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가 없으면 구원받지 못하는가

2022.05.28

중국 이쉰(依蕁)

저는 몇 년간 타지에서 본분을 이행하며 교회 사역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선천적 심장병을 앓고 있었지만 건강상 큰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기력이나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가끔 밤이라도 새면 다음 날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고 온몸에 기운이 없었습니다. 심장에도 불편감이 느껴졌고요. 2021년 8월, 제 건강 상태를 고려한 윗선 리더는 저보고 집으로 돌아가 몸조리를 하면서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본분을 이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계속 리더 일을 하면서 업무적 압박감을 많이 받으면 몸이 버텨 내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 얘기를 듣고 너무 괴로웠습니다. ‘지금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선행을 예비할 중요한 시기인데 본분이 조정되어 리더가 아니라 평신도가 되어 버리다니. 그러면 훈련 기회가 줄어들고 진리를 깨달아 실제에 진입하는 것도 느려져. 하나님께 구원받을 확률도 낮아지겠지. 리더는 형제자매들의 문제나 어려움을 수시로 해결해 주어야 하니까 깨닫는 진리도 많고 진리 실제에도 빨리 진입할 수 있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확률도 크지. 설마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통해 날 드러내고 도태시키시려는 건가?’ 생각할수록 괴로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습니다. 나중에 한 자매가 제 내적 상태를 알고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이 일이 임한 데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어요. 하나님 뜻을 깨닫기 전엔 일단 순종하고 많이 기도하며 구해야 해요. 오해나 원망은 절대 하지 말고요.” 자매의 교제를 듣고 나자 이런 상황이 임한 건 우연이 아니고, 그 안에는 제가 구하고 진입해야 할 진리가 있으니 마땅히 순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밤에 문득 잠에서 깰 때 이 일을 떠올리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여댔습니다.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맴돌았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 왔는데, 지금처럼 하나님 사역이 막바지에 이른 중요한 시기에 리더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잃고 평신도가 되어 버리다니. 이런데도 내가 구원받고 온전케 될 희망이 있을까?’ 전 그곳에 남아 계속 리더를 맡고 싶었지만, 일단 제 병에 문제가 생기면 교회 사역에 지장을 줄 게 걱정되었습니다. 하나님 사역을 지켜야지 저만 생각할 순 없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뒤숭숭했고, 임한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겪어 나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영 생활을 하다 적그리스도가 본분 조정을 어떻게 대하는지 폭로하신 말씀을 보게 되면서 저 자신에 대해 약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본분 조정에 관한 일이 생기면 최소한 순종해야 하고, 자신을 반성하여 어느 정도의 수확도 거둬야 하며, 자신의 본분 이행이 합격인지에 대해 올바로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어떤 일에서든 그들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다. 어떤 점이 다를까? 그들은 순종하지 않고, 적극 협력하지도 않으며, 전혀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속으로 반감을 품고, 반발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며 머리를 짜내어 추측한다. ‘왜 나보고 이 본분을 이행하지 말라는 걸까? 왜 내 본분을 중요하지 않은 본분으로 조정했을까? 설마 나를 드러내 도태시키려는 걸까?’ 그들은 속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분석하고, 고민한다. 일이 임하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일이 임하면 그의 내면은 풍랑이라도 이는 것처럼 세차게 요동치고, 생각하는 문제가 많아진다. 겉으로 볼 땐 남들보다 문제를 더 잘 사고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평범한 사람보다 더 사악하다. …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는 법이 없고, 시종일관 자신의 본분, 명예, 이익, 지위를 복받을 희망이나 훗날의 종착지와 긴밀하게 연관 짓는다. 마치 그의 명예와 지위를 잃게 되면 복받거나 상받을 희망이 사라지고, 자기 목숨을 앗아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조심해야겠어. 경솔하게 굴면 안 돼! 하나님 집, 형제자매들, 리더 일꾼,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믿을 수 없어. 모두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사람한테 가장 신뢰할 만한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이야. 스스로를 위해 계산하지 않는다면, 누가 당신을 생각해 주겠어? 또 누가 당신의 앞날을 생각해 주겠어? 당신이 훗날 복을 받을지 말지를 누가 생각해 주겠냐고. 그러니까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계획하고 계산해야지, 실수해서는 안 돼. 조금이라도 경솔히 굴어선 안 된다고. 그러다가 이용당하면 어떡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집의 리더 일꾼을 경계하고, 다른 사람이 그를 분별하고 간파해서 교체할까 봐, 복받으려는 꿈을 망쳐 놓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는 명예와 지위를 반드시 지켜야 복받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복받는 일을 하늘보다도, 목숨보다도 크게 생각하고, 진리 추구나 성품 변화,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거나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것,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 구원을 받는 일을 다 사소한 일, 언급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일로 생각하고, 복받는 일만 평생에 영원히 잊지 못할 일로 여긴다. 어떤 큰일이나 작은 일이 닥치든 복받는 것과 연관 짓고 조심하고 신중하며 자신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둔다. 그래서 본분을 조정할 때, 만약 직급이 올라가면 적그리스도는 자신에게도 복받을 희망이 있다고 여긴다. 만약 직급이 내려가면, 팀장에서 부팀장이 되거나 부팀장에서 보통 멤버가 되면, 그는 상황이 심상치 않고 복받을 희망이 묘연하다고 예감한다. 이런 관점은 어떠하냐? 올바른 관점이냐? 절대 아니다. 이런 관점은 너무나 황당하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항상 속으로 지위가 높을수록 큰 복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집에서든, 혹은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든 다 똑같다는 것이다. 사람의 지위와 등급은 세세하게 나눠져 있고, 인류의 마지막 결말도 그렇게 세세하게 나눠져 있다고 말이다. 또 사람이 이번 생에 하나님 집에서 얼마나 높은 지위, 얼마나 큰 권력을 가졌는지에 따라 내세에 더 큰 복과 면류관, 상을 얻으며, 이 두 가지는 서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 관점이 성립되느냐? 하나님은 단 한 번도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없으며, 단 한 번도 사람에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 … 너희가 말해 보아라.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지 않으냐? 사악의 극치에 달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했든 그는 개의치 않으며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것이 다 옳다고 여기면서 그 속에서 즐기고 누리고 기뻐한다. 또 그는 진리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했는지,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했는지 알아보지도 않는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은 복과 상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본분에 등급을 매기고, 복받는 것을 지위의 높고 낮음과 밀접히 연관시킵니다. 지위가 없으면 구원받을 희망도 묘연해진다고 생각해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심지어 반항하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과 복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에만 신경 쓰지 진리를 구하고 공과를 배우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나 순종심도 없습니다. 그들의 본성은 무척 사악하고 간사합니다. 제 모습을 대조해 보니 적그리스도와 다를 게 없었습니다. 저도 지위의 높고 낮음과 복의 크기를 연관 지어 생각해 리더를 하지 않으면 지위가 사라지고, 그럼 구원과 복을 받을 희망도 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본분 조정조차도 바르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생각이 무척 복잡하게 꼬여 있었습니다. 사실, 교회에서는 원칙과 각자의 실제 상황에 따라서 본분을 안배해 줍니다. 저는 건강이 좋지 못한데 업무적 압박감도 큰 리더 일을 하다 몸이 버티지 못하면 본분에도 분명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본분을 안배해 주었고, 이러는 게 저나 교회 사역에 모두 유익했습니다. 하지만 전 제멋대로 추측하고 의심하면서 리더를 하지 못하면 구원받을 가능성도 줄어드는 거 아닌가란 생각부터 먼저 떠올렸습니다. 복을 받지 못하고 좋은 앞날과 종착지도 얻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졌던 유일한 바람이 사라진 것처럼 모든 의욕을 잃고 완전히 소극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 진리 원칙이 아니라 제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에 근거해서 사물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 야심과 욕망이 채워지지 않자 하나님이 이런 상황을 통해 절 도태시키려 하시는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저는 무척 간사했습니다! 전 하나님을 패괴된 인류와 마찬가지로 공평하지 않고 공의가 없으신 분으로 상상했습니다. 하나님은 지위의 고하와 본분의 크기로 사람을 판단하고 사람의 결말을 정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위가 있는 사람은 좋아하고 구원하시지만 지위가 없는 사람은 구원하지 않으신다고요. 이건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부정하고, 그분을 모독한 거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오래 하나님을 믿고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나 순종심이 없었습니다.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전 여전히 자신의 추구 관점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몰랐을 겁니다.

그 후,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제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에 대해 다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혹자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혹자는 영적 도리를 많이 이해하면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하며, 또 혹자는 리더 일꾼이 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부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다. 핵심은 구원받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다. 구원받는 것은 주로 죄악과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진실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악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무엇을 갖춰야겠느냐? 진리를 갖춰야 한다. 사람이 진리를 얻으려면 수많은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하고,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할 줄 알아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진리를 깨달아 실제에 진입해야 한다. 그래야 구원받을 수 있다.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는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쌓았는지, 은사와 재능이 있는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구원받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오직 진리를 얻었는지 여부이다. 그렇다면 지금 너는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진리를 깨달았느냐? 하나님 말씀 중 네 생명이 된 것은 몇 구절이나 되느냐? 하나님의 모든 요구 가운데 네가 진입한 것은 몇 개나 되느냐? 하나님을 그렇게 오래 믿었는데,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얼마나 진입했느냐? 만약 네가 모르거나 하나님 말씀 중 그 어떤 것에도 진입하지 못했다면 사실상 네가 구원받을 희망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너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중에서),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 기준은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징벌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징벌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징벌받는 것이고, 그들 스스로 저지른 갖가지 악행으로 인해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마음에 큰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리더 일을 맡았는지 여부나 지위 여부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사탄 성품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 것을 가리키니까요. 진리를 실행하고 패괴 성품이 정결케 돼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어야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진리를 받아들이고, 책망과 훈계가 임하면 자신을 반성하면서 말씀에 따라 자신의 패괴와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변화한다면, 이렇게 추구한다면 진리를 얻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아무리 지위가 높고 고생을 많이 해도 결국 도태될 대상입니다. 바울처럼 말입니다. 그는 지위와 명망이 높았고 사역도 많이 했지만 그의 사역과 헌신은 복과 상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전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성품 변화도 추구하지 않아 끝까지 자신과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늘 자신이 주님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고 환난을 겪었는지 증거하였습니다.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줄”(고후 11:5)이라며 자신을 과시했고, 심지어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8)란 말을 하며 뻔뻔스럽게 허세를 부렸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패역무도한 말까지 해 하나님 성품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징벌 가운데 떨어졌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지위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길 추구했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는 것과 자신의 패괴 성품을 아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힘으로써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지극히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높은 지위가 있느냐, 얼마나 대단한 사역을 했느냐는 구원받는 조건과 기준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위가 있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수시로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 내는 증거가 없다면 결국엔 하나님께 도태되고 맙니다. 높은 지위가 없더라도 바른길을 가고 진리를 추구하면, 마찬가지로 진리를 얻어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한결 자유로워졌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며 담담히 본분 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후, 또 이런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더 잘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진리 앞에 평등하다. 발탁되고 양성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또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 시간이 비슷하다. 발탁되거나 양성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본분 이행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누구도 진리를 추구할 권리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추구하고 자질도 어느 정도 있어서 발탁되고 양성되는 거라면, 이는 하나님 집의 사역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하나님 집에서는 사람을 발탁하고 쓸 때 왜 이런 원칙을 적용하겠느냐? 각 부류 사람은 자질과 인품이 다르고, 선택하는 길도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결과 역시 달라진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구원받아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지만,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본분 이행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된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양성하고 쓸 때는 진리를 추구하는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지를 보고 결정한다. 그럼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 사람에게 등급의 차이가 있겠느냐? 각 부류 사람은 신분, 계급, 지위, 직급에 있어 당분간 등급의 차이가 없다. 적어도 하나님이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하고 인도하는 기간에 각 부류 사람의 등급, 신분, 계급, 지위에는 어떤 차이도 없다. 그저 사역 분담과 본분 역할이 다를 뿐이다. 물론 이 기간에 어떤 사람은 특수 사역을 하도록 파격적으로 발탁되고 양성되며, 어떤 사람들은 자질 문제나 가정 환경 등 다양한 이유로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 사람들의 계급이나 신분이 다른 이보다 한 등급 낮겠느냐? 그렇지도 않다. 모든 사람은 진리 앞에서 평등하다. 사람은 누구나 진리를 추구하고 얻을 기회를 가지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합리적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5)> 중에서) 이 말씀에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집 본분에는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사역의 필요로 각자 다른 본분을 이행하는 것일 뿐, 사실 진리 앞에서 사람은 모두 평등합니다. 어디서 본분을 이행하든, 지위가 있든 없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공급되지 지위의 고하에 따라 누군가를 편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도록 각자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상황, 사람과 사물을 마련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 어느 누구에게서도 진리를 행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기회를 박탈하지 않으셨으며 모든 이를 공평하고 공의롭게 대하십니다. 진리를 얻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느냐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습니다. 리더라고 하나님이 특별히 은총을 베풀고 깨우쳐 주시는 것도 아니고 평신도라고 외면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는지와 어떤 태도로 진리를 대하는지에 따라 그를 깨우쳐 주고 공급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볼 수 있습니다. 각자가 이행하는 본분이나 접하는 사람과 일은 다 다르지만 드러내는 교만함이나 간사함 등의 패괴 성품은 다 같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며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길 원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일이 임해도 진리를 구하거나 실행하지 않으면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아무리 많은 훈련의 기회를 얻든, 결국 진리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저의 사례처럼 말입니다. 전 몇 년이나 리더를 맡아 높은 지위와 많은 훈련의 기회를 얻었지만, 제가 얻은 진리는 대체 얼마나 될까요? 이번에 본분이 조정되었을 때, 전 소극적이 되어 오해와 원망의 마음을 품었지 하나님에 대한 순종심이나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단적인 예 아닌가요? 이렇게 전 지위가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지위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졌던 것입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리더는 아니지만 착실하게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에도 책임감이 있습니다. 일이 임하면 진리를 구하면서 깨달은 만큼 행합니다. 그러니 갈수록 패괴 표출은 줄어들고 하나님께는 갈수록 순종하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 낸 증거가 있어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열납됩니다. 이런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네가 진심으로 추구한다면 나는 네게 모든 생명의 도를 줄 것이고,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누리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진심으로 추구하지 않는다면 나는 네게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갈 것이다.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안락을 탐하는 개돼지 같은 자들에게 줄 생각이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중에서) 예수님도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 하나님은 공평하고 공의로우신 분으로, 그 누구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평신도든, 리더든, 진리를 추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깨우치고 인도해 주십니다. 중요한 건 사람에게 진리를 추구할 의지가 있느냐,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느냐 여부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예전에는 리더 본분을 맡지 않아 훈련 기회가 줄면 구원받을 희망도 적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절 도태시키고 구원하지 않으시려나 하는 생각마저 했습니다. 이건 하나님에 대한 오해이자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전 그분의 애쓰시는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전 하나님을 믿으면서 계속 잘못된 관점의 지배를 받아 복을 받으려고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러면서 열심히 추구하고 있다고 여기며 제 겉모습에 스스로 속아 전혀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본분이 조정되는 일이 생기면서 저의 잘못된 추구 관점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제야 전 하나님 앞으로 와 저 자신을 반성하며 제 패괴 성품과 잘못된 관점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어떤 자를 구원하시고 어떤 자를 도태시키시는지 깨달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도 생겨났습니다. 이런 상황이 임한 것은 절 향한 보호이자 구원이었습니다!

그 후, 또 이런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제가 진입해야 할 길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피조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선택의 여지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은 개인의 이익과 소망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옳은 추구 방식이다. 네가 추구하는 것이 진리이고 실행하는 것이 진리이며 얻은 것이 성품의 변화라면, 너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 네가 온전케 될지, 도태될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이 말씀에서 진입하고 실행할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어떻게 배치하시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지 복과 상을 위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구원과 복을 받든 못 받든, 저는 살아 있는 한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아가길 추구해야 합니다. 끝에 가서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아 도태되더라도 그 역시 하나님의 공의로움입니다. 하나님 뜻을 깨닫고 나자 전 어떤 본분을 맡든 영향받지 않고 담담히 본분 조정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번의 드러남을 통해 전 믿음에 대한 제 잘못된 관점을 알게 됐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느냐 여부는 지위의 고하나 사역의 양과 상관이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사람이 진리를 얻었는지,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생명 성품에 변화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중요한 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앞으로 저는 그저 착실히 본분을 이행해서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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