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을 대할 때 지녀야 할 태도
저는 전에 교회에서 새 신자를 양육했습니다. 그런데 자질이 부족하고, 알고 있는 진리도 별로 없어서 새 신자들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늘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느라 모르는 게 있어도 창피해서 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새 신자들이 제때 양육받지 못했고, 저는 그것 때문에 교체되었습니다. 그 후 리더는 저를 사무 일에 배치했습니다. 본분을 조정받고 나서 많이 괴로웠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특히 지금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양육자가 급히 필요한 시기인데, 이 시점에 본분이 조정되었다는 것은 철저히 드러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알면 나를 어떻게 볼까? 자질도 별로 없고, 그저 힘쓰는 일이나 허드렛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처음에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새 신자 양육을 담당했는데, 지금은 사무 일을 맡아 졸지에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본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죠. 아무리 잘해도 힘쓰는 일에 불과하고, 끝까지 힘써도 결국 도태될 것이니까요. 생각할수록 괴로웠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잘할 마음이 나지 않아서 매일 형식적으로 일하는 것에 만족하고 전혀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저녁에 처리해야 일이 많이 남았는데도 일찍부터 졸음이 쏟아지곤 했습니다. 한번은 양육을 담당하는 자매한테서 예전 사역에 관한 일부 서류를 정리하는 일을 좀 도와 달라고 문자가 왔습니다. 문자를 보자마자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난 이제 양육 사역을 그만뒀는데, 왜 또 나보고 정리해 달래?’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고 해서 마지못해 알았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양육하는 다른 자매도 저한테 일을 좀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정말 내키지 않았습니다. ‘사무 일이 정말 허드렛일을 하는 게 맞네. 아무나 필요하면 부르니까. 그게 내 일도 아닌데, 왜 다 나보고 도와 달라는 거야?’ 그렇지만 거절하면 또 자매가 저더러 교회 사역을 지키지 않는다고 할까 봐 어쩔 수 없이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본분이 조정된 일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리더가 괴롭힌다고 생각해서 리더에게도 무척 반감을 품었습니다. 그러다 전에 같이 사역했던 자매 앞에서 무심코 말을 꺼냈습니다. “나는 새 신자 양육할 때 하루도 빈둥거리지 않고, 할 일도 다 했거든요. 사역하다가 문제나 어려움이 생겨도 리더는 도와주지 않다가 그냥 교체해 버리더라고요. 에이, 관두죠 뭐. 교체된 일에도 분명 제가 배울 공과가 있겠죠.” 제가 그렇게 말하니까 파트너 자매도 리더가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많이 억울했습니다. ‘왜 나한테 사무 일을 맡겼을까? 내가 허드렛일밖에 못 한다는 건가? 양성할 가치가 전혀 없다는 건가? 계속 이러는 건 폐물이나 마찬가지잖아.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도태되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얼른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왜 이럴까요? 모두 본분을 이행하는 건데 왜 저는 사무 일을 맡은 게 이렇게 불만스러울까요? 하나님, 제가 자신을 인식해서 패괴 성품으로 살지 않도록 깨우치고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고 하나님께서 본분 조정을 대하는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신 방면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적합한지를 알려면 네 장점을 보면 된다. 만일 교회에서 안배한 본분이 네가 잘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아니라면 의견을 제기하여 소통을 통해 해결해도 된다. 하지만 네가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이고 또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본분인데 고생하는 것이 싫어서 이행하지 않으려 한다면, 너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만약 네가 순종하기를 원하고 육을 저버릴 수 있다면 비교적 이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늘 본분의 높고 낮음을 따지면서 어떤 본분을 이행하면 남들에게 무시당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네게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너는 본분을 왜 그렇게 편협하게 이해하느냐? 네 뜻대로 본분을 선택하면 그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꼭 그렇지도 않다. 핵심은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데 있다.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네가 좋아하는 본분이라고 해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원칙 없이 늘 자기 기호대로만 행동하는데, 그 결과 어려움에 부딪히면 늘 해결하지 못하고,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건성으로 대충 대해 마지막에는 내쳐진다. 이런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 악인과 적그리스도는 본분을 이행할 때 올바른 태도를 보이는 법이 없다. 본분이 조정될 때 그들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겠느냐? ‘나를 봉사자라고 생각해? 나를 쓸 때는 봉사나 좀 하라고 하고, 나를 쓰지 않을 때는 차 버리잖아. 나는 그런 봉사는 하고 싶지 않아! 난 리더 일꾼이 되고 싶어. 그건 화려하고 눈에 띄니까. 나한테 리더 일꾼이 되지 못하게 하고 힘만 쓰게 하려 한다면 어림도 없지!’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떤 태도겠느냐? 순종이 있느냐? 그는 무엇으로 본분 조정이라는 일을 대하고 있느냐? 혈기와 사람의 뜻, 패괴 성품으로 대하고 있지 않으냐? 본분 조정을 그렇게 대한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먼저, 그가 다음에 이어질 본분 이행 과정에서 충성과 진심을 다할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그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겠느냐? 그의 내적 상태는 어떠하겠느냐? (의기소침할 것입니다.) 의기소침한 상태의 본질은 무엇이냐? 대항하는 것이다. 대항하며 의기소침하게 행동한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소극적이고 대항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이 늘 소극적이고 대항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본분 이행에 적합하겠느냐?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악순환이며,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 것이겠느냐? 그는 옳은 길을 걷지 않으며, 진리를 구하지 않고 순종하지도 않으며, 하나님 집에서 그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원래는 무척 합리적인 본분 조정인데 적그리스도는 그것을 두고 자신을 괴롭힌다고, 사람 취급을 안 한다고 말한다. 또 하나님 집에는 사랑이 없어 그를 기계처럼 부려 먹는다고, 그가 필요할 때는 부르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가차 없이 내친다고 말한다. 이는 억지 아니겠느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양심과 이성이 있겠느냐? 이런 사람은 인성이 없다! 더없이 합리적인 일도 그에게만 가면 왜곡되며, 매우 합리적인 방식도 왜곡되어 부정적인 사물이 된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사악함 아니겠느냐? 이렇게 사악한 사람이 진리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적그리스도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일이 닥치든 그는 비뚤게 생각한다. 어째서 비뚤게 생각하겠느냐? 그의 본성 본질이 너무 사악하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은 주로 사악함이고, 그다음이 흉악함이다. 이 두 가지가 적그리스도의 주된 특징이다.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성은 그가 어떤 일이 닥치든 올바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치우치게 생각하고 극단을 달리며 문제를 물고 늘어지게 한다. 또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게 하고 진리를 구하지도 못하게 한다. 곧이어 그는 주동적으로 공격하고 저항하고 보복하며, 심지어는 관념과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고, 일부 사람들을 선동하고 끌어들여 교회 사역을 교란할 것이다. 또 뒤에서 불평을 퍼뜨리며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하나님 집의 일부 행정 제도, 그리고 리더의 일 처리 방식을 판단하고 정죄할 것이다. 이것이 어떤 성품이겠느냐? 흉악함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일에서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상 왜곡해서 생각합니다. 단순한 본분 조정도 자기를 강등시킨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괴롭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극적이 되고 반항하며, 맡겨진 본분을 아무 때나 내팽개치며 교회의 사역을 나 몰라라 합니다. 적그리스도의 본성은 정말 너무 사악합니다! 제 모습을 떠올려 보니, 제가 딱 그 모양이었습니다. 본분이 조정되면 이전 실패를 반성하고 이번 본분 이행의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저는 반성은 고사하고 리더가 저를 괴롭힌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사무 일을 하는 것은 위신이 떨어지는 창피한 일이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허드렛일을 하거나 힘쓰는 자로, 양성할 가치도 별로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순종하지 못하고,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 본분에 반발심을 가졌습니다. 매일 대충 형식적으로만 일하며 그럭저럭 버티는 식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하는 건 아닌가? 이런 소극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육 담당 자매님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협력하기도 싫었고 원망만 가득했습니다. 자매가 저를 힘쓰고 허드렛일 하는 사람 취급하며 부려 먹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또 억울함을 발산하기 위해 파트너 자매 앞에서 불평을 터뜨리고, 리더에 대한 불만을 퍼뜨렸습니다. 파트너 자매는 그것 때문에 영향을 받아 리더에게 편견이 생겼고요. 이번 본분 조정에서 저는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저는 취향에 따라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체면이 서는 본분만 하고 싶어 했고, 일단 지위가 내려가니까 사람들에게 우러름도 못 받고, 복받을 희망도 없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극적이 되고 게으름을 피우며 하나님께 대항하고, 심지어 본분에 분풀이하는가 하면, 선입견과 관념을 퍼뜨려 제 일에 같이 불만을 품도록 다른 사람을 끌어들였습니다. 이런 행동은 적그리스도와 같은 행동입니다. 정말 정상적인 인성과 이성이 없었습니다!
그 후, 이런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늘 건성으로 대충 하거나 방해하고 교란하다 결국 교체되고 만다. 하지만 출교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사람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패괴 성품이 있고, 판단이 흐리고 어리석을 때거나 분량이 작을 때가 있다. 너에게 기회를 주는 목적은 바로 네가 돌이키라는 것이다. 어떻게 돌이켜야 할까? 자신이 실수한 일을 반성하고 인식하고, 이치를 따지지 말고 곳곳에 다니며 관념을 퍼뜨리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하나님을 오해하면서 함부로 퍼뜨려 다른 사람들까지 너와 함께 하나님을 오해하게 한다면, 자신에게 관념이 있으면서 곳곳에 그 관념을 퍼뜨려 다른 이들이 덩달아 관념이 생겨 너와 함께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게 한다면, 그것은 다른 이들을 부추기는 게 아니냐?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 대항하고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너를 구원해 주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 대항하거나 맞선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겠느냐?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네가 잘못을 저질러도 하나님은 네 책임을 추궁하지 않고, 네가 저지른 잘못한 일 하나를 이유로 너를 내치지도 않는다. 하나님 집에서는 너에게 여전히 기회를 주어 계속 본분을 이행하고 회개하게 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준 기회이다. 네게 양심과 이성이 있다면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늘 건성으로 대충 대하다가 교체되고, 또 어떤 사람은 본분 조정을 겪는다. 이것이 내쳐졌다는 의미겠느냐?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 네게는 여전히 기회가 있다. 그러니 너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마땅히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여 진실로 회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길이다. 하지만 이렇게 행하지 않고 대항하며, 여기저기서 “내가 그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된 건 말실수를 해서 남한테 밉보였기 때문입니다.”라고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반성하거나 진리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도 순종하지 않으면서 관념을 퍼뜨리며 하나님께 대항한다. 이는 사탄이 된 것 아니냐? 네가 사탄이 하는 일을 했다면 너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 네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는데, 하나님이 원수를 구원하겠느냐?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패괴 성품이 있는 사람, 진정한 사람은 구원하지만 마귀나 원수는 구원하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과 맞서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하고, 판단하며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퍼뜨린다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대립 면에 선 것이며, 이는 하나님께 대드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비록 교체되기는 했지만 교회에서는 제가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박탈하지도 않았고, 저에게 진리를 추구하지 말라고 하거나 저를 도태시키겠다고 하신 적도 더더욱 없습니다. 지금도 제게 본분을 맡기신 것은 저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고 인식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저는 교체된 것이 지위와 체면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소극적이 되어 대항했습니다. 정말 너무 패역하고 비이성적이었습니다! 새 신자를 양육할 때는 제가 자질이 부족하고, 진리도 명확하게 교제해 주지 못해서 새 신자들 문제가 제때 해결이 안 됐습니다. 또한 늘 남들에게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 자신을 위장하였고, 어려운 점이 있어도 터놓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리더가 본분 이행하는 원칙과 길을 교제해 주면 저는 내용을 아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나중에도 그것을 어떻게 실행하고 적용할지 구하거나 고민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 번씩 교제해 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원칙이 많았고, 양육 사역도 늘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자질이 부족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성품도 아주 교만하고, 진리를 구하려는 마음도 없었던 것입니다. 업무 면에서도 늘 제자리이고, 사역도 나아지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본분이 조정되는 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패괴와 결점을 인정하지 않고, 본분이 조정된 것에 대해 불복하고 분개하며 하나님이 일부러 저를 드러내어 망신 주고 저를 도태시키시려는 것으로 오해했으니 어처구니없이 생떼를 쓴 셈입니다. 제가 자질이 부족해서 새 신자 양육 효과가 좋지 않은 데다 늘 소극적이었으니 계속 이 본분을 이행했더라면 제 생명이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 사역도 지체되었을 것입니다. 리더가 제 자질과 장점에 따라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본분을 안배해 준 것은 원칙대로 일을 처리한 것이고, 제 생명을 책임져 준 행위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리를 분간 못 한 채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지도 않고,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남 탓만 하면서 뒤에서 리더를 판단하고 소극적인 것을 퍼뜨렸습니다. 겉으로는 사람의 결점을 들추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대항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드러난 일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저는 자질만 부족한 게 아니라 패괴 성품도 너무 심각해서 앞으로 얌전히 순종하고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드러내고 도태시키실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제 내면에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본분에 급을 매기고 본분에 높고 낮음, 귀천이 있다고 생각해서 리더를 하거나 양육 사역을 하는 것만 본분 이행으로 취급하고, 사무적인 일은 본분도 아니고 전부 비천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런 본분 이행은 힘쓰는 것이고, 끝까지 힘써도 결국 도태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때문에 사무 일을 하라고 했을 때는 제 등급이 하나 내려갔다고 생각하고, 저를 기계 취급하고 부린다고 생각해서 속으로 반발하고 본분을 이행할 의욕마저 상실했습니다. 사실, 교회의 모든 본분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경영 사역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리더를 하든, 양육 사역을 하든, 아니면 사무 일을 하든 모두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니, 잘 협력해야 합니다. 마치 기계의 각 부품이 다 제 기능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본분에는 크고 작음, 높고 낮음, 귀천의 구분이 없고, 단지 기능이 다를 뿐입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다 배워야 할 공과, 실행하고 진입해야 할 진리 원칙이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한다면 모두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비뚤어진 생각으로 사무 일을 하는 건 힘만 내는 허드렛일, 힘쓰는 자로 취급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치우친 관점으로 본분 조정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곡해해서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온전케 되어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정결케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너희보고 뒤떨어졌다고 한 것도, 자질이 부족하다고 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너희를 버린다거나 너희에게 희망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며, 너희를 구원하기 싫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내가 온 것은 바로 너희를 구원하는 사역, 즉 구원을 이어 가는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누구에게나 온전케 될 기회는 있다. 원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모두 성과를 얻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자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그에 맞춰 너에게 요구한다. 네가 무지하고 글을 모르면 그런 조건에 맞춰 요구할 것이며, 네가 글을 알면 그 기준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또 네가 나이가 많으면 나이에 맞게 요구하고, 네가 접대할 수 있다면 그 상황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네가 접대는 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돌보거나 다른 업무적인 사역을 하는 등 한 부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고 하면, 또 그 역할에 맞춰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깊은 감동을 받은 동시에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오해하며 원망했고 저에게 사무 일을 맡긴 것이 제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힘쓴다 해도 결국 도태되는 줄 알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자질이 떨어진 사람은 구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또 자질의 높고 낮음이나 이행하는 본분에 따라 사람을 대하신 적도 없습니다. 그 대신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 진리를 추구하는지를 보십니다. 그것이야말로 구원받을 수 있는 관건입니다. 교회에서 제명되었던 한 악인이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자질도 괜찮았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본분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고, 남을 억압하고,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을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책망과 훈계를 겪고도 회개하지 않다가 결국 제명되었습니다. 또 최근에 교회에서 드러내고 도태시킨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를 떠올렸습니다. 대부분이 겉으로 볼 때는 자질도 있고 은사도 있었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명예와 지위를 위해 많은 악을 저지르면서 하나님과 대립하는 길에 들어선 자들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자질이 아무리 훌륭하고 지위가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드러나고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한편 겉보기에 자질도 보통이고 눈에 띄지 않는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피조물의 자리에서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고, 패괴 성품이 흘러나오더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로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해서 서서히 패괴 성품이 어느 정도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너무나 공의롭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자질이 어떻건, 어떤 본분을 이행하건 하나님은 똑같이 사람에게 공급하고 사람을 양육하시며, 상황을 마련해서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사역은 너무나 실제적입니다! 하나님 뜻을 깨닫고 난 뒤 저는 더 이상 지금의 본분에 불만을 품지 않게 되었고, 순종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기로 했습니다.
그 뒤로 또 이런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너희가 오늘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데, 그 본분이 크든 작든, 힘을 쓰는 것이든 머리를 쓰는 것이든, 외부 일을 하는 것이든 내부 일을 하는 것이든 그 누구의 본분 이행도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어디가 너의 선택이냐? 이는 하나님이 이끈 것이다. 하나님이 부탁을 해서야 너는 이런 감동과 사명감,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방인 중에는 외모가 뛰어난 자, 유식한 자, 재능 있는 자가 너무 많은데, 하나님이 그들을 눈에 들어 했느냐?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바로 너희를 눈에 들어 했고, 너희가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하고 다양한 본분을 이행하고 다양한 책임을 짊어지도록 했다. 최후에 하나님의 경륜이 끝을 맺고 성취되면, 이 얼마나 영예롭고 영광스러운 일이냐! 그러니 사람이 오늘날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생도 좀 하고, 버리고 헌신하기도 하고, 대가도 좀 치르고, 세상에서 지위를 잃고, 명예와 이익을 잃기도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는 것이 마치 하나님이 모두 앗아간 듯하지만,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얻었느냐? 본분을 이행함으로써 진리 생명을 얻었다. 네가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한다면, 평생 네 사명과 하나님이 맡긴 부탁을 위해 살며 아름답게 증거했다면, 네 인생은 가치 있는 삶이고, 네가 바로 진정한 사람이다! 네가 진정한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경영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도록 하나님이 너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네 삶에서 가장 커다란 가치이자 의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약속하는지를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행한 것에 진리 실제가 있는지를 보려고 한다. 또한, 하나님은 네 행동이 얼마나 대단하고 심오하며 위대한지 신경 쓰지 않는다. 네가 작은 일을 해도 하나님은 네 일거수일투족에서 진심을 보고 이렇게 말씀할 것이다. “이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믿는구나. 이 사람은 허풍을 떠는 법이 없는, 성실한 사람이다. 하나님 집에 그리 크게 기여하지 못했고 자질도 부족하지만, 언제나 성실히 일하고 진심을 보인다.” 이 진심에는 무엇이 들어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순종, 그리고 진실한 믿음과 사랑이 들어 있다.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모두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꼭 대단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어쩌면 요리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청소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평범한 본분을 이행하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엄청난 공적을 세운 것도 아니며, 남들이 우러르고 감탄하고 부러워할 만한 부분도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요구한 것을 모두 갖추고 살아 내며, 또 하나님께 바칠 수 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또 무엇을 바라겠느냐? 하나님은 그에게 만족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어떤 본분을 맡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서 나온 것이므로 마땅히 순종하고 진심으로 그 본분을 대해야 합니다. 제 자질이 어떻든,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든 마음과 힘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하고, 또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열심히 사무 일을 했습니다. 얼마 후 사무 일이 제가 상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힘만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 본분 역시 많은 원칙을 파악하고 진입해야 하는 일이고, 이행하는 과정에 진심이 요구되고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 요구되는 일이었습니다. 일정 기간 훈련을 거치면서 사무 일에서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업무도 익히고 원칙도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너무나 실제적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본분이 조정된 일을 통해 저는 본분을 대하는 제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고, 하나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서 최선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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