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사함을 알게 되다

2024.07.06

홍콩 샤오첸(小倩)

저는 교회에서 새 신자를 양육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양성할 만한 사람을 선별해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는지 가르치는데, 저에겐 다소 벅찬 일입니다. 일단 전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어떤 사람이 양성할 만한지 가늠을 잘하지 못하는 데다가 성품이 교만해 새 신자들이 다 양성할 만하지 않다고 단정 지으며 그들에게 높은 수준을 요구합니다. 또한 이건 공을 너무 많이 들여야 하는 일인 것 같아 신경을 쓰고 대가를 치르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줄곧 사람을 양성해 내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새 신자 몇 명이 들어왔는데, 양성할 만한 사람들인지 꿰뚫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일정 기간 양성하고 난 뒤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단 게 밝혀지면 시간과 노력을 날린 꼴일 테고, 그렇다고 양성을 안 하자니 책임자가 저더러 새 신자에게 너무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양성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제게 사역 능력이 없어 사람을 양성해 내지 못한다고 뭐라 할까 걱정되었습니다. 어떡하면 좋을지 난감해하던 전 바로 책임자를 찾아가 그녀의 결정을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일이 잘못돼도 저 혼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양성했다 해도 책망받지 않을 테니까요. 책임자와 연락이 되자, 전 사람을 판단하는 눈이 없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대신, 먼저 새 신자들의 상황과 어려움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어떤 새 신자는 현지 인터넷 상황이 안 좋아 연결이 잘 안 된다, 다른 새 신자는 일이 너무 바쁘다, 또 어떤 새 신자는 예배에서 통 말을 안 한다 등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면서 책임자가 저보고 사람을 단정 짓는다 뭐라 할까 봐 에둘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열성적으로 추구하고 있어요. 일단 열심히 양성해 볼까 봐요.” 전 제가 이렇게 말하면 책임자가 이 새 신자들은 양성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결정은 그녀가 한 것이니 전 책임을 질 필요도, 대가를 치러가며 사람을 양성할 필요도 없었죠. 하지만 제 예상과 다르게, 책임자는 답을 주는 대신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요? 자매님은 말을 빙빙 돌려 하는 것 같은 게, 영 듣기 피곤하네요. 전에도 이런 식이었죠. 새 신자가 이러이러해서 별로라는 말부터 꺼내 양성하기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잖아요. 그러면서 마지막엔 ‘그래도 열심히 양성해 볼게요’, 이런 식으로 말하니 대체 자매님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어요.” 책임자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언짢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꼭 말을 뱀처럼 한 것 같잖아? 뱀은 똑바로 가지 않고 구불구불 대며 다니지. 내가 말하는 게 그렇게나 심각하다고? 괜히 자기 기분 안 좋다고 나한테 화풀이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전 이런 생각이 옳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책임자는 아무 근거 없이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고, 저와 함께하면서 느낀 바를 얘기해 준 것이었습니다. 제가 패괴 성품을 드러내놓고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를 본 책임자 자매가 지적해 주니 절 도와준 것이란 생각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매님이 얘기한 문제들은 아직 인식하지 못하겠어요. 그래도 지적을 받아들여 자신을 잘 반성하고 인식해 볼게요.”

그 후, 전 책임자의 말을 여러 번 되뇌어 보았고, 하나님께도 기도하며 제가 자신을 알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러다 사탄은 말을 투명하지 못하게 빙빙 돌려가며 얘기한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탄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욥 1:7) 하나님은 사탄의 이런 대화 방식을 폭로하고 해부하신 적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물음에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사탄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느냐? (참 터무니없고 간사하다고 느껴집니다.) 나는 어떻게 느꼈는지 아느냐? 나는 이 구절을 볼 때마다 혐오감이 든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을 한 것이냐? 이 말은 대답이 아니다. 결과가 없다. 하나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이 구절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사탄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너희는 그 답을 얻었느냐? (얻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사탄 간계의 ‘교묘함’이다. 그 누구도 사탄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길이 없다. 다 듣고 나서도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데, 사탄은 대답을 끝내고 스스로 훌륭하게 답했다고 여긴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혐오스럽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제 이 말을 혐오하게 되었구나. 사탄은 말할 때 하나의 특징이 있다. 사탄이 한 말은 상대가 갈피를 못 잡고 영문을 모르게 만든다. 어떨 때는 속셈을 갖고 일부러 말하는 것이고, 어떨 때는 사탄이 자신의 본성에 지배받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드러내게 되는데, 입을 열면 그런 식으로 말이 나온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것은 이런 허튼소리로 대답하여 어디서 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게 만든다. 너희 중에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느냐? 어떤 식으로 말하는 것이냐? (불분명하고 모호하게 말하며 정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이런 대화법을 어떤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 ‘성동격서’(聲東擊西)와 ‘진위를 구분 못 하게 한다’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자신이 어제 무엇을 했는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을 때, 네가 그에게 “어제 어디 갔었어요? 어제 당신을 봤는데요.”라고 물으면, 그는 어디에 갔는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어제요, 하루 종일 정말 피곤했어요!”라고 할 것이다. 그가 너의 말에 대답을 했느냐? 대답은 했다. 하지만 원하는 답을 주지는 않았다. 이것이 바로 화법의 ‘교묘함’이다. 너는 늘 그의 뜻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으며, 그가 하는 말의 근원과 속셈을 알 수 없다. 또한 그가 무엇을 피하려는 건지 알 수 없다.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음험하다고 한다. 너희 중에도 자주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느냐? (네.) 그렇다면 목적이 무엇이냐? 어떤 때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어떤 때는 자신의 체면과 지위, 이미지를 지키고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냐? 어찌 됐든 모두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는 본성이 아니더냐?(<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4>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사탄의 말과 행동에는 온통 속셈과 간계가 들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은 자신의 은밀한 목적을 감추기 위해 빙빙 돌려가며 애매모호하게 말해 다른 사람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들고 그의 내막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전 평소 형제자매들과 대화를 나눌 때 사탄처럼 빙빙 돌려 말해 남들이 제 내막을 알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을 반성하였습니다. “자매님이 책임진 교회에는 양성할 만한 새 신자가 몇이나 있나요? 그 새 신자들의 현재 상황은 어떻죠?”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물어오면 사실 간단하게 답하면 되었습니다. 몇 명이 있고, 현재 상황은 어떻다,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전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는 대신 새 신자들의 안 좋은 모습만 골라 얘기하고 온갖 객관적인 이유를 대며, 제가 새 신자 양성을 잘못한 게 아니라 새 신자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양성할 만하지 않다고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새 신자를 양성해야 하니, 일단 양성해보도록 하죠.” 전 새 신자들을 이것저것 트집 잡다 갑자기 그래도 양성해 보자는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형제자매의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는 대신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지 못하게 에둘러서 얘기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사탄은 속셈과 간계를 품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말을 이리저리 에둘러서 한다고 했습니다. 전 속으로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았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그런 식으로 얘기한 데에는 어떤 목적이 있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늘 온갖 불리한 요소들을 먼저 말했습니다. 남들이 제가 새 신자를 양성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새 신자들에게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어 양성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들려는 거였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엔 그래도 양성해 보겠다고 얘기해, 다들 제가 새 신자 양성하는 일에 책임감을 갖고 있고 태도도 적극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다들 제가 새 신자를 단정 짓길 좋아하고 대가를 치러가며 사람을 양성하는 걸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을 테니까요. 전 비열한 속셈을 감춘 채 이리저리 에둘러 말을 했습니다. 전 책임자에게도 그런 식으로 말했는데, 책임자가 제 내막은 알지 못한 채 알아서 추측해 이번 새 신자들이 양성할 만한지 아닌지 결정을 내리게 만들려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가 어떻든 제게 유리할 테니까요. 만약 왜 새 신자를 양성하지 않았냐고 추궁을 받으면, 전 아주 자연스럽게 책임을 책임자에게 돌리면 그만이었습니다. 만약 이 새 신자들이 잘 양성된다면, 다들 저보고 문제 많은 새 신자들도 잘 양성해 냈다 생각할 거고, 전 사역 능력이 있는 것이 증명돼 체면이 살겠지요. 저의 말하는 방식은 하나님이 폭로하신 사탄의 말하는 방식과 똑같았습니다. 이리저리 에둘러 말하며 속셈을 꽁꽁 숨기고, 남들이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제 목적을 이루려 했습니다. 사탄과 똑같이 너무나 음험하고 간사했습니다. 전 겉으론 책임자에게 새 신자들을 양성할지 말지 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책임자가 저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해 책임을 전가하려 했던 것이었습니다. 저의 이런 행동은 참으로 음험했습니다! 똑같이 문제를 문의하는 거지만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관련된 원칙을 구했을 겁니다.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 새 신자를 더 잘 양성해 내고 그럼으로써 하나님 집 사역이 더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만들기 위해서요. 하지만 제가 ‘구한’ 목적은 책임을 전가하고, 제 이익과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음험하고 교활할 수 있었을까요? 책임자가 절 책망하고 폭로한 것은, 제가 늘 간사한 성품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면서도 절대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아 하나님의 혐오와 사람의 반감을 샀기 때문이었습니다. 전 하나님께 기도하며 앞으론 제 말과 행동에 담긴 속셈과 목적을 잘 성찰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새 신자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전 또다시 새 신자의 여러 문제를 들먹거리며 새 신자 양성이 잘 안 되는 건 제 책임이 아니란 식으로 말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속셈을 품는 것은 옳지 않고 간사한 짓이란 걸 알아차리고, 의식적으로 기도하며 저버렸습니다. 그런 후 사실대로, 객관적으로 새 신자의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또 옛 병이 도지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책임자로부터 제가 양육하는 한 새 신자가 장 자매가 인도하는 예배에 참가했고 또한 장 자매의 교재를 듣기 좋아한다는 얘길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따져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새 신자는 교만하고, 관념도 많았으며, 세상의 조류도 좋아했습니다. 어쨌든 그 형제가 제 쪽에서 정상적으로 예배드리지도 않았고, 양육하는 데 퍽 힘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 형제를 장 자매에게 보낸다면 부담도 줄고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장 자매에게 보내겠다고 하면 책임자가 절 보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 몸을 사리며 양육하기 까다로운 새 신자를 거부한다고 할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만약 책임자가 알아서 그 새 신자를 다른 곳으로 보내 준다면, 전 자연스럽게 짐을 하나 덜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책임자를 슬쩍 떠보았습니다. “새 신자가 직접 장 자매의 교제를 듣기 좋아한다고 말했다고요?” 책임자가 대답했습니다. “네.” 전 서둘러 말을 이었습니다. “새 신자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이상, 새 신자의 의향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그 형제는 우리 쪽 예배는 자주 오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안배하면 좋을까요?” 말을 끝낸 전 책임자가 입을 열어 그 새 신자를 보내자고 말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책임자는 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전 불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또 속셈과 간계를 품고 말을 한 게 아닌가? 난 왜 늘 이런 떳떳하지 못한 속셈을 품고 말을 하는 걸까? 어째서 단순하게 내 관점을 직접적으로 털어놓지 못하는 걸까?’

하루는, 제 내적 상태에 맞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셨는데, 이런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때로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고, 또 어떨 때는 끝은 있으나 시작이 없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챌 수가 없으며,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사람한테 분명하게 말하라고 해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말을 할 때 대명사를 즐겨 사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보고한다고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 말이에요. 그러니까 말이죠. 그가 그렇게 생각했대요. 나중에 형제자매들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았죠….” 한참을 얘기해도 확실한 게 없고 횡설수설한다. 온전한 문장 없이 전부 단어의 나열이며, 서로 연결이 되지 않아 끝까지 들어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고 속이 답답하다. 사실 그는 가방끈도 길고 문화적 소양도 높은 편이다. 그런데 왜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말하지 못하겠느냐? 이는 성품 문제이다. 사람이 너무 교활해서 말할 때조차 고민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말에는 중점이 없으며, 시작은 있어도 마무리가 없다. 서두는 꺼내 놓고 마무리는 삼키는 것이다. 그가 왜 말을 삼키겠느냐? 자신의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게 해서 추측하게 하기 위함이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그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알아채지 않겠느냐? 이는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는 무엇을 원하겠느냐? 그는 너 스스로 추측하게 하려는 것이다. 네가 추측한 게 곧 사실이라고 믿게 말이다. 어쨌든 그는 확실히 말하지 않았으니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 밖에, 네 추측을 말하는 게 그에게 어떤 이로움이 있겠느냐? 네가 말한 추측은 그가 이끌어 내고 싶었던 말이다. 네 말을 통해 그는 그 일에 대한 네 생각과 관점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너에게 말해야 하는지 선택해 말할 것이며, 다음 행보를 결정할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의 뒤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네가 그의 말을 들으면서 늘 뒷말을 잇는다면 그의 함정에 완전히 빠지는 것이다. 그가 늘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피곤하지 않겠느냐? 그는 그런 성품을 갖고 있어 피곤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이런 건 너무도 손쉬운 일이다. 그가 왜 함정을 파 놓겠느냐? 그는 네가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네가 그를 간파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는 네가 그에 대해 알지 못했으면 하지만, 이와 동시에 너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며, 네 관점과 생각, 행동을 끌어내려 든다. 만약 끌어낸다면 그가 꾸민 함정이 제 역할을 한 것이다. 혹자는 말할 때 “흠”, “아”와 같은 간투사로 시간을 끌며 구체적인 관점을 말하지 않고, 또 혹자는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등의 단어로 시간을 끌면서 자신의 진실한 뜻을 숨기고 하려는 말을 대신한다. 말할 때마다 쓸모없는 조사나 부사, 보조동사가 특히 많다. 만약 그가 한 말들을 녹음해서 정리하면, 그 일에 대한 그의 관점과 태도를 드러내는 말이 한마디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말에는 함정과 시험, 유인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어떤 성품이겠느냐? (사악한 성품입니다.) 너무도 사악하다. 이는 기만 아니겠느냐? 함정을 파고 시험하고 유인하는 행위는 전부 기만이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본질을 지닌 이 부류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 공통된 특징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겠느냐? 좋은 일은 알리고 나쁜 일은 알리지 않으며, 듣기 좋은 말만 하고, 늘 우물쭈물하면서 반은 숨기고 반만 드러낸다. 또 애매모호하거나 두리뭉실하게 말을 하며 남을 시험하려 든다. 이러한 것들이 전부 함정이자 기만의 수단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늘 에둘러서 모호하게 말을 해 아무도 그 내막을 알 수 없습니다. 또 늘 시험하고 유인하는 식으로 말을 해 남을 함정에 빠뜨려 개인적인 목적을 이루고 결국 모든 책임을 피해 갑니다. 사탄이 하와에게 동산 나무의 과실을 먹어도 꼭 죽는 건 아니라고 말하며 유혹했던 것처럼, 사탄의 말에는 시험하고 유인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사탄은 자신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사람이 죄를 짓게 유인해 놓고 그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폭로하셨습니다. 『사람은 모두 내면에 사탄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속에는 다 사탄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사람을 유혹하는 다양한 독소를 가지고 있다. 때로 사람은 사탄의 말투로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시험과 유혹의 의미가 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모두 사탄의 독소로 가득 차 있으며, 사탄의 냄새를 풍긴다. 때로는 사람의 눈빛 또는 행동에도 시험과 유혹의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으면서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제가 딱 이랬습니다. 형제자매와 얘기할 때 늘 에둘러서 말하고, 비열한 속셈을 품은 채 상대를 시험하고 유인했습니다. 전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새 신자를 붙들어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회를 빌려 짐을 떠넘기고 싶었지만, 제가 새 신자를 단정 짓고 꺼린다는 인상을 상대에게 주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새 신자에게 책임감과 사랑이 있다는 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전 새 신자의 감정을 존중해 그의 의향을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며 책임자를 떠보았습니다. 그녀가 자발적으로 그 새 신자를 장 자매 쪽에 보내 예배드리게 하도록 유인했지요. 그러면 제 목적은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방식은 하나님이 밝히신 것과 같았습니다. 『만약 그가 한 말들을 녹음해서 정리하면, 그 일에 대한 그의 관점과 태도를 드러내는 말이 한마디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말에는 함정과 시험, 유인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어떤 성품이겠느냐? (사악한 성품입니다.) 너무도 사악하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중에서) 일이 임했을 때 전 정직한 말이라곤 한마디도 안 하면서, 시험하고 유인하는 말은 입만 열면 나왔습니다. 제 본성은 확실히 너무 사악했습니다. 전 남들이 제 진짜 목적을 알지 못하도록 에둘러서 말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건 너무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기 허물을 스스로 드러내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제 간사한 대화 방식을 지혜롭다고 생각했고, 제가 수단이 좋고 머리가 잘 돌아가며, 말할 때 남들보다 한발 앞서서 생각하며, 이러면 제 개인적 이익이 손해 볼 일 없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이런 교활하고 간사한 방식을 사람됨의 원칙으로 삼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 말하고 행동함에 있어 분명하고 투명해야 하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사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물을 바라보는 제 관점은 일찌감치 왜곡돼 있었습니다. 사탄의 처세법을 제 행동과 사람됨의 준칙으로 삼아 곳곳에서 수작을 부리고, 어디서든 사람을 기만하고 우롱했습니다. 여기까지 반성해 보니, 조금 두려워졌습니다. 제가 이렇게 음험하고 사악하다니, 사탄에게 깊이 패괴돼 사람다운 모습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저는 자주 이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한번은 이모가 얼마 전에 산 명품 핸드백이 너무 마음에 드는데 제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까웠고, 그렇다고 그냥 달라고 하기엔 염치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전 이모를 걱정하는 척하며 말을 걸었습니다. “이거 좀 봐요. 핸드백을 사놓고 쓰질 않다니, 낭비잖아요! 이모는 명품 핸드백도 많으면서 왜 또 이런 걸 샀어요?” 이런 식으로 이모가 함부로 돈을 쓰며 필요 없는 물건을 사는 걸 정말 걱정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뜻인즉, 이 핸드백은 이모에게 별로 필요하지 않으니 가만히 두고 쓰지 않는 것은 낭비니까 차라리 저를 주라는 거였습니다. 제 말을 들은 이모는 그 핸드백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에 절 주었습니다. 이렇게 몇 마디 말로, 전 이모가 ‘자발적으로’ 핸드백을 제게 주도록 만든 것입니다. 전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상대가 생각이 바뀌어 알아서 제게 주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떠올려보니, 저란 사람이 너무 간사한 게 보였습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런 역겨운 말들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제야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적그리스도가 말하고 일하는 방식, 그리고 그들이 드러내는 사악한 성품이 제게도 적잖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오랜 세월 전 이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어떤 때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간사한 말이 나왔습니다. 제 사악한 성품은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너무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런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간사한 사람을 혐오하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간사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간사한 사람의 행동과 성품, 나아가 그의 속셈과 속임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것은 모두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다. 간사한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여 자신의 간사한 성품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그래도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고, 진리도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먼저 사람됨의 원칙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사탄의 철학으로 살아가거나 거짓말과 기만으로 하루하루 보낼 것이 아니라 모든 거짓말에서 벗어나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도 달라질 것이다. 과거에 사람은 늘 거짓말과 기만, 가식적인 태도로 군중 속에서 생활하면서 사탄 철학을 생존의 토대이자 생명, 바탕으로 삼고 처신했는데, 이는 하나님이 혐오하는 짓이다. 이방인들 사이에서는 사실과 진실을 말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면 비방을 받고 판단을 당하고 버림받는다. 그래서 너는 세상의 조류를 좇고 사탄 철학으로 살아가면서 갈수록 거짓말을 많이 하고, 갈수록 간사해지고, 또 음험한 수단으로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이로써 자신을 보호하며 사탄의 세상에서는 갈수록 형통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죄 속에 점점 더 깊이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것과 정반대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고 간사한 짓을 할수록 하나님 선민들은 너를 더 싫어하고 버릴 것이다. 네가 회개할 생각도 없고 계속 사탄의 철학과 논리를 고수하며 음모와 간계로, 고단수로 자신을 꾸미고 포장할수록 더 쉽게 드러나 도태된다. 하나님은 간사한 사람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정직한 사람만이 형통하고, 간사한 사람은 마지막에 버림받고 도태된다. 이는 하나님이 일찍이 정해 놓은 것이다. 오직 정직한 사람만이 천국에 분깃이 있다. 만약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체험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네 추함을 폭로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지 않는다면, 영원히 성령 역사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간사한 사람은 혐오하십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간사한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됩니다. 또한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으면서 교회에서 정리돼 도태된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본분을 늘 무성의하게 이행하며 남을 기만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 늘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고 온갖 방법으로 자신을 높였습니다. 그들은 개인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간계를 부렸습니다. 일시적으로 이들에게 미혹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상황을 마련하셔서 이들을 하나씩 다 드러내셨습니다. 새 신자를 양육하고 양성했던 절 떠올려 보았습니다. 늘 각종 이유와 변명거리를 찾아 간사하게 굴고 남을 기만하며, 자신의 패괴와 부족함을 덮으려 했습니다. 회개하고 변화하려 노력하지 않아 과오는 점점 더 쌓이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하나님께 버림받아 도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단순하고 정직한 형제자매들을 보면, 그들 역시 본분을 이행하다 모르는 부분을 많이 맞닥뜨리고, 오류나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책임을 미루지 않습니다. 진리를 깨닫고 원칙을 파악해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기 위해, 자신의 체면과 지위는 내려놓고, 단순하게 털어놓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남에게 구합니다. 그들에게선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볼 수 있습니다. 설령 그들의 자질이 평범하고, 때로는 다소 어리석더라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들이 조금씩 원칙을 깨닫고 본분을 점점 더 잘 이행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단순하고 정직한 사람을 축복하신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움이었습니다. 이를 깨닫자 참말을 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 남에게 간파를 당하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당시엔 체면이 상했다고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그런 사람이 되면 떳떳하고 거리낌이 없고, 하나님도 좋아하십니다. 거기다 단순하게 털어놓으며 자신의 문제를 드러낸다 해도, 형제자매들은 업신여기지 않고 제가 문제를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원칙에 진입하도록 저를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면 본분에 피해를 입힐 일이 없습니다. 현재 하나님나라 복음은 빠르게 확장하고 있고, 일어나 함께 협력해야 할 많은 새 신자가 급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양성해 낸 새 신자는 고작 몇 명이 안 되었습니다. 이건 하나님 집 사역을 가로막고 교란한 것 아닙니까? 이건 하나님을 대적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거짓말을 하고 간사한 짓을 할수록 하나님 선민들은 너를 더 싫어하고 버릴 것이다. 네가 회개할 생각도 없고 계속 사탄의 철학과 논리를 고수하며 음모와 간계로, 고단수로 자신을 꾸미고 포장할수록 더 쉽게 드러나 도태된다. 하나님은 간사한 사람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정직한 사람만이 형통하고, 간사한 사람은 마지막에 버림받고 도태된다. 이는 하나님이 일찍이 정해 놓은 것이다. 오직 정직한 사람만이 천국에 분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명확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길 추구하는지는 그 사람의 결말, 운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마련해 주신 크고 작은 상황들을 떠올려보니, 전 거기에서 진리를 구하며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는 대신, 흐리멍덩하게 지나온 것 같았습니다. 사탄의 본성에 따라 살며 가장 기본적인, 정직한 사람이 되는 진리에도 진입하지 못하였고 생명 성품도 전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전 여전히 사탄에 속하는 간사한 사람인데,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정직한 사람이 되길 실행하는 것만이 바른길이었습니다.

그 후, 전 계속해서 구하였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정직한 사람이 되도록 실행하는 길도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간사한 짓은 어떤 속셈에서 비롯되겠느냐?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겠느냐?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명리와 지위를 얻기 위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이익을 추구하는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은 이익을 그 무엇보다 높이 본다. 이익을 얻기 위해 간사한 짓을 하며, 간사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먼저 이익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이익을 추구한 결과는 무엇인지 분별하고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밝히 알지 못하면 이익을 포기하기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이익을 포기하기가 그 무엇보다 어려울 것이다. 사람의 생명 철학이 바로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누구나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이익이 없다면, 또는 이익을 잃는다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사람이 생존하려면 이익을 떠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오직 이익만을 좇으며, 이익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 사람에게 이익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목숨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겠느냐? 반드시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진리를 깨달아야만 이익의 본질을 간파할 수 있고, 포기하고 저버리는 법을 배워 고통을 감내하면서 내려놓을 수 있다. 네가 고통을 감내하면서 내려놓고 이익을 포기한다면 어느 정도 홀가분하고 평안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육을 이긴 것이다. 만약 네가 한사코 이익을 끌어안고 놓지 않으며,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이익을 얻을 거야. 절대 손해 보지 않을 거라고. 이게 뭐가 잘못됐어? 하나님도 나를 벌하지 않으셨는데 사람이 나를 어쩌겠어?’ 누구도 너를 어쩌지는 못하지만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마지막에는 진리 생명을 얻을 수 없다. 그럼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큰 유감이 되지 않겠느냐? 이것이 바로 이익을 추구하는 자의 최종 결말이다. 사람이 명리와 지위,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영원히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한다.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자신이다.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네 패괴 성품을 돌아보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없고, 생명 진입도 불가능하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아는 것, 이는 너의 생명이 성장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이고, 네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감찰과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진리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다. 만약 네가 명예와 지위,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진리 추구를 포기한다면, 이는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구원에 이르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네가 선택하는 것은 명리와 지위, 자신의 이익이지만 네가 포기하는 것은 진리이고, 네가 잃게 되는 것은 생명과 구원받을 기회다. 어느 쪽이 가볍고 어느 쪽이 무거우냐? 이익을 선택하고 진리를 포기한다면 너는 어리석은 자 아니겠느냐? 한마디로 소탐대실이라고 할 수 있다. 명리와 지위, 돈, 이익은 모두 잠시적인 것,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고, 반면 진리 생명은 영원한 것이고, 영원불변한 것이다. 사람이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게 하는 패괴 성품을 해결한다면 구원받을 희망이 생긴다. 이 밖에, 사람이 얻는 진리는 영원하여 사탄도, 어떤 사람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너는 이익을 포기하지만, 진리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며, 이 성과는 너에게 돌아간다. 이는 너 자신을 위해 얻는 것이다. 사람이 진리 실행을 선택한다면, 비록 이익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누구보다 총명한 사람이다. 만약 사람이 이익을 얻기 위해 진리를 포기한다면, 생명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잃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누구보다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익과 진리 앞에서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그 사람을 너무나도 잘 드러내 준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를 선택할 것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이익을 버릴지언정 진리를 추구할 것이다. 아무리 큰 고난을 겪을지라도 굳게 서서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기본적인 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을 아는 것은 성품 변화의 기초이다> 중에서)

사람의 거짓말에는 보통 속셈이 숨어 있지만 어떤 속셈이나 치밀한 계획 없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거짓말도 있다. 이런 거짓말은 그래도 해결하기가 쉽지만 속셈이 있는 거짓말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속셈은 본성에서 비롯되고, 사탄의 계략을 의미하며 사람이 일부러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육을 저버릴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거짓말은 단번에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심지어 여러 번 반복되기도 하는데, 이는 정상적인 상황이다. 거짓말이 한 번 나오면 한 번 해결하고, 두 번 나오면 두 번 해결하면서 계속 해결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모두 해결될 것이다. 거짓말을 해결하려면 장기전을 치러야 한다. 한 번 드러나면 반성한 다음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드러나면 또 반성하고 다시 기도해야 한다. 기도가 거듭될수록 너는 속으로 패괴 성품을 증오하고,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를 살아 내는 일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면 마음속에 거짓말을 버릴 힘이 생긴다. 한동안 이렇게 실행하고 나면 거짓말이 많이 줄어들고, 사는 것도 훨씬 홀가분하고, 다시는 거짓말하고 둘러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록 매일 하는 말은 그리 많지 않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마음속에 있는 말이고, 사실이고, 거짓말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살면 어떻겠느냐? 자유롭고 해방되지 않겠느냐? 패괴 성품에 얽매이고 구속되지 않게 되는데, 적어도 정직한 사람이 되는 초기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물론 특별한 상황에서는 거짓말을 조금 드러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위험한 상황이나 골치 아픈 상황에 직면했을 때, 혹은 자신의 안전을 보호하려 할 때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반드시 반성하고,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제가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남을 기만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도록 철저하게 구원해 주십시오.” 만약 의도적으로 지혜를 발휘한 것이라면 패괴 표출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은 이렇게 체험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조금씩 거짓말이 줄어들 것이다. 오늘 열 마디를 했다면 내일은 아홉 마디가 될 것이며, 모레는 여덟 마디가 될 것이고, 그 후에는 두세 마디가 될 것이다. 너는 솔직한 말이 점점 더 많아지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면에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 조금씩 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면 얼마나 좋으냐!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실행할 때는 길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먼저 거짓말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거짓말하는 본질을 알아야 하며, 거짓말하는 속셈과 동기가 무엇인지, 자신이 왜 그런 속셈을 갖고 있는지, 그 속셈은 어떤 성질인지 해부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확실히 하게 되면, 거짓말하는 문제를 철저하게 간파하게 되고, 다시 일이 닥쳤을 때는 실행 원칙이 생길 것이다. 네가 이렇게 실행하고 체험하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너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건 쉽구나. 간사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야! 나는 더 이상 간사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항상 거짓말하고 둘러대기 위해 고민해야 해. 정신병자처럼 하는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아. 그럼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지! 이렇게 사는 건 너무 피곤해.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라고 할 것이다. 그때 진정으로 정직한 사람이 될 희망이 있는 것이다. 이는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는 측면에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하나의 돌파이다. 물론 처음 실행할 때는 정직한 말을 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힘을 달라고 구해야 한다.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고 나면 남들에게 비웃음을 살까 봐 두렵습니다. 제가 패괴 성품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구원해 주시고, 제가 당신 말씀대로 살며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면 내면이 점점 밝아져서 ‘이렇게 실행하니 좋구나. 나는 오늘 진리를 실행했어. 드디어 정직한 사람으로 한 번 산 거야.’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너를 깨우쳐 줄 것이다. 하나님은 네 마음속에서 역사하여 너를 감동시킬 것이며,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할 것이다. 진리를 실행할 때는 이렇게 실행해야 한다. 처음에는 길이 없지만 진리를 구하면서 길을 찾게 된다. 진리를 구하기 시작할 때 꼭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이 없을 때 사람의 마음은 몹시 고통스럽지만 일단 진리를 깨달아 실행할 길이 생기면 마음에 누림이 생긴다. 그 상태에서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면 마음에 위안을 얻을 것이며, 자유와 해방을 얻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하나님 말씀 가운데 전 거짓말과 간사함을 해결하는 실행 원칙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개인의 이익은 포기해야 합니다. 이 방면의 실행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는 목적은 바로 개인의 이익을 지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런 목표를 위해 일하면 거짓말을 하고 간계와 수단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니 반드시 먼저 개인의 이익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러면 마음속의 간사함은 쉽게 해결이 됩니다. 그 밖에, 늘 자신을 반성하고, 일하고 말할 때마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말하고 일하면서 간사를 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먼저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해 어떤 목적을 이루고 싶은 건지 물어봅니다. 간사한 속셈과 사악한 성품을 드러낸 것을 알아차렸다면, 서둘러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하고 마음을 되돌려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참말을 하며 정직한 사람이 되는 법을 훈련하고, 형제자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관점, 자신의 패괴와 부족함을 드러내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해야 간사하고 사악한 사탄 성품이 점차 정결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깨달은 후, 전 자발적으로 책임자를 찾아가 그녀에게 제가 그녀와 대화할 때 가졌던 비열한 속셈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했습니다. 책임자 자매는 절 싫어하지 않고 제게 속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우린 함께 본분 가운데 있는 부족함을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자 무척이나 평온했고, 어두운 곳에서 살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며,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비록 지금도 간사하고 사악한 패괴 성품을 완전히 벗어 버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과 믿음이 있습니다. 생활 속 사소한 일들에서도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정직한 말을 하고 정직하게 일하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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