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사니 참 좋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6천 년 경륜이 끝나기 전, 즉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내기 전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사역은 모두 구원을 위한 것이며,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온전케 하여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하든, 그것은 모두 사람에게 있는 사탄의 옛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함으로써 즉, 사람이 생명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명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 … 과거의 구원 방식은 하나님이 모든 긍휼과 자비를 다 베풀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전부를 사탄에게 넘겨줌으로써 전 인류와 맞바꾸는 것이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지금은 너희를 구원함에 있어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마지막 때이므로 긍휼과 자비가 아닌 형벌과 심판의 방식으로 더 철저하게 인류를 구원한다. 따라서 너희는 형벌, 심판, 무자비한 매질만 받게 된다. 하지만 너희는 그 무자비한 매질 속에 징벌은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아무리 엄할지라도 너희에게 임하는 것은 그저 무정해 보이는 말들뿐이며, 나의 분노가 아무리 클지라도 너희가 받는 것은 여전히 꾸짖는 말일 뿐, 너희를 해치려는 뜻도, 너희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냐? 너희도 알다시피, 지금의 공의로운 심판이나 무자비한 연단과 형벌은 모두 구원을 위한 것이고, 지금 각기 부류대로 나누려고 하든 아니면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려고 하든, 모든 말씀과 사역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자비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나 채찍질은 모두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예전에 저는 사람에게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여겼고,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형벌 역시 사랑이라고 하시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연단을 체험함으로써 자신의 교만한 사탄 성품에 대해 다소나마 알게 되었고 예전처럼 방종하게 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이 닥치면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를 구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어 조금이나마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사람을 향한 구원이자 가장 진실한 사랑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교회에서 영화를 제작하는데, 형제자매들이 저를 감독으로 추천하였습니다. 갓 이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을 땐 긴장도 되었지만,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었고 자신 있게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관련 분야의 업무 지식을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다소 요령도 생겼습니다. 그 후, 제 생각과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채택이 되었고, 형제자매들은 제가 연출한 작품을 호평하며 제게 영화 연출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무척 기뻤고, 계속 업무를 익혀 가면 본분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때부터는 형제자매들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갓 본분을 맡았을 때처럼 움츠러들지 않았습니다. 말할 때도 자신감이 붙고, 목에도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무슨 일이든 제가 결정하려고 했고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굴었습니다. 형제자매가 제 생각에 의문을 품거나 다른 제안을 하면 수긍하지 않고 성가시게 여기며 무시했습니다. ‘내 업무 능력이나 안목이 당신들보다 뛰어나니까, 당신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왜 자꾸 다른 소리를 해.’ 심지어 형제자매들이 제안하는 것들은 다 너무 사소한 문제들이라 의논할 필요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번 “그게 원칙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까?”라는 말로 상대의 입을 막아 버렸습니다. 하루는 주연 배우인 장 자매가 의상을 골랐다며 가져왔는데 저는 안목이 참 촌스럽다고 생각하며 다시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 뒤에도 골라오는 옷마다 다 퇴짜를 놨습니다. 제가 감독이고 제 안목이 정확하니 다들 제 말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그 후론 다들 제 눈치를 살피며 섣불리 의견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에 저도 마음이 힘들었지만 다 사역을 위해 이러는 거니 잘못된 게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 뒤 리더가 저와 교제를 하면서 제가 교만하고 남을 억누르기 좋아한다며 제 상태를 들춰냈습니다. 리더는 제게 다른 사람 문제만 보지 말라고 충고하며 반성하고 진리를 실행해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스스로를 전혀 알지 못했던 저는 다 사역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저는 계속 패역하고 강퍅한 상태로 살면서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팀 사역에 계속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전체 사역 진도를 지체시키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아는 한 팀장이 교만하여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형제자매들을 억누르다 사역에 지장을 주어 교체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자 조금 겁이 났습니다. 당시 제 모습은 그 팀장과 똑같았던 것입니다. 그 일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란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예전처럼 교만히 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도 더 부드럽게 하고 형제자매들과 사역을 놓고 의논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본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탓에 진리를 구해 해결하려 하진 않았습니다.
얼마 후, 우리 팀 사역 진도가 느리다며 리더가 류 자매를 제 파트너로 보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리더가 제 사역 능력을 의심해 그렇게 안배했다는 생각에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안배에 따랐습니다. 그 후 사역에 대해 의논할 때면 리더가 늘 류 자매의 의견을 묻는 것이 보였습니다. 리더가 저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 속이 불편했습니다. 리더에게 원망의 마음이 들었지만 류 자매에 대한 거부감과 반감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사역에 대해 의논할 때마다 저는 어두운 얼굴을 한 채 의견을 내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류 자매가 사역에서 문제들을 발견해 의견을 냈고, 형제자매들도 자매의 의견에 다 동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부감과 반발심이 너무 커서 자매의 의견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제 생각을 묻자, 저는 화를 누르며 아무 의견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리더가 저보고 하나님 집 사역을 지키지 않는다며 책망했습니다. 사실 저도 자책감이 들었고 하나님 집 사역을 가지고 분풀이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다들 류 자매 말대로 할 거면서 내 의견은 뭐하러 묻나 하는 생각에 가슴속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미 마음속으로 제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뒤 열린 몇 번의 사역 회의에서도 계속 제 의견만 고집했습니다. 류 자매가 합리적인 의견들을 냈지만 저는 그녀가 잘난 척한다는 생각에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류 자매가 한 배우를 추천했는데, 전 그 배우의 이런저런 문제를 트집 잡으며 자매의 의견을 묵살했습니다. 사실은 류 자매의 말대로 하기 싫었고, 사역에서 제가 주도권을 잡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류 자매도 제 눈치를 보며 의견을 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줄곧 교만한 상태로 살았고, 진리를 구해 이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점차 영적으로 어두워지고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답답함과 우울감이 저를 짓눌렀고, 하나님도 제게서 얼굴을 감추셨는지 기도를 드려도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는 머릿속이 텅 빈 듯 무디어져 문제를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에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리더가 우리와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서 제 내적 상태를 들춰냈습니다. 제가 너무 교만하고, 독단적이고 제멋대로 본분을 이행하며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했으니 집에 돌아가 잘 반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에게 어떤 상황이 닥치든 모두 당신께서 계획하신 일인 줄 믿습니다. 기꺼이 순종하겠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감독 본분을 이토록 오래 맡았는데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니, 너무나 아쉬워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원래는 이 기회를 통해 진정으로 반성하고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집에 돌아가니 하나님 말씀을 볼 때 아무리 해도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지금 전 너무 괴롭습니다. 저를 도와주시고 제 마음을 지켜 주세요. 이런 상황에서 당신의 뜻을 알고 제 자신을 알게 해 주세요.’ 계속 하나님께 기도하니 마음도 조금씩 차분해졌습니다.
이튿날 형제자매 몇 명이 절 찾아와 제 문제를 지적해 주고, 교제하면서 도와주었습니다. 그중 한 자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은 본분에서 성과가 나자 교만해졌어요. 모든 걸 자매님 뜻대로 하려 하면서 고압적으로 굴어 함께 협력할 수가 없었어요.” 또 한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역을 의논할 때 자매님이 없으면 분위기가 편안한데, 자매님이 오는 순간 무섭고 긴장이 됐어요. 우리의 생각과 의견이 또 묵살당할 테니까요.” 형제자매의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제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것 같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고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살면서 실패자가 된 기분은 처음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다 제 눈치를 보고, 저를 보면 두려워 뒷걸음질 칠 정도라면 그게 정상적인 사람이겠습니까? 예전의 제가 얼마나 무디고 지각이 없었으면 제 교만한 성품이 형제자매에게 그렇게 큰 압박과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까요? 전에도 제가 교만하다는 걸 알았고, 리더도 자주 교제해 주며 이 점을 들춰냈지만, 저는 제 교만한 성품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은사가 있고 자질이 있는 사람 중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여기며 제가 자질이 있기 때문에 교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지적하며 도와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저는 마음을 차분히 하고 제 행동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성하면서 봤던 하나님 말씀이 있습니다. 『네 안에 정말 진리가 있으면 자연히 바른길로 가게 되고, 진리가 없으면 쉽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네 내면에 교만함이 있다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된다. 대적할 수밖에 없다. 너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교만함은 네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하며, 너 자신을 추켜세우고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뽐내게 한다. 마지막에는 네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를 증거하고, 자신의 뜻과 생각, 관념에서 나온 것들을 진리로 여겨 받들게 한다. 교만한 본성이 사람을 지배하여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했는지 보아라!』(<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교만은 사람이 지닌 패괴 성품의 근원이다. 사람은 교만할수록 하나님을 더 쉽게 대적한다. 이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겠느냐? 사람에게 교만한 성품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안중에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심각할 경우 하나님조차 안중에 두지 않게 된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늘 자신에게 진리가 있다고, 자신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교만한 성품의 본질이자 근원으로,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교만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은 작은 일이다. 관건은, 사람의 교만한 성품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하며, 언제나 하나님과 권력을 다투고 다른 이를 통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느니 하나님께 순종한다느니 하는 것은 더 언급할 가치도 없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교만함이 바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게 하는 근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감독 본분을 이행하게 된 이후, 저는 성과가 나오면 저의 공로라고 여겼고, 제가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다는 듯 굴며 제 의견만 고집하기 시작했고, 모든 걸 제 마음대로 하려 했습니다. 본분에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저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성찰해 보지 않고, 그저 다른 사람의 문제점만 보며 고압적으로 형제자매들을 책망하고 훈계했습니다. 제 교만함으로 인해 저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며 남의 장점은 보지 않았습니다. 늘 제가 남보다 뛰어나다 생각해 매번 다른 사람의 의견을 부정하며 사람들을 억눌렀습니다. 너무 교만하고 스스로를 몰랐던 저는 여러 번의 책망과 훈계가 임해도 받아들이지도, 반성하지도 않았으며 구하는 마음조차 없었습니다. 사역 진도가 지체될 때면, 저 혼자선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파트너와 협력하기 싫어했고, 누가 일에 끼어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제 권한이 나눠지게 되니 제 명예와 지위가 위협을 받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늘 전권을 휘두르며 모든 일을 제가 결정하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류 자매가 본분에 성과를 보여 제 지위에 위협이 되자, 자매의 말이 맞고 하나님 집 사역에 유익한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트집만 잡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자매의 관점에 동의하자 그게 불만스러워 사역을 가지고 분풀이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집에 피해를 주는 한이 있더라도 제 명예와 지위를 지키려 들었습니다. 제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고, 양심이나 이성 역시 전혀 없었습니다. 전 교만한 사탄의 본성대로 살면서 제 생각과 관점을 진리로 여겼고 형제자매한테 제 말을 들으라 강요했습니다. 하나님과 나란히 앉아 사람을 다스리려 한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미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여야지, 함부로 잘난 체하거나 자신을 높여서는 안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나라시대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 법령> 중에서) 라는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른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매우 위험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매일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는 것 같았지만 저는 온통 사탄의 성품만 드러내고 있었고, 제 행동은 모두 진리에 어긋나고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것이었습니다. 악행을 저지르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다 제가 이런 지경까지 왔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 저의 교만하고 강퍅한 본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줄곧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결국 하나님께 내쳐진 거였습니다. 사탄에 의해 이토록 깊이 패괴되고 진리 실제는 조금도 없는 제가 그렇게 중요한 본분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높여 주심이었습니다. 본분에서 성과가 있었던 것도 순전히 성령의 역사가 이룬 것이지 제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교만한 성품대로 본분을 이행한 탓에 성령이 역사하지 않자, 전 본분상의 문제를 꿰뚫어 보지도, 해결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전히 제가 뭐든 다 할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이지 이성을 잃을 정도로 교만하고, 제 주제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제야 저의 교만한 본성이 역겹고 증오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희는 모두 죄악이 넘치는 음란한 땅에 살고 있는, 음란하고 죄악된 사람이다. 오늘날 너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형벌과 심판을 받았고, 이렇게 가장 깊은 구원을 받았다. 즉,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가 행하는 것은 모두 참된 사랑이며 악의는 없다. 그는 너희의 죄악 때문에 너희를 심판하여 반성하게 하고, 이 크나큰 구원을 받게 한다.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시종일관 전력을 다해 사람을 구원한다. 그는 친히 만든 사람이 완전히 멸망하길 결코 원치 않는다. 그가 지금 또 너희 가운데 와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더더욱 구원 아니겠느냐? 그가 너희를 미워한다면 이렇게 큰 사역을 하여 직접 너희를 인도하겠느냐? 굳이 이런 고난을 겪을 필요가 있겠느냐? 그는 너희를 미워하지 않으며 조금의 악의도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진실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사람의 패역 때문에 반드시 심판으로 사람을 구원해야 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정복 사역의 실상 4> 중에서) 이 구절 말씀을 반복해서 읽다 보니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이렇게 드러내신 것은 저를 정죄해 도태시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저를 괴롭히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저를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본성이 너무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걸 보신 하나님은 제 필요를 아시고 본분의 교체와 형제자매의 책망 훈계를 통해 제가 자신의 교만한 본성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걷는 길을 반성하고 하나님께 회개하여 다시는 하나님을 거역하지도 대적하지도 않도록 하셨습니다. 비록 저는 괴로워하기도 하고 소극적이 되기도 했지만 이런 심판과 형벌이 없었더라면 제 무딘 마음은 깨어날 수 없었을 것이고, 마음을 차분히 한 채 스스로 반성하지도, 저 자신을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도 알지 못하고, 진정으로 회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계속 하나님께 대항하고 맞서다 결국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징벌을 받았을 터였습니다. 그제야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이 저를 향한 크나큰 보호이자 진정한 사랑임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이를 깨닫고 나니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해 하루빨리 패괴 성품을 벗고 사람답게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 후, 저는 어떻게 해야 제 교만한 본성을 해결해 다시는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대적하지 않을지,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교만한 본성은 너를 자신의 고집대로 하게 한다. 사람에게 자신의 고집대로 하는 성품이 있으면, 함부로 행동하게 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함부로 행동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느냐? 네게 어떤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내놓고 네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네 의견은 무엇인지 말한 다음 모두와 교제해야 한다. 먼저, 너는 자신의 관점을 밝히고 진리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함부로 행동하는 성품을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실행이다. 두 번째, 누군가 너와 다른 의견을 말했을 때, 네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느냐? 먼저 자세를 낮추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은 다음 다른 사람이 교제하게 해야 한다. 설령 옳다고 생각해도 그것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일종의 발전이자 진리를 구하는 태도이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려는 태도이다. 이런 태도를 갖고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기도해라. 네가 옳고 그름을 모르니, 하나님께 드러내 달라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인지, 또 가장 적합한 것인지 하나님께 알려 달라고 해라. 모두가 함께 나누다 보면 그때 성령이 깨우쳐 줄 것이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저는 이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교만한 성품대로 살지 않고 본분을 멋대로 이행하지 않으려면 진리를 구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형제자매와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관점이 다를 때는 먼저 자신을 부인하고 내려놓은 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진리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성령의 깨우침을 받을 수 있고, 이러면 적어도 자기 생각을 고집하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해 하나님 집 사역에 피해를 주는 일은 없게 됩니다. 이걸 깨달으니, 마음이 환히 밝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는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하면서 함께 진리를 구하고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하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역에 필요해 붓글씨를 몇 줄 써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과거 서예를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신했습니다. 제가 두 가지 서체를 써 보이자 류 자매는 그럭저럭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억지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아니, 내 글씨가 그렇게 별로인가? 나는 서예를 배웠고, 서예는 내 특기야.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알아? 보아하니 글씨 보는 눈도 없으면서 괜히 트집을 잡는 것 같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저는 제가 또 교만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빨리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를 내려놓고, 구하며 순종하는 자세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습니다.’ 기도를 마친 저는 다시 한번 붓글씨를 썼습니다. 류 자매가 보더니 조금만 더 글씨가 반듯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와 다른 형제자매들은 모두 그 정도면 잘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엔 제가 옳은 것 같고, 또 누군가 제 관점에 동의하는 상황이라면 분명 제 관점을 고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한 사람의 관점이 달라도 다시 시도해 봐야 해. 모두들 가장 좋은 성과를 위해 이러는 거니까. 내 관점이 완전히 옳은 건 아니잖아. 모든 건 성과를 위주로 생각하자.’ 그래서 저는 자발적으로 나섰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써 볼게요. 나중에 여러분이 보고 괜찮은 글씨체를 골라 쓰세요.” 그러고 나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글씨를 쓰는데 그 어떤 반발심이나 창피함도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너무나 편안했습니다. 글씨를 다 쓰고 난 후엔 제가 먼저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몇 가지 의견을 주었고, 그 의견들에는 확실히 받아들일 점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에게는 부족함이 많고, 형제자매들은 제가 갖지 못한 장점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모두가 서로 의견을 내며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자 본분의 성과도 더 좋아졌습니다. 한동안 이렇게 형제자매들과 협력하면서 마음이 너무나 편안한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더 이상 예전처럼 교만하고 고압적으로 굴지 않자 형제자매들과의 관계도 더 가까워졌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게 어느새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고, 제 부족함을 지적해 주는 말도 옳은 태도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가끔 제 뜻에 맞지 않는 일이 닥치면 교만하게 굴며 제 의견을 고집하기도 하지만, 형제자매들이 지적해 주면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스스로를 반성하고 자신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진리를 구하며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합니다. 이런 식으로 체험해 나가자 저는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여 마침내 조금이나마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되었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습니다. 매번 이 체험을 떠올릴 때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상황을 마련해 저를 책망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가 없었더라면, 저는 얼마나 더 교만하고 타락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제가 이 정도 인식과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맺은 결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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