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마음에 기만이 있었다

2022.03.11

카메룬 미셸

저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은행 관리자처럼 높은 지위에 오르길 꿈꿨었죠. 그럼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을 테니까요. 대학 졸업 후 전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어요. 근데 원하는 직장을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월급이 적은 평범한 일만 구해지는 거에요.

그러다 2019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됐고 얼마 후엔 교회에서 양육 본분을 맡게 됐어요. ‘그래,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이 분명 축복하셔서 내게 원하는 일을 주실 거야.’ 저는 본분을 하면서 계속 이력서를 넣었어요. 그러다 작년 6월에 한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됐어요. 인터넷에서 그 회사를 검색해 봤더니 거기가 글로벌 기업이더라고요. 게다가 회사 CEO가 세계 곳곳에 투자를 하고 있었고 큰 은행도 가지고 있었어요. 전부터 여러 번 면접을 봤었는데 번번이 떨어졌던 그 은행이었어요. 그런 데서 저한테 먼저 면접 제안을 하다니, 하나님이 주신 기회다 싶어 너무 기뻤어요. 정말 그 회사에서 일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틀림없었죠. 속으로 생각했어요. ‘이번엔 꼭 합격해서 높은 연봉을 받을 거야.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니까.’ 너무 기뻤어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직장에 들어가게 됐으니까요. 제 석사 학위에 부끄럽지 않은 직장을 얻겠구나 싶었죠. 앞으로 제 삶이 어떻게 변할까 상상을 펼쳐 봤어요. 나중에 집도 구하고, 원하는 건 다 사면서 풍족하게 살게 될 거고, 세계 일주도 하고, 부모님과 가족도 부양할 수 있을 거 같았죠. 저는 그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게 좋아질 것 같았어요. 면접 당일, 다른 면접자 3명을 봤는데,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됐어요. 근데 속으로 그랬죠. ‘아니, 이 자리는 내 게 될 거야. 난 하나님 자녀니까 날 축복해 주실 거야. 결국엔 이 자리를 내게 남겨 주실 거라고. 그리고 난 내 업무 능력에 자신도 있어.’ 전 면접에서 모든 문제에 대답했어요. 면접관은 저한테 만약 합격되면 5일 안에 연락이 갈 거라고 했죠. 전 제가 붙을 거라 확신했어요. 5일 후,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리는데, 하루 종일 전화는 오지 않았어요.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 전화도 오지 않으니 그제서야 떨어진 걸 알았죠. 정말 낙심이 됐어요. ‘어떻게 된 거지? 왜 늘 떨어지는 거야?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도했는데 왜 또 떨어진 거지?’ 전 소극적이고 연약해져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난 하나님 믿고 2년간 본분을 이행해 왔어. 하나님 떠난 적도 없고, 본분을 내팽개친 적도 없는데, 하나님은 왜 날 축복하지 않으시는 거지?’ 점점 더 낙심하고 소극적이 돼서 일주일이나 예배도 드리지 않고 말씀도 안 봤어요. 형제자매들이 연락해도 짜증이 나서 받고 싶지가 않았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 나가기도 싫었어요. 복음 전하는 본분도 안 하고, 말씀을 공유하는 것도 안 했어요. 목표와 원동력을 잃고 종일 방에 처박혀 밥도 먹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니 며칠 만에 핼쑥해졌죠.

어느 날, 말씀 찬양을 듣게 됐어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진심이다>요 『하나님이 사람에게 시련을 주는 기간, 하나님이 이루려는 건 어떤 걸까? 하나님은 사람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하나님이 너에게 시련을 줄 때, 하나님은 너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육체나 사탄에게로 향하고 있는지를 본다. 하나님이 너에게 시련을 줄 때, 네가 하나님과 대립하는 편에 서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입장에 서 있는지를 본다. 네 마음이 하나님 편에 있는지 없는지를 보는 것이다. 네가 어릴 때 네 믿음은 시련 가운데 한없이 나약하다. 깨달은 진리가 많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네가 진심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도하게 하고,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고자 한다면, 이미 마음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네가 들은 도와 깨달은 진리가 점점 많아지면, 너의 분량도 점차 성장하게 된다. 그때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네가 어릴 때 요구했던 기준이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기준일 것이다. 사람이 마음을 점차 하나님께 드리게 되면, 마음이 점차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된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과 가까이할 수 있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점점 더 생기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이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중에서) 이 찬양을 듣고 깨달았어요. 하나님은 사람에게 시련을 줘 그 마음을 감찰하세요. 제일 관심 있는 게 뭔지, 그분이 마련한 상황에 순종할 수 있는지를 보시죠. 전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긴커녕 그분을 이용해 제 욕망을 채우려 했어요. 원하던 직장도, 돈도, 육적인 안락함도 다 얻지 못하게 되니까 소극적이 돼 예배도, 본분도 내팽개쳤죠. 저는 하나님을 배신한 거죠. 그 상황에서 전 간증을 잃은 거에요.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하나님, 이렇게 드러나니, 제가 충성과 정직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전 당신을 증거하지도, 순종하지도 않았어요. 하나님, 회개할게요. 절 긍휼히 여겨 주세요.’

기도하니까 마음이 한결 평온해져서 사람들 메시지에 답장했어요. 한 자매가 제가 어떤지 물어보길래 요즘 저한테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놨죠. 그러니 말씀을 보내줬어요. 『어느 누구나 고통 없는 인생은 없다. 어떤 사람은 가정 때문에, 어떤 사람은 직장 때문에, 어떤 사람은 결혼 때문에, 어떤 사람은 병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고통받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왜 사람은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한평생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통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까?” 그러면 안 된다. 누구든 다 고통받아야 한다. 고통받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육체적 삶이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느낌을 체험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 등 다양한 느낌과 이해를 갖게 한다. 이런 것은 모두 인생의 체험이 된다. 네가 그 가운데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요구하는 기준에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이것도 사람의 경험을 쌓기 위한 한 측면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이 역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책임이다. 무슨 책임일까? 너는 마땅히 그 고통을 받아야 하고 그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고 견딜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간증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1)> 중에서) 말씀을 보고 깨달았어요.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고난을 겪어요. 고난은 인생의 한 부분이죠. 그건 절대 가치 없는 게 아니에요. 고난은 우리의 경험을 늘려주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져 그분 앞으로 가 진리와 그분 뜻을 구하게 해줘요. 우린 사탄에게 깊이 패괴됐어요. 진리는 멀리하고 돈과 허영, 지위와 창창한 장래를 좇으며 살죠. 우리 삶이 안락하고 순조로우면 우리 마음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삶은 타락할 거예요. 하나님께서 제게 그런 상황을 허락하신 건 제가 하나님 앞에 와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고,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가까워지게 하기 위한 거였어요. 하나님의 고심을 알고 더는 대항하지 않았어요. 그 후 전 어떤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충성하기로 했어요.

그 후에 말씀을 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사람은 생명 체험 과정에서 늘 ‘나는 하나님을 위해 가정도 직장도 내려놓았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주셨지? 그동안 내가 받은 복이 있는지 한번 계산하고 따져 봐야겠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헌신하고 뛰어다니며 수많은 고난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동안 내가 한 것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해 주실까? 내 선행을 기억해 주실까? 내 결말은 어떤 것일까? 복은 받을 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은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계산하고, 저의와 야심을 품고,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뭔가 얻어 내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며, 하나님을 상대로 계산하고, 자신의 결말을 두고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논쟁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며 하나님께 구두 증거를 구걸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끊임없이 뭔가를 얻어 내려고만 한다. 심지어 갈수록 심해지고 탐욕스러워진다. 사람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동시에, 또 끊임없이 하나님과 논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시련이 임하거나 특정 환경에 처했을 때 항상 나약해지고 일을 태만히 하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는다. 하나님을 믿는 순간부터 사람은 하나님을 화수분이나 만물 상자로 삼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큰 채권자로 간주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약속을 얻어 내는 것이 생득적 권리이자 책무라고 생각하고, 반면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며 사람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해야 할 책임이라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깊은 이해이다.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서부터 사람의 주관적인 추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과 연결 짓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려고 생각하거나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이러한 상태를 볼 때, 사람의 본질은 뻔한 것이다. 그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마음씨가 악독하고 음험하고 간사하며,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아가 비열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바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태껏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으며, 사람의 경배를 받지도 못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행하든,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공급하든, 사람은 봐도 못 본 척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사람은 시종일관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자신이 주관하고 자신이 결정하려고 한다. 그 뜻인즉,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고 싶어 하지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사람들의 상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정확히 제 상태를 드러내는 말씀에 부끄러움이 느껴졌어요. 전 축복을 얻으려고 믿은 거였어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고생도 했지만 결국 하나님께 보상을 받기 위한 거였죠.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본분에 시간과 힘을 쏟았던 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바란 거에요. 월급도 많이 받고 제 학위에 걸맞은 직장을 구해서 저와 가족들 다 고생하지 않고 인생을 풍족하고 즐겁게 사는 거죠. 이게 제가 바라는 거였어요. 근데 하나님 믿은 지 2년이 되도록 복을 바라는 제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고 원하는 직장도 구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하나님을 섬기는 동기를 잃은 거죠. 이렇게 드러나니 제가 계속 하나님을 기만하며 거래를 하고 있었단 걸 알았어요. 겉으론 하나님께 헌신하며 예배에도, 본분에도 열심이었지만, 실제론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을 얻으려는 의도와 목적이 있었던 거죠. 말씀의 깨우침으로 이기적이란 걸 알았어요. 늘 저와 가족만 생각하며 하나님께 분에 넘치는 요구를 들어 달라고 강요했어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도, 또 경배하지도 않았고 무슨 빚 독촉하는 빚쟁이처럼 행했어요. 제 욕망을 채우는 데 하나님을 이용한 거죠. 하나님은 대가를 바라시지 않고 우리에게 생명과 많은 진리를 주셨어요.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를 구하시려고, 성육신해 숱한 고난을 겪으셨고요. 우리가 진리를 얻고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게 하시려고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너무나 크고 많아요. 근데 눈멀어 하나님의 사랑을 못 보고, 그분 뜻엔 무관심했어요. 그저 바랄 줄만 알았죠. 정말 양심과 이성이 없었어요!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현실 상황이죠 헌신을 이용해 하나님의 복을 얻으려고 하잖아요 본분을 가지고 거래를 하는 거죠. 이런 믿음과 본분은 세상에서 사장을 위해 일하는 거랑 같죠. 이익을 얻기 위한 거니 진심이란 게 없어요.

그 후에 또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그 말씀이요.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시련을 주든 하나님에 대한 충정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일단 하나님의 사역이 자기 육에 불리해지면 즉시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나간다. 이런 자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굳게 설 수 없는 자들이고, 복만 받으려 할 뿐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자신을 바칠 마음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이런 부류의 소인배들은 사역이 끝날 때 모두 ‘쫓겨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조금도 인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인간성이 없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편안한 환경에 있거나 취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지만, 일단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결국 깨지게 되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악마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지 않는다면 마음속의 우환이 되지 않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마음에 하나님이 있어야만 그분의 검증을 이겨 내고 굳게 설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자는 자기 이익만 생각해서 자기 육체에 이로울 땐 억지로 순종하지만 일단 자기의 소망이 이뤄지지 않으면 바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그분을 배신해요. 그런 자는 하나님께서 도태시키는 대상으로 마귀의 부류예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단 걸 깨달았어요. 전 축복 때문에 하나님을 믿었어요. 가족들이 건강하고 제게 좋은 일자리가 있을 때만 헌신하려고 하고 모든 게 다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소극적이고 태만해져 하나님을 원망했죠. 하나님께 충성과 순종이 없었어요.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없었던 거죠. 하나님을 기만하고 거래하고 있었으니 하나님이 이런 믿음을 인정하실 리 없죠. 하나님은 말세에 이긴 자들을 만드시는데, 그들은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고 만족게 해 드리는 사람이죠.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겠단 의지가 있어 욥처럼 환난 가운데서도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해요.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온전케 하시는데, 그분의 약속과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죠. 욥은 체험하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의 믿음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요. 자녀와 재산을 모두 잃었을 때도 하나님을 칭송하고 그분의 안배에 순종하면서 결국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렸잖아요. 근데 전 하나님의 요구완 너무 멀었어요.

하루는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 사람이냐?> 그 말씀이요. 『지금 너희 각자 앞에 돈을 얼마 놓아두고서 너희가 어떤 선택을 해도 정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너희 가운데 많은 자가 진리를 버리고 돈을 선택할 것이다. 그보다 좀 나은 자는 돈을 버리고 마지못해 진리를 선택할 것이고, 그 두 부류 중간에 있는 자는 한 손으로는 돈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진리를 붙들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의 참모습이 어떠할지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느냐? 자신이 충성스럽게 대하는 모든 것과 진리 사이에서 너희는 모두 이런 선택을 할 것이고, 너희 태도 또한 이럴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많은 자가 옳고 그름 사이에서 망설이지 않았느냐? 가정과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화목과 파탄, 부와 빈곤, 지위와 평범함, 지지받는 것과 버림받는 것과 같은 모든 정(正)과 반(反), 흑과 백의 싸움에서 너희가 무엇을 선택하였는지 너희 스스로 모를 리 없지 않으냐? 가정의 화목과 파탄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하는 데에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고, 금전과 본분 사이에서 또 전자를 선택했는데, 이를 뉘우치고 바른길로 돌아서려는 의지조차 없었다. 사치와 빈곤 사이에서도 전자를, 자녀, 아내, 남편과 나 사이에서도 전자를, 관념과 진리 사이에서도 전자를 선택하였다. 나는 너희의 온갖 악행에 너무나 놀랐고, 너희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었다.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누그러지지 않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여 얻은 결과가 나를 포기하고 속수무책으로 구는 너희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모든 날들을 이미 너희 앞에 펼쳐 보였기 때문에 너희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너희는 지금도 어둡고 사악한 것을 추구하며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희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준다면 너희는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그래도 전자를 택하겠느냐? 나에게 여전히 실망과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 주겠느냐? 너희의 따뜻한 마음은 여전히 그렇게도 작을까? 어떻게 해야 나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느냐? 지금 이 순간, 너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느냐? 내 말에 순종하는 것이냐, 아니면 성가셔하는 것이냐? 내 날은 이미 너희 앞에 펼쳐졌고, 너희 앞에 놓인 것은 새로운 삶과 새로운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번 출발점은 이전 새 사역의 시작이 아니라 옛 사역의 마무리이자 마지막 장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겠다. 나는 너희 모두 이 시작점이 예사롭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머지않은 어느 날, 너희는 이 시작점의 진정한 함의를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함께 이 시작점을 지나 마지막을 맞이하도록 하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이 말씀이 굉장히 와닿았어요. 하나님을 배신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더라고요. 물질과 재물, 지위와 명예만 좋아하지 진리는 싫어해요. 우린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본성이 있지만 그분은 우리의 패괴를 보시지 않고 지금 진리를 추구하는지, 회개하고 변화하는지 보세요. 하나님은 우릴 사탄의 권세에서 철저히 구원해 당신의 나라에 데려가려 하시죠. 근데 전 하나님의 구원을 소홀히 하고, 진리를 얻으려고 안 했어요. 늘 연봉 높은 직장을 찾을 생각뿐이고 물질과 부를 탐하고 육에 연연했어요. 너무 어리석었죠! 진리만이 사람을 구원하고 패괴를 정결케 해요. 우리가 선악을 분별해 사탄의 미혹에서 벗어나게 하죠. 진리를 알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어떻게 살고 행해야 의미 있는지 알게 되죠. 재물을 좇고 물질을 탐하면 하나님과 멀어질 뿐이에요. 더 패괴되고 탐욕스러워져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되죠.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 풍족하고 안락한 게 꼭 좋은 건 아니에요. <잠언>에도 그랬죠.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잠 1:32) 예수님이 이렇게 권고하셨죠.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재난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요. 지금 제일 급한 일은 빨리 진리를 갖추고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는 거예요. 본분을 이행하면서 패괴를 벗고 하나님께 순종해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돼야 해요. 그게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죠. 제가 좋은 직장을 찾을지는 다 하나님 손에 달렸단 걸 깨달았어요. 그러니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며 완전히 그분 손에 맡겨야죠.

그 후에 또 말씀을 보게 됐어요.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이 말씀에서 깨달았어요. 하나님께 축복을 받든 화를 입든, 우린 본분을 다하고 사명을 완수해야 해요. 이건 우리의 책임이니 조건이 없어야죠. 제 자신을 돌아보면, 안정적이고 위신이 서는 일을 찾는 데 여러 번 실패하고 나니까 낙심해 연약해지고 소극적으로 변해서 본분도 안 했어요. 본분을 이렇게 대하는 건 옳지 않잖아요.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피조물로서, 우린 자신의 직책을 다할 책임이 있다고요. 하나님이 어떤 상황을 주시든, 연약하고 소극적이 돼도, 하나님의 뜻이 이해가 안 돼도 우린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해요. 우린 피조물이니까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해야지 하나님께 요구하거나 거래할 자격이 없거든요. 본분은 피조물인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에요. 여기에 거래가 있어선 안 되죠.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처럼 만고의 진리고, 당연한 일이죠.

그 후엔 전 성실히 본분을 했어요. 매일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죠. 그렇게 하니 마음이 너무 평안했어요. 어느 날, 한 학교에서 면접 제안이 왔어요. 만약 거기에 들어가게 되면 높은 월급을 받을 수 있고, 학교도 유명했어요. 면접 때 속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렸어요. ‘하나님, 모든 걸 당신께 맡깁니다. 면접에 붙든 떨어지든, 이 직장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을게요. 그저 당신의 안배에 순종할게요. 면접에 떨어져서 이 직장을 얻지 못해도 항상 당신을 찬미하고 본분을 다할게요.’ 필기시험을 치르고 나니, 합격자 5명 안에 저도 있었어요. 너무 기뻤죠. 근데 면접시험에서는 떨어졌어요. 보니까 제 친구는 뽑혔더라고요. 친구가 돼서 좋았지만 속으론 좀 실망이 됐어요. 그래도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할 수 있도록 제 마음을 지켜 달라고 기도했어요. 기도하니 마음이 평안해졌고, 오후엔 평소처럼 본분을 했어요. 만약 하나님께서 그 학교의 일자리를 저한테 허락하시면 그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거고,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노력해도 못 얻죠. 모든 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어요. 누구도 벗어날 수 없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면에서 어떤 힘이 솟는 거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전 제 본분을 다할 거에요. 제 책임이니까요.

이 체험으로 순조롭지 않은 상황들이 사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인 걸 배웠어요. 하나님은 제 믿음을 검증하시려고, 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나 보시려고, 그런 상황을 주셨던 거예요. 사실로 드러나면서 제 믿음에 많은 불순물이 있는 걸 봤어요. 하나님을 속이고 거래하려고 했죠. 근데 말씀의 인도로 제 자신을 알게 됐고, 그릇된 관점을 바로잡았어요. 이런 건 편안한 환경에선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죠. 하나님 사랑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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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책임

필리핀 글레드 전 2020년 9월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어요. 그때부터 예배를 드렸고 잘 모르는 게 있으면 형제자매한테 물어봤어요. 또 말씀에서 깨달은 걸 적극 교제했고 다른 분들도 교제하도록 격려했죠. 어느 날 팀장이 그러는 거예요. 예배...

본분을 잘하려면 책망과 훈계가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 투서를 받았는데, 한 자매가 리더랑 집사 3명을 고발한 거에요. 네, 리더 신 자매가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고 형제자매의 영적 상태에 무관심하다고요. 그리고 두 집사도 문제가 많대요. 처음엔 투서에 쓴 내용을 보니까 제가 세 사람한테...

공적인 일을 이용해 개인적인 분풀이를 하는 행위의 본질

산둥성 저우리 최근 우리 교회에 사람이 늘어나자 관리상 편의를 위해 교회를 두 곳으로 나누고 교회 리더를 뽑아야 했습니다. 리더를 뽑는 원칙에 따라 생각했을 때, 이 본분에 적합해 보이는 한 형제님이 있어 그를 리더로 뽑으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전도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

중국 주이추 어느 날 한 형제가 그러더라고요. 동생이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지금까지 열심히 헌신하고 있고 진심으로 믿는다면서 복음을 전해 달라는 거예요. 전 흔쾌히 수락했죠. 근데 동생을 만났는데 긴장해서는 그러더라고요. “목사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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