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리더가 되길 싫어한 진짜 이유
2022년 1월에 저는 교회 리더로 뽑혀 영상 사역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마음은 매우 복잡했습니다. 순종하자니 제가 업무를 몰라서 사역을 잘 해내지 못하면 드러나 교체될까 두려웠고, 반대로 정말 거절하자니 또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가 하나님 뜻을 깨닫도록 이끌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마침 그날, 저는 한 형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의 내적 상태를 알게 된 후 저에게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자매님이 리더를 맡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는 자신의 앞날과 운명을 따지고, 실제 사역을 잘하지 못해 드러나 교체될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에요. 또 리더가 되는 것은 위험하고 드러나 도태되기 쉽다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하고 계시네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리더가 되고 드러나 도태되는 것은 결코 그들이 리더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바른길을 걷지 않으며, 지위만 추구하고 제멋대로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에요.” 형제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제 마음을 알아맞혔고, 저 자신의 내적 상태를 어느 정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내적 상태에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셨습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을 조정하는 이런 간단한 일에 있어 사람은 마땅히 순종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하나님 집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하며, 무슨 일을 하든 힘이 닿는 대로 해내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일은 틀림이 없다. 이렇게 간단한 진리는 양심과 이성이 조금만 있는 사람은 다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적그리스도는 본분이 조정되는 즉시 이치를 따지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반항하고 속으로 불복한다. 그가 마음속으로 품은 것은 무엇이겠느냐? 추측하고 의심하며, 그다음 각종 방식으로 시험하는 것이다. … 적그리스도는 왜 간단한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겠느냐? 그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는 법이 없고, 시종일관 자신의 본분, 명예, 이익, 지위를 복받을 희망이나 훗날의 종착지와 긴밀하게 연관 짓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명예와 지위를 잃게 되면 복받거나 상받을 희망이 사라지고, 자기 목숨을 앗아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조심해야겠어. 경솔하게 굴면 안 돼! 하나님 집, 형제자매들, 리더 일꾼,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믿을 수 없어. 모두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사람한테 가장 믿음직하고 신뢰할 만한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이야. 스스로를 위해 계산하지 않는다면, 누가 남을 생각해 주겠어? 또 누가 남의 앞날을 생각해 주겠어? 남이 훗날 복을 받을지 말지를 누가 생각해 주겠어? 그러니까 난 스스로를 위해 세심하게 계획하고 계산해야지. 실수해서도 조금이라도 경솔히 굴어선 안 돼. 그러다가 이용당하면 어떡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집의 리더 일꾼을 경계하고, 다른 사람이 그를 분별하고 간파해서 교체할까 봐, 복받으려는 꿈을 망쳐 놓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는 명예와 지위를 반드시 지켜야 복받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복받는 일을 하늘보다도, 목숨보다도 크게 생각하고, 진리 추구나 성품 변화,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거나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것,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 구원을 받는 일을 다 사소한 일, 언급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일로 생각하고, 복받는 일만 평생에 영원히 잊지 못할 일로 여긴다. 어떤 큰일이나 작은 일이 닥치든 복받는 것과 연관 짓고 조심하고 신중하며 자신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둔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피조물로서 창조주 앞에 왔으면 마땅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이는 지극히 올바른 일이며, 사람이 이행해야 할 책임이다. 창조주는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하는 이런 전제하에 인류 가운데서 더 큰 사역을 하고, 사람에게 한층 더 깊은 사역을 했다. 그것은 어떤 사역이겠느냐? 바로 인류에게 진리를 공급하여 인류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얻게 하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정결케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더는 사탄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완전히 구원받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본분을 이행하게 하여 최종적으로 이루려는 성과이다. …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 이렇게 위대한 일이 적그리스도 부류에 의해 왜곡되어 거래로 변했고, 그들이 하나님 손에서 면류관을 받아 내고 상을 받아 내는 거래로 변했다. 이런 거래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의로운 일을 가장 추하고 가장 사악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한 짓이 아니냐? 이런 점을 보면 적그리스도는 사악하지 않으냐? 적그리스도는 너무 사악하다! 이것이 바로 그의 사악함 중 한 측면의 모습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오로지 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밝히셨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일이든 모두 복과 종착지에 연관 지으며 본분 조정과 같은 간단한 일조차도 단순히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앞날을 고려해 여러 번 재고 따져서 자신에게 복을 주고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면 받아들이지만, 한 걸음이라도 잘못 내디디면 드러나 도태되어 복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 자신의 앞날과 운명에 위협이 된다고 여기면 핑계를 대며 거절합니다.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은 너무 간사하고 사악합니다! 본분 조정을 대하는 저의 태도와 적그리스도의 모습이 다르지 않았음을 반성했습니다. 제가 교회 리더로 뽑힌 것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자신의 앞날과 운명, 결말과 종착지가 어떤 모습 일지였습니다. 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분석하고 연구했으며, 심지어는 훈련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했을 때 감당해야 할 여러 결과를 미리 상상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조금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번지르르한 이유를 찾아 스스로 자질이 부족해서 리더를 맡으면 사역을 그르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겉으로는 지위를 추구하지 않고 아주 이성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면에는 남에게 말 못할 이유가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리더가 되어 책임을 지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바로 드러나 도태될 것이니 저의 앞날과 대비책을 보전하기 위해 본분을 회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저희에게 본분을 이행하며 훈련할 기회를 주셔서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토록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일이 왔는데도 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하며, 핑계를 대고 본분을 거절했습니다. 저는 정말 이기적이고 간사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저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에 대해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셨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희들이 보기에 패괴된 인류는 누구를 막론하고 일단 지위가 생기면 적그리스도가 되느냐? 그것은 절대적이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적그리스도가 되고, 진리를 추구하면 적그리스도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그렇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분명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은 모두 지위가 생겼기 때문이냐? 아니다. 그 주된 원인은 사람이 진리를 좋아하는 올바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위가 있든 없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바른길을 가지 않는다. 이들은 반드시 잘못된 길을 가게 되어 있다. 이는 밥을 먹는 것과 비슷하다. 건강에 좋고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해 주는 음식은 먹지 않고 몸에 해로운 걸 먹다가 결국 자신을 해친 것과 같다. 이는 사람이 스스로 한 선택 아니겠느냐? 일부 리더 일꾼들은 내쳐진 후 “절대 리더가 돼선 안 돼. 지위를 가져선 안 된다고. 지위를 가지면 위험해지거든. 하나님이 드러내실 거야! 그렇게 드러나면 평범한 신자가 될 자격조차 잃어버리게 돼. 어떤 복도 받지 못한다고.”라고 관념을 퍼뜨린다. 이 말은 어떠하냐? 가볍게 보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이다. 그러나 무겁게 보면 이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너는 바른길을 걷지도,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지 않고 기어코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 바울의 길에 올라 바울과 똑같은 결말, 결과를 맞게 되었다. 그래 놓고서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다고 판단하니, 이것은 영락없는 적그리스도 아니겠느냐? 이는 저주받아 마땅한 존재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지위의 시험과 결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중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리더가 되는 사람은 모두 무지몽매해. 스스로 죽을 길을 찾는 거야. 리더가 되면 패괴를 드러내 하나님에게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 만약 사역하지 않으면 패괴 표출이 이렇게 많을 리 있겠어?’ 이런 생각은 얼마나 황당하냐! 네가 리더가 되지 않으면 패괴를 드러내지 않겠느냐? 리더가 되지 않으면 드러내는 패괴는 적겠지만 그게 구원받는다는 뜻이겠느냐? 이런 주장에 따르면 리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살아남아 구원받는 사람이겠느냐? 이런 주장은 너무나 황당하지 않으냐? 리더는 하나님 선민을 이끌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다. 이 요구 기준은 전보다 높아진 것이므로 막 훈련하기 시작할 때는 일부 패괴된 내적 상태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는 정상적인 것으로,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깨우침과 빛 비춤으로 사람을 인도하고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와 사역에 순종한다면 생명 성장이 일반 사람보다 빠를 수 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에게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보지 못하고 사실을 왜곡하기까지 한다. 사람의 이해에 따르면, 리더가 얼마나 큰 변화가 있든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리더 일꾼이 패괴를 얼마나 많이 드러냈는지만 보고 패괴 표출에 따라 정죄한다는 것이다. 리더 일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패괴를 적게 드러냈기 때문에 변화가 없다고 해도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황당하지 않으냐?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아니겠느냐? 네가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심각하게 대적하는데도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너는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을 정할 때는 주로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진실한 간증이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하고, 주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본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과오를 저질러 심판과 형벌이 닥쳐도 진실로 회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과 일만 하지 않는 한 분명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만약 너희의 상상대로라면 끝까지 따르는 평신도는 모두 구원받을 수 있고 리더들은 다 도태되어야 할 것이다. 너희에게 리더를 하라고 할 경우 너희는 안 하면 안 된다고, 하면 또 어쩔 수 없이 패괴만 드러내게 되어 그야말로 단두대에 오른 것과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모두 너희가 하나님을 오해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만약 사람의 패괴 표출에 따라 사람의 결말을 정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렇다면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것이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정말 이렇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에 있겠느냐?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오해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너희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다는 뜻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 가운데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거짓 리더들과 적그리스도들이 드러나 도태되는 것은 결코 그들이 리더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지위가 생긴 뒤 항상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바른길을 걷지 않으며 교회 사역에 방해와 교란을 가져와 아무리 훈계하고 책망해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러나 도태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으로 사람에게 드러낸 패괴나 한 가지 잘못된 행동만으로 사람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람의 본성 본질과 그가 걷고 있는 길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많은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 조금의 과오를 범할 수 있지만, 진리를 추구하고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다만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며 아무리 과오를 범해도 회개하지 않는 적그리스도나 악인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도태시키십니다. 주변에 드러나 도태된 리더나 적그리스도를 떠올려 보면, 그중 몇 명은 단지 글귀와 도리만 말하고 지시를 내리며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위의 복만 누리다가 결국 거짓 리더로 확정되어 교체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사역 기간에 오로지 명예와 지위만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명리를 다투며, 마음대로 사람들을 억누르고 혼내거나 사역 지침을 크게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독립왕국을 구축하여 사람들을 자신의 손에 묶어두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적그리스도 악마로 드러나 출교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드러나 도태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사람이 드러나 도태되는 것은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인성의 본질이 선한지 악한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인성이 좋지 않다면 리더가 아니더라도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없습니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는데 계속 교활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대충대충 하면, 힘쓰는 자격조차 없을뿐더러 결국 마찬가지로 도태됩니다. 교회가 사람을 처리하고 안배하는 데 특히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성품이 공의롭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교회에서는 진리와 공의가 권세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리더라는 이 직무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는 거라고 그릇되고 터무니없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나도 터무니없었습니다!
한번은 묵상 시간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할 뿐 진리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에 도태될 것이다. 그런 자는 진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변화되지 않은, 화를 입을 대상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것에는 불순한 것들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악으로 가득 차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난 저는 마음이 더욱 밝아졌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것과 복을 받고 화를 입는 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피조물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피조물로 불릴 수 없습니다. 마치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처럼 당연한 이치입니다. 부모가 마지막에 유산을 물려주든 물려주지 않든 상관없이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저는 또 어떤 태도로 본분을 대했습니까? 리더가 되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고, 제대로 못 했을 때 자신의 앞날과 운명까지 위험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자 핑계를 찾아 미루고 거절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본분을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책임이자 의무라고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고, 본분을 일종의 거래로 여겨 자신이 복을 받을지 아니면 화를 입을지에 따라 따지고 선택했습니다. 피조물이 본분을 대할 때 가져야 할 이성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문외한이라 업무를 모르기 때문에 분명 사역을 잘 해내지 못할 거라고 그릇되고 터무니없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실, 리더로서 사역을 안배한 후에는 반드시 사역의 진도를 체크해야 한다. 어떤 업무에 있어 문외한일지라도, 아는 게 하나도 없을지라도 그 사역을 할 방법은 있다. 그 업무에 정통하고 잘 아는 사람을 찾아 감독하고 의견을 내게 하면 된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의견 가운데서 적절한 원칙을 찾으면 사역을 체크할 수 있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4)>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저의 관념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모든 업무에 정통해야만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비록 업무에 문외한이고 경험이 없더라도, 업무에 능통한 형제자매들을 찾아 협력하고 그 가운데에서 원칙을 구하면 사역을 해낼 수 있습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윗선 리더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제가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도 확실히 분량이 작고 자질이 부족해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면 스스로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 다른 본분을 이행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뜻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한결 밝아졌고, 걱정과 염려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대로 일을 했을 때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고,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려는지도 몰랐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명하여 그가 해야 할 일을 지시했을 뿐 많은 설명은 하지 않았다. 노아는 명대로 행했지 사사로이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대항하지 않았고 두 마음을 품지도 않았다. 그는 순진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그가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졌던 신념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부탁을 대함에 있어 그토록 명쾌하고 단순했다. 노아의 본질, 즉 그 행위의 본질은 순종이다. 의심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개인적 이익이나 이해득실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다고 말씀하자 그게 언제냐고 묻지 않았고, 상세한 내용도 묻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왜 세상을 멸하는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명대로 행했을 뿐이다. 하나님이 무엇으로, 어떻게 지으라고 명한 대로 그는 일일이 행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려야겠다는 태도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했다. 노아는 자신이 재난을 피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냐?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 얼마 후 세상을 멸할 것인지 물어보았느냐?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방주를 짓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하나님께 물어보았느냐? 아니면 노아 스스로 알고 있었느냐? 노아도 몰랐다. 그는 단순하게 순종하고 명령대로 행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정직한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는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다. 둘째, 정직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모습은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네가 스스로 무척 정직하다고 말할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네가 “저는 자질이 부족해도 마음은 정직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본분이 임했을 때, 고생할까 두려워하고 잘 이행하지 못하면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 핑계를 대며 거부하거나 다른 이가 이행하도록 제안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그것은 분명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직한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반드시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며, 자신이 이행해야 하는 본분에 충성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측면의 모습이 있다. 하나는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육적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딴마음을 품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정직한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 너의 마음과 사랑을 전부 본분에 사용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며 보여 줘야 하는 모습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보니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많이 듣지 못했고, 방주를 지어 본 경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부탁을 받았을 때, 어떤 분석이나 연구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 뜻을 추측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했으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실행했고, 자신의 이익과 득실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단순함과 정직함은 제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고, 또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저를 리더로 발탁했을 때를 떠올리니, 이렇게 중요한 본분이 주어졌지만 제 마음속에는 온통 제 이익의 득실만 따지고 있었고, 심지어 이 본분을 이행함으로써 닥칠 수 있는 여러 결과까지도 생각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참으로 간사해서 저 같은 인성은 도저히 노아와 비교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본분을 대하는 태도로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책임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과감하게 중임을 맡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는 하나님 집 사역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앞에 나서서 용감히 나아가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핵심적인 사역을 보면 용감하게 막중한 책임을 짊어질 줄 알고, 고생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정예병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니 제 마음에 크게 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자신의 앞날을 고려하지 말고 저를 리더로 선택하셨으니,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고, 책임을 지며 무거운 짐을 감당해야 하며 노아를 본받아 단순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지만, 하나님께 자주 기도드렸고, 함께 사역하는 자매님도 인내심 있게 저를 도와주었으며, 형제자매들도 저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때로 어려움에 부딪힐 때면, 저는 다른 사역에서 성과를 내는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원칙과 효과적인 실천 방식들을 아낌없이 저에게 알려 주어서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점차 저는 원칙과 방법을 알아 갔고, 본분 이행에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느꼈고,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비록 지금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고 제가 맡은 짐이 무겁다는 것을 알지만, 저는 더 이상 뒷걸음치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해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