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불치병에 걸린 후

2022.02.08

중국 량신

2년 전 일인데, 아들이 갑자기 허리가 아팠어요.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라구, 큰 병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죠. 아들이 정말 심각한 병에 걸렸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저는 하나님 믿고 계속 본분하면서 버리고 헌신하고 고생도 많이 하고 공산당이 마구 탄압하고 잡아가는 위험한 상황에서 친구나 친척들이 비웃고 수근 대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계속 본분을 했어요. 이렇게 하나님 위해 버리고 헌신했는데, 하나님도 우리 아들을 지켜 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검사 결과를 보니 간암이랑 간경화가 왔다는 거예요. 석 달에서 여섯 달밖에 못 산다고 하더라고요. 검사 결과가 너무 청천벽력 같고 듣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어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서른 일곱 나이에 어떻게 그런 병이 올 수 있는지… 그때 결과지를 보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의사가 오진한 게 아닐까 의심됐죠. 자리에 걸터앉아 있다가 한참만에 정신을 차리니 눈물이 막 쏟아지는 거에요. ‘내 아들은 아직 젊은데 어쩌다 이런 병에 걸렸을까? 하나만도 위험한데, 그것도 둘 씩이나… 어떻게 이러는지…’ 우리 집의 기둥인데, 걔가 없으면 우리 집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요. 자식 먼저 보내는 게 부모한텐 너무나 큰 고통이잖아요. 생각할수록 괴로웠어요. 친지들이 다 절 나무랐어요. 저보고 하나님 믿는데 왜 애가 그런 병에 걸리냐고, 가정도 안 지켜주는데, 뭣 하러 믿냐고…. 그러니 이젠 그만 믿고 집에서 아들이나 잘 돌보라는 거에요. 친지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니 정말 힘들고 괴로웠어요. 한동안은 울고만 싶더라고요. 거의 제정신이 아니고 기도도 싫고 말씀도 싫고 정말 힘들었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아들이 이런 큰 병에 걸려서 너무나 괴롭고 견딜 수 없어요. 당신 뜻을 알도록 이끌어 주세요.”

하루는 말씀을 봤어요.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이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되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의 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다 정상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가지게 된 모든 것은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이도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떤 시련을 겪든 그의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할 때 사람은 그것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내려놓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며,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모를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너는 이러한 주관을 갖고 굳게 서야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말씀을 보고 깨달았어요. 아들이 그렇게 된 건 저한테는 시련이고 또 검증이니까 믿음으로 겪어 내야 하더라고요. 욥을 떠올려 보면 그 많은 재산과 가축을 빼앗기고, 자식들마저 세상을 떠난 후 그 자신도 온몸에 악창이 났어요. 그런데도 자기를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은 원망하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을 칭송하며 결국 하나님을 아름답게 증거했잖아요. 특히 시련이 닥쳤을 때 친구들이 비웃고 아내마저 나무라며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죠. 겉으로 보기엔 아내와 욥의 친구들이 욥을 나무라는 것 같지만, 그 뒤에는 사탄이 사람 입을 빌어 하나님을 배반하게 욥을 유혹한 거였죠. 근데 욥은 넘어가지 않고 아내를 어리석은 여자라고 꾸짖었잖아요. 저도 친지들이 저를 공격하는 것도 그 뒤에 사탄의 계략이 있으니까 욥처럼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헛소리는 듣지 않기로 했죠. 그러니 더는 그렇게 괴롭고 막막하지 않더라고요.

보름 후에, 수술을 했는데 다행히 암세포가 제거됐어요. 그때 전 하나님 믿으니까 그분이 긍휼을 베푸셔서 병이 낫게 기적을 보여 주신 거 같고 속으로 병이 완전히 다 나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때 갑자기 말씀이 떠올랐어요.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이 말씀에서 그릇된 제 관점과 복을 바라는 속셈을 콕 집어 드러내셨어요. 정말로 부끄러웠죠. 그동안 하나님 믿은 건 복과 은혜를 바라고 가정이 축복받기 위해서였어요.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뒤로는 대놓고 하나님께 은혜를 내려 달라고 구하진 않았지만 진리 추구도 안 하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니 ‘현세에 백 배를 얻고 내세에 영생을 얻을’ 목적으로 믿은 거죠. 제가 하나님 위해 헌신했으니 축복해 주시겠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가족이 병도 없고 무탈하고 평안하게 지켜주실 테니 큰 불행은 생기지 않겠지 했어요. 그래서 기꺼이 가정과 일을 버리고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거예요. 근데 막상 아들이 암에 걸리게 되니까 종일 그것 때문에 걱정하고 애끓고 괴로워 전처럼 본분에 대해 의욕도 잃고 제가 전에 얼마나 헌신하고, 얼마나 수고했는지를 손꼽아 헤아리면서 속으로 하나님께 따지고, 왜 아들을 안 지켜주냐고 원망했어요. 그러다 이런 상황과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제 관점이 잘못된 걸 알았어요. 제 헌신은 진리를 추구해서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려고 한 게 아니라 복을 얻고 하나님의 은혜와 바꾸려는 거였어요. 그건 하나님과 거래하고, 그분을 이용하고 속이는 거죠. 전 오로지 가족이 병도 없고 무탈하고 평안하게 지내기만을 바라며 하나님을 믿었던 거에요. 그게 배만 불리려는 교계 사람들과 뭐가 달라요? 제 추구 관점이 정말 저급하더라고요! 생각하니 하나님께 너무 죄송했어요.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했죠. 하나님께 아들을 완전히 맡기고 주재와 안배에 따르겠다고요.

그 후로 아들은 서너 번 수술을 받았었는데, 몸 상태가 점점 좋아지는 게 보였어요. 밥도 잘 먹고 가벼운 일도 좀 하게 돼서 정말 너무 기뻤죠. 특히 손자랑 같이 마이크 들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걸 보면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았어요. 그러니 희망이 생긴 것 같았죠. 전엔 시한부로 반년밖에 살지 못할 거랬는데, 근데 지금은 벌써 반년이 넘은 거에요. 이렇게 좋아진 건 다 하나님이 축복하고 지켜 주신 거죠. 그러니 저는 아들이 완전히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아들이 갑자기 전처럼 밥도 먹지를 못하고, 배가 커지는데, 점점 부풀어서 앉기도 힘들었어요. 병원 가서 검사해 보니까 암세포가 퍼진 건 아니지만 간경화가 심해져서 복수가 찼더라고요. 갈수록 죽음의 문턱에 다가서는 아들을 보면서 또다시 절망에 빠졌죠. 아들이 얼마 전까지도 병이 분명 좋아진 것 같았는데, 어떻게 악화될 수 있는지… 그렇게 착하고, 붙임성 좋고, 나쁜 짓도 안 하는 앤데, 주변에서도 하나같이 다들 칭찬했어요. 제가 하나님 믿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반대도 안 하는데, 왜 이런 불치병에 걸린 건가 했어요. 그런 생각도 들었죠. 전 하나님 믿은 후로 계속 복음을 전해 왔고 교회 일이라면 제일 먼저 앞장섰어요. 공산당이 핍박한다고 가족들이 믿는 걸 반대했지만 아무리 저를 핍박하고 말려도 물러나지 않고 꿋꿋이 본분을 해 왔어요. 그렇게 헌신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그 오랜 시간 다 버리고 헌신한 결과가 이런 건가 했어요. 입으로 말은 안 했지만 저는 속으로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구나 그런 생각에 매일 비관하고 멍하니 지냈죠. 삶에 희망도 전혀 없고 너무 괴로우니까 자꾸만 눈물이 나더라고요.

어느 날 이 말씀을 봤어요. 『공의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 고생한 만큼 분배하는 것, 일한 만큼 돈을 주는 것, 노력한 만큼 얻는 것, 이것은 공의가 아니다. 가령 욥이 하나님을 증거한 후에 하나님이 그를 멸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공의롭다. 어째서 그것을 공의라고 하겠느냐? 사람이 보기에 어떤 일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한다면 하나님은 공의롭다고 말하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공의롭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 것이다. 만약 그때 하나님이 욥을 멸했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공의롭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이 패괴되었든 안 되었든 하나님이 사람을 멸할 때 사람에게 그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하느냐? 무슨 근거로 사람을 멸하는지 설명해야 하느냐? “나는 사람이 쓸모 있으면 멸하지 않고, 쓸모없으면 멸한다.”와 같은 근거를 들 필요가 있느냐? “나는 사람이 쓸모 있으면 멸하지 않고, 쓸모없으면 멸한다.”와 같은 근거를 들 필요가 있느냐? 필요 없다. 패괴된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어떻게 처리하든 다 합당하다. 다 하나님의 안배다. … 하나님의 본질은 공의이다. 그의 행사를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이 행하는 것은 모두 공의롭다. 다만 사람이 깨닫지 못할 뿐이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사탄에게 넘겨주었을 때, 베드로는 어떻게 말했느냐? “당신이 하시는 일을 사람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늘 당신의 아름다운 뜻과 공의가 있지요. 그러니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로운 행사에 찬미를 보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지금 너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탄을 멸하지 않는 이유는 인류로 하여금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패괴시켰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 보게 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에 사람은 사탄에게 깊이 패괴됨으로 인해 사람을 패괴시킨 사탄의 끔찍한 죄악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탄을 멸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를 보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지혜가 그 안에 담겨 있음을 알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은 다 공의롭다. 그것을 깨닫지 못할지라도 마음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거나 관념을 가진 일에 있어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가장 비이성적인 행위이다. 베드로는 어떤 일들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지혜와 아름다운 뜻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사람이 모든 것을 측량할 수는 없으며, 사람이 측량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중에서) 말씀을 보고 알았어요. 하나님의 공의는 제 생각처럼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도 아니고, 애쓴 만큼 돌아오고 보상받는 게 아니었어요.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그분의 본질은 공의에요. 그분이 거두거나 내려 주시는 것, 또 축복이나 연단, 시련에는 다 그분의 지혜가 담겨 있고, 모든 게 공의 성품을 나타내는 거죠. 욥은 하나님의 도를 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했고 하나님껜 완전해 보였지만 그런데도 그에게 시련을 내리셨어요. 그 많은 시련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욥의 믿음과 경외심은 날로 승화됐고 결국 욥이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해서 사탄을 물리친 뒤에야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축복하셨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드러난 거예요. 바울도 떠오르더라고요. 바울도 복음 전하기 위해 고생하고 열심히 뛰었지만,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고 경외하지 않았어요. 바울의 사역과 헌신은 다 축복받기 위한 수단이었죠. 그 사역들을 하고 나서는 그랬죠.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 바울의 헌신에는 욕망과 거래하려는 생각만 가득했죠. 성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하나님 대적하는 길을 가다가 결국 하나님께 징벌받았고요. 이걸 보면 하나님은 외적인 수고와 헌신을 보시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사랑과 순종을 보시고, 생명 성품이 변했나를 보세요. 하나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이 더 드러나죠. 전 수고하고 애쓴 만큼 얻는 거고 헌신한 만큼 돌려받는 건 줄 알았어요. 근데 그건 사람의 거래 관점이지, 하나님의 공의 성품과는 다른 거였어요. 하나님 믿으면서 헌신하고 착한 행실도 많이 했지만 제 잘못된 관점으로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지도 않고 아들이 아프다고 하나님을 계속 원망하고 대적했어요. 생명 성품도 전혀 안 변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부류였으니 어떻게 하나님께 축복을 받겠어요? 보니까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잘 몰라서 제가 하나님 믿으면서 본분하고 헌신했으니 하나님이 아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거래 관점으로 하나님 사역을 판단한 거잖아요. 또 이런 말씀이 생각났어요.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적합한 종착지가 있다. 그 종착지는 본인의 본질에 근거해 정해지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자녀의 악행을 부모에게 더할 수 없고, 자녀의 의를 부모가 공유할 수도 없다. 또한 부모의 악행을 자녀에게 더할 수도 없고, 부모의 의를 자녀가 공유할 수도 없다. 저마다 자신의 죄를 감당하고 각자의 복을 누릴 뿐, 그 누구도 다른 이를 대신하지 못한다. 이것이 공의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전 항상 제가 하나님께 헌신했으니까 아들이 아프면 하나님이 낫게 해 주셔야지 안 그럼 공의롭지 않다고 여겼어요. 정말 너무 황당한 관점이었죠! 수고와 헌신을 얼마나 했든 다 제 본분이에요.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일 뿐인 거지 아들의 병이나 운명이나 종착지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걸 빙자해 가지고 하나님께 거래하면 안 되는 거죠. 이렇게 생각하니 제 마음도 훨씬 가벼워졌어요.

어느 날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제 잘못된 관점의 본질을 깨닫게 됐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에 해당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일을 겪어도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해 해결할 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사물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어렵다. 이것은 순전히 그가 하나님이 하는 말씀 하나하나가 진리임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하는, 모든 일에서 갖추어야 할 올바른 태도를 받아들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바로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으로, 관음보살이나 석가모니처럼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는 거짓 하나님이다. … 적그리스도의 생각에 하나님은 신주 뒤에 숨어서 사람에게 공양을 받고, 사람이 바치는 음식을 먹고, 사람이 피우는 향으로 호흡해야 한다. 그러다가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손 내밀어 도와주고 사람이 구하는 것이 있을 때 정성껏 소원을 빌면 마땅히 능력 닿는 범위에서 사람을 도와 그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그러한 존재가 바로 하나님이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모든 것이 적그리스도의 눈에는 하찮게만 보인다. 왜 그럴까?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보면,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행하는 모든 양육, 목양, 구원 사역은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필요한 것은 현세에서 일이 잘 풀려 만사형통하는 것이고, 현세에 징벌받지 않고 내세에는 천당에 가게 되는 것이다. 그의 관점과 필요는 진리를 증오하는 그의 본질을 증명한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본질을 부정한다(1)> 중에서) 말씀이 가슴에 와닿더라고요. 반성하면서 깨달았죠. 전 늘 제가 하나님을 믿고 헌신했으니까 하나님이 당연히 절 축복하시고 우리 가족을 평안하게 지켜주셔야 한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들이 수술을 받고 병세가 좋아지는 걸 보고 하나님의 축복인 줄 알고 감사하고 찬미하면서 본분으로 그 사랑에 보답하리라 다짐했죠. 그러다 다시 병세가 악화되니까 병이 치료되는 이적을 보여주시길 바랐어요. 근데 하나님이 제 소원대로 안 하시니 웃음을 거두고 원망을 퍼부으면서 왜 제가 그렇게 애쓰고 헌신하는 걸 전혀 봐 주시지 않고 아들을 안 지켜 주시냐고, 심지어는 헌신한 걸 후회까지 했어요. 제 감정 변화는 다 제 이익에 따라 달라졌죠. 하나님을 창조주로서 경배하고 순종한 게 아니라 그분을 완전히 제 필요를 채워 주고 복을 내려 주는 존재로만 생각했어요. 그게 이방인이 석가모니, 관음보살에 절하는 거랑 뭐가 다르겠어요?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 믿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은 이 땅에 두 번 성육신하셔서 그 커다란 굴욕과 사람들의 정죄와 대적, 오해를 받으셨어요. 그건 다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진리가 우리 사람 안에서 생명이 돼서 사람이 말씀대로 살며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 구원 받고 살아남게 하기 위한 거예요. 하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치른 대가는 너무 커요. 전 하나님을 믿고 정말 많은 은혜와 축복을 누렸고, 진리 양육과 공급을 많이 받았어요. 근데도 진심이 없었으니 하나님을 너무 실망시켜 드렸죠! 생각할수록 너무나 죄송해서 하나님 앞에 왔는데, 후회와 자책의 눈물이 계속 나더라고요. 하나님께 계속 뉘우치며 기도했죠. “하나님, 지금까지 전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아들의 병 앞에서 당신을 증거하지 않고,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정말 회개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턴 병이 좋아지는가에 상관없이 당신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제게 믿음을 주시고 저와 함께해 주세요.” 기도하고 나니 제 속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어요. 아들도 전처럼 걱정되지 않았어요.

하루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서 이 문제를 새롭게 알게 됐어요.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깨달았어요. 화나 복은 사람의 본분과 무관해요. 전 피조물이니까 본분으로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자식이 자기를 키워 준 부모한테 마땅히 효도해야지 재산이나 조건을 따지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건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인 거죠. 근데 저는 하나님 사랑에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로 오히려 그분과 거래하려 했어요. 좀 헌신했다고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을 바라고, 못 얻으면 그분을 원망했어요. 양심도 없이 그분의 고심을 저버린 거죠. 특히 아들이 아픈 뒤로는 하나님께 요구만 하고, 오해하고 원망했어요. 생각할수록 자신이 밉더라고요. 속으로 다짐했죠. 병이 낫고 말고를 떠나 다시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다고요. 나중에 아들의 병은 갈수록 악화되고, 하루하루 더 안 좋아졌어요. 그러니 맘 아프고 괴로웠지만 속으로 많이 내려놓게 됐죠.

그러다 이 말씀을 봤어요. 『모든 피조물의 탄생과 등장, 수명과 결말, 그리고 그 일생의 사명과 전체 인류 가운데서 맡은 역할은 하나님이 전부 계획해 놓은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이것이 창조주의 권병이다. 모든 피조물의 등장과 그 수명이 언제 끝나는지, 그리고 그 평생의 사명, 이 모든 법칙과 정해진 내용은 하나님이 각 천체의 운행 궤적을 정해 놓은 것과 같다. 하나님은 각 천체가 어떤 궤도에서 운행하고 얼마 동안 운행하고 어떻게 운행하고 어떤 법칙을 따를지 일찍이 정해 놓았다. 그것들은 수천 년, 수만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정한 것이고 하나님의 권병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구해야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있다> 중에서) 맞아요.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사람 수명도 그분이 정하세요. 몇 살까지 살고, 평생 얼만큼 고생하고 복을 누릴지는 다 하나님 손에 달렸죠. 사람이 세상에서 선행을 많이 했다고 수명을 늘려 주시거나 악행을 많이 했다고 목숨을 일찍 거두시는 게 아니라 선악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정하신 수명이 다하면 생명을 거둬 가시는 거죠. 누구도 바꿀 수 없어요. 아들의 수명도 이미 다 정해 놓으셨어요. 하나님은 공의하시니까 전 그분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죠. 이걸 깨닫고 그렇게 괴롭지 않더라고요. 아들 병세가 어떻게 되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 하나님 사랑에 보답해야죠.

결국엔 올해 3월에 아들은 우리 곁을 떠났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가 있어서 아들과의 이별을 바르게 대하게 됐고 마음의 고통도 덜 수 있었어요. 아들이 병을 얻고 지금까지, 2년을 떠올리면 고생도 많이 했지만 바로 그런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던 제 비열한 속셈을 깨달았어요. 또 제가 사탄에게 깊이 패괴됐다는 것도요.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게 돼요. 그 체험을 통해 고난과 연단이 정말 제 생명에 너무 큰 도움이 됐다는 걸 알았어요. 하나님의 일이 관념과 다를수록 구할 만한 진리가 있고, 사람에겐 구원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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