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명리를 다투던 날들과 작별하다

한국 쓰판(司凡)

2년 전, 저는 교회에서 새 신자를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무척 중요한 본분을 맡게 됐다는 생각에 앞으로 진리에 공을 많이 들이고 새 신자들을 잘 양육해 그들이 하루빨리 참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평소 시간만 나면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이상 방면의 진리를 갖추었습니다. 예배 시간, 형제자매에게 무슨 문제나 어려움이 있으면 마음을 들여 고민했고, 하나님 말씀을 찾아 교제하며 해결해 주었습니다. 잘 모르겠거나 해결 못 하겠는 문제는 다른 형제자매에게 구했고요. 처음 믿는 형제자매들은 점차 문제나 어려움이 생기면 제 교제를 구하게 되었고 전 퍽 기뻤습니다. 이 본분을 이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모두의 우러름을 받다니, 제가 꽤 능력 있는 것 같았고, 본분에도 더 열의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다 리더의 안배로 청눠(程諾) 자매가 제 파트너로 오게 됐습니다. 한동안 지켜본 결과, 청눠는 본분에 책임감이 있고,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와 오류를 잘 발견하며,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그녀를 칭찬했고 평소 문제가 있으면 그녀를 찾아 구하고 교제했습니다. 이런 모습에 전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청눠는 여기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들 자매를 우러러보고 있어.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다들 내가 아니라 청눠한테 가는 거 아냐? 내가 청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안 돼. 더 노력해서 내가 청눠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 줘야겠어. 그래야 형제자매 마음속 내 지위를 지킬 수 있겠어.’ 그 후 전 매번 예배에 앞서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와 어려움을 미리 파악해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찾아 메모해 두었습니다. 예배 때는 어떻게 해야 청눠보다 뛰어난 교제를 해서 제가 그녀보다 더 훌륭하게 보일 수 있을지 늘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리더가 알아본 결과, 청눠에게 팀장을 맡겨 팀 내 사역을 책임지게 하는 데 다수의 형제자매가 동의했다고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전 기가 막혔습니다.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청눠가 팀장으로 뽑혔다고? 청눠보다 본분을 더 오래 이행한 내가 뽑히지 않았다니. 다들 이 사실을 알면 날 어떻게 볼까? 내가 청눠보다 못하다고 그러진 않을까? 이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 그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전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명리를 다투는 상태 속에서 사는 것으로 옳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저도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었습니다. ‘이것도 잘 됐지. 신경 많이 쓸 필요 없이 내 본분만 잘 이행하면 되겠네.’ 그때 전 이 일에 있어 진리를 구하며 스스로를 반성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류이신(劉以心) 자매가 내적 상태가 좋지 않아 예배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교제를 해 줄 생각에 자매에게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자매로부터 이미 청눠를 찾아가 구하고 교제를 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얘길 듣는데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원래 류이신은 문제가 생기면 날 찾아왔었는데. 지금은 청눠를 찾아가네. 내가 청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렇게 가다간 모두들 곧 나란 사람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무척 상심한 저는 청눠가 내 영광을 빼앗아 갔다 여겨 그녀에게 편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청눠와 파트너를 하는 게 싫어졌습니다. 그녀가 절 찾아와 사역에 대해 상의할 때도 전 본체만체했고 가끔씩 형식적인 대꾸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던 중 한 자매가 질문을 하자 청눠가 먼저 교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 아무 말도 귀담아듣지 않고 청눠가 교제를 잘해 또 내 영광을 빼앗아 갈까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어떻게 교제해야 청눠를 능가해 내 문제 해결 능력이 그녀보다 못하지 않다는 걸 모두에게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청눠가 교제를 끝내자 질문을 했던 자매는 여전히 구체적인 실행 길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전 속으로 고소해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많은 내용을 교제했는데도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니. 망신을 당했네요! 이 기회에 내가 좋은 모습을 좀 보여야겠어요. 내가 자매님보다 잘나고 교제도 더 잘한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 줄 거예요.’ 그래서 전 바로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교제를 끝내고 나서야 제가 자매의 질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내용을 교제해 줬단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매는 제게 메시지를 보내 제 교제가 주제에서 벗어났다고 알려 주기까지 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꼴이 됐단 생각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다 제가 다른 급한 일이 있어 접속을 먼저 끊어야 했는데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못된 생각이 튀어나왔습니다. ‘저러다가 언제까지 예배를 드릴지 모르겠네. 내가 예배를 더 드리지 못하게 됐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만 드리라지. 안 그러면 청눠 혼자만 돋보이겠어.’ 그래서 전 바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예배 시간이 이미 지났습니다. 질질 끌지 말고 문제가 있으면 다음에 또 얘기합시다.” 그러자 몇 분 지나지 않아 예배를 끝내더군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저는 무척 짜증스럽고 초조한 마음이었습니다. 방금 제 교제를 생각하면 너무 창피스러웠고, 청눠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고소해하던 제 모습을 떠올리니 죄책감이 느껴졌습니다.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자매와 협력해 본분을 잘 이행할 생각은 안 하고 암투를 벌이고 시기 질투하고, 그것도 모자라 몰래 무너뜨릴 생각을 하다니, 이게 지금 본분을 이행하는 거 맞아?’ 전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전 지금 명리를 다투는 상태 속에 살고 있습니다. 늘 남과 다투고 비교하며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고자 해요. 이런 상태가 옳지 않다는 건 알지만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자신을 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한번은 예배에서 이런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어떤 사람들 가운데 있든 눈에 띄는 모습이 하나 있다. 바로 무슨 일을 하든 두각을 드러내고 스스로를 뽐내려 하며, 남을 구속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고, 또 언제나 남들을 지휘하며 자기가 결정권을 잡으려 들며,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어 하고, 더 많은 사람의 시선과 주의를 끌어 많은 찬사를 받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갈 때마다 사람이 많든 적든,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직업과 신분을 가졌든 먼저 눈으로 한 번 쓱 훑어보며 누가 기질이 있고 뛰어난지, 누가 말을 잘하고 대단한지, 누가 자격이 있고 명망이 있는지 확인한다. 자신이 누구를 이길 수 있고 누구를 이길 수 없는지, 누가 자신보다 낫고 못한지 먼저 이러한 것들을 평가한다. 빠르게 평가를 마친 후에는 작업을 시작한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은 우선 한쪽에 제쳐 놓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먼저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어느 정도 명망과 지위, 은사, 재능이 있는 사람을 골라 그들과 겨룬다. 만약 이 사람들 가운데 형제자매들이 우러러보는 사람, 하나님을 오래 믿고 명망이 높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의 질투의 대상이 되며, 또 당연히 경쟁 상대가 된다. 그런 다음,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몰래 비교한다. 명망과 지위가 있고 형제자매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그 사람과 스스로를 견주어 보면서 그 사람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파악하고 있는지, 일부 사람들이 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이리저리 관찰한 후 그 사람이 어떤 업무에 정통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모두가 그 사람을 비교적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길고, 체험 간증을 얼마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사람을 ‘사냥감’, 경쟁 상대로 정한 뒤 작업을 시작한다. 어떤 작업이겠느냐? 자신이 상대보다 어떤 부분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그 부분에 열을 올린다. 예를 들어, 자신의 업무 능력이 상대보다 뒤처지는 것 같다면, 업무에 대해 공부하고 책을 많이 읽고 각종 자료를 많이 찾아보며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많이 구하는 한편, 그 업무와 관련 있는 각종 사역에 참여해서 조금씩 경험을 쌓고 자신의 세력도 키워 나간다. 자신에게 상대와 겨룰 만한 밑천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수시로 일어나 ‘고론’을 펼치며 고의로 상대를 부정하고 깎아내려 상대가 망신을 당하고 체면을 잃게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뛰어나고 남다른 면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며 경쟁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일들을 알아챈다. 오직 우매하고 무지하며 분별력이 없는 사람만 알아채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그의 열정과 추구, 그가 치른 고통과 대가, 그의 표면적인 좋은 행위만 보지만, 사실 진상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그의 핵심 목표는 무엇이겠느냐? 지위를 빼앗는 것이다. 그가 하는 이 모든 일, 그가 기울인 이 모든 노력, 그가 지불한 이 모든 대가의 한가운데에는 그가 마음속으로 무엇보다 숭상하는 지위와 권력이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고 제 모든 생각이 하나님께 하나도 남김없이 감찰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반성해 보니 전 양육 사역을 맡은 후 이 본분을 자신을 드러낼 기회로 여겼던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의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남들의 우러름과 인정을 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리더가 청눠를 제 파트너로 안배하자 청눠와 협력해 본분을 잘 이행할 생각은 안 하고 내내 청눠와 저를 비교하며 경쟁을 해댔습니다. 하루 종일 형제자매들이 문제가 생기면 누굴 찾아가나, 우리 둘 중 누가 형제자매들 사이에 명망과 지위가 있나만 신경 썼습니다. 청눠가 모두의 우러름을 받자, 전 위기감을 느꼈고 소외당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청눠를 경쟁 상대로 여겨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 오직 그녀를 이길 생각뿐이었고 어떻게든 제가 청눠보다 잘났다는 걸 모두에게 보이려 했습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본분을 잘 이행할지, 어떻게 하면 결실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어려움과 문제가 해결되었는지도 관심이 없었고요. 제가 하는 모든 일에는 제 명예와 이익, 지위를 생각하는 속셈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건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아닙니까? 적그리스도는 지위와 명망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누가 자기보다 잘났다 싶으면 질투하고 그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며 경쟁합니다. 심지어 지위 때문에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남을 억누르고 깎아내립니다. 남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자기를 높이고 드러내려 합니다. 그날 제가 했던 모든 일, 그 이면에 숨겨진 속셈과 동기는 적그리스도와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런 속셈을 가지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나자 전 무척 후회가 되었고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열심히 진리를 구해 제 패괴 성품을 해결하고 싶어졌습니다.

그 후, 전 이런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서민들 사이에서든 공직자들 사이에서든, 사탄의 진영에는 어떤 분위기가 있겠느냐? 어떤 행동 방식이 유행하겠느냐? 너희는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알 것이다. 그들의 일 처리 원칙과 방침은 어떻더냐? 각자 자기 생각대로 일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자신의 이익에서 출발해 각자 자기 일을 하며, 권력이 있는 사람이 결정권을 잡고 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는 경우는 아예 없이 모두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다 자신의 명리와 지위를 위해 일하며, 자기 기호대로 일을 처리하고, 권력이 생기면 바로 권력의 위력을 발휘한다. 만약 네가 그의 손아귀에 떨어지면 그는 어떻게든 너를 죽이지 못해 안달할 것이며, 그럼 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에게 뇌물을 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모두 전갈처럼 악독해서 일을 처리할 때 법과 정부 규정을 위반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죄를 지을 수 있다. 이런 일들을 그들은 다 저지를 수 있다. 사탄의 진영은 이렇게 어둡고 이렇게 사악하다. 오늘날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러 온 것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깨달아 사탄의 결박과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만약 너희가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실행하지도 않는다면, 여전히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살지 않겠느냐? 그럼 지금 너희의 내적 상태가 사탄, 마귀와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 이방인들이 다투는 대로 너희도 다투고, 이방인들이 싸우는 대로 너희도 싸우면서 온종일 아귀다툼을 하고 질투하고 분쟁을 벌이는데, 이 문제의 근원은 무엇이냐?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고, 모두가 패괴 성품으로 살기 때문이다. 패괴 성품이 권력을 잡는 것은 사탄이 권력을 잡는 것이다. 패괴된 인류는 누구도 예외 없이 사탄의 성품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네가 꽤 선량하고 유약하고 정직해서 권력과 이익을 다투는 일은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가 없다면, 너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성실하고 선량하다고 해서, 또는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명리를 다투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 기회가 생긴다면, 그리고 조건만 충족된다면 너는 똑같이 명리와 지위를 추구할 것이다. 명예와 이익을 다투는 것은 사악한 사탄 본성을 지닌 사람의 특징적인 행위로,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패괴된 인류는 누구나 명예와 지위를 위해 살고,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명예와 이익, 지위를 다툰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다. 따라서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 또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사탄 성품 속에서 사는 것이다. 사탄 성품은 이미 네 사상을 주도하고, 네 행위를 지배했다. 사탄은 이미 너를 완전히 통제하고 옭아맸다.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탄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너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 원칙>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서야 저는 왜 늘 저도 모르게 명리를 다투는 건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은 제가 사탄의 사상 관점, 사탄의 독소에 영향받고 물들고 패괴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는 제게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고생을 해 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와 같은 사상들을 교육하고 주입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그룹에 있든 전 남들의 우러름을 받고자 했고, 그런 우러름과 칭찬받는 느낌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존엄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에 와 본분을 이행할 때도 여전히 이런 사탄의 사상 관점에 따라 살았습니다. 남들의 우러름을 얻기 위해, 전 파트너 청눠를 경쟁 상대로 여겨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청눠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고민하였고, 수작을 부려 그녀가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는 것을 교란하기도 하는 등, 인성 없는 짓들을 저질렀습니다. 저는 줄곧 남보다 잘난 사람이 되어 남들의 우러름을 받으며 살아야 존엄이 있다고 여겨 왔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제가 이런 사탄의 독소들에 따라 살며 야심과 욕망은 나날이 커지고 마음은 점점 편협해졌으며, 그렇게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의 비난뿐 아니라 하나님의 혐오까지 사게 됐다는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사는 건 존엄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제야 제가 사탄 독소들에 의해 깊이 패괴됐음을 알게 됐습니다.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마땅히 있어야 할 양심과 이성도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가 아니었다면 전 자신을 반성하며 스스로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명예와 지위를 추구한 결과와 위험성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았을 거고 그러다 무슨 악행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절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 후, 전 또 이런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이 말씀에서 명예와 지위의 속박에서 벗어날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많은 일을 하고 큰 사업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뭔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착실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아주 위대해지는 것도, 존귀해지는 것도, 어떤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도 필요하지 않다. 또 하나님은 너에게서 그 어떤 놀라움을 보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다 필요 없다. 하나님은 오로지 네가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하기만을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했으면 바로 행하고, 듣고 깨달았으면 이행하고, 들었으면 마음속에 새기고, 그리고 실행해야 할 때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생명과 실제가 되고 그 말씀을 살아 내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만족한다. 네가 언제나 위대해지는 것, 고상해지는 것, 지위를 얻는 것, 높은 위치에 서는 것을 추구하면, 하나님이 보고 무슨 느낌이 들겠느냐? 하나님은 혐오하고, 멀리할 것이다. 네가 위대해지고 고상해지기를 추구할수록, 남보다 뛰어나고 두각을 드러내며 출중해지고 훌륭해지기를 추구할수록 하나님은 너를 싫어한다. 네가 반성하거나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너를 혐오하고 버릴 것이다. 절대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성실하게 진리를 받아들이고, 피조물의 위치에 제대로 서고,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은 만족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야심을 품거나 헛된 꿈을 꾸지 말고, 명리나 지위를 추구하지 말고, 두각을 드러내기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초인이나 위인이 되는 것, 사람들 속에서 남보다 돋보여 다른 사람의 숭배를 받는 것은 더더욱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패괴된 인류가 동경하는 것으로, 사탄의 길이다. 하나님은 그런 부류의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계속 명리나 지위를 추구하면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구제 불능이고, 결말은 오직 하나, 즉 도태되는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유명인이나 위인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으시며, 사람이 큰 성취를 이루는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성실히 행하고, 피조물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기만을 바라십니다.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으로 존엄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저는 늘 사람들 마음속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해 그들의 우러름과 추앙을 받으려 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요구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진리 실제가 없어 꿰뚫어 보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그저 글귀와 도리들만 얘기할 줄 알았으면서 늘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겨 뻔뻔스럽게도 남들의 우러름과 추앙을 받으려 했고 이를 얻지 못하면 남과 다투려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스스로를 조금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염치가 없었는지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지극히 높으시고 위대하십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직접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와 진리를 선포하시고 그렇게 위대한 사역을 하셨으면서 하나님은 이를 드러내지 않으시고,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자처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감추셨죠. 하나님의 본질은 너무도 사랑스러웠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스스로가 더 부끄럽게 느껴진 전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천하겠노라 다짐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전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남과 비교하며 다툴 생각만 했습니다. 지위를 추구하며 남들의 우러름을 받고자 했고 이는 당신의 혐오를 샀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명예와 지위를 내려놓고, 성실히 제 본분을 이행하겠습니다. 부디 절 이끌어 주세요.’ 그 후, 전 자발적으로 청눠를 찾아가 제 내적 상태와 제가 드러낸 패괴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우린 함께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교제하였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너무도 편안하고 평온했습니다.

그 후로도 청눠와 협력하면서 비교하는 마음을 드러낼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전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하며 스스로를 저버렸습니다. 한번은 청눠가 예배를 인도할 차례인데 청눠가 예배 자료를 정리할 시간이 없어 보여서 제가 형제자매들의 문제와 관련한 하나님 말씀을 찾았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말씀들은 내가 찾은 건데, 예배가 결실을 거두면 형제자매들은 청눠의 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청눠가 나보다 책임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냥 이번엔 내가 예배를 인도할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제가 또 명리를 다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이런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버리는 법과 내려놓는 법, 다른 이를 추천해 그가 두각을 나타내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일, 체면이 서는 일이 생기면 늘 다투거나 빼앗으려 하지 말고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본분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체면과 지위를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수록 마음이 평안해지고 밝아질 것이며, 네 내적 상태도 점점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다투고 빼앗을수록 네 내적 상태는 점점 어두워진다. 못 믿겠다면 시험해 보아라! 이런 패괴된 내적 상태를 돌려놓고 싶다면, 또 이런 것들에 통제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진리를 구해 이런 것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런 다음 그런 것을 내려놓고 버려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두각을 드러내거나 체면이 서는 일이 생기면 버리고 내려놓는 법을 배워 남이 나설 수 있게 해 줘야 한다는 실행의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전 청눠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내일 자매님이 예배를 인도하시면 전 협력하며 교제할게요.” 이튿날 예배 시간, 전 형제자매들이 절 어떻게 볼지는 상관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교제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만 고민하며 청눠와 협력해 교제하였고,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형제자매들은 이번 예배가 참 유익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전 마음속으로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진리를 실행할 때의 편안함과 평온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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