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의 결함을 담담하게 대할 수 있게 되다

2024.10.05

저는 어려서부터 말을 더듬었어요. 평소에는 괜찮은데, 일단 사람이 많으면 긴장하면서 말을 더듬게 되더라고요. 가족들은 제가 말이 어눌하니까 누가 말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을 조금 천천히 하면 안 되냐고 했죠. 그 말에 저는 자존심이 상해서 그 뒤로는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학교에 가서도 쭉 그랬어요. 선생님이 질문을 하실 때면 긴장한 탓에 답을 할 수 있는 것도 말하지 못하고, 말을 더 심하게 더듬었어요. 그러니 친구들은 다 제 말투를 따라했어요. 중학교 시절에 반장을 한 적이 있어요. 한번은 선생님이 들어오시길래 “선생님께 인사.” 이걸 외치는데, 말을 더듬었어요. 그러자 선생님과 학생들이 박장대소했죠.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어요. 저는 열등감 때문에 거의 외출도 잘 하지 않고 말도 잘 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믿고 나서는 제가 말이 어눌해서 교제를 잘 안 하니까 형제자매들이 응원해 주더라고요. “말이 어눌한 건 괜찮아요. 형제자매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조금 천천히 말을 하시면 돼요.”라고 말이죠. 형제자매들의 격려하에 저는 조금씩 교제하는 훈련을 했어요. 점차 형제자매들이랑도 친해지니까 말을 해도 크게 긴장하지 않았어요. 그때 정말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자유함과 해방감을 느꼈어요.

그러다 예배 중에 형제자매들이 자주 “방금 뭐라고 했죠? 제대로 이해 못했으니 다시 얘기해 줄래요?”라고 했었는데, 한두 번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근데 자주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다 큰 사람이 아직도 말을 제대로 못하고 어눌하다고 무시할까 봐 겁이 났죠. 그러니까 교제할 때면 너무 긴장했고, 그 결과 말을 더 심하게 더듬었죠. 너무 창피했어요. 형제자매들이 저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폐물, 쓰레기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됐어요. 그러니까 그다음 예배 때부터는 다시 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말이 잘 전달이 안 돼 형제자매들이 못 알아들을까 봐 걱정됐거든요. 한번은 예배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나서 제가 깨달은 걸 교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었는데, 저는 제가 말이 어눌하다는 생각에 목구멍까지 차 올랐던 말을 다시 삼켰어요. 전 제가 별종으로 느껴졌어요. 형제자매들은 말을 하면 발음이 정확한데, 저는 그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을 과연 원하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점차적으로 예배 시간에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어요. 전에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 빛 비춤이 조금 있었는데, 이제는 그에 관해 교제도 못하겠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배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고, 예배 시간에 얻는 것도 없고 즐겁지도 않았어요. 매번 예배 시간이 저한테는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또 예배 시간에 교제를 나누지 않을 수 있으면 최대한 교제를 하지 않으려고 했고, 도저히 피할 수 없으면 마지못해 두어 마디 했죠. 근데 마음은 너무 답답하고 괴로웠어요.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이런 원망과 오해도 있었어요. ‘왜 다른 사람들은 발음이 정확하고 유창한데, 난 유창하기는커녕 버벅대는 걸까? 어떻게 하면 나도 다른 형제자매들처럼 유창하게 말을 해서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중에 교회에서 선거가 있었는데, 형제자매들이 저를 리더로 뽑은 거예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리더를 맡으면, 사람을 더 많이 만나야 할 텐데, 그럼 내가 말 더듬는 결함이 있다는 게 더 많이 알려질 거잖아? 아니야. 그건 안 되지, 더는 창피당할 수 없어.’ 이런 생각에 전 그 본분을 거절했어요. 그러다 자매님이 저랑 교제를 나눈 뒤에 마지못해 대답은 했죠. 하지만 말을 더듬었던 탓에 전 제가 다른 사람보다 한참 부족하다고 느끼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어요. 매일 소금 먹은 푸성귀처럼 예배 시간에도 기운이 없었고, 교제도 나누려고 하지 않았어요. 가끔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전 해결책을 알아도 말을 더듬으면 다들 저를 무시하게 될까 봐 교제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저 문제점을 협력하는 자매한테 알려 주기만 할 뿐 자매가 나서서 해결하게 뒀죠. 제가 예배 때 계속 교제를 안 하니까 어느 자매가 이유를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전 제가 말을 더듬는 것 때문에 열등감에 빠져 있는 상태를 말했어요. 그랬더니 자매가 이렇게 동기부여해 줬어요. “사람은 다 결함이 있어요. 근데 그게 진리를 추구하는 데는 영향을 주지 않아요. 자매가 말을 더듬는 이유는 긴장해서 그런 거잖아요. 말을 할 때,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님께 많이 의지하면서 속도를 조금만 줄여 봐요. 그러면 형제자매들도 잘 알아들을 거예요.” 자매님이 그렇게 말해 주니까 위안이 되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자매를 통해 저를 도와주시니 더는 말을 더듬는 것 때문에 소극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저는 내적 상태를 되돌리고 저의 결함을 바르게 대하기로 했어요.

그 후에 다른 자매도 교제를 해 줬어요. 그제야 제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긴장하는 원인은 제가 교제를 잘 못한다는 얘기를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게 다 체면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한 탓이죠. 그래서 제 상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어요. 이 부분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요. 어느 날 아침 영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잔머리는 쓸 줄 알지만 진리를 구할 줄 모르는데, 자신의 이익과 체면, 다른 사람 마음속의 자신의 위치 또는 무게를 특히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가 유일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자신의 목숨줄로 여기고 꽉 움켜쥐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볼지, 어떻게 대할지는 그 다음이라 일단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이 무리에서 우두머리인지,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자신의 말이 무게가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이 위치를 선점하려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무리에 오게 되면 다들 이런 위치와 기회를 차지하려 한다. 자신이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려 하고, 능력이 평범해도 무리 속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 한다. 무리 중에서 능력이 낮은 편이며 자질과 재능이 보통이어도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체면과 존엄, 이 최후의 보루를 반드시 굳게 지키려 하는 것이다. 설령 인격을 잃고 하나님의 인정과 열납을 잃더라도, 무리에서 쟁취하려는 체면, 지위, 남들의 우러름은 절대 잃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성품이다. 하지만 사람은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마지막 남은 체면마저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헛된 것들을 완전히 버리고 포기해야 진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마땅히 버려야 할 이런 것들을 생명처럼 지키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그는 이런 이해관계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비장의 카드를 남겨 놓는데,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전부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자신을 위해 변명과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영예로운 일에는 늘 앞으로 나서 자신도 한몫했다는 것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만, 사실 그 일은 그와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는 늘 뒤처지기 싫어하고, 늘 무시당할까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이 그가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재능도 없다고 말할까 두려워한다. 이는 사탄 성품의 지배를 받은 것 아니겠느냐? 네가 체면과 지위와 같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네 삶이 홀가분해지고 자유로워지며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화면을 통해 얼굴을 알릴 때, 사람은 다들 앞다투어 나선다. 다들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좋아해 많이 알려질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얼굴 알릴 기회가 적을까 봐 걱정한다. 얼굴 알릴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다. 이는 사탄 성품의 지배를 받은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사탄의 성품이다. 네가 얼굴이 알려진들 뭘 어쩌겠느냐? 사람들이 너를 우러러본들 뭘 어쩌겠느냐? 사람들이 너를 숭배한들 뭘 어쩌겠느냐? 이것이 네게 진리 실제가 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겠느냐? 이는 가치가 별로 없다. 사람이 이것들을 이겨 낼 수 있고, 담담하게 대할 수 있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을 때, 체면, 허영심, 지위, 사람들의 우러름이 더 이상 너의 생각과 행위를 좌우하지 못할 때, 더 나아가 너의 본분 이행 방식을 좌우하지 못할 때, 너의 본분 이행 성과가 나날이 좋아질 것이며, 순결도도 점차 높아질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사람은 자질이 어떠하든 모두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다른 사람 마음에 높은 자리를 얻으려고 하는 게 있더라고요. 저는 말을 더듬는 결함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무시받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제가 말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는 탓에 형제자매들이 제 교제를 듣고 뭐라 했는지 다시 물어보면 저는 남들이 저를 무시하고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심한 열등감에 빠졌고, 심지어 본분을 이행하기 싫을 정도로 소극적으로 변했어요. 전 체면이 너무 강했어요. 생각해 보면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해서부터 집과 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영향이 컸어요.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와 같은 그런 사탄의 독소가 제 마음에 뿌리내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전 죽어도 무시당하지 말고 체면 있게 살아야 한다고 착각하며 살았어요. 저는 세상 사람들을 접하면서 말을 더듬는 것 때문에 비웃음을 사게 된 후로는 어떻게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외출을 잘 하지도 않고, 말도 잘 하지 않았어요. 대화를 해도 간단하게 한두 마디 하거나 그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웃음으로 대답했죠. 형제자매들이랑 만날 때에도 제가 말을 더듬고 나면 속으로 ‘다들 나를 어떻게 볼까? 나에 대해서 뭐라고 할까?’ 이렇게 추측하기도 했어요. 항상 사람들이 저를 무시하는 것 같아 억압과 고통 속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나서 조금 깨달은 게 있어도 교제할 때 말을 더듬어서 괜히 사람들의 무시를 받게 될까 봐 교제를 나누지 않았어요. 게다가 비이성적이게도 하나님께 말을 더듬는 결함을 없애 달라고 요구했고, 제 본분을 거절하려고 했어요.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을 겪어도 교제 나누면서 해결해 줄 생각도 하지 않았고요.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제대로 한 게 없었어요. 전 정말 이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존재였어요. 그건 하나님께 맞서는 거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거였죠. 사실 생각해 보면, 남들이 저를 대단하게 여겨 주고, 얼굴이 이쁜 꽃처럼 화려하면 또 뭐가 달라지겠어요? 그게 저한테 생명 성품의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체면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만들 뿐, 결국은 하나님께 염증을 사고 도태되는 것밖에 없잖아요. 체면 있게 살려는 게 저한테 이렇게 큰 해를 가져다준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더 이상 형제자매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를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제가 맡은 본분을 잘 이행하는 데에만 집중했어요.

어느 날 하나님의 이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남들과 대화할 때 쉽게 긴장하거나 어떤 일을 맞닥뜨릴 때 자신의 생각과 관점이 있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 많은 사람 앞에서 극도로 긴장하며 두서없이 말하고 입술까지 덜덜 떨리는 것 등이 있다. 심지어 말을 더듬는 사람도 있고, 이성이 있는 자리에서는 더욱 말실수를 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가 쉽겠느냐? (쉽지 않을 것입니다.) 최소한 단기간 내에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너의 선천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몇 달 동안 연습해도 여전히 긴장한다면, 그 긴장은 압박감으로 변할 것이다. 그 압박감은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와 네가 말을 하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예배에 참석하는 것, 설교하는 것 등을 두려워하게 할 것이며, 이런 두려움은 너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좋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보고, 너도 그렇게 실행해야 한다. … 한 달 동안 연습했는데도 내적 상태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심지어 마음에 압박감이 들어 점점 더 긴장되는 바람에 정상적인 사역과 삶, 본분 이행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더 이상 연습할 필요 없다.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만 있으면 된다. 본분을 잘 이행하는 데만 주력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네 그 결함과 문제는 마음속에 두고 조용히 하나님에게 기도하라. 그리고 적당한 상황을 찾아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제하기를 연습하면서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 글자 한 글자, 조리 있게 표현해 보아라. 그러면 네 결함과 문제는 점차 개선될 것이다. 어쩌면 1~2년 후, 나이가 들어 성숙해지고 주변 사람들과 더 친숙해지면, 그들의 시선이나 견해, 그리고 함께 있을 때 만들어지는 분위기가 더 이상 너에게 압박이나 결박, 통제로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네 문제점이 그들 사이에서 극복되고 해결될 수도 있다. 이는 이런 문제가 가장 심각한 사람의 경우로, 이런 환경에서 오랫동안 단련하고 연습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사람은 3~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도 점차 좋아져서 규모가 큰 자리에서만 긴장할 뿐, 보통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과 접촉하고 대화할 때 긴장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이 결함과 문제점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다면 극복하고, 극복하기 힘들다면 그냥 신경 쓰지 마라. 그것과 힘겨루기를 하거나 자신에게 도전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서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서도 안 된다. 네가 평생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그것은 패괴 성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소 공포증을 갖고 긴장하며 두려워하는 것, 이런 모습은 패괴 성품이 아니다. 그것이 선천적인 것이든 후천적으로 어떤 환경 때문에 생겨난 것이든, 기껏해야 인성의 한 가지 결함이자 문제점일 뿐이다. 오랫동안, 혹은 평생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을 마음에 둘 필요는 없다. 그것에 속박되지 말고 그것 때문에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도 마라. 그것은 패괴 성품이 아니니 바꾸려 하고 힘겨루기를 해 봤자 소용이 없다. 그것을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존재하도록 내버려두며,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너는 그 결점, 문제점과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점과 문제점이 있어도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할 수만 있다면 여전히 구원받을 수 있다. 그것은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구원받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성의 어떤 결점이나 문제점 때문에 늘 속박받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거나 낙담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본분과 진리 추구를 포기하여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그것은 하등의 가치가 없으며, 그런 자는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하)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처럼 저는 어려서부터 말을 더듬는 결함이 있었어요. 사람이 좀 많고 마음이 조금 급해지면 말을 더듬게 되는데, 그것 때문에 무시를 당하면 열등감을 느끼면서 어떻게든 사람의 방법으로 그걸 바꿔 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항상 제 바람처럼 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소극적으로 변해서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려는 생각까지 갖게 됐어요. 심지어 하나님께 제가 말을 더듬는 걸 바꿔 주지 않는다고 불평했죠. 근데 이제는 알았어요. 제가 말을 더듬는 건 태생이 그런 거니까 제가 극복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거죠. 말을 더듬는 건 문제가 아니죠. 그건 패괴된 성품이 아니라서 제가 진리를 추구하는 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도 않고요. 단순히 제가 가진 결함일 뿐이니까 제가 올바르게 대하면 되는 거더라고요. 형제자매들이 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다시 요청하면 저는 담담하게 대하고 다시 설명해 주거나 조금 천천히 말을 하면 되는 거고요. 말을 더듬는 것 때문에 소극적이 되어서 본분까지 이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 좀 아니더라고요. 어쨌든, 결함이 있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어요. 극복할 수 있으면 극복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는 담담하게 대하면 되는 거죠. 굳이 말을 더듬는 거에 구애받을 거 없이 교제를 나눌 때는 제대로 교제 나누고 제가 맡은 본분은 알맞게 이행하면 되는 거죠. 전에 제 결함을 올바르게 대하지 못할 때는 말을 더듬는 사람은 본분도 이행할 수 없는 사람, 폐물, 쓰레기이니 하나님도 그런 사람을 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교회에서는 제가 말을 더듬는다고 본분을 이행할 자격을 빼앗은 적이 없었어요. 그냥 저 혼자 제 결함을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고 계속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고 극복이 안 되면 소극적으로 변하고 불평을 했던 거예요. 사실 제가 의식적으로 그걸 바꿔 보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말을 조금 천천히 해 보니까, 형제자매들도 다 알아듣더라고요. 저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었고요. 제 생각처럼 말을 더듬는다고 본분을 이행하지 못할 건 없었어요.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전 말이 어눌한 거에 영향을 크게 받았어요. 학교 친구들은 비웃고, 가족들은 싫어하니 늘 차가운 시선과 차별을 당하면서 크게 열등감을 느끼면서 살았죠. 하지만 하나님을 믿은 뒤로는 형제자매들의 도움과 응원을 받았고 소극적이고 괴로울 때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받으면서 소극적인 상태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어요. 전 그렇게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걸 깊이 느꼈죠. 그러면서도 계속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했어요. 정말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당신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제 결함은 두려워할 문제가 아닙니다. 결함이 있다고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는 온화한 마음으로 저의 결함을 대하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지배와 안배에 온전히 순종하고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영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하나님의 사역 측면에 대한 관념과 상상은 내려놓아야 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대단한 은사나 재능을 추구하지 말고, 자신의 자질이나 본능을 바꾸려 하지도 마라. 대신 자신이 원래 가진 자질, 능력, 본능 등의 조건하에서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이행하고 모든 일을 하여라. 하나님은 네 능력이 미치지 못하고 네 자질로 이룰 수 없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너도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말고, 네가 인식하고 할 수 있는 것에 따라 최선을 다해 하고, 네 조건에 맞춰 할 수 있는 만큼만 실행하면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하)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네 인성과 이성이 정상이라면 자신의 결함과 문제를 바르게 마주하며,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속박되는 것이 아니며, 그것 때문에 늘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에 속박되지 않고, 자신이 그저 평범한 패괴 인류 중 한 명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너 자신에게 문제와 결함이 있고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높여 주어 본분을 이행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과 생명을 사람 내면에 만들어 사람이 구원에 이르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이는 완전히 하나님의 높여 줌이다. 누구나 문제와 결함이 있다. 그 문제와 결함이 자신과 공존하도록 허용해야지, 그것을 회피하거나 감춰서는 안 되며, 그것 때문에 늘 마음이 억눌리거나 심지어 자기는 남보다 못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너는 결코 남보다 못하지 않다. 본분 이행에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고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며 진실한 마음을 보인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황금같이 귀한 존재일 것이다. 반면, 본분 이행에 대가를 치르지 않고 충성심도 보이지 않는다면, 설령 네가 타고난 조건이 남보다 좋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너는 귀하지 않으며, 모래만도 못한 존재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하)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까 속이 확 트이더라고요. 누구나 결함과 문제점은 다 있는데, 결함이 있는 건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걸 내려놓고 바르게 대하는 법을 익히면 되는 거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제게 말 더듬는 결함을 주셨으면, 저 스스로를 힘들게 하면서 바꿀 필요는 없는 거죠. 오직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뜻과 마음을 다해 제 본분을 잘 이행하면 되는 거였어요. 예전에는 제가 말이 어눌해서 형제자매들이 저를 무시할까 봐 겁을 내고 하나님께서 이 결함을 없애 주시기를 바랐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저의 결함을 바르게 대하는 게 옳더라고요. 그리고 전에 한 자매의 체험 간증을 들었던 게 생각났어요. 그 자매는 저보다 더 심했고, 말을 너무 심하게 더듬어서 듣는 사람도 힘들었어요. 그 당시 한 교회가 중공의 체포 때문에 사역이 거의 마비 상태에 빠졌는데, 다른 형제자매들은 겁이 나서 수습하러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근데 그 자매는 그 얘기를 듣고 자진해서 그 교회를 붙들어 주겠다고 나섰어요. 그때 어떤 사람들은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교회를 잘 붙들어 줄 수 있겠냐고 의구심을 품었지만 그 자매는 어눌함에 구애받지 않고 그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리더를 찾아 상황을 파악했죠.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대부분 겁에 질려 있는 상태에 있는 걸 보고 한 사람씩 찾아다니면서 교제를 나눴고요. 그때 리더는 그 자매가 발음이 안 좋은 부분이 있으면 적극 협력하면서 같이 교제를 해 줬고요. 그렇게 그 자매가 디테일하게 사역을 체크하고 사역을 독촉하니까 리더 일꾼들도 책임감을 갖게 됐고, 형제자매들도 다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게 됐다고 했어요. 그 자매는 비록 말이 어눌했지만 그런 거에 구애받지 않았고 본분을 이행할 때에도 좋은 성과를 보게 됐어요. 그럼 저도 그 자매처럼 진실한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쉽게 얻을 수 있죠. 이걸 깨닫게 된 후에는 결함이 두렵지 않았어요. 중요한 건 올바르게 대하는 거고, 자기 자질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맡은 바를 완수하면 되죠.

이제는 사역을 시행하고,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에 맞게 교제를 나눌 때 말 더듬는 거에 구애받지 않아요. 문제점이 보일 때, 책망해야 할 건 책망하고 도와줄 건 교제를 나누면서 도와주고 있어요. 알맞은 하나님 말씀을 찾아서 제가 겪은 것에 결부해 교제하면서 해결해 주죠. 하나님 말씀을 보고 깨달은 만큼 교제도 나누고요. 가끔 마음이 급해질 때면 말을 더듬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체면에 구애받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말을 조금 천천히 하면 형제자매들도 잘 알아듣고, 사역도 제대로 명확하게 시행할 수 있었어요. 형제자매들도 제가 말을 더듬는 걸 볼 때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무시하거나 하는 그런 것도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나눈 교제에 길이 있다고 했죠. 가끔 윗선 리더가 제 사역에 대해 체크할 때면 긴장해서 말을 더듬을 때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제 문제점을 담담하게 대할 수 있게 됐고, 말을 해도 크게 긴장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오랫동안 말이 어눌한 것에 구애받고 심적으로 열등감을 느끼고 답답해했는데, 이 길을 걸으며 깊이 느껴요. 하나님은 사람이 외적으로 청산유수같이 말 잘하는 걸 보시는 게 아니라 우리의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을 원하신다는걸요. 외적으로 어떤 결함이 있든 본분에서 마음과 힘을 다하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죠. 이 말씀처럼요. 『누구나 문제와 결함이 있다. 그 문제와 결함이 자신과 공존하도록 허용해야지, 그것을 회피하거나 감춰서는 안 되며, 그것 때문에 늘 마음이 억눌리거나 심지어 자기는 남보다 못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너는 결코 남보다 못하지 않다. 본분 이행에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고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며 진실한 마음을 보인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황금같이 귀한 존재일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하)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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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리후이(李慧) 저는 시골에서 자랐어요. 형제는 8남매였는데, 엄마는 몸이 좋지 않아 일을 못 했고, 아버지는 집을 제대로 건사하지 않고 돈도 벌지도 않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 우린 그저 농사하면서 생활을 유지했죠. 주변에선 우리 부모님을 능력이...

너무나 비열한 나의 섬김

산둥성 딩닝 며칠 전 교회 책임자가 제 본분을 바꾸자 저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 지역에서 본분을 잘 이행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바꿔 버릴 수 있지?’ 하지만 교회에서 배치한 일이니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역을...

전방에서 복음을 전한 날들

미얀마 에이든(Ayden)2021년 1월에 전우 두 명이 제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예배 때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말세에는 성육신으로 오셔서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과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의미가...

이 공부 이제 그만할래요

인도 디웨이 전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은 농부셨는데, 우리집 생계원은 야채와 쌀 농사였어요. 전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 부모님이 늘 응원해 주셨죠. 나중에 좋은 데 취직해서 가난에서 벗어나 출세하기를 바라셨어요. 집안 형편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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