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성을 퍼뜨리는 것을 해부하다
작년 12월 어느 날, 예배 후에 리더가 천린이 교체됐다고 하는 거예요.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달고 살면서 노력은 하지 않고 잔꾀만 부려 본분에서 계속 별로 성과가 없었어요. 인성도 안 좋으면서 형제자매한테 소극적인 걸 퍼뜨리고 나쁜 영향을 줘서 교체했대요. 리더가 천린이 소극적인 걸 퍼뜨렸다고 하면서 얘기해 줬어요. 새 신자 양육을 몇 달이나 했는데, 효과가 안 보였대요. 새 신자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않아서 새 신자들이 소극적이고 연약해졌고요. 교회에서 그런 상황에 근거해 교체하겠다니까 천린이 예배 때 그랬대요. “전 열심히 본분했는데 지금 찬물을 끼얹는 거 같네요. 어떻게 양육 본분을 못 하게 해요? 내가 뭘 잘못했나요? 아님 이 본분에 적합하지 않나요? 앞으로 다신 이 본분 안 할 거예요. 창피해서 원. 하나님이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어요. 사랑이 안 느껴져요.” 또 이랬대요. “왜 어떤 사람은 성과가 없어도 훈련할 기회를 계속 주면서 왜 저한테는 안 주는 건가요?” 리더가 그런 말은 소극적인 걸 퍼뜨리는 거라고 해부해 줬는데, 안 받아들였대요. 자긴 그냥 드러낸 패괴를 말한 거지 소극적인 걸 퍼뜨린 게 아니라고, 왜 정죄하냐면서 억울해하며 그랬대요. “내적 상태를 말하는 게 소극적인 걸 퍼뜨리는 거면 그러면 뭘 교제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들으면서 계속 의문이 들었어요. ‘천린이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한 건지, 예배에서 자신의 패괴에 대해 얘기한 건지, 아니면 의도를 가지고 소극적인 걸 퍼뜨린 건지… 그 말 하나로 소극적인 걸 퍼뜨렸다는 게 정말 옳은 건가?’ 그때 저도 어려웠어요. 리더가 잘 알아보지 않고 잘못 판단했나 싶었어요. ‘일이 임했는데 하나님 뜻을 몰라 오해하고 원망했던 걸 예배 때 교제하는 건 정상적인 거잖아? 이게 소극적인 걸 퍼뜨리는 건가?’ 그때 리더한테 가서 왜 그렇게 규정했는지 자세히 묻고 싶었는데 망설여지더라고요. ‘나는 천린을 몇 번밖에 못 봐서 그다지 잘 모르는데, 같이 본분했던 사람들이 나보다 잘 알겠지. 천린의 교체가 잘못된 거라면, 그들이 얘기하겠지. 괜히 신경 쓰지 말자.’
근데 다음 날까지도 이 일이 생각나서 마음이 안정되지 않더라고요.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천린이 그런 게 교체될 정도였나? 소극적인 걸 퍼뜨렸다고 규정한 게 맞을까? 좋은 사람을 교체한 거면 그건 악행인데… 이해가 안 되는데, 알아보지도 않으면 그건 생각 없이 따라가는 거잖아. 이렇게 하면 정말 무책임한 거지.’ 그때, 말씀이 떠올랐어요. 『진리를 받아들이고 추구하는 것은 구원에 이르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길이다. 진리를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어 봤자 허사이다. 헛되이 글귀나 도리만 논하는 사람들, 늘 구호를 외치고 큰소리치는 사람들, 언제나 규례를 지키고 진리 실행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몇 년을 믿어도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이 수확을 얻겠느냐?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기꺼이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 하나님이 맡긴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는 사람, 평생 기쁘게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자신을 위해 도모하지 않는 사람, 착실하게 사람 된 도리를 하고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의 원칙을 파악할 수 있으며, 모든 일을 열심히 해내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과를 내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한다. 그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려움에 봉착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모색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일할 때 진리를 구하고 실행할 수 있다. 그는 구호를 외치지도, 큰소리를 치지도 않고 오직 착실히 일할 뿐이다. 조금의 빈틈도 없이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되, 마음을 다해 모든 일을 처리하고 체험하며, 많은 일에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또 체험한 후에는 깨달음과 인식을 얻으며, 공과를 배우고 진실한 수확을 얻는다. 그릇된 생각이 들 때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찾아 해결할 줄 알며, 어떤 진리를 깨닫든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고,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마지막에 진리를 얻을 수 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 진입이다> 중에서) 말씀을 보고 깨달았어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과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공과를 배워 체험 후에는 수확을 얻어요. 매일 우리가 보고 듣는 건 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거라 배울 공과가 있어요. 근데 저는 교회에서 교체되고 정리된 사람에 대해 교제해 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듣고 넘겼었어요. 그러니 남는 게 없었죠. 근데 또 나와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대한다면 이 일을 겪었다고 해도 뭐가 남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진지하게 좀 물어봐야겠다 싶었어요. 옳은 교체였다고 결론 나도 어떤 원칙에 근거해서 한 건지 알 수 있잖아요. 그러면서 진리를 깨달아 분별력을 키운다면 헛된 경험이 아닌 거죠.
그날 저녁에 자오 자매한테 천린의 교체건을 어떻게 보는지 물어봤어요. 그러면서 천린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었죠. “천린은 교회에서 무슨 일을 안배하든 따랐고, 다 같이 잘 지냈어요. 예배 때 자기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드러낸 패괴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런 말을 했던 거지 소극적인 걸 퍼뜨린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자매한테도 물어봤는데 자오 자매 말과 비슷하더라고요. 평소 천린을 괜찮다고 봤었는데 교체되다니 의외랬어요. ‘두 자매가 다 천린과 잘 아는 사이인데, 둘 다 천린을 좋게 보고 있어. 남들과도 잘 지내고 교회에서 뭘 안배하든 했고, 나쁜 사람 같진 않아. 리더는 왜 인성이 나쁘고 소극적인 걸 퍼뜨린다고 했지? 천린이 그런 말을 한 데는 이유가 있어. 교체가 임했는데 하나님 뜻을 몰라 오해와 원망이 있는 건 정상 아닌가? 예배 때 그런 상태를 솔직히 교제한 게 왜 소극적인 걸 퍼뜨린 거지?’ 아무래도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구했죠.
하루는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먼저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분간해야 할지, 소극적인 것을 어떻게 분별해야 할지, 사람의 어떤 말과 모습이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자. 우선, 사람이 퍼뜨리는 소극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전부 진리에 반하는 부정적인 것들이며, 패괴 성품에서 나온 것들이다. 사람은 패괴 성품을 지니고 있기에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어느 정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 어려움으로 인해 소극적인 생각과 소극적인 것이 드러난다. 이는 진리를 실행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사람의 진리 실행에 영향과 지장을 주는 사상, 관점에 속하며, 100% 소극적인 측면의 것들이다. 이 소극적인 사상들이 듣기에 아무리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고 이치에 맞아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은 이해가 아니며,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과 인식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진리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소극적인 측면의 것이자 부정적인 사물이다.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사람의 속셈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자신을 위해 수많은 객관적 핑계를 찾아 사람들의 동정과 이해를 얻어 내는 데 있다. 이는 또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들의 자발성에 크게 혹은 작게 영향과 타격을 주며, 심지어는 많은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게 가로막기도 한다. 이런 결과, 이렇듯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기에 우리는 더더욱 이 소극적인 것들을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자 전부 진리를 적대시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소극적인 것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 채 수시로 소극적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사람의 진리 추구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틀린 생각이다. 사실 영향이 매우 크다. 지나치게 소극적이 되면 배반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 무서운 결과는 소극적인 것 때문에 초래된다. 그럼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일을 어떻게 분별하고 인식해야겠느냐? 간단하게 말해서,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것은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고, 사람의 진리 실행을 가로막는 것이다. 이는 온화한 수법, 언뜻 매우 정상적인 것 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미혹해서 쓰러뜨리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해하는 것 아니겠느냐? 두말할 나위 없이 사람을 매우 심하게 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것은 부정적인 사물에 속하며, 하나님께 정죄받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행위에 대한 가장 간단한 해석이다. 그럼 ‘소극적인 것을 퍼뜨린다’는 말에서 ‘소극적인 것’의 성분은 과연 무엇이겠느냐? 어떤 것이 소극적인 것이며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교란과 파괴가 되겠느냐? 소극적인 것에는 무엇이 포함되겠느냐?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그가 교제하는 말에 소극적인 성분이 들어 있겠느냐? 만약 사람이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에 진정으로 순종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 환경에 대한 그의 인식에 소극적인 성분이 있겠느냐? 그가 자신의 체험과 인식을 나눌 때 거기에 소극적인 성분이 있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거짓 리더를 분별하다≫ 중에서) 말씀을 보고 깨달았어요. 하나님의 사역과 그분이 마련하신 상황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종을 구하는 태도도 없고, 오해하고 불평하고, 불만을 품는 것, 심지어 하나님께 맞서는 것까지 다 소극적인 상태예요. 소극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이 진리를 구하지 않고, 잘못된 관념을 반성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 집 사역에 대한 불만을 퍼뜨리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퍼뜨린다면, 그건 소극적인 걸 퍼뜨리는 거에 속해요. 묵상하면서 보니 천린이 본분에서 내내 성과가 없어 교체된 거였어요. 이성이 있다면 이건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임한 것인 걸 알고, 마음을 안정하고 반성하며 공과를 배웠겠죠. 왜 자신이 본분에서 성과가 없었는지, 문제가 뭔지, 어디서 실패한 건지요. 정말 진리를 추구한다면 이런 문제를 잘 반성하고 고민했을 거예요. 하나님 뜻이 이해 안 돼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지만 퍼뜨리진 않을 거고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며 소극적인 상태를 해결했겠죠. 근데 천린은 교체되고 나서 반성하거나 하나님 뜻을 구하지도 않고, 공과도 배우려고 하지 않았어요. 반발하고, 불복하고, 교회의 안배에 원망했죠. 예배 시간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를 서슴없이 쏟아냈어요. 천린의 교제에는 잘못된 관점을 인식하고 해부하는 내용이나 진입하겠단 내용이 없어요. 구하고 반성하는 태도조차 없고요. 형제자매들은 그저 하나님에 대한 천린의 관념과 오해, 또 억울함만 들었던 거죠. 하나님은 공의하시지 않고, 하나님 집의 안배도 불공평하다고, 다른 이에겐 기회를 주면서 왜 자긴 안 주냐며 하나님이 이러면 안 된다고 원망했죠. 창피해서 다신 이 본분 하지 않을 거다, 하나님 사랑이 안 느껴진다, 이런 말까지 다 했고요. 자신의 패괴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분노에 차 하나님께 따지고 맞서는 말들이었어요. 자기가 성과가 없는 건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아서고, 교체된 건 하나님이 불공평하기 때문이라 했어요. 책망과 훈계, 실패가 임하니 망신을 당했다 여겼죠. 이 본분 때문에 억울한 일을 겪었으니 본분을 안 하고 말지 창피당하기 싫댔죠. 천린이 한 말의 성질을 보면, 자신의 패괴를 솔직히 털어놓고 인식하는 게 아니에요. 순전히 소극적인 것과 관념을 퍼뜨리는 거고, 하나님께 따지고 맞서고 반항한 거죠. 그 후에 알게 된 건데, 천린의 그 말을 듣고 일부 형제자매들이 천린을 동정해 편을 들었대요. 본분에서 조정된 어떤 사람도 천린의 관점에 동조해 하나님 집이 불공평하다면서 누구는 양육에서 성과가 없어도 계속 훈련할 수 있는데, 자기들에겐 기회를 주지 않냐고 했대요. 하나님 집의 안배에서 진리를 구하고 공과를 배우지 못하고 반발하고 의문을 품은 거죠. 천린이 한 말들은 벌써 분별력 없는 사람들을 미혹시켜서 교회 생활을 교란했어요. 나중에 알게 됐어요. 누구는 훈련을 시키고 자기에겐 기회를 안 준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어요. 어떤 형제자매들은 막 훈련을 시작해 익숙지 않아서 성과가 좋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도 진리 원칙을 교제해 줘서 진입할 수 있었고, 성장이 빨라 양성한 거죠. 또 본분에서 오류와 실패가 있기도 했지만 교제하고 도와주니까 자신을 반성하고 원칙을 구해 바로잡았고, 얼마 후에는 성장한 거예요. 근데 천린은 새 신자 양육을 맡은 이후로 리더가 여러 번 도와주고 충분히 훈련할 시간을 줬는데도 계속 소홀히 하고 마음을 쓰지 않았어요. 형제자매가 지적해 줘도 듣지를 않고 따졌죠. 몇 년이나 성장이 없고, 새 신자 어려움도 해결해 주지 못해 결국에는 교체한 거예요. 근데도 천린은 반성 안 하고, 실패한 원인을 찾아보지도 않았어요. 하나님께 죄송해하는 마음도 없었고요. 되려 기회를 안 준다,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 사랑이 없다며 원망했어요. 눈을 뻔히 뜨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한 거죠. 정말 제가 분별력이 없었구나 싶었어요. 천린이 소극적인 걸 퍼뜨렸는데도 이 문제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교회에서 잘못 처리한 줄 알고 천린을 옹호하려고 했잖아요. 정말 눈 멀고 어리석었어요.
그 후에 또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보이는 각종 내적 상태와 모습은 이러하다. 자신의 지위, 명예, 이익, 욕망, 기호 등이 충족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행한 것이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지 않을 때, 그들의 이익에 영향을 미칠 때, 그들은 불복과 불만의 감정에 빠진다. 이런 불만과 불복의 감정이 생긴 후부터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유와 핑계, 해명, 변명 등 원망의 마음이 생겨난다. 이 원망의 마음이 생겨나면 하나님을 찬미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으며, 나아가 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관념과 상상, 사상, 관점, 또는 사람의 혈기로 하나님께 대항할 뿐이다. 어떻게 대항하겠느냐? 자신들의 불복과 불만의 감정을 퍼뜨리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 자신들의 사상과 관점을 표출하며, 하나님이 자신들의 바람과 요구대로 행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그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이 수많은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함으로써 사람의 패괴 성품을 정결케 하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게 구원한다는 이 진리는 복 받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의 단꿈을 깨 버렸다. 그들이 밤낮으로 고대한, 들림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꿈이 그렇게 깨진 것이다. 그들은 기를 쓰고 이 국면을 되돌리고 만회하고자 하지만, 어쩔 도리 없이 소극적인 마음과 원한을 품고 재난 속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하나님이 안배한 이 모든 것에 불복한다. 하나님이 행한 것이 자신의 관념과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며, 자신의 뜻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에서 정리 사역을 하여 많은 사람들을 도태시켰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행한 것이 부적절하고,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연합하여 반항하려고 하며, 하나님이 진리임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부정하려 한다. 물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도 부정한다. 어떤 식으로 부정하겠느냐? 반항과 거부로 부정한다. “하나님이 행한 것이 제 관념에 부합하지 않아요. 그러니 저는 순종하지 않을 거고, 저는 당신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당신과 겨룰 것이고, 교회에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 일에 대해 퍼뜨릴 거라고요. 저는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할 거예요. 어떤 결과가 생길지는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잖아요. 당신은 제 입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저는 말할 거예요. 그렇다고 당신이 뭘 어쩔 수 있겠어요?”라는 뜻이다. 그는 어떻게든 이 그릇된 개인의 관점과 사상을 퍼뜨리려 한다. 이것이 인식을 말하는 것이겠느냐? 진리를 교제하는 것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이는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고 사설과 궤변을 퍼뜨리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패괴를 인식하고 폭로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행한, 진리에 맞지 않는 부분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폭로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자신의 잘못을 애써 해명하고 변명함으로써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행동이며, 이와 동시에 그릇된 정설을 만들고, 부정적이고 그릇된 관점과 이해, 강변과 사설을 퍼뜨리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하나님의 선민이나 교회에 가져다주는 것은 교란과 미혹이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을 소극적인 상태, 혼탁한 상태에 빠지게 한다. 이는 전부 사람이 소극적인 것을 퍼뜨려서 생기는 부정적인 영향이다.』(≪거짓 리더를 분별하다≫ 중에서) 말씀의 폭로를 보고 깨달았어요. 늘 소극성과 관념을 퍼뜨리는 자는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지 못해요. 일을 보는 관점이 이방인과 같으니 실체는 불신파고 마귀죠. 일이 임해도 진리를 구하지 않고, 자기 관념과 상상에 따라 판단하죠. 일단 자기 뜻에 안 맞고, 이익이 손해 본다 싶으면 하나님께 불만과 반감을 품고 형제자매 사이에서 함부로 말을 퍼뜨려요. 경외심도 전혀 없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해요. 전 천린이 소극성을 퍼뜨리는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했어요. 그게 뭔지 잘 알지 못하고 천린이 한 소극적인 말을 자기 패괴를 털어놓은 거라 여겼어요. 일이 생기다 보면 소극적이 되고, 하나님을 오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천린도 예배 때 자기 마음속 관념을 털어놓은 거라 여겼었죠. 근데 패괴를 털어놓는 거랑 소극적인 걸 퍼뜨리는 건 완전히 달라요. 똑같이 관념에 안 맞는 일이 임해 하나님께 오해가 생겨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양심이 있는 사람은 경외심이 있어서 하나님 뜻을 모르겠으면 기도하고 구하지, 함부로 말하지 않죠. 받아들이고 공과를 배우고, 진리를 구해 관념을 해결해 가요. 교제할 땐 이런 관념의 잘못된 부분을 해부하고, 패괴를 폭로하고 인식하고, 추한 모습을 털어놔요. 형제자매들은 교제를 듣고 시비를 가리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오해와 원망도 생기지 않아요. 오히려 듣고 진리를 깨닫고 잘못된 관점을 분별하고 저버리고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되죠. 이게 솔직한 교제예요. 근데 소극적인 것과 관념을 퍼뜨리는 것의 성질은 달라요. 자기 상태에 대해 얘기하거나 패괴를 털어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에요. 교제하면서 자기의 소극적인 감정과 불만을 터뜨리고 하나님이 주신 상황이 안 좋다거나 누가 딴지를 건다고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나 부정적인 관점을 퍼뜨리기도 해요. 그러면서 자기의 패괴 성품은 인정 않고, 반성하며 공과를 배우려 하지 않죠. 자기 문제점이 뭔지는 얘기하지 않고 자기가 실패한 걸 객관적인 요인 탓을 해요. 진리를 모르고 분별력 없는 사람이 그걸 들으면 쉽게 미혹돼서 그의 편에 서서 하나님께 반항하기도 하죠. 하나님과 하나님 집을 원망할 수도 있고요. 전에는 소극적인 것과 관념을 퍼뜨리는 걸 판단할 때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고, 어떤 속셈이 있었는지를 분석했는데 그것도 진리를 모르고 통찰력이 없어서였죠. 누가 소극적인 걸 퍼뜨리는지 분별하려면 속셈이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를 볼 게 아니라 그 말의 성질이 뭐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봐야 해요. 그가 하는 말이 하나님에 대한 불복과 불만이고,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퍼뜨리고, 주변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 집과 대립하게 만들고, 가라앉게 만든다면, 그한테 의도가 있든 없든 그가 한 말은 소극적인 걸 퍼뜨리는 거고, 교회 생활을 교란하는 거예요.
저는 분별하지 못했어요. 소극적인 걸 퍼뜨리는 게 뭔지 모른 데다 인성이 좋고 나쁜 게 뭔지 명확히 분별하지 못했거든요. 그러다 말씀을 보고 그 진리를 깨닫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각 종류의 일이 임할 때, 사람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서 인성이 좋은지 나쁜지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럼 인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겠느냐? 한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구원받을 수 있을지를 어떻게 판단해야겠느냐? 진리를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는지를 보면 된다. 사람의 내면에는 모두 관념과 패역이 있고 패괴 성품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과 하나님의 요구가 상충되어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일들을 자주 겪으며,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이 밖에, 사람은 또 누구나 하나님께 오해와 관념을 품거나 원망하고 반발하고 거역할 때가 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사람의 태도가 다름에 따라 대하는 방식도 다르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관념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혼자 진리를 구해 해결한다. 왜 말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기에, 그런 말을 했다가 부정적인 영향이 생길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남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그저 혼자 속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이 이와 유사한 내적 상태가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험으로 그들을 도와준다. 이는 마음씨가 선량한 사람이다. 마음씨가 선량한 사람은 남을 사랑으로 대하며, 남이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한다. 그가 일을 하고 남을 돕는 데는 늘 원칙이 있다. 또 그가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유는 도움이 되기 위해서이다.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고, 일 처리에 원칙과 지혜가 있다. 이는 인성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한 가지 기준이다. 그는 소극적인 것이 사람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말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에, 혼자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는 어떤 관념이 생기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해결하며, 나중에는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게 된다. 이렇게 관념은 점점 줄어든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성적이지 못하다. 그런 사람은 관념을 갖고 늘 이 사람 저 사람과 교제하기를 좋아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며, 남들까지 관념이 생기게 한다. 이것이 다른 이를 해하는 것 아니겠느냐? 또 어떤 이는 관념이 있어도 자신이 이야깃거리가 될까 봐 두려워 형제자매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들한테는 마음대로, 서슴없이 말한다. 그는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사람을 형제자매로 여긴 것인데, 그 행동으로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이런 행동이 원칙에 부합하겠느냐? 예를 들어 친척 중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그리고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그가 자신의 관념을 가족들에게 퍼뜨리면 결과적으로 가족들을 구렁텅이에 빠지게 할 것이며, 모두가 하나님께 관념과 오해를 갖게 될 것이다. 관념과 오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역병과 같아 한 번 퍼뜨리면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해를 입게 된다. 특히 어리석은 자가 들으면 더 어리석어진다. 오직 진리를 깨닫고 분별력이 있는 사람만이 그런 관념, 소극성, 오해에 속하는 부정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은 그런 분량이 전혀 없다. 어떤 사람은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데, 그 정도의 자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그러나 전혀 분별해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늘 관념과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많은 사람이 그 부정적인 것에 교란되어 연약해지고 소극적으로 변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것들은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 엄청난 미혹이며, 크나큰 살상력을 지닌다. 토대가 있는 사람은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며, 시간이 좀 지나면 진리를 깨달아 돌이킬 수 있다. 그러나 믿은 지 얼마 안 돼 토대가 없는 사람이 그 부정적인 것들에 대해 들으면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지기 쉽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뒤로 물러나 믿지 않게 될 수도 있으며, 악인의 경우에는 관념을 퍼뜨리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할 수도 있다. 소극적인 것과 관념을 거리낌 없이 퍼뜨리는 사람은 어떤 존재겠느냐? 전부 악인이자 마귀이며, 드러나고 도태될 대상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이 하나님께 가져야 할 태도> 중에서) 말씀을 보고 깨달았어요. 인성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때 그가 남과 잘 지내는지, 겉으로 얼마나 열심인지, 칭찬받는 좋은 일을 많이 했는지를 보는 게 아니죠.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과 진리, 그리고 본분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보는 거고, 진리를 좋아하고 받아들이는지 보는 거죠. 이번에 천린이 교체되면서 큰 실패와 좌절을 겪었는데, 전혀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경외심도 없었어요. 그런데다 관념과 소극적인 걸 퍼뜨려서 다른 사람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의 안배에 불평하게 했죠. 리더가 해부해도 천린은 안 받아들이고 변명하며 따졌었죠. 이거 하나만 봐도 천린은 진리를 안 받아들이고 인성도 안 좋아요. 하나님과 하나님 집을 위하는 바른 마음이 없었으니 자기가 원치 않는 상황이 생길 때 하나님과 대립했어요. 이건 악한 본성이 드러난 거고 이성도 전혀 없고, 경외심도 없다는 게 드러났어요. 묵상을 하고 말씀과 천린의 행동을 대조해 봤어요. 그러니 모든 게 분명해졌고, 천린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규정하게 됐어요. 천린은 불신파로 인성이 나쁘고 본성이 진리를 싫어해요. 하나님의 행사가 관념과 맞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증오하고 하나님과 맞서죠. 교회에서 처리한 건 틀리지 않았어요. 진리 원칙에 맞고, 공평하고 공정한 처리였죠.
천린은 그랬었죠. 내적 상태를 말하는 게 소극적인 걸 퍼뜨리는 거면 그러면 뭘 교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천린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소극성을 퍼뜨리는 걸 다른 사람이 분별해 제지한 건데 그걸 스스로 반성하긴커녕 어떻게 교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건 상대가 자기를 구속해서 교제할 엄두도 못 내겠다는 거잖아요. 화살을 상대한테 돌려서 다들 상대를 분별하게 만든 거예요. 비난의 화살을 남한테로 돌린 거죠. 형제자매들이 그 말을 분별 못 해 판단력이 흐려졌네요. 이런 내적 상태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이런 걸 피하려면, 교제할 때 어떻게 자기를 털어놔야 하나요? 저도 실행의 길을 찾고 구하다가 말씀을 보게 됐어요. 『사람은 사탄의 본성을 지니고 사탄의 성품으로 살아가므로 소극적인 내적 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수시로 소극적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소극적이 될 때가 있다. 누구는 그럴 때가 많고 누구는 그럴 때가 적으며, 누구는 오랫동안 소극적이고, 누구는 잠깐 소극적이다. 사람의 분량이 다르듯 소극적인 내적 상태도 다르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수시로 소극적이 되는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구하지 못한다면 굳게 서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모르며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러면 형제자매들이 붙들어 주고 도와주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만약 도와줄 사람이 없거나 그가 도움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소극적일 수 있고, 심각할 경우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보아라. 사람이 늘 관념을 갖고 소극적으로 지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늘 자신의 관념과 상상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주 골칫거리이다. 하지만 아무리 소극적이 되어도 마음속으로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네 관념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것은 네 이해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만약 네게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관념을 퍼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지켜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조금이라도 있고 자신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임을 인정한다면, 너는 마땅히 진리를 구해 자신의 관념을 해결하고 진리에 순종해야지 교란하고 방해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정죄되고 저주받은 양 하나님을 오해하면서 소극적으로 굴고 원망할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런 문제는 해결하기 쉽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을 찾아 교제하고 구하면서 마음에 있는 말을 하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러한 소극적인 것과 연약함, 그리고 이해가 안 되거나 이겨 내지 못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숨김없이 솔직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교제하는 것이다. 입을 열기 어렵거나 입 밖에 내기 힘든 말들이 있다면 더더욱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거짓 리더를 분별하다≫ 중에서) 말씀을 보고 깨달았어요. 패괴를 드러내거나 소극적인 상태일 때, 또는 자기 뜻에 안 맞아서 하나님께 오해와 원망이 생길 때, 이런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상태일 때 경외심을 갖고 자기 입을 지켜야 해요. 꿰뚫어 보지 못하겠는 일은 여기저기 퍼뜨려 남을 교란시키지 말아야 해요. 이게 기본적인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드리고, 말씀을 보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서 소극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해요. 혼자서 해결 안 되면 리더 일꾼이나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교제하면 돼요. 그건 소극적인 걸 퍼뜨리는 게 아니라 진리를 구하는 거죠. 근데 물어볼 대상도 중요해요. 갓 믿어 진리를 모르고, 분량이 작아 분별력이 없는 사람한텐 털어놔도 자기한테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관념과 오해를 심어줄 수 있어요. 이런 교제는 도움이 안 되고 되려 남을 넘어지게 할 수 있죠. 소극적이 되든, 관념이나 오해가 생기든 하나님 앞에 와 기도하며 구해야 해요.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고 성령의 깨우침을 구해서 진리를 깨닫고 관념과 오해가 해결되면 그땐 교제할 수 있죠. 자신이 어떻게 진리를 구해서 잘못된 관점과 부정적인 걸 분별했는지, 어떻게 하나님 뜻을 깨닫고 관념을 해결했는지 교제하는 거죠. 그게 진짜 솔직한 교제고, 참된 증거죠. 이런 솔직한 교제가 도움이 돼요. 이걸 깨닫고 실행 길이 생겼어요.
이 일을 겪으면서 어떤 게 소극적인 걸 퍼뜨리는 거고, 어떤 게 솔직한 교제인지, 어떻게 인성을 가늠하는지 알게 됐죠. 교회에 숨겨진 불신파에 대한 분별도 생겼고요. 정말 수확이 컸어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