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2022.12.09

미얀마 안펀

저는 2020년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됐어요. 재림주를 맞이했다는 건 굉장히 복받은 거였죠. 저는 이 좋은 소식을 빨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복음을 전했어요. 많은 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보좌 앞으로 오길 바랐죠. 근데, 2022년 2월부터 미얀마 정부의 종교 탄압이 시작되면서 제가 있던 교회도 핍박을 받았고, 복음 사역에 큰 방해가 됐어요. 어떤 분들은 두려움에 예배도 제대로 못 드렸고, 본분에도 피동적이라 복음 사역은 거의 정지되다시피 했어요. 그땐 저도 본분에 피동적이었고, 그냥 리더가 하라는 것만 했었어요. 전 양육을 했는데 사람들이 제대로 예배나 본분을 안 한 거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죠. 가끔은 인터넷이 끊기면 사역 상황을 파악하려고 해도 연락이 안 되니 인터넷을 찾아다녔어요. 어떤 때는 반나절을 찾아도 인터넷이 잘되는 곳이 없었죠. 자주 그러니까 사역 파악도 안 하고 싶었죠. 그때, 한 자매의 친척한테 전도했는데 가족 셋 다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서 거기서 10일 정도 지내면서 양육했어요. 저는 3명을 양육한 것에 만족하고 더 전할 생각도 안 했어요. 옆 마을은 루머가 많이 퍼져서 복음 전하기 힘드니까 그 가족을 먼저 잘 양육을 해놓은 다음 그분들 친지들한테 또 전하면 괜찮겠다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형제자매가 옆 마을에도 전할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잘 의논하지 않았어요. 복음 사역을 가로막고 있었죠.

나중에 사역 총정리 때, 리더가 우리 교회가 이번 달 복음은 정지상태라며 여러 문제를 지적했어요. 마음이 좋지 않았죠. 나중에 한 자매가 저보고 현 상태에 안주하고 진취심이 없다는 거예요. 그때 정신이 좀 들었죠. 그제서야 제가 본분에 부담이 없고 앞장서서 이끄는 역할을 못한 게 느껴졌어요. 어려울 때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 사역이 지체된 거거든요. 마음이 괴로웠어요. 반성하면서 이 말씀을 보게 됐죠. 『현재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못하고, 태만하게 굴며 자신의 육체만을 생각하는데, 그런 자들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눈먼 사람이다. 네가 이 일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부담도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많이 헤아릴수록 하나님이 네게 더 많은 부담을 더해 줄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그러한 고난을 받는 것도, 대가를 치르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 결과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놓치게 되니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는 일이 아니겠느냐? 만약 네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라면 교회에 대한 참된 부담을 느낄 것이다. 사실, 교회에 대해 부담을 갖는다고 하기보다는 너 자신의 생명에 부담을 갖는다고 말하는 게 옳다. 교회에 대해 부담을 갖는 것은 그런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해 부담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 생명 진입에 대해 부담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분명히 이해했느냐? 네가 속한 교회가 엉망진창인데도 전혀 애타하지 않고, 형제자매들이 정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못하는데도 본체만체한다면 이는 부담이 없는 모습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온전케 되다>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는데 마음이 괴로웠어요. 저는 교회 리더인데 복음 사역이 정지 상태인데도 애타하지 않고 인터넷이 안 좋아서 사역을 파악 못 했다는 객관적 핑계만 찾곤 했어요. 또 형제자매가 제공한 전도 대상한텐 어떻게 복음을 전할지 제대로 의논을 안 했고, 의논하려고 절 찾을 땐 제가 없었죠. 교회가 핍박을 받아서 형제자매가 겁먹고 연약해져 예배도 못 드릴 때 진리로 해결도 안 했었어요. 그제야 깨달았어요. 복음 사역이 정지 상태인 건 저와 직접 관계가 있더라고요. 말씀에 그랬잖아요. 『현재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못하고, 태만하게 굴며 자신의 육체만을 생각하는데, 그런 자들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눈먼 사람이다.』 말씀을 보고 제가 이기적인 사람이란 걸 알았어요. 전 교회 사역에 부담이 없고 현 상태에 안주하고, 내 편한 것만 생각하고 고난은 피해 가려고 했죠. 복음 사역에 성과가 없어도 급해하지 않고 어려움에 빠져 소극적이기만 했는데, 정말 이기적이었어요. 다른 지역 교회들도 보면 정부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다들 계속 복음을 전하고 새 교회를 세우는데, 우리 교회는 복음이 정지된 거예요. 그건 다 제가 이기적이고 무책임해서 생긴 결과였던 거예요. 하나님께 면목이 없었죠. 사실 부담이 있을 때는 누가 참도를 알아보겠다면, 바로 복음을 전할 사람을 찾아서 배정하고 누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진리로 해결해 주곤 했어요. 그럴수록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복음의 성과가 좋았었어요. 그땐 평안하고 즐거웠어요. 근데 최근에는 본분에 부담이 없으니까 복음 사역에도 성과가 안 났죠. 그제야 하나님이 말씀하신 『교회에 대해 부담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 생명 진입에 대해 부담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이 말씀을 깨달았어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교회 사역에 부담을 가져야 온전케 될 수 있죠. 그때 느꼈어요. 계속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자세를 바로잡지 않으면 사역을 지체하는 건 물론이고 저도 드러나 도태될 거예요. 그제서야 좀 두려워졌어요. 더는 소극적이면 안 되죠. 기도했어요. 부담을 더해 주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게 이끌어 달라고요.

그래서 바로 전 복음 전할 만한 곳이 어디 있을지 책임자들과 의논했어요. 그러다 한곳을 찾았는데, 다 예수 믿는 마을이었죠. 근데 갈 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때 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더는 무책임하게 할 게 아니라 먼저 책임을 다하기로 했죠. 그래서 제가 그 마을에 전하러 가겠다고 했어요. 근데 긴장됐어요. 저 혼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한 적이 없어서 설명을 잘 못할까 걱정됐죠. 그래서 거긴 인터넷이 잘되길 바라고 복음팀 형제자매들이 온라인으로 연락됐으면 했어요. 근데 그건 사람을 의지하는 거라 잘못된 거잖아요. 그래서 기도했죠. 복음을 확장할 수 있게 지혜와 믿음을 달라고요. 마을에 갔는데, 안내자가 바로 이장한테 전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이장이 절 목사한테 데려갔어요. 처음엔 너무 기뻤어요. 근데 걱정도 됐죠. ‘혼자서 누구한테 복음 전해 본 적 없는데, 목사가 관념이 있으면 어떻게 교제해야 하나? 목사가 거부하고 반대하면 어떡하지? 그럼 이 마을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정말 불안했어요. 목사 집에 갔을 때, 형제자매의 도움을 받고 싶었는데, 핸드폰 데이터가 안 됐어요. 뭘 시작해야 할지 몰라 간절히 기도했죠. 제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할 수 있게 믿음을 달라고요. 기도하는데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으며,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진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모든 존재는 생명이 있든 없든 전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새로워지며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중에서)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모든 게 하나님께 달려 있잖아요. 사람의 마음과 영혼도 하나님이 움직이시니까 하나님을 의지해야죠. 마음속으로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 목사가 당신의 양이라면 당신의 음성을 알아듣고 새 사역을 받을 줄 믿습니다.’ 기도하니까 힘이 생기더라고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려울 게 없잖아요. 그래서 전 현재 국제 정세와 재앙들에 결부해 주의 재림 얘기를 했는데, 목사도 인정하면서 재림하셨을 것 같댔죠. 그러곤 다른 목사 두 명도 불러왔어요. 전 그분들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을 못할까 봐 하나님께 인도해 달라고 계속 부르짖었어요. 하나님이 모세보고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오라고 하셨을 때 모세는 바로를 만나면 위험과 어려움이 있을 줄 알면서도 순종하는 자세로 나아갔어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방패가 돼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왔죠. 또 다윗과 골리얏의 이야기도 생각났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골리앗을 보고 겁낼 때 다윗이 담대하게 나와 싸웠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죠.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 네게 가노라”(삼상 17:45) 결국 다윗이 물맷돌로 골리앗을 무너뜨렸잖아요. 이 이야기들을 통해 알 수 있죠. 어려움 앞에서 진정한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역사하세요.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잖아요. 그때 저도 담대해졌어요.

그러다 두 목사도 들어왔어요. 전 예언에 결부해서 말세에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심과 사역, 성육신의 의미 성육신이 뭘 말하는지 교제를 했어요. 또 하나님이 심판으로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시는데, 말세에 하나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 그분이 재림 예수시라고 했어요. 목사는 감동받고 울면서 저보고 그러는 거예요. 40년 넘게 주의 일을 하면서 주님을 애타게 기다렸는데, 이렇게 오실 줄 몰랐다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요. 목사의 고백을 듣고 저도 감동돼 울었고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사실 제가 교제를 잘한 것도 아닌데 받아들였거든요. 하나님 말씀을 알아본 건 하나님의 인도잖아요.

목사는 혼자 받아들이지 않고 저녁에 마을 사람을 다 부르겠다고 하는 거예요. 감격돼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그날 저녁, 목사랑 이장이 두 마을 사람을 다 모아놓고 주님이 오셨다고 알려 준 거예요. 그렇게 저녁에만 30여명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어요. 어떤 분이 그랬죠. 정부에서 4년간 예수를 못 믿게 해서 예배가 너무 그리웠고 너무 힘들었다고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또 어떤 주민들은 몇년 동안 예배도 못 드렸는데,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이렇게 복음을 들고 와줘서 하나님께 감사하댔죠. 하룻밤에 그 마을에서 복음이 확장된 거예요. 놀랍게도 처음 복음을 전했는데, 목사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인 거에요. 믿기 어려울 정도였죠. 그게 다 성령의 역사로 얻은 거였어요. 근데 전 제가 잘해서 본분을 잘한 줄 알았죠. 어느새 또 전 거만해졌고 그걸로 만족하고 있었어요. 그저 양육 책임자랑 그들만 양육하고 복음은 전하고 싶지 않았죠. 그때부터 사역을 잘 파악 안 했고 기도도 줄었어요.

어느 날 핸드폰 충전을 하다가 과열로 망가진 거예요. 그래서 칩을 다른 핸드폰에 꽂았는데 그것마저 고장이 났어요. 그제야 이런 일이 생기는 건 하나님의 징계일 거라고 생각됐죠. 그때부터 반성해 봤는데,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너희는 일반적으로 나태하고 진취적이지 않으며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는 경우가 많고, 어떤 이는 심지어 원망을 하기도 한다. 또한, 하나님 역사의 목적과 의의를 모르고 진리 추구를 버거워한다. 이런 사람은 모두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므로 결국에는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이런 사람은 아무도 온전케 되거나 살아남을 수 없다. 사탄의 세력에 대항하려는 결심이 전혀 없다면, 그런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실행 7> 중에서)소극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신기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지 마라.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게 굴면 너 자신을 해치고 네 생명도 그르치게 될 것이다. 너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것을 추구하고, 자신의 연약한 면을 극복해 진리를 얻고 진리를 살아 내야 한다. 너의 연약함은 두려운 것이 아니고, 너의 결점도 가장 큰 문제는 아니다. 너의 이런 미지근한 마음과 진리를 구하지 않는 마음이 가장 큰 문제이자 가장 큰 결점이다. 또 너희 모두의 가장 큰 문제는 현 상태에 만족하면서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나약한 마음이다. 이것이야말로 너희의 가장 큰 걸림돌이고, 진리 추구를 막는 가장 큰 적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말씀을 보고 반성했어요. 전 그 마을에서 복음이 확장되니까 하나님이 흡족해하실 거라고 생각하고 거만해지고 거기에 만족해 더 전할 생각을 안 했어요. 성과가 좀 있다고 진취심을 잃고 현재에 안주하려는 게 강했죠. 그 전에도 그래서 복음 사역을 지체시켰었는데, 지금도 그러고 있었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과 뜻을 다하라 하셨는데, 저처럼 해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릴 수 없죠. 그제야 깨달았어요. 본분에서 앞으로 가지 않는 건 퇴보더라고요. 복음 전도 성과에서나 생명 진입에서나 다 뒤처지게 되죠. 현 상태에 안주하고 진리 추구 안 하면 하나님과도 멀어지게 되고 계속되면 스스로를 망치게 돼요. 현 상태에 안주하는 건 제가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하는 데 큰 걸림돌이었고 자신을 해치는 거였어요. 말씀에도 있잖아요.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게 굴면 너 자신을 해치고 네 생명도 그르치게 될 것이다.』 계시록에도 그랬고요.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6) 제가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는데, 계속 그런다면 구제불능이 되는 거고, 결국 도태되는 거죠. 저도 그게 두려워서 하나님께 회개했어요.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안주하지 않고 뒷걸음 치지 않고 계속 노력하겠다고요.

근데, 다시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큰 어려움에 부딪히게 됐어요. 누가 신고해서 향 정부에서 복음 전하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저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과 이장까지 잡힐 수 있었어요. 이장과 주민들은 피해가 올까 봐 저보고 피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오랬죠. 근데 또 떠나려고 해도 그 새 신자들이 걱정됐어요. 이제 막 복음을 들어서 뿌리가 없었거든요. 근데 남으면 어쩔 수 없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고요. 결국, 저희는 의논 끝에 양육하던 자매만 가고 저 혼자 마을에 남기로 했어요. 그게 가장 적합하단 걸 알았지만 조금은 괴로웠어요. 혼자 낯선 동네에 남아야 한다는 게 좀 그랬죠. 게다가 그때 목사는 여전히 종교 관념이 많았었고, 그리고 정부에 잡혀갈까 봐 절 보내려고 했어요. 목사하고 이장이 절 자꾸 보내려고 하니까 제가 집이 없는 사람 같고, 너무 서운한 거예요. 그런 상태에 빠지니 기도해도 힘이 없고, 집도 그리웠어요. 목사와 교제를 하면 종교적 관념이 많으니까 그냥 깨달음이 안 좋다고 단정지었어요. 또 새 신자들도 잡혀갈까 봐 예배에 잘 안 오니까 저도 마음이 식어 갔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는 사람만 양육하자. 오라고 해도 다들 안 온 건데, 어쩔 수 없지.’ 점점 새 신자 예배는 제대로 안 됐고 저도 어려움에 빠져 소극적이 됐어요. 나중에 한 자매랑 통화하면서 제 상태를 털어놨더니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주더라고요. 『사람이 진리를 얻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 항상 의욕적으로 살아가지만 그 의욕은 유지하기가 힘들다. 누군가 매일 설교하고 교제해 줘야 한다. 양육하고 공급하고 붙들어 주는 사람이 없어지면 또다시 마음이 식고 긴장이 풀리게 된다. 마음에 긴장이 풀리면 본분 이행 성과도 떨어진다. 분발한다면 효과가 좋아지고, 본분 이행 성과도 많아지며, 더 큰 수확도 거두게 될 것이다. 너희는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지 않으냐? … 사람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의지가 있는 사람만이 진리에 도달하려고 노력할 수 있고, 진리를 깨달아야만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며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다. 네가 이런 진심을 갖고 자신을 위해 머리를 굴리지 않고 오직 진리를 얻고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는 데만 목적을 둔다면, 네 본분 이행은 정상적일 것이며 언제나 한결같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 임하든 본분을 이행해 나갈 수 있다. 미혹하거나 교란하는 일이 있을 때든, 기분이 좋거나 나쁠 때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네게 마음을 놓을 것이고, 성령도 너를 깨우쳐 진리의 원칙을 이해하게 할 것이며, 네가 진리의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네 본분 이행은 틀림없이 합격할 수 있다. … 너는 모든 것이 하나님 손안에 있으며 사람은 그저 협력할 뿐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만약 사람에게 진심이 있다면 하나님이 볼 것이고, 너에게 모든 길을 열어 주어 어떠한 어려움도 어렵지 않게 할 것이다. 너는 반드시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떠한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온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은 일부러 너를 난처하게 하거나 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중에서) 말씀에 비춰 보니 전 그저 열의에 차서 본분한 거지 하나님께 충성한 게 아녔어요. 정부의 핍박이 닥칠 때 이장은 절 내보내려 하고, 새 신자도 겁먹고 예배에 안 왔어요. 이런 어려움 속에서 전 적극적인 자세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았고, 새 신자가 참도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요. 그저 건성으로 임했고, 몇명이라도 있다는 것에 만족했죠. 제가 본분에 이렇게 무책임하고 소극적이라 새 신자 예배도 엉망이 돼 갔어요. 말씀에도 있잖아요. 『마음에 긴장이 풀리면 본분 이행 성과도 떨어진다. 분발한다면 효과가 좋아지고, 본분 이행 성과도 많아지며, 더 큰 수확도 거두게 될 것이다.』 정말 그랬어요. 제가 부담을 갖고 대가를 들일 땐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이 따르니까 성과도 정말 좋았어요. 근데 어려움에 빠져 본분에 대해 부담이 없고 피동적일 때는 성과도 미미했어요. 제가 본분하는 것도 하나님 은총인데, 전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지 못했어요. 이건 패역한 거잖아요.

그 후에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무엇을 가리켜 ‘본분을 지킨다’라고 하겠느냐? 어떤 어려움이 임하든 도망치거나 본분을 내팽개치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을 가리켜 ‘본분을 지킨다’라고 한다. 예를 들어, 네가 어떤 일을 맡았는데 지켜보는 사람도 독촉하는 사람도 없다고 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본분을 지키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는 것은 첫걸음이자 한 부분이다. 이 밖에도 마음과 뜻을 다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마음과 뜻을 다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해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요구를 하든 전부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본분을 자신의 일로 여겨 행해야 한다. 남이 단속하고 지켜보고 점검하고 독촉하고 감독하지 않아도, 나아가 책망과 훈계가 없어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 본분을 이행하는 건 내 책임이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야. 이 일이 내게 주어졌잖아. 또 나는 원칙을 들었고 그 원칙에 관해 파악했어. 그러니 한결같이 열심히 해야 해. 최선을 다해 이 일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고. 언젠가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하겠지만, 그런 말을 듣기 전까지는 계속 이렇게 할 거야.’ 이것이 바로 마음과 뜻을 다해 본분을 지키는 것이며,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태도이다. 그럼 사람이 무엇을 갖춰야 마음과 뜻을 다해 본분을 지킬 수 있겠느냐? 먼저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양심이 있어야 한다. 이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이 밖에,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면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일편단심으로 충성해야지, 딴마음을 품어서는 안 되며, 책임을 지지 않거나 자신의 취미나 기분에 따라 행동해서도 안 된다. 이는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충성하는 것이겠느냐?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기분, 환경, 사람, 일, 사물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너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부탁을 받아들이겠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거야.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러니까 이걸 내 일로 간주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 어떤 식으로든 좋은 결과를 낼 거야.” 네게 이러한 내적 상태가 있으면 양심의 지배를 받을 뿐만 아니라 충성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효율성과 결과 달성을 위한 노력 없이 일을 끝내는 것에 만족하면서 그저 힘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양심의 기준에 지나지 않으며 충성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이 말씀에서 본분을 지키는 길을 찾았어요. 제가 이 본분을 맡은 이상 누가 안 봐도 마음과 뜻을 다해 잘해야죠. 어려움이 닥치거나 제 이익에 손해가 생기고 제가 고생을 하게 돼도 하나님의 감찰을 받고 잘해야 하고요. 복음 사역이 끝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서 임하고 본분을 내 사명으로 생각하고 책임감을 저버리지 않고 감정적으로 하지 않는 게 본분을 지키는 거죠.

그 뒤로 전 예배에 안 오는 새 신자들과 얘기했어요. 만약 여러분이 저녁에 오기 힘드시면 제가 낮에 여러분 시간에 맞추겠다고요. 그 말에 감동받고 다들 적극적이었어요. 어느 날 저녁 전 목사와 주민들하고 예배드리면서 말했어요. “이제 하나님의 사역이 곧 끝납니다. 핍박이 두려워 예배를 안 드리거나 말씀을 안 봐선 안 돼요. 그러면 구원을 잃을 수 있어요. 점점 큰 재앙이 닥치는 지금, 구원은 전능하신 하나님뿐이에요. 다 하나님께 달린 걸 믿고 믿음을 가져야 해요. 핍박 앞에서 뒷걸음 치면 안 되죠. 제가 여기서 복음을 전하지만 일단 들키면 잡혀갈 수 있어요. 저도 평범한 여자라 잡힐까 봐 겁나요. 근데 왜 안 갈까요? 이건 제 책임이니까요. 여러분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됐는데, 작은 핍박이 닥쳤다고 절 쫓아낼 때 제가 여러분을 버리고 도망가 버리면 전 의무를 버린 게 돼요.” 제가 진심을 말하니까 목사가 그러더라고요. “여러분, 이 자매를 잘 지킵시다! 누구한테도 자매가 여기서 복음 전한 거 말하지 마시고 누가 뭘 묻든 모른다고 하세요.” 목사가 그렇게 말하니 저도 감동됐어요. 목사가 종교적 관념이 많긴 하지만 구하는 자세가 있었어요. 전 그 관념에 맞춰 교제했고 형제자매도 목사한테 말씀을 보내 주곤 했어요. 목사도 잘 듣고는 관념을 해결해 나갔어요. 나중엔 목사도 예배에 적극적이었고 동네 사람들한테 다들 같이 예배 드리자고, 빨리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뒤처지지 말자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재림주시라고 했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그제서야 다 하나님께 달렸단 걸 보게 됐죠. 예전엔 말로만 다 하나님께 달렸다고 했었는데, 제가 실제로 겪어 보니까 정말 다 하나님께 있더라고요. 사람이 진심으로 협력하면 하나님이 이끄시고, 또 능치 못함이 없으시죠.

그렇게 지내다가 목사가 그렇게 말하니 저도 감동됐어요. 긴장되고 겁났죠. 근데 모든 게 하나님 손에 있잖아요. 하나님이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으니 전 순종하기로 했어요. 따라가면서 하나님께 함께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사탄이 아무리 ‘재주가 신통하다’ 할지라도, 아무리 오만하고 야심이 크다 할지라도, 아무리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또 아무리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재능이 탁월하고 사람을 협박하는 수법과 권모술수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아무리 그것의 존재 형식이 변화무쌍할지라도 상관없다. 사탄은 지금껏 생명 있는 그 어떤 것도 만들어 내지 못했고, 만물의 생존 법칙과 규율을 정하지도 못했으며,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을 주관하거나 주재하지 못했다. 우주 창공에는 사탄에 의해 생기고 사탄으로 인해 존재하는 사람이나 사물은 아무것도 없고, 사탄이 주재하고 주관하는 사람이나 사물 또한 아무것도 없다. 반대로, 사탄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존재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에 순종해야만 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 위의 물 한 방울, 모래 한 알도 함부로 만질 수 없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 위의 개미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만든 인류는 어떠하겠느냐?(<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말씀이 있으니까 차분해지고 겁나지 않았어요. 모든 게 하나님께 달린 거잖아요.

정부에 도착하니 저랑 목사를 같이 가두어 놨어요. 그때 목사가 두통을 호소했는데, 온몸에 힘이 빠지고 손발을 떨었어요. 괴로워하면서 죽을까 봐 겁난다고 했죠. 제가 이렇게 교제했어요. “이 상황은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지 보시려고 하는 검증의 시간이에요. 다 하나님께 달렸어요. 하나님 허락없인 사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믿음을 가집시다.” 울면서 교제하니까 목사도 감동받고 그랬어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다 주관하시니 겁낼 거 없죠.” 그리고 그랬어요. 만약 심문 시작하면 절 딸이라고 할 거라고, 일을 도와주러 온 거라고요. 그때, 우리는 상황을 이겨 나갈 믿음을 얻었죠. 나중에 저랑 목사는 벌금 300위안 내고 풀려났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본 거예요.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이 움직이세요.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는 어려움과 위험이 있지만 그걸 겪어 나가면서 저도 성장했어요. 예전엔 핍박 앞에서 소극적이었다가 위험과 환난에서도 제 책임을 짊어지기까지 그때 얻은 변화와 소중한 수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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