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2020.07.26

한국 정예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는 리더 본분을 맡아 늘 예배에서 진리를 교제해 주는 분이나, 찬양과 춤 혹은 글 관련 본분 등 전문적인 본분을 이행하는 분들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런 본분을 맡으면 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반면, 접대나 사무 업무를 보는 본분은 별 볼 일 없고,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고, 남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본분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중에 꼭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는 본분을 이행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글 관련 본분을 맡게 되자 다른 본분보다 더 존중받는 본분을 이행하게 된 것 같아 너무 기뻤습니다. 그러다 2018년, 다른 지역에 가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글 관련 본분을 맡고 있다는 걸 안 한 형제가 먼저 본분에 대해 말을 걸어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를 우러러보는 형제의 모습에 굉장히 흐뭇했고 이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 영예롭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득의양양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상태였던 저는 본분에 충실하지 않고 명예와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다 성과를 내지 못해 2달 후 결국 교체되었습니다. 괴로워하며 소극적이 된 제게 리더는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하나님 집에서 영화를 찍는데 배경 세팅 스태프가 필요하니 그 본분을 맡아봐요.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진리를 추구하고,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해내세요.” 당시 저는 배경 세팅이란 본분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지만, 리더가 그렇게 배치했으니 일단 순종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가서 해 보니 힘쓰는 일이 대부분으로, 전문 기술은 필요 없이 잔심부름꾼처럼 소품이나 이리저리 옮겨 대는 본분이었습니다. ‘전에 했던 글 관련 본분은 머리를 쓰는 일이라 체면도 있어 보였는데, 촬영 소품을 옮기는 건 힘들고 더러운 막노동이잖아.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형제자매들이 무시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의욕을 잃은 저는 본분에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론 대강 하고 넘어갈 수 있으면 그렇게 했고 일을 피할 수 있으면 피했습니다. 가끔 배경에 쓸 소품이 부족해 다른 곳에서 빌려 와야 할 땐 다른 형제자매를 시켰습니다. 제가 갔다가 저를 아는 형제자매들을 만날까 싶어서였습니다. 제가 원래 본분을 제대로 못 해 지금은 보잘것없는 배경 세팅 본분을 맡고 있다는 걸 그들이 알게 되면 저를 어떤 시선으로 볼까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본분과 관련된 업무 지식을 더 깊이 연구하기도 싫었습니다. 관련 업무를 배웠다가 계속 이 본분만 이행하게 되면 남들 앞에 보란 듯이 나설 날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또 현장에선 감독이 도구를 세팅하라고 이것저것 시키는데 그럴 때마다 체면이 구겨지는 것 같아 너무 언짢았습니다. 전에 글 관련 본분을 맡았을 땐 다들 저를 존중하며 제 지시를 따랐는데, 지금은 지시를 받고 있으니 남보다 밑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한번은 한 형제님이 촬영에 쓴다고 나가서 볏짚을 주워 오라고 시키는데 막 짜증이 났습니다. ‘볏짚을 주워 오라니, 이렇게 창피한 일이 어디 있어. 다른 형제자매들이 보기라도 하면 젊은 나이에 이런 일이나 하는 못난 사람이라고 할 거야.’ 그래도 본분에 필요한 일이라 길에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을 골라 마지못해 볏짚을 구하러 나갔습니다. 한참 볏짚을 줍고 있는데 한 형제님이 걸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가죽 구두에 흰 양말을 챙겨 입은 깔끔한 차림새였습니다. 그 형제를 본 후 다시 꾀죄죄한 제 모습을 보자 너무 속상하고 괴로웠습니다. 속으로 ‘같은 나이에 누구는 멋있는 본분을 이행하고, 난 이렇게 궂은일을 하며 볏짚이나 줍고 있고, 어떻게 이렇게 다른 거지? 정말 얼굴을 못 들겠네! 돌아가면 리더에게 이 본분은 못 하겠으니 다른 본분으로 바꿔 달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서 막상 말을 꺼내려니 속에서 갈등이 일었습니다. ‘말을 할까, 말까? 말을 안 하자니 계속 이 본분을 이행해야 되고, 그렇다고 안 하겠다는 말을 내가 먼저 꺼내면 무책임해 보이잖아.’ 결국 저는 가까스로 나오려는 말을 참았습니다. 얼마 후, 리더가 배경 세팅 스태프들과 배우 본분을 맡은 형제자매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했는데 저는 내키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남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화려한 일을 하는 배우야. 반면 나는 힘쓰는 일이나 하는 사람이고. 급이 다른 저들과 예배를 드리면 내가 더 초라해 보이는 거 아냐?’ 예배 시간, 다들 적극적으로 교제하는데 저는 교제하기 싫었습니다. 배우들과 예배를 드리니 꽃을 받쳐 주는 잎사귀가 된 듯 들러리가 된 느낌에 속이 답답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는 영적으로 더 가라앉았고, 예배도 드리기 싫어졌습니다. 그리고 늘 글 관련 본분을 이행할 적 장면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땐 어디를 가도 형제자매들의 친절한 대접을 받았고 리더도 저를 중시했습니다. 그런데 교체된 후에는 별 볼 일 없는 잡일이나 하게 되었고 아무도 저를 존중해 주지 않았습니다. 낙담과 고통 속에 저는 점점 더 열등감이 심해지고 괴팍해져 하루 종일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눈에 띄게 야위어졌습니다. 어느 날 저녁, 혼자 길을 걷다 더는 가슴속 괴로움을 억누르지 못해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하나님, 너무 괴롭습니다. 일찍이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해서 당신을 흡족게 해드리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지금 저는 제 본분이 멋있지 않아 늘 남들보다 못한 기분이 듭니다. 마음이 소극적이고 연약해져 언제라도 당신을 배반할 것 같아요. 하나님, 이렇게 소극적인 상태로 살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이끌어 주세요.’

그 후,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은 어떻게 생기는 것이냐? 크게 보자면,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영 사역으로 인해 생긴다. 작게 보자면, 하나님의 경영 사역이 사람들 가운데서 전개되면서 필요한 여러 가지 사역이 생기는데, 그러한 사역은 사람이 협력하고 완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로써 사람에게 책임과 사명이 생기게 되고, 그 책임과 사명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본분인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네게 어떤 본분이 주어지든 그것의 상하 귀천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이고 하나님 집의 사역이긴 하지만, 이런 일을 하면 남들이 깔볼 거야. 체면이 서는 일은 남들보고 하라고 하고, 티 나지 않고 뒤에서 힘을 쓰는 일은 다 나한테 시키네. 이게 무슨 본분이야? 이런 본분은 받아들일 수 없어. 이건 내 본분이 아니야. 난 체면도 세우고 이름도 날리는 본분을 맡아야 해. 이름을 날리거나 체면을 세우지 못한다 해도 내게 이득이 되고 몸이 편한 본분이어야 돼.”, 네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 태도가 옳은 것이냐?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고르는 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본분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본분을 거절하는 것이다. 본분을 고르는 순간 너는 참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안에 네 개인적인 취향과 바람이 섞여 있다.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등 갖가지 요소를 고려하면 그것은 순종하는 태도로 본분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 본분을 대하는 태도에는 다음의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분석하지 말고, 누가 안배한 것인지 따지지도 말아야 한다.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하고, 자신의 본분이자 해야 할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상하 귀천을 논하지 말고, 어떤 성질의 일인지, 그것이 사람들 앞에서 하는 일인지 혹은 뒤에서 하는 일인지,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신경 쓰지 마라. 이 두 가지는 다 사람이 본분을 대할 때 마땅히 갖춰야 할 태도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이 말씀을 읽고 본분을 대하는 제 관점과 자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본분은 하나님의 요구로 사람이 이를 이행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걸 자신이 선택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취향대로 남들 눈에 멋있어 보이고 모습을 드러내는 본분만 이행하려 했고, 눈에 띄지 않는 본분은 싫어하고 멀리하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무성의하고 태만하게 일을 하며 하나님께 반항했습니다. 새 신자 때부터 저는 리더나, 춤과 찬양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들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런 본분은 존재감이 있고 남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반면, 몸을 써야 하는 본분은 남들 눈에 띄지도 않고, 전문 기술도 필요 없으니 그런 본분을 이행하면 남들보다 못한 것처럼 보이고 무시당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저는 본분에 등급을 매겼었습니다. 그래서 배경 세팅 본분을 맡자, 잔심부름이나 하는 이런 본분을 이행하면 제 체면과 이미지가 상한다고 생각해 반발심을 느끼고 순종하기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함에 부담이 없었고 배워야 할 업무 지식도 배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본분을 집어치우고 하나님을 배반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저는 제 취향대로 본분을 대했고, 오직 제 허영과 체면, 개인적 이익만을 생각했지 조금도 진정으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본분을 이행한다는 건 더욱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자세로 본분을 대했으니 하나님께서 미워하고 혐오하실 만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저는 괴로움과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사람은 피조물이다. 피조물에게는 어떤 기능이 있느냐? 이는 사람의 실행 그리고 본분과 관련된다. 너는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찬양의 은사를 부여해 노래를 부르게 하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여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 하나님이 너를 복음 전도에 쓸 때, 피조물인 너는 무엇이 되겠느냐? 복음 전파자가 된다. 너를 리더로 쓰려고 할 때에는 너는 그 부탁을 받아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다면, 그때에는 또 그런 기능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도 못하고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으며 힘만 쓸 수 있다면 그런 피조물의 기능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힘을 쓰고 봉사하는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구해야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있다> 중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집에선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눈에 띄는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단지 직함과 역할이 다른 거지 자신의 책임과 의무는 변하지 않고, 원래 신분과 본질 역시 영원히 변함없이 피조물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글 관련 본분을 이행했던 저도 피조물이고, 촬영장 배경 세팅 본분을 이행하는 저도 피조물입니다. 하나님 집의 본분에는 귀천이 없고, 필요에 따라, 그리고 각자의 분량과 자질, 특기에 따라 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 본분에 진심을 다하고, 성실하게 진리를 추구하면서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해 본분을 잘 이행하기를 바라십니다. 다음 하나님 말씀처럼 말입니다. 『역할은 달라도 몸은 하나다. 각자 맡은 바 직책을 다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미력이나마 전력을 다해 생명의 성숙을 추구한다면 나는 만족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21편> 중에서) 교회 리더는 사역상 필요에 따라 저를 배경 세팅 본분에 배치한 거니, 제 취향에 따라 까다롭게 고르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며 각 프로그램에 필요한 배경을 요구에 따라 세팅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작품들을 위해 제 몫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니 제 관점이 바뀌게 되었고, 오랫동안 가슴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돌을 내려놓고 올바르게 이 본분을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참고 자료를 열심히 찾아보며 업무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배우를 맡은 형제자매들과 예배할 때도 본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제 패역과 패괴를 솔직히 털어놓으며 깨달은 만큼 교제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도중, 남들이 저를 무시할까 하는 두려움이 또다시 고개를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제가 또 본분에 등급을 매기고 있음을 의식하고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본분과 하나님을 흡족게 해드리는 걸 우선하려고 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실천하니 마음이 정말 홀가분하고 가벼워졌습니다. 세트장을 꾸미고 소품을 옮기는 일도 더는 하찮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 집의 영상 작품을 위해 힘을 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번 드러남을 겪고 저는 제가 좀 분량이 있고 본분에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시는 본분이 보잘것없다는 이유로 소극적이 되어 하나님을 거역할 일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 뜻에 맞지 않는 상황이 생기니 또다시 고질병이 도지게 되었습니다.

2달여가 지나고 추수철이 됐는데, 외지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들이 있어 수확을 도울 일손이 부족했습니다. 그러자 리더는 저보고 가서 농사일을 도우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농사일을 본분이라 여기고 가서 돕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밭에 나가 보니 일을 하는 형제들은 전부 4, 50대이고 저처럼 20대인 젊은 사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좀 불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한 형제가 다가와 놀란 눈치로 물었습니다. “아니, 형제님. 어떻게 밭일을 할 시간이 났어요? 글 관련 본분을 안 하시는 거예요?” 저는 얼굴이 화끈거려 잠깐 도우러 온 거라고 황급히 둘러댔습니다. 형제가 가고 나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 형제님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분명 젊은 사람이 소질이나 능력이 없어 중요한 본분은 맡지 못하고 농사나 도우러 왔다고 생각할 거야. 어휴, 창피해.’ 생각할수록 속상했습니다. 그날 저는 겉으로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주변 형제님들이 날 어떻게 볼까, 무시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뿐이라 대충대충 일을 끝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컴퓨터 앞에 앉아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형제들이 보였습니다. 순간 제가 그들에 비해 너무 못나 보였습니다. ‘내 본분이 남보다 못한 게 맞는구나. 왜 하필 내가 밭일을 가야 되지? 아무리 그래도 나도 대학까지 나온 사람인데. 열심히 공부했던 것도 뼈 빠지게 일하며 밭을 갈아야 하는 농사꾼 팔자에서 벗어나려고 그랬던 거라고. 내일은 밭에 안 나가야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제가 밭일을 하는 건 제 능력을 낭비하는 일이자 저 자신에 대한 모욕 같았습니다. 생각할수록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농사일이 몸을 쓰는 하찮은 일 같고, 무시당할 것 같아서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자제가 안 됩니다. 지금 너무 괴로워요. 제가 당신의 뜻을 알고 순종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기도 후,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진실한 순종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이 행한 것이 네 마음에 들면 너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너를 남들 앞에 나서게 하면 너는 매우 명예스럽게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것이다. 너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어 네가 아무리 해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아무도 너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너는 기분이 언짢아지고 순종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 순탄한 환경에서는 누구나 쉽게 순종할 수 있다. 만약 역경, 즉 너의 뜻에 맞지 않고 너를 상심케 하고 연약하게 하며, 너에게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고 위신이 서지 않으며, 네 허영과 체면이 채워지지 않고, 네게 심적 고통을 주는 그러한 환경에서도 순종할 수 있다면, 너는 정말로 분량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겠느냐? 너희에게 그런 의지와 목표가 있다면, 희망이 있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정확히 제 상태를 폭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글 관련 본분을 이행할 땐 위신이 서는 일 같아서 기쁘게 받아들이고 순종하면서 열심히 이행했는데, 그날 형제자매들을 도와 농사일을 하는 게 제 허영심과 체면을 건드리자 마음이 불편하고 꺼려졌습니다. 특히 다른 형제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본분을 이행하는 걸 보니 제가 그들보다 못나 보여 불공평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래도 학식을 갖춘 사람이니까 마땅히 좀 더 체면이 서고 전문성이 있는 본분을 이행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반발심이 들고 원망스러워 더는 농사일을 하러 가기 싫었던 겁니다.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하나님 집의 이익과 하나님 뜻을 헤아리는 건 뒷전이고, 저의 허영심과 체면만 신경 썼던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저는 저를 하나님 집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은 본분을 자신의 책임과 의무로 대하며 이행해야 할 본분이 있으면 바로 이행합니다. 힘들고 고생스럽고 체면이 깎이고 손해를 보는 일이라도 교회 사역에 유익하다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해냅니다. 이런 사람이어야 인성이 있고, 하나님 집과 한마음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추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누군가 형제자매들의 농사일을 도와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인데 하나님은 어째서 이 본분이 제게 임하도록 허락하셨을까요? 제가 그 일을 하는 게 큰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런 더럽고 힘든 일을 통해 본분을 대하는 제 태도를 드러내시려는 뜻이었습니다. 그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제가 저의 패괴와 불순함을 인식하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도록 만드시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그런 애쓰시는 마음은 모른 채 본분을 까다롭게 고르려 했고, 늘 제가 본분을 고르고 요구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안배에 순종하지 못하고 거역하고 반항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때서야 하나님의 뜻은 이런 환경을 통해 제 패괴 성품을 드러내 정결케 하시고,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바로잡아 주시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제게 안배해 주신 일이 더럽고 힘들고, 별 볼 일 없더라도 교회 사역에 도움이 된다면 저는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최선을 다해 이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양심과 이성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깨닫게 되자 제 마음은 점차 고요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저도 모르게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하찮게 보이는 본분이 나한테 왔을 때, 왜 난 반발심이 들고 괴로운 걸까? 어째서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지 못하는 걸까?’ 답을 구하는 중,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사탄은 국가 정부, 유명 인사와 위인들의 교육과 가르침을 통해 사람을 패괴시키며, 그들의 허튼소리는 사람의 생명 본성이 되었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사탄의 명언으로, 이미 모든 이의 내면에 침투해 생명이 되었다. 이 밖에 처세 철학에 관한 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각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이용해 사람을 교육함으로써 끔찍한 재난의 망망대해로 빠뜨리며, 사람은 결국 사탄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멸망당하고 만다. … 사람의 삶과 행위, 사람됨에는 아직도 사탄의 독소가 많이 들어 있고, 진리는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사람의 처세 철학, 일 처리 방식, 사람의 좌우명에는 모두 큰 붉은 용의 독소가 가득하며, 이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사람의 뼛속과 핏속에 흐르는 것은 모두 사탄의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이 말씀을 통해 제가 이것저것 까다롭게 굴며 본분에 순종하지 못하는 원인은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마음을 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오직 지극히 지혜로운 자와 지극히 어리석은 자만이 변화하지 않는다.” 등 사탄 독소들의 영향을 받고 패괴돼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늘 열심히 공부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대학에 합격해야 시골에서 힘들게 농사지으며 사는 삶을 벗어나 출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을 찾아 관리자나 책임자같이 남들의 부러움과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일에 종사하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이방인의 시각으로 하나님 집의 본분을 평가했고 본분의 귀천을 따지고 등급을 나눴습니다. 리더나 전문적인 본분은 체면이 서고 형제자매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아무도 모르게 뒤에서 땀 흘리고 힘쓰는 본분은 하찮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거라 여겼습니다. 이런 사탄의 독소들이 이미 제 본성으로 자리 잡아 제 사상을 지배한 탓에 저는 한사코 명예와 지위를 추구했고 큰 인물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제 체면이나 지위와 관련된 일이 생기면 소극적으로 변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하고 반항했습니다. 또한 성실하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도 못했습니다. 양심과 이성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계속 그런 사탄 독소들에 따라 살면서 진리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았다면 결국 진리와 생명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미움을 사 도태돼 버렸을 겁니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나니 육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드리겠다는 의지가 생겨났고, 더 이상은 사탄 독소들에 따라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 저는 다시 밭일을 하러 갔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다음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 기준은 없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결국,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어떤 본분을 이행했는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얻었는지, 하나님의 지배에 맡겨 진정한 피조물이 될 수 있는지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공의롭기에 이 기준에 따라 모든 사람을 가늠한다. 이 부분은 영원히 변하지 않음을 너는 기억해야 한다. 다른 길을 찾으려 하거나 다른 비현실적인 것을 추구하지 마라. 구원받을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네가 누구든 마찬가지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이 하나님께 가져야 할 태도> 중에서)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종착지를 정하실 때 어떤 본분을 이행했는지 보시지 않습니다. 사역의 양이나 공헌한 정도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했는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했는지, 결국 진리를 얻어서 생명 성품이 변화했는지를 보십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제가 아무리 사람들 보기에 위신이 서는 그럴듯한 본분을 이행해도 결국엔 진리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께 인정도, 구원도 받지 못합니다. 전에 교회에서 출교된 적그리스도가 생각났습니다. 그녀는 중요한 본분들을 이행했고, 리더도 맡았기에 일부 새 신자들의 우러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진리와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명예와 이익을 좇으며 완고히 적그리스도의 길을 갔습니다. 결국은 악행을 많이 저지르고 하나님 집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여 출교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사무 본분을 이행하는 주변의 형제자매들을 보면, 비록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일을 맡았지만 불평 없이 묵묵히 본분을 이행할 뿐이었습니다. 일이 생기면 진리와 하나님 뜻을 구하니 그들은 본분에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가 있어 성과는 점점 더 좋아지고 점점 더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를 얻을 수 있느냐 여부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느냐와는 상관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가장 중요한 건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길이었습니다. 리더가 저를 배경 세팅과 농사일에 배치한 것도 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고, 생명 진입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받아들이고 순종하여야 했고, 본분을 이행할 땐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걸 중시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본분을 이행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거였습니다. 이걸 깨닫고 나자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그 후 리더가 다시 저를 보잘것없어 보이는 본분에 배치해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시간이 날 땐 제가 자발적으로 다른 형제자매네 일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가서 청소를 돕든, 나무를 심든, 도랑을 파든, 무슨 일을 하든 다 배울 공과가 있었습니다. 힘쓰는 일을 해도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그 일에 있어 마음을 다해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면 모두 수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통해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자 제 생명 진입에 필요한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제 책임과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또 그 과정에서 진리와 성품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비록 저는 줄곧 본분에 귀천을 두고 등급을 매기며, 마음에 안 드는 본분이 임하면 반발하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였지만, 하나님은 제가 저지른 과오에 따라 저를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매번 말씀으로 이끌어 주시며 제가 진리를 깨우치고 피조물의 책임과 사명을 알아 올바른 태도로 본분을 대하고 하나님께도 순종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다음: 영혼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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