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할 때 나중을 생각해선 안 된다

2022.09.11

미국 징모

전 교회에서 배경음악 작업을 4년 넘게 했어요. 근데 교회 사역 때문에 주변 사람들 본분이 자주 바뀌곤 했어요. 가끔은 능력이 안 돼서 금방 다른 본분에 배정되는 걸 보니까 너무 불안정하더라고요. 그러니 저도 언젠간 바뀌어 어떤 본분으로 갈지 모르겠는 거예요. 거기서 일을 못하고 효과가 안 나면 또 바뀌게 되고, 계속 합당한 본분을 찾지 못하면 도태되는 거고 구원을 못 받는 거잖아요? 정말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더라고요. 근데 다행히 제 본분은 그나마 안정적인 편이었죠. 그러다 나중엔 저희 팀 일이 점점 줄어서 형제자매들 본분이 계속 바뀌었어요. 그러니 걱정됐죠. 제가 일을 제일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전 다른 특기도 없는데 이 본분이 아니면 뭘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나중에 이행할 본분이 없으면 도태되는 거잖아요? 한동안은 그렇게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상태로 지냈어요. 주변에 누가 본분이 바뀌면 그때마다 앞날과 종착지가 걱정됐죠.

그러다 작년 7월에 리더가 다른 일도 겸해서 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업무 내용을 알려주면서 그러는 거예요. 이 일은 앞으로도 계속 할 거니까 마음 푹 놓고 열심히 하라고요.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뻤죠. 그 본분은 음악 본분보다 더 안정적이고 팀원들도 딱 몇 사람만 정해져 있었어요. 다들 6~7년 됐지만 본분이 바뀐 적이 거의 없었죠. 그러니 맘에 들었죠! 열심히 배워서 빨리 베테랑이 되기로 했어요. 나중에 바뀌게 돼도 기댈 곳이 생긴 거니까요. 열심히 배우고 큰 문제만 없으면 그 본분은 계속 할 수 있고, 그러면 바뀔 걱정은 더 안 해도 되겠더라고요. 그러니까 여기 눌러앉아도 될 것 같아 너무 기뻤고 이건 정말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그 일에 신경을 많이 썼죠. 모르면 바로 물어보면서 빨리 베테랑이 되려고 했어요.

근데 보름쯤 지나서 음악 사역이 바빠지기 시작하니까 그 일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가 모자랐어요. 근데도 그 일을 먼저 하고 싶었죠. 매주 업무량을 채우지 못하게 되면 ‘비빌 언덕’을 잃어버릴까 봐서요. 그래서 음악 사역은 최대한 질질 끌면서 며칠 늦는다고 큰일 나지 않겠지 했어요. 근데 늘 서두르고 허둥대다 보니까 겸해서 하는 일에서 뭘 자꾸 빠뜨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됐어요. 팀장은 제가 그 업무에만 시간을 들여서 하고 본 업무는 뒷전인 걸 보고 양쪽 일을 다 하는 게 가능한지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두 가지 일이 겹쳐서 음악 사역이 좀 밀렸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긴 싫더라고요. 바빠서 못 챙겼다고 말하는 순간 그 일은 그만둬야 하니까요. 그럼 전 장기간 할 수 있는 일을 놓치잖아요. 아무래도 내키지가 않아서 팀장한테 변명했어요. 요 며칠 일이 둘 다 급해서 겹치긴 했지만 이런 경우가 많지 않고, 대부분은 안 그렇다고요. 또 겸해서 하는 일은 이제 시작인데 좀 지나면 익숙해지니까 며칠만 적응할 때까지 봐 달라고 했어요. 일을 두 가지를 하니까 바쁘지만 본분 시간이 꽉 차게 됐다고도 했어요. 그러니 팀장도 아무 말 안 하더라고요.

근데 며칠 있으니까 팀장이 그러는 거예요.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많이 구해 보고 하나님 뜻에 맞게 행하라고요. 또 너무 그 일에만 매달리는 것 같다면서 그릇된 속셈이나 관점이 없는지 돌아보랬어요. 그래서 저는 그 일을 정말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근데 제 생각엔 저도 일의 경중과 완급을 따져 보면서 급한 일엔 더 시간을 쏟은 거니까 잘못되지 않았다 했죠. 근데 또 생각해 보면 팀장이 주의를 준 건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어요. “하나님, 팀장이 주의를 준 게 당신 뜻인 건 알지만 어디서부터 반성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괴로운데, 저를 깨우쳐 주세요.” 기도하고 생각했어요. ‘왜 나한테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반성하라고 한 거지? 내가 본분에 잘못된 속셈이 있나?’ 생각해 보니까 겸해서 하는 사역이 없을 땐 음악 사역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그게 유일한 길이었고, 잃고 싶지 않았죠. 그러다 새로 사역을 맡고 그게 원래 사역보다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니까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거죠. 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본분이 있으면 구원은 보장되는 줄 알았어요. 그제서야 깨달았죠. 본분에 속셈과 불순물이 많았던 거예요. 다른 형제자매들은 본분이 바뀌는 걸 정확히 대하는데, 전 왜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걱정하고 겁내는지.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찾아봤어요.

적그리스도 성품을 폭로한 말씀이 제 상태하고 맞더라고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분을 조정하는 이런 간단한 일에 있어, 사람은 마땅히 순종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하나님 집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하며, 무슨 일을 하든 힘이 닿는 대로 해내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일은 틀림이 없다. 이렇게 간단한 진리는 양심과 이성이 조금만 있어도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는 법이 없고, 시종일관 자신의 본분, 명예, 이익, 지위를 복받을 희망이나 훗날의 종착지와 긴밀하게 연관 짓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명예와 지위를 잃게 되면 복받거나 상 받을 희망이 사라지고, 자기 목숨을 앗아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복받을 꿈이 망쳐지지 않도록 하나님 집의 리더 일꾼을 경계한다. 명예와 지위를 반드시 지켜야 복받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복받는 일을 하늘보다도, 목숨보다도 크게 생각하고, 진리 추구나 성품 변화,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거나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것,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 구원을 받는 일을 다 사소한 일, 언급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일로 생각하고, 복받는 일만 평생에 영원히 잊지 못할 일로 여긴다. 어떤 큰일이나 작은 일이 닥치든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신중하고 또 신중하며, 자신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둔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본분이 바뀌었을 때 적그리스도의 태도가 완전히 저랑 똑같더라구요. 전 어떻게든 그 사역을 하려고 했죠. 장기간 안정적으로 본분해서 도태되지 않으려고요. 오직 복을 받으려는 게 제 진정한 목적이었어요. 사실 교회에서 누구에게 어떤 본분으로 조정하든 그건 다 사역상 필요해서고,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죠. 근데 적그리스도는 사악해서 그걸 왜곡해서 대해요. 하나님 집엔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아무도 자길 생각해 주지 않는다고 하죠. 본분이 계속 바뀌다 보면 도태되고 종착지가 없어지는 줄 알아요. 그래서 종착지를 보장받으려고 변수를 생각하면서 대비책을 마련하려고 하죠. 적그리스도한텐 복받는 게 본분과 구원보다 더 중요해요. 생각해 보니까 제가 적그리스도랑 같더라고요. 본분이 바뀌게 될 경우를 계속 대비하는 거죠. 언젠가 본분이 바뀌면 어쩌나, 일을 잘 못했다가 효과를 못 내서 바뀌면 정말 어쩌나, 언젠가 본분이 없어지면 도태되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에 근심만 쌓여 갔어요. 멸망될까 봐 적그리스도처럼 생각이 복잡하고 사악했죠. 그러다 보니 오래 할 수 있겠다 싶은 일에 그렇게 집착했던 거예요. 마치 세상에서 철밥통에 매달리는 것처럼 한 가지 본분을 안정적으로 하다가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 구원받아 천국 가는 꿈을 꾼 거죠. 그 목적을 이루려고 겸해서 하는 일에 매달렸어요. 빨리 베테랑이 돼서 나중을 대비하려고요. 일이 겹쳐서 감당이 안 돼도 말을 안 하고, 팀장이 물어봐도 변명으로 넘겼어요. 기존 사역을 미루면서까지 그 사역을 챙기는 바람에 사역에 지장이 가게 했죠. 그제야 제가 종착지를 위해 본분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본분을 종착지를 얻기 위한 밑천으로 여겼으니 제가 한 일은 다 복을 노린 거였어요. 그게 하나님을 속이고 거래한 거잖아요? 전엔 항상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고 사람답게 살려고 본분한댔는데, 그게 다 거짓말이고 기만인 게 드러났어요!

그리고 또 말씀을 봤어요. 『피조물로서 창조주 앞에 왔으면 마땅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이는 지극히 올바른 일이며, 사람이 이행해야 할 책임이다. 창조주는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하는 전제하에 인류 가운데서 더 큰 사역을 하고, 사람에게 한층 더 깊은 사역을 했다. 그것은 어떤 사역이겠느냐? 바로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하여 인류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얻게 하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패괴 성품을 벗어버리고 정결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더는 사탄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완전히 구원받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본분을 이행하게 하여 최종적으로 이루려는 성과이다. 그러므로 본분 이행 과정에서 너에게 한 가지 일만 꿰뚫어 보거나 일부 진리만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여 얻게 되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하는 데만 그치는 것도 아니다. 네가 정결케 되고 구원받아 마지막에는 창조주의 얼굴빛 속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이 ‘얼굴빛’에는 많은 파생 의미와 파생 내용이 있는데, 오늘은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물론, 하나님은 분명 이런 사람에게 약속을 주고 축복을 준다. 다른 표현 방식도 있지만, 이는 아주 먼일이다. 현재를 보면 하나님 앞에 와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얻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모두 인류 가운데서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인류 가운데 아무 피조물이나 쉽게 창조주의 손에서 그런 축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 이렇게 위대한 일이 적그리스도 같은 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거래로 변했고, 그들이 하나님 손에서 면류관을 받아 내고 상을 받아 내는 거래로 변했다. 이런 거래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의로운 일을 가장 추하고 가장 사악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한 짓이 아니냐? 이런 점을 보면 적그리스도는 사악하지 않으냐? 적그리스도는 너무 사악하다! 이것이 바로 그의 사악함 중 한 측면의 모습이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7)> 중에서) 말씀을 보고 마음이 찔리고 하나님께 죄스러웠어요. 하나님은 누구나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게 인류에게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고 정의로운 일이라고 하셨죠. 피조물이라고 누구나 맘대로 그런 복을 받는 게 아니라고요. 그렇더라고요. 하나님이 저를 말세에 태어나게 하셔서 다행히 하나님 말세 사역을 따르고, 본분하고, 그분 사역을 체험할 기회를 얻게 됐어요. 이 복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사랑이죠. 하나님 집에서 이행하는 본분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으니까 감사하고 소중히 해야죠. 또 하나님은 값없이 진리를 주시고 직접 말씀하시고 먹여 주셨어요. 사람이 본분하면서 진리를 깨닫고 얻어서 생명이 자라게요. 그러면서도 사람에게 뭘 요구하시지 않고 정직하고 순종하는 맘으로 그분 부탁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하고 진리를 얻어 패괴에서 벗어나 구원받기만 바라시죠. 근데 저는 피조물로서 본분하는 이 아름다운 일을 한낱 거래로 왜곡시켜서 그걸로 복과 바꾸려고 했어요. 이건 정말 간사한 거라 하나님도 증오하시죠.

그 후에 하나님께 제 상태를 놓고 기도하면서 제 문제를 더 명확히 알게 깨우치고 이끌어 달라고 구했죠. 어느 날 묵상 때 말씀을 봤는데, 『본분을 대할 때, 그리고 하나님을 대할 때는 반드시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정직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대하려면 어떤 태도를 보여야겠느냐? 최소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매사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바로 화복을 신경 쓰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배치대로 따르는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마음이 정직한 사람이다. 늘 하나님을 의심하고 연구하는 자,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는 자가 마음이 정직한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겠느냐? 간사함과 사악함이 들어 있다. 그래서 그는 늘 연구한다. 무엇을 연구하겠느냐?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연구합니다.) 사람이 늘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연구하는 것은 어떤 문제겠느냐? 사람이 왜 그것을 연구하겠느냐? 자신의 실제적인 이익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은 내게 이 환경을 배치하고 이 일이 임하게 하셨어. 왜 그러셨을까? 다른 사람한테는 이 일이 임하지 않았는데 왜 하필 나한테만 이 일이 임한 거지? 이 일이 임해서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러한 일들만 연구한다. 개인적인 득실과 화복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연구하면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사람이 머리로 생각해 내는 것은 어떤 것들이더냐? 모두 자신을 위한 것,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다. … 언제나 머리를 굴리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연구하여 마지막에 초래되는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게 될 뿐이다. 계속 본분을 이행할지라도 소극적인 감정으로 대충 임하게 되며, 마음속으로 항상 어떻게 해야 실속을 챙기고 손해 보지 않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속셈을 갖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성품이겠느냐? 이는 간사하고 사악한 성품이다. 이미 평범한 패괴 성품을 뛰어넘어 사악함에 이른 것이다. 마음속에 이런 사악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은 곧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다. 이 문제를 밝히 알아야 한다. 사람이 늘 하나님을 연구하고 거래 심리로 본분을 이행하면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그는 마음과 정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며, 정직한 마음도 없다. 그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관찰하고, 늘 마지막 한 수를 남겨 놓는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그에게 역사하지 않아 그는 흐리멍덩한 상태로 무엇이 진리의 원칙인지 알지 못한 채 무슨 일을 하든 자기 뜻대로 행동하며, 항상 실수할 것이다. 왜 항상 실수하겠느냐? 생각이 너무 흐려서 문제가 임하면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도 않으며, 자기 뜻대로 행동하거나 자기 기호대로 일하려 고집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본분 이행에 늘 실수하는 것이다. 그는 교회 사역이나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지 않는다. 늘 자기 자신을 위해 머리를 굴리며 자신의 이익과 체면, 지위를 위해 계산한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 사역에 악영향과 지장을 가져다주니, 이것이 그릇된 길을 가며 본업에 힘쓰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자신의 이익과 앞날을 위해 계산하고, 교회 사역이나 하나님 집의 이익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는 본분 이행이 아니다. 일을 하는 본질도, 성질도 변했기 때문이다. 그 성질이 심각해 방해하고 교란하며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면, 내쳐지게 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의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 말씀을 보고 마음이 찔렸어요. 전에는 그저 제가 나중의 변수를 생각하고 대비하려는 게 간사한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폭로하신 걸 보고서야 그게 단순히 간사하기만 한 그런 정도가 아니라 사악한 정도까지 간 걸 알았죠. 사람을 속인 게 아니라 하나님을 대상으로 주판알을 튕긴 거니까요. 겉으로는 본분을 했지만 진심이란 건 하나도 없고 지켜보고 계산하면서 이익이 되는 본분만 하려고 했어요. 전에 본분 하나만 했을 때는 그걸 유일한 생명줄로 생각했어요. 오래 못 하면 언젠간 교체되고 도태돼서 복받을 기회를 놓칠까 하루 종일 속앓이를 했어요. 근데 나중에 다른 사역이 생기고 그 사역이 복받는 데 더 유리한 것 같으니까 거기에만 매달리고 집착했어요. 겉으로는 아주 적극적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빨리 익히고 베테랑이 돼서 없으면 안 될 사람이 되려고 애쓴 거예요. 또 원래 사역도 어떻게 되는지 계속 지켜봤어요. 바뀌지 않고 두 본분 다 하게 되면 그만큼 구원이 보장되는 거잖아요. 원래 하던 사역이 조정돼도 겸해서 하는 일이 있으니까 도태될 걱정도 없고요. 본분을 대하는 제 태도를 보면 하나님의 분부와 책무를 받아들인 게 아니고,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본분에 순종한 것도 아니었어요. 정말 간사하게 이익을 얼마나 얻고 복을 얼마나 받을지 연구하고 계산했으니 너무 교활했었죠. 겉으로는 제가 맡은 본분에 언제나 열심히 임하고 책임감 넘치는 사람 같았지만 사실은 오로지 제 앞날만 생각했던 거예요. 팀장이 사역을 둘 다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을 때 제 계획이 깨질까 봐 핑계를 댔어요. 제 시간은 하나라도 본분으로 채우고 싶다고요. 사람을 미혹하는 말이었죠! 전 떳떳하지 못한 비열한 속셈을 감추기 위해서 입에 발린 말을 했어요. 성품이 너무 사악했어요. 본분을 대하는 제 계산적이고 기만적인 태도를 보면 그건 본분하는 게 아니었어요. 하나님을 이용하고, 속이고, 진심은 전혀 없었죠! 투기하는 장사꾼처럼 교활하고, 이기적이고, 눈에 뵈는 건 그저 이익뿐이고, 어떻게든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생각뿐이었어요. 하나님이 본분에서 하나님 집이 아닌 자기 이익만 챙기면 좋은 결과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또 제가 겸해서 하는 일을 더 하려고 한 것도, 나중을 대비하기 위한 속셈이었죠. 그런 속셈으로 일할 땐 어떻게 하면 원칙에 따라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생각하지 않게 되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그럴싸한 일만 하고 서둘러 일을 끝내려고만 했어요. 결국 일을 깜빡하거나 원칙대로 하지 못해서 실수가 나온 게 많았어요. 그리고 원래 사역은 진도가 뒤처졌는데도 조바심도 내지 않았고요. 제가 본분을 죄다 엉망진창으로 해서 계속 이러다가는 하나님 집에 큰 피해를 줄 거고 나중엔 정말 도태되겠더라고요! 깨닫고 두려워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회개하고 변화돼서 본분 태도를 고치게 해 달라고요.

나중에 기도하고 구하면서 깨달았는데, 제가 지금껏 잘못된 관점을 갖고 있었더라고요. 그러니까 하나님 집에서 안정적으로 장기간 할 수 있는 본분을 한다면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 구원받아 살아남는 줄 알았어요. 그 생각이 진리에 맞는지, 하나님 요구가 뭔지 고민도 안 해봤어요. 그래서 제 상태에 맞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봤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사람이 마지막에 구원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그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얻었는지, 마지막에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지배에 따를 수 있는지, 더는 자신의 앞날과 운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있는지,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하다. 하나님은 이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판단한다. 이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니 명심해 두어라. 이 기준을 머릿속에 단단히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때라도 다른 길을 찾아 비현실적인 다른 것을 추구하려 하지 마라.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 중에서) 아주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무슨 본분을 하는지, 그 본분이 안정적인지는 그 사람이 복받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고요. 피조물이라면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자기 본분을 다해야 해요. 그게 가치 있는 삶이고 사람이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죠. 하나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안정적으로 본분하고 바뀌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신 적 없으세요. 그것보단 계속해서 진리를 추구하고 패괴에서 벗어나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구원받는다고 하셨죠. 하나님이 요구하는 기준은 바뀐 적이 없어요. 또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 요구를 반복하셨어요. 그걸 모르지도 않고 못 본 것도 아니면서 저는 불신파랑 똑같이 그 말씀들을 믿지 않고 거부했어요. 하나님의 고심을 깨닫지 못하고, 공의 성품은 더 몰랐어요. 계속 관념과 상상을 품고 엉터리 관점을 고집하면서 스스로 유치한 목표를 세워 추구했었죠. 한 가지 본분을 계속하면서 조정되지만 않으면 살아남는 줄 알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황당한 관점이었어요! 저는 본분하면서 조정되지 않기만 바랐지 본분하면서 진리 추구에 힘쓴 적도 없고, 반성하거나 패괴를 해결하려고도 안 했어요. 결국 복받으려는 속셈과 사악한 성품도 인식을 못 하고, 진리로 해결한 적도 없었어요. 그럼 아무리 본분이 오래 간다고 해도 제가 끝까지 할지는 모르잖아요. 제 주변에 몇 년간 본분이 바뀌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패괴 성품이 해결되지 않으니까 계속 건성으로 하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째 효과를 못 내서 결국 도태됐어요.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경험과 은사만 믿고 점점 교만해져서 멋대로 일하다가 하나님 집 사역을 심각하게 교란해서 드러나 도태됐어요. 근데 순수하고 정직한 형제자매는 어떤 본분이든 다 순종하더라고요. 본분할 때 진리를 추구해서 패괴 성품을 해결하고 잘 모를 때는 하나님께 진리 원칙을 구하거나 다른 형제자매들과 교제하고요. 그러니 본분 효과도 좋아지고 생명도 자라나고 진실된 믿음도 생기더라고요. 이게 다 제 주변에 있었던 일인데 저는 왜 몰랐는지. 게다가 하나님 집의 본분 조정은 다 교회 사역의 필요와 개인의 특기에 따른 거예요.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맞은 본분을 배정받죠. 게다가 이건 부서만 다른 데로 옮기는 거지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추구할 권리를 뺏기거나 구원받을 기회를 뺏기는 것도 아녜요. 그건 다 지극히 정당한 일이에요. 전 왜 조정을 부정적인 일로, 안 좋은 일로만 생각했던 건지. 이제 보니까 본분을 안정적으로 오래 하면 결말과 종착지가 보장되고 도태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황당하고 어이없는 관점이고, 완전히 제 상상과 관념이었더라고요! 그걸 깨닫고 마음이 환해지고 자유해졌어요. 본분에 대한 태도도 좋아지고 두 가지 본분을 두고 재는 일도 없어졌죠. 둘 다 하나님이 주신 부탁이니까 둘 다 귀하고, 최선을 다하겠다 생각했어요. 둘 다 계속하게 될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안배에 순종하기로 했죠.

11월 말에 갑자기 책임자가 다른 사람을 찾았다고 안 해도 된다는 거예요. 전 그 말을 듣고 서운하기도 하고, 기분이 좀 그랬어요. 순간, 이건 틀린 태도 같아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이 말씀이 생각났어요. 『본분을 대할 때, 그리고 하나님을 대할 때는 반드시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정직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대하려면 어떤 태도를 보여야겠느냐? 최소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매사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바로 화복을 신경 쓰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배치대로 따르는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마음이 정직한 사람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의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알았어요.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좋아하시니까 저도 그런 마음을 갖고 화복이나 훗날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 다 맡기고 순종하길 바라시죠. 지금까지 하나님 집에는 저처럼 훗날을 대비해 머리 굴려서 발붙인 사람이 없어요. 반대로 단순하고 정직하고 착실한 사람, 모든 안배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굳게 설 수 있죠. 그때 깨달았어요. 이 일도 저에 대한 하나님의 시험이었어요. 하나님이 보시니까 전처럼 본분을 고를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고 지금 본분을 소중히 해야겠더라고요. 이 본분을 언제까지 하든 또 앞으로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배정받든 정직한 자세로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최선을 다해 본분을 다해야겠더라고요. 생각하면서 또 깨닫게 됐어요. 리더가 다른 일을 준 데는 하나님의 뜻과 고심이 있었죠. 제게 이 상황을 주신 건 본분에 대한 제 태도와 복을 바라는 속셈을 드러내신 거죠. 그 일 아니었으면 제 불순물을 인식하지 못했을 거예요. 어떤 태도로 본분을 대해야 하나님 뜻에 맞는지도 몰랐을 거고요. 이게 다 하나님께서 주신 보물이에요! 또 이번에 갑자기 본분이 바뀌면서 알게 됐어요. 사람이 언제 무슨 본분을 하는지는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고, 그건 예측할 수도 바꿀 수도 없어요. 근데 저는 불신파처럼 하나님의 주재도 모르고 제 노력으로 본분을 지키려 했으니 너무 바보 같고 어리석었죠! 어떤 본분이든 제가 잡고 싶다고 잡히는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하며 살아야 맘도 편하고 홀가분해요. 얼마 후에 교회에서 또 다른 일을 제게 맡겼어요. 이번엔 그 본분을 얼마나 할 수 있나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잘할지만 생각했어요. 또 본분하면서 진리를 실행하고 패괴 성품을 해결해서 하루 빨리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는 사람다운 삶을 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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