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고통 때문에 근심하고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결혼하기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57세에 고혈압으로 혈관이 파열되어 반신불수가 된 후 15년을 누워만 지내다가 고통스럽게 돌아가셨고요. 아버지가 침상에 누워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은 제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습니다. 저 역시 고혈압에 협심증을 앓고 있어서 가끔은 머리 절반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저렸고, 몸에 크고 작은 병을 계속 달고 사느라 오랜 기간 약을 먹어야 했습니다. 저에게도 아버지와 같은 증상이 생기자 계속 걱정되었습니다. ‘이제 나도 나이가 적지 않은데, 이러다 어느 날 아버지처럼 병으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살아가지? 그럼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겠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또 어떻게 구원받지?’ 이 때문에 몸에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혔습니다. 한번은 도움이 필요한 교회가 있었는데, 윗선 리더가 저와 교제하며 그곳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걱정됐습니다. ‘그 교회는 문제가 좀 많아. 거기 가면 신경도 많이 쓰고 대가도 많이 치러야 해.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거기 가서 더 힘들게 일하면 병이 심해지지 않을까? 그러다 정말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이런 이유로 저는 거절했습니다. 몇 개월 후, 그 교회에 인력이 너무 부족해 윗선 리더가 다시 찾아와 그 일로 교제했을 때 저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지난번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그 뒤로 괴로웠는데, 이번에는 더 이상 본분을 거절할 수 없어.’ 그래서 저는 가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에 처음 도착했을 때, 모든 사역이 하나같이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사역 성과를 높이려면 많은 문제를 처리하고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죠. 그렇게 매일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머리가 또 저리기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에 작은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괴로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낮에도 기력이 없었으며, 온몸이 노곤하고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슬슬 걱정됐습니다. ‘증세가 계속되면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아버지처럼 혈관이 막히기라도 하면 쓰러지는 거 아냐? 식물인간이 되거나 마비가 오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 그러면 본분은 어떻게 이행하고, 구원은 어떻게 받지?’ 저는 늘 병을 걱정하면서 살았습니다. 복음 사역을 담당했지만 복음 사역의 세부적인 문제에 신경 써서 관여하고 싶지 않았고, 사역의 세부 사항도 거의 감독하지 않았습니다. 과로로 쓰러질까 봐 겁이 났으니까요. 새로 뽑힌 리더에게 이 번거로운 복음 사역을 얼른 넘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 교회는 원래부터 복음 사역 성과가 좋지 않았는데, 저까지 구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바람에 복음 사역은 전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오로지 병세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도져서 목숨이라도 잃으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해 구원받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본분을 이행하고 있고, 하나님도 지켜 주실 테니 무슨 큰 병은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마음속 우려가 수시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특히 70세가 다 되어 가는 파트너는 몸에 별문제가 없는데, 그보다 어린 제가 병을 달고 산다는 사실에 마음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건강하니까 본분도 가볍게 이행하는구나! 내 몸은 왜 이 모양일까?’ 정말 무력감이 들었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기운이 빠졌습니다. 2022년 12월 말에는 전염병이 또 한 차례 기승을 부렸습니다. 원래부터 기저 질환을 많이 앓고 있던 저는 전염병까지 걸려 고열이 나고, 온몸이 쑤시고 무기력했으며, 기침할 때는 피까지 섞여 나왔습니다. 입맛이 하나도 없어서 보름 동안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고요. 그 당시 마음이 너무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이제 끝이구나. 몸이 정말 다 망가졌어. 이번에 목숨을 잃으면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지? 어떤 사람은 전염병에 걸려도 며칠 기침하고는 다 나았어. 나는 계속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데 며칠씩 고열이 나고 밥도 못 먹고 있어. 왜 이렇게 심하게 아플까?’ 생각하면 할수록 의기소침해지고 씁쓸해졌습니다. 얼마 후, 저는 열이 내렸지만, 이번에는 파트너 둘이 감염되었습니다. 교회 사역을 할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허약한 몸을 이끌고 예배에 나가야만 했죠. 그렇게 아픈 상태로 이삼일을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전염병 때문에 많은 사역에 협력하는 것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는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역이 너무 어려운 데다가 내 몸도 점점 안 좋아지고 있어. 어쨌든 지금은 사역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니, 집에 가서 몸을 좀 추스르는 게 낫겠어. 그럼 건강이 좀 좋아질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접대 집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협심증이 왔습니다. 순간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리더를 계속 맡다가는 몸이 버티지 못할 거야. 이 본분은 그만두는 게 낫겠어.’ 저는 무척 의기소침해진 상태로 이삼일을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몸이 좋아지려면 역시 스스로 잘 챙기고 쉬어야 한다고, 그게 현실적인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저는 리더에게 편지를 써서 제 생각을 알렸습니다. 편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로 지금까지 몸도 이렇게 되고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드러났구나. 이러고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어?’ 집에 와서 자리에 누웠는데, 마음이 허전해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죄책감이 밀려왔죠. ‘내가 담당한 복음 사역은 안배해야 할 세부 내용이 많아. 내가 집에만 있으면 틀림없이 교회 사역에 지장을 줄 거야. 내 이런 행동은 하나님 뜻에 맞지 않아. 이건 대놓고 사역을 내팽개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 아니겠어?’라고 생각한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왜 제게 임한 환경 앞에서 마음이 이렇게 연약해지고, 본분도 이행하지 않으려 하는 걸까요? 이런 행동은 당신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겨 낼 수가 없습니다. 전혀 힘이 나질 않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막막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저를 깨우쳐 이끌어 주시고, 제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십시오.”
구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질병 속에 있든 아니면 고통 속에 있든 네가 숨이 붙어 있는 한, 네가 살아 있는 한, 네가 말하고 걸을 수 있는 한, 본분을 이행할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럼 너는 성실하고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해야지, 피조물의 본분과 창조주가 네게 맡긴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네가 죽지 않는 한 너는 너의 본분을 완수해야 하고 제대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그리고 <사람 구원하기 얼마나 어려운가>라는 하나님 말씀 찬양도 한 곡 들었습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을 따르는 길을 걸으며 진리를 추구해 인생을 얻고, 하나님을 인식하고, 최종적으로는 베드로처럼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 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람은 가다 보면 치우치게 가며 육적인 즐거움에 연연하게 된다. 고통을 좀 겪으면 소극적이고 나약해지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도 없게 된다. 성령도 역사하지 않게 되고,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이전에 여러 해 동안 믿음에 쏟았던 노력을 전부 망치게 되는데, 이는 정말 위험한 일이다! 고통을 얼마나 겪었든, 설교를 얼마나 들었든, 얼마나 오래 따랐든 다 헛된 것이 되니 이 얼마나 아쉬우냐! 사람이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쉽지만 바른길을 걷는 것, 베드로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생각이 맑지 않다. 바른길이 무엇인지, 치우친 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무리 설교를 많이 듣고 하나님 말씀을 많이 보았다 해도 마음속으로 하나님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믿지 못한다. 참도임을 알면서도 이 길을 가지 못한다. 사람은 얼마나 구원하기 어려우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으면서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저는 찬양을 들으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 마음을 감동시켰고, 제게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비록 몸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말하고 걸을 수 있는 한 피조물의 본분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 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니 아직은 꼼짝도 못 할 만큼 심각한 상태도 아니고, 단지 몸이 상대적으로 좀 허약해진 것일 뿐이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려면 고생도 좀 해야 하는데, 저는 본분을 내팽개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죠.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으면서 하나님이 선포하신 수많은 말씀을 들었는데, 설마 정말 본분을 포기하려는 거야? 그건 너무 비양심적이잖아!’ 계속 이대로 의기소침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치욕의 표시일 테니까요. 제 병이 언제 좋아지든 지금 숨이 붙어 있는 한 본분이 아무리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 협력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덕분에 저는 본분을 이행할 동력을 얻었고, 마음이 단번에 한결 홀가분해졌으며, 내적 상태도 어느 정도 좋아졌습니다. 저는 다시 본분을 이행하러 돌아갔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은 체질이나 체력이 좋지 않아 크고 작은 병치레가 잦고 심지어 일상의 기본적인 생활마저 무리가 되니 정상인처럼 생활하고 활동할 수 없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본분 이행 과정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고 아플 때가 많다. 허약한 사람, 실제로 병이 있는 사람은 물론 이미 알고 있거나 잠재하고 있는 병이 있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이런 실제적인 고충의 존재로 인해 부정적 정서에 빠져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한다. 무엇을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느냐? 자신이 늘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동분서주하느라 늘 피곤하니 몸이 갈수록 허약해지지는 않을지, 40, 50살이 되면 몸져눕는 것은 아닐지 걱정한다. 이 모든 걱정이 성립하겠느냐? 이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대응법이라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누가 이를 책임지거나 값을 치를 수 있겠느냐? 몸이 허약하고 체질이 안 좋은 사람은 이를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한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늘 이렇게 생각한다. ‘아, 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싶은 의지는 있어. 그렇지만 원래부터 내게 병이 있으니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고 간구해야지.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면 걱정이 안 되는데, 본분을 이행하다 지치면 병이 재발하지 않을까? 정말 재발하면 어쩌지? 만일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난 돈이 없어. 빚을 내서라도 치료하지 않으면 병세가 악화하지 않을까? 악화하면 죽는 것은 아닐까? 이런 죽음을 정상적인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 죽고 나면 생전에 내가 이행했던 본분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려나? 이걸 선행이라고 할 수 있고,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또 병에 걸린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자기에게 실재하는 병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있다. 예컨대 위장병, 요퇴동통, 관절염, 류머티즘, 피부병, 부인병, 간 질환, 고혈압, 심장병 등 말이다. ‘계속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 집에서 이 병을 치료해 줄까? 병세가 악화하면 내 본분 이행에 영향을 줄 텐데, 하나님이 치료해 주실까? 남들은 하나님을 믿고 완쾌되었다는데 내 병도 나을 수 있으려나? 하나님이 남들에게 은총을 베푸신 것처럼 내 병도 치료해 주실까? 내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이 치료해 주실 거야. 내가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치료해 달라고 간구해도 하나님이 치료해 주시지 않으면 난 어쩌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그는 마음속 깊이 염려하게 된다. 손안의 본분은 멈추지 않고, 해야 할 일도 계속하고 있지만 자신의 질병과 건강, 장래, 생사를 놓고 늘 생각에 잠긴다. 결국 ‘하나님이 치료해 주시고 보호해 주실 거야.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내가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실 거야.’라고 혼자 결론을 내린다. 이런 생각은 아무 근거도 없으며, 심지어 일종의 관념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사람의 이런 관념과 상상으로는 자신의 그 어떤 실제적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사람은 마음속 깊이 자신의 건강과 질병을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면서도 누가 책임질 수 있는지, 책임질 사람이 있기나 한지는 알지 못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교제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아직도 제가 수시로 건강 때문에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부정적인 정서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제가 오래전부터 부정적인 정서에 단단히 얽매여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혈압, 협심증 등 기저 질환으로 늘 몸에 여러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본분을 이행하다가 고생으로 몸이 조금만 힘들어지면 걱정이 앞섰습니다. ‘병이 더 심해져서 목숨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면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지?’ 하면서요. 저는 구원받을 기회를 잃는 게 너무 두려웠습니다. 건강이 그렇게 나쁘지 않을 때는 그래도 본분을 꾸준히 이행할 수 있어서 본분에 헌신하면 하나님도 저를 지켜 주실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몸에 증상이 조금만 나타나면 근심스러운 정서가 한꺼번에 튀어나왔습니다. 오로지 제 미래만 걱정되었고, 본분을 이행해도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육을 생각할수록 죽음이 두렵고 질병이 가져오는 불편과 고통이 두려웠습니다. 특히 병상에 누워 매일 극심한 고통을 견디며 하얀 벽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너무나 절망적이고 삶에 아무 희망도 없었던 아버지를 떠올리면 저도 나중에 그렇게 될까 봐 몹시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언제나 제 육만 생각했고, 잔뜩 위축되어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복음 사역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도 대가를 치르며 알아보려고 하지 않아서 사역은 내내 진전이 없었고요. 특히 전염병에 걸려 병세가 악화되자 걱정과 근심은 더 커지고 본분도 이행하기가 싫어져서 바로 내팽개치고 집으로 돌아왔고요. 저는 부정적 정서가 가져온 영향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근심과 염려 속에 살면 점점 더 하나님을 거역하게 되고, 삶은 점점 더 답답하고 고통스러워질 뿐입니다. 사실, 저도 사람의 생로병사는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시므로 제가 통제할 수 없고, 질병을 피하는 방법도 없으니 올바르게 대하고 하나님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걱정해도 바뀌는 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앞날과 퇴로만 생각하느라 저도 모르게 근심과 염려 속에서 살면서 스스로에게 괜한 부담과 고통만 더한 거죠. 저는 정말 너무나도 어리석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더 이상은 부정적인 상태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질병에 걸렸을 때 사람은 어떤 길을 걸어야 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 근심, 염려, 걱정에 빠진 채 자신의 장래와 퇴로를 위해 고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때일수록, 이런 특수한 환경과 배경에 있을수록, 그리고 이렇게 절실한 고충이 있을 때일수록 사람은 더욱 진리를 구해야 하고,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네가 예전에 들었던 설교와 깨달은 진리가 물거품이 되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네게 그런 고충이 있는 때일수록,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해야 하는 때인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그런 환경을 배치하고 그런 조건을 안배한 목적은 너를 근심, 염려, 걱정의 정서 속으로 몰아넣기 위한 것도, 네가 질병에 걸렸을 때 과연 하나님이 치료해 주는지 시험해 보고 실제 상황을 알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네게 그런 특수한 환경과 조건을 배치한 목적은 그런 환경과 조건에서 네가 실제적인 공과를 배우고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 더 깊이 진입할 수 있게 하여 더욱 분명하고 정확하게 하나님이 사람과 일, 사물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든 없든, 분명하게 지각할 수 있든 없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순종이지, 반항이나 거부가 아니며, 시험은 더더욱 아니다.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네가 만약 반항하고 거부하며 시험한다면 마지막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반대로 네가 만약 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피조물이 창조주의 지배에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임하게 한 환경에서 네가 어떤 공과를 배우고 자신의 어떤 패괴 성품을 인식해야 하는지를 구하고,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네가 제대로 간증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이를 수 있다면, 이것이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질병 하나를 안배한다면 크고 작음을 떠나 그 목적은 네가 질병의 경과, 인간에 대한 질병의 해악, 인간에게 미치는 질병의 여러 불편과 고충 및 감각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질병 속에서 질병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질병 속에서 공과를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모색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드러내는 패괴 성품과 하나님을 대하는 옳지 못한 태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함으로써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하나님은 질병을 통해 너를 구원하고 정결하게 하고자 한다. 너의 무엇을 정결하게 하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너의 여러 사치스러운 욕망과 요구,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해, 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여러 계산과 판단 그리고 계획을 정결하게 한다. 하나님은 너 스스로 계획하고 판단하며 하나님에 대해 사치스러운 욕망을 품는 것을 금하고 오직 네가 순종하기를, 순종을 실행하고 체험하면서 질병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하나님이 네게 준 이런 건강상의 조건에 대한 태도, 그리고 네 개인적 소원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이런 것들을 인식하면 너는 하나님이 네게 준 질병이라는 환경이나 신체 조건이 네게 무척 많은 이점이 있다는 것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네 성품의 변화, 네 구원, 네 생명 진입에 대단히 커다란 도움이 된다. 그러니 질병에 걸렸을 때 사람은 늘 벗어나려 하지 말고 도망치거나 거부하려고도 하지 마라.』(<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질병에 걸렸을 때는 근심과 염려라는 부정적 정서에 빠져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치료해 주실지 시험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환경에서 하나님 안배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하죠. 하나님이 일부러 저를 괴롭히려고 질병에 걸리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가 진리를 구하고 배워야 할 공과를 알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질병에 걸려 몸이 고통스러웠을 때를 돌아보면, 저는 제 앞날과 퇴로를 염려하며 죽으면 구원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환경을 마련한 것은 꼭 저를 내치시는 것 같다고 생각했죠.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오해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마련해서 제가 실제로 질병을 겪게 함으로써 제 내면의 패괴와 부족함을 드러내셨습니다. 덕분에 제가 입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죠. 또 저는 질병에 걸리자 제 육만 생각하느라 교회 사역을 해야 할 사람이 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분을 거절했고, 나중에 억지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본분에 마음을 쓰거나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전염병에 걸려 병세가 악화되자 저는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며 대항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본분을 내팽개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바람에 교회 사역에 피해를 줬고요.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 않았고, 본분을 대하는 태도도 무척 오만불손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몸이 건강할지라도, 이렇게 많은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할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요. 하나님이 제게 이 질병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을 믿는 제 불순물을 정결케 하고 제 사탄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고심을 헤아릴 줄 모르고, 질병에 걸리자 늘 근심과 염려 속에 살면서 하나님이 안배하신 환경에 맞서고 반항했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계획하고 안배하려 했고, 심지어 하나님이 저를 내치시려는 줄로 오해했죠. 저는 정말 너무나 패역하고,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이었습니다! 더는 이런 태도로 질병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질병 속에서 제 패괴 성품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후 저는 질병에 걸리면 항상 근심하고 염려하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죠.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모른 척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하나님은 제 내적 상태를 폭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제 관점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지 않을까요? 저는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과 거래를 했습니다. 평소 본분을 이행할 때 건강에 큰 문제가 없으면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았으니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고, 본분 이행에 기꺼이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려 했습니다. 하지만 병에 걸렸을 때 증상이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본분에 마음을 쏟지 않고, 복음 사역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앞날과 운명만 생각하며 죽어서 복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했죠. 전염병으로 악화된 병세가 보름이 지나도록 좋아지지 않자 저는 하나님이 저를 지켜 주지 않았다고 원망했고, 심지어 본분도 이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복을 받으려는 욕망이 산산조각 나자 민낯을 드러낸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에게서 고개를 돌렸으며, 본분을 내팽개치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대립각을 세우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고,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대항했죠. 이런 제게 인성이나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을까요? 이런 환경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육은 조금 고통받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의 불순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성품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하나님이 제게 행하신 일이 전부 구원이자 사랑임을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죽음이라는 일에 대해 얼마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병세가 악화되거나 죽음이 닥치게 되면 한 가지만 기억하거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말기 암이거나 사망률이 높은 병일지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했든 네가 죽음을 두려워하면 순종이 없는 것이다. … 이 병이 어느 정도 깊어지면 죽을 수도 있고, 나이를 떠나 이 병에 걸린 사람의 사망률이 무척 높으며 발병에서 사망까지의 주기가 무척 짧다면 네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 누구든 한 번은 죽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런 병에 걸린 김에 순종하는 훈련을 해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겠다. 죽음을 두려워할 순 없어.’ 죽음은 삶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고통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감각이 사라지고, 눈을 한번 감으면 숨이 멈춘다. 그리고 유체가 이탈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죽음의 과정으로, 이토록 단순한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마땅히 가져야 할 한 측면의 태도이다. 또 네 병이 악화하지는 않을지, 완치되지 않으면 죽지는 않을지, 얼마 후면 죽을지, 죽을 때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네가 걱정해야 할 바가 아니다.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이니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이 되면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으며 없애려 해도 없앨 수 없는데, 그것이 바로 네 운명이다. 네 운명이란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고 안배한 것이다. 네 수명, 네가 죽을 나이와 시간을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았는데, 네가 무엇을 걱정하느냐? 네가 걱정한들 그 어떤 사실도 바꿀 수 없으며, 그 사실이 발생하는 것도, 그날이 오는 것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네 걱정은 불필요한 것이고 네 병에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사람의 죽음은 모두 하나님이 운명으로 정해 놓았으니 제가 아무리 걱정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증상이 나타나서 몸이 불편할 때마다 저는 그저 병세가 심해져서 갑자기 목숨을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뿐이었습니다. 사람이 죽는 시기는 하나님이 미리 안배해 놓으신 것이지 본분을 얼마나 고생스럽게 이행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했던 거죠. 우리 고모는 젊었을 때 병약한 체질이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들락거렸습니다. 다들 고모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은 나이가 들었는데도 건강은 오히려 갈수록 좋아져서 80이 넘은 나이에도 혼자 일상생활이 가능합니다. 반면 고모부는 늘 건강하고 아픈 데도 거의 없었는데 갑자기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요. 생활 속 사례에서 보듯, 사람의 생사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달려 있습니다. 제게는 여러 가지 병이 있지만 병세가 악화되고 제가 죽는 문제는 걱정하고 우려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다 하나님의 주재에 달렸죠. 죽느냐 사느냐는 본분을 힘들게 이행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육을 잘 돌보는 사람들에게도 죽음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고 늘 죽음을 걱정하고 염려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없었던 거죠. 사실, 누구든 한 번은 죽는 것이 자연법칙이기에 죽음이 닥쳐도 두려워할 건 없습니다. 사람의 생사는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며, 죽음이 언제 찾아오든 의연하게 마주해야 합니다. 평소에 본분에 충성을 다하고 온 힘을 바쳐서 죽는 순간 여한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고요.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평안해집니다. 만약 제가 늘 근심과 염려라는 부정적 정서로 살아가며 육을 위해서만 계획한다면, 본분에 진심을 쏟지 않고 온 힘을 다하지 않아서 아쉬움과 죄스러운 마음을 남긴다면, 교회 사역을 지체한다면 건강이 아무리 좋다 해도 삶에 의미가 없을 것이고, 결국에는 하나님께 징벌받는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그 후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는데 무척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그저 육적으로 놀고먹기 위함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너희가 말해 보거라.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면서 최소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다. … 네가 사는 동안 너는 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단한 사명과 본분,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한 가지는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에는 복음 전파 사역에 온 힘을 기울이며 평생을 쏟아붓고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많은 사람을 얻은 사람이 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고 가치 있다고 위안을 느낀다. 그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하거나 생을 마감할 때 그가 한 이 모든 일과 걸었던 길을 돌이켜 보면서 마음에 위로받고 참소가 없으며 아쉬움도 없다. 그리고 교회 리더를 맡거나 한 측면의 사역을 담당할 때 여력을 남기지 않고 자기 역량의 최대치를 발휘하며 온 힘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해야 할 사역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며 대가를 치르는데 많은 사람이 연약하고 부정적일 때 그의 양육과 인도, 도움과 붙듦 덕분에 강건해지고 일어서며,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증거하게 된다. 이 외에도 그가 리더를 맡는 동안 여러 중요한 사역을 완수하여 많은 악인을 제명하고 적지 않은 하나님의 선민을 보호하며 일부 막대한 손실을 만회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그가 리더를 맡은 기간에 이룬 것이다. 자신이 걸었던 길과 그동안 감당했던 사역, 치렀던 대가를 돌이켜 보면 아쉬움도, 참소도 없으니,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고, 가치 있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마음이 편안하고 위안을 느낀다. 이러면 얼마나 좋으냐! 이것이 성과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위안을 느끼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사람이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를 추구하여 얻게 되는 효과이자 수확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 살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나 하기 좋아하는 일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얘기해 보자. 자신의 위치를 찾은 후 자기 본연의 위치에 제대로 서서 그 본연의 위치를 지키면서 모든 심혈을 기울이고 대가를 치르며 온 힘을 다해 자기가 해야 할 일, 완수해야 할 일을 잘해 낸다면,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얘기할 때 스스로 마음에 참소나 아쉬움 없이 상대적으로 만족감을 느끼고, 위안과 수확이 있으니 값진 삶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목표가 큰 것이냐? 크고 작음을 떠나 참된 것인지 대답해 보거라. (참됩니다.) 구체적이지 않으냐? 충분히 구체적이고 참되며 실제적이다. 네 삶이 값지고 마지막에 이런 수확을 얻기 위해 네 육체가 피로하여 병에 걸리거나 몸이 병들더라도 약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이 의미 있지 않겠느냐? (의미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육적으로 즐기려는 것도 그저 놀고먹는 것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의 삶의 가치가 아니며 올바른 길도 아니다. 사람의 삶의 가치,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은 가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고,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올바른 길, 올바른 일이라 한다. 네가 말해 보아라. 사람이 하나의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고 진리를 추구하고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 가치 있지 않겠느냐? 네가 만약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을 추구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기를 원하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기 원한다면 너는 온 힘을 기울이고 대가를 치르며 시간과 세월을 들이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 기간에 병이 들어도 대수가 아니다. 그것이 너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다. 평생 온종일 빈둥거리며 토실토실 건강하게 관리한 몸으로 장수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둘을 비교하면 어떤 삶이 가치 있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마음에 위안이 되고 아쉬움이 남지 않겠느냐?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면 마음속에 수확과 위안이 있다. 토실토실 살만 찌워 죽을 때가 되어서도 혈색이 좋은 사람은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지 않았으니 죽을 때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헛된 삶이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세 글자로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 헛된 삶이다! ‘헛된 삶’이란 무슨 의미겠느냐? (인생을 허비했다는 것입니다.) 헛된 삶, 허비한 인생, 이 두 말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 말이냐? (삶의 끝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얻어야 하느냐? (진리를 얻거나 삶에서 의미 있고 값진 일을 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하지 못하면, 평생 육적인 것을 위해 살면 헛된 삶이었다고, 인생을 허비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지금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얻었고, 가장 정의로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면 육은 즐겁고 고생도 별로 안 하겠지만, 죽음에 이르렀을 때도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그저 헛되이 한세상을 보냈을 뿐이죠. 저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 덕에 리더를 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최선을 다해 협력하고 상부의 요구에 따라 교회의 각 사역을 잘 해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이 진리를 추구하도록 이끌고,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나라 복음의 확장에 힘을 보태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고요. 이와는 반대로, 사람이 평생 육을 위해서만 산다면 공허하고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건강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본분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처럼 말입니다. 집에 있으면 육도 고생스럽지 않고, 교회의 그 많은 사역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제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허전하고,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며, 진정한 기쁨과 평안이 없었습니다. 육을 위해 사니까 아무 의미가 없고 아무리 건강을 잘 챙겨도 여전히 공허하기만 했죠. 본분을 이행하면 조금 피곤하고 고생스럽더라도 진리를 얻을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평안합니다. 이렇게 살아야 가치가 있는 거고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만 충실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고, 마음에도 진정한 평안과 기쁨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육을 아끼면 공허하게 살 수밖에 없고, 진리를 추구해서 구원받을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점을 깨닫고 나니까 본분을 이행할 동력이 생겼습니다. 저는 복음 사역이 당장 성과가 나지 않으니 세부 사항을 실제로 알아보고 원칙을 구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힘닿는 데까지 다하고 열심히 사역 성과를 끌어올려 본분에서 부끄러움도 아쉬움도 없도록 해야 합니다. 막상 실제로 협력할 때 가끔 난관에 부딪히면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몸이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아질까 봐 걱정되기도 했지만, 더는 근심과 염려 속에서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병이 더 악화된다 해도 예전처럼 당신을 거역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생사는 당신 손에 달렸으니 당신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나니 우려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를 찾아가 복음 전파의 고충과 문제를 함께 교제하며 해결했습니다. 다들 함께 원칙을 구하고 방안을 의논하니 본분 이행에 길이 생기고, 복음 사역에도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으며, 몇몇 원칙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2023년 3월에는 교회에서 윗선 리더 선거가 있었는데, 제가 선출되었습니다. 이 본분은 부담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니 건강이 염려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육만 생각하기보다 이 본분 이행의 기회를 정말 소중히 여기기로 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적당히 컨디션을 조절했습니다. 몸이 별로 안 좋을 때는 좀 쉬고, 시간을 내서 운동도 했더니 본분을 이행할 때도 그리 힘들지 않았고, 질병에 얽매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저리던 것도 차츰 좋아졌고요. 이제는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어떻게 하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만 생각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런 환경을 마련해 주셔서 조금이나마 공과를 배울 수 있고, 더 이상 질병 때문에 근심하거나 염려하지 않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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