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2)

2021.01.02

이어서 이 구절의 마지막 말씀을 보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이 말씀에 실제적인 면이 있지 않으냐? 너희는 이 말씀의 실제적인 면을 볼 수 있느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가 왜 이 말씀을 했겠느냐? 너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지금 너희는 어쩌면 이 말씀의 함의를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때의 사람은 율법시대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안식일에서 벗어나기가 아주 어려웠고, 진정한 안식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라는 이 말씀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비물질적임을 알려 준다. 비록 하나님이 네게 필요한 모든 물질을 공급해 줄 수 있지만, 너의 물질적 필요가 충족되었다고 해서, 그 물질들이 너에게 가져다주는 만족감이 너의 진리 추구를 대신할 수 있겠느냐? 말할 것도 없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교제하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은 모두 진리의 내용이므로 그 어떤 값나가는 물질로도 절대 저울질할 수 없고, 그 가치 또한 돈으로 가늠할 수 없다. 그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며,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이러한 비물질적 진리는 네가 귀하게 생각하는 그 무엇보다도 가치가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 말은 너희가 천천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내 말의 요지는,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하나님의 모든 것은 누구에게나 다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 어떤 물질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 주겠다. 너는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 음식은 좋을 수도 있고 별로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것으로 배만 채우면 배고플 때의 괴로움이 없어지고 사라진다. 그러면 너는 그 자리에 앉아서도 안정을 되찾게 되고, 너의 몸도 함께 편해진다. 사람의 배고픔은 음식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여겨질 때 네 마음속의 그 공허한 느낌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느냐? 음식물이 해결해 줄 수 있느냐? 또는 네가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느끼는 그런 마음의 허기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성품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무엇이 진리인지도 모르며 하나님의 성품 또한 알지 못한다면, 마음이 매우 급하지 않겠느냐? 마음속으로 기갈을 느끼지 않겠느냐? 너는 그러한 느낌 때문에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없지 않겠느냐? 그러한 마음의 허기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겠느냐? 해결할 방법이 있느냐? 어떤 사람들은 거리 구경을 나가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을 찾아 얘기를 나누며, 어떤 사람들은 한잠 푹 자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많이 보거나 혹은 본분 이행에 더 노력을 기울이고 더 애를 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너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겠느냐? 너희는 그러한 방법들에 대해 깊이 느낀 바가 있을 것이다. 네가 마음은 있으나 힘이 따라 주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진리의 실제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깨우쳐 주기를 갈망할 때,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그때 네게 필요한 것은 배부른 한 끼 식사도, 따뜻한 말 몇 마디도, 일시적인 육적 안락과 만족도 아니라, 네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알려 주는 것이며, 무엇이 진리인지를 확실하게 깨우쳐 주는 것이다. 아주 조금일지라도 이러한 것들을 깨닫고 나면, 너의 마음은 밥 한 끼를 배불리 먹은 것보다 더 만족을 느끼지 않겠느냐? 네 마음이 만족을 느낄 때, 너의 마음은 물론, 너의 전 존재가 진정한 안식을 얻지 않겠느냐? 내가 이렇게 비유하고 분석해 줬으니, 이제 너희는 내가 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라는 말씀을 보라고 했는지 이해하게 되지 않았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하나님의 모든 것이 네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물과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들보다 크다는 의미이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안식을 얻을 수 없다. 너희는 이후의 체험 과정에서 내가 오늘 왜 너희에게 이 구절을 보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이 행한 모든 일은 다 진리이고 생명이다. 사람에게 ‘진리’란 사람의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자, 사람이 한시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며, 또한 가장 큰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지만, 진리가 너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진리는 네 마음이 안식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것이다.

너희는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자신의 내적 상태와 결부시킬 수 있느냐? 너는 실생활에서 먼저 자신이 경험한 사람, 일, 사물이 어떤 진리와 관련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진리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과 결부시킬 수 있다. 너에게 임한 일이 어느 측면의 진리와 관련되는지도 모른 채 곧장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면, 그것은 비교적 맹목적인 행동에 속하며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우선 너에게 닥친 일들이 어떤 유형의 일인지, 어느 측면의 진리와 관련되는지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네 체험에 상응하는 진리를 찾은 다음에 그 상응하는 진리에서 자신이 실행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너는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는 것은 어떤 규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거나 어떤 공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공식 같은 것이 아니며, 규칙도 아니다. 진리는 죽은 것이 아니고, 생명이며, 살아 있는 것이다. 또한 피조물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칙이자, 사람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법칙이다. 너는 체험 과정에서 이러한 것을 많이 체득해야 한다. 너는 어느 정도까지 체험하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고 진리를 떠날 수 없다. 네가 알게 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현된 것이고, 진리와 갈라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자체가 바로 진리이다. 다만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이 나타내는 것을 진실되게 구현한 것일 뿐이다. 진리는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전부 구체화하고 명문화했으며,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하나님이 네게 무엇을 하게 하고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증오하고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더욱 직설적으로 알려 준다. 하나님이 선포한 이런 진리의 이면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희로애락과 하나님의 본질을 보게 된다. 이러한 것이 바로 하나님 성품의 발현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체험을 통해서도 그 효과에 도달해야 한다. 사람이 실생활 밖에서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약간의 인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도리와 문자적 의미에 국한될 뿐, 진정한 하나님 자신과는 거리가 있다.

현재 우리가 교제하고 있는 내용의 범위는 모두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 그리고 예전에 일어난 그 일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하나님이 일찍이 나타냈던 성품과 소유와 어떠함을 인식함으로써 더 광범위하고 더 깊이 있게, 더 다양한 측면에서, 다원적으로 하나님의 면면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직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면면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하나님이 한 말씀과 행한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알 수 있고 게다가 더 전면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사람에게 익숙한 성경의 사례나 이야기들을 통해 사람이 좀 더 쉽게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현재 하나님이 선포한 심판과 형벌의 말씀, 진리들을 한 글자, 한 구절씩 분석하면서 하나님을 알게 한다면, 너는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공식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 속의 이러한 이야기들을 죽 열거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면, 사람은 지루하거나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사례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언어로 당시 하나님 마음속에 있던 구체적인 생각과 하나님의 당시 심정, 즉 정서 혹은 마음과 생각까지 전부 사람에게 알려 주는 셈이다. 이러한 것을 사람에게 알려 주는 목적은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이 공식도, 전설도 아니고,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며, 사람이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것임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게 하려는 데 있다. 이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의 이야기들을 거울로 삼아 하나님이 행한 사역을 더 광범위하게 알고, 하나님이 행한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보며, 또한 하나님이 나타낸 이러한 성품들을 통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함과 인류에 대한 염려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지를 알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인식을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너희가 이러한 것들을 전부 느꼈으리라 믿는다!

은혜시대에 예수가 했던 사역에서, 너는 하나님의 또 다른 측면의 소유와 어떠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소유와 어떠함은 모두 육신을 통해 나타나며, 또한 인성을 통해 사람이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사람은 인자에게서 하나님이 육신에 거하며 인성을 지니고 사는 모습을 보았고, 하나님이 육신에 거하며 신성을 나타내는 모습도 보았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발현된 모습을 통해 사람은 실제적인 하나님을 보았으며, 하나님에 대해 다양한 개념을 갖게 되었다. 반면, 창세 이후부터 율법시대가 끝나는 시점까지, 즉 은혜시대 이전에 사람이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은 모두 하나님 신성의 일면이었다. 즉, 하나님이 비물질적인 세계에서 행하고 말씀한 것, 사람이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참모습에서 발현된 것들이었다. 그러한 것들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너무 높고 큰 분이라 가까이할 수 없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남겨 준 인상은 대부분이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였다. 심지어 하나님의 모든 생각과 마음도 사람에게 너무 신묘막측해서 도저히 종잡을 수도, 알 방법도 없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묵상하거나 체험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의 모든 것은 아주 요원해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는 마치 하늘 끝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알거나 혹은 하나님의 어느 한 가지 생각을 안다는 것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자 더욱이 아주 요원한 일이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은 일부 구체적인 사역을 하면서 구체적인 말씀을 하고, 구체적인 성품을 나타냄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체험하거나 볼 수 있는 분명한 인식을 갖게 했지만, 그것은 어쨌든 하나님이 비물질세계에서 나타낸 소유와 어떠함이었다. 사람이 이해하고 알게 된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신성 측면의 소유와 어떠함이었다. 그러한 소유와 어떠함은 사람에게 구체적인 개념을 줄 수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상이 여전히 ‘가까이하기 어렵고,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영체’라는 범위에 머물게 했다. 하나님이 물질세계의 구체적인 물건이나 형상으로 사람에게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은 여전히 사람의 언어로 하나님을 정의할 수 없었다. 사람은 항상 사람의 언어로 하나님에 대한 하나의 기준을 정하여 하나님을 물질화, 인간화하려는 생각과 마음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얼마나 높고 얼마나 큰지, 하나님의 생김새는 어떤지, 하나님의 구체적인 기호와 성격은 어떤지 등등이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사람의 필요 또한 잘 알고 있다. 물론, 하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 은혜시대의 사역을 행한 것이다. 그 방식은 인성으로도 사역하고, 신성으로도 사역하는 것이었다. 예수가 사역한 기간에 사람은 하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아주 많이 보았다. 예를 들면, 그가 춤을 추고, 혼인 잔치에 참석하고,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고, 혹은 어떤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등의 모습이었다. 이와 함께 예수는 신성을 대표하는 사역도 많이 행하였다. 물론, 이러한 사역은 다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고 발현된 것이었다. 이 기간에 하나님의 신성이 정상적인 육신에 실체화됨으로써 사람은 그를 보거나 만질 수 있었고, 또한 더 이상 하나님을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반면에 사람은 인자의 일거수일투족, 인자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거나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었다. 성육신한 인자는 인성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하고, 아울러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계의 하나님을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사람이 본 것은 형상을 지니고 뼈와 살이 있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인자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 지위, 형상, 성품, 소유와 어떠함 등등을 구체화하고 인간화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에 있어서, 인자의 겉모습은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인자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완벽히 대변할 수 있었다. 단지 발현되는 형식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인자의 인성이든 아니면 신성이든, 그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변한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단지 하나님이 그 기간에 육신의 방식으로 사역하고, 육신의 위치에서 말씀했으며, 인자의 신분으로, 인자의 위치에서 인류를 마주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실제로 말씀하고 사역하는 것을 접하고 체험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신성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을 지극히 낮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높고 큼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또한 하나님의 진실함과 실제에 대해 초보적으로 알게 되었고, 초보적인 정의도 내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과 그의 사역 방식, 말씀할 때의 위치는 영계에 있는 하나님의 참모습과 다소 다를지라도, 그의 모든 것은 사람이 본 적 없는 하나님 자신을 한 치 오차도 없이 대변하였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든,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고 어떤 형상으로 사람을 마주하든, 하나님이 대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일 뿐이다. 그는 그 어떤 사람, 패괴된 인류 중의 그 어떤 사람도 대표할 리 없다. 하나님 자신은 곧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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