서 정말 복 있다고 칭찬했어요. 그럴 때마다 뭔가 으쓱해지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고민만 하다 보니까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선 마음이 점점 더 식어갔어요. 어떤 때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면 자매가 절 찾아왔지만 저는 자매의 교제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가끔 예배에 참석해도 마음은 계속 사업에만 가 있었고요. 근데 그 시점에서는 매일 정신없이 일을 해도 제 생각처럼 일이 잘 안 풀리는 거예요. 교통사고도 자주 일어나고 어떤 고객들은 운송비도 제대로 물어 주지 않았고요. 몇 년 사이에 수십만 위안 넘게 손해 봤어요. 전 손해 본 돈을 다 벌어 오기 위해서 전보다 에너지를 더 쏟아부었어요. 매일 그렇게 하니까 몸에 과부하가 걸리고 두통은 더 심해졌어요. 정말 하루하루가 죽기보다 못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더구나 돈이 생긴 뒤로부터 남편도 외박이 잦았고, 도박판에도 뛰어들면서 돈을 많이 날렸어요. 그러니까 싸움도 잦았고 눈물로 지내는 날도 많아 졌어요.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리고 너무 막막하고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원하던 꿈, 차, 집, 회사를 다 가졌는데도 왜 행복하지 않을까? 왜 그럴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괴롭고 막막할 때, 사무실에 뒀던 말씀 책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전능자의 탄식> 이 말씀을 찾아 읽었어요. 조용히 사무실에서 혼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쭉 읽어 내려갔어요. 그러다 마지막 단락을 읽는데, 너무 마음에 와닿았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능자의 생명 공급에서 벗어난 인류는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면서 또 죽음을 두려워한다. 인류는 의지하고 도움받을 데가 없음에도 여전히 눈을 감고 싶어 하지 않고, 영혼의 지각이 없는 육을 간신히 지탱하며 이 세상에서 되는대로 살아간다. 너는 이렇게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살아가고, 그 역시 그렇게 아무런 목표 없이 살아간다. ‘오직 전설 속의 거룩한 자만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그의 강림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다’는 이 신념은 무감각한 사람에게서는 쉽사리 실현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은 계속 그렇게 바라고 있다. 전능자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면서도 전혀 지각이 없는 사람을 혐오한다.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야 사람에게서 오는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찾으려 한다. 너의 마음과 영을 찾아 네게 물과 음식을 공급함으로써 너를 깨우고, 네가 더 이상 목마름과 굶주림을 겪지 않게 하려 한다. 더없이 피곤할 때도, 이 세상이 처량하다고 조금 느껴질 때도 방황하거나 울지 마라. 전능하신 하나님, 지키며 바라보는 그이가 네가 언제 돌아오든 너를 안아 줄 것이다. 그는 너의 곁을 지키며 네가 돌아서기를 기다리고, 문득 기억을 되찾을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네가 하나님에게서 나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방향을 잃고 길에서 쓰러졌다는 것, 언제부터인가 네게 ‘아버지’가 생겼다는 것, 또 전능자가 그곳에서 네가 돌아오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것을 깨닫는 그날을 말이다. 그는 답이 없는 응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영을 위해 그가 곁을 지켜 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이 지킴은 무기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끝이 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너는 오늘날 너의 마음과 영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전능자의 탄식> 중에서) ‘답이 없는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잠들어 있던 제 마음이 깨어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응답이 없는 답을 기다리는 일을 할 수 있는 분이 누구일까? 하나님밖에 없었어요. 사람의 곁을 묵묵히 기다리는 분은 하나님뿐이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상처받은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저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어요. 그 순간 저는 하나님과 너무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어요.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됐지만 진심을 다해 집중해서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맨날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사람들한테 존경받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지요. 저는 매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업을 하면서 풍부한 물질과 사람들의 우러름을 사기는 했지만 남은 건 남편의 배신과 아픈 몸뿐이고, 허무하고 고통스럽고 막막하기만 할 뿐 행복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저의 모든 고통은 제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하심을 멀리하고 피했기 때문이었어요. 10년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전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말씀도 제대로 먹고 마시지 않았고 제 본분도 다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패역한 저를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제가 마음을 다시 돌릴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계셨던 거예요. 그래서 제가 방황하고 막막해할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상처받은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어요. 또 제가 예배도 제대로 참석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멀리할 때는 자매를 보내 주시어 계속 저를 도와주셨어요. 근데 전 감사보다는 거부감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계속 밀어냈거든요. 그 얼마나 양심 없고 이성도 없는 행동이에요. 깊은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와서 울면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돈에만 빠져 있던 제가 너무 밉습니다. 돈이면 다 될 줄 알았습니다. 근데 돈과 물질을 얻은 후에도 공허하고 고통스럽고 막막한 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잘못된 길을 택했습니다. 앞으로 진리를 잘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이 길을 처음부터 다시 걷겠습니다.” 기도하고 나니까 바다 한 가운데 떠다니던 외로운 쪽배가 아늑한 항구를 찾은 것처럼, 탕자가 다시 엄마의 품에 돌아간 것처럼 마음이 너무 편하고 처음 느껴 보는 든든함이 찾아왔어요. 그 뒤로는 예배 시간에 맞춰 회사 일을 미리 안배해 놨어요. 그러니 점차 예배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평소에도 시간을 내서 말씀을 봤고 교회에서 본분도 이행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가끔 사업과 본분에서 시간 충돌이 생기면 자연히 본분을 뒷전에 두게 되더라고요. 물론 그것 때문에 마음이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어요. 게다가 저도 ‘언제면 사업에 신경 쓰지 않고 본분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고요. 더구나 많은 형제자매들이 가정과 직업을 내려놓고 복음에 매진하는 걸 볼 때, 느끼는 게 많았어요. 다 똑같은 사람인데, 형제자매들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걸 1순위에 두는데 난 왜 못할까 싶었어요. 저도 온전히 본분을 이행하는 데 시간을 바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계속 저도 모든 걸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도록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죠.
2011년 여름, 두통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못 버티겠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의사가 저보고 “환자분 두통은 지금 하는 일이랑 관계가 큰 것 같네요. 증상을 완화하고 싶으면 지금 하시는 일을 그만두는 걸 추천합니다. 안 그럼 점점 더 심해질 거예요.”라고 했어요. 전 의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 이번 기회에 가족들한테 이 사업을 더는 못 할 것 같다고 말해야겠다 생각했죠. 근데, 10년 동안 공을 들여서 세운 회사이고, 마침 그해에 또 사업이 너무 잘되니까 결단이 안 서는 거예요. 하루에 5천 위안을 벌 때도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여기서 포기하면 그동안 쌓아온 고객들을 다 다른 집에 뺏기는 꼴이 되는 게 싫었죠. 전 결국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아픔을 참아 가면서 몇 달을 더 했어요. 물론 돈은 좀 벌었지만 기쁘지는 않더라고요. 하나님 앞에서 사업을 내려놓고 헌신하겠다고 고백해 놓고 여전히 돈을 꽉 쥐고 있는 저를 보며 마음에 참소를 받았어요. 그래서 다시 사업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지금 너희 각자 앞에 돈을 얼마 놓아두고서 너희가 어떤 선택을 해도 정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너희 가운데 많은 자가 진리를 버리고 돈을 선택할 것이다. 그보다 좀 나은 자는 돈을 버리고 마지못해 진리를 선택할 것이고, 그 두 부류 중간에 있는 자는 한 손으로는 돈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진리를 붙들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의 참모습이 어떠할지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느냐? 자신이 충성스럽게 대하는 모든 것과 진리 사이에서 너희는 모두 이런 선택을 할 것이고, 너희 태도 또한 이럴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많은 자가 옳고 그름 사이에서 망설이지 않았느냐? 가정과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화목과 파탄, 부와 빈곤, 지위와 평범함, 지지받는 것과 버림받는 것과 같은 모든 정(正)과 반(反), 흑과 백의 싸움에서 너희가 무엇을 선택하였는지 너희 스스로 모를 리 없지 않으냐? 가정의 화목과 파탄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하는 데에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고, 금전과 본분 사이에서 또 전자를 선택했는데, 이를 뉘우치고 바른길로 돌아서려는 의지조차 없었다. 사치와 빈곤 사이에서도 전자를, 자녀, 아내, 남편과 나 사이에서도 전자를, 관념과 진리 사이에서도 전자를 선택하였다. 나는 너희의 온갖 악행에 너무나 놀랐고, 너희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었다.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누그러지지 않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여 얻은 결과가 나를 포기하고 속수무책으로 구는 너희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모든 날들을 이미 너희 앞에 펼쳐 보였기 때문에 너희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너희는 지금도 어둡고 사악한 것을 추구하며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희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준다면 너희는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그래도 전자를 택하겠느냐? 나에게 여전히 실망과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 주겠느냐? 너희의 따뜻한 마음은 여전히 그렇게도 작을까? 어떻게 해야 나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느냐? 지금 이 순간, 너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느냐? 내 말에 순종하는 것이냐, 아니면 성가셔하는 것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 사람이냐?>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전 다시 성찰해 봤어요. 하나님 앞에서 몇 번이고 사업을 접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겠다고 기도했었지만 몇천 위안의 수입 앞에서 저는 또다시 손 놓기 아쉬워했어요. 그게 하나님을 속이는 거잖아요? 돌아보면 그동안 전 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다 사업에 쏟았거든요. 머릿속은 온통 돈을 더 많이 벌 궁리뿐이었지 제가 이행해야 할 본분은 한 번도 소중히 여긴 적이 없었죠. 더구나 본분과 제 사업이 충돌할 때면 전 늘 제 사업을 먼저 택했고 본분은 뒷전이었어요. 사실, 그동안 출세해 보겠다고 돈의 노예로 전락해서 매일 공허함과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고 점점 더 타락해 버렸죠. 제가 번번이 하나님을 거역했지만 하나님은 저를 향한 구원을 놓지 않으셨어요. 제가 사업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지 못할 때엔 형제자매들을 통해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셨고, 남편의 배신과 사업의 어려움, 질병의 고통으로 막막함을 느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저를 이끌어 주시면서 빛을 향하고 진리를 추구해야겠다는 마음을 심어 주셨고요. 또 제가 사업을 내려놓지 못할 때는 의사를 통해 권고를 주셨고요. 하나님은 언제나 제 생명을 위해 애타하셨고 저에게 큰 심혈을 쏟으셨는데, 전 맨날 돈을 더 많이 벌 생각만 하고 본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말 이기적이었죠. 근데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으니까 전 당연히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나라의 복음 확장을 위해 헌신하면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게 맞잖아요. 그리고 제가 결단을 내리고 선택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겪으면서 돈을 좇았을 때의 위험과 결과를 더 분명히 알게 됐어요.
2011년 겨울이었어요. 한밤에 누군가 남편한테 전화 걸어서 사람 잘못 건드렸으니 남편의 팔다리를 다 잘라 버릴 거니까 무사하고 싶으면 다음 날 10만 위안 준비하라는 협박을 했어요. 그 순간 심장이 요동쳤어요. TV에서나 보던 걸 제가 직접 겪을 줄은 몰랐거든요. 정말 요즘 세상이 이렇게 험하고 어지럽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일이 있으니 순간 이 사업 계속하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보면 우리 집도 돈이 들어오면서부터 조용할 날이 없었는데, 이제는 목숨을 위협하는 일까지 당하게 된 거잖아요. 돈이 저한테 행복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진 못했어요. 그 후로도 저희 집에 물품 배송하던 화물차 기사님들이 차 사고로 여럿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정말 너무 놀라서 믿기 어려울 정도였죠. 젊은 사람들은 20대이고 나이가 많은 사람도 40대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그중에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돈 아낀다고 기사도 쓰지 않고 두 사람이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돈을 벌었는데, 결국 둘 다 졸음운전 사고로 사망했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글쎄 돈은 좀 벌었지만 목숨을 잃었으니까 그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 돌아보면 그동안 저도 남들보다 위에 있고 싶어서 밤낮없이 기계처럼 일했거든요. 돈은 조금 모았고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부러움도 샀지만 저는 어떤 즐거움이나 행복감을 느끼기보단 갈수록 공허함과 괴로움만 쌓여갔어요. 돈을 번다고 온몸에 병이 들었는데, 더구나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벽에 머리를 박을 정도로 아팠지만 돈에 대한 집착은 놓지 못했거든요. 그 정도로 저는 돈에 꽁꽁 묶여 있었죠. 돈은 정말 살수의 칼 같은 존재였어요. 근데 제가 여전히 죽어라 돈을 번다면 언젠가는 돈 때문에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는 내 목숨을 돈을 위해 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걸 몰라서 여전히 돈이라는 소용돌이에 빠져 있고, 인생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어떤 삶이 의미 있는 삶인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빨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 사탄의 패괴와 해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세 복음 전파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가족들에게 말했죠.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서 앞으로는 사업을 못 할 것 같아요.” 가족들도 맞다면서 잘 쉬면서 치료하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니까 너무 감사하고 기뻤어요.
2012년 설날을 보내고 사업을 전적으로 남편한테 맡겼어요. 그리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 신경 쓰니까 오히려 마음이 너무 편했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좋아졌어요. 더 놀라운 건, 저의 두통은 어떤 치료를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기적처럼 나은 거예요. 정말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거잖아요. 질병의 고통과 정신적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것에 너무 감격했고 본분을 잘 이행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죠. 제 몸 상태가 좀 좋아지니까 남편이 서서히 압박을 해 왔어요. 다시 사업을 시작하라고요. 근데 전 사업은 다시 하지 않겠다고 확고하게 말했죠. 그러니까 이혼으로 협박하면서 계속 하나님 믿고 그러면 생활비도 안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남편의 무정함에 화가 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죠. 그리고 어렸을 때 무시당했던 광경들이 떠오르면서 다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강렬해졌어요. 그러니 마음이 더없이 연약해졌죠.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풍요롭게 살고 남들이 떠받들어 주는 생활을 할 수 있고, 전업으로 본분에 매진하면 가진 모든 걸 잃게 되거든요. 너무 괴로워 눈물이 났어요. 하나는 제 본분이고, 하나는 오랫동안 일궈 온 사업인데, 선택의 기로에 놓였죠. 그래서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지금 마음이 연약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본분 이행을 고수하면 저의 사업과 가정을 잃게 되고, 가정과 사업을 택하고 하나님과 본분을 포기한다면 저는 양심도 이성도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셨기에 참된 인생길을 걷게 됐습니다. 과거엔 진리를 제대로 추구하지 않았고 당신께 헌신하지도 않았습니다. 근데 더 이상 하나님의 고심을 외면하고 싶지 않습니다. 진리를 잘 추구하면서 당신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 제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너는 진리를 위해 고통받아야 하고, 진리를 위해 헌신해야 하며, 진리를 위해 굴욕을 참아야 하고, 더 많고 많은 진리를 얻기 위해 더 많고 많은 고난을 참아야 한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너는 가정의 화목을 누리기 위해 진리를 버리지 말고, 일시적인 향락을 위해 일생의 존엄과 인격을 잃지 마라. 마땅히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더 의미 있는 인생길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속되게 살며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다면 인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아니냐? 네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 하나를 위해 너는 모든 육적 향락을 포기해야 하며, 약간의 향락을 위해 모든 진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인격도 없고 존엄성도 없고 살아갈 의의도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이 말씀을 보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앞으로 더는 그런 속된 삶을 살지 말고 진리를 잘 추구하라고 당부하시는 것 같았어요. 예전엔 말씀도 안 보고 진리도 추구하지 않으면서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사업에 쏟아부으면서 허송세월했잖아요. 이제는 아무리 가족들이 반대해도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진리 추구의 좋은 기회는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남편한테 말했죠. “지금까지 돈 버느라 온몸에 병이 들었는데, 하나님을 안 믿었으면 난 벌써 죽었을 거예요. 지금 난 인생의 바른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내가 이 길을 택한 이상 끝까지 갈 거예요. 당신은 하나님을 안 믿겠지만 그렇다고 내 자유까지 간섭하지는 마세요.” 남편은 저를 말릴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 뒤로는 간섭하지 않았어요. 그 선택을 하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졌죠. 그 뒤로 저는 전 시간을 본분에 투입했어요.
그 뒤로 종종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지인들을 만나게 되면 조금 상실감이 들더라고요. 제가 사업할 때 차를 몰고 다니면 다들 저를 대단하게 봤었는데, 지금은 전기 스쿠터나 끌고 다니고 있고, 간혹 예전의 지인이나 고객 중에는 저를 보고 인사도 안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어쨌든 아는 사람들의 시선이 예전 같지 않고 다들 차가워졌죠. 저는 과거의 후광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친정의 잔소리도 듣게 됐어요. “10년 넘게 고생하면서 일군 사업을 그렇게 다른 사람한테 넘기는 게 어디에 있니? 네가 사업 안 하면 앞으로 누가 돈을 주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말 멍청하네.” 이런 공격적이고 시험적인 말들이 자꾸 저를 방해했어요. 한동안은 정말 정신이 없고 기분이 다운돼 있었어요. ‘계속 사업을 했더라면 주변 사람들이 날 높이 봤을 텐데. 이제 사업도 다 접었는데,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 저도 모르게 다시 사탄의 시험에 들면서 어느새 저의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깊은 밤 잠이 오지 않아 계속 뒤척일 때면 깊이 생각해 봤어요. ‘왜 나는 매번 돈과 명예, 지위에 관련된 시험이 닥치면 자꾸 휘말릴까?’ 저는 그에 관한 답을 찾고 싶었어요. 그러다 이 말씀을 보게 됐죠.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라는 말은 사탄의 철학으로, 인류에게서, 그리고 모든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주입되어 자리 잡고 있으므로 풍조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도 실생활에서 이 말을 접했을 때 차츰 묵인하게 되고 이 말이 사실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과정 아니겠느냐? … 사탄은 바로 돈으로 사람을 유혹하여 사람이 돈을 숭상하고 물욕적인 것을 숭상하도록 패괴시킨 것이다. 사람이 돈을 숭상하는 것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 너희는 돈 없이는 이 세상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질수록 높은 지위를 누리고 존귀해진다. 기를 펴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과 달리 부자는 높은 지위를 누리고 거만을 떨며 큰소리를 치면서 오만 방자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 말과 이런 풍조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겠느냐? 많은 사람이 돈을 위해 어떠한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지 않겠느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존엄성과 인격을 잃게 되지 않겠느냐? 수많은 사람이 돈 때문에 본분을 이행할 기회와 하나님을 따를 기회를 놓치지 않겠느냐? 진리를 얻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치게 되는데, 이는 사람에게 가장 큰 손해 아니겠느냐? 사탄은 이런 방식, 이런 말로 사람을 이 정도로 패괴시켰다. 사탄의 속셈이 음흉하지 않으냐? 이는 아주 악랄한 수법이 아니더냐? 이런 말이 유행할 때 처음에는 수긍하지 못하던 네가 이를 진리로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너라는 사람의 마음은 사탄에게 철저히 빼앗겼다. 그래서 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말대로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제가 돈과 명예의 사슬을 끊어 내지 못하는 근원을 찾게 됐어요. 돌아보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주 했던 말이 있어요. “우리가 못 살아서 그러니까 넌 나중에 돈 많이 벌어라. 그래서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 돼야 한다. 우리가 돈이 있어야 무시를 안 당한단다.” 아버지의 이 말은 제 기억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어요. 여태까지 저는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사탄의 독소에 의존해 살면서 돈이 있어야 어깨를 펴고, 무시를 안 당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매일 돈 버는 기계처럼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했죠. 힘들고 고단해도 쉬지 않고, 아파도 손님 하나를 놓칠까 봐 병원에도 가지 않으면서 오직 돈만 바라봤던 거예요. 또 사업과 예배 시간이 충돌이 생기면 저는 사업을 먼저 챙긴 후에 예배 장소로 갔어요. 단 한 번도 진리 추구와 본분을 첫 자리에 둔 적이 없었고, 바쁘면 아예 예배에 가지 않기도 했었죠. 돈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고, 갈수록 점점 더 탐욕스러워졌고 타락으로 향했어요. 다행히 하나님의 폭로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탄이 그런 독소로 사람을 해치는 영악한 마음을 알게 됐습니다. 사탄은 돈과 명예를 좇고 싶어 하는 사람의 욕심을 이용해 사람을 해치고 집어삼키고 있었죠. 정말 하나님께서 사탄의 그런 영악한 속셈을 폭로하지 않으셨으면 전 사탄의 간계를 간파하지 못한 채, 여전히 돈이라는 소용돌이에 빠져 목숨을 내주고 있었겠죠. 이것을 겪고 나서 저는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아무리 좋은 물질을 누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떠받들려도 마음의 허전함과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고, 삶의 가치와 의미는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걸 피부로 느꼈어요. 근데 코앞의 이익을 포기하지 못해 돈을 붙잡는다면 결국 저는 또다시 돈 때문에 죽게 되는 거잖아요. 이번 생에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복을 받았고, 더더욱 창조주가 친히 말씀하신 음성을 듣게 되고, 피조물의 본분까지 이행할 수 있게 됐잖아요. 이건 제 생에 가장 값지고 가장 의미 있는 일인데, 물질적 누림과 주변 사람들의 우러름을 위해 진리를 포기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게 제가 추구해야 할 목표잖아요. 안 그래도 복음이 크게 확장되는 시기인데, 전 피조물로서 당연히 제 책임과 본분을 다해야 하는 게 맞죠.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며 사는 삶이 진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거고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까 더는 돈에 영향받지 않게 됐어요. 그리고 다시 친정에 방문했을 때에도 제가 사업하지 않는 것으로 뭐라 하지 않고 오히려 생활에 보태라고 돈도 쥐어 주더라고요. 저는 그게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이라는 걸 깊이 느끼면서 너무 감사했어요.
지금까지 제가 걸어 온 걸 돌아보면,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끌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전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라는 사탄의 독소에 꽁꽁 매여서 사업을 포기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날이 없었을 거예요. 저는 돈과 명예, 지위, 자동차, 집 등등 모든 물질적인 것들은 공허한 것이고, 오직 진리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게 진정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딱 맞더라고요. 『사람이 세상에서 사업을 하면 머릿속으로는 온통 세상의 흐름, 명리, 육적 향락을 추구하는 일들만 생각하게 된다. 이 말의 숨은 뜻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너의 에너지, 시간, 청춘이 모두 이런 것들에 의해 점유되고 소모된다는 뜻이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결국 무엇을 얻겠느냐? 명리를 얻는다고 해도 공허할 것이다. 그럼 삶의 방식을 바꾸면 어떻겠느냐? 너의 시간과 에너지, 생각이 진리와 원칙에 점유되어 있다면, 네가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할지,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갈지 등 긍정적인 사물들만 생각한다면, 너의 에너지와 시간을 모두 이런 긍정적인 사물들을 위해 쓴다면 너는 다른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너는 가장 실속 있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갈지, 어떻게 처신할지, 어떻게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마주할지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마주할지 알게 되면 너는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게 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자연스럽게 순종할 줄 알게 되면 너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이는 좋은 일 아니겠느냐? 어쩌면 너는 알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살아가는 과정에서, 네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원칙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너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하게 되고, 너는 너도 모르게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신뢰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는 좋은 일 아니겠느냐?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에너지와 시간, 세월을 쏟으면 결국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진리 추구의 가치와 의미를 한층 더 깊이 알게 됐어요. 물론 지금은 예전처럼 풍족하게 살지 못하고, 예전처럼 화려하게 입고 다니는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공급받고 있거든요. 이건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못 사는 거잖아요. 지금까지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돈을 위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면서 본분 이행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근데 계속 하나님은 제 곁을 지켜 주시면서 제가 돌아서기를 기다려 주시고 저에 대한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물론 제가 사업을 정리한 후에도 하나님은 제가 어데 가서 굶거나 입을 게 없어 떨게 하지도 않으셨고, 정말 섬세하게 필요한 걸 채워 주셨어요. 정말 하나님 구원의 은혜는 헤아릴 수 없고, 뭐로 다 보답할 수 없죠. 그래서 이제 하나님을 따라온 선택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저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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