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해친 고압적인 교육 방식

2025.02.24

중국 류진신(劉瑾心)

제가 많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어요. 저랑 언니는 아빠랑 같이 살았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았어요. 형편이 어려운 데다 제가 학교 성적도 좋지 못하다 보니 일찍이 자퇴하고 일을 시작했죠. 공부를 못 했으니 힘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고 힘든 데다 체면을 세울 만한 사람도 못 됐죠. 그때 전 ‘내가 배운 게 없어서 하층민으로 살 수밖에 없지만, 나중에 내 자식은 나랑 다르게 공부시켜야겠다.’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결혼하고 딸이 생겼을 때, 저는 애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길 바랐어요. 그럼 좋은 미래도 보장되고 엄마로서도 체면이 설 것 같았거든요.

그때 저랑 남편은 애를 키우면서 작은 장사를 시작했어요. 애가 두 살 때 인터넷에서 어린이 초급 교재를 사서 교육을 시작했어요. 밥하거나 빨래할 때에도 애한테 ≪삼자경≫을 가르치고, 당나라 시도 외우게 했어요. 가끔 제가 윗 구절을 외우면 딸이 아래 구절을 외웠는데, 저는 애가 습득력이 빠르니까 똑똑하다고 생각했고 분명 공부할 재목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애가 4살 됐을 때부터 유치원에 보냈어요. 6개월 후에 저는 초급반에서는 별로 배울 수 있는 게 없어 보여서 중급반으로 보냈고 중급반을 졸업하기 전에 고급반으로 옮겼어요. 처음에 고른 유치원은 집이랑 가까웠는데, 보니까 그 유치원에서 크게 배운 게 없더라고요. 저는 지금은 애가 기초를 잘 다져야 하는 시기인데 이런 식으로는 애 앞날에 지장이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교육 잘하는 유치원을 수소문했는데 문제는 집이랑 좀 멀었어요. 결국 제가 아침저녁으로 데려다 주고 데려왔죠. 그때는 애를 좋은 유치원에 보내는 게 애 앞날에 이로우니까 고생해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애가 좋은 성적을 내길 바라는 마음에 아끼고 아껴서 500위안이 넘는 리딩펜까지 사 줬어요. 저는 그게 애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나중에 애가 1학년이 됐는데, 놀기 바빴어요. 그래서 저는 매일 밥을 먹고 나면 글자를 쓰게 했고, 그거 다 하면 교과서 본문 한 단락을 외운 후에야 나가서 놀게 했죠. 애는 제가 공부할 내용을 많이 주고, 다 못 하면 놀지도 못하니까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어요. 그럴 때면 전 화내면서 혼냈죠. “네가 공부 열심히 하고 내가 준 숙제 다 할 줄 알면 나도 너 신경 안 쓸 거야. 내가 이러는 것도 다 널 위해서잖아? 저기 누구누구네 집 애를 봐, 공부 얼마나 잘하니. 그 집 애는 엄마 아빠가 집에 없어도 공부만 잘하더라. 네가 공부 못 하면 나중에 좋은 미래는 고사하고 일자리도 못 찾아. 그때 가서 입에 풀칠도 못 해도 엄마한테 오지 마.” 제가 혼내면 애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마지못해 제가 시키는 대로 공부했어요. 그렇게 저의 관리하에 애의 성적은 올랐어요. 시험 볼 때마다 90점 넘었고, 가끔 99점을 맞기도 했죠. 그런데도 저는 어떻게 1점을 못 맞혀서 100점을 못 맞았느냐고 나무랐죠. 그 뒤로 저는 애한테 공부를 더 잘해야 한다고 격려했고 100점을 맞으라면서 남는 시간에 보충으로 공부하라고 자료도 사 주곤 했어요. 2021년 6월에 애가 2학년이 됐는데, 성적이 계속 떨어졌어요. 그래서 혼냈죠. 어떻게 갈수록 후퇴하느냐고요. 그리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나무랐어요. 그러고는 집에서 공부하는 걸 지켜봤고 가끔 말을 안 들으면 패기도 했어요. 애는 저를 겁냈고 저한테 반항을 못 하니까 자기 자신을 때리고 저를 가까이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할머니한테 제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까지도 했어요. 그때 저는 정말 너무 화가 나서 그랬죠. “넌 아직 어려서 뭘 모르지만 어쨌든 엄마가 이러는 건 다 너를 위한 거야. 엄마가 어렸을 때,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녀서 좋은 미래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이 모양으로 사는 거고. 그래서 넌 엄마처럼 살면 안 되니까 공부를 잘해야 해.” 그러니 딸은 제가 요구한 대로 해야 했어요.

나중에 저는 하나님을 믿게 됐고, 게다가 교회 리더로 뽑혔어요. 근데 해야 할 교회 사역이 많다 보니까 애 공부를 봐줄 시간이 많지 않았고, 결국 애 성적은 심하게 떨어졌죠. 원래 90점을 맞던 애가 70점을 맞는 일이 생겼죠. 저는 이대로 뒀다가는 대학 가서 좋은 미래를 보기는 고사하고 중학교 졸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고, 나중에 잘 안 되면 제 체면도 못 살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낮에는 교회 일에 신경 쓰고 저녁에는 애 공부를 챙겼어요. 근데 애가 놀기 바쁘다 보니 성적은 점점 더 떨어졌어요. 선생님도 애가 성적이 너무 떨어진다고 연락해 오셨고, 아무리 바빠도 공부는 좀 챙겨 줘야 한다고 했어요.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니까 불평이 생기더라고요. 제가 본분상 너무 바쁘다 보니 애의 공부를 챙길 겨를도 없어서 성적이 그렇게 떨어진 거라고요. 그러니까 리더 본분을 맡고 싶지 않았고 그저 예배만 드리고 싶은 거예요. 그럼 집에서 애 공부를 챙길 시간이 충분하니까요. 그날 오후 윗선 리더가 예배드리자고 했는데, 가고 싶지 않았어요. 물론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기도했죠. ‘하나님, 지금 애 성적이 너무 심하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면 나중에 아이의 미래가 안 좋을까 봐 걱정돼 리더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를 바른 실행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하고 예배에 참석해서는 제 내적 상태를 리더한테 털어놨어요. 그때 리더가 교제를 해 주면서 집에 가면 잘못된 자녀 교육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라고 알려 줬어요.

집에 돌아와서 저는 바로 그 말씀을 찾아봤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 혹은 집안 어른이라면 누구나 자녀에게 저마다 조금씩 다른, 크고 작은 기대를 품고 있다.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 처신하기를 바란다. 학교에서 열등생이 아닌 우등생, 수재가 되어 선생님과 동급생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란다. 시험 성적은 늘 80점 이상이기를 바라는데 만약 60점을 받으면 때리고, 60점도 못 받으면 벽을 보고 반성하게 하거나 벌로 오래 세워 두거나 밥을 안 주거나 잠을 안 재우거나 TV를 못 보게 하거나 컴퓨터를 못 쓰게 하거나 사 주기로 했던 좋은 옷과 장난감을 안 사 준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에게 갖가지 기대를 품고, 자녀에게 커다란 희망을 건다. 다들 자녀가 굵직한 인물이 되고 출세 가도를 달려 조상과 가문을 빛내기를 바란다. 자기 자녀가 나중에 거지, 농사꾼이 되거나 심하게는 강도, 도적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자기 자녀가 사회에 나가 남의 아랫사람 노릇을 하거나 고물을 줍거나 노점상을 하거나 영세 상인이 되거나, 혹은 남에게 무시당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부모의 이러한 기대가 실현될 수 있든 없든 아무튼 부모는 자녀에게 갖가지 기대를 품는다. 그들의 기대는 자기가 좋다고 여기거나 고상하다고 여기는 것, 혹은 그러한 추구를 자녀에게 의탁하고, 자녀에게 희망을 걸고, 그들이 부모의 바람을 실현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의 이러한 바람은 알게 모르게 자녀에게 무엇으로 작용하겠느냐? (압박감입니다.) 압박감이 되고 또 무엇이 되느냐? (짐이 됩니다.) 압박감이 되고 일종의 족쇄가 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으므로 자신들의 기대에 맞추어서 자녀를 가르치고, 인도하고, 교육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기대하는 것을 위해 자녀에게 투자를 하거나 그 어떤 대가든 치른다. 자녀가 학교에서 수재이자 뛰어난 학생으로서 시험을 볼 때마다 90점 이상을 받아 1등을 하고, 아무리 못해도 5등 안에는 들기를 바라는 부모를 예로 들겠다. 부모가 이렇게 말하고 나면 아이가 그 목표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 자기들도 어느 정도 희생하지 않겠느냐? (맞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목표를 실현하게 만들기 위해서 아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복습하고 교과서를 외우면 자기들도 일찍 일어나 함께하고, 더운 날에는 아이에게 부채질을 해 주고 시원한 음료를 준비해 주거나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먹인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에게 콩국, 꽈배기 튀김, 달걀을 준비해 준다. 특히 시험 기간에는 아이에게 긴 꽈배기 하나와 달걀 두 개를 주면서 먹고 100점 받기를 바란다. 만약 네가 “못 먹겠어요. 달걀은 하나만 먹을래요.”라고 하면 “뭘 모르는구나. 달걀을 하나만 먹으면 10점밖에 못 받으니까 하나 더 먹어. 힘내서 이 달걀까지 먹으면 100점 받을 거야.”라고 한다. 아이가 “방금 일어나서 안 들어간단 말이에요.”라고 하면 “안 돼. 꼭 먹어야 해! 착하지, 엄마 말 들어. 다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먹으렴.”이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는 고민하다가 이런다. “엄마는 나를 정말로 사랑하시는구나. 다 나를 위해서 저러시는 거니까 먹자.”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달걀이지만 사실상 삼키는 것은 무엇이냐? 압박감, 달갑지 않은 마음이다. 음식이 좋고 어머니의 기대가 아주 크니 인성과 양심상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러한 사랑에 반항해야 하고 그러한 방식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만약 먹지 않는다면 어머니가 화를 낼 것이고, 너를 때리고 야단치거나 심지어 몹쓸 말을 퍼부을 수도 있다. … 너는 부모의 기대 속에서 어떠한 교육을 받느냐? (시험을 반드시 잘 봐야 하고 나중에 성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꼭 성공해야 하고, 꼭 어머니의 사랑과 고생스레 치른 대가를 헛되게 만들지 말아야 하고, 꼭 어머니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그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너를 너무나 사랑하고, 너를 위해 전부를 바쳤으며, 생명으로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해 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치른 그런 대가와 그들의 교육, 그들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전부 무엇이 되느냐? 네가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 되는 동시에 네 짐이 된다. 그 짐은 바로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기대를 건 후에는 자기가 하는 모든 게 자녀를 위한 거로 생각한다고 폭로하셨어요. 자녀가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학벌을 가지고 남보다 성공해서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고, 또 자신의 기대치를 기준으로 자녀에게 요구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자신의 일방적인 요구가 자녀에게 어떤 압박감을 주는지는 고민하지 않는다고 하셨죠.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이 딱 저를 두고 하신 거였어요. 저는 애가 두 살 때 똑똑해 보이니 애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중에 좋은 대학에 갔으면 하는 기대를 걸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절 대단하게 볼 뿐만 아니라 우리 가문을 빛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기대를 가진 뒤로 저는 기초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좋은 유치원을 알아봤고, 먹고 입는 걸 아끼면서 학습 도구를 사 주기도 했어요. 그리고 늘 100점을 요구하면서 성적이 좋은 이웃집 아이랑 비교하곤 했죠. 만약 아이가 제가 정한 대로 하지 않으면 저는 제가 하는 모든 게 아이를 위한 거라고 주입했어요. 그래도 애가 말을 안 들으면 나중에 밥 빌어먹을 팔자라고 혼냈어요. 결국 제 딸은 제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고 자유라는 게 없었죠. 애가 저랑은 시비를 따질 엄두가 안 나니까 스스로를 때리면서 저한테서 점점 멀어졌어요. 저의 행동이 어린 애 마음에 큰 상처가 됐는데도 저는 여전히 아이가 잘되게 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할 뿐 저의 교육 방식이 잘못되었다고는 인지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미성년자인 후손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출발선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아이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해’에서 ‘커서 출세하고 사회에서 자리 잡아야 해’로, 자식에 대한 요구로 점차 변해간다. ‘너는 어른이 되어 사회에서 자리 잡고 나서도 근본을, 부모님을 잊어선 안 돼. 너는 가장 먼저 부모님께 보답해야 해. 넌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고, 부모님께서 행복한 생활을 하시도록 해야 해. 왜냐하면 부모님은 이 세상에서 너의 은인이고 너를 기른 사람이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 네가 누리는 이 모든 것, 네가 가진 이 모든 것은 다 부모님의 피땀으로 바꾸어 온 거야. 그러니 너는 여생을 바쳐 부모님께 보답하고 부모님께 진 빚을 갚고 부모님께 잘해 드려야 해.’라는 것이다. 이는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 자식이 사회에서 자리 잡고 출세하길 바라는 부모의 기대가 변화한 것으로, 자식에 대한 정상적인 기대가 점차 자식에 대한 요구와 토색으로 변한 것이다. 아이가 미성년자일 때 만약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반항하며 공부하기 싫어하거나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부모를 거역한다면 부모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안 힘든 줄 알아?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러는데? 다 너를 위해서 아니야? 내가 하는 모든 건 다 너를 위해서인데 넌 감사할 줄도 모르는구나. 넌 왜 이렇게 맹하니?” 이런 말들로 너를 협박하고 구속한다. 이런 방식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옳지 않다. 이는 부모의 ‘고상’한 부분이자 비열한 부분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자녀에 대한 기대치 뒤에는 부모의 속셈과 목적이 숨겨져 있다고 하나님은 폭로하셨어요. 부모가 자녀를 위해 일부 대가를 지불한 후에 자식이 출세하면 부모는 자신의 체면도 살리고 가문도 빛낼 수 있기를 바라고, 그 자식을 통해 물질적인 것도 얻게 되면서 부모가 지불한 걸 보답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셨죠. 하나님께서 이렇게 폭로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제가 여태 아이한테 열심히 공부하라고 엄하게 관리했던 게 다 아이의 밝은 미래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근데 알고 보니 그건 다 제 이득을 위한 거였어요. 애가 어릴 때부터 양성했던 것도 아이가 어릴 때 기초를 잘 잡아 놔야 나중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남들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야 가문을 빛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 체면도 서게 되고, 나중에 애가 잘되면 엄마인 저한테 콩고물이라도 떨어질 거고, 애가 저를 공경하면 제 살림도 좀 더 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애가 그저 놀려고만 하니까 성적에 지장이 가는 걸 걱정해서 계속 혼내고 훈계했어요.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에는 바빠서 딸애 공부를 챙기지 못했는데, 그 사이 애 성적이 심하게 떨어지니까 이러다가는 애 미래에도 지장이 생기고, 제가 원하는 체면도 살리지 못하게 될 거라는 걱정이 들면서 리더 본분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다시 생각해 보면 제가 딸애를 위해서 했던 모든 것의 속셈과 목적은 다 저의 이익을 위한 거였고, 다 “이익이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사탄의 독소에 따른 거였어요. 전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었어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실행할 길을 찾았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의 본질을 해부해 보면, 부모의 기대는 이기적이고 인성에 위배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모의 책임과도 관련이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강압적으로 여러 가지 기대를 품는 것, 강제로 다양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위 책임이란 무엇이겠느냐? 부모가 최소한 다해야 하는 책임은 너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나쁜 사람이 되지 말고 선량해야 한다고 교육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너를 인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 밖에 너의 나이, 네가 견딜 수 있는 정도, 너의 자질과 취미에 근거해 너에게 적합한 어떤 지식과 재주 등을 익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부모는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고 이 우주에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식에게 알게 하며, 그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도록 인도하고, 성경 이야기도 좀 들려준다. 그가 어른이 된 후 세상의 흐름을 좇고 각종 복잡한 인사 관계에 빠져 이 세상, 이 사회의 갖가지 흐름에 짓밟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길 바란다. 부모가 다해야 하는 책임은 부모의 기대와는 관련이 없다. 부모가 다해야 하는 책임은 바로 부모라는 역할을 맡아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 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하고 그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또한, 자식의 육적인 생활 방면에서 그의 의식주를 제때 살피는 것, 또는 그가 아플 때 신속히 보살펴 주는 것이다. 아이가 아플 때 치료가 필요하면 치료를 해야 한다. 그를 상관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가 아픈 걸 보고도 그에게 “학교는 계속 가야지. 공부도 계속 해야 하고. 숙제도 빼먹으면 안 돼. 많이 빼먹으면 수업을 못 따라가니까.”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그에게 휴식이 필요하면 휴식을 취하도록 해야 하고, 그가 아프면 몸이 회복하도록 보살펴 주어야 한다. 이는 부모의 책임이다. 한편으로는 그의 몸이 건강하도록 잘 보살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마음이 건강하도록 지도하고 교육하며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은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이지 자식에게 강요하는 어떤 비현실적인 기대나 요구가 아니다. 한 방면은 마음에 필요한 것이며 다른 한 방면은 육적인 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부모는 이 두 방면에서 모두 책임을 다해야 한다. 겨울에는 그가 추위에 떨지 않도록 그에게 생활 상식들을 알려 주어야 한다. 감기에 걸리는 상황,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배가 아프기 때문에 따뜻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 날씨가 추워지면 바람 부는 곳에서 함부로 옷을 벗거나 바람을 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어 그가 스스로 건강을 챙길 줄 알도록 해야 한다. 한편, 아이의 어린 마음속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유치하고 성숙하지 못한 생각들이 생기거나 극단적인 사상들이 생기면, 부모는 발견 즉시 강제로 억압하지 말고 제때 올바르게 인도해야 한다. 그가 그것들을 표출하고 털어놓아 진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보살펴 주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끌고 바로잡아 주며 올바른 사상 관점으로 지도하는 것이다. 부모가 다하는 책임은 사실 후손에 대한 부모의 기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너는 그가 어른이 된 후 건강하길 바라도 되고, 그가 어른이 된 후 인성과 양심, 그리고 이성을 갖추기를 기대해도 되며, 혹은 그가 너에게 효도하기를 바라도 괜찮다. 그러나 그가 어른이 된 후 어떤 유명 인사,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고, 아이에게 “옆집 아이 샤오밍(小明)은 얼마나 말을 잘 듣니!”와 같은 말을 자주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네 아이는 그저 네 아이일 뿐이다. 네가 다해야 하는 책임은 그에게 옆집 샤오밍이 얼마나 착한지 알려 주어 그가 옆집 샤오밍을 본받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사람마다 사상 관점, 취미와 관심사, 자질, 성격이 서로 다르고, 또한 인성 본질이 선량한 사람이 있는 반면 흉악한 사람도 있다. 선천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타고나길 말수가 적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해도 답답해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만약 책임을 다하고 싶다면 자기 아이의 성격, 성품, 취미, 자질, 그리고 인성에 필요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어른인 자신의 세상과 명리에 대한 추구를 자식에 대한 기대로 변모시켜서는 안 되고, 사회에서 비롯되는 명리에 속하고 세상에 속하는 이런 것들을 자식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 듣기 좋게 말하면 자식에 대한 기대지만 사실 이는 자식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명백히 자식을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마귀의 품 안으로 떠미는 것이다. 만약 네가 정말로 부모의 자격을 갖췄다면, 너는 자식의 몸 건강과 마음 건강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하지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 자신의 바람을 그들에게 강요하여 그들의 어린 마음이 미성년자일 때 견뎌서는 안 되는 어떤 것을 견디도록 해서는 안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부모는 자녀에 대한 옳지 못한 요구와 기대를 내려놓고 실제 상황에 따라 자녀를 대해야 하더라고요.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제 욕망을 자녀에게 요구하면 안 되죠. 제가 딸한테 했던 걸 보면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게 없었어요. 애가 성적이 좋지 못해도 이웃집 아이랑 계속 비교해서도 안 됐고, 어린아이한테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나중에 출세해서 가문을 빛낼 수 있다는 잘못된 사상을 주입할 게 아니라 아이를 올바르게 대해야 했어요. 그리고 아이의 연령에 따라 실제적인 상황에 맞게 요구해야 하잖아요. 아직 10살도 안 된 아이가 조금 더 놀다가 숙제를 하고 싶은 것은 정상이죠. 근데 전 제 방식대로 아이한테 요구하고, 못 하면 혼내곤 했는데, 그건 애한테 오히려 상처만 주는 거지 진짜 아이를 위한 게 아니었어요. 진짜 아이를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이의 자질과 성격, 연령에 따라서 대하는 게 맞는 거죠. 그리고 제가 제 방식대로 애를 교육해서 나중에 출세라는 목표를 이뤘다 해도 결국 무신론적 지식을 많이 채우면 딸애는 하나님과 점점 멀이지기만 할 거잖아요. 그때 가서 복음을 전하면 오히려 배운 지식을 기준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할 수도 있는데, 그럼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거더라고요. 이런 걸 깨달은 뒤로는 아이의 성적을 전처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또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으로 제 체면을 살리길 바라지도 않았어요. 그저 학교에 다니면서 실용적인 지식을 습득하기만 바랐죠. 나중에 어떤 학벌을 갖게 될지, 어떤 직업을 찾게 될지,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하심에 맡기기로 했어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한 사람이 어떤 사회 환경에서 어떤 일이나 사업을 하게 될지는 모두 운명으로 정해져 있으며, 이는 부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어떤 사람은 대학에 진학해서 좋은 전공을 선택하고, 졸업 후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인생 여정에서 첫발을 순조롭게 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기술을 가졌어도 자신의 사업은 고사하고 자기에게 맞는 일이나 자신이 속할 곳 하나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첫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순탄치 않아 앞날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경우다. 성공과는 연이 없는 운명인 것처럼, 힘들게 공부했지만 대학교와는 인연이 닿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첫 희망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이 경우, 앞으로의 운명은 순탄할지 험난할지 알 수 없는 변수로 가득 차 있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고, 인생에 대해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품게 된다.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아도 책을 써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자무식인데도 창업을 해 돈을 벌고 밥벌이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의 기로에서 과연 사람은 스스로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의 바람과 결정에 따른 선택이 가능한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어 한다. 바람과 햇빛을 피할 수 있는 편안한 장소에서 지내며 번듯하게 차려입고 떵떵거리며 살기를 원하고, 남보다 성공해서 가문을 빛내고 싶어 한다. 사람의 소망은 이렇게 ‘완벽’하지만, 그가 인생의 여정에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운명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차츰 깨닫게 된다. 또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대담한 계획을 세우고 마음껏 꿈을 키울 수는 있어도 실제 자신에겐 꿈을 실현할 능력과 힘이 없을뿐더러 미래를 결정할 능력도 없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다. 사람이 직면한 현실은 언제나 꿈과는 괴리가 있고 늘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다. 사람은 그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직업과 미래를 위해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운명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의 숙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능력, 지능,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 앞에서 사람은 나이, 우열, 귀천을 구분할 수 없는 동등한 존재이다. 사람이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얼마나 많은 부를 가질지는 부모에 의해 좌우되거나 재능, 노력, 욕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이는 창조주가 정한 운명에 달려 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어떤 미래와 운명을 갖게 될지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에 달려 있었죠. 제 딸아이가 나중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좋은 데 취직할 수 있는지는 제 요구에 의해 좌우되거나 아이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었어요. 다 하나님이 정하신 운명에 달려있는 거였어요. 누구나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은 그 사람의 일생을 다 안배해 놓으셨죠. 어떤 사람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학벌을 가져도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찾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학벌은 낮아도 크게 사업을 이루기도 하죠. 제 지인의 경우도 그래요. 아들이 대학을 졸업했지만 계속 취직을 못 해서 집에만 있고, 제 할머니의 양 며느리도 대학을 나왔지만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농사를 하고 있어요. 근데 시댁 고모부는 초등학교도 못 나와서 글도 많이 모르는데 공장을 꾸려 큰 사장님이 되셨고 돈도 많이 벌었죠. 이런 사례를 보면 사람이 좋은 일자리를 찾을지, 좋은 미래를 얻게 될지는 대학에 가느냐 못 가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었고 부모의 교육으로 길러 내는 것도 아니었어요. 오로지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고 딸아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더 이상 공부로 출세하기를 바라는 제 욕심을 채워 달라고 요구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런 후 저는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했고 전처럼 딸아이를 교육하지도 않았어요. 여유가 있을 때면 아이에게 신앙 이야기를 해 주면서 천지 만물과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우리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주셨으니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경배해야 함을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고 있어요. 애도 저랑 함께 하나님의 말씀 보는 걸 좋아하고 저랑 교제를 나누는 걸 좋아하니까 저도 좋더라고요. 나중에 애는 말을 잘 듣기 시작했고, 시간에 맞춰 숙제도 잘하고 성적도 점차 좋아졌어요. 시험 보면 거의 80점대는 나왔어요. 물론 기뻤는데, 그 기쁨은 전과는 다른 기쁨이었죠. 그래서 애한테 말했어요. “네가 몇 점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100점 맞으라고 요구하지도 않을 거고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지도 않아. 엄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사람의 운명과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 있고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걸 깨달았거든. 나중에 네가 커서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 집에서 네 본분을 이행한다면 엄마는 그걸로 족해.” 그랬더니 애도 기뻐하면서 알겠다고 했고, 지금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자기가 많이 행복하다고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니까 애도 힘들지 않고 또 아이를 바른길로 인도할 수 있더라고요. 저도 해방감을 느끼면서 본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람의 일생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에 달렸음을 알게 됐어요. 나중에 제 딸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달린 거지 애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제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그리고 또 딸이 공부를 잘해서 전도유망한 아이가 되길 바랐던 것도 다 저의 명리를 위한 것이고, 그건 참 이기적이고 비열한 거라는 걸 알게 됐죠. 지금은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있어요.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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