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증거하는 법을 알게 되다

2024.05.05

중국 모란(默然)

2020년 6월, 저는 양육 집사로 뽑혀서 이제 막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형제자매들의 양육을 담당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본분을 이행해서 하나님 사랑에 꼭 보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역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형제자매 중에는 직장 다니고 돈 버느라 바빠서 예배에 잘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공산당과 교계의 유언비어에 미혹돼 예배에 안 나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가족들의 반대 때문에 소극적이고 나약해져서 본분을 이행 못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이 형제자매들을 잘 양육해서 하루빨리 진리를 깨닫고 참도에 뿌리내리게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한동안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형제자매들의 문제나 어려움에 맞춰 진리를 구하여 해결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많은 형제자매가 정상적으로 예배에 나오고, 본분 이행의 의미를 이해해서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런 결과를 지켜보면서 속으로 무척 뿌듯했고, 저도 모르게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역시 나는 사역 능력이 좀 있는 것 같아. 아니면 사역에 이렇게 좋은 효과가 나올 수 있겠어?’ 그 후, 형제자매들이 본분 이행 과정에서 만난 문제와 어려운 점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들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제가 그들보다 더 뛰어나고 체험도 더 풍부하다는 점을 드러냈습니다.

언젠가, 이제 막 새 신자 양육 훈련을 시작한 자매들과 예배를 드릴 때였습니다. 자매들은 공산당의 광적인 탄압과 체포 앞에서 일부 새 신자들이 소극적이고, 나약해지고, 또 잔뜩 겁을 먹었는데 어떻게 교제해서 해결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침 얼마 전에 비슷한 문제를 해결해서 어느 정도 효과를 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기회에 자매들에게 저는 어떻게 진리를 교제해 문제를 해결했는지 얘기해서 제가 진리를 깨닫고 사역 능력도 갖추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양육했던 형제자매들도 꼭 그런 내적 상태였어요. 그땐 저도 마음이 조급했죠. 그 형제자매들을 제대로 양육하려고 예배도 여러 번 드리고, 그들 내적 상태에 맞춰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제했죠. 오가는 데만 자전거로 40km를 달렸어요. 한동안 그렇게 양육했더니 그들이 하나님 사역,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조금씩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을 부각물로 이용하시는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생겨서 공산당의 핍박에도 더는 속박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사역을 증거하려고 하더라고요.” 교제하는데 몇몇 자매는 제 얘기에 온 정신을 집중했고, 저는 뿌듯해서 점점 신나게 이야기했습니다. 교제가 끝나자 한 자매가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역시 자매님은 체험도 많고, 문제를 제대로 볼 줄 아시네요. 저였으면 분명 헤맸을 거예요.” 다른 자매도 부러운 듯 말했습니다. “자매님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하나도 어렵지 않아 보여요. 앞으로도 좋은 체험 있으면 저희에게 많이 교제해 주세요. 많이 배우게요.” 자매들 칭찬에 저는 흐뭇했습니다. 말로는 사역에 효과가 있는 건 제 공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인도라고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제가 수고하고 애쓴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예배 시간에 한 자매가 자신이 새 신자를 양육하는 데 효과가 좋지 않은 것 때문에 주눅이 들어 사역에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나도 자매처럼 어려움과 결점이 있다고 했다가는 사람들이 우습게 보지 않을까? 난 자매 사역을 책임진 사람이야. 그러니 성공한 체험을 얘기해서 내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진리를 교제해 문제를 해결했는지 보여 줘야지. 그러면 문제도 해결되고 자매도 더욱 날 우러러보겠지.’ 이런 생각에 저는 제 약점과 결점은 언급하지 않고, 본분 이행에서 효과를 낸 일만 자랑했습니다. “최근에 형제자매 다섯 명을 양육하고 붙들어 줬어요. 종교 관념이 많은 사람도 있었고, 돈이나 재물에 연연하는 사람, 가정 문제 때문에 나약해지고 움츠러든 사람도 있었죠. 다들 예배에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어요. 하나님의 말씀도 많이 찾아보고 일일이 교제해서 문제를 해결해 줬더니 다들 진리를 깨닫고 관념을 내려놓았어요. 그 후로는 예배도 잘 나오고 본분도 기꺼이 이행하게 됐죠. 또 어떤 형제는 공부를 잘했는데, 세상의 지위와 명예, 이익을 좇느라 예배에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그 형제를 붙들어 주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아 저는 하나님께 의지했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고 하나님의 뜻을 교제했더니 형제는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게 공허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고는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교제를 들은 자매는 우러름과 부러움이 담긴 눈빛으로 제가 교제한 하나님의 말씀을 서둘러 받아 적었습니다. 한 자매는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자매님이 진리로 형제자매들 문제를 해결해 준 덕분에 형제자매들이 하나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따르면서 본분을 이행하게 됐네요. 그건 진리 실제가 없으면 정말 불가능해요!” 다른 자매도 부러워했습니다. “제가 이런 문제를 만났으면 분명 해결하지 못했을 거예요. 역시 자매님은 체험이 많아서 문제 해결하는 것도 저희보다 잘하시네요!” 그런데 기분이 좀 찝찝했습니다. ‘이분들이 지금 날 숭배하는 건가?’ 또 얘기가 이렇게 마무리되다 보니 주눅이 드는 자매도 생겼습니다. 자기는 자질이 형편없어서 새 신자들의 문제를 진리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내가 성공 체험을 너무 많이 얘기한 건 아닌지 몰라. 다들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나한테는 별것 아니고 쉽게 해결하는 줄 알고 날 우러러보는 거 아냐? 사람끼리 앙망하고 앙망받는 것은 다 화가 되는 일인데, 이렇게 교제하는 게 맞나?’ 그렇지만 곧 생각을 바꿨습니다. ‘내가 얘기한 건 다 실제 체험인데 뭐. 별문제 없을 거야.’ 그러다 보니 저는 계속 자기반성을 하지 않았고, 이 일은 그냥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사역 진행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양육을 담당하는 자매 두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한 자매가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오셨군요. 여기 형제자매 몇 분이 문제가 좀 있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얘기 좀 해 주세요.” 기대에 찬 자매의 눈빛을 보니 기쁘기도 하고, 우려되기도 했습니다. 자매가 저를 우러러봐 준다는 것은 기뻤지만, 제가 평소에 예배드릴 때 사역에서 효과를 냈던 일만 얘기해서 나를 숭배하게 한 건 아닌지 우려가 됐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성공한 체험을 얘기해서 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할 때 실행 길을 찾으면 그것도 진리를 교제해 문제를 해결하는 거 아닌가? 또 내가 말한 건 다 실제 체험이고 과장하지 않았으니까 뭐.’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해 오던 것처럼 제 성공한 체험을 교제했고, 자매들이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기분이 우쭐했습니다.

그 후 예배 때마다 저는 제 본분 이행 얘기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얼마나 수고하고 애썼는지, 어떻게 진리를 교제해서 문제를 해결했는지 등 저의 성공 사례를 하나씩 다 이야기했습니다. 점점 형제자매들이 저를 숭배하기 시작하면서 문제만 생기면 제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남들이 저를 우러러보고 숭배할 때의 그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예배 시간에 형제자매들이 보내던 우러름과 숭배의 시선을 떠올리며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감탄하고 우러러봐 주니 더욱 신나게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숭배받는 희열감에 빠져들어 갈 무렵, 전혀 생각지도 못한 훈계와 책망이 닥쳤습니다.

하루는 교회 리더가 찾아왔습니다. “이번에 교회 선거가 있어서 형제자매들에게 자매님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 알아봤어요. 그런데 다들 자매님이 자기를 드러내길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왜 다들 내가 자기를 드러내길 좋아한다고 했을까? 리더가 날 어떻게 볼까? 앞으로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지?’ 저는 얼른 해명했습니다. “제가 아주 교만한 건 맞습니다. 가끔 저도 모르게 자기를 드러내긴 했어요. 근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예배 때 교제하려다 보니 체험한 내용을 얘기했던 것뿐이에요.” 제가 자신을 인식하지 않는 것을 보고 리더가 말했습니다. “자매님이 자기 체험을 얘기했는데 왜 형제자매들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의지해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들 자매님을 우러러보고 의지할까요? 일부러 자신을 드러낸 게 아니라면, 자매님의 패괴나 결점, 소극적이고 나약한 면, 자매님의 진짜 생각은 왜 말 안 하는 건가요? 좋은 면만 얘기하고 자신의 패괴, 나약함은 얘기하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자매님이 진리를 잘 추구하고, 체험할 줄 안다는 느낌을 줬다는 건 자신을 높이고 드러낸 것 아닌가요?” 리더의 폭로 앞에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예배 때 정말 성공 체험만 얘기하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의 오류나 실패는 솔직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분명 자기를 드러낸 게 맞습니다. 제가 그 많은 형제자매 앞에서 저를 드러냈고, 또 이제는 다들 분별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생각할수록 괴로워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젠 자신을 드러내지 않겠습니다. 제가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게 인도해 주십시오.”

그 후,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봤습니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며 뽐내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할 수 있다. 이는 사탄의 본성에 지배된 사람이 본능적으로 보이는 반응이자, 패괴된 인류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사람은 보통 어떻게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느냐? 어떻게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하는 목적을 달성하느냐? 자신이 많은 사역을 했고 많은 고난을 겪었으며 많은 헌신을 했고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고 증거한다. 자신의 밑천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높여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지위를 더 높게, 더 공고하게, 더 안정되게 만든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고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며, 심지어는 숭배하고 앙망하고 추종하게 한다. 사람이 이 목적을 위해서 겉으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나 본질적으로는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일을 많이 저질렀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성적인 것이냐? 그것은 이성의 범주를 넘어선 일로, 염치없는 것이다. 즉, 염치도 모르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고,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증거하며 심지어는 자신에게 어떤 은사나 재능, 특별한 기능, 어떤 경험이나 좋은 처세술, 남을 우롱하는 수단 등이 있는지 자랑하기까지 한다.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수단은 자신을 뽐내고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며, 또한 자신을 위장하고 포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들이 자신의 약점과 결점, 부족한 부분을 보지 못하게 하고, 영원히 자신의 빛나는 일면만 보게 한다. 심지어는 소극적이 되어도 남들에게 알리거나 마음을 열고 교제하지 못하며, 일을 잘못해도 애써 포장하고 숨긴다. 자신이 본분 이행 과정에서 교회 사역에 끼친 손실은 입에도 올리는 법이 없지만, 아주 작은 기여나 성과만 있어도 즉시 끄집어내 자랑한다. 자신이 얼마나 재능 있고 자질이 좋은지, 자신이 얼마나 남들과 다르고 특별한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해 한스러워한다. 이것이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방식 아니냐?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이러한 행위가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럼 사람이 이런 일을 할 때, 일반적으로 어떤 성품을 드러내겠느냐? 교만함이다. 이는 가장 주된 성품 중 하나다. 그다음으로는 간사함이 있다. 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는 것이다. 말할 때 조금의 허점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속셈과 간계를 갖고 말을 하고 자신을 뽐내고 있으면서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의 결과는, 그가 남들보다 대단하고 아무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며 그의 앞에만 가면 작아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수단으로 이뤄진 것 아니겠느냐? 그 수단의 이면에는 어떤 성품이 있겠느냐? 여기에 사악한 성분이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악한 성품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4조 자신을 높이고 증거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제 모습에 비춰 보니 저는 정말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예배 때 제가 했던 얘기는 죄다 제가 어떻게 고생했고, 본분 이행에서 어떻게 효과를 냈는지 하는 내용뿐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을 만나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모를 때, 저는 진리를 교제해서 하나님 뜻을 깨닫고 하나님께 의지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고통을 감당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증거하기 바빴고, 양육 본분을 잘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니고 노력했는지만 얘기했습니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나타났던 제 나약함, 그때 드러났던 결점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 툭하면 제가 얼마나 책임감이 강하고 하나님 마음을 잘 헤아리는지, 어려움을 만난 형제자매에게 어떻게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해 줬는지, 얼마나 많은 형제자매들이 제가 양육하고 붙들어 준 덕분에 예배를 드리고 본분을 이행하게 됐는지 등을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제가 진리를 깨닫고 문제를 잘 해결한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분명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믿음이 생겨서 본분을 이행했고,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 이룬 성과입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을 높이거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사역을 증거하지는 않고 제가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오해하게 하였습니다. 제 체험을 들은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을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저를 숭배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의지하고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교제해서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며, 마치 구세주를 바라보듯 저를 바라봤습니다. 계속 이대로 나간다면 사람들을 제 앞으로 데려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제가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는 것은 모르고, 제 실제 체험을 얘기한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체험을 얘기한 것은 다 비열한 속셈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 마음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저 자신이 비열하고 뻔뻔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양육 사역을 맡을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고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항상 자신을 드러내 사람들이 저를 숭배하도록 했습니다. 성령 역사가 이룬 효과를 제가 일해서 얻은 성과로 삼고, 자신을 자랑하는 밑천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서 형제자매의 우러름과 숭배를 누리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습니다. 정말 너무나 양심과 이성이 없었지요! 자매가 저를 훈계하고 책망한 것은 잘못된 길을 가는 저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해서 제때 잘못을 바로잡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일을 멈추고 빨리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체험을 공유하고 교제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너의 체험과 인식을 교제하고, 네가 가진 생각과 내적 상태, 그리고 네가 드러내는 패괴 성품을 모두 이야기해서 사람들에게 분별하게 하고, 진리 교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체험을 교제해야 모두가 유익과 큰 수확을 얻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교회 생활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체험을 교제할 때는 개인적인 속셈과 불순물, 야심과 욕망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열고 형제자매들과 흉금을 털어놓고 자신의 진실한 내적 상태를 얘기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모두 드러내 보여서 형제자매들이 제 체험에서 긍정적인 것은 취하고, 부정적인 것은 분별하게 해야 합니다. 또 저도 패역과 패괴, 소극적이고 나약한 부분이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형제자매들도 더 이상 저를 우러러보거나 앙망하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제 체험에서 교훈을 얻어 잘못된 길을 피할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예배 시간에 저는 용기를 내어 제 내적 상태를 털어놓고 그동안 제가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서 사람들이 저를 우러러보게 했는지, 또 어떻게 저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했는지 해부하고 밝혔습니다. 그날 예배는 정말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느 날 한 자매가 기분이 울적하다고 했습니다. 얘기를 나누던 중에 자매가 말했습니다. “예배 때마다 자매님이 얘기하는 체험을 들어 보면 자매님은 형제자매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항상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진리 실제도 없고, 자질도 형편없어서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지 못해요. 심리적 압박감도 크고, 이 본분을 이행 못 하겠어요.”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웠습니다. ‘자매가 소극적으로 지내는 건 나랑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어. 내가 본분을 이행할 때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형제자매들이 생명 진입 과정에서 부딪히는 실제 어려움도 해결해 주지 않으면서 맨날 큰소리치고 자기를 드러내서 형제자매들이 나는 진리를 깨닫고 분량이 있는 사람으로 오해하게 된 거야.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되지. 자매한테 솔직히 털어놓고 나를 폭로해야겠어.’ 저는 제 내적 상태와 그동안 제가 자기를 드러냈던 일을 자매에게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사실 저도 결점이 많고, 어려움을 만나면 나약해지고, 또 진리 실제도 별로 없고, 본분 이행의 효과도 모두 성령 역사의 인도이고, 저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사실을 자매에게 밝혔습니다. 자매는 제 얘기를 듣고 감격하여 말했습니다. “자매님 교제를 들으니 이제야 제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도 없고, 겉에 보이는 은사에만 신경 쓰고, 사람을 숭배했다는 걸 알겠어요. 또 모든 효과는 성령 역사와 인도가 이룬 거라는 사실을 지금까지 몰랐었네요. 이젠 어려움을 만나도 소극적이고 나약하게 지내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해서 본분을 잘 이행할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 뒤로 저는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가게 됐는지, 이게 과연 어떻게 된 일인지 돌이켜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보게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을 매우 숭상한다. 밖에서 강연하고 사역하는 것을 좋아하며 모임을 가지기 좋아한다. 연설하기 좋아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따르고 자신을 숭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모두 그의 이미지에 관심 두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모습에서 그의 본성을 해부해 보자. 그의 본성은 무엇이겠느냐? 그가 정말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사람은 교만하고 잘난 체하며 하나님을 조금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것은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점유하고 싶어 하며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다. 그의 본성 가운데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바로 교만하고 잘난 체하며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사람들이 그를 경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그의 본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제가 형제자매들 앞에서 툭하면 자신을 드러내서 사람들이 저를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한 것은 모두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매우 교만한 본성 때문에 본분 이행에 효과가 조금 난 걸 가지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남다르고 특출나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예배 때 큰소리치며 제 사역 효과를 드러내기 바빴던 반면, 자신의 문제점이나 나약한 면, 패역, 패괴는 좀처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두려움을 느낀 게 아니라 오히려 뛸 듯이 기뻐하는가 하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들에게 우러름 받고 숭배받는 걸 즐겼습니다. 바울은 예배와 설교를 무척 즐겼습니다. 성령 역사가 이룬 성과를 자신의 밑천으로 삼으면서 어디서든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그렇게 신도들을 자기 앞으로 끌어갔습니다. 그 결과 2천 년 동안 교계의 모든 사람이 바울을 숭배하고 높이 받들면서 그의 말을 하나님 말씀처럼 대했지만, 정작 예수님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본성은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가 가는 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길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 자리를 가로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심각하게 거스르고 결국 하나님께 징벌받고 저주받았습니다. 제가 드러낸 성품이 바울과 같지 않나요? 저 역시 교만하고 잘난 체하며, 자기를 높이고 드러내기 좋아하고, 사람들이 제 주위를 맴돌게 하기 좋아했습니다. 결국, 몇 개월에 걸친 ‘공연’ 끝에 형제자매들은 저를 우러러보고 숭배하느라 마음속에서 하나님 자리를 지워 버렸고,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구하는 게 아니라 저에게 의지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형제자매에게 해를 입혔으며,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제가 너무나 위험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교만한 본성에 지배되어 부끄러움을 모른 채 계속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며 형제자매들이 저를 숭배하도록 미혹했습니다. 나아가 때로는 비열한 속셈과 계략을 품고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정말 너무나 몰염치했습니다! 이런 걸 떠올리니 저 자신이 역겹고 증오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예전처럼 그렇게 저 자신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조용히 다짐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하나님 말씀 낭송 영상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는 지고지상하다. 하나님에게는 권병과 지혜,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이 있다. 하나님이 모든 인류와 만물 가운데서 얼마나 오랫동안 사역했는지 아는 사람이 있느냐? 하나님이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사역하고 인류를 경영해 왔는데, 구체적 연한과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인류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사탄이 이런 일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공표하지 않겠느냐? 사탄은 분명 그 사실을 공표했을 것이다. 사탄은 자신을 드러내 더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공을 인정받으려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이 일을 알리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본질에는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측면이 있다. 낮춤과 감춤에 반대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교만함과 드러냄이다. …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스스로를 증거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조금만 일을 해도 사람들이 이를 몰라줄까 걱정한다. 적그리스도도 마찬가지다. 그는 조금만 일을 하면 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공적을 자랑한다. 그 말을 듣고 있자면 겉으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으면 그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내세우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그런 말들을 하는 속셈과 본질은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민을 다투고, 지위를 다투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감추지만 사탄은 자신을 드러낸다. 이는 차이가 있지 않으냐? 드러냄과 낮춤과 감춤 중 어떤 것이 긍정적인 사물이냐? (낮춤과 감춤입니다.) ‘낮춤’이란 말이 사탄에게 쓰일 수 있느냐? (없습니다.) 왜 그러냐? 사탄의 사악한 본성 본질을 보면, 사탄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싸구려이다. 사탄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게 비정상이거늘, 무슨 낮춤을 말하겠느냐? 낮춤은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분,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성품은 위대하고 존귀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자신을 과시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감춤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묵묵히 행하고 있고, 인류는 하나님에게서 끊임없이 공급받고, 양분을 얻으며, 인도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안배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표명하지 않았고, 그런 일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이 낮춤과 감춤 아니냐?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지만 이를 언급하지도, 표명하지도 않고, 사람과 이런 일들을 논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낮춤인 것이다. 너는 이렇게 할 수 없는데 네가 무슨 낮춤을 논하겠느냐? 그런 일들은 네가 한 일이 아님에도 너는 한사코 공을 가로채려 하니, 이를 뻔뻔하다고 한다. 하나님은 인류를 이끌며 이렇게 큰 사역을 하였고, 온 우주를 주관한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그렇게 크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나의 능력은 비범하다.”라고 말씀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숨어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며 인류가 양분과 공급을 얻도록 하고, 온 인류가 대대로 이렇게 이어지게 한다. 예를 들어, 공기, 햇빛 그리고 인류가 땅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인 것들은 모두 끊임이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한다는 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면, 이를 숨기고 이름 없는 영웅이 될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교회에 있는 일부 적그리스도처럼 말이다. 그들은 다소 위험한 사역을 맡은 적이 있고, 버리고 고생한 적도 있으며, 심지어 옥살이한 적도 있다. 또한 하나님 집의 어떤 사역에 공헌을 한 자도 있다. 그들은 그 일들을 늘 되새기며 잊지를 않고, 이를 평생의 공로이자 평생의 자본으로 삼는다. 이는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말해 준다. 사람은 확실히 보잘것없고, 사탄은 염치가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다 보고 나니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권병과 능력이 있으시고, 지극히 높은 신분과 지위도 있으십니다. 하지만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몸소 성육신하시고, 묵묵히 진리를 선포하여 인류에게 공급하고 인류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지위를 가진 자라 자처하지 않으셨으며, 사람들에게 자신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고 얼마나 많은 치욕과 고통을 받았는지 털어놓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계속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낮추고 감추시며 사람을 양육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너무나 거룩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선합니다! 반면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된 저는 불결하기 그지없고, 하나님 눈에 먼지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서 사람들에게 우러름 받고 숭배받았습니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교만했으니 정말이지 저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 순간, 교만하고 잘난 체하며 자신을 치켜세우고 드러낸 제 행위 때문에 더욱 부끄럽게 느껴져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심판과 폭로를 통해 제가 전혀 사람답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진리를 실행하여 당신을 증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저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할 때에는 주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지, 어떤 시련으로 사람을 연단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지, 너희가 체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내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결국 어떻게 정복되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얼마나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말해야 한다. 너희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할 때 공허한 이론을 말하지 말고 사실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말하며, 마음속 말을 솔직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체험하면 된다. 심오하고 공허한 이론으로 자신을 뽐내려 하지 마라. 그러면 너무 교만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실제적인 말, 마음에 있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이는 사람에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되고 사람들 보기에도 가장 적절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실행 길을 찾았습니다. 진실한 교제는 그런 성공 체험을 얘기하여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심판하여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지를 많이 증거해야 합니다. 또 자신이 어떤 패역과 패괴를 드러냈는지, 일할 때 어떤 비열한 속셈이 있었고 어떤 결과가 빚어졌는지, 그리고 나중에 또 어떻게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겪고 자신을 인식하게 됐는지를 교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패괴된 본모습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사역과 성품,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알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교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실행 길을 이해한 뒤, 저는 의식적으로 실행 훈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예배 시간에 한 형제가 자신은 본분을 이행할 때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며 항상 남과 비교하느라 괴로운데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형제가 그런 내적 상태로 지낸다는 말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형제 문제를 해결해 주면, 앞으로 형제가 사람들하고 체험을 얘기할 때 분명 내 교제를 듣고 내적 상태가 달라졌다고 하겠지. 그러면 형제자매들도 내가 진리도 잘 알고 분량이 있다고 생각해서 나를 우러러볼 거야. 어떤 말로 어떻게 교제해야 내 체험을 잘 얘기할 수 있을지 고민 좀 해 봐야겠다.’ 그 순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문득 제가 또 자신을 드러내서 사탄을 연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못 먹을 걸 먹은 것처럼 갑자기 방금 품었던 생각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저 자신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겠다고 묵묵히 기도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 형제에게 전에 제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해서 다른 사람과 명리를 두고 다투다가 교체되었던 실패의 체험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고, 또 회개하고 변화했는지 얘기했습니다. 교제가 끝나자 형제도 자신의 본성이 너무 교만하다는 사실, 그리고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임을 인식하고 진심으로 회개하길 원한다고 했습니다. 형제의 교제를 들으며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인도였으니까요.

그 뒤로 형제자매들과 예배드리고 교제할 때는 비록 여전히 자신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전처럼 그렇게 대놓고 심하게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가끔 저를 드러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얼른 알아차리고 하나님께 그런 생각을 제때에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은 내적 상태가 점점 줄어들고,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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