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불치병 환자의 반성

2024.05.05

중국 티톄(體貼)

2013년 6월의 일이었습니다. 생리가 시작됐는데 열흘이 넘도록 끝나지를 않았습니다. 가끔 큰 핏덩이가 보이기도 했고요. 그때는 복부 오른쪽에 약간의 통증이 있을 뿐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달 생리기가 되자 핏덩이가 점점 커지고 생리 양도 많아졌습니다. 조금 겁이 난 저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의사는 집에 가서 결과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부터 하혈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가장 좋다는 지혈제를 썼는데도 잠깐만 멈출 뿐, 약효가 떨어지자 다시 출혈이 시작됐죠. 과다 출혈로 인해 온몸에 식은땀이 났습니다. 집에 혼자 있던 저는 ‘피가 너무 많이 나. 이러다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얼른 언니에게 전화를 하고 방에 누웠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언니는 급히 구급차를 불러 저를 병원으로 이송하게 했습니다. 당시 제 몸은 시퍼렇게 변해 있었고, 입술은 보라색이었으며,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습니다. 오한 때문에 몸이 덜덜 떨렸고요. 수혈이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병원에서 보유하고 있던 혈액이 떨어져 새벽 1시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혈액이 없다는 말을 듣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새벽 1시까지는 아직 8시간이나 남았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티지?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데 8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니,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아직 이렇게 젊은데 이대로 죽어 버리면 더 이상은 파란 하늘도,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없을 거야.’ 극도로 두려워진 저는 연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구해 주십시오!’ 그때, 머릿속에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너에게 한 모금의 숨이라도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은 너를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6편>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게 큰 믿음을 주었습니다. 한 가닥의 숨이 붙어 있어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죽을 리 없었죠. 저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낄 때, 오직 당신의 말씀만이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아직은 숨이 붙어 있으니 당신이 저를 죽게 하지 않는 한 살 수 있겠지요. 저는 당신의 말씀을 믿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마음이 한결 평안해졌고, 더 이상은 그렇게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녁 6시경, 남편이 병원에 왔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들은 그는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저를 바라보다가 옆에 있던 사람에게 몇 마디 건넨 후 몸을 돌려 가 버렸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은 후로 남편은 저를 핍박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병에 걸리자 더더욱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너무도 처량하고 또 무력했습니다.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지만 정신만은 또렷했죠. 저는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저를 고쳐 줄 거라고 생각한 남편이 그렇게 무정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에게 기댈 수 없어졌기에 하나님께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한순간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엄두를 못 내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예전에 읽었던 하나님의 말씀과 배운 찬양을 묵상했습니다. 그때 제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은 <진정한 믿음과 사랑을 지킨 베드로>라는 말씀 찬양이었습니다. 『하나님, 제 목숨과 육체는 보잘것없나이다. 제게는 오직 믿음과 사랑밖에 없나이다. 당신을 마음으로 믿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제 믿음과 사랑을 당신께 바치겠나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가 ‘예수’를 알아 간 과정> 중에서) 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도 없이 늘 주변 가족들에게만 기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가족은 저를 내팽개쳤습니다. 하나님만이 말씀으로 저를 위로해 주셨죠. 오직 하나님만이 저를 구해 주실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직 당신만이 저를 구하고 위로해 주실 수 있으며, 제게 믿음과 힘을 주실 수 있습니다. 제 마음과 목숨을 당신께 맡기고자 합니다.’ 하나님 말씀 찬양을 묵상하며 제 마음은 더없이 평온해졌습니다. 병과 관련된 일을 생각하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죠. 그리고 조금씩 오한이 물러갔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새 밤 1시가 되었고, 수혈을 받자 이튿날에는 멀쩡한 사람과 똑같아졌습니다. 당직 의사는 병상에 앉아 있는 저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말했습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병세가 너무 심각해 보여서 살아나실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의사의 말을 들으며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결코 살아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다 하나님의 놀라운 보호였죠! 이어서 의사는 상급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제 그 위험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지켜 주신 덕에 살아났는걸. 가서 검사받는다고 해도 별 이상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죠.

이튿날, 저는 가족과 상급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자궁경부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종양이 오리알만큼 커서 수술을 할 수도 없는 상태였죠. 수술대에 오르면 눈을 뜨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암 말기라는 말을 듣자 머리가 ‘윙윙’거리면서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암이라고? 내가 왜 암에 걸려? 암에 걸려 석 달 만에 죽은 사람도 있어.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죠.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던 저는 병상에 누워서 계속 이런 생각만 했습니다. ‘나는 십 년 가까이 하나님을 믿었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처음 받아들였을 때, 가족들은 나를 핍박했고, 이방인들은 나를 비웃고 비방했지. 또 나는 지난 몇 년간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안배하든 전부 순종했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헤쳐 왔다고.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하게 됐을 때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고, 출소한 뒤에는 예전처럼 복음을 전하며 본분을 이행했지.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렇게 고생하고 고통을 받았는데 왜 암에 걸린 거야? 하나님은 왜 나를 지켜 주지 않으신 거지? 설마 하나님을 믿는 것도 여기까지인 걸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죽고 싶지도 않았고요. 억울함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하나님께 요구를 하게 됐습니다. ‘하나님,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죽으면 당신이 영광을 얻는 날도, 큰 붉은 용이 무너지는 것도 볼 수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모습도 즐길 수 없고요. 제 결말이 어떨지 상상조차 하기가 힘듭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도와주시고, 제 병을 고쳐 주십시오!’ 그때, 며칠 전 과다 출혈로 살아나지 못할 것처럼 보였을 때, 하나님의 보호로 살아남아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보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 일을 떠올리자 치료에 협력할 마음이 생겼죠.

의사는 제 병세가 너무 심각한 것을 보고는 방사선 치료와 화학 요법을 동시에 진행하자고 했습니다. 화학 요법을 마치자 구역질이 나면서 정신이 혼미해졌고, 몸이 몹시 힘들었습니다. 얼굴에서는 열도 났고요. 방사선 치료를 할 때는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견디기 힘든 통증이 느껴졌죠. 방사선 치료와 화학 요법의 이중고를 견디기가 힘들어지자 또다시 원망과 오해의 마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보호가 없으니 암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죽을병에 걸린 거지?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지 않으신 거야!’ 당시, 병실에는 다양한 암 환자들이 있었는데, 며칠에 한 번씩 사람이 죽어 나갔습니다. 저는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병세가 더 악화돼서 어느 날 제게도 죽음이 임할까 봐 걱정이 됐죠. 저는 그 암 환자들과 온종일 함께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매일같이 그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는 것은 심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치료를 마치면 근처에 있는 자매 집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자매와 예배를 드릴 때, 저는 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식을 교제하고, 자매와 함께 복음 대상의 관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분석했습니다. ‘퇴원하면 계속 복음을 전하고 본분을 이행할 거야. 예배에 많이 참석하고 하나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께 믿음을 갖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지켜 주시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치료를 받던 중 친척 한 명이 저를 보러 왔습니다. 그녀는 제 남편과 아이에게 자기 남편도 암에 걸려 죽었다며 암은 치료가 쉽지 않으니 병원에서 돈을 버리면서 치료하느니 데리고 나가서 바깥 공기나 쐬어 주라고, 이러다가 사람도 돈도 다 잃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저와 함께 여행을 가겠다며 제가 가고 싶은 곳에 데려가 주겠다고 했죠. 남편의 말에 저는 ‘그건 치료를 포기하겠다는 뜻 아냐? 그럼 나는 죽는 거 아니냐고. 난 정말 이렇게 죽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연단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은 치료비를 끊었습니다. 언니는 “의사가 너한테 남은 시간이 3개월뿐이래. 그러니까 남편한테 치료비를 기대하지 마. 지금은 아무도 너를 구해 주지 못해. 그러니 하나님께 많이 의지하렴. 너를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힘이 풀린 저는 병상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이게 현실이라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죠. ‘내가 앞으로 3개월밖에 못 산다고?’ 절망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의사는 나한테 사형 선고를 내렸고, 남편과 아이도 내 치료를 포기했어. 이제 남은 건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잖아? 하나님을 이렇게 오래 믿고 이렇게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시기만을 바랐는데,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이야.’ 저는 너무나 절망스러워 이제 끝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로는 기도를 드려도 대충 형식만 취했고, 하나님 말씀도 열심히 보지 않았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기도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했죠. 저는 무척 비관적이었고, 또 소극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외출을 하고 돌아와 병실 문을 열었을 때, 암 환자 한 명이 병상에서 죽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몸 위에 하얀 천이 덮여 있었죠. 저는 화들짝 놀라 다른 병실로 도망쳤습니다. 그 환자가 입원한 지 이틀도 되지 않아 죽은 걸 생각하니 언제 제게도 죽음이 닥칠까 봐 두려웠죠. 저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 두렵고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습니다. 이방인처럼 그렇게 죽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저를 지켜 주시고 제게 믿음과 힘을 주십시오. 또 제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세요.’ 기도를 마쳤을 때, <시련의 고통은 하나님의 축복>이란 하나님 말씀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낙심하지 말고 연약해지지 마라. 내가 너에게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나라로 가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손쉽게 복을 얻고 싶은 것이구나. 오늘날 모든 사람은 다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에 대한 너희의 사랑이 강렬해지지 않을 것이며, 진정으로 나를 사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주 작은 상황이라도 모두가 통과해야 한다. 단지 정도만 다를 뿐이다. 시련은 곧 나의 축복이다. 자주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축복을 간구하는 이가 얼마나 되겠느냐? 언제나 좋은 말만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고난은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구나.(<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41편>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 마음을 위로해 주었고,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며,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병고는 제게 시련이자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고 병환 속에서 더 많이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했죠. 또 하나님을 원망할 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자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환경을 겪을 믿음도 생겼고요. 하나님이 아직 저를 죽게 하지 않으셨으니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자매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며칠간, 저는 자매 집에 가서 수시로 <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이라는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한 단락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 제 관점에 대해 얼마간 인식이 생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 중에서)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를 수 있다니, 거기에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겠느냐? 여기까지 말하다 보니, 우리는 지금껏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즉,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애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없고 베풂과 연민만 있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3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예리한 검처럼 제 심장을 파고들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얼굴을 마주하고 저를 심판하고 계시는 것 같았죠. 저는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을 때 은혜 얻기를 추구했습니다. 제가 주님을 믿는 한, 주님께서는 저를 평안하게, 아무 문제도 우환도 없게 지켜 주실 거라고 생각했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저는 하나님이 은혜시대 때처럼 사람을 위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것 같은 사역을 하지 않으시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체험하여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복을 받으려는 과분한 생각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었죠. 그래서 열심히 추구하기만 하면 어떤 재난이나 병환도 임하지 않을 거라고, 큰 질병과 고통이 임할지라도 죽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복과 은혜를 얻기 위해 저는 열심히 헌신했습니다. 남편이 아무리 핍박하고 가로막아도, 친척들이 아무리 비방하고 등 돌려도 영향받지 않았죠. 심지어는 체포돼서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고요. 출소한 후에는 예전처럼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추구하면 구원받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번에 병으로 죽음이 목전에 임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주신 일을 생각하자 저는 어떤 환난이 임하든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실 거라고 더욱 확신하게 됐습니다. 암을 확진받고, 가족들까지 제 치료를 포기하자 저는 하나님을 생명줄처럼 생각하면서 계속 예배에 참석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의지하고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제 믿음과 순종을 보실 거라고, 어쩌면 살아날 수 있게 지켜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저는 이렇게 버리고 헌신하며 열심히 본분을 이행한 것이 진리를 얻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정결케 되기 위해 추구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그 표면적인 버림과 헌신을 대가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얻고 큰 재난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로 살아남아 아름다운 종착지에 들어가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었죠. 하나님의 보호를 보았을 때, 저는 하나님께 연신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불치병에 걸리자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이치를 따졌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다고 원망까지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이득을 얻어 내려고만 할 뿐, 진리 추구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병고가 제 결말과 종착지를 위협하자 하나님께 실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도, 기도도 원치 않았죠. 심지어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전혀 진심이 아니었고, 진실한 사랑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이용 수단으로 생각하면서 기만하고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했죠. 이런 제가 무슨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습니까? 이렇게 가다가는 설령 계속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할 것입니다. 그런 삶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여기까지 깨닫자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죠.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읽고 스스로에 대해 더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늘 요구가 있다는 것은 가장 까다로운 문제이다. 하나님이 하는 일이 네 뜻에 부합하지 않고, 하나님이 네 뜻대로 하지 않으면 너는 쉽게 반항할 것이다. 이는 사람의 본성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충분히 말해 준다. 이 문제는 늘 자신을 반성하며 진리를 깨달아야만 인식할 수 있고, 또한 진리를 추구해야만 철저히 해결할 수 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많지만,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없다. 그저 자신이 하나님을 만족게 하거나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 너무 적다고만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늘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은 사람의 패괴 본성을 보여 준다. 네가 이 일에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진실하게 회개할 수 없으면, 하나님을 믿는 길에 잠재적인 폐해가 생기고 위험이 도사리게 된다. 일반적인 일에서는 이겨 낼 수 있겠지만, 네 운명이나 장래, 종착지와 관련된 중대한 일은 이겨 내지 못할 것이다. 그때까지도 네게 진리가 없다면 아마 고질병이 도져서 너는 멸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줄곧 따르며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좋은 모습을 보였을지라도 이것이 앞으로의 일까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치명적인 곳, 사람의 본성 가운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을 네가 계속 알지 못하고, 또 문제가 터지기 전에는 네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잠재적인 폐해를 남기게 된다. 네가 길 끝까지 갔을 때, 사역이 끝났을 때, 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장 심각한 일을 저지르고 또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해서 정죄되고 도태될 수도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병에 걸린 후로 죽고 싶지 않았고, 하나님께 저를 지켜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무척 강렬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하나님께 요구를 한 게 아닐까요? 저는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어디서나 저를 지켜 주셔야 한다고, 이방인들을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저를 대하시면 안 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암 말기 확진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을 믿는데도 하나님이 저를 특별히 지켜 주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도저히 순종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오랫동안 버리고 헌신하고 감옥살이를 하며 고생한 것을 밑천 삼아 하나님께 이유를 대고 조건을 걸면서 제 병을 고쳐 달라고 요구했죠. 하나님이 제 요구대로 해 주시지 않자 마음속으로 이치를 따지면서 반항했고요. 저는 그렇게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었는데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인성도, 이성도 없었죠! 그때, 욥이 떠올랐습니다. 욥은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시련을 주어 재산과 자식들을 다 가져가고, 그 자신도 온몸에 종기가 돋게 됐을 때도 하나님을 전혀 원망하지 않았고, 병을 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정말 인성과 이성을 갖춘 사람이었죠. 반면 저는 죽음이 임했을 때, 하나님께 원망과 오해를 한가득 품었으며, 저를 지켜 주고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비이성적인 요구를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처음 출혈 과다로 목숨을 잃을 뻔했을 때, 하나님이 돌보고 지켜 주신 덕에 살아날 수 있었으니 하나님은 이미 제게 큰 은총을 베풀고 그분의 행사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게다가 그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수많은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리면서 숱한 진리와 비밀을 깨달았고요. 하나님이 제게 주신 것은 제가 바라고 상상하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만족할 줄 모른 채, 암으로 확진되자 비이성적으로 하나님께 받아 내려고 하면서 살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저는 제 본성이 너무도 탐욕스럽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십니다. 그런데 버러지보다 못하고 거역과 대적, 더러움과 패괴로 점철된 저 같은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요구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 분수를 전혀 몰랐고, 이성을 잃을 정도로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죠! 저는 하나님의 행사가 제 관념에 맞지 않자 하나님께 떼를 쓰면서 행패를 부리고 이치를 따지며 반항했습니다. 제가 드러낸 것은 흉악한 성품이었죠. 이 패괴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공의의 징벌을 마주하게 될 게 분명했습니다! 덜컥 겁이 난 저는 더 이상 그렇게 비이성적으로 하나님께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심판과 형벌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제가 몹시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회개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병이 낫든 낫지 않든 순종하고 당신의 배치에 따르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깨닫자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습니다.

저는 병상에 누워 묵상했습니다. ‘나는 왜 병 앞에서 그렇게 비이성적으로 하나님께 요구한 걸까?’ 그렇게 구하던 중, 주된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모르기 때문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공의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 고생한 만큼 분배하는 것, 일한 만큼 돈을 주는 것, 노력한 만큼 얻는 것, 이것은 공의가 아니라 그저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령 욥이 하나님을 증거한 후에 하나님이 그를 멸했다면 이것은 공의일까? 사실 이것 역시 공의이다. 어째서 그것을 공의라고 하겠느냐? 공의에 대해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일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한다면 하나님은 공의롭다고 말하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공의롭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때 하나님이 욥을 멸했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공의롭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이 패괴되었든 안 되었든, 사람의 패괴가 깊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이 사람을 멸할 때 사람에게 그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하느냐? 무슨 근거로 사람을 멸하는지 설명해야 하느냐? 하나님이 그가 정한 규칙을 사람에게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 필요 없다. 패괴된 사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아무런 가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다 합당하고, 다 하나님의 안배다. 하나님이 네가 눈에 거슬려 넌 증거를 다 했으니 쓸모없어졌다며 널 멸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냐, 아니냐? 이것 역시 공의다. 지금은 네가 사실상 알기 어렵겠지만, 이치는 이해해야 한다. 너희가 말해 봐라, 하나님이 사탄을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냐, 아니냐? (공의입니다.) 사탄을 남겨 둔다면? 뭐라 말하기 힘들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공의이다. 하나님이 하는 일을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이 하는 것은 모두 공의롭다. 다만 사람이 알지 못할 뿐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여태까지 제 상상과 관념으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인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믿은 후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르며 헌신했으니까, 감옥에서 고초를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했으니까 하나님은 마땅히 저를 지켜 주셔야 한다고, 암에 걸리게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돌보거나 지켜 주시지 않으니 암에 걸려도 이상할 게 없다고도 생각했죠. 그게 하나님의 공의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이 제 관념대로 행하시지 않아 제가 암에 걸리자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행사가 옳지 않다고 여기고 원망과 오해를 잔뜩 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한 제 인식이 이방인들의 거래 관점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을 한만큼 돈을 받아야 한다고, 마땅한 몫을 얻지 못하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 거죠. 하나님 말씀을 읽은 후 저는 하나님은 공의로운 본질을 지니고 계시며, 하나님이 어떻게 행사하시든 거기에는 그분의 뜻과 지혜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일의 표상만 보거나 관념과 상상에 근거해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생기고 하나님을 판단하거나 거역하게 되기가 쉽죠! 저는 병고가 임한 것이 화를 입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번 병고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다면, 저는 스스로가 이렇게 인성도 이성도 없는 사람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사가 제 관념에 맞지 않으면 이치를 따지며 맞섰는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병고를 겪으면서 저는 제 실제 분량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무리한 요구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실로 훌륭하고 지혜로웠죠!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한 채 제 관점으로 그분의 공의 성품을 판단했습니다. 정말이지 눈이 멀어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겁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십니다. 저는 보잘것없는 피조물에 불과하고요. 하나님이 저를 어떻게 대하시든 당연한 것입니다. 하물며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 했고, 비이성적으로 하나님께 요구했습니다. 설령 제가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공의이니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오늘 제가 죽든 살든,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시든 그것은 모두 적절한 처사이니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는 제가 마땅히 지녀야 할 이성이고요.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얼마간 인식하게 되자 마음도 한결 밝아지고, 더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오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어떻게 대하시든 원망 없이 순종할 수 있었죠.

그 후,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고 죽음을 대하는 법을 깨달아 마음속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지 못하고 운명이 누구에 의해 좌우되는지도 깨닫지 못한다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밖에 없다. 수십 년 동안 삶을 영위하면서 창조주의 주재를 깨달은 사람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순수하게 이해하는 사람이며, 삶의 이유를 깊이 깨달은 사람이다. 또한 창조주의 주재를 제대로 이해하고 경험한 사람이고, 더 나아가서는 창조주의 권병 아래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은 창조주가 사람을 만든 의미를 이해한 것이다. 또 사람은 마땅히 창조주를 경배해야 하고, 사람의 모든 것이 창조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머지않은 미래에 창조주께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도 안다. 이런 사람은, 삶은 창조주가 마련한 것이고, 죽음은 창조주의 주재에 달려 있으며, 삶과 죽음 모두 창조주의 권병 아래 예정돼 있음을 안다. 따라서 사람이 이런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면 자연스레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담담히 내려놓게 된다. 또한, 무턱대고 저항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곧 닥칠 모든 것을 흔쾌히 수용하고 순종하며, 창조주가 마련한 삶의 마지막 관문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창조주의 주재를 경험하고 창조주의 권병을 알아 가는 기회로 삼고, 또한 창조된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이행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다면, 분명 올바른 인생관을 가지게 될 것이고, 창조주의 축복과 인도에 따라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창조주의 빛 속에서 행하고, 창조주의 주재를 깨달으며, 창조주의 권세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또 창조주의 경이로운 행사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창조주의 권병을 증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두말할 필요 없이 창조주의 사랑을 받고 창조주에게 열납될 것이다. 이런 사람만이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삶의 마지막 관문을 흔쾌히 맞이할 수 있다. 욥은 분명 죽음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가졌고 흔쾌히 인생의 마지막 관문을 맞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순조롭게 인생의 여정을 마쳤고, 삶의 사명을 완수하였으며, 창조주의 곁으로 돌아갔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욥이 아무런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창조주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평생 추구하고 얻은 것이 있었기에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창조주가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는 것에도 담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걱정 없이 성결하게 창조주와 마주할 수 있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제 생사와 화복(禍福)은 전부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십니다. 제게는 하나님께 요구할 명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당장 저를 죽게 하신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올바로 마주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이 지녀야 할 이성이죠. 저는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욥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어떤 환경이 임하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인식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오해하지 않았습니다. 판단하는 일도, 이치를 따지는 일도 없었죠. 그는 순종하며 의연히 죽음을 마주할 줄 알았습니다. 저는 욥을 본받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야 했으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했죠. 제 목숨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언제 가져가시든 순종해야 합니다. 죽은 후에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는 하나님께서 제가 평생 행한 일에 근거하여 판단하실 테고요. 하나님께서는 아직 저를 죽게 하지 않으셨으니 저는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회개하는 한편,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또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며, 힘닿는 데까지 제 본분을 이행해야 하고요. 여기까지 깨닫자 마음이 한결 밝아졌고, 죽음이 그리 두렵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더 가까워졌죠.

그동안 자매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제 내적 상태는 점점 좋아졌습니다. 당시 저는 화학 요법을 네 번 더 받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화학 요법에 대한 신체 반응이 너무 커서 방사선 치료만 해야 했죠. 그런데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도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살 수 있을지는 하나님께 달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평소 하나님 말씀을 많이 묵상하며 찬양을 들었죠. 그렇게 한동안 지나자 몸이 점점 좋아지더니 정상인 같아졌습니다. 병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환자가 아니라 간호사라고 생각할 정도였죠. 이윽고 저는 40일간의 병실 생활을 마치고 퇴원했습니다. 검진 때 의사는 자궁의 종양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말에 제 귀를 의심했죠. 한 번 더 물어봤지만, 의사는 확신에 찬 말투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너무도 감격스러웠습니다. 오리알 크기의 종양이 사라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문득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으며,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진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모든 존재는 생명이 있든 없든 전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새로워지며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중에서) 그렇습니다. 만사와 만물은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죽은 것이든 살아 있는 것이든 모두 하나님이 주재하고 주관하시며, 하나님의 생각대로 배치되죠. 사람들은 제가 살아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의사는 종양이 너무 커서 수술도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그 큰 종양이 뜻밖에도 사라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였습니다! 저는 무척 감동받았고, 하나님께 죄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몹시도 거역하고 패괴되어 비이성적으로 하나님께 요구를 한 저는 하나님께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 패역과 패괴로 저를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를 구해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죠. 집에 돌아온 저는 계속 복음을 전하고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몸은 조금씩 원래대로 회복되었고요.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는 사람의 염원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사람의 취향과 상상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며, 이 일의 최종 결정권은 창조주, 하나님에게 있다. 이 일에서 사람이 협력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길밖에 없다. 즉,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고 구원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결국 좋은 결과와 좋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 그 반대의 길을 가는 경우, 그 사람의 앞날과 운명이 어떻게 될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에서 너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약속을 했는지, 하나님이 인류의 결말에 관해 뭐라고 말했는지, 하나님이 인류에게 무엇을 예비했는지 보지 마라. 이는 너와 무관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므로 네가 빼앗아 가질 수도 없고, 원한다고 얻어 낼 수도 없고, 뭔가와 바꿀 수도 없다. 피조물로서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너의 본분을 이행하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네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나머지 앞날과 운명에 관한 일, 앞으로 인류 종착지에 관한 일은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창조주가 주재하고 안배하는 것이지 그 어떤 피조물과도 관계가 없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우리와 관계가 없는데 왜 우리한테 알려 주시는 겁니까?” 너희와는 관계가 없지만, 하나님과는 관계가 있다. 이 일은 하나님만이 알고, 하나님만이 말할 수 있으며, 하나님만이 인류에게 이런 것들을 약속할 자격이 있다. 하나님이 아는 것을 하나님이 말하면 안 되느냐? 너는 네 앞날과 운명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앞날과 운명을 좇는데, 이는 틀렸다. 하나님은 네게 그것을 추구하라고 한 적이 없고, 그저 네게 알려 줬을 뿐이다. 이를 하나님이 너에게 그것을 추구할 목표로 삼으라 한 것이라고 착각했다면, 네가 너무 비이성적인 것이고, 네가 정상 인성의 사고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에 대해 네가 알고 있으면 그걸로 됐다. 너는 어떤 약속이든, 좋은 약속이든 일반적인 약속이든, 사람이 좋아하는 약속이든 혹은 별로 관심 없는 약속이든, 창조주가 주재하고 안배하고 결정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피조물은 오로지 창조주가 정한 올바른 방향과 길을 따라 걷고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의 본분이자 의무이다. 마지막에 네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하나님의 어떤 약속에 네 몫이 있는지는 네가 추구하는 바, 네가 가는 길, 그리고 창조주의 주재에 의해 결정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9)>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제가 마지막에 어떤 결말과 종착지를 맞이할지는 기도로 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과의 거래로 얻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 추구와 행동, 그리고 제가 걸어온 길을 보고 제 결말을 정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동안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하신 아름다운 종착지를 보면서 열심히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며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어떤 핍박과 환난이 임하든 계속 본분을 이행하기만 하면 구원받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제 생각과 바람대로 항상 제 결말과 종착지를 위해 뛰어다니고 추구했는데, 제가 걸어온 길은 바울의 길이었죠. 이런 식의 추구로는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지도 변화되지도 않기에 마지막에 드러나고 도태될 것입니다. 지금 저는 병에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죽게 하시지 않고 회개할 기회도 주셨죠. 이는 저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이제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해야지, 더는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할 수는 없었습니다. 인성과 이성을 갖추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죠. 앞으로 하나님이 제게 어떤 결말을 안배해 주실지, 그것이 복일지 화일지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제가 할 일은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그 후, 9년이 지났지만 병은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병이 제 목숨을 위태롭게 하기는 했어도 하나님은 제 목숨을 거두어 가거나 제 앞날을 없애 버리시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병을 통해 저를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며, 제 믿음의 불순물을 드러내 하나님을 믿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을 바꿔 놓으려고 하셨던 거죠. 이와 동시에 하나님은 제가 그분의 전능함과 주재를 진실로 인식하고 느끼며, 삶과 죽음을 올바로 대하고,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제일 먼저 사람의 수명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는지는 이미 하나님이 정해 놓았다. 하나님이 사람이 병으로 고통받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다. 사람은 그것이 병이라고 느끼지만, 사실 사람은 병이 아니라 은혜를 얻은 것이다. 사람은 먼저 이 일을 인식하고 확신하며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더없이 진실합니다. 제가 걸렸던 병은 하나님의 은혜이자 구원이었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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